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 더봄] 러스틱 라이프-촌스러움을 찾아서
[김성주의 귀농귀촌 이야기]
러스틱 라이프를 추구하는 시대
촌스러운 삶과 여행이 있어보여
요즈음 시골로 향하는 도시 사람들이 확실히 늘었다. 관광지가 아닌 농어촌 말이다. 마을과 농가로 사람들이 몰린다. /게티이미지뱅크
휴가 시즌이 다가왔다. 아무리 폭우가 쏟아지고 폭염이 와서 온 나라가 폭발할 지경이어도 휴가는 가야 한다. 놀자고 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휴가도 걱정이다. 언제 갈지 걱정이고 어디로 갈지 고민이다. 더 고민인 것은 휴가의 콘셉트다. 어떻게 휴가를 보내야 잘 보낸 것일까 고민한다. 휴가에도 콘셉트와 테마가 필요하다.
요즈음 시골로 향하는 도시 사람들이 확실히 늘었다. 관광지가 아닌 농어촌 말이다. 마을과 농가로 사람들이 몰린다. 오지 캠핑장들은 자리가 없다. 으슥한 곳에는 차박하려는 이들이 몰린다. 조그마한 소읍에 맛집이다 싶으면 사람들이 잔뜩 앉아 있다. 요즘 시골 농로에는 카페가 인기가 좋다. 이른바 논이 보인다는 ‘논뷰(view)’ 카페이다.
시골에 가서 한 달 동안 눌러앉아 있겠다는 이들도 많다. ‘한 달 살아보기 프로그램’은 전국에서 다 하고 있다. 수십년 전부터 ‘제발 농촌으로 와 주세요’라고 외칠 때는 그렇게도 무심하더니 지금은 알아서 간다. 시골에 가는 것이 유행이다.
워라밸, 워케이션이라는 단어가 유행이다. 나는 지쳤으니 게으름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책들은 서점에 즐비하다. 지금은 러스틱 라이프(Rustic Life)이다. 지금의 휴가 트렌드는 러스틱 라이프이다.
러스틱은 ‘시골 특유의, 소박한’이라는 뜻으로, 즉 시골 생활이 뜬다는 얘기다. 최근 도시를 완전히 떠나 시골에 자리 잡고 사는 ‘이도향촌離都向村’이 아닌, ‘5도2촌’, ‘4도3촌’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고 있다. 4~5일은 도시에서 생활하고, 2~3일은 시골에서 여행하듯 생활한다는 의미다.
달라지긴 하였다. 예전에는 농촌에 가서 조금만 불편해도 이래서 발전이 안 된다고 역정 내었는데 지금은 농촌에 가서 작은 불편은 참고 조용히 즐기다 가는 분위기가 보인다. 유튜브를 보면 화려한 리조트보다 고즈넉한 시골 영상이 조회 수가 더 많다. 럭셔리한 호텔과 관광지가 주제였던 방송 프로그램도 시골에서 묵묵히 밥을 지어 먹는 프로그램이 더 인기이다.
최근 도시를 완전히 떠나 시골에 자리 잡고 사는 ‘이도향촌離都向村’이 아닌, ‘5도2촌’, ‘4도3촌’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고 있다. 4~5일은 도시에서 생활하고, 2~3일은 시골에서 여행하듯 생활한다는 의미다. /게티이미지뱅크
<바퀴 달린 집>, <해치지 않아>, <안 싸우면 다행이야>, <어쩌다 사장>, <시고르 경양식>, <시골 경찰> 등 힐링 예능 프로그램이 시골 라이프를 내세우며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섬과 산골에서 몸뻬를 입고 구시렁대며 삼시 세끼를 해결하는 모습에 더 열광하며, 이제는 다들 시골 생활에 대한 재미를 솔솔 느끼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농촌에 가서 논만 바라봐도 힐링이 된단다. 시골 밥상은 보기만 해도 건강해질 거란다. 농촌의 촌스러움이 유행을 타니 이제는 촌스러움을 찾아 경험하고, 촌스럽게 직접 살아 보려는 노력들이 보인다. 촌스럽다는 것이 예전처럼 부끄러운 게 아닌 시절이 왔다.
촌스러움을 경험하는 시대가 왔다. 휴가도 촌스럽게 보내고 있다.
촌스럽다라는 것이 뭘까. 낡고 진부한 것? 도시처럼 세련되지 않은 것들을 의미한다. 유행에 뒤처졌거나 무언가 하이 레벨의 규칙이나 프로토콜에 맞지 않았을 때 촌스럽다고 한다.
아주 예전 고등학교 시절. 경양식집에서 스테이크도 아닌 비후까스를 먹을 때면 포크를 왼손에 잡을지 오른손에 잡을지 헷갈렸다. 그러면 앞 자리 친구가 촌스럽다고 면박을 주었다. 대학 시절, 무릎이 튀어 나온 바지를 입고 나오면 촌스럽다고 했다. 여학생이 지나치게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나오면 촌스럽다고 했다. 거기에는 쥐 잡아 먹었냐는 표현이 늘 함께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개성의 표현이라고 한다. 남이야 포크를 왼손에 잡건 오른손에 잡건 상관 안 한다. 무릎이 튀어 나온 바지는 빈티지이다. 붉은 립스틱은 그녀가 좋아하는 색일 뿐이다.
지금 촌스럽다는 의미는 다르다. 도시와 다른 것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도시와 대비하여 상하 우월의 개념보다 수평적인 동등한 개념으로 다가온다. 이제 촌스러움은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나만의 것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2018년 영국의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인 키코 코스타디노브가 동묘 시장의 아재 패션을 보고 영감을 얻어 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코스타디노브는 지난해 동묘 시장을 방문한 뒤 자신의 SNS에 “세계 최고의 거리. 스포티(sporty)함과 캐주얼의 경계를 넘나드는 과감한 믹스 매치 정신”이라고 극찬했다. 실제로 그의 인스타그램을 가 보면 동묘에서 찍은 매우 매우 힙하고 스웨그가 넘친다는 아재 패션이 올려져 있는데 참으로 보기에 가관이다. 가관(可觀)이 아니다. 아름다울 가(佳)를 쓴 가관(佳觀)이다. 스웨그 넘치는 아재 패션은 정말 재미있다.
촌스러움은 단순하다. 그리고 유치하다. 극한의 유치함은 굉장한 웃음을 유발한다. 고도의 계산된 드라마보다 한편의 짤이 더 감동을 주는 것처럼 촌스러움은 대단한 유머 코드이자 엔터테인먼트 소재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놀 때 촌스러움을 추구한다. 그 모습은 여행에서 많이 나타난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에게도 시골은 휴가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가장 세련된 것을 추구하는 세대이지만 시골은 교육과 안전 때문에 높은 순위의 휴가지이다. 시골의 삶을 체험하는 것과 전염병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좋다. /게티이미지뱅크
요즈음 청년들에게는 확실히 시골 여행이 패션이다. 전국의 KTX 열차에는 여행자라고 짐작되는 젊은이들이 일년내내 가득하다. 그들의 모습은 공통점이 있다. 출근하는 듯한 정장을 입고 알록달록한 여행용 트렁크를 밀고 다닌다. 그리고 사진을 많이 찍는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용일 것이다. 여성들끼리 모여 가는 모습이 부쩍 많아졌다. 그들은 하루나 이틀을 묵으면서 요란한 관광지보다는 보기에 예쁜 곳을 찾아 즐긴다. 시끄럽지 않다. 조용히 관조하며 즐긴다. 움직임을 보면 우왕좌왕이 없다. 미리 검색해서 왔기에 많이 와 본 곳인양 거침없이 다닌다. 예쁜 디저트 카페에서부터 골목길, 그리고 논길에서까지 자주 만난다. 그리고 촌스러운 곳을 갈수록 뿌듯함을 느낀다.
청년들은 매우 수줍어한다. 밖에 나오면 술 한잔 먹고 객기를 부릴 법한데 얌전하다. 대신 무언가 주어지면 용기를 낸다. 대학생들 30명과 함께 농촌 연수 활성화 시범사업을 한 적이 있다. 1박2일 동안 입을 유니폼이라고 몸빼 바지를 주었더니 다들 웃으며 금세 갈아입고 나왔다. 몸빼를 입고 밭일을 도와드리고 마을 회의에도 참석했다. 저녁에는 논두렁에서 댄스 파티를 했다. 다른 농가에게 피해를 줄까봐 무선 헤드폰을 하나씩 주고 음악을 틀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몸빼를 입은 청년들이 땀을 흘리며 움찔 움찔대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괴이한 침묵의 댄스파티를 지켜 보던 마을 노인은 경찰에 신고하려 했는데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어서 놔뒀단다.
청년들이 혹시 시골을 간다면 반드시 민박집의 어르신을 찾아 인사를 드리는 게 좋다. 먹을 게 많이 생긴다. 무슨 짓을 해도 용납을 하고 먹을 걸 챙겨 준다. 꿀팁이다. 청년들에게 촌은 패션이자 스웨그이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에게도 시골은 휴가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가장 세련된 것을 추구하는 세대이지만 시골은 교육과 안전 때문에 높은 순위의 휴가지이다. 시골의 삶을 체험하는 것과 전염병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좋다.
중장년층에게는 시골은 과거의 기억이자 현재의 유토피아이다. 촌스러움이야 늘 생활인 세대이다. 아무리 도시 사람이라도 옷장에는 알록달록한 아웃도어 룩이 세 벌은 있다. 등산복이지만 일상 생활에서도 늘 착용한다. 유명 브랜드도 있지만 몇 벌 걸쳐 입어 놓으면 앞서 언급한 동묘 패션과 유사해진다.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면 도시 사람과 농촌 사람 구분이 없어진다. 참고로 헤어 스타일도 같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자연과 생태에 관심이 많다. 나이가 들며 성숙해지는지 자연이 고맙고,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고민한다. 이들에게 산 정상으로 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정상으로 가는 골목과 오솔길에서 발견하는 작은 야생화가 중요하고 날아가는 산새가 소중하고 수풀 속을 다니는 짐승이 경이롭다. 이미 자연을 관찰하고 카메라에 담고 생태계를 즐기는 생태관광은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시골 집을 좋아한다. 봄에 밭을 지나가다 쑥을 발견하면 환호성을 지른다. 그리고 캐간다. 가을에 커다란 호박이 농가 마루에 놓여져 있으면 어머 늙었네라며 탄성을 지른다. 그리고 몹시 갖고 싶어 한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러스틱 라이프가 대세라는데 올 여름 휴가는 러스틱하게 가보자. 촌스럽게 가보자. 촌스러운 여행을 가도 촌스럽지 않고 있어 보이는 시대이니 촌스러움을 즐겨 보자.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출처 여성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