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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러운 5월의 주말임에도 여전히 우리 소리를 배우고 익히려는 사람들이 한소리에 모인다.
요사이 생활이라는 것이 너무 바쁘고 떠들썩한 일상속에서 마음의 중심을 잡고 진정한 자기 소리 통해 남의
소리를 맞춰보는 여유를 되돌아 볼 수 있는 멋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1.讀書百遍 義自見
책을 백번 반복해서 읽으면 자연히 그 뜻을 알게된다.
15:05
차렷 경례
엄악장의 힘찬 소리에 맞춰 禮를 갖춘다.
“황” 불고
音고르기 이다.
수연장
우리가 정악을 배울 때 제일 먼저 배우는 곡이다.
전번 엄 악장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매일 부는 이 수연장이 가장 까다롭고 어려운 곡이라는 것을 요사이 새삼 깨닫는다고 했다.
이습회를 시작하면서 일주일간 묵혀둔 악기에 김도 불어놓고 손도 몸도 긴장도 풀겸 수연장이나 송구여를 분다.
수연장이나 송구여.
쉽다고 생각하지만 어려운 곡임을 다시 한 번 느꼈다면 이 곡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다는것이고 정악 대금의 참맛을
공유할 수 있는 경지에 다다른다는 것인데 우리 엄 악장 온 몸에 힘을 다해 죽어라 불더니 이제는 드디어 道人의 경지에
이르나 보다.
수연장을 밑 도드리 또는 尾還入이라고도 하는데 악절의 특정부분에 되돌이표처럼 돌아드는 특징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곡의 특성상 무뚝뚝한 느낌이 드는데 그래서 이 곡의 맛을 내려면 원장님이 말씀하신 누구처럼 매일 인왕산에 올라 돌맹이
셈을 하면서 하루 종일 불어야 될 성싶다.
더듬 더듬 한 단어씩 읽기 시작한 책을 수 백번 읽고 또 읽게 되면 드디어 文理가 터져
어느 순간 그 책의 내용이 머릿속에 환하게 박히게 되고 그 문장의 첫 글자만 대면 다음 문장들이 입에서 술술 나올 정도가
되는 단계에 이른다고 하는데 연주자들이 도드리를 연주하면서 도달하고 싶은 경지가 이쯤이 아닐까 한다.
우리 춤사위에서도 보면 같은 동작이 반복되는 도드리가 기초가 되고 있다.
혼자 추는 춤이던 群舞든 발로 몸을 돌리는 도드리는 칼춤, 승무, 농악, 살풀이, 탈품, 부채춤 할 것 없이 돌지 않는 춤이 없으며
이런 도드리동작이 한국의 신바람과 무관하지 않다고 봤을 때 언제 우리는 이 도드리란 곡을 가지고 리듬과 박자를 타면서
신바람 나게 놀아볼 수 있을까?
15:15 – 15: 39
취타 한바탕
원래 예정된 곡은 길타령부터 군악까지인데 취타부터 연주한다고 하니 원래 계획과 차이.
누군가 김종현선생한테 악보를 지참했느냐고 물어본다.
선생님은 정해진 악보만을 지참하시고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것을 허용하지 않으시는 강백함이 있다.
다행히 취타한바탕의 악보가 묶여 있어 별문제가 없으시단다.
일명 萬波停息之曲으로 불리는 취타부터 절화, 길타령, 금전악, 군악까지 한바탕을 거뜬하게 나간다.
취타라는 의미가 치고 때린다는 뜻으로 행진곡풍의 경쾌로움이 이 음악에는 묻어있다.
옛날 궁궐에서는 모든 禮의 기본을 樂으로 표현했다.
임금을 비롯한 모든 文武百官앞에서 당시의 악사들은 의복을 갖추고 집례자의 시작에 따라
그리고 집박의 신호를 타고 모든 연주자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에 맞춰 무희들의 춤사위가 시작되고 이것들이 어울려
그려내는 유려함에서 백성을 사랑하고 공경하는 지혜를 배웠을 것이다.
우리도 그 지혜를 배우듯 한 음 한 음 조심스레 짚어 나간다.
앞서지 말고 그렇다고 뒤쳐서도 안 되고 옆 소리를 듣고 같이 나가야 한다.
독주와 달리 합주는 남을 배려하는 겸양의 정신이 배어있는데 항상 그냥 지나치고 깨우치지 못하니 문제다.
우리 음악은 소리로 채우는 부분도 재미있지만 사실은 소리사이의 틈 즉 그 여백에서 더욱 많은 여운을 느끼고 수많은 상상력을
자아내고 있다.
음과 음 사이의 공백을 굳이 다른 악기소리로 채우지 않고 그대로 비워두는 사이공간이 우리 소리의 백미이다.
우리 선조들은 음악이나 노래, 그림이나 춤이나 장식이나 공간배치에서도 여백의 미를 추구하고 있다.
우리 수묵화에서도 대나 난을 친 부분보다 그려지지 않는 여백을 항상 머릿속에 가늠하고 그린다.
그렇게 그려놓고서 그려진 부분과 그려지지 않는 부분을 通觀하므로서 美를 느끼고 멋을 찾아낸다.
동양화가 색과 면 보다는 먹의 濃淡과 線 그리고 공간의 여백으로서 표현하려함은 이것들이 심성에 의해서 사물의 중요한
골격을 파악하는데 가장 적절하기 때문이며 색과 같은 단순한 시각에 호소하는것이 아니라 한층 깊숙한 정신구조에
감흥을 자아내고자 하는 것이 예술적 의도이기 때문이다
우리 음악도 그렇다.
우리 음악의 쉼은 절정이요, 주체이다.
유럽의 교회 종소리는 높은 고음으로 천상으로 사람을 끌어올리는 사이를 허락하지 않는데 비해 한국의 고즈녁한
산사 종소리는 다 울리고 난 다음에도 듣는 사람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여운에 그 소리의 참맛을 느낄 수 있고 자연의 소리를
닮아있다.
취타 한바탕을 연주하면서 여기에 맞추어 숨을 쉬다보면 이 소리에 푹 안겨 함께 흘러가는 일체감을 맛보게 된다.
내가 음악인지 음악이 나인지 모르게 한 참 몰입될 때 몸도 음악처럼 자연스러워지고 몸과 정신이 맑아짐을 느낀다.
지식을 앞세운 연주나 감상보다는 보다는 가슴으로 느끼고 몸으로 체득하는 것이 더욱 더 우리 음악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지름길임을 다시 한 번 느낀다.
파도를 넘나들 듯
바람에 너울 타듯
꼬인 실타래를 풀리 듯 소리가 넘실거린다.
원장님이 유빈이 소개가 잠시 있었다.
어릴 때 단발머리를 한 소녀가 이제는 어엿한 숙녀로 변해 있었다.
초등학교때 한소리 국악원에서 단소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우리 소리에 매료되어 국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한예종에서
국악이론을 전공하고 있다.
이름도 유빈이니 이미 우리 소리할 것을 예견했나 보다.
仲呂, 蕤賓, 林鍾...
원장님은 당신의 뒤를 잇는 유빈이의 이름을 칠판에 쓰고 나중에 꼭 성공하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유빈이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다.
15:42 -15: 51
표정만방중 상령산
엄악장이 그 큰 키로 좌고를 박봉현 선생한테 전한다.
관악 영산회상이라 거문고에서 터득한 박자감을 좌고로 임무교대.
가야금, 거문고가 들어가는 줄풍류에서 관악위주로 편성되는 대풍류로 바뀐다.
그런데도 해금은 대풍류에도 들어간다.
형태상으로 현악기지만 활대로 현을 문질러 관악기처럼 지속음을 내는 악기의 속성에 따라 일찍부터 관악에 포함되기도 한다.
피리를 살살잡고
띠 랜띠
우리 소리는 혼자 하는 독주가 멋있는 곡이 있다면 어울려서 하는 합주가 어울리는 곡이 있다고 봤을 때 표정만방의 상령산은
당연히 합주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피리가락 사이를 대금이 뚫고 나가고 그 사이를 애잔한 해금의 소리가 메꾼다.
우리 소리의 대부분은 음악의 흐름에 따라 힘과 기운을 넣었다가 빼는 즉 죄었다가 푸는 수많은 고리가 있다.
수제천이나 동동 그리고 이 곡이 묵직하고 역동적인 힘의 분배를 살피면서 연주할 필요가 있다.
서양음악처럼 화성을 사용하지 않고 음을 떨거나 흘러내리거나 꺾어내는 음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특징이 끊어질 듯 이어지는
여러 소리의 조합이 경이롭다.
떠여 니로나 노니로
도레미파가 귀에 익은 우리에겐 처음에는 약간 어색했으나 이제는 익숙하게 들린다.
그 사이 원장님은 피리곁을 떠나지 않으신다.
원장님의 피리사랑은 유별나다.
오늘도 피리잽이들은 온 몸에 기를 모으고 힘을 채워 피리소리에 집중한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합주에서 피리의 중요성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
나머지 악기야 좀 늦게 가고 일찍 가도 그리고 소리가 좀 틀려도 다른 소리에 묻혀 그 존재가 별로 나타나지 않으나 피리소리는
일당백의 소리라 그 진위 여부가 그 자리에서 그대로 적나라하게 알려져 버리니 빠져나갈 여지가 없다.
휴!!
피리 안 불기를 잘했다라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그 사이 원장님은
소금으로 잔가락을 넣어서 음악의 윤활유 역할을 하시면서
손으로는 지휘하고
입으로는 구음하고
몸으로는 전체 음악의 느낌을 표현한다.
“잘 안 맞아도 대충 맞아도 멋있는 음악이에요
아주 좋지요.”
그렇지만 언뜻 들으면 제멋대로 흘러가는 소리일것 같지만 맞지 않으면 音惡이 되겠지
맞추고 짚어나가니까 音樂이 되는것이지.
소금 불고
손으로 지휘하고
피리잽이들 정신차리고 잘해라. 잉?
잠시 휴식을 취하고
咸寧之曲
편안함이 두루 퍼진다는 의미로 영산회상과 관련이 있는 음악이다
영산회상은 현악영산회상, 평조회상 그리고 관악영산회상이 있는데 현악영산회상이 원곡이며 여기서 나머지 두 곡이 파생되었다.
현악영산회상은 거문고를 비롯한 현악기가 중심이 되고 현악영산회상을 4도 낮게 이조한 곡이 바로 평조회상이다
그리고 관악기로만 연주하는 영산회상이 아까 연주한 표정만방지곡이다.
영산회상은 여덟곡 혹은 아홉곡을 이어서 연주하는 모음곡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함녕지곡은 표정 상현의 1,2장과 염불 3,4장
그리고 타령을 연주하는 것이다
따라서 곡의 구조는 영산회상과 같고 주로 궁중과 민속무용의 반주음악으로 사용이 되고 마지막 곡 군악의 후반부에서는 모든
악기가 고음역으로 치솟으면서 호기 찬 행진곡풍의 가락을 연주하게 된다.
대금, 피리, 해금등이 어울려서 내는 소리는 부드럽다.
서양의 브래스 밴드가 내는 금속성의 소리가 아니라 자연의 재료로 만든 우리 악기가 어우러서 내는 소리는 자연의 소리가 묻어있다.
농본문화적 특성을 가진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소리뿐만 아니라 모든것을 행함에 있어 자연과의 조화를 최고의 이상으로 삼기
때문이리라. 자연은 인간의 대상물이 아니라 우리가 소속되어있는 우주적 질서이며 모든 생성의 모태이자 사멸의 회기점이다.
불교적으로 말하자면 무적존재이며 도교에서는 무위적 존재이다.
확실히 우리에게 있어서는 자연을 닮고자 하는 정신이나 자연과의 조화라는 테마는 모든 철학과 예술의 기본정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중에 뒷풀이 자리에서 어느 분은 이 곡이 밋밋해서 지루하다고 말씀하시기도 했고
어떤분은 이 곡의 매력에 빠져 항상 다른 기분으로 연주할 수 있는 좋은 곡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가곡 네 자락.
이형욱선생의 굵직한 목소리도 만들어내는 언락
꾀꼬리 목소리를 가진 송규정 선생의 여창 우락
나무도 바히돌도 없는 남창 편락
모란은 화중왕이요 여창 편수대엽
그런데 마지막 여창가곡에서 노래가 나갈 자리에 해금낭자들이 꿰차고 나가는 불상사가
생겼다.
너무 소리에 심취했나 보다.
“해금낭자가 나를 괴롭혔어.”
범인은 누구?
역시 인간의 목소리를 따라가는 악기는 없다.
옥구슬이 굴러가고 깊은 바닷속 물결치는 육중함이 소리에 베어있다.
16:45
이렇게 해서 오늘 이습회도 끝이 난다.
경례
누구일까?
2. 500회 금자탑 - 그 길고도 길었던 세월을
오늘로서 이습회 500회를 기록했다.
10년이 걸렸다.
조그마한 자축연이 열렸다.
악장님의 개회에 이어 노헌식선생의 인사 말씀.
“태어나서 이렇게 인사를 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유
500회를 맞이하여 음악적으로 즐거움을 나누고 삶의 즐거움을 같이 나누기를 바랄께유“
500회의 지대한 공을 세운분이다.
기다리는 여유를 가지고 누가 틀리면 소리 없이 다가가 어루만져주는 다정함이 묻어나는
한소리의 보배같은 분이다.
이습회 100회기념. 2009년 3월
원장님의 인사말씀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 많이 안 나오셨네요.
우리 한소리는 전두환이 5.18을 일으키는 그 해 8월에 시작했으니 35년 8개월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습회는 여기 계시는 이재권 선생의 청에 따라 2006년에 시작했어요.
그 때는 연주회가 있으면 3개월 전부터 모여 연습을 했는데 좁아서 앉을데도 없었고 이습회라는 이름도 없었고 가락도 박자도
엉성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여기에 노헌식선생이 붙어 틀을 잡아 나갔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오늘날 이렇게 수준이상의 음악모임이 되었습니다.
한소리는 정악을 하는 곳입니다.
나도 국악원에 있을 때 여만락 전장을 외워 4번이나 연주를 했습니다.
그 긴 것을 어떻게 외울까 했지만 하면 돼요.
힘들었지만 끝나고 나면 큰 희열을 느낍니다.
악보를 외워야 진정한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수연장, 취타, 수제천정도 라도 외워서 연주합시다.
그리고 여기가 정악의 메카가 되려면 선배들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새로 들어오는 후배들을 잘 지도해서 좋은 소리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이습회는 1년에 딱 한번 8월 첫째주 하루만 쉽니다.
조금만 더 신경써서 우리 모두 음악적 완성도를 높여 나갑시다.“
그렇다.
여기가 소리를 생업으로 하는 국립국악원도 아니고 무슨 강제적인 힘을 가진 단체는 더더구나 아니다.
그냥 우리 소리가 좋아 모인 사람들이고 남이야 뭐라고 하던 우리 것에 미친, 시대에 좀 뒤떨어진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적어도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우리 문화의 마지막 파수꾼이자 우리 소리의 지킴이들임에는 틀림이 없다.
미국사람은 미국적인 것을 사랑한다.
영국 사람들은 영국적인 것에 긍지를 갖는다.
세상에 사는 민족은 그 민족 나름의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은 민족의 전통속에서 기생하는 공통분모이다.
유태인들은 구약성서나 탈무드라는 민족고유의 경전을 배우게끔 하였다.
왜냐하면 유태인에게는 그 책속에 민족의 기억이 생동해 있고 그 생동하는 기억을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런 문화나 의식이 없거나 미약했다.
우리 전통문화의 소중함을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도리어 빨리 우리 기억속에서 잊혀지기를 원했고 남아있는 유물이나 유적은 보존이나 공유의 가치가 아니라 파괴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교통에 장애가 된다고 해서 성벽을 헐었고 옛 다리는 좁다고 뜯어 버렸다.
요지에 자리 잡은 고가는 헐어버리고 그곳에다가 빌딩을 지었다.
문물, 문화, 사고방식, 정신구조 모든 면에서 과거의 전통은 사라졌고 그것을 모태로 하여
자양을 섭취해 오던 민족의 기억은 창백하게 영양실조에 걸려 빈사상태에 놓여있다.
그럼에도 우리 것을 지키고 가꾸어 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소중함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오늘의 모습은 우리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하고 뿌듯하기 그지없다.
한소리는 이런곳이다.
그리고 이인수 교수님이 외국여행하시면서 거리에서 불었던 힐링이란 곡을 소금으로 연주해 주셨다.
이습회 400회기념. 2014년 5월
박봉현 선생님의 말씀.
한소리를 만나서 그리고 노헌식선생을 만나서 자신의 소리를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만남이었다고 하셨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같이 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
김유찬 선생의 말씀.
앞으로도 꾸준하게 나가서 1,500회 2,000회까지 어어 나갔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피력하였다.
그리고 신현주 팀장의 말씀
400회, 500회를 준비했는데 1,000회도 함께 했으면 행복하겠습니다.
뒤에서 말없이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계시는 숨은 일꾼이다.
그리고 이인수 교수님께서 한 말씀 하셨다.
당신이 처음 교편을 잡으셨을 40년 전에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우리 국악이 10%정도였는데 당신이 교육부 담당 과장과 국장, 국회,
청와대 교문수석을 만나면서 노력해서 국악을 51%까지 올렸단다.
그러다가 서양음악 쪽에서 다시 거기에 대한 반발을 해서
당신의 환갑때는 46.5%까지 왔다가 지금은 조금 더 내려간 상태라고 하셨다.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태어날 때는 국악인생으로 태어났다가 자라면서 서양음악에 젖는다는 음악적 주체성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이인수교수님은 대구에서 오랜 기간 교편을 잡으시다가 얼마 전 우리 한소리에 합류하셨다.
이런 선각자적인 안목을 가지시고 행동하는 지식인들이 계셔서 그나마 지금 만큼이나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뒷풀이 자리에서도 역시 대금으로 같은 곡을 연주해주셨고 칠갑산도 덤으로 반주없이 연주해주시는 끼를 보였고 거기모인 모두는 그 분을 한량이라 했고 본인도 그 말에 부정은 하지 않으셨다.
우리 음악을 느낄 줄 알고 즐길 줄 아는 분이시다.
이인수 교수님의 축하 연주
명심보감에 이런 말이 있다.
黃金이 未是貴요,
安樂이 値錢多니라.
(황금이 귀한 것이 아니고
편안하고 즐거운 것이 참으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
3. 前事不忘 後事之師
며칠전 신문에서 아주 충격적인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어느 걸 그룹의 멤버가 안중근의사의 사진을 보고 누군지를 알지 못했다는 기사였다.
안중근의사를 모르는 걸 그룹?
우리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사를 몰라보는 이 시대의 청년들.
자기가 지금 살고 있는 번영의 뿌리가 누구의 희생의 결과라는 의식도 없이 지금의 혜택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태도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그런 텅빈 생각을 가지고 짧은 치마입고 몸으로 보여주고 입으로 내뱉는 가사에 무슨 철학이 스며있고 무슨 감동을 받을것인가?
과거 그 분들의 고귀한 희생위에 지금의 번영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훈장과도 같은 역사다.
역사는 시간의 흐름이다,
시간은 곧 변화다.
역사적 시간은 변화가 그 본질이고 역사적 변화의 특성은 연속성이다.
만일 이 연속성이 부정되고 역사를 끊어진 토막실 타래라 한다면 역사적 고찰은 전혀 무의미하다.
역사는 절대적 전환, 단절이란 없다는 가정위에 성립되어있다.
단절없이 이어지는 역사의 꿰임이 우리의 임무인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 내는 소리도 결국은 옛날 우리 선조들이 만들었던 소리를 이 시대에 다시 재현해 내는 것이다.
그 소리는 지금과 같이 일정한 틀을 갖춘것도 있지만 농사를 주업으로 삼던 그 시대의 농부들이 철따라 부른 노래가 될 수도 있고
고된 시집살이를 하던 며느리가 한숨을 더해 토해내는 소리도 될 수 있다.
요즘 산조시간에 불어보는 흥타령이나 농부가를 자세히 들어보면 정악대금이 명상적이고 초월적인 여운을 담고 있는데 비해
산조대금은 아래위를 자유자재로 드나드는 극적인 감흥을 주는것도 우리 소리의 멋이고 맛이다.
자연의 재료롤 만든 우리의 전통악기를 가지고 님을 기다리는 여인의 한숨섞인 긴 기다림을 표현하기도 하고 농사꾼의 고된 노동을 해학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소리가 우리 곁에서 그 오랜 세월을 같이 지내온 이유가 되는것이다.
농부는 힘으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명으로 하는것이다.
일을 일로만 생각하면 농사만큼 힘든 노동도 없다.
그러나 조금만 마음을 열면 그처럼 즐거운 것도 없다.
어른을 봉양하고 자식을 기르는 양식은 땀 흘린 만큼 거두는 땅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들판에서 부르는 농사꾼의 노래는 이 땅에 의지해서 살아온 삶의 소리이고 우리의 역사를 담은 민족의 음악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속에 보편적으로 내재되었는 삶의 여유와 관조, 그리고 도달하고자 하는 탈속의 경지까지도
담아내고 있다.
농부들이 논두락에서 괭과리를 한자락 돌려 흥을 내었다면 선비들은 벼룻물에 국화꽃을 두어 송이 꺾어 보내 친구의 젓대소리를
청해들었다거나, 책 읽은 방에서 조용히 우리 소리를 들으며 조촐하게 흥을 갈무리 했을 것이다.
이런 풍류와 아울러진 소리가 지금까지 연연히 줄을 이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우리의 여러 악기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소리는 때로는 구성지고 시원스럽게 내는 소리 소리마다 우리의 역사를 담고 그 소리를
풀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 한소리에 모여 같이 우리 소리를 익힌다는 것은 우리의 문화를 항유하는 것이고 이는 곧 우리의 역사를
이 시대의 소명으로 공유한다는 것이다.
역사는 과거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책임으로 이해되어져야 하며 역사를 하나의 조건이나 운명으로 받아 들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요사이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랩을 들으면 소리를 토해낼줄만 알았지 자기의 마음을 감추고 숨기고 삭일줄을 모른다.
우리의 소리는 마음의 소리를 뱉어내기도 하지만 가슴속에 품기도 한다.
전통문화란 우리가 살아가는 잠재능력의 축적이다.
문화적 주체란 과거의 자기 것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통문화를 가꾸어 이어가고 그것을 섭취하여 소화하고
내면화시킬 줄 아는 미래지향적 발전적 주체가 되어야함은 물론이다.
역사는 지나간 우리들의 거울이며 현재는 과거가 압축된 현실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所以에서 나온 말일 것이며 역사는
지나간 미래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지난 것을 잊지 않는다는 것은 곧 미래의 스승이 되기 때문이다.
前事不忘 後事之師
4. 다시 1,000회를 향하여
500회 이습회에 10년 세월.
처음부터 이렇게 갈 줄은 아무도 예측치 못했으리라
지금에서 돌아보니 우리 스스로가 한주 한주 켜를 더하듯 쌓아놓은 흔적이 크다는 것을 뿌듯하게 느낄 수 있다.
시작은 비록 미미했으나 10년이 지난 오늘 흘러간 세월이 뿌듯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10년 이라는 긴 세월을 같이 하면서 우리 문화를 지키려는 일념에는 차이가 없지만 여기도 사람들이 모인 곳인데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다고 크고 작은 일이야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문제보다는 우리 소리를 지키고 문화로 이어 가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에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 것이리라.
지금까지 찍어둔 색 바랜 사진속에는 그 동안 여기를 거쳐간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자리를 지킨 사람도 있지만
잠시 아니면 오랫동안 자리를 같이 하지 못한 사람들
여러 연유가 있었겠지만 그들 모두는 여기 한소리의 기억을 선명하게 기억할것이고 그 고운 기억이 다시 여기서 모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리라.
앞으로 10년뒤 1,000회 이습회에는 여기를 거쳐간 모든 이들이 모여 기억속의 音을 짚어내고 氣를 넣어 그 동안 묵혀 두었던
가슴속의 응어리를 온 몸으로 소리 내어 보리라.
그 분들 모두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지금까지 와주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 분들 모두가 오늘의 멋진 주인공들이다.
그리고 지치면 끌어주고 뒤 떨어지면 밀어주는 두 분의 큰 선생님이 계셔서 가능한 일이었다.
10년의 세월에 묻힌 500회.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제는 1000회를 위해
다 같이 갑시다.
Go together!!
10년후인 1,000회 이습회 기념식에서 다시 뵙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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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교수님 이습회 일지는 국악에대한 중요성을
책으로 편찬하신것 같이 아주 상세하시게
잘 써주셨네요..
역시 교수님다우신 멋진 일지입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교수님 말씀처럼 한켜 한켜 다시 쌓아서
1000회를 만들어주세요..^^.
젊은분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합류를 하시면 좋겠네요.~
우리나라 고유 음악을 사랑하시고
지켜가시는 이습회회원님들 정말
대단하시고 최고이십니다...
앞으로 많은 활동도 바래봅니다.^^.
한땀 한땀 정성으로 이어진 오늘의 이습회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한 주의 이습회를 글로 다시 보며 그 감흥을 되뇌이게 하
시는 박교수님의 일지 사진과 함께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정말 멋진글 잘 읽었습니다.
오래전 감명깊게 읽었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가 투영되는것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여러번 읽어보니 더더욱 그러 했습니다
멋진 글 감사합니다
이습회 첫모임이 기억납니다.
그때 한소리앙상블팀만이 토요일에 모여 단잽이로 주로 가즌회상을 연주했었지요~
당시에 해금반에 있던 박종천씨와 이재권씨가 의기투합하여 만든팀이 지금의 이습회 당시에는 하랑이라는 이름으로 출범을 했습니다.
한소리 창립년수에 비하면 길지않은 세월이었지만... 그래도 500회면 거의 십년이 되가는 짧지않은 세월입니다.
그동안 이습회에 참석하여 합주를 하면서 아직도 부족하지만 많은 기량을 쌓은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1000회 1500회에 계속 같이 음악할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합니다.
500회 이습회 정말로 축하드리고... 박교수님의 일지 잘보았읍니다. 400회 이습회에 참석치 못하였으나 500회에 참석했으니 앞으로 1000회 때에도 참석해야겠지요..
박교수님의 일지 3번씩이나 잘 읽었어요 우리 국악을 조금이나마 알게해주시고 좋은글 또한 감사합니다
한소리를 위해서 언제나 수고로움도 아끼지 않으신 박교수님 - -
500회 이습회가 오기까지 돌부처? 노헌식 부원장을 비롯한 이습회 식구들의 변함없는 정악사랑에 경의를 표합니다..
표정만방 상령산 같은 어려운 곡을 이제는 제법 들을만하게 연주하니 장족의 발전입니다..
여기서 머물지말고
한단계 도약합시다.. 새로온 한예종 이론전공 신유빈양 반갑고.
정성이 흠뻑담긴 장문의 일지 감사합니다...
받아쓰기하는 소년처럼 메모지 무언가를 적고 계셨던 교수님 글 잘 읽었습니다.
한소리 500회 이습회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진정한 풍류객이 되는 그날까지 go~
우선 500회 이습회 축하 드립니다!!! 긴 세월 변함없이 수업에 참여해 주신 회원 여러분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형님의 일지를 읽어 내려가노라면 조선시대 풍류객으로
제가 있는듯한 착각속에 살고 있다는 느낌입니다..국악 저변확대가
필요한데 교육정책을 수립하는 분들이 국악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있어야 할듯 합니다...정책을 결정 지으시는 분들이 국악교육에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출중한 일지 잘 읽었슴니다....
500회 이습회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원장님과 부원장님 그리고 오랜기간 함께 해주신 이습회 회원님들의 정악에 대한 열정이 만든 값진 결실이라고 생각합니다.
500회를 넘어 1,000회 2,000회 그 이상으로 지속될 수 있도록 변함없는 국악 사랑, 정악 사랑의 초심을 늘 간직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뜻깊은 날 자청해서 귀한 일지를 써주신 박교수님께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축하! 감탄! 존경! 잘 읽고 갑니다
500회라는 이습회 긴역사에 감탄합니다. 축하드립니다^^ 그 속에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이며, 더욱 더 처음마음처럼 정악에 대한 마음을 다지고 노력하겠습니다.
교수님 500회 기념날 일지 쓰시느라 갑절은 수고하셨습니다. 얘기거리가 많은 날이라 일지 쓰실 준비에 바쁘셨겠습니다. 훌륭한 일지 내용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가려고 했으나 친척 결혼식에 아빠 대신 가는 바람에 경삿날 빠졌네요. 대신 교수님께서 올리신 글로 이날의 풍경들이 머리속에 그려지네요.
지났지만 다시 한번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