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二 ) 단비하는 웃통을 벗은 채 운공조식에 열중했다. 요범의 일 장이 갈비뼈를 으스러뜨려 상태가 제법 중했지만 갈 홍아의 초기 처방이 좋아 상처가 빨리 아물었다. 하지만 완전 히 나으려면 최소한 보름간은 치료해야 할 상처였다. 상처보다 더욱 급한 것은 당문의 추격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하지만 당문은 조용하기 이를 데 없었고 추격하는 흔적은 어디 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정녕 이상한 일이었다. 당문도들은 싸움이 생기면 물러설 줄 몰랐다. 마지막 한 명이 남을때까지 결사적으로 싸웠다. 전위대에 의해 생긴 전통은 당 문도들 전부에게 급속히 확산되었다. 그들의 싸움을 볼라치면 난폭하기 짝이 없는 무공으로 드넓은 대지를 휩쓰는 광경이 연상되었다. 십이 년 전 오도문과 싸운 고주전투, 칠 년 전 아미파와 접전 을 벌였던 홍원 전투가 좋은 실례였다. 그것이 진짜 당문의 힘 이었다. 야만스럽다고까지 알려진 당문도들의 무공, 독술. 그런 그들이 장문의 복수를 안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었다. 소림사의 장로 격인 성소 법사마저 냉정하제 따돌린 그들이 아 니던가. 무엇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다친 몸을 정상으로 만드는 게 시급했다. 운공을 끝내면서 체내에 깃들였던 사기(邪氣)를 불어 냈다. 온 몸은 날 듯이 상쾌했다. 외공(外功)이 흠뻑 땀을 흘린 다음 찾아오는 상쾌함을 즐기는 무공이라면, 내공(內功)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뿌듯한 성취감을 즐기는 무공이었다. "오늘은 좀 어떠세요?" 이경화가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서며 질문을 던졌다. 부담스러웠다. 비록 도망자를 자청하며 당문과의 싸움에 뛰어 든 여인이지만 마음만 고마울 뿐 피곤한 현실에 끌어들이고 싶 은 생각은 털끝만치도 없었다. "괜찮소. 선배님들은?" "독술과 검공의 접합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후훗! 한시도 떨어 지지 않으시는 게...여태까지는 어떻게 사셨는지 모르겠어요." 단비하는 웃옷을 걸쳤다. 옆구리는 활동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을만큼 부드러웠다. "당문 소식은 어떻소?" "조용해요. 참! 한 보름 전쯤에 당건해라는 문도가 도망치려고 했던 모양이에요. 결국 죽림에 설치된 독망에 걸려 죽었지만." "그 외 별다른 소식은 없소?" "없어요. 혹시...나쁘게 듣지는 마시고...혹시..." "후후후! 당문주가 살아 있을수 있다는 말이 그렇게 어렵소?" "기분 상하실까봐..." "이 소저, 나를 염려해 주는 것은 고맙지만 지나친 관심은 사 양하겠소. 그러니 구태여 내 마음 같은 것을 고려할 필요는 없 소. 그저 내키는 대로 말해 주시오." "정말 잔인하군요. 어떻게 해야 제 마음을 아시겠어요?" 이경화는 울 듯한 표정을 지었다. 늘 반복되는 문답이었다. 일방적인 사랑의 표현, 그리고 지나 칠 만큼 차디찬 응대, 마음을 독하게 먹은 듯 거침없이 말하는 연모의 표현이 저돌적이었지만 천성은 어쩔 수 없는지 언제나 마지막은 울음으로 장식했다. 반면에 갈홍아는 얼굴조차 마주하지 않았다. 그녀 쪽에서 피한다는 인상이 짙게 풍겼다. 단비하로서도 어색 했는데 잘된 일이었다. 하지만 전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성 격이기에 늘 조심스러웠다. 잠잘 때 문고리를 잠그는 것도 근래 들어 생긴 버릇이었다. '후우! 어떻게 하면 마음이 돌아설지...' 이경화는 끝내 두손으로 얼굴율 가리고 훌쩍였다. 그날 오후는 무척 빨리 지나갔다. 일장을 나눴던 요범은 다시 없는 지기가 되었다. 요범이 가르쳐 준 절음십이박(絶陰十二拍)은 여러모로 유용한 가치가 있었다. 소림비기는 소림승만 익히게 되어 있으니 말해 줄 수 없고, 설 혹 말해 준다 해도 받아들일 수 없지만, 절음십이박은 여범 스 님이 출가하기 전 익혔던 가전무공인지라 부담없이 전수받았 다. 일박(一拍)에서 십이박(十二拍)까지 십이식을 전개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운공이 되었다. 가만히 앉아서 하는 운공(運功)이 아니라 몸을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하는 행공(行功)이었다. 독을 하독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십이박의 모든 동작은 전후 좌우 상하의 모든 공간을 쳐낼 수 있기 때문에 몸에 숙달되기만 하면 모든 방위에 독을 뿌릴 수 있었다. 거기에 방사까지 결들인다면 금상첨화였다. 절음십이박은 방사와 썩 잘 어울렸다. 그런데 내공에 문제가 발생했다. 십이박을 쳐내기도 부족한 내 공으로 방사까지 하려니 기혈(氣血)이 끓어올랐다. 어느 정도 의 내공을 소유해야 자유자재로 쳐낼 수 있는지는 몰라도 지금 상태로는 역부족이었다. 오후 내내 요범과 연구한 것이 바로 절음십이박의 행로(行路) 였다. 방사까지 결들이다 보니 중간에 틈이 발생했다. 그 틈을 보완할수 있는 행로는 없을까? 내공이란 급신장하는 것이 아니 기에 급한 대로 보완조치를 연구했다. 벌써 밖은 깜깜했다. 산동성(山東省)이나 강소성(江蘇省) 쪽은 아직도 날이 밝겠지 만 유독 산이 많은 사천은 어둠이 빨리 찾아왔다. "휴우! 오늘은 이만하세." "그런데 이게 정말 도움이 되는 건가?" "하하하! 도움이 안되면 이렇게 골머리 싸매겠어?" "이해할 수 없단 말야. 네 가람검공은 절음십이박보다 훨씬 위 력이 강하거든. 그런데 절음십이박에 매달리는 게 도통..." "절음십이박은 가람검공에 못지않은 절학이야, 요범. 자네가 버린 절학의 위력이 어떤지 내 나중에 보여 주지. 아마 그때는 땅을 치고 후회할걸." "아미타불! 제발 그렇게 해줘.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 둬. 절음 십이박으로 일류고수가 된 사람은 없다는 것. 나중에 별볼일 없는 무공이라고 욕이나 하지 마." "하하하! 오늘 고마웠어. 그럼 내일 봐." "내일 또?" "하하하! 한번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지." 단비하는 마음이 뿌듯했다. 그의 인생에서 벗이란 이름으로 처 음 만나는 사람이었다. 그 옛날 한연지가 있음으로 해서 충만 했던 가슴이 이제는 요범이 있어 가득 찼다. 소림방장 무상 대사로부터 비합전서가 날아온 것은 다음날 아 침이었다. 청성파와 아미파에 비합전서를 보냈으니 조만간 두 파의 절정고수들이 성도예 집결할 거라는 내용이 적힌 전서였 다. 가급적이면 생체실험의 진상만 조사하고 만약 사실로 판명된다 면 관련자만 처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라는 내용도 담겨 있었 다. 불문의 고승다운 세심한 배려였다. 아미파와 청성파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잖아도 목에 걸린 가시처럼 껄끄러워 기회만 노리고 있었 는데 당문이 스스로 무덤을 판 격이었다. "낄낄낄! 우리 무산파가 치를 홍역을 아미와 청성이 대신하는 군. 좋은 일이야. 낄낄낄!" "아미타불! 아미파와 청성파는 당문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이번에는 많은 피가 흐를 것 같은 예감입니다." "많은 피가 흐를 것 같은 예감? 옳은 예감입니다. 하지만 아무 래도 이번 격전은 아미파의 치명적인 손실로 끝날 확률이 높습 니다." 단비하는 삼절 진인이 떠올랐다. 그는 분명 당문과 연관이 있었다. 칠은방과도 서신을 주고 받 았다. 아무리 천하의 아미파라 할지라도 칠은방과 청성 그리고 당문에 둘러 싸인다면 전멸에 가까운 위기를 맞을 것이다. '청성의 의도를 확실히 알아야 돼.' 단비하는 청성파로 떠날 결심을 굳혔다. "아닙니다. 아미파와 청성파는 서로 자파의 희생을 줄이려 할 겁니다. 만약 그런 싸움이 된다면 결사적으로 항전하는 당문을 당할 수 없습니다." 사망산검 이철진은 문제의 허점을 지적했다. 성소 법사가 전서를 받은 직후 독사우공도 무산파로부터 날아 온 전서를 받았다. 아미파가 출정하니 무산파도 이 기회를 놓 치지 말고 당문을 치는데 동조하라는 전서가 왔기에 출정한다 는 내용이 담긴. 제갈문이 두 번 세 번 생각해서 취한 행동이리라. 아미파로부터 날아온 전서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정도무림의 일각을 차지한 거성(巨星)의 미움을 산다면 문파를 존속 시키기가 힘들었다. 또한 아미파로부터는 막대한 금전적 지원을 받았기에 힘이 닿지 않아도 출정해야만 하는 판국이었 다. 아미파의 전력을 보존하려는, 너무 속이 들여다 보이는 전 서였다. 당문과 싸움이 벌어지면 분명 최선봉은 무산파의 차지가 되리 라. 제갈문의 생각도 이해되었다. 어차피 당문과 일전을 불사해야되는 처지라면 이번 기회가 좋 을 수도 있었다. 치명적인 타격을 받더라도 당문을 꺾었다는 명예만 얻게되면 굳이 타문파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재기가 가 능했다. 사천에 자리잡은 수 많은 약초상들... 그들이 거둬 주는 은자는 막대했고, 지금의 무산파정도는 일 년 안에 복구될 것이다. "이 시주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습니다만 소승이 앞장선다면 그 들도 물러서지는 않을 겁니다. 설사 그들이 자파의 이익을 우 선 한다 해도 당문 정도는..." 성소 법사를 문전 박대한 당문 사건은 일파만파로 번져 사천 모든 무인들의 문제가 되고 말았다. 단비하는 간단한 행장을 꾸렸다. 청성으로 가면서도 마주오고 있을 청성파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 세워야 했다. 단비하의 예상이 맞는다면 사천 무림은 재 기 불능의 타격을 받을 것이다. 소림이나 무당 화산등 사천성에 있지 않은 다른 문파가 개입한 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문파가 삼천여 리, 멀게는 일만리에 달하 는 장거리를 격해 사천 무림의 변고가 신경 쓰일 리 없었다. 그러기에 소림 성소법사의 방문을 문전에서 박대할 용기가 생 겼는지도 몰랐다. 만약 아미파의 고수가 방문했다편? 성소법사 처럼 문전에서 쫓겨나지는 않았으리라. 아미파 같으면 당장 쳐 들어 올테니까. 어쨌든 그만한 자신이 있는 것이다. 그 자신감의 근원은 당문, 청성, 칠은방의 삼파연합(三派聯合)일 것 같았다. "응? 어디를 가려고?" 방을 들어서던 요범은 단비하의 형색을 보고는 눈을 화등잔만 하게 부릅떴다. "잘왔어. 그렇지 않아도 너를 만나러 가려고 했거든." "몸도 성치 않으면서 어디를 가려고 그래." "몸은 괜찮아. 그보다..." 단비하는 청성산 호응정에서 삼절 진인이 획책하던 음모와 칠 은방과의 연관을 설명했다. "마, 말도 안돼! 어떻게 그런 일이...아미타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 누구도 믿지 못할 말이었다. 정파의 태두로 부각된 삼절 진 인. 아니 그전부터 고결한 인품으로 만인의 추앙을 받아오던 삼절 진인이 획책한 음모는 너무 놀라웠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당장 미친놈이라고 몽둥이 찜질을 당할 황 당무계한 소리였다. "나를 믿나?" "믿어." "그럼 내 말을 믿어라." "믿는다. 그렇지만 삼절 진인이 왜...? 어떤 사람이든 움직이 는 데는 동기가 있기 마련이거든. 하지만 삼절 진인이 장문 자 리나 탐할 사람도 아니고...모르겠어. 하지만 나는 자네의 말 을 믿어. 법사님과 상의해 봐야겠어." "이야기가 되는 대로 바로 연락해 줘." "그러지." 두 사람은 손을 굳게 마주 잡았다. 성소법사는 예상대로 펄쩍 뛰었다. "삼절 진인은 마음이 공허(空虛)에 이른 분인데 무엇 때문에 당문과 손을 잡겠느냐?" "하지만 단비하가 본 것도 사실입니다. 그가 거짓말 할 사람이 라고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정말 난감한 문제였다. 한쪽은 고결하기로 이름높은 청성파 장 문이요. 다른 한쪽은 당문의 생체 실험 대상이었던 사람. 만약 단비하의 인물 됨을 모른다면 미친 소리라고 매도해 버릴 상황 이었다. 그 생각은 사망산검도 같았다. 옆에서 지켜봤으니 결코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지만 잘못 봤을 수도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또한 단비 하의 말이 맞는다면 사천 무림은 청성과 당문에 의해 장악되게 된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지금 당문과 청성이 누리는 명예에 비할 바 는 아니었다. 만인의 존경을 받는 것과 무서워 피하는 것과는 질적인 차이가 있으니까. 어느쪽을막론하고 심각한문제였다. "저...만일을 위해서 대비를 해두는 게 어때요?" 갈홍아가 오랜만에 말문을 열었다. 단비하와 같이 생활한 이후에는 벙어리인 양 굳게 입을 다물었 다. 말문을 트는 순간 영원히 만나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 때문 이었다. 갈홍아는 단비하를 믿었다. 그의 말은 언제나 옳았다. 결코 보 지 않은 것을 말할 사람도 아니고 정확치 못한 것을 떠벌릴 사 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도 없 었다. 대책이 무엇인가? 중인들이 사건의 진실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동안 갈홍아 는 대책 마련에 부심했다. 겨우 한 가지 방안을 찾기는 했는 데... 그 역시 단비하가 일으킨 파문 만큼이나 선택하기 곤란 한 문제였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운을 뗀 것이다. "으흠! 갈 시주 좋은 생각이라도 있소?" "지금 상황으로는 어느쪽도 선택할 수 없어요. 그래서 가능성 이 있는 양쪽 다 선택하는 거예요. 만일을 위해 청성파의 발을 묶을 만한 세력을 준비해 두자는 거죠." "응? 청성파의 발을 묶어? 야, 멍청이. 쟤가 말하는 것 들었 냐?" 사두열목 마대가 어처무니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독사우공을 쳐다보았다. "홍아야, 네 말은 분명히 좋은 방안이다. 만일을 위해 세력을 준비해 두었다가 아무 일 없으면 그낭 숨겨 놓고, 청성파가 당 문 칠은방과 합세하여 검을 거꾸로 들면 비밀 세력을 동원하자 는 이야기인데, 그 말대로만 되면 오죽 좋겠니. 하지만 힘의 균형이 맞지를 않아. 청성파는 아미파가 맡는다고 하고 칠은방 을 무산파가 맡는다고 해도 당문이 남는다. 그만한 힘을 어디 서 구한다는 말이냐?" 독사우공은 전에 없이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자칫하면 이번 일전으로 무산파를 비롯하여 사천 무림이 망할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만한 세력이 있어요." "아미타불! 도대체 갈 시주의 말은 알아듣지 못하겠구려. 갈 시주는 곤륜파를 말하는 모양인데, 곤륜파가 오기 전에 싸움은 끝나게 될 거요. 그래서 곤륜에는 전서도 띄우지 않은 거고." "아니오, 곤륜파가 아니에요." 갈홍아는 눈빛을 반짝였다. 눈 속에는 신념이, 희망이, 열정이 그리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불안이 맴돌았다. "홍아야, 답답하구나. 이 할아비조차 모르는 문파가 어디 있 니?" 갈홍아는 모든 사람들의 눈이 자신을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 얼굴을 붉혔다. 예전의 갈홍아에게서는 보지 못했던 수줍음. 아! 그러고 보니 말투도 변하지 않았는가. 갈홍아는 한자 한자 또박또박 말했다. "토(土) 비(匪)." "토비! 아니 그도둑놈들을!" "이런..." 모든 사람들의 기대는 와르르 무너졌다. 혹시나 절대 신비 세 력이 있는줄 알았는데 겨우 토비라니. 그들은 평범한 백성들이었다. 그러나 도둑질을 업으로 삼았다. 그렇다고 녹림도는 아니었다. 그들은 장강 연안에서도 살고 산에서도 살았다. 도둑이라고 별 다른 특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집에서는 밭도 일구고 고기 도 잡았다. 집 또한 다른 집들처럼 평범했다. 죽림(竹林)으로 울타리를 만 들었고, 약초 밭이 있고, 밭 건너에는 관음상(觀音像)을 모신 사당(祠堂)이 있는... 그들의 무서운 점은 토비가 누구인지 아무도 알수 없다는 점이 었다. 활동 무대는 주로 장강이었다. 사천성을 거치는 장강의 수로는 오륙백 리, 장강을 지나는 배들이 공격 대상이었다. 연안을 바로보고 있는 집 창문에 두세 사람이 머리를 내밀고 강 쪽을 보고 있다면 틀림없이 토비였다. 자기들끼리 뭐라고 속닥거리다가 기분이 내키면 쏜살같이 강 언덕으로 올라와 무 분별하게 배들을 습격하곤했다. 무예를 익힌 것도 아니었다. 병기도 변변치 않았다. 그들의 노 략질 대상은 일반인일 뿐 무인들은 아니었다. "토비들은 다른 것은 시원치 않아도 숨는 것 하나만은 알아줘 야 해요. 그거면 되잖아요? 우리 무산파에서 만든 독을 공급하 는 거예요. 굳이 그들에게 당문을 맡길 필요는 없죠. 아까 제 가 말했잖아요. 청성의 발을 묶는 세력...청성이 아니면 또 어 때요? 사람이 많으니 가장 골치 아픈 칠은방을 맡을수도 있잖 아요? 거리를 두고 독을 하독한 다음 바로 숨는다면...물론 희 생자야 생기겠지만 절대적인 힘이 될 거예요." "으음! 그것도 그럴 듯 한데." 독사우공은 대견스런 눈으로 쳐다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사랑을 하면 성숙해지는 모양이었다. 엉덩이에 뿔난 망 아지처럼 거칠기 짝이 없던 계집이 저렇듯 얌전해지다니. "아미타불! 아무리 그래도 무공을 모르는 사람들을 무림에 관 여 시킨다는 게..." 성소 법사는 불만을 표시했다. 무공을 모르는 사람과 아는 사 람의 싸움은 보나마나 뻔했다. 피가 내를 이루고 고통에 울부 짖는 소리가 산천을 울리겠지. 갈홍아는 한치도 지지 않았다. 꼭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겠다 는 듯 야무진 음성으로 말했다. "백년 전 구파일방은 큰 실수를 했어요. 바로 당문이 칠대독문 을 합병하도록 방관한 거죠. 방관은 직접 공격한 것보다 더욱 나빠요. 똑같은 일을 다시 하실 건가요? 이번에는 칠대독문이 아니라 사천 무림 전부일 수도 있어요. 한 이삼십 년만 지나면 중원 전체를 향할 수도 있겠죠. 그때야 나설 참인가요?" 단비하가 없었다면 갈홍아인들 귀속칠가의 아픔을 어찌 알겠는 가. 그가 아파하는 일이기에 그가 살아 온 짐승 같은 세월이 바늘처럼 가슴을 찌르기에 한 말이었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 이었다. 누구를 비판하자는 뜻이 아니라 단비하의 입장에서 한 말이었다. 진정은 말속에 녹아들기 마련 공기를 타고 흐른 진심은 법사의 마음을 움직였다. "으음! 갈 시주 말대로 백년 전에 당문이 칠대독문을 합병하도 록 방치한 것은 구파일방의 실수였소. 인정하오. 허허허! 좋소 토비를 써 보도록 합시다. 그런데 토비는 종적을 남기지 않는 다는데 찾을 자신이 있는지...?" "그들은 제가 찾아낼게요." 갈홍아는 기쁜 듯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피부가 검어서 인지 웃는 모습이 무척 예뻤다. * * * 이월 말이면 봄으로 다가설 무렵인데도 사천에는 눈발이 내렸 다. 이런 날이면 대부분 골방에 틀어박혀 골패를 만지작거리기 일쑤인데 사천 사람들은 그럴 틈이 없었다. 오월이면 수확하는 차나무를 손질해야 했다. 숲처럼 울창한 차나무가 널려 있는 가운데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었다. 양토계(羊土溪). 이곳만은 그런 풍경이 보이지 않았다. 거리는 쥐죽은 듯 조용했고 나무 때는 하얀 연기가 눈발과 어 울려 아름다움을 연출했다. 사천 사람들은 쉬쉬하고 있지만 어느새 유명해진 토비촌. 갈홍아는 몇 번 와본 듯 망설임없이 골목을 돌아 제법 널찍하 면서도 다른 집과는 건축 양식이 다른 집을 찾아들었다. 우선 대문이 붉은색이었다. 흔히 중원인들이 당문식(唐門式/) 이라 부르는... 안마당을 들어서자 목검을 가지고 장난치는 어린아이가 보였 다. 아이는 낯선 여인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 눈을 말똥거렸다. 너나할것없이 토비촌이라면 멀리 돌아가는 세태이니 방문객은 무척 귀했다. "아줌마는 누구야?" "아빠 계시니?" "아줌마 누구냐고 물었잖아?" 물음을 던진 아이는 제법 똘똘했다. "아빠 친구." "친구? 남자한테 여자 친구가 어디 있어? 우리 아빠하고 같이 잤어? 그냥 돌아가 엄마한테 들키면 다리 부러져. 전에도 몇 명 왔었는데 병신이 되어서 돌아갔어." "아빠는 어디 계시니?" "거참, 되게 말 안 듣네. 그럼 저기 앉아서 기다려. 아빠는 일 나갔으니까 밤이 되야 돌아올 거야." 웃음이 치밀었다. 아직 치기도 가시지 않은 어린아이가 어른 흉내를 곧잘 냈다. 마을 사람들이 두목의 아들이라고 위해 주 는 것을 잘못 받아들인 결과였다. 갈홍아는 무료한 김에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토비 두목이라고 사는 것마저 다른 것은 아니었다. 감껍질을 벗겨 말린 곶감이 한쪽 벽면에 가득했다. 놓아기르는 닭은 근 삼십 마리에 달해 넉넉한 생활을 엿보게 만들었다. 염소도 십여마리 있었고 돼지 축사도 두개나 되었다. '흥! 도둑질한 것으로 제법 잘 사는군.' 곶감을 빼내 입에 넣었다.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아 떫은 맛이 있었지만 제법 달았다. 입안에서 살살 녹는 느낌이랄까? 그러고 보니 어제 저녁 이후 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청성파와 아미파가 성도에 도착하는 시기를 맞추느라 밥먹는 시간도 아꼈다. 성소 법사는 삼월 초순쯤에는 성도에 집결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 기간 안에는 토비들이 성도에 가 있어야 한다. 부지런히 가도 빠듯한 기일이었다. 갈홍아가 아예 곶감 한 줄을 꺼내 씹어 먹을때였다. "아니, 어떤 년이 남의 집 물건에 손을 대! 옳아 네년은 좀 반 반하게 생겼구나. 그 반반한 얼굴로 내 낭군을 홀렸단 말이지? 어디 오늘 네년이 죽나 내가 죽나 해보자." 키는 육척에 달했고 덩치는 웬만한 사내 두어 명은 될 듯한 여 인이 선불맞은 멧돼지처럼 달려들었다. "어어! 이거..." "에랴, 이년아! 돼져라!" 여인은 갈홍아의 전흉(前胸)을 잡고 힘껏 집어던졌다. 항거할 수 없는 괴력이었다. 일류고수가 내력으로 집어던진 힘이랄까. 휘이익! 갈홍아는 날렵하게 공중에서 한바퀴 선회한 다음 가볍게 내려 섰다. "이봐요. 우선 이야기나 좀 하고..." "얘기는 무슨 개뼉다귀 같은 얘기." 코끼리 같은 여인은 갈홍아의 몸놀림을 보아 심상치 않다고 생 각되었는지 두 팔을 힘껏 벌이고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집어던 지지 않고 껴안으려는 심산이었다. 수박통만한 가슴과 넓적다 리만한 두 팔로 껴안는다면 허리뼈가 으스러지거나 아니면 숨 이 막혀 질식사(窒息死)할것이 분명했다. "타앗!" 갈홍아는 몸을 틀어 여인의 우악스런 공세를 피하며 발길로 복 부를 걷어찼다. 퍼억! 둔탁한 음향이 터졌다. 그런데. "이게 도대체..." 기가 막혔다. 능히 바위도 으스러뜨릴 만한 힘이 담겨 있었거 늘 여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뱃살에서 형성된 반탄 력에 갈홍아는 몸의 중심을 잃을뻔했다. "하! 한가락 한다 이거지? 오냐 너 오늘 임자 만났다." 한 손을 턱 허리에 걸치고 삿대질을 하던 여인은 갈홍아가 놀 라는 모습을 보고 희희낙락했다. '괴물이야. 독을 써야겠어.' 갈홍아가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에게 그것도 여인에게 독을 사용하려고 작심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토록 어처구니없이 몰 리는 것도 처음이지만. 여인은 인상도 험악했다. 얼굴은 맷돌처럼 얽은 곰보에다가 입 술은 언청이였다. 더욱 가관인 것은 째진 입술 사이로 삐죽이 튀어나온 송곳 같은 이빨. 인간의 육신은 풍수화토(風水火土) 사대(四大)로 이루어졌고 불가에서 말하는 색즉시공(色卽是空) 제행무상(諸行無常)을 읊 조리지 않는다면 천하에 남편이 될 사람이 없을것 같은 추물 (醜物)이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굴리는 아이는 정말 이 여인이 나았을까? 닮은 구석이 한 군데도 없었다. 여인은 서슬이 시퍼렇게 변한 채 지축을 울리며 달려들었다. "타앗!" 갈홍아는 먼저처럼 몸을 옆으로 빼며 원앙각(鴛鴦脚)을 내질렀 다. 생각했던 대로 여인은 피하지 못했다. 힘은 천하장사에 버 금갔지만 무공을 익힌 갈홍아의 날샌 몸놀림을 당하지 못했다. 퍼억! 원앙각에 채인 여인은 잠시 주춤거렸다. 이번 원앙각에는 전력 을 다했으니 충격이 컸을 게다. 갈홍아는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고 미리 꺼내 둔 독분을 뿌렸 다. 단비하의 섬백단을 무산파파가 발전시켜 만든 미혼독이었 다. "옛취! 이게 무슨 냄새...? 독이잖아?" 여인은 미처 독을 생각하지 못한 듯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코끼리처럼 거대한 몸은 둔탁하게 무너졌 다. "엄마!" 아이의 비통한 울림이 터져 나왔다. 미혼독에 중독되어 혼절한 것이 꼭 죽는 것으로 비춰졌던 모양이었다. 하기는 어린아이의 눈에 쓰러진다는 것은 모두 똑같았으니까. "엄마 잘 가. 복수는 내가 꼭 해줄게" 아이는 제법 야무지게 말하더니 목검을 들고 일어섰다. "네가 엄마를 죽였어. 엄마를 죽일 정도라면 물론 나도 죽일 수 있겠지. 지금 죽이든가 아니면 이름을 밝혀." 갈홍아는 하도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름? 이름은 왜?" "이름을 알아야 나중에 복수하기 쉬울 것 아냐?" "호호호...!" 아이의 철없는 말이 당돌했다. 자신도 요만한 나이 때 이런 말을 했을까? 격세지감(隔世之感) 이 느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보통 아이와는 거리가 멀게 자 랐다. "꼬마야 네 엄마는 죽은 게 아냐. 잠시 기절한 것 뿐이야." "정말이야?" "그럼 조금 있으면 깨어날 걸? 한 두 시진쯤 지나면..." 꼬마는 갈홍아의 말이 진담인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거짓말 할 이유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는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기다려 보지. 그런데, 내 이름은 꼬마가 아니라 반사 영(班査英)이야." 토비들의 두목인 반용라(班鏞羅)는 한밤중인 자시(子時) 무렵 에 돌아왔다. 그는 대문을 짓치면서 기분좋게 아내를 불렀지만 돌아온 응답은 엉뚱한 여인의 음성이었다. "반용라 오랜만이야." "어느 썩을 년이 어르신네의 이름을...응? 너 아니 소저는... 나 기억해?" "가, 갈 소저!" 반용라는 대문을 도로 닫고 나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다. 그에게 여자란 존재는 남자를 즐겁게 해주는 도구였다. 그렇게 무시했는데...뜻밖에도 그가 겪은 수모중 가장 큰 수모들을 모 두여인에게서 받았다. 첫 번째로 여인에게서 받은 수모는 바로 혼인이었다. 정말 세상에서 저렇게 못생긴 여자가 있을까 싶었다. 혹여 꿈 에라도 나타날까봐 걱정되는 여자. 입이 방정이었다. 한참 노략질에 맛을들일 무렵인지라 사람이 사람답게 보이지 않은 것도 실수였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도 혼인까지 하기에는 너무 억울했다. "더럽게 못생겼군. 에잇, 퉤엣! 저런 걸 누가 데리고 사나?" 그 말뿐이었는데... "이 이놈아! 네가 데리고 살면되지. 무슨 걱정이 그렇게 많 아?" 힘은 또 왜 그렇게 장사인지...수십 번을 패대기쳐진 다음 입 을 뗄 힘도 없을때 물어 왔다. "같이 살까?" "그, 그래요." 두번째 수모는 갈홍아란 이름의 여자였다. 이 여자 또한 부인 못지않은 야생녀였다. 다행스러운 점은 보 기만해도 침이 꼴깍 넘어가는 탄탄한 몸을 지녔다는 것. 그날도 무지하게 얻어맞았다. 그것도 많은 수하들 앞에서 퉁 퉁부은 볼가죽이 얼굴을 밀어 올려 눈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 다. 그렇게 두들겨 패던 여자. 반용라는 한쪽 구석에 얌전히 앉아 있는 부인을 보는 순간 늘 궁금하던 일의 결과를 알게 되었다. 곰처럼 무지막지한 부인의 괴력과 통통 튕길 것 같은 여인의 날렵한 몸놀림의 결과를... 그리고 그것은 갈홍아의 말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도 했다. 반용라는 멍한 표정으로 갈홍아의 설명을 들었다. 아무리 할 일이 없어도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저, 갈소저 토비들에게는 두 가지 불문율이 있습죠. 첫째 비 오는 날에는 일을 나가지 않는다. 둘째 무인은 건드리지 않는 다." "독은 무산파에서 제공한다." "하독하는 방법을 모르는 이상 무용지물이죠." "가장 기초적인 방법은 가르쳐 준다. 주의 사항도." "내가 따라간다 해도 다른 토비들이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움직이게 만들어야지." 갈홍아는 점점 흥분했다. 그러나 반용라는 더욱 더 차분해졌 다. 다른 토비들과 마찬가지로 반용라 또한 무공을 할 줄 몰랐 다. 그런 그가 토비들의 두목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머 리와 특이한 지도력 때문이었다. 우선 그의 말을 들으면 습격의 성공률이 높았다. 두 번을 호되게 당한 다음부터는 무인을 선별하는 눈도 높아졌 다. 건드릴 상대와 건드려서는 안될 상대를 분명히 분간하게 된 것이다. 특이한 지도력...그가 제일 먼저 요구한 것은 단결된 충성심이 었다. 이의(異意)를 제기하는 것과 충성심이 약하다는 것은 성 질이 달랐다. 누구든 어떤 일이든 반대 의견을 말할 수 있지만 일단 결정하면 목숨을 걸고 따랐다. 두 번째는 용기. 역경이나 장애를 만났을 때 기가 꺾이거나 허 둥대서는 절대로 안 된다. 어떤 자도 두려워하지 않는 대담함. 이런 종류의 마음은 평상시 연마해 두지 않으면 효과적으로 나 타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순간 행동력이었다. 행동해야 할 최적의 시기를 판 단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그의 공격을 받던 날 갈홍아 역시 잠 시 당혹스러울 정도로 심리적, 환경적으로 완벽한 순간을 택했 다. 이런 능력은 상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물론 동기와 성 격, 장점과 단점을 철저히 살피는 것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금 반용라의 이성(理性)은 이번 일에 끼여들어서는 안 된다 는 경고를 해왔다. 사천 삼대 문파의 정예 고수들이 성도로 모여든다. 그런 곳에 가면 득보다 실이 많았다. 무인들이라면 평생을 병 장기와 더불어 살아 온 사람들이고 앞으로도 그런 길을 갈 사 람들이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 죽더라도 혼쾌히 눈감을 준비가 된 사람들이다. 하지만 토비들은 달랐다. 노략질은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죽음을 가장 두려워했다. 노략질 또한 살기 위한 생계의 방편으로 선택한 수단. 그들은 부양할 가족이 있었다. 낳고 길러 주신 부모, 사랑하는 처자 식...혹여 습격을 나갔다가 죽은 동료들의 가족을 볼 때마다, 처절하게 통곡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의 가족에게는 이런 슬픔을 주지 말아야지 하는 각오를 새롭게 다짐하는 토비들. 그들이 무인들끼리의 싸움에 끼여들 턱이 없었다. 더욱이 이번 싸움은 전쟁이나 다름없는 대규모의 싸움인 바에 야.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죠. 주지육림(酒池肉林)을 탐해서 솔잎을 떠났다가는 꼼짝없이 죽습니다. 갈 소저의 부탁이라면 저 하나는 갈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토비들을 움직일 수는 없죠." "도와줘요." 갈홍아는 팔팔하던 기세를 누그러뜨리고 간절한 눈으로 반용라 를 쳐다보았다. 그가 무인이든 무인이 아니든 토비이든 왕후장 상이든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세상 모든 일이 단비하와의 관계를 떠나서는 생각되지 않았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 기분이었다. 이들을 데려가지 않으면 단비하가 위험스러울 것 같았다. 만약 단비하의 말대로 삼절 진인이 변심을 한다면 정작 위험한 것은 무산파였고 사천 무림이었다. 단비하같이 몸하나만 가진 사람은 언제든지 훌훌 떠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갈홍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단비하가 청성파의 동정을 살피러 떠난 이상 모든 일이 단비하 의 일처럼 느껴졌다. 무산파가 무너지는 것이 단비하가 무너지 는 것으로 착각되었다. 사천 무림이 역습을 당한다면 단비하가 공격을 당하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반용라는 그를 도와 줄 능력이 있어 보였 다. 반용라는 뚫어지게 갈홍아를 응시했다. 그가 아는 갈홍아는 이런 면이 없었다. 야생녀처럼 팔짝팔짝 뛰는 것이 그녀의 성격에 어울렸다. 거친 욕설을 마구 해대며 사내들 틈을 해집는 야생녀. "소저 다른 이유가 있을 텐데...?" "묻지는 말아주세요. 이번에 도와준다면 은혜는 잊지 않을게 요." 반용라의 눈에 빛이 발해졌다. 일개 토비에재 존댓말을 하는 것도 그렇고 이렇듯 간절하게 애 원까지 하다니 분명 다른 것이 있는데. "목숨을 건 싸움입니다. 최소한 도와줘야 할 사람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 정도는 알아야하는 게 기본입지요." "휴우...!" 갈홍아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들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야 한다는 사 실을 깨달았다. 거짓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거짓과 진 실을 감지하는 능력이 뛰어나니까. 갈홍아는 장강 선상에서 단비하와 당철휘 일행을 만난 것부터 지난 이 년간 겪어 온 모든 변화를 말해 나갔다. 갈홍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코끼리처럼 덩치가 큰 여인이 훌 쩍이며 말문을 열었다. "도와줘, 그녀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야. 한여자의 사랑을 지켜 주는 것도 보람있는 일이잖아. 오랜만에 사람다운 일 좀 해보 자고 사천 모든 사람들에게 토비들의 의리를 가르쳐 주는 것도 좋지." |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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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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