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목 산악회 산우애의 검단산 산행 제의를 사양하고 재활 산행을 가기로 합니다. 일기 예보는 지도를 온통 붉은색으로 덮으며 폭염 특보로 겁을 줍니다. 집에서 꼼짝 말라고. 게다가 비도 온다고 합니다. 하여튼 가다가 하오고개에서 탈출을 해 버리든지 광교산만 호비작거려도 됩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 물로 땅을 삼고, 물로 옷을 삼고, 물로 몸을 삼고, 물로 성정(性情)을 삼을 것이리라. 이런 생각으로 산에 가면 되니까요. 이 음습한 날씨의 중복날 청광 종주. 미친 짓이지요.
일찍 출발하기로 합니다. 덥기 전에 오르막 산행 거리를 줄여야 합니다. 그런데 나이 먹으면 노련해지는 걸까요, 아니면 비겁해지는 걸까요. 원래 광청 종주는 경기대에서 출발하는 것이 당연하지요. 그런데 나는 슬그머니 상광교 종점으로 갑니다. 절터로 올라가 억새밭으로 갈 요량이지요. 적어도 두 시간은 먹고 들어가니까요. 사실 짝퉁 종주입니다. 상광교 종점에서 6시 50분에 산행을 시작합니다.
정말 음습이 딱 맞습니다. 흐릴 뿐 아니라 안개가 심하게 끼어 있습니다. 어두컴컴하고 안개비가 알게 모르게 흐릅니다. 혹 지나가는 등산객은 흐릿한 실루엣으로 지나갑니다. 하오고개 지나며 국사봉 오르는 길의 공동 묘지를 어떻게 지나나 걱정입니다.
절터약수터. 7시 25분. 우리나라 절들을 보면 참 명당자리에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이곳도 역시 광교산의 품안에 딱 들어오는 느낌입니다. 청량산에서 청량사를 들어 설 때도 그런 느낌이었지요. 게다가 사람 사는데 꼭 필요한 물. 물이 아주 잘 나오는 곳이 이곳입니다. 물을 마시고 좀 쉬다가 억새밭. 7시 54분.
이제 한남정맥의 마루금에 올라 섰습니다. 부슬비가 좀 뿌리다가 그칩니다.
백운산 정상 8시 20분.
엥 글자가 거꾸로네
청광 종주 구간을 의왕시에서 등산로를 정비하면서 의왕대간으로 이름 붙여 등산로 표시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성남시에서 뒤 늦게 성남 누비길이라고 선전해 대지만 늦었습니다. 흔히들 이 의왕대간을 한남 정맥으로 알고들 있지만 광교산 시루봉 거쳐 이곳 백운산까지는 한남 정맥입니다. 그런데 한남정맥은 이곳 백운산에서 헬기장 거쳐 지지대고개로 가는 능선이고 이곳 백운산에서 국사봉 거쳐 과천 매봉으로 가는 길은 관악지맥입니다. 흔히들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지요. 오늘도 국사봉에서 어떤 아저씨가 이곳이 한남 정맥이라고 하길래 내가 한남정맥은 백운산에서 지지대로 가는 길이라고 하니 성질을 내면서 나보고 잘못 알고 있다고 이곳이 한남정맥이라며 그곳은 한강 기맥이라고 합니다. 기가 막힙니다. 한강기맥, 말은 들어본 모양인데 한강 기맥은 운두령에서 양수한강으로 흐르는 길이라서 전혀 엉뚱한 말입니다. 난 그냥 입 다물고 맙니다. 남대문 문지방이 대추나무로 만들었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니까요.
각설하고 백운산 지나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냥 가다보니 어느덧 그칩니다. 너무 습하니 땀이 몹시 납니다. 그러니 당연히 시원한 맥주나 막걸리 생각이 간절하기만 합니다. 막걸리 하니 두보의 시 登高가 생각납니다.
風急天高猿嘯哀
渚淸沙白鳥飛回
無邊落木蕭蕭下
不盡長江滾滾來
萬里悲秋常作客
百年多病獨登臺
艱難苦根繁霜鬢
潦倒新停濁酒杯
늙고 병들어 흐린 술잔을 멈춤으로 이리 산에 오를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9시 30분 바라산.
전망이 좋은 곳이지만 흐리고 안개로 전망이 좋지 않습니다. 바라산 정상 평상에 막걸리 행상이 생겼습니다. 생수도 팝니다. 전에 공포의 15분 바라고개 급경사는 의왕시에서 희망의 365계단을 만들어 놓고 24절후를 적어 놓아 산행하기에 참 좋습니다. 백운산에서 하오고개까지는 벤치 등 등산객들이 쉴 수 있는 곳을 잘 정비해 놓았습니다.
10시 45분 우담산 정상.
11시 40분에 하오고개 에코 브릿지에 도착합니다.
이곳은 전에 안양 판교로 큰 길이 나기 전에는 그냥 도로를 무단 횡단하고 길도 없는 가파른 절벽길을 풀뿌리 잡고 기를 쓰고 오르곤 했지요. 큰 도로가 나고 나서는 무단 횡단을 할 수 없어서 하후현 성당 있는 곳으로 지하도를 건너 우회해야 했습니다. 그때 30여분이 더 걸렸는데 지금으로는 한 시간 이상 더 돌아 가는 길이었습니다. 백운산에서 하오고개까지 전에는 두 시간이면 충분했는데 오늘은 3시간 20분이 걸렸습니다. 도로 건너 공동묘지를 지나 힘겹게 힘겹게 국사봉을 오릅니다. 도중 다문화가정의 남매가 아빠를 따라 좀 뚱뚱한 딸이 울면서 오릅니다. 따뜻한 가족 풍경입니다. 까마귀가 먹을 걸 달라고 계속 시끄럽게 울면서 따라다닙니다. 먹을 걸 주어 버릇해서 저 새들은 이제 사람들만 따라다니니 참 큰일입니다.
1시 국사봉 정상.
토스트 두쪽과 우유 한팩으로 점심을 먹습니다. 이어서 이수봉.
역시 30분 걸리던 곳인데 한 시간 걸려 이수봉에 도착합니다. 3시 30분 매봉 정상.
혈읍재 지나 매봉 오르지 않고 우회할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종주의 의미를 살려 매봉으로 오릅니다. 이제 오르막길은 없습니다. 매봉에 있던 오래된 막걸리 행상과 정상의 음료수 행상이 모두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매봉 바로 아래 새로 생겼던 막걸리 행상도 없어졌고요. 민원으로 철거 되었답니다. 4시8분 길마재 정자. 큰길 직전 장마로 인한 계곡물에서 망외의 탁족을 즐깁니다. 간절했지만 차마 알탕은 하지 못합니다.
4시 50분 등산로 입구 정자. 산행 끝. 10시간. 두세 시간 더 걸린 것 같지만 재활훈련이니 이것으로 만족해야겠지요.
첫댓글 재활훈련 이신데, 폭염에 청광종주 라니...
더구나 종주 산행기가 정기 어린 명문 입니다.
고생 하셨고,
대부분 언감생심 하는 지난한 종주산행에
재활훈련 이라니, 그저 탄복 할 따름입니다.
부족한 건강, 청광종주의 기백으로 잘 이겨내시고요.
이 삼복더위와 정먼대결을 벌였구먼.
작년 8월 엄청 무덥던 날 미련한 친구들과 셋이서 청광종주 한 일이 언제였던지 까마득하네.
날씨가 좀 서늘해 지면 설악이나 지리산 한번 같이 가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