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 어느 날 새벽 6시에 아리조나주 투썬에 있는 ‘베네딕도회 수녀원’을 떠나 하루 종일 비행기를 타고 또 갈아타고 저녁 6시가 넘어서야 필라델피아 공항에 내렸다. 금요일부터 다음 주 수요일까지 미국 뉴저지 주 췌리힐 Cherry Hill 이라는 곳에서 6 일간 피정을 하기 위해서였다.
로버트 드그란디스 신부님과 죤 햄쉬 신부님께서 날마다 4번씩 강의를 해주시고 또 드그란디스 신부님께서 날마다 아침, 점심, 저녁 강의 후에 성령의 안식을 체험하게 해주셨다. 피정자는 모두 1,300명이었다. 미국인들은 피정도 힐튼 호텔에서 했다. 저녁이면 호텔 2층 조용한 방을 성체조배실로 꾸며 그 앞에 조용히 앉아 있는 이들도 꽤 많았다.
금요일, 토요일, 주일이 지나자 가족 단위로 주말피정에 온 1,000명이 빠져 나갔지만 12살까지의 아이들을 다 제대 위로 초대해서 직접 작사 작곡한 곡으로 춤추고 노래하며 찬양으로 이끌던 필리핀인 마이클 쌔마나 신부님은 정말 사랑스러웠다. 신부님은 어느 날 기도 중에 손가락 한 개를 보고 사제로서 잘못 살아온 것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기고 마음이 졸아들었다. 그런데 눈앞에까지 다가온 손가락이 신부님의 콧잔등을 짓궂게 누르면서 주님의 말씀이 들렸다. “나를 위해서 노래하지 않을래?”
그때부터 신부님은 미사의 모든 기도문과, 특히 성찬의 기도를 작곡하고 노래하며 미사를 드렸다. 우리 피정 중에도 노래하며 기도하시다가 울컥 주님 사랑에 감동이 밀려와 우시는 것을 보는 우리도 눈물을 글썽이며 한참씩 기다려야 했다.
그 가족들이 다 가고 나머지 300명은, 계속 강력하게 복음을 선포하며 우리를 주님 사랑으로 이끌어가는 드그란디스 신부님과 햄쉬 신부님의 말씀, 미사성제, 개인조배, 치유체험 나누기에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를 지경이었다.
수요일 오후 나는 플로리다주 나이스뷜Niceville에 사는 한국 신자들을 위한 나흘 피정을 위해 파견미사 전에 떠나야 했다. 드그란디스 신부님께 미리 인사를 드렸더니 그 자리에서 주머니를 뒤져 100불을 건네 주셨다. 너무 많고 갑작스러워 사양했지만 “수녀님은 비싼 아이스크림 먹지 않아요?” 하시며 눈을 찡긋 하시며 기여코 내 손에 쥐어주셨다.
공항에 앉아 오클라호마로부터 올 예정이나 악천후로 연착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국적도 다르고, 단지 통역자로 몇 번 만났을 뿐인데 내가 뭐라고 마치 큰 오빠가 길 떠나는 누이에게 하듯이 대해주셨구나.’ 라는 생각이 들자 아빠하느님의 사랑에 한 시간이나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그해 8월 나폴리에서 사제들을 위한 피정을 주시고 로마 다빈치 공항에서 다시 만난 신부님은 나를 보자마자 그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고 있는데 들고 있던 가방을 아무렇게나 땅에 던지고 다시 지갑을 꺼내 내게 100불을 내미셨다. 후에 투썬으로 돌아가 신부님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한 편지를 드렸었는데 그것을 기억하셨던 것이다. 함께 나간 한국 수녀 둘과 나를 위해 아이스크림을 사주시며 공항 소성당에서 각자에게 기도까지 해주셨다. 둘 중 한 사람은 브라질에서 또 한 수녀는 불가리아에서 선교를 하고 있다.
다시 필라델피아 공항으로 돌아가서 죠지아주 어틀란타에서 갈아타고 다시 플로리다주 펜사콜라 공항에 내려야 하는 비행기를 2시간이나 늦게 탔다. 교우들이 나이스뷜에서 차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조마조마 했다.
어틀란타행 비행기 안에서 나는 여승무원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조언을 구했더니 친절하게도 특석 빈 자리에 앉혀 주었다. 마음을 졸이며 기도를 했다. “아빠하느님, 어틀란타에서 갈아타는데 한 시간 밖에 여유가 없는데 비행기가 두 시간이나 늦게 출발했으니 어떡해요? 이건 기장의 잘못도 저의 잘못도 아니고 그냥 폭우 때문이니, 사람으로선 불가항력의 이 일을 주님께 다 맡깁니다. 아멘.”
앞자리에 앉은 덕분에 기내를 빨리 빠져나와 플로리다주 펜사콜라행 6번 출구를 찾으니 바로 곁에 있었으나 흑인 여종업원이 “그 비행기는 30분전에 벌써 떠났으니 17번 출구로 가서 오늘 밤 머물 숙소를 배정받고 내일 아침 첫 비행기를 타세요.” 하는 게 아닌가. 그 출구로 들어가 보게만 해달라고 다시 부탁했으나 막무가내로 고개만 흔들어댔다. 하는 수 없이 터벅터벅 17번 출구를 향해 걷고 있는데 키가 크고 건장한 서양인 신사가 말을 걸었다.
“이런 일이 가끔 있으니 그냥 비행기회사에서 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답니다.”
그는 17번 출구까지 친절하게 나를 안내해주더니 예의바르게 인사까지 하고 갈 길을 가버렸다. 스무 명 남짓 서있는 줄 제일 뒤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일 분도 지나지 않아 그 신사가 되돌아와서 말했다. “제가 이 비행기회사 클럽 회원이니 수녀님을 모셔다 2층 사무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여기서 기다릴 필요가 없어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함께 올라갔더니 그가 사무원 세 여자에게 말했다. “이분이 내 손님이 잘 해 드리세요.”
한 여자가 내 비행기표를 보더니 즉시 전화를 하고 말하기 시작했다. 한 문장밖에 말하지 않았는데 즉시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나를 보고 말했다.“ ”수녀님, 빨리 6번 출구로 가세요. 비행기가 수녀님을 기다리고 있어요.“
나는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름도 물어볼 겨를이 없이 그 신사에게 계속 감사의 절을 하고는 6번 출구로 달리기 시작했다. 내 생전 처음 “다리야, 날 살려다오.” 하고 달려 6번 출구에 도착하니 아까 봤던 흑인 여직원이 아니라 젊은 흑인 남성 직원이 즉시 내 표를 받고 나를 통과시켰다. 탑승하자마자 5분 이내로 비행기가 이륙했고 펜사콜라 공항에 도착하니 교우들이 기쁜 얼굴로 맞아주었다.
나이스뷜까지는 자동차로 또 한 시간 넘게 달려 다음 날 저녁 나이스뷜 미군기지로 들어가서 말없이 신분증을 냈더니 그 군인도 아무 말 없이 출입증을 끊어주었다. 그 지역 한인 성당 회장인 요한이 보여 달라기에 표를 주니 나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이 군인 성당에 몇 년간 꽤 오래 다녔지만 나흘 치 출입증을 끊어주는 건 처음입니다. 항상 그날그날 끊어줍니다. 놀랍군요.” 그것도 딱 피정이 끝나는 18일까지였다.
하느님께서는 이번 여행길에 잘 생긴 금발의 수호천사님을 보내기로 작정하셨나보다. 그 신사가 낯선 동양수녀에게 말을 걸고 가던 길을 돌아와 나를 회원사무실로 안내하지 않았다면 어틀란타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밖에 없었으리라.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하느님께 맡기게 기도할 수 있음도 감사할 따름이다. 더욱이나 내 비행기가 필라델피아 공항에서 두 시간 연발했지만 죠지아 Georgia 주에 한 시간 시차가 있어 비행기가 30분간 나를 기다려주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사랑합니다. 아빠하느님! 수호천사님을, 저희 생의 여정 곳곳에 천사표님들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당신께 맡길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저희와 동행하시는 임이심을 찬미하며 다시 고백합니다. 아멘.
첫댓글 길섭수녀님앞에 그간 이루어진 모든일이 하느님 체험으로 저도 감동 됩니다 수녀님께서도 아슬 아슬한 모든일에 신비롭고 참으로 행복해 보입니다....빛으로 오시는 분이시어,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아멘
참 감동입니다...^^ 영광과 은총의 주님 찬미 흠숭 받으소서!
삶을 돌아보면 정말 모든 일이 그분의 사랑이심을, 그분의 도우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걸 깨닫지 못하고 늘 투정부리고 아파하고 있었습니다. 수녀님 글을 읽다보면 모든 것이 주님의 섭리임을 깨닫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길섶수녀님 수녀님께서 지나다니시는 길섶에 언제나 주님함께 하심을 알게 되어 너무 감사해요. 저희의 길섶에도 성모님 예수님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길섭 수녀님의~하느님 체험은 감동입니다~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가슴으로 느낌니다~저도 조용히 주님앞에 무릎을 꿇습니다~주님!주님의 이름은 찬미와 영광받으소서~이제와 영원히 받으소서~아~멘!.
생활 가운데에서도 늘 그분을 신뢰하시는 수녀님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이세상 여행길에 언제나 함께 해주시는 주님 성모님 찬미 영광 받으소서...아멘
주님께 의탁하며 주님께 향한 믿음을 보시고 금발의 수호천사님을 보내신 주님은 멋지신 분이십니다..길섶수녀님, 영육간에 건강하세요..감사드립니다^^
수녀님 글을 읽으면서 부러웠습니다..주님이 곁에계심에.. 제곁에도 그분이 계심을 믿습니다~~ 아멘..
예쁜 세실리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