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임계점
박무형
새벽 여섯 시 반에 서울을 떠난 고속버스는 4시간도 못 되어서 진주에 도착했다. 오후 2시에 남강 문학협회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너무 일찍 서두른 것은 20여 년 전 진주에 있는 국립경상 대학병원 감사로 재직 때 병원장을 역임한 H 씨를 만나 오랜만에 회포도 풀고 점심을 함께하기 위해서였다.
진주 맛집 육거리 곰탕집에서 그를 만났다. 그와 나는 서로의 근황과 안부를 묻고 자연히 과거의 함께했던 추억담에 꽃을 피웠다.
1990년대 말 교육부 장관실에서 같은 날 임용장을 받고 그 병원에 취임해 보니 경영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만년 적자에다 독직 사건이 터져 그 후유증이 심각했다. 공무원 정년퇴임 1년을 앞두고 그 병원에 취임한 나는 무척 당혹스럽고 참담한 심정이었다.
당시 병원의 전임 진료처장을 지냈던 H 신임원장은 그 병원의 실태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병원 간부진을 모두 바꾸고 병원 체질 개선과 흑자경영을 최우선 목표로 내세웠다. 매주 전략회의에서 만성 적자요인을 분석하고, 부서별로 의료 서비스 질 향상 운동(CQI 운동)을 펼치는 작업을 진두지휘하였다.
원장은 매일 이른 아침 각 병동과 응급실을 순례하고 참모 회의를 주재했다. 각부서 업무개선 추진사항들을 목표치로 정하고 매주 진도 체크를 하였는데 그 대상 아이템이 150여 개가 넘었던 것 같다. 부서별로 그 목표치를 수월히 달성하면 그에 만족하지 않고 초과 달성할 수 있도록 상향조절하고, 미달의 경우에는 대책 회의에서 그 요인을 심층분석 하여 그 목표치의 한계를 협조와 지원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조정하였다.
그러한 H 원장의 열정으로 나는 감사업무보다. 병원행정 협조 분야에 취약한 부분을 바로잡거나 도와주는 데 힘을 썼다. 취임 수개월이 지나자 침체하였던 병원 경영에 새로운 동력의 불씨가 보이기 시작했다. 경상대학병원은 몇 해전에 전국 다른 국립대학과 함께 국고지원 운영체제에서 특수법인체로 전환되어 독립채산제로 운영되어야 했다. 경상대학병원은 서부 경남의 유일한 3차 의료기관이었으나, 도청소재지가 아닌 중소도시에 위치하였고, 인근지역은 낙후된 농어촌 지역이었기에 다른 국립대학 병원보다 경영 여건이 더 취약했다.
게다가 의료진과 직원들의 보수적이고 안일한 근무 자세도 큰 문제였다. 이른 새벽에 병원에 실려 온 응급환자를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타 병원 구급차가 실어 가는 사례도 빈번하여 H 병원장이 한동안 새벽에 응급실에 대기하여 그런 일이 없도록 바로잡기도 하였다. 그는 수시로 참모나 직원들에게 격의 없이 병원혁신과 발전방안에 대한 방책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의견을 구하곤 했다. 병원장의 판공비와 업무추진비를 직원 사기 진작에 썼다. 부서별로 직원들과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자비로 점심을 살 때도 많았다. 그는 어느 사이에 구성원 각자에게 일터에 대한 자부심과 신뢰를 구축했고, 의료진과 직원들 사이에 결속과 협력을 끌어냈다.
그 후 취임한 지 1년 만에 경영 혁신으로 병원 재정을 흑자의 반석 위에 올려놓았고, 2년 차에는 의료수익이 전해보다 20~20%를 웃도는 성장세를 보였다. 그 2년 만에 입원환자와 외래환자 증가추세가 10여 개 국립대학병원 중 선두그룹에 올라 있었다. 그해 연말에 원장의 요청으로 감사인 본인이 어렵게 협조하여 추경 절차를 거쳐 1,200여 명에 이르는 전 구성원에게 월봉 100%의 성과급을 지급하기도 했다. 서부 경남지역의 큰 수술환자의 대부분이 먼 거리인 부산대학 병원이나 대구에 있는 경북대학병원으로 갔으나 경상대학병원이 지역사회에서 신뢰를 얻자 자연히 가까운 경상대학병원으로 모여든다고 했다.
내가 감사 임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후 H 원장은 경상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고, 서울 중앙보훈병원 원장도 역임했다. 그는 그쳐가는 곳마다 그 조직의 성공 신화를 만들었던 것이다.
어느새 그와 점심을 먹고 다방으로 옮겨 커피를 마시며 과거 추억담에 잠기고 회상에 젖다 보니 3시간이나 훌쩍 지났다. 그가 남강 문학협회 행사장까지 동행하여주었다. 그와 헤어져 나는 시상식장에서 진주시장이 수여하는 감사패를 받았다 고향을 떠난 출향인이 고향을 기리는 좋은 글을 다수 발표했다고 주는 이른바 ‘디아스포라’ 문학상이라 했다.
저녁에 서울로 오는 귀경버스에서 나는 다시 낮에 만났던 H 원장을 떠올렸다. 그는 기관의 리더로서 책무의 한계에 머무는 사람이 아니고 그 한계를 뛰어넘는 사람이다. 한계에다 좌정하지 않고 강한 의지와 용기, 탁월한 지략으로 임계점을 뛰어넘어 목표를 달성하고 또 다음 목표에 다가서는 위인(偉人)이라는 생각에 주어진 한계에만 머무르곤 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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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분을 만나 인생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고향에서 주는 상의 큰 의미를 갖고.남강문학의 발전과 선생님의 문운도 건강도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