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가 손춘익 선생님과 같이 처음 와 본 옥계 침수정
1784년 손성을이 지은 침수정
손성을이 광해군 원년(1609)년에 지었다고 인터넷에 검색되는데,
잘못된 정보다.
경암 손경임은 여헌 장현광 선생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때 활약하였다.
손경임이 광해군 원년에 옥계 동구의 화표석에 영귀대라고 새긴 일이
광해군 원년이 아닌 지 모르겠다.
영덕군수로 부임해서 옥계 동구의 화표석에 영귀대라고 새겼다.
가을비 속의 산수유와 옥계 침수정
이 계곡이 댐으로 수몰되지 않기를 간절히 빌고 빈다.
봄엔 산수유 노란 꽃이 좋을 것이다.
옥수와 물 소리와 바위와 단풍과 가을비와 물 안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액자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활동 사진을 담아낸
비디오 아티스트 그는 누구인가?
영화의 자막이 창틀 벽에 걸려 있다
운을 붙여 시를 읊조려야 제 맛이 나는데....
처마에서 빗물이 떨어지고
몇 억말의 구슬이 쏟아져 내리는
계곡에서 웅장한 선율의 거문고 소리가 들려오고
미인의 눈썹보다 고운 단풍으로 단장한
바위 병풍을 두르고
관객을 초청하는 침수정의 장엄한 교향악
입장권의 값은 관객의 인생 총량으로 살 수 있는 백지 수표다.
대 앞의 용연과 거북 바위를 촬영하지 못하여 아쉽기는 하다.
침수정
수류침석 물로 양치질하고 돌로 베게 삼는다고 해야할 것을
수석침류 돌로 이를 닦고 물로 베게 삼아 귀를 씻을 것이라며 우기며
세속에 초연하였던
진나라 손초의 그 고결한 인품
침수정 원운
萬事吾身付一亭 만사일신부일정 만사에서 벗어나 내 몸을 정자 하나에 맡겨 두니,
淸音擊碎入牕欞 청음격쇄입창령 맑은 물소리 부딪혀 부수어져 누대 난간으로 몰려드네.
龍愁春暮蟠藏窟 용수춘모반장굴 용은 가는 봄을 근심해 굴속에 서리쳐 숨었고.
鶴喜秋晴舞環屛 학희추청무환병 학은 맑은 가을날을 기뻐하여 둘러친 바위 병풍에 춤춘다.
老石三龜窺淺瀑 노석삼귀규천폭 삼귀암 오랜 돌은 얕은 폭포를 살피고,
閒雲八角捲疎扃 한운팔각권소경 팔각산 머흐로운 구름은 성긴 문을 둘렀네.
平生浮坐煙霞積 평생부좌연하적 평생 노을 쌓인 곳에 부질 없이 앉았으니,
玉府眞緣夢幾醒 옥부진연몽기성 선계 참 인연 꿈을 몇 번이나 깨었던고.
辛亥 九月 上澣 신해(1791)년 구월 상순
枕流翁 題 침류옹 씀
정자 건너편 바위벽에 '山水主人 孫聖乙'이란 각자가 있다고 합니다.
정자 주변에 옥계 37경이 있다고 합니다.
정자 아래에 구정담, 삼귀암, 사자암, 삼층암, 촛대암, 구슬 바위, 멀리 내연산 향로봉.
屛巖(병암)
數疊蒼巖遶古林(수첩창암요고림) * 두를 요
遂開屛障洞門陰(수개병장동문음)
撑天自有扶持力(탱천자유부지력) * 버틸 탱
揷地終無轉動心(삽지종무전동심)
蘿面秋深金作鎖(라면추심금작쇄) * 쑥 라, 쇠사슬 쇄
石齦流碎玉生音(석간류쇄옥생음) * 물 간
臨風慨想頻搔髮(임풍개상빈소발) * 긁을 소
旅老何年坐此音(여로하년좌차음)
玉溪(옥계)
山水精神別作區(산수정신별작구)
東南秀氣鍾玆隅(동남수기종자우)
天機轉極還平穩(천기전극환평온)
秋景粧新便畫圖(추경장신편화도)
按伏詩魔歸寂寞(안복시마귀적막)
緬懷仙客欲招呼(면회선객욕초호)
煩君聽得希音未(번군청득희음미)
獨潮瑤絃悵草蕪(독조요현창초무)
川沙金宗德(천사김종덕)稿(고)
[출처] 올 여름 휴가[9] - 침수정(枕漱亭)에 올라보니|작성자 열린누리
謹次枕漱亭韻(근차침수정운)
居然泉石翼然亭(거연천석익연정)
頌是名區建是棂(송시명구건시영)
天秘渾淪形外界(천비혼륜형외계)
地藏奇絶畵中屛(지장기절화중병)
從容俗士相尋路(종용속사상심로)
彷佛仙人獨掩扄(방불선인독엄상) * 문귀 상
緩步軒前還往裡(완보헌전환생리)
統觀風物快心醒(통관헌물쾌심성)
逸山金一圭(일산김일규)稿(고)
[출처] 올 여름 휴가[9] - 침수정(枕漱亭)에 올라보니|작성자 열린누리
枕漱亭次韻(침수정차운)
江湖盟主百年亭(강호맹주백년정)
餘地雖多更不棂(여지수다갱불영) * 격자창 령
八角山高天柱立(팔각산고천주립)
九龍岩出畵成屛(구룡암출화성병)
東都處士魯爲宅(동도처사로위택)
南國蘇仙半在扄(남국소선반재상) * 문귀 상
流水妙琴將月夜(류수묘금장월야)
幾人塵夢自來醒(기인진몽자래성)
嘉善大夫前行司憲府監察(가선대부전행사헌부감찰)
梅隱永川李光乙謹稿(매은영천이광을근고)
[출처] 올 여름 휴가[9] - 침수정(枕漱亭)에 올라보니|작성자 열린누리
謹次枕漱亭韻(근차침수정운)
慳秘多年卜此亭(간비다년복차정) * 아낄 간
名區遊子倚飛棂(명구유자의비영) *
潭龍已去餘紋跡(담룡이거여문적)
臺鶴孤拪繞石屛(대학고천요석병) * 옮길 천, 두를 요
곡구사아개별차(곡구사아개별차)
塵寰遙遠掩仙扄(진환요원엄선상) * 문귀 상 /문 경
主翁時奏瑤琴曲(주옹시주요금곡)
山水中間也獨醒(산수중간야독성)
甲申黃花節直庵(갑신황화절직암)
金在性(김재성) 謹稿(근고)
[출처] 올 여름 휴가[9] - 침수정(枕漱亭)에 올라보니|작성자 열린누리
진(晉)나라 초기에 손초(孫楚)는 대대로 높은 벼슬을 지낸 명문거족 출신으로 글재주가 뛰어난 사람이었다. 인재 등용관인 대중정(大中正)이 손초에 대한 소문을 듣고 손초의 친구인 왕제(王濟)를 찾아가 그의 인물 됨됨이를 물었다. 왕제는 “손초는 귀공이 지금 한 번 만나보고 바로 알 수 있는 인물이 아니오, 그는 실로 놀랍고 비범한 사람이라 보통 사람처럼 다루어서는 안 될 것이오.”하고 말했다. 일찍이 손초는 당시의 죽림칠현(竹林七賢)의 영향을 받아 속세를 떠나 산속에 들어가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연구하고 청담(淸談)을 주고받으면서 일생을 지내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손초는 떠나기 전날 친구 왕제를 찾아가 자기의 생각을 말했다. 그런데, “돌을 베개삼고 시냇물로 양치질하는 생활을 하며 지내고 싶네.”라고 해야 할 것을 실수로 “시냇물을 베개삼고 돌로 양치질하며 살려고 하네.”라고 말해 버렸다. 왕제가 이 말을 듣고 “어찌 시냇물을 베개 삼을 수 있으며, 돌로 양치질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손초는 즉시 “시냇물을 베개 삼는다는 말은 옛날 은사(隱士) 허유(許由)와 같이 쓸데없는 말을 들었을 때에 귀를 씻어 깨끗이 하려 함이요, 돌로 양치질한다는 말은 이를 깨끗이 닦으려는 것일세.”하고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하여 당당하게 응수하였다.
손초는 내심 자신이 실수했음을 알면서도 끝까지 이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상식을 뒤집는 기발한 발상으로 궁지에서 벗어나려 했던 것이다. 손초의 이와 같은 고사에 근거를 두고 실패를 인정하려 들지 않고 엉뚱하게 억지를 쓰거나, 무리한 논리로 자신의 생각을 합리화 하고자 할 때, 혹은 남에게 지기 싫어서 좀처럼 체념을 하지 않고 자기의 주장을 고집스럽게 굽히지않는 경우를 침류수석(枕流漱石)이라 하게 된 것이다. 이는 감언이설이나 세간의 풍설에 쉽게 현혹되지 않고 자신의 뚜렷한 주관을 견지했던 선비의 곧은 기개를 뜻하는 말로 자주 인용되었던 바, 진서(晉書) 손초전(孫楚傳)에 나오는 말이다.
玉溪名勝有山亭(옥계명승유산정)
枕漱當年築數棂(침수당년축수영) *
龍窟龜淵尻玉瀑(용굴구연고옥폭) * 꽁무니 고
爐峰炤峀金雲屛(로봉소수금운병) * 산굴 수
兩州流水回前檻(양주유수회전함) * 난간 함
八角奇岩擁後扄(팔각기암옹후상) * 문 경
俗客何緣來此地(속객하연래차지)
徘徊竟日興雖醒(배회경일흥수성)
庚戌春(경술춘)
制憲國會議員(제헌국회의원)
金鳳祚(김봉조)
[출처] 올 여름 휴가[9] - 침수정(枕漱亭)에 올라보니|작성자 열린누리
옥계명승유산정 옥계의 명승에 정자가 있으니,
침수당년축수영 선생 당시에 몇 칸 난간 침수정 쌓았네.
용굴귀연비옥폭 용굴 거북못에 옥수 폭포 쏟아지고,
노봉 촉수 ? 운병 향로봉 촛대바위 산 허리에 구름 병풍 펼쳤네
양주유수회전함 영일 청송 두 고을 물 난간 앞을 돌고,
팔각기암옹후경 팔각산 기이한 바위 문 뒤를 둘렀네.
속객하연래차지 세속의 나그네 무슨 인연으로 이 땅에 왔고,
배회경일흥난성 종일토록 서성여도 흥을 깨기 어려워라.
경술(1970)년 봄
제헌국회의원
김봉조
김봉조 [金鳳祚, 1907~1983]
옥계유산기
처사 손성을과 가까운 사이인 유산 김대진이 친구 6-7인과 같이
내연산 폭포
장사의 바다를 보고
옥계에 와서 구룡폭, 화표주, 석병, 복룡, 삼귀,
향로봉, 옥촉봉을 둘러보았다.
경암 노경임이 영덕 현감 재임시절에 와서 명명한 옥계 동구의 화표석
처사 손성을 天鄕 이 천석을 사랑해 이 선경에 터를 잡고 머물렀다.
친구를 위하여
이 옥계유산기를 지어 정자에 걸게 하였다.
기유(1789)년 8월 28일
유산 김대진(1800-1871)
호-태수(泰叟),서계(西溪),유산(酉山),정와(訂窩)
안동 유생
玉溪 옥계
溪上。有枕漱亭。孫星乙所構。
洞口。有石。名華表柱。盧敬庵景任。爲盈德宰。刻詠歸臺於石上
옥계 상류에 침수정이 있는데 손성을이 지었다.
옥계 동구에 돌이 있는데 화표주라고 이름한다. 경암 노경임이 영덕 군수였을 때 돌 위에 영귀대라고 새겼다.
盧公遺刻蝕苔靑。노공이 남긴 각서는 푸른 이끼에 잠식되고,
漱石山翁昔此亭。산옹이 돌로 이를 닦던 옛날의 이 정자.
半畝澂波開玉鏡。반 무의 맑은 물결 옥거울을 열고,
四時濃靄滴蒼屛。사시의 짙은 운무 푸른 병풍을 적시네.
乙仙未返雲埋逕。손성을 신선은 돌아오질 않고 구름은 길을 묻고,
丁柱猶存月滿汀。화표석은 상기도 있는데 달은 물가에 가득하여라.
入戶寒泉瑤瑟響。문을 들어서니 찬 물은 신선계의 음악 소리 울리고,
神淸終夜夢頻醒 정신은 맑아서 밤새도록 꿈을 자주 깨네.
허훈(許薰)(1836-1907)
舫山先生文集 卷之五
심진록
순조 때 인물인 경주부윤 임처진 영천군수 조제만 하양현감 김병연이 함께
옥산서원을 참배하고
서원에서 산을 넘어 67리에 있는 기북면 오덕리의
세덕사를 참배하고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다시 70리를 가서 옥계에 닿았다.
가마를 버리고 말을 타거나 지팡이를 짚고 중국의 험악한 산인 태항산을 오르는 것처럼
갔다.
옥산서원에서 산을 넘어서
기북면 오덕리에서 하루 묵고
기북 오덕리에서 상옥으로 넘어가고
상옥에서 하옥으로
하옥에서 옥계로 갔던 것 같다.
尋眞錄(심진록)
玉溪之甲本月城諸勝見之者(옥계지갑본월성제승견지자)
必道之之川其度危嶺涉長嶝踰(필도지지천기탁위령섭장등유)
是于穻歲丁亥秋七月无涉余川本(시우한세정해추칠월무섭여천본)
州尹約官於隣者二人鼠騶齏糇會(주윤약관어린자이인서추제후회)
本玉山書院由是而山山行六七里宿世(본옥산옥원유시이산산행륙칠리숙세)
德祠又行七十里扺玉溪或捨輿而騎(덕사우행칠십리지옥계혹사여이기)
或持杖之徒経了千般若惱若上太行(혹지장지도경료천반야뇌야상태항)
躡九折凢遊山于聞名之來无涉其境(섭구절범유산우문명지래무섭기경)
則或有悔車之意而玉若玉溪則非(칙혹유회거지의이옥야옥계칙비)
但其車之莫之悔反川其車之遲(단기거지막지회반천기거지지)
爲悔則其奇絶之副本名可知也余(위회칙기기절지부본명가지야여)
乃列玉同遊者名付之玉溪主人川竢(내열옥동유자명부지옥계주인천사)
繼我而遊者爲使其車之遲爲悔云(계아이유자위사기거지지위회운)
爾(이)
本府尹(본부윤) 林處鎭(임처진)
永川守(영천수) 趙濟晩(조제만)
河陽守(하양수) 金秉淵(김병연)
[출처] 올 여름 휴가[9] - 침수정(枕漱亭)에 올라보니|작성자 열린누리
첫댓글 아름다워요~
언제나 찾아오는 가을이지만
매번 다른 느낌....
작년에도 가을에 푹 빠져 지내었는데
올해의 가을에도 눈을 뗄 수가 없네요.
너무도 사랑스럽고 아름다워서......
옥계의 가을, 그 안에 어우러진 침수정....
푹 빠져들게 됩니다...
침수정의 현판들의 내용과 지은이들 찾고 해석하다보니 시간이 정말 많이 들어가는군요.
우와,사진 대낄이당! 멋져욤.^^ 언제 사진 실력이 이케 늘었대요? 대단하삼! 어링불 아우님.
침수정의 현판 내용과 저자들에 대한 정보를 찾고 해석하다보니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군요.
비오는날인데, 도대체 조리개와 셔터, 렌즈를 우에 조정하였길래 정애 누부야 사진들은 빛톨들이 사진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선명한가요? 앞으로 같이 사진 찍을 때 한 번씩 갈채 주이소! ^^
문학기행때마다 만나는 사대부들의 삶....
문학,... 인간의 삶...
게속될 주제인것 같아요.
어림불님 고생하셨습니다. ^^*
우리 보리수필은 문학기행을 할 때 '백과사전'을 한 분 모시고 다니지요. 이름하여 어링백과사전....
어링불님의 맛갈스런 설명으로 문학기행은 더욱 맛잇습니당~
자료 찾으시느라 노고 많았네요. 덕분에 편하게 눈과 귀를 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