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장편 소설 무죄를 쓰고 나서
아들로선 늦둥이 막내로 태어난 필자는 서른 나이가 되도록 여순사건이 발생했던
순천에 어느 두메산골에서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고 살았습니다.
눈비 오는 날이나 시간이 날 때마다 부모님과 동네 어르신들에게 여순사건 때의
참상을 들어 왔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을 근거로 해 소설을 써 보고 싶었으나 용기가 나지 않았었습니다.
군사 정권들의 서슬이 두려워 까발리지 못했고 군사정권이 무너진 후에는 경제 형편이
어려워 차일피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침내 문민정부가 탄생한 이후로 민주화가 이루어지더니 인권 선진화된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견주는 대한민국이 되었다고 자부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필자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그때의 진실을 소설로 쓸 수 있다고 내다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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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분뿐인 외삼촌과 이모부께서 14연대 좌익군에 죽었으니 어찌 보면 우리 가족에게는
저들이 원수라고 원망할 만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여순사건 진실은 제주 4·3 사건처럼 바르게 밝혀져야 합니다.
1948년 10월에 당시 여순사건을 겪었던 여수·순천 지역 사람들이야말로 혹독한 난리를
두 번이나 연거푸 치렀었습니다.
아무런 죄도 없이 단지 좌익에 부역했다는 막연한 혐의로 수많은 사람이 현장에서 억울하게
변명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총살당했으며 경찰에 끌려가서도 재판을 받아보거나 변명
한마디 옳게 하지 못하고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미성년자와 부녀자 심지어 어린아이까지 죽임을 당했으며 가족이 몰살당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런 천인공노할 참상을 부모님과 고향마을 사람들이 체험했던 걸 수 없이 들었던 걸 소설화했습니다.
무고한 아버지가 죽은 것도 억울한데 연좌제에 묶여 공무원 시험에 1차 합격하고
2차에 떨어져 평생 한을 안고 살았던 고향 선배도 있습니다.
죄도 없이 억울한 죽음을 했지만 찍소리도 못하고 어둠속에서 가족들이 살았던 거였습니다.
이제는 여순사건의 진실을 말할 수 있고 또 이런 진실을 알리고 싶어 ‘무죄’란
제목으로 대하 장편소설을 쓰게 되었던 것입니다.
남북분단을 겪은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6·25 한국전쟁이 비극이었으며 참혹했다고 말합니다
여순사건에 이어 한국전쟁이 나던 1950년 말에 함평 영암, 그리고 이듬해 설날 다음 날에
산청·함양 등지에서 마을 주민7, 8백여 명씩 몰살했습니다. 그 때 죄 없는 사람들을 인민군이 아닌
대한민국 국군과 경찰이 죽였던 것입니다. 1948년에 여수 순천 지역민들도 이처럼 국군과 경찰 그리고
대한청년단에 의해, 억울하게 죽었던 사건이 발생했지만, 아직 명예회복을 못 하고 있습니다.
너무 늦은 2021년 6월에 여순사건 특별법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에 통과되었으니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과 유가족의 명예회복이 이뤄지길 기대해 봅니다.
고향에 박 부자 집에서 많은 머슴 중에 상머슴을 살면서 구례읍에서 곡우제와
칠월 백중에 열렸던 씨름대회에 아버지가 상씨름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입산했다가 내려온 친구에게 닭을 잡아 준 것 때문에 전 가족이 피난길에 올랐다가 죽기
일보 직전에 한청에 활동하는 아버지 친구를 만나 구사일생한 것도 사실 얘기임을 밝힙니다.
저 나름대로 꾸며 쓰기는 했으나 전혀 터무니없이 썼다기보다는 엄연한 사실 얘기를 들었던 걸
썼던 것이 많습니다.
소설 속에선 미나미 총독저격 사건을 꾸미고 주인공 덕형은 고향 떠나 숨어 살았던 대목은 사실이
아님을 밝힙니다. 그러나 강제 징용에 끌려가다 탈출한건 사실입니다.
해방되면서 고향에 돌아왔으나 나라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주인공은 여순사건을 호되게
겪으며 가족이 구사일생했으며 산골농촌에서 어렵게 살아갔으니 이분은 실제 필자의 아버지였습니다.
이처럼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소설 속 주인공들이 해방된 조국에서 신탁 통치반대를 목이
터지라고 부르짖지만, 미 군정의 강력한 힘은 국민의 외침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맙니다.
또다시 친일파를 처단하고 친일청산을 부르짖지만 이마저도 미 군정이 뭉개버립니다.
단독정부를 반대한다며 또다시 부르짖었지만, 또다시 미 군정은 38선에 철조망으로 장벽을
만들어 가로막아 천만 이산가족을 만들었습니다.
연수를 다 한 부모·형제들이 눈을 감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비극이 70년을 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동학란이 실마리가 되어 청일전쟁이 벌어지고 승리한 일제에 의해 우리는 살았습니다.
호전적인 일본이 미국에 패하자 우리나라의 통치권은 미국과 소련에 통치로 넘어갔습니다.
영영 회복하지 못한 비극에 빠진 실마리를 제공한 나라는 미국이라는 사실을 얘기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같은 동포와 총을 겨누면서 남북이 분단된 슬픔에 빠져 살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일제 36년은 악몽이지만 현실은 행복한 것처럼 살고 있으니 아이러니합니다.
일찍이 일제강점기에 경찰이나 공무원을 했던 친일파들이 이 나라를 손아귀에 장악하고
부를 축적하며 떵떵거리고 잘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제와 피 흘러 싸우며 독립운동했던 사람들은 가난에 허덕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여순사건이 일어나자 일제와 싸우며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항일투사들이
친일경찰들에게 죽거나 곤욕을 치릅니다.
그런가 하면 광주학생운동에 가담했다가 고향 마을에 이장직에 있으면서 좌익에 부역했다는
누명을 쓰고 자신의 아내를 짝사랑하는 친일경찰에게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며 반신불수가 된
주인공도 있습니다.
유치장에 오랫동안 갇혀 있는 남편을 구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하룻밤 수청 들러 갔다가
그에게서 20년 동안이나 부부생활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오르가슴을 느끼게 되고 사랑에 빠져
두 남자를 사랑하게 됩니다.
오랜 세월 남자 우월주의로 내려왔던 우리나라가 부부관계에서도 남편 일방적이지만
아내도 성욕을 즐기고 오르가슴도 즐겨야 한다는 요지로 대담하게 차별성을 구성했습니다.
이런 남편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 다른 소설과는 차별이라 봅니다.
여순사건 때 사망자 80% 이상이 대한민국 군경과 대한청년단에서 죽을죄를 짓지 않은
양민을 학살했고 좌익군 측에서 양민학살은 극히 적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다른 소설에서는 여순사건 진실을 말하지 못했으나 필자가 쓴 소설 『무죄』 속에서는
과감하게 까발린 것이 차별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정래 작가는 여순사건을 다룬 대작인 『태백산맥』을 순천지방의 사투리로 집필했습니다.
처음 읽을 때는 동부 순천 쪽에서 사용하는 사투리가 아니라서 난해하기도 했습니다.
필자의 고향은 순천 동북부지역으로 섬진강 쪽에서 지역민들이 사용했던 사투리를 과감하게
사용한 것이 『태백산맥』과는 다른 차별이라면 차별이겠습니다.
다른 작품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던 고향에서 쓰던 사투리를 그대로 적용했습니다.
순천이 낳은 조정래 작가님께서 쓰신 『태백산맥』에서는 사투리 발음을 그대로 적용한 대작입니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택호였습니다.
낙안댁, 외서댁으로 표현했지만 지금도 필자의 고향 순천에서는 낙안떡, 외서떡처럼 택호를
떡으로 발음합니다.
『무죄』에서 택호에 ‘댁’이란 단어를 붙이지 않고 과감하게 ‘떡’이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지금까지 다른 대하소설에 비해 차별성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이 소설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여순사건의 진실을 알리려는 의도로 쓰기 시작했던 것이
대하 장편소설을 쓰게 되었던 것입니다.
1950년 6.25전쟁부터 4.19의거, 그리고 군사 쿠데타 정부가 들어서고 5.18에 이르기 까지
속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만 쉽지는 않을 듯합니다.
극성인 코로나가 제발 잠잠해져 필자의 칠순기념과 출판기념회를 2022년 11월에는 동시에
성대하게 열게 물심양면으로 도와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무죄를 끈기를 발휘해
읽어 주신 아름다운 황금열차에 탑승하시고 즐거운 여행을 함께 한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어서 아파트 경비원을 비롯한 감시단속적 근로자의 애환을 그린 장편소설 마당쇠를 준비했습니다.
2023년 5월 27일 오전에 대하 장편소설 무죄 저자 남천 강병선
첫댓글 자까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글은 아무나 쓰는것이 아님을 압니다
진실이 묻어난 글에 박수를 보냅니다
다음작품이 기대댑니다
건강잃지마시며 힘내시고 건투를 빕니다
자까님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