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하여가는 경성 (下)
조선이 다 이렇다.
어찌 경성만이 이러하리오. 조선이 모두 그러하도다. 보라, 부산은 어떠하며, 대구는 어떠하며, 대전, 평양, 신의주는 어떠하고 다시 진남포, 제물포, 군산, 목포, 마산, 원산, 청진성진의 각처는 어떠한가? 그 평지의 살기 좋은 곳과 그 시가(市街)의 장사하기 좋은 곳은 누가 차지하였으며, 그 양명(陽明)하고 광대하며 번창하고 활기있는 집은 누가 점령하였는가? 조선사람이 살기는 산다. 그러나 그 양명한 집에 사는 것이 아니라 왜소한 누옥(좁고 너저분한 집)에 그 생을 붙이고 살아간다. 조선사람이 장사를 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 살기 좋고 왕래가 편리한 지점에서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편벽한 한 모퉁이에서 겨우 담배 장사 아니면 술장사로써 그 생명을 유지해 간다. 일본사람의 집에 전기불이 켜지고 그 문 앞에 자동차나 인력거가 놓이면 조선사람의 집에서는 석유불의 연기와 내음새가 얼굴과 옷을 적시고 그 문 앞에는 해지고 닳아진 짚신이 아니면 고무신의 잔해가 질서없이 흩어져있도다.
일본사람의 배는 나날이 불러가고 그 혈색은 나날이 아름다워가되 조선사람의 형용은 나날이 초췌하여지고 그 혈기는 나날이 쇠약해지는도다. 의지해 사는 그 집, 즉 생활의 근거가 시가지의 양명한 곳으로부터 교외의 컴컴한 한 모퉁이로. 평지의 교통 편한 곳으로부터 산꼭대기의 험악한 곳으로. 구축을 당하고 도태를 받아가 그 정비례로 조선사람의 체력은 쇠하고 지력은 약하여 그 생활은 실로 곤고하게 되는도다.
조선사람은 돈이 없도다.
장사할 길이 없으며 조선사람은 돈이 없도다.
공업을 일으킬 길이 없으며 조선사람은 돈이 없도다.
현대 경제조직하에서 아무것도 경영할 길이 없도다. 조선사람에게는 과연 돈이 없도다. 땅이 없도다. 지식과 기능이 없도다.
이에 ‘천부의 생명이 있고 몸뚱이도 있고 노동의 힘도 있으니 그 노동의 힘을 이용하여 생계를 도모하고 가정을 완성하고 행복과 발달을 기도(企圖: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계획을 세우거나 그 계획의 실현을 꾀함)하면 되지 않는가?’ 하는 자도 있다. 그렇다. ‘자본이 없을지라도 토지가 없을지라도 노동력만 있으면 우리가 넉넉히 살아갈 것이 아닌가? 땅을 빼앗기고 집을 빼앗긴다는 것은 요컨대 유산자(재산이 있는자)의 말이오. 무산자(재산이 없는 자)의 말은 아닌즉 이제 조선사람 모두 무산자가 되고 또 무산자의 각오를 가지고 지금부터는 고작 노동의 힘을 팔아서 그 생명을 유지하고 또 노동자의 세상을 요망(간절히 바라)하고 실현하여 그 행복 생명의 창달(쭉쭉 뻗어나감)을 기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자도 있도다. 그렇다.
그러나 조선사람이 노동의 힘을 팔아서 그 생명을 유지하려하여도 그 노동의 힘을 사는 기관이 없고 팔아먹을 기회가 없는 것을 어찌할까? 보라, 자본이 혼자 이윤을 낳지 못하며, 토지가 혼자 지대를 낳지 못하며, 또 노동력이 혼자 임은(賃銀)을 낳지 못하는도다. 이 생산의 세가지 요소가 결합하여 무슨 일이든지 무슨 노릇이든지 ‘생산의 사업’이 있어야 비로소 생활의 근거가 되는 수입이 생기고, 그에서 비로소 살아갈거리가 장만되는 것이 아닌가? 조선사람에게 무슨 생산의 사업이 있으며, 조선사람 뿐 아니라 조선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무슨 ‘생산사업’이 있는가? 조선의 무산자가 그 노동의 힘을 팔아서 생명을 유지할 거리가 뭐가 있는가? 생산 사업은 물론 사람의 욕망을 충족하는 물화로서 조선사람에게 제작되는 것. 혹은 조선에서 제작되는 것이 무엇일까? 우리의 옷감인가? 우리의 목도리감인가? 우리의 모자감인가? 우리의 요대(허리띠)감인가? 우리의 양말감인가? 전차인가? 기차인가? 전등인가? 수도인가? 사탕인가? 석유인가? 술인가? 귤인가?
시계, 테이블, 밥그릇, 국그릇, 사치품은 고사하고 우리의 일상용품 가운데서 과연 조선사람의 손으로 제작되는 것이 무엇인가? 조선사람이라 함이 편협하다할진대 조선안 모든 사람의 손으로 제작되는 것이 무엇인가? 아- 조선사람의 손으로 제작되어 욕망을 충족하는 생산의 행위를 들어볼까? 오직 하나이니 곧 농업이 그것이로다. 농업을 빼면 조선사람의 살아갈 길이 없고 그 발달 행복을 기도(계획)할 방책이 묘연하도다. 농업에 의해 농산물에 의해 그 모든 일상용품의 전부를 남에게 공급을 받는다하여도 과언이 아니로다. 그러나 농업만가지고 비교적 광대한 토지를 요하고 비교적 희박한 인구 밖에 수용치 못하는 이 농업만을 가지고 조선의 모든 무산자가 능히 그 노동의 힘을 팔아 생명을 유지하고, 고작 생명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바라는 무산자의 이상사회를 실현할 수가 있을까? 조선사람아!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절실히 생각해보자. 첫째 우리가 먹고 살 근본적인 문제, 모든 문제의 근본 문제가 되는 이 생산 문제. 어찌하면 부를 낳고 그 부를 의지하여 살아갈까하는 이 문제를 절실히 생각해보자. 우리는 이제 다시 한걸음 더 나가서 생명유지의 근본을 잃어버리게 되었도다. 정치권력을 잃어버린 결과 생활의 유지가 곤란하여진 것이 사실이라하면 생활의 근거를 다시 빼앗기고 일어버리게 되는 그것이야말로 곤란은 고사하고 생활의 불능멸망의 필연한 운명을 불러 이르게하는 것이로다. 조선사람은 이제 제2의 위기에 섰으며 또 마지막 위기에 섰도다. 우리가 절실한 생각과 튼튼한 각오로써 이 생산문제를 해결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죽고 망할 것이라. 칼로써 망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도태구축으로서 망하는 것이며, 도끼를 들고 와서 우리를 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 이상의 전율할 경제의 법칙으로써 우리를 멸하것이로다.
아- 조선형제여 우리가 어찌하면 살까? 어찌하면 우리가 우리 손으로 우리의 생활 모든 생활의 기본이 되는 경제생활을 유지하여볼까? 자못 이 위기에 처하여 절실히 생각하기만 바라노라.
23년 3월 8일 동아일보 연희전문 이순탁 교수
이런거는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서 볼 수 있잔아.
되게 좋은 칼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