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 잡편(雜篇) - 경상초편(庚桑楚篇)
이 경상초편은 경상초와, 그의 제자 남영주(南榮趎), 남영주와 노자와의 문답을 빌려서 ‘위생지경(衛生之經)’과 ‘지인지덕(至人之德)’을 밝히는 설화가 전반부를 이루고, 여기서는 주로 사려(思慮)를 버리고 시비(是非)를 초월하여 무(无)로 돌아 가라는 것을 말하고 있고 후반부는, <내편>의 소요유편(逍遙遊篇)과, <외편>의 지북유편(知北遊篇)의 주지를 받아 발전한 갖가지 문제에 미치고, 장자의 사상을 총괄적으로, 해설하고 부연하는 논술로 이루어지고 있다. 내용에 있어서 <노자>와 일치하는 어구가 많이 인용되어<노자>와 관계가 깊으며, 그럼으로써 노장사상(老莊思想)이 절충 되어 있음을 엿볼 수가 있다. 송(宋)의 주자(朱子)는 ‘경상초편’은 모두가 선(禪)의 사상과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 나오는 경상초는 항창자(亢倉子) 또는 항상자(亢桑子)라고도 하는 노자의 제자인 도가(道家)이다.<사기(史記)>의 <장주열전(莊周列傳)>에는 항상자(亢桑子) 등은 모두 실제로 없는 인물이라 말하고 있고, <한서(漢書)> 예문지(藝文誌)의 도가조(道家條)에도 그의 이름이 없는 점에서 생각하면 역사적인 인물로서는 그 실제성이 의심스럽다. 현재 전하는 <항창자(亢倉子)>1권은 후일 당(唐)의 왕사원(王士元)의 위작이라고도 한다.
1.<지극한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老聃之役(노담지역) 有庚桑楚者(유경상초자)
노자의 제자중에, 경상초라는 사람이 있었다.
偏得老聃之道(편득노담지도) 以北居畏壘之山(이북거외루지산)
노자의 도를 어느 정도 터득하고, 북쪽 외루산에 살고 있었다.
其臣之畵然知者去之(기신지화연지자거지)
그의 하인 중에서 똑똑하고 지혜가 있는 사람들은 그를 떠났고,
其妾之挈然仁者遠之(기첩지설연인자원지)
그의 첩들 중에서 온후하고 어진 사람들은 그를 멀리 했다.
擁腫之與居(옹종지여거) 鞅掌之爲使(앙장지위사)
못난 자들만 그와 함께 살고, 멍청한 자들만 그의 부림을 받았다.
居三年(거삼년) 畏壘大壤(외루대양)
삼 년이 지나자, 외루산 일대에 크게 풍년이 들었다.
畏壘之民相與言曰(외루지민상여언왈)
외루산 일대의 사람들은 서로 얘기했다.
庚桑子之始來(경상자지시래) 吾洒然異之(오주연이지)
“경상초가 처음 왔을 때, 우리는 놀라며 그를 이상히 여겼었다.
今吾日計之而不足(금오일계지이부족)
나날이 그가 한 일을 헤아려보면 별 것이 아닌데,
歲計之而有餘(세계지이여유)
일년을 두고 따져보니 큰일을 해 놓았다.
庶幾其聖人乎(서기기성인호)
아마도 그는 성인일 것이다.
子胡不相與尸而祝之(자호불상여시이축지) 社而稷之乎(사이직지호)
우리가 어찌 그 분을 윗자리에 앉혀놓고, 임금으로 모시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庚桑子聞之(경상자문지) 南面而不釋然(남면이불석연)
경상초는 그 얘기를 듣고, 남쪽으로 앉은 채 떨떠름한 표정을 짖고 있었다.
弟子異之(제자이지) 庚桑子曰(경상자왈)
제자들이 이상히 생각하여 그 이유를 물으니, 경상초가 말했다.
弟子何異乎予(제자하이호여)
“너희들은 내가 이상하게 보이느냐?
夫春氣發而百草生(부춘기발이백초생) 正得秋而萬寶成(정득추이만보성)
무릇 봄기운이 퍼지면 온갖 초목이 싹트고, 가을이 되면 모든 열매가 익는다.
夫春與秋(부춘여추) 豈无得而然哉(개무득이연재)
봄이나 가을에,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느냐?
天道已行矣(천도이행의)
그것은 자연의 도에 의하여 그렇게 운행되고 있는 것이다.
吾聞至人(오문지인) 尸居環堵之室(시거환도지실)
내가 듣기로 지극한 사람은, 작은 방안에 조용히 숨어 살고,
而百姓猖狂不知所如往(이백성창광부지소여왕)
백성들은 멋대로 날뛰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했다.
今以畏壘之細民(금이외루지세민)
그런데 지금 이곳 사람들이,
而竊竊焉欲俎豆予(이절절언욕조두여)
마음 속으로 나를 어진 사람으로 떠받들려 하고 있다.
于賢人之間(우현인지간)
그러니 나는 스스로를 내세우는 사람이 된 것이다.
我其杓之人邪(아기표지인야)
그래서 나는 노자의 말에 어긋나게 된 것이므로,
吾是以不釋於老聃之言(오시이불석어로담지언)
나는 이것을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2.<인위적인 일이나 작은 이익을 추구하지 말라>
庚桑楚弟子曰(경상초제자왈)
경상초의 제자가 말했다.
不然(불연) 夫尋常之溝(부심상지구)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보통의 작은 도랑에서는,
巨魚无所還其體(거어무소환기체)
큰 고기는 그의 몸을 돌릴 수가 없지만,
而鯢鰌爲之制(이예추위지제)
송사리나 미꾸라지는 거기에서도 그의 몸을 마음대로 움직입니다.
步仞之丘(보인지구) 巨獸无所隱其軀(거수무소은기구)
한길 높이의 언덕에서는, 큰 짐승들은 그의 몸을 감출 곳이 없지만,
而嬖狐爲之祥(이폐고위지상)
여우는 그곳에서도 신출귀몰합니다.
且夫尊賢授能(차부존현수능)
또한 현명한 사람을 존경하고 능력 있는 사람에게 벼슬을 주며,
先善與利(선선여리) 自古堯舜以然(자고요순이연)
착한 것과 이로운 것을 앞세우는 것은, 요순 시대에도 그랬습니다.
而況畏壘之民乎(이황외루지민호)
그러니 하물며 외루산 지방의 백성들이야 그렇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夫子亦聽矣(부자역청의)
선생님께서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십시오”
庚桑子曰(경상자왈)
경상초가 말했다.
小子來(소자래) 夫函車之獸(부함거지수)
“아이야 이리 오너라, 무릇 수레를 한 입에 삼킬 만큼 큰 짐승이라 하더라도,
介而離山(개이리산) 則不免於罔罟之患(즉불면어망고지환)
홀로 떨어져 산에서 벗어나게 되면, 그물과 올가미의 재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呑舟之魚(탄주지어)
배를 삼킬 만큼 큰 물고기라 하더라도,
碭而失水(탕이실수)
뛰어 올랐다가 잘못하여 물 밖으로 나오게 되면,
則蟻能苦之(즉루능고지)
작은 개미들이라 하더라도 그를 괴롭히게 된다.
故鳥獸不厭高(고조수불염고)
그러므로 새와 짐승들은 높은 곳을 싫어하지 않고,
魚鼈不厭深(어별불염심)
고기와 자라들은 깊은 곳을 싫어하지 않는 것이다.
夫全其形生之人(부전기형생지인)
그처럼 그의 육체와 생명을 완전히 하는 사람들은,
藏其身也(장기신야) 不厭深眇而已矣(불염심묘이이의)
그의 몸을 숨김에 있어서, 깊고 먼 것을 싫어하지 않는 법이다.
且夫二子者(차부이자자) 又何足以稱揚哉(우하족이칭양재)
또한 요순 같은 사람들에게, 칭찬할 만한 점이 어디 있느냐?
是其於辯也(시기어변야)
그들의 자신들의 이론으로써,
將妄鑿垣牆而殖蓬蒿也(장망착원장이식봉호야)
함부로 집의 담을 뚫게 하고 그 안에 쑥대를 무성하게 만든 것과 같다.
簡髮而櫛(간발이즐)
그들은 머리칼을 한올한올 골라가며 빗질을 하고,
數米而炊(수미이취)
쌀알을 세어가며 밥을 짓는 것과 같은 일을 했다.
竊竊乎又何足以濟世哉(절절호우하족이제세재)
그런 작은 일에 얽매어서야 어찌 세상을 구제할 수 있겠느냐?
擧賢則民相軋(거현즉민상알)
현명한 사람들을 등용하면 백성들이 서로 다투게 되고,
任知則民相盜(임지즉민상도) 之數物者(지수물자)
지혜 있는 사람에게 벼슬을 주면, 백성들은 서로 도둑질을 하게 된다.
不足以厚民(부족이후민)
이런 몇 가지 일로는 백성들을 돈후하게 해줄 수가 없는 것이다.
民之於利甚勤(민지어리심근)
그런 방법은 백성들에게 이익을 열심히 추구하게 하여,
子有殺父(자유살부)
자식 중에서 아버지를 죽이는 자가 생겨나고,
臣有殺君(신유살군)
신하 중에서는 임금을 죽이는 자가 생겨나게 만들 것이다.
正晝爲盜(정주위도)
대낮에 도둑질을 하고,
日中穴阫(일중혈배)
한낮에 남의 담을 뚫고 들어가는 일이 생기게 만들 것이다.
吾語女(오어여) 大亂之本(대란지본)
내가 너에게 말하듯이, 큰 혼란의 근본은,
必生於堯舜之間(필생어요순지간)
틀림없이 요순시대에 생겨났던 것이다.
其末存乎千世之後(기말존호천세지후)
그런 것은 결국 천세 뒤까지 존속하게 될 것이다.
千世之後(천세지후)
그러면 천세 뒤에는,
其必有人與人相食者也(기필유인여인상식자야)
반드시 사람과 사람이 서로 잡아 먹는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3.<마음을 번거롭게 쓰지 말아라>
南榮趎蹴然正坐曰(남영주축연정좌왈)
경상초의 제자 남영주가 크게 감동하여 자리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若趎之年者已長矣(약주지년자이장의), 將惡乎託業以及此言邪(장오호탁업이급차언야)
“저처럼 이미 나이가 든 사람은, 어떻게 수양을 해야 말씀하신 것처럼 될 수 있겠습니까?”
庚桑子曰(경상자왈)
경상초가 말했다.
全汝形(전여형), 抱汝生无使汝思慮營營(포여생무사여사려영영). 若此三年(약차삼년) 則可以及此言矣(즉가이급차언의)
“자신의 육체를 완전히 하고 자신의 삶을 보전하며, 자신의 생각을 이리저리 쓰지 마십시오. 그렇게 삼 년만 지내면, 내가 말한 것처럼 될 수 있을 것입니다”
南榮趎曰(남영주왈)
남영주가 말했다.
目之與形(목지여형), 吾不知其異也(오부지기이야), 而盲者不能自見(이맹자불능자견) 耳之與形(이지여형), 吾不知其異也(오부지기이야) 而聲者不能自聞(이성자불능자문)
“눈의 형체를 두고 말하자면, 제가 보기에는 장님도 우리와 다를 바 없지만, 장님은 보지 못합니다. 귀의 형체를 두고 말하자면, 제가 보기에는 귀머거리도 우리와 다를 바 없지만, 귀머거리는 듣지 못합니다.
心之與形(심지여형), 吾不知其異也(오부지기이야), 而狂者不能自得(이광자불능자득)
마음의 형체를 두고 말하자면, 제가 보기에는 미친 사람도 우리와 다를 바가 없지만, 미친 사람은 바른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形之與形亦辟矣(형지여형역피의) 而物或間之邪(이물혹간지야) 欲相求而不能相得(욕상구이불능상득)
형체와 형체들은 서로 비슷합니다. 그런데도 기능에는 차이가 나는 것은 어떤 물건이 그들 사이에 간격을 만들기 때문인 것입니까? 도를 추구해 보려 해도 도를 터득할 수가 없습니다.
今謂趎曰(금위주왈)
지금 제게 말씀하시기를,
全汝形(전여형) 抱汝生(포여생), 勿使汝思慮營營(물사여사려영영), 趎勉聞道耳矣(주면문도이의)
‘형체를 완전히 하고, 삶을보전하며, 생각을 이리저리 쓰지 마라’라고 하셨는데, 저는 억지로 도에 관하여 듣기는 하였지만 겨우 귀에만 들렸을 뿐 마음으로 깨우치지는 못했습니다”
庚桑子曰(경상자왈)
경상초가 말했다.
辭盡矣(사진의)
“말로는 다 설명되었습니다.
奔蜂不能化藿蠋(분봉불능화곽촉)
작은 나나니벌은 큰 벌레를 자기 새끼로 길러내지 못하고,
越鷄不能伏鵠卵(월계불능복곡란)
작은 닭은 큰고니의 알을 부화시키지 못하지만,
魯鷄固能矣(노계고능의)
큰 닭은 그것이 가능하다 했습니다.
鷄之與鷄(계지여계) 其德非不同也(기덕비부동야)
닭과 닭을 놓고 볼 때, 그 덕은 모두가 같습니다.
有能與不能者(유능여불능자)
그런데 한편은 가능하고 한편은 가능하지 못한 것은,
其才固有巨小也(기재고유거소야)
그들의 재능에 본시부터 크고 작은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今吾才小(금오재소) 不足以化子(부족이화자)
지금 나의 재능은 작아서, 당신을 교화시킬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子胡不南見老子(자호불남견로자)
남쪽으로 가서 노자를 만나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4.<지혜나 어짊과 의로움은 자신을 괴롭힌다>
南榮趎贏糧(남영주영량) 七日七夜至老子之所(칠일칠야지노자지소)
남영주가 양식을 챙겨 짊어지고, 칠일 밤낮이 걸려 노자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老子曰(노자왈)
노자가 그에게 말했다.
子自楚之所來乎(자자초지소래호)
“당신은 경상초가 있는 곳에서 오지 않았습니까?”
南榮趎曰(남영주왈)
남영주가 말했다.
唯(유)
“그렇습니다”
老子曰(노자왈)
노자가 말했다.
子何與人偕來之衆也(자하여인해래지중야)
“어째서 함께 온 사람들이 그리도 많습니까?”
南榮趎懼然顧其後(남영주구연고기후)
남영주는 놀라며 그의 뒤를 돌아 보았다.
老子曰(노자왈)
노자가 말했다.
子不知吾所謂乎(자부지오소위호)
“내 말의 뜻을 모르겠습니까?”
南榮趎俯而慙(남영주부이참) 仰而歎曰(앙이탄왈)
남영주는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워 하다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말했다.
今者吾忘吾答(금자오망오답) 因失吾問(인실오문)
“지금 저는 대답할 말을 잊었습니다. 그래서 질문하려던 말도 잊었습니다”
老子曰(노자왈)
노자가 말했다.
何謂也(하위야)
“무슨 뜻입니까?”
南榮趎曰(남영주왈)
남영주가 말했다.
不知乎(부지호) 人謂我朱愚(인위아주우)
“제게 지혜가 없으면, 사람들은 저에게 어리석다고 말할 것이고,
知乎(지호) 反愁我軀(반수아구)
지혜가 많으면, 도리어 저 자신을 괴롭힐 것입니다.
不仁則害人(불인즉해인)
어질지 않으면 곧 남을 해치게 될 것이고,
仁則反愁我身(인즉반수아신)
어질면 도리어 저 자신을 괴롭히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不義則傷彼(불의즉상피)
의롭지 않으면 남에게 해를 가할 것이고,
義則反愁我己(의즉반수아기)
의롭게 하면 도리어 저 자신을 괴롭히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我安逃此而可(아안조차이가)
어떻게 해야 이런 처지를 면할 수 있겠습니까?
此三言者(차삼언자) 趎之所患也(주지소환야)
이 세 가지가, 제가 걱정하는 문제입니다.
顧因楚而問之(고인초이문지)
경상초의 소개로 선생님께 이것을 여쭈려고 왔습니다”
老子曰(노자왈)
노자가 말했다.
向吾見若眉睫之間(향오견약미첩지간)
“좀 전에 나는 당신의 두 눈썹 사이를 보고 당신의 문제를 알았습니다.
吾因以得汝矣(오인이득여의)
당신의 말을 듣고 나의 추측이 확실하게 되었습니다.
今汝又言而信之(금여우언이신지)
당신은 골똘히 앉아서 고민하기를,
若規規然若喪父母(약규규연약상부모)
자기 부모를 여읜 것처럼 하고,
揭竿而求諸海也(게간이구제해야)
장대를 들고서 바다 깊이를 재려는 사람처럼 하고 있습니다.
女亡人哉(여망인재) 惘惘乎(망망호)
당신은 자기 본성을 잃은 사람입니다. 멍하니,
汝欲反汝情性而无由入(여욕반여정성이무유입)
당신은 당신의 성정으로 되돌아 가려고 하지만 어떻게 할지를 모르고 있으니,
可憐哉(가련재)
참으로 안되었습니다”
5.<자아를 버리고 어린 아이처럼 되어라>
南榮趎請入就舍(남영주청입취사)
남영주는 노자 밑에 머물기를 자청하여,
召其所好(소기소호)
그가 좋다고 생각하는 도덕을 추구하고,
去其所惡(거기소악)
자기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버리자,
十日自愁(십일자수) 復見老子(복견노자)
열흘만에 근심이 멎었다. 그리고 나서 노자를 만나니,
老子曰(노자왈)
노자가 말했다.
汝自酒濯(여자주탁)
“당신은 스스로의 마음을 깨끗이 씻어서,
熟哉鬱鬱乎(숙재울울호)
푹 익은 기운이 서리어 있는 듯하군요.
然而其中津津乎猶有惡也(연이기중진진호유유악야)
그러나 아직도 마음속에 얼마간의 악한 기운이 남아 있는 듯합니다.
夫外韄者不可繁而捉(부외획자불가번이착)
밖의 일에 마음이 얽매어 있는 자는 마음이 번거로워 자제를 할 수 없을 것이니,
將內揵(장내건)
안으로 마음의 작용을 닫아 놓아야 합니다.
內韄者不可繆而捉(내획자불가무이착)
자기 안의 마음에 얽매어 있는 사람은 생각이 뒤엉키어 자제를 할 수 없을 것이니,
將外揵(장외건)
밖으로 보고 듣는 것을 닫아 버려야 합니다.
外內韄者(외내획자) 道德不能持(도덕불능지)
밖이나 안으로 얽매여 있는 자는, 도덕을 지닐 수 없을 것입니다.
而況放道而行者乎(이황방도이행자호)
그러니 어찌 위대한 도를 따라 행동할 수 있겠습니까?”
南榮趎曰(남영주왈)
남영주가 말했다.
里人有病(이인유병) 里人問之(이인문지)
“마을 사람이 병들어, 다른 마을 사람이 문병을 갔을 때,
病者能言其病(병자능언기병)
앓고 있는 사람이 그의 병에 대하여 얘기할 수 있다면,
然其病病者(연기병병자) 猶未病也(유미병야)
그의 병은 아직 대단한 병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若趎之聞大道(약주지문대도)
그런데 제가 선생님께 위대한 도에 대하여 듣는다는 것은,
譬猶飮藥以加病也(비유음약이가병야)
비유를 하자면 마치 약을 먹음으로써 병을 도지게 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趎願聞衛生之經而已矣(주원문위생지경이이의)
저는 삶을 보양하는 방법에 대하여 듣고 싶을 따름입니다”
老子曰(노자왈)
노자가 말했다.
衛生之經(위생지경) 能抱一乎(능포일호)
“삶을 보양하는 방법이란, 위대한 도 하나를 지니는 것이며,
能勿失乎(능물실호)
자기 본성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能无卜筮而知吉凶乎(능무복서이지길흉호)
점치는 것에 의하여 자기의 길흉을 판단하려 들지 않아야 하고,
能止乎(능지호) 能已乎(능이호)
자기 분수를 지킬 줄 알아야 하고, 인위적인 행위를 그만둘 수 있어야 합니다.
能舍諸人而求諸己乎(능사제인이구제기호)
남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자기를 충실히 지닐 수 있어야 합니다.
能翛然乎(능소연호) 能侗然乎(능통연호)
행동은 자연스러워야 하고, 마음은 거리낌이 없어야 하고,
能兒子乎(능아자호)
아이처럼 순진할 수 있어야 합니다.
兒子終日嗥而嗌不嗄(아자종일호이익불사)
아이는 하루 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데,
和之至也(화지지야)
그것은 지극히 자연과 조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終日握而手不掜(종일악이수불예)
또 하루 종일 주먹을 쥐고 있어도 손이 저리지 않는데,
共其德也(공기덕야)
그것은 자연의 덕과 일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終日視而目不瞚(종일시이목불순)
하루 종일 보면서도 눈을 깜빡이지 않는데,
偏不在外也(편부재외야)
밖의 물건에 대하여 치우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行不知所之(행부지소지) 居不知所爲(거부지소위)
길을 가도 가는 곳을 알지 못하고, 앉아 있어도 할 일을 알지 못합니다.
與物委蛇(여물위사) 而同其波(이동기파)
밖의 물건에 순응하고, 자연의 물결에 자신을 맡깁니다.
是衛生之經已(시위생지경이)
이것이 삶을 보양하는 방법입니다”
南榮趎曰(남영주왈)
남영주가 말했다.
然則是至人之德已乎(연즉시지인지덕이호)
“그렇다면 이것이 지극한 사람의 덕이라는 것입니까?”
曰(왈)
노자가 말했다.
非也(비야)
“그렇지 않습니다.
是乃所謂氷解凍釋者(시내소위빙해동석자)
이것이 바로 이른바 어름이 풀려 물로 되돌아가는 것과 같은,
能乎(능호)
상태를 얘기한 것입니다.
夫至人者(부지인자) 相與交食乎(상여교식호)
지인이란, 사람들과 더불어 땅 위에 함께 어울려 살고,
地而交樂乎天(지이교락호천)
자연을 함께 즐기는 사람입니다.
不以人物利害相攖(불이인물리해상영)
사람과 물건이나 이익과 피해 때문에 남과 다투지 않으며,
不相與爲怪(불상여위괴) 不相與爲謀(불상여위모)
남들에 비해 괴상한 짓을 하지도 않고, 어떤 모의도 하지 않고,
不相與爲事(불상여위사)
어떤 일도 이루려 들지 않습니다.
翛然而往(소연이왕) 侗然而來(통연이래)
자연스럽게 갔다가, 아무 거리낌없이 돌아옵니다.
是謂衛生之經已(시위위생지경이)
이것을 삶을 보양하는 방법이라고도 말합니다”
曰(왈)
남영주가 말했다.
然則是至乎(연즉시지호)
“그러면 그것으로 극치에 이른 것이라 할 수 있습니까?”
曰(왈)
노자가 말했다.
未也(미야)
“아직 충분하지 못합니다.
吾固告汝曰(오고고여왈) 能兒子乎(능아자호)
내가 이미 당신에게 얘기하기를, 아이와 같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兒子動不知所爲(아자동부지소위)
아이란 움직이지만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고,
行不知所之(행부지소지)
걷지만 자기가 가는 곳을 알지 못합니다.
身若槁木之枝而心若死灰(신약고목지지이심고사회)
몸은 마른 나무의 가지와 같고, 마음은 식은 재와 같습니다.
若是者(약시자) 禍亦不至(화역부지) 福亦不來(복역불래)
이런 사람에게는, 재난도 닥칠 수 없고, 행복도 찾아올 수 없습니다.
禍福无有(화복무유) 惡有人災也(악유인재야)
재난도 행복도 있지 않은데, 어찌 사람의 재해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6.<태연하고 안정된 마음을 가져야 한다>
宇泰定者(우태정자) 發乎天光(발호천광)
마음이 태연하고 안정되어 있는 사람은, 자연스러운 빛을 발한다.
發乎天光者(발호천광자) 人見其人(인견기인) 物見其物(물견기물)
자연스러운 빛을 발하는 사람은, 진실한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드러낸다.
人有修者(인유수자) 乃今有恒(내금유항)
마음이 닦인 사람은, 언제나 일정한 덕을 지니고 있다.
有恒者(유항자)
일정한 덕을 지닌 사람에게는,
人舍之天助之(인사지천조지)
사람들이 귀의하게 되고 하늘이 그를 돕게 된다.
人之所舍(인지소사) 謂之天民(위지천민)
사람들이 귀의하는 사람을, 천민(天民)이라고 한다.
天之所助(천지소조) 謂之天子(위지천자)
하늘이 도와 주는 사람을, 천자(天子)라고 말한다.
學者(학자) 學其所不能學也(학기소불능학야)
학자란, 그가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우려 한다.
行者(행자) 行其所不能行也(행기소불능행야)
일을 실행하는 사람은, 그가 실행할 수 없는 것을 실행하려 한다.
辯者(변자) 辯其所不能辯也(변기소불능변야)
이론가는 그가 이론으로 밝힐 수 없는 것들을 논하려 한다.
知止乎其所不能知(지지호기소불능지) 至矣(지의)
그가 알 수 없는 경지에 처신할 줄 안다면, 그것이 지극한 앎인 것이다.
若有不卽是者(약유불즉시자) 天鈞敗之(천균패지)
만약 이러한 경지에 처신하지 못한다면, 자연의 도를 무너뜨리는 결과가 될 것이다.
7.<외물에 의해 마음이 어지럽지 않아야 한다>
備物以將形(비물이장형)
물건의 변화에 대비함으로써 형체를 기리고,
藏不虞以生心(장불우이생심)
물러나 잡된 생각을 하지 않음으로써 자기 마음을 살리며,
敬中以達彼(경중이달피)
자기 속에 지닌 성정을 공경히 함으로써 밖의 변화에 통달해야 한다.
若是而萬惡至者(약시이만악지자)
그렇게 하는데도 갖가지 악한 일이 닥치는 것은,
皆天也(개천야) 而非人也(이비인야)
모두가 천명일 뿐, 사람 탓이 아니다.
不足以滑成(부족이활성)
그러므로 그런 것으로 안정된 마음을 어지럽힐 것은 못 되며,
不可內於靈臺(불가내어령대)
자기 마음속에 그 불행이 끼여들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靈臺者有持(영대자유지)
마음이란 지탱하는 것이 있는데,
而不知其所持(이부지기소지)
그것을 지탱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므로,
而不可持者也(이불가지자야)
자기 자신이 지탱할 수는 없는 것이다.
不見其誠己而發(불견기성기이발)
그 자신의 마음을 정성 되게 하기도 전에 행동을 한다면,
每發而不當(매발이부당)
행동을 할 때마다 자연의 도에 어긋나게 될 것이다.
業入而不舍(업입이불사)
밖으로부터의 작용이 그의 마음에 끼여 들어 와도 그 작용을 버리지 않는다면,
每更爲失(매경위실)
언제나 자기의 본연을 잃게 될 것이다.
爲不善乎顯明之中者(위불선호현명지중자)
선하지 않은 짓을 여러 사람들이 똑똑히 보는 가운데서 행한다면,
人得而誅之(인득이주지)
사람들이 그를 잡아 처벌할 것이다.
爲不善乎幽闇之中者(위불선호유암지중자)
선하지 않은 행동을 아무도 보지 않는 어두운 가운데서 행한다면,
鬼得而誅之(귀득이주지)
귀신이 그를 잡아 처벌할 것이다.
明乎人(명호인) 明乎鬼者(명호귀자)
사람들에 대하여 분명하고, 귀신에 대하여도 분명하게 된,
然後能獨行(연후능독행)
후에야 독자적으로 도에 알맞은 행동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券內者(권내자) 行乎无名(행호무명)
자기 내부에 대하여 충실한 사람은, 이름을 바라지 않는 행동을 실천할 것이고,
券外者(권외자) 志乎期費(지호기비)
외부에 대하여 추구하는 사람은, 재물을 추구하려는 뜻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行乎无名者(행호무명자) 唯庸有光(유용유광)
무명을 실천하는 사람은, 언제나 변함 없는 빛이 있을 것이다.
志乎期費者(지호기비자) 唯賈人也(유가인야)
재물을 추구하는 데 뜻을 둔 사람은, 장사꾼과 같이 될 것이다.
人見其跂(인견기지)
사람들은 그가 발돋움하여 자신을 크게 보이려 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데도,
猶之魁然(유지괴연)
자신은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與物窮者(여물궁자) 物入焉(물입언)
물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추구하는 사람은, 물건이 그의 마음에 끼여들게 된다.
與物且者(여물차자) 其身之不能容(기신지불능용)
물건에 대하여 구차한 사람은, 그 자신도 용납될 수 없을 것인데,
焉能容人(언능용인)
어떻게 남을 용납할 수가 있겠는가?
不能容人者无親(불능용인자무친)
남을 용납할 수 없는 자는 친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无親者盡人(무친자진인)
친한 사람이 없는 자는 남과 아무 관계도 없게 될 것이다.
兵莫憯於志(병막참어지)
무기도 뜻을 상하게 하는 것처럼 예리한 손상을 끼치지는 못한다.
鏌鎁爲下(막야위하)
막야 같은 명검도 뜻을 손상시키기에는 무딘 것이다.
寇莫大於陰陽(관막대어음양)
사람의 피해는 음양의 기에 의한 것보다 더 큰 것이 없으니,
无所逃於天地之間(무소도어천지지간)
하늘과 땅 사이에서는 그 재해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非陰陽賊之(비음양적지)
그러나 음양의 기 자체가 해치는 것이 아니라,
心則使之也(심즉사지야)
바로 그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8.<도에 어긋나면 살아 있어도 죽은 것과 같다>
道通(도통) 其分也成也(기분야성야)
도는 만물에 통하면서도, 그 분별을 이룩하기도 한다.
其成也毁也(기성야훼야)
그리고 이루어지는 것도 무너지는 것도 모두 도에 의하여 행하여진다.
所惡乎分者(소악호분자)
다만 분별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其分也以備(기분야이비)
분별됨으로써 모든 것이 자기에게 갖추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所以惡乎備者(소이악호비자)
자기에게 갖추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其有以備(기유이비)
밖에 존재하는 것이 자기에게만 모두 갖추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故出而不反(고출이불반)
그러므로 밖으로만 나가고 자기 본성으로 되돌아오지 않으면,
見其鬼(견기귀)
그는 죽어 귀신이 될 것이다.
出而得(출이득) 是謂得死(시위득사)
밖으로만 나가고도 얻는 것이 있다면, 바로 죽음을 얻는다고 할 수 있다.
滅而有實(멸이유실)
이미 그의 본성이 멸망되었다면 실제로 살고 있어도,
鬼之一也(귀지일야)
이미 죽어 귀신이 되어 있는 것과 같다.
以有形者象无形者而定矣(이유형자상무형자이정의)
형체가 있는 몸으로써 형체가 없는 도를 본받아야만 안정되게 되는 것이다.
出无本(출무본)
만물이 태어나지만 그 근본은 없는 것이며,
入无竅(입무본)
이승을 떠나는 것도 들어가는 구멍이 있는 것이 아니다.
有實而无乎處(유실이무호처)
존재하고는 있지만 차지할 장소는 무한하고,
有長而无乎本剽(유장이무호본표)
영원히 존재하여 시작과 끝이 없는 것이다.
有所出而無竅者有實(유소출이무규자유실)
태어나기는 하지만 들어갈 구멍이 없기 때문에 존재가 있는 것이다.
有實而无乎處者(유실이무호처자)
존재는 하고 있지만 차지할 장소는 무한하다는 것은,
宇也(우야)
상하사방의 공간을 뜻한다.
有長而无本剽者(유장이무본표자)
영원히 존재하며 시작과 끝이 없다는 것은,
宙也(주야)
예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시간을 뜻한다.
有乎生(유호생) 有乎死(유호사)
도는 삶에도 작용하고, 죽음에도 작용하며,
有乎出(유호출) 有乎入(유호입)
생겨나는 데도 작용하고, 없어져버리는 데도 작용한다.
入出而无見其形(입출이무견기형)
없어지고 생겨나게 하면서도 그 형체는 드러나지 않는데,
是謂天門(시위천문)
이것을 천문(天門)이라 부른다.
天門者(천문자) 无有也(무유야)
천문이란, 존재로서는 무(無)인 것이다.
萬物出乎无有(만물출호무유)
만물은 존재가 무인 데서 생겨난다.
有不能以有爲有(유불능이유위유)
존재는 존재로부터 존재하게 되었다고 할 수 없다.
必出乎无有(필출호무유)
반드시 존재가 무에서 생겨났다고 보아야 한다.
而无有一无有(이무유일무유)
그러나 존재가 무인 것은 한결같이 존재가 무인 것이다.
聖人藏乎是(성인장호시)
성인은 이 경지에 몸을 두고 있는 것이다.
9.<마음이 쉽게 옮겨 다녀서는 안 된다>
古之人(고지인) 其知有所至矣(기지유소지의)
옛날 사람 중에는, 그의 슬기가 지극한 경지에 도달했던 이가 있었다.
惡乎至(악호지)
어느 경지에까지 도달 했었는가 하면,
有以爲未始有物者(유이위미시유물자)
첫째로 처음부터 물건이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한 것이다.
至矣(지의) 盡矣(진의) 弗可以加矣(불가이가의)
이는 지극하고, 완전한 경지여서, 여기에 더 보탤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其次以爲有物矣(기차이위유물의) 將以生爲喪也(장이생위상야)
그 다음으로는 물건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삶을 죽음과 같은 것으로 보고,
以死爲反也(이사위반야)
죽음이란 되돌아 가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是以分已(시이분이)
그러나 이것은 이것과 저것의 분별이 이미 생긴 것이다.
其次曰始无有(기차일시무유) 旣而有生(즉이유생)
그 다음이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뒤에 삶이 있게 되었고,
生俄而死(생아이사) 以无有爲首(이무유위수)
삶도 곧 죽게 된다는 것이다. 존재가 없는 것을 머리로 삼고,
以生爲體(이생위체) 以死爲尻(이사위고)
삶으로써 형체를 삼으며, 죽음을 궁둥이로 삼은 것이다.
孰知有无死生之一守者(숙지유무사생지)
있고 없는 것과 죽음과 삶이 한결같은 도라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吾與之爲友(오여지위우)
자기는 그 사람과 벗이 되겠다는 것이다.
是三者雖異(삼삼자수이) 公族也(공족야)
이 세 종류의 사람들은 비록 차이는 있지만, 같은 왕족이라 할 수 있다.
昭景也(소경야) 著戴也(저대야) 甲氏也(갑씨야)
초나라 왕족인 소씨와 경씨는 성이 다르고, 사는 곳과 집안과,
著封也(저봉야) 非一也(비일야)
봉해진 지명이 다르기는 하지만, 다 같은 왕족이 아닌가?
有生(유생) 암也(암야)
살고 있다는 것은, 먼지가 묻어 있다는 것과 같다.
披然曰移是(피연일이시)
어지러이 바람에 불리는 것을 옮겨감이라 한다.
嘗言移是(상언이시) 非所言也(비소언야)
옮겨감에 대하여 말하여 보려 해도, 이는 말로써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雖然(수연) 不可知者也(불가지자야)
비록 이렇게 말은 하지만, 그것을 알 수가 없는 일인 것이다.
臘者之有膍胲(납자지유비해)
납제에는 내장과 발톱까지 붙어 있는 소를 제물로 쓰는데,
可散而不可散也(가산이불가산야)
먹지 못할 것들을 떼어 버릴 수도 있지만 완전한 소가 못되기 때문에 떼어 버리면 안 되는 것이다.
觀室者周於寢廟(관실자주어침묘)
집을 구경하는 사람은 정전과 조당을 두루 보았다 하더라도 그 집의 변소까지 가 보아야 완전히 집을 구경한 것이 된다.
又適其偃焉(우적기언언) 爲是擧移是(위시거이시)
이 때문에 옮겨감에 대해서도, 들어 논하는 것이다.
請常言移是(청상언이시) 是以生爲本(시이생위본)
옮겨감에 대하여 다시 논하여 보면, 그것은 자기 삶을 근본으로 삼고,
以知爲師(이지위사) 因以乘是非(인이승시비)
자기 지혜를 스승으로 모시기 때문에, 시비를 따지게 되고,
果有名實(과유명실)
결과적으로 명분과 내용이 있게 되는 것이다.
因以己爲質(인이기위질)
그래서 자기를 위주로 하여,
使人以爲己節(사인이위기절)
남들로 하여금 자기의 명분을 따르게 하려 들게 되는 것이다.
因以死償節(인이사상절)
그 때문에 죽음으로 명분을 보상하게 되는 것이다.
若然者(약연자(약연자) 以用爲知(이용위지)
이러한 사람은, 유용한 것을 슬기롭다 하고,
以不用爲愚(이불용위우)
무용한 것은 어리석다고 한다.
以徹爲名(이철위명) 以窮爲辱(이궁위욕)
뜻이 통하는 것을 명예롭다고 하고, 궁지에 몰리는 것을 욕되다 한다.
移是(이시) 今之人也(금지인야)
옮겨감이란, 지금 사람들의 태도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是蜩與學鳩同於同也(시조여학구동어동야)
이것은 매미와 작은 비둘기가 큰 붕새를 비웃었던 것과 같은 일이다.
10.<지극한 도리는 구별을 초월한다>
蹍市人之足(전시인지족) 則辭以放鷔(즉사이방오)
시장에서 남의 발을 밟으면, 잘못을 사과하지만,
兄則以嫗(형즉이구)
친형의 발을 밟았다면 아이코 하는 정도의 소리를 내며,
大親則已矣(대친즉이의)
아주 친한 사람인 경우에는 아무런 표시도 하지 않는다.
故曰(고왈)
그러므로 말하기를,
至禮有不人(지예유불인)
‘지극한 예는 자기와 남의 구별을 인정하지 않고,
至義不物(지의불물)
지극한 의로움은 자신과 물건을 구분하지 않고,
至知不謀(지지불모)
지극한 슬기는 꾀하는 일이 없고,
至仁無親(지인무친)
지극한 어짊은 각별히 친한 이가 없고,
至信辟金(지언피금)
지극한 신의는 금전이 개입되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이다.
11.<마음의 혼란을 버리고 도를 터득하는 법>
徹志之勃(철지지발) 解心之謬(해심지류)
뜻의 움직임을 버리고, 마음의 속박을 풀고,
去德之累(거덕지루) 達道之塞(달도지색)
덕을 해치는 것을 제거하고, 도를 막는 물건을 치워버려야만 한다.
貴富顯嚴名利六者(귀부현엄명리육자)
귀하고, 부유하고, 저명하고, 존경받고, 명예를 얻고, 이익을 얻는 여섯 가지는,
勃志也(발지야)
뜻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容動色理氣意六者(용동색리기의육자)
용모와 동작과 얼굴빛과 논리와 기분과 정의(情意) 이 여섯 가지는,
謬心也(유심야)
마음을 속박하는 것이다.
惡欲喜怒哀樂六者(악욕희노애락육자)
악과 욕망과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 이 여섯 가지는,
累德也(누덕야)
덕을 해치는 것이다.
去就取如知能六者(거취취여지능육자)
떠남과 나아감과 취함과 주는 것과 지혜와 능력 이 여섯 가지는,
塞道也(색도야)
도를 막는 것이다.
此四六者不盪胸中則正(차사육자불탕흉중즉정)
이 네 종류의 여섯 가지 것들이 가슴속을 어지럽히지 않으면 그 사람은 올바르게 될 것이다.
正則靜(정즉정) 靜則明(정즉명) 明則虛(명즉허)
올바르게 되면 고요해지고, 고요해지면 분명해지고, 분명해지면 텅 비게 되고,
虛則无爲而无不爲也(허즉무위이무불위야)
텅 비게 되면 무위하면서도 자연의 생성변화에 참여하지 않는 것도 없게 될 것이다.
12.<도와 덕과 본성의 관계>
道者(도자) 德之欽也(덕지흠야)
도라는 것은, 덕이 늘어선 것이다.
生者(생자) 德之光也(덕지광야)
삶이란 것은 덕의 빛인 것이다.
性者(성자) 生之質也(생지질야)
본성이란 것은 삶의 바탕인 것이다.
性之動(성지동) 謂之爲(위지위)
본성이 움직이는 것을 행위라고 말하는데,
爲之僞(위지위) 謂之失(위지실)
행위가 인위적이면 본성을 잃은 것이라 한다.
知者(지자) 接也(접야)
앎이란 물건과의 접촉에서 생겨난다.
知者(지자) 謨也(모야)
앎이란 생각함으로써 이루어진다.
知者之所不知(지자지소부지)
그러나 슬기로운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는 것은,
猶睨也(유예야)
곁눈질로서는 물건의 전체를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動以不得已之謂德(동이부득이지위덕)
행동을 하되 자연을 따라 부득이하게 움직이는 것을 덕이라 말한다.
動而非我之謂治(동이비아지위치)
행동을 하되 자기의 본성을 잃는 일이 없는 것을 다스림이라 말한다.
名相反而實相順也(명상반이실상순야)
명성을 추구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과 반대가 되지만 실제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 된다.
13.<벌레들은 벌레 노릇을 하기에 자연스럽다>
羿工乎中微而拙乎使人無己譽(예공호중미이졸호사인무기예)
명궁이었던 예는 작은 것을 화살로 정확히 맞추기는 잘하였지만, 사람들이 자기를 칭찬하지 않게 하는 일은 잘하지 못했다.
聖人工乎天而拙乎人(성인공호천이졸호인)
성인은 자연스러운 일은 잘하지만 인위적인 일은 잘하지 못한다.
夫工乎天而俍乎人者(부공호천이량호인자)
자연스러운 일에도 뛰어나고 인위적인 일에도 뛰어난 사람은,
唯全人能之(유전인능지)
오직 완전한 사람만이 가능하다.
唯蟲能蟲(유충능충) 唯蟲能天(유충능천)
벌레들은 오직 벌레 노릇을 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울 수가 있는 것이다.
全人惡天(전인악천)
완전한 사람이 자연을 싫어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인위적인 자연을 싫어하는 것이다.
而況吾天乎人乎(이황오천호인호)
그러니 우리처럼 자연과 인위적인 것을 엄연히 구별하는 자들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14.<천하로 새장을 삼으면 도망칠 곳이 없다>
一雀適羿(일작적예) 羿必得之(예필득지)
한 마리 새가 예에게로 날아가면, 예가 그 놈을 쏘아 잡을 수 있겠지만,
威也(위야)
간혹 실패하는 수도 있다.
以天下爲之籠(이천하위지롱)
그러나 천하로써 새장을 삼는다면,
則雀無所逃(즉작무소도)
새들은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게 될 것이다.
是故湯以胞人籠伊尹(시고탕이포인롱이윤)
그러므로 상나라 탕임금은 이윤을 요리사라는 직분으로써 새장에 가두었고,
秦穆公以五羊之皮籠百里奚(진목공이오양지피롱백리해)
진나라 목공은 다섯 장의 양가죽으로 백리해를 새장에 가두었던 것이다.
是故非以其所好籠之而可得者(시고비이기소호롱지이가득자)
이와 같이 그가 좋아하는 것을 미끼로 삼지 않고서는 새장에 가두어 넣을 수가,
無有也(무유야)
없었던 것이다.
15.<고요하고자 하면 마음을 평온히 지녀야 한다>
介者侈畵(개자이화)
다리를 잘리는 형벌을 받은 자가 법도에 구애받지 않는 것은,
外非譽也(외비예야)
밖의 명예 같은 것은 도외시하기 때문이다.
胥靡登高而不懼(서미등고이불구)
죄수들이 높은 곳에 올라가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遺死生也(유사생야)
죽음과 삶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夫復謵不餽而忘人(부복습불궤이망인)
반복하여 공부함으로써 마음속에 부끄러운 것이 없게되면 사람에 대하여 잊게 된다.
忘人(망인) 因以爲天人矣(인이위천인의)
사람에 대해서 잊게 되면, 자연과 합치되는 천인(天人)이 되는 것이다.
故敬之而不喜(고경지이불희) 侮之而不怒者(모지이불노자)
그러므로 그를 공경해도 기뻐하지 않고, 그를 모욕해도 성내지 않는 것은,
唯同乎天和者爲然(유동호천화자위연)
오직 하늘의 조화와 합치된 사람만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出怒不怒(출노불노) 則怒出於不怒矣(즉노출어불노의)
성낼 경우를 당해도 성내지 않으면, 성냄도 성내지 않음으로 귀결되고 만다.
出爲无爲(출위무위) 則爲出於无爲矣(즉위출어무위의)
행동함에 무위하면, 행동은 무위로 귀결되고 만다.
欲靜則平氣(욕정즉평기)
고요하고 싶으면 마음을 평온히 지녀야 한다.
欲神則順心(욕신즉순심)
신명스러워지고 싶으면 마음이 자연에 순응하여야 한다.
有爲也欲當(유위야욕당)
그의 행동이 합당하게 되고 싶으면,
則緣於不得已(즉연어부득이)
자연에 따라 부득이 하게 행동하여야 한다.
不得已之類(부득이지류) 聖人之道(성인지도)
자연에 따라 부득이하게 행동하는 것이, 성인의 도인 것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장자 경상초편으로 마지막입니다.
그 동안 함께 읽어 주셔서 깊은 감사드립니다.
좋은 시간들 되시길 바랍니다.^~^
莊子 雜篇의 경상초편(庚桑楚篇)을
읽어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끝까지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