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06(화) 사무엘상 23장
창세기 1장은 우리 인간을 이렇게 서술합니다.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지만 이것을 깨닫고 살아가는 복된 인생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광야’와 같은 현실에서
‘놋(떠돌아다님, 방랑)’처럼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방황하는 인생들이 의지하기 시작한 것이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이었습니다.
점치는 인생이 되지요.
사도 베드로는 ‘광야’와 같은 현실에서
‘놋(떠돌아다님, 방랑)’처럼 살아가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한 것입니다.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복음의 삶)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지만 이것을 깨닫는 인생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다윗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다윗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의 왕이자
왕 같은 제사장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인생의 중요한 시간을 도피하고 방황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써 버립니다.
놉으로, 블레셋(가드)으로, 모압으로,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그일라와 십 황무지로 내일 읽을 엔게디의 동굴로 계속해서 도피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왜 자신이 있어야할 유다 땅
이스라엘의 왕의 자리, 왕 같은 제사장의 자리를 두고 도피 생활을 이어간 것일까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처지를 하나님께 탄원만 하지요.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어린아이가 칭얼거리듯 칭얼거리기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윗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다윗이 있어야할 자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첫째 선지자 갓을 보내 다윗이 있어야할 자리를 고지하십니다.
22:5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계속 일어나시고
둘째 백성들을 통해 다윗이 있어야할 자리를 고지하십니다.
23:1 사람들이 다윗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 마당을 탈취하더이다 하니
사실 이 보고는 도망치고 있는 다윗에게 할 보고가 아닙니다.
누구에게 해야 할 보고이지요?
이스라엘의 왕 사울에게 해야 할 보고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들어왔다’는 보고를
사울 왕이 아닌 다윗에게 합니다.
왜요?
다윗이 이스라엘의 진정한 구원자, 왕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조금 깨달게 된 다윗은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묻지요.
23:2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23:4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그렇게 다윗은 자신을 엄습하고 있는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자신이 있어야할 자리, 하나님이 예비한 자리로 한 걸음씩 나아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