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인생
인간의 정점은 어딜까?
문득 떠오른 생각이 인간은 태어나면서 막연하게 죽을 순간을 위해 기약 없이 달려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젊음이 사라지고 뭔가 이루어야겠다는 욕망과 가지고 싶은 욕심이 사라지면서 간혹 굳이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는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자주 든다.
지금 당장 내가 사라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되는데 태어나서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오늘에 이르러 가만히 생각해보면 모든 것은 말짱 꽝이라는 기분이다.
왜 우린 바동대며 살아왔을까?
굳이 많이 가지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한세상이고 많이 가져도 한세상인데 내 것이라고 이름 지어진 것들이 늙어보니 무의미하다는 느낌이 들어 씁쓸한 생각만이 감돈다.
죽으면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고 이승에서 가지고 즐겼던 모든 것 버려두고 거죽 데기 하나 걸치고 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신이 어떻게 인간을 설계했기에 남보다 잘 살려고 출세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난리를 치는지 우습다.
경쟁에서 뒤지면 세상이 바뀌는 줄 알지만, 어느 순간 멈춰 되돌아보면 그것 또한 인생이 살아온 길에 한낱 기억 속 자리 잡은 추억일 뿐이라는 사실을 우린 왜 모르고 바동대며 살았는지 의문스럽다.
노욕이 무섭다는 얘기가 있듯이 주위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아직도 뭔가를 가지기 위해 바쁘게 사는 것을 보면서 천년만년 사는 것도 아닌데 왜일까 하고 의문을 가져보지만, 본래의 마음이 변하지 못해서 그렇게 살 뿐 특이한 점은 발견할 수 없다.
좋은 옷, 좋은 집도 사실 의미가 없다.
흔히 말해 하루 세끼 먹는 음식도 굳이 진수성찬이어야 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인간의 위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한 상 가득 차려진 음식을 다 먹을 수 없듯이 적당하게 먹고 끼니를 때우니 그 많은 음식이 무슨 필요가 있겠냐는 얘기다.
늙어 행동반경이 좁아지니 좋은 옷 입고 바깥 출입할 일도 거의 없다 보니 늘 장농 속에 있고 간혹 볼일 있어 내어 입어보면 요즘 유행과 달라 망설이게 되고 주저주저하다 말고 그냥 무난한 복장으로 나서는 순간을 맞이할 때면 아낀다는 의미는 무엇이었으며 그것이 나에게 주는 소중한 가치는 또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아들이 생일 선물로 내가 입고 싶다 했더니 단숨에 필요한 가죽 잠바를 사 입으시라며 돈을 보내줘서 하루 들떴다가 접은 일이 있다.
거금을 들여 하루 기분 내려고 사서 옷장에 걸어두면 무슨 가치가 있을까 하는 의문 때문에 접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접었지만 참 잘한 일에 속한다며 혼자 웃는다.
그 옷을 입고 다닐 곳이 얼마나 된다고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살아온 인생사에서 끊임없이 일어났던 욕망을 아직도 버리지 못한 습성을 발견하고 후회하는 어리석음이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돈을 보내줬으니 사 입어라고 권하지만, 겉치레에 내 영혼을 팔 수가 없어서 욕망을 접어 던지고 차라리 맛있는 것이라도 사 먹어야겠다는 생각의 전환을 한 것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복잡한 생각을 하기 싫다.
굳이 그런 복잡함을 내 속에 만들지 않아도 가끔은 의도치 않은 일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볼 때 굳이 스스로 만들어 희망 고문 같은 것을 할 필요가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세상사 자기 뜻대로 이루며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떤 것을 이루고 싶다는 욕망은 잠시 피어나는 구름처럼 솟구치지만, 어느 순간 사라지는 것이 흔히 우리네 마음이 항상 그대로가 아닌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이듯이 만족하고 살기 위해서 내 마음을 잘 다스려서 주어진 것에 만족하면 그만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원하는 것이 없어 죽어간다는 생각을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무의미와 무기력이 삶에 대한 애착 같은 것을 앗아갔는지 몰라도 세상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들어 굳이 존재하지 않아도 상관없을 것 같은 생각이 끊임없이 피어오르지만 그렇다고 딱히 무엇 때문에 허무한지는 잘 모른다.
그래서 이것저것 해보면서 내 삶의 어떤 부분이 즐겁고 유쾌한지 찾으려 노력하지만,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늙은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아침이 즐겁지 않다.
그렇다고 저녁이 반가운 것 또한 아니다.
굳이 항상 내가 살아온 방식에서 변하지 않기 위해 일정한 시간에 잠을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가끔은 저녁에 잠드는 것이 싫을 때도 있고 아침에 눈을 뜨고 세상을 맞이하는 것이 두려울 때도 있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순간 내 육신이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안다.
어느 한 곳 마음대로 쉽게 움직이고 가볍게 느껴지는 부분이 없어 한동안 이리저리 뒹굴며 용쓰며 일어나지만 살아있음에 감사하고픈 생각이 사라져서 서글픈 생각이 든다.
늙은 모습도 싫고, 잘 보이지 않는 시야도 불편하고 쉽게 움직일 수 없는 몸 동아리는 가끔은 귀찮다는 생각이 드니 아침 햇살이 육신을 깨우긴 했지만, 정신은 늘 불평 속에 머물고 있다며 쓴웃음을 짓게 된다.
밤에 잠자리에 드는 것도 즐거운 일은 아니다.
인간은 죽으면 영원히 잠을 잘 텐데 굳이 살아있는 지금도 일정한 시간 동안 잠을 자면서 내 생각과는 무관한 시간을 소비하는 것도 참 의미 없어 보일 때가 있다.
물론 잠을 자지 않고 인간은 살 수 없다.
그러나 굳이 저녁에 잠을 자고 아침에 불편한 육신을 움직이는 것이 내 인생의 방식이어야 하는지 의문이 존재함을 본다.
백수니까 잠이 오면 자고 오지 않으면 그냥 하얀 밤을 지새우는 것도 괜찮은 것 같은데 가족 간에 생활 리듬을 맞춰야 하니까 늘 하는 방식으로 그것이 정답처럼 움직이지만 간혹 불편한 느낌이 존재함을 본다.
죽어가는 인생이라고 말하면 서글퍼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진리고 진실이다.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우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지만 잊고 살기에 욕심도 부리고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후회가 밀려올까 봐 바동대며 노력하는 것이다.
그 바지런함이 정점을 지나 내리막길로 접어들면서 예전에 했던 생각과 행동에 대한 후회가 밀려드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지만 내 생각으론 굳이 그렇게 힘들게 살지 않아도 지금에 이르렀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끔 지구상 어느 작은 섬에 사는 사람들의 얘기를 전해 들을 때면 무척 부럽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먹을 만큼만 고기를 잡아먹고 누군가 경쟁하여 이기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그들만의 생활방식을 보면서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이 저곳이었으면 하고 넋을 놓고 집중한 적이 있는데 지금처럼 치열한 삶의 방식이 과연 옳은지에 대한 의문은 내게 항상 남아있다.
문명의 발전이 과연 인간에게 좋은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마찬가지다.
삶을 사는 데 꼭 필요하지 않은 부분들을 챙기느라 용쓰면서 경쟁이 생겨났듯이 경쟁 없는 사회에 산다며 우리가 하는 수많은 걱정은 존재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일일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의욕이 없으니 삶의 의미도 없지 않냐고 묻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애초 경쟁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네가 꿈꾸는 삶의 방식이 달랐을 테니까 다른 방식으로 진화되었을 것이라고 믿고 싶은 것이다.
오늘도 무엇을 해야겠다는 계획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문득 떠오른 생각 속에 존재하고 싶고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치에 속한다면 부담 없이 행하는 인생임에 즐겁다.
왜 사는지는 고민하지 않고 어떤것을 취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뿐이며 내가 가진 만큼에 대한 거부감없이 무한한 만족감을 느끼고 살고 있다는 얘기다.
마음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누굴 원망하지 않고 눈이 침침하다고 굳이 보이지 않은 눈을 크게 뜨고 난리 치지도 않으며 세월이 가자는 대로 반항하지 않고 어울려 가고 싶을 뿐이다.
어떻게 내 삶이 진행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내 방식대로 주어진 시간과 주어진 것에 만족하면서 즐기며 살 것이라는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
이 모든 것이 온전히 내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고 시간이며 자산이기 때문이다.
창문을 열고 싸하게 불어오는 겨울 바람 맛도 정겨울 때가 있고 가끔은 가슴이 차갑게 느껴진다며 진저리치며 창문을 얼른 닫고 멍하니 보이지 않는 바람이 가는 길을 바라볼 때도 있듯이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나만의 생각과 행동에 만족할 뿐이다.
언제 이 순간이 멈출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을 맞이하는 방식은 다 다르지만 결국은 인생은 죽어갈 뿐이라는 사실 하나만은 불변의 진리임은 틀림이 없다.
바스락거리며 겨울바람이 지나간다.
그 녀석이 갑자기 미운 이유는 그냥 가면 좋을 텐데 자꾸 나더러 같이 가지고 유혹하기 때문이다.
멈춰진 것은 생명이 없다.
그러니 바람도 흘러가고, 구름도 떠가고, 물도 조용히 아래로 흘러가듯이 우리네 인생도 마지막 종착역인 죽음의 계곡을 향해 세월에 실려 가고 있을 뿐이다.
지금, 이 순간 온전히 내 것인 시간이 중요하다.
그래서 내 삶의 방식대로 즐기고 웃고 울고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다.
언제 올지 모르는 그 마지막 날의 순간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