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 더봄] 평창 송어의 원조 함씨 형제 이야기
[김성주의 귀농귀촌 이야기]
함준식, 함영식 형제의 귀농귀촌 이야기
국내 송어 양식 1호 원복수산 설립·운영
말복이 지났다. 이제 여름이 물러서나 싶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하다.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집의 에어컨이 고장이 나는 날벼락 같은 일을 당하고 나니 시원한 산들바람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에어컨이 고장나니 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 길을 나섰다. 평창이다.
평창은 높은 고원에 자리 잡은 산골 도시다. 아무리 산골이어도 동계 올림픽을 개최한 도시다. 우리 나라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평창에 가 봤을 것이다. 서울에서 고속 열차가 다니니 교통이 편하다.
평창은 귀농귀촌이 일찌감치 자리잡은 곳이다. 1990년대 초반 ‘펜션’이라는 것이 제주도와 함께 평창에 지어졌다. ‘펜션’은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숙박시설로 알고 있지만 ‘펜션’은 프랑스어로 연금이라는 뜻이다. 은퇴자가 연금처럼 펜션이라는 숙박 시설을 통해 소득을 벌어들인다는 의미다. 평창에 펜션 바람이 불었다는 것은 도시에서 평창으로 이주한 은퇴자와 귀농귀촌인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창군은 귀농귀촌인들이 모여 ‘귀농귀촌협의회’를 만들어 잘 운영하고 있다.
필자의 직업상 농업인을 만나 귀농귀촌 하셨나고 물으면 평창에서는 열에 여섯은 그렇다고 답한다. 이번에 만난 사람들도 그랬다. 은행 다니다가 은퇴해서 와 텃밭에서 나물 키우는 사람, 학원 사업을 정리하고 사과 농사를 짓는 사람, 도시에서 하던 사업을 연장해서 평창에서 시공 분야 일을 하는 사람, 직장을 은퇴하고 사과 농사를 시작하는 사람 등 다양했다. 그리고 수십 년에 걸쳐 귀농귀촌한 형제를 만났다. 시작점이 1965년이니 오래되었다. 송어를 양식하는 함준식(83), 함영식(74) 형제다.
원복수산 공구실 문에 '대한민국 송어인 1호 함준식'이란 간판이 걸려 있다. /사진=김성주
평창은 송어로 유명하다. 송어가 유명하게 된 계기는 이곳에서 송어 양식업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함씨 형제는 원복수산이라는 국내 1호의 송어 양식장을 운영하고 있다. 송어 양식의 역사가 함씨 형제의 역사이다.
1960년대 한국의 상황은 식량 증산이 화두였다. 그래서 쌀 개량과 증산이 이루어지고 물고기 중 대형 어종인 송어 양식이 시도되었다. 이때 1965년 부산 수산대(현 부경대학교)를 졸업하고 관련 기관에서 근무하던 함준식 씨가 화천에서 송어 양식을 최초로 시도했다. 미국에서 송어 종란을 들여와 화천댐에서 부화와 증식을 시도한 것이다. 그리고 1969년 평창에서 원복수산을 설립했다.
그는 행정가로서 ‘내수면개발촉진법(1975)’을 입법화하여 송어 양식 사업 활성화에 기여했다. 또 20년 후에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던 함영식 씨가 귀농하여 양식장을 이어 받았다. 원래 강릉 사람이었던 함씨 형제들은 도시에서 활동을 하다가 송어 때문에 평창으로 귀농을 한 것이다. 송어 양식은 내수면 사업이니 정확하게는 ‘귀어귀촌’인 셈이다. 지금은 두 형제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송어를 기르고 있다.
송어 양식을 위해 귀농한 동생 함영식 대표 /사진=김성주
송어 양식을 위해 귀농한 형 함준식 박사 /사진=김성주
송어는 연어과이다. 바다에서 강으로 회귀하는 어종인데 민물에서도 산다. 아예 육봉화된 것은 산천어이다. 낚시로만 잡던 것을 양식으로 키워 많은 이들이 쉽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송어 종란과 양식 기술을 외국에서 들여와 성공한 곳이 원복수산이다. 원복수산은 한국 민물 양식의 역사이다.
평창군 미탄면 원복수산의 송어 양식장 /사진=김성주
미탄면 시가지와 가까운 곳에 원복수산이 있다. 양식장을 관통해 흐르는 물은 석회 동굴에서 흘러 나오기에 차다. 찬 물을 좋아하는 송어를 키우기에는 최고이다. 항상 14도의 온도를 유지하기에 겨울에는 따뜻한 김이 올라온다. 개울가 길을 따라 올라 가면 요즈음 젊은이들에게 핫 플레이스인 ‘육백마지기’ 언덕이 나온다.
양식장의 시설은 최초로 조성되었던 시절 모습을 간직하였다. 양식장 사이로 꽤 높은 크기의 느티나무들이 즐비하다. 양식장의 위쪽에는 알을 낳는 씨 송어들이 자리잡고,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송어들이 크기별로 사각형 풀에서 헤엄을 치고 있다. 물끄러미 송어들이 노는 것을 보니 더위가 사라진다. 기분이 좋아지길래 왜 그런가 했더니 스피커에 ‘슈베르트의 숭어’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독일 가곡 숭어는 송어를 잘못 번역해 우리가 숭어로 알고 있다. 노래 제목이 송어가 맞다.
미탄면에는 원복수산을 비롯한 송어 양식장이 여러 개 있다. 차가운 물 덕분에 송어 양식이 성공하면서 양식업이 지역의 사업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래서 평창군 송어길이라는 도로명도 탄생이 되었다.
송어 판매가 예전같지는 않다고 한다. 워낙 바닷물고기가 잘 잡히고 양식이 되어 팔리고 있고, 노르웨이 연어가 엄청나게 수입이 되니 상대적으로 국산 송어가 외면을 받고 있다고 한다.
마트에서는 송어를 만날 수 없다. 송어를 먹으려면 송어 전문점으로 가야 접할 수 있다. 택배로 양식장의 송어를 받을 수 있지만 선어회가 시간이 지나면 육질이 물러서 맛이 덜해지기에 아쉽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예전보다 매출이 감소하고 있지만 꾸준히 송어 전문 식당으로 납품이 되고 있다. 매출 감소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원복수산은 '송어 어탕'과 '송어 액젓'을 개발하여 판매를 시작하고 있다.
고령의 노인들이 신상품 개발과 마케팅을 지금도 하고 있다. 은퇴는 없단다. 영원한 현역이다. 게다가 동생 함영식 씨는 ‘평창사랑’이라는 관광 주민 사업체를 만들어 평창 관광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뭐라도 상을 만들어서라도 드리고 싶다.
귀농귀촌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 송어 양식이라는 국가사업에 도전하여 평창군 미탄면이라는 촌구석에 온 형제들. 예전에 인간문화재라는 제도가 있었는데 이쯤 되면 이분들에게 ‘귀농귀촌 인간문화재’라도 지정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원복수산은 사시사철 문을 열어 놓고 있으니 귀농귀촌과 내수면 어업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찾아 가면 언제든지 반갑게 맞이한다.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라는 TV 프로그램도 촬영한 곳이라니 나들이로 가볼 만하다.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출처 여성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