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절대 감사 (살전 5:12-23)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절대
감사란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도록 한다.
1. 감사의 이유 –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 여기서 ‘감사하라’ 는 단어가 명령어로 쓰여 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
하지 말라, 부모를 공경하라, 등 모든 계명이 명령인 것처럼 ‘범사에 감사하 라’ 역시,
명령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이 피조물인 인간이 반드시
하나님께 드릴 최선의 의무이며, 이유이다(감옥과 수도원의 차이는 감옥은 하루가
불평으로 시작되지만 수도원은 하루가 감사로 시작한다)
2. 감사의 내용 – 범사의 모든 것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 데살로니가교회가 이 서신을 받을 무렵 그 교회는 환난의 한복판에 있
었다. 그래서 이 서신에는 환난이나 고난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자주 등장한다.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
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
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
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살전 1:2-4).
3. 감사의 방법 – 절대 감사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
1) 하박국의 감사(합 3:17-18). - 절대 구원에 대한 감사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2) 욥의 감사(욥 1:20-21). - 절대 주님에 대한 감사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
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
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3) 다니엘의 감사(단 6:10). - 절대 사랑에 대한 감사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한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 유대인의 격언 중에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혀에 붙기 전까지는 아이에게
아무 말도 가르치지 말라” 라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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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
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고,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며,
사랑은 표현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고, 축복은 감사할 때까지 축복이 아니다.”
나에게 축복이 되는 일이 많았지만
감사하지 못해 축복을 축복으로 받지 못한 경우가 얼마나 많을까!
그래서 매사에 ‘감사합니다!’ 를
외치며 사는 사람이 행복하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브라질 사람들은 ‘오브리가도’(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틈만 나면 ‘오브리가도’를 외친다.
그래서인지 일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가 ‘오브리가도’다.
미국 사람들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 ‘땡큐’(감사합니다)다.
그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생활 속에서 작은 일에도 ‘땡큐’라고 말한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 50개를 선별했는데,
그중에서도 ‘땡큐’ 가 28퍼센트로 1위를 차지했다.
이것은 감사가 몸에 배어 있음을 느끼게 한다.
성인이 되면 평균 2만 6,000개의 단어를 알게 된다고 하는데,
그중에 다른 사람을 가장 기쁘게 하는 최고의 언어가 ‘감사합니다’이다.
물론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인간의 언어도 ‘감사합니다’이다.
그래서 유대인의 격언 중에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혀에 붙기 전까지
아이에게 아무 말도 가르치지 말라” 라는 말도 있다
- 은총 받은 생활
문학가 오스카 와일드의 우화적 단편이 있다.
이 이야기는 예수께서 과거에 은혜를 입혀준 몇 종류의 사람을
그 후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우화적으로 엮어본 것이다.
처음 예수님은 한 주정꾼을 만난다. 그는 거의 폐인과 같이 된 젊은이였다.
예수께서 왜 그런 생활을 하고 있소 하고 물었더니
주정꾼은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이 내가 절름발이였을 때 나를 일으켜 걷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걸어 다닌들 무엇을 먹고 살라는 말이요,
그동안 직업을 구해 보았으나 만족한 직업 하나도 없었오.
그 다음 예수님은 한 여자가 창녀가 되어 남자들 사이에서
희롱 받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된다. 예수님은 여자에게 말한다.
어째서 이런 생활로 되돌아갔오. 창녀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나를 창녀에서 건져 새 사람을 만들어준 것 같았으나,
창녀에서 발을 씻은들 무슨 행복이 있단 말이오.
나는 더욱 고독해서 살 수가 없었기 때문에 다시 창녀의 생활을 시작했오.
그 후 예수님은
한 불량자가 정신 없이 이웃과 매질을 하고 있는 장면에 부딪힌다.
예수님은 그에게 묻는다. 여보 청년, 어째서 이런 생활을 하고 있소.
불량자는 예수님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당신이 눈을 뜨게 해 준 소경이었소.
그러나 눈을 뜨고 무엇을 보라는 거요.
보이는 것이 모두 신경을 돋구고 귀찮고 화나는 세상이 아니오.
결국 나는 화풀이도 하고, 마구 치고 받고 하는 생활이 나에게
주어진 길이라고 생각하였소.
이 단편은 은총을 은총으로 살려, 빛을 내지 못한 인간상을 그리고 있다.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은 참으로 거대한 것이다.
창녀에게서 구원되거나, 소경이 눈을 뜨는 이상의 큰 은혜를 우리는 입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감사를 모른다. 감사란 입술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바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에 보답이 되는 새로운 생활로 자기를 전환시킬 때
감사의 의미가 비로소 살아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