주 제: 사랑은 무한한 능력을
소 주 제: 믿음. 두려움 사랑
날자 및 분류: 240225낮 설교 창 조 의 말 씀
성 구: 막16:1-4
저 자: 정 헌정 목사 http://cafe.daum.net/changcho
[본문]막 16:1-4. 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4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 그 문제로 인하여 걱정과 근심 속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한 숨과 불평과 좌절이라는 그림자 앞에 갇히게 된다, 그리고는 자신이 너무도 무기력함을 느끼게 되고 부족함을 알게 됨으로서 그 자리에서 도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오늘 사순절 기간을 통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그 죽음을 접하는 사도들이나 여인들을 통해서 우리들의 신앙을 점검해 보려고 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고난과 역경을 겪으면서 마지막의 피 한 방과 물 한 방울을 다 흘리시며 죽으셨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모두 도망가거나 숨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3일이 지나자 사도들이 움직인 것이 아니라 여자들이 예수님의 죽음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성경에는 3일째 되는 날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서 사다 두었다가 예수님께서 죽음에 들어간지 사흘만에 다시 말해서 주일날 매우 일찍이 그 무덤으로 가고 있다,
이 세 여인은 예수님의 무덤을 향하여 자신들이 미리 사 두었던 시신에 바르는 향품을 가지고 가고 있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예수님을 찾아가는 것은 로마군인들이나 대제사장의 졸개들에게 들키거나 잡히면 예수님처럼 죽을 수도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안식일이니까 아무 행동도 하지 않다가 안식일이 지나자 새벽부터 움직여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간다,
1. 두려움 없는 믿음
이 세여인의 신앙은 향품을 사서 예수님의 시신에 부패를 막기 위해서 바르려고 준비할 때부터 이미 죽음을 초월하는 믿음으로 다져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안식일이 지나자 새벽부터 이 세 여인들은 정든 집을 떠나 다시 돌아올 수도 없을지 모르면서 예수님의 무덤으로 향하고 있다, 로마군인이나 대제사장의 졸개들에게 잡혀갈 마음의 준비도 마쳤다, 이 세 여인은 잡혀갈 마음도 죽을 준비도 이제 마쳤다, 다시 말해서 그들에게 두려움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두려움이 사라졌다는 말씀은 그들을 붙잡고 있는 사단이 포기할 수밖에 없는 믿음의 소유자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성경에서 가장 우리에게 뚜렷하게 확실하게 말씀하시는 것은 두려워 말라다, 성경에서 두려워 말라는 366번이나 나온다, 그런데 1년이 365일이라 그런데 366번이나 나오는 것은 윤달까지 계산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렇게 성경은 우리에게 두려움과 공포로 나를 작게 만들지 말고 넓고 크고 멀리 볼 줄 아는 눈을 가지라는 말이다, 5병2어로 5000명을 먹이고 나서 먼저 제자들만 갈릴리바다를 건너게 하셨는데 제자들은 예수님 없이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거센 풍랑과 싸울 때 거기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신다,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에서 혼비백산하여 떨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신다,
마 14:26-27. 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예수님께서 주장하시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평강이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셔서 하신 첫 말씀도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였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평강을 말씀하셨을까.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예수님께서 평강이 있느냐고 물으신 것은 너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가고 있느냐고 묻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셨다, 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셨다는 유일한 근거는 우리 마음에 평강과 희락이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고 명령하신다,
골 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이 말씀을 보면 감사하는 마음은 평강이 우리영혼에 우리 마음에 있을 때 가능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사단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들을 주장하지 못하게 하여 두려움이 우리들의 앞길에 나타나게 하며 두려움으로 우리를 사단의 졸개로 만든다, 두려움은 우리들에게 사단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영역이며 방법이다, 우리가 어떤 일이나 문제가 거대하게 나타난다면 두려움과 공포로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오늘의 본문에 세 여인들은 믿음에서는 3년6개월을 따르던 사도들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있었을까 그건 성경에 기록되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그 여인들을에게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넘치게 하시매 두려움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 여인들의 마음에서 쫓겨나서 없다, 성도들이 가장 먼저 가져야 하는 것은 생각하고 기도하고 시도했다면 하나님께 기대하시는 믿음이 있어야 된다, 여인들은 힘과 지혜는 없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사랑은 그들의 영혼에 마음에 넘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면 두려움은 우리에게 없다,
2. 장애는 있어도 준비하는 믿음
많은 사람들 중에 장애를 만나면 포기해 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를 향하여 준비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그 문제 앞에서 오히려 그 장애를 비웃듯이 준비한 것을 가지고 전지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일까, 가다가 장애가 있으면 멈춰버리는 사람인가. 아니면 설상 되지 않더라도 준비하여 나아가는 사람인가,
우리나라 속담에 못 올라갈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 저는 이 속담은 다시 고쳐야 되지 않는가 한다, 왜냐하면 못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힘으로 어느 정도까지 올라갔다면 보이는 세상은 더 많이 보인다, 아애 올라가지 않으면 서서 보는 그 이상의 것을 보지 못하지만 나무에 올라간 만큼 더 멀리 보고 내려온다, 에디슨이 99번의 실패로 돌아갈 때 많은 사람들은 말하기를 그것보라고 안 되는 것을 왜 그렇게 몰두해서 시간만 죽이냐고 말할 때 발명왕 에디슨은 말하기를 99가지의 방법을 자신은 터득하게 되었노라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것이 전화며 전구 측음기들이 있다,
세 여인들이 안식후 첫날 주일날 만나서 예수님의 무덤에 가기로 결정하고 만났다, 어제까지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만난 것이다, 거기에 가장 큰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유대인들은 무덤을 굴로 파서 그 안에 시신을 두고 그 굴을 바위의 돌문으로 그 굴을 막는다, 그런데 그 굴을 막는 돌은 작지 않다, 성인들이 몇 명이 굴려야 될 수 있는 돌문이다, 그러나 이 세 여인들이 그 돌문을 움직인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여인들은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서 준비하고 그 준비한 것을 가지고 무덤을 향하여 가고 있다, 그 여인들은 근심과 걱정이 있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굴의 돌문으로 인하여 예수님의 시신을 못 볼 수 있다 로마군인과 대제사장의 졸개들에게 잡혀갈 수도 있다, 그러나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고 장애에 대하여 걱정하면서도 가는 길을 멈추지 않는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그들이 걱정하고 근심하는 일은 이미 해결되어 있다, 우리들의 근심과 걱정도 시간이 흐르면 해결된다, 내일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고 말했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유명한 명언이다,
벧전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세 여인들이 염려하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향품을 준비하고 오던 길을 멈추거나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의 무덤에 왔을 때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며 염려하던 일이 한 순간에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해결되어 있다, 그 돌문은 열려있다, 그리고 보너스까지 주어진다,
마 28:1-6. 1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마 28:4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여인들이 왔을 때 돌문이 열려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거기에 계시지 않았고 부활의 현주소인 빈 무덤만 보게 되었고 거기에 보너스는 예수님께서 향품을 바르실 시신으로 누워계시는 것이 아니라. 살아나셨다는 역사적인 사건의 증인이 되었고 보너스로는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에 두려움과 아쉬움 속에서 잊었던 말씀을 듣는다,
마 26:32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세 여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 예수님의 시신이 부패함을 막기 위해서 향품을 준비하고 새벽부터 나아갈 때에 사단의 무기인 두려움도 그 세 여인들을 붙잡을 수 없었고 로마군인들의 권력의 압력도 막을 수 없었고 대제사장들의 졸개들의 회유도 핍박도 그들의 앞길에 장애는 되지 못했다, 그 여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만이 그 들을 주장하고 있다, 우리가 예수님을 향한 발걸음이 지칠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지만 예수님을 향한 발걸음이 계속 전진한다면 부활의 살아계신 주님을 만날 수도 있고 하나님의 언약을 듣고 성취될 수도 있고 우리들이 현시대에 살라갈 때 새로운 열매도 무성하게 무르익게 만들어질 것이다, 우리들의 하루하루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외 기적 속에서 살아감이 넘치게 될 것을 기원한다,
요 15:5-7.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