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하여 가는 경성 (上)
조선이 다 이렇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밥이 있어야하고 옷이 있어야하고 또 집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다시 말 할 필요도 없다. 그러면 그 밥은 어디서 나오며, 그 옷과 집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우리가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앉아 있다고 밥이 생기지 아니하며 옷과 집이 오는 것이 아니다. 무슨 일이든지, 무슨 노릇이든지, 직업을 얻어가지고 활동을 하고 노력을 하여야 우리의 살아갈 이 모든 재료가 생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현대의 경제조직으로 말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의 거래는 ‘매매’라는 형식을 통하여 우리에게 혹 오기도하고 혹 우리에게서 남에게 가기도 하는 것이다.
그 거래매매의 중개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사회의 모든 사람이 아는 듯이 금전, 경제적 언어로 표시하면 ‘화폐’라는 것이다. 이 화폐는 어찌하여 개인에게 오게되는가? 이 ‘돈’ 즉, 화폐가 없으면 우리가 비록 굶어죽게 되더라도 먹을 것을 살 수가 없고, 우리가 비록 얼어 죽을 지경이라도 입고 살아갈 옷감을 살 수가 없고, 또 우리가 어린 아이를 기르고 늙은 부모를 모시되 집이 없어서 의지할 곳이 없을지라도 그 집을 살 수가 없다.
이러한 화폐라는 것은 어찌하여 우리 수중에 들어오게 되는가? 여려분들이 모두 알 듯이 ‘수입’이라는 형식을 통해 우리에게 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수입의 원천은 무엇인가? 첫째는 이윤이라는 과실을 낳는 자본이요. 둘째는 지대라는 과실을 낳는 사지(私地)요. 셋째는 임금이라는 과실을 낳는 노동이로다. 그러나 자본이 혼자 이윤을 낳는 것이 아니며 토지가 혼자 지대를 낳는 것이 아니며 또 노동이 혼자 임금을 낳는 것이 아니다. 이 자본과 토지와 노동을 결합하여 무슨 직업이든지 무슨 일감이든지 소위 ‘생산사업’을 하여야 그 중에서 이윤도 생기고 지대도 생기고 임은(賃銀: 자기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 노동)도 생기는 것이 아닌가?
대개 이럼으로 우리는 우리가 먹고 입고 살아가려면 무슨 일이든지 무슨 노릇이든지하여 활동하고 노력하여야한다는 것이니 그러면 조선사람에게 무슨 자본이 있어서 그 자본으로 이윤을 의지하여 살아갈 수가 있으며 무슨 토지가 있어서 그 지대를 의지하여 살아갈 수가 있으며 또 무슨 ‘생산사업’ 직업 이윤을 의지하여 살아갈수가 있으며 무슨 토지가 있어서 그 지대를 의지하여 살아갈 수가 있으며 또 무슨 ‘생산사업’ 직업이 풍부하여서 그 임은으로 살아갈 수가 있는가?
일본사람은 입만 열면 조선사람에게 자랑하기를 일삼는도다. 자긍하기를 일삼는도다. 한일병탄후(원문은 日韓倂合) 불과 10년만에 도로가 여차히 개척되고 교통이 여차히 발달되고 도시가 여차히 확장되고, 저축이 여차히 증진하고 부력이 여차히 향상하고 무역이 여차히 조장되었다 운운하며 조선사람에게 감사하라는 뜻을 표하며 자기의 요구대로 감사의 뜻을 표하지 아니하면 조선사람을 은의를 모르는 야만인이다, 미개인종이다.하며 매도하기를 시작하는도다. 자랑하고 또 자긍하고 필경에 조선사람에게 감사의 머리를 숙이라고 강요까지 하다가 조선사람이 모르는 체하면 매도와 모욕하기를 시작하는도다.
보라! 우리 조선사람은 조선의 교통이 발달된 것을 눈 앞서에 보노라. 조선의 도로가 개척된 것을 눈앞에 보노라. 도시가 확장된 것을 눈앞에 보노라. 그러나 그 확장된 도시는 뉘 도시며 그 발달된 교통은 뉘 교통이며 그 개척된 도로는 뉘 도로인 것을 잘아노라. 그 도시는 조선사람이 집을 지키고 살림하는 도시가 아니라 조선사람이 집을 팔고 도망하는 도시가 아니겠는가? 그 교통기관은 조선사람이 의지하여 수입의 원천을 짓는 교통기관이 아니다. 다소의 편리를 이용하여 조선사람의 피를 빨아먹고 주머니를 빼앗아가는 교통기관이 아니겠는가? 도로의 개척, 아- 이것은 그 곁에 섰는 조선사람 농부와 상고의 입지를 파서 묘지를 만드는 그러한 도로의 개척이 아닌가? 교통기관의 발달과 도로의 개척을 따라 일본 상인과 농부는 조선의 산산곡곡(山山谷谷)에 차게되며 도시의 확장, 부력의 증진으로 말미암아 조선사람이 배고프게되고 집을 팔아 먹게되는도다.
조선사람이 설혹 야만이라하고 또 미개한 인종이라 하자. 그러나 어찌 그 당장에 파멸을 당하고 사망을 맛보면서 그 파멸의 참담함과 사망의 비애를 향해 감사의 눈물을 흘린다면 일본인이 말하는 것과 같이 미개한게 아니라 그건 무감각한 민족이지 않겠는가? 조선사람에게는 의지하여 수입을 얻을 -수입으로써 돈을 얻고, 돈으로써 생활의 필수품을 살만한- 직업이 없도다. 실로 살아갈 계(計), 즉 생계가 없도다. 상권이 있는가? 공권(工權)이 있는가? 광업, 수산업, 교통업, 금융업, 심지어 관리(官吏)업 -관리도 생계의 일종이라면- 이와 같은 것이 있는가? 아무것도 없는즉 우리 조선사람이 현대경제조직아래에서 과연 무엇을 먹고 입고 살까?
경성이 멸망하여가는도다! 아, 대경성을 계획하고 대도시를 설계하는도다! 나날이 발전하고 일일이 육성하는도다! 그러나, 그 육성하는 경성이 어찌 조선사람의 경성이랴? 조선사람은 집을 팔아먹고 땅을 팔아먹고 도망하되 일본사람은 그 반대로 사고 얻고하여 나날이 물밀 듯이 경성에서 발전 팽창하여가는 도다! 이와 같이하여 조선인의 경성은 망하여가고 일본인의 경성은 흥하여 가는도다.
아! 먹을 것 없는 자가 망하고 먹을 것 있는자가 흥하는 것이 사리에 당연하다하면 이 필연한 형세가 되지 아니할까?
23년 3월 6일 동아일보 연희전문 이순탁 교수
진심 엄청 잘썼다. 이게 검열 안당한게 신기할 정도.
비문학 지문같아.
첫댓글 쑥쑥 읽혀
이런 글은 어디서 발견해?
@슥걸 이거 녯날 신문 읽는게 취미라서 뒤지다가 발견
@가피바라 우와 멋지다ㅏ 온라인으로 읽어?
@슥걸 례압 中도 올렷어 이것도 잘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