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다. 새삼스레 그 날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결혼한 지 서너달쯤 지난 어느날… 남편이 된 옛 친구는 여느 때처럼 출근 준비를 하는데 나는 비몽사몽으로 눈도 뜨지 못했고 그대로 한소끔 더 자고 일어난 후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었다. 온 몸이 사포질을 당한 것처럼 쓰리고 아팠다. 귀도 아프고 목도 붓고 피부도 따끔거리고… 태어나서 그렇게 고통스러운 적은 처음이란 생각이 들었다. 너무 아파서 울음이 그치질 않았다. 나는 웬만한 통증은 소리도 없이 잘 견뎌낸다. 그것이 참을성이 많아서라기 보다는 통증을 느끼는 신경세포가 둔하기때문일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최근에 와서 한 의학보고를 통해 인식하기 시작했다.
쉽게 예를 들자면 나는 둘째를 분만할 때 한번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무통분만 주사를 맞긴 했지만 그렇더라도 자궁입구가 일정 크기만큼 벌어질 때까지 오는 진통을 소리없이 견뎌냈다는 뜻이기 때문에 혹 그 경험이 있는 분들은 내 둔함이 어느 정도 인가를 짐작하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내가 울면서 친정집에 전화를 했다. 아버지는 “이거 큰 일 났구나. 나는 약속이 있어서 곧 나가봐야 하는데 네 어머니는 이미 출타를 하셨고…” 라며 곤란해 하셨다. 나는 정신없이 엄마가 가 계실만한 곳으로 엉엉, 울어대며 전화를 걸었다. 전화할 정신은 있었네,란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웬간하면 혼자서 견뎌내는 내 성격으로 미루어보아 그건 엄청난 아픔의 호소였던 것이다. 결국 서둘러 일을 마치신 아버지가 먼저 오셔서 병원에 갈 채비를 차리는 동안 외출에서 돌아오신 엄마가 이웃 아주머니로부터 말을 전해 듣고 허겁지겁 우리집으로 달려 오셨다. 함께 병원에 가서 이런저런 검사와 주사를 맞고 집에 온 이후였다. 아픈 애를 놔두고 꼭 나갔어야 했느냐는 어머니의 퉁사리가 삐져나와 기어이 두 분은 말다툼을 벌이셨다.
오늘은 결혼 15주년 기념일이다. 그리고 오래 전 그 일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내게 문득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리라. 그 때는 왜 남편한테 전화할 생각을 못했을까? 아마도 마음 한 켠에는 일하러 간 사람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을 테지만 또 다른 두서너 켠으로는 그때만 해도 남편 보다는 부모님을 더 의지했음에 틀림없다. 같이 살 부비고 산 세월이 15년이나 되어서 일까? 그런 과거사가 의아해질 만큼 남편이란 존재는 글쎄… 이제는 좋게 말하면 한 덩어리란(고급스러운 표현은 아니지만) 느낌이고 나쁘게 말하면 아주 만만한 상대가 되어 버렸다. 내 삶이 당신 삶이요, 내 고통과 행복이 당신 일이 된 것이다.
나는 어찌 그리 멋도 없고 무드도 없는 여인인지, 남편이 어라? 달력을 가만히 들여다 보니 내일이 우리 결혼 기념일이네,라고 말했을 때야, 아? 그러고 보니 그러네… 라고 맞장구 쳤고, 낮에 전화에 대고, 일찍 갈게, 우리 둘이 어디 가서 저녁이나 먹을까?라는 남편 말에 아참! 오늘이 우리 결혼기념일이지… 라고 또 잊고 있다가 그렇게 말했다. 용케 생일은 안 까먹고 사네… 혼자 자조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지만 내게는 그런 기념일을 챙기는 달란트도 없을 뿐더러 사실은 삶에는 그 보다 더 중요한 일이 많다는 생각을 한다. 더 중요한 일에 신경을 쓰다보면 그렇지 않은 일은 잊히기 마련이다. 어쨌거나 어디 가서 무얼 먹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일단 집에 와서 이야기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미국서 사는 햇수가 늘어가면서 외식하는 즐거움이 점점 사라진다. 입 맛이 한식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이것도 미국 사는 고충이라면 고충일까? 점점 우리 가족에게 외식은 한식당에서,란 불문율이 생기기 시작했다. 평시 집에서 못 먹던 색다른 한국음식을 먹기위한 것이 우리 가족 외식문화로 정착해 버렸다니 역시 낭만이나 멋하고는 거리가 멀다.
오렌지와 파인애플을 갈아서 샐러드 드레싱을 만들고, 바닥에 무를 깔고 신김치에 꽁치 통조림을 넣고 다싯물을 잘박하게 부어 조려 먹을 생각으로 흘렸던 군침을 포기하려니 영 서운해서 그냥 집에서 먹기로 한다. 바이올린 선생님도 오는 날이니 레슨 끝나면 심야 영화나 보러 가던지… 라고 말하니 남편이 그럼 그럴까,하며 컴퓨터로 뒤적뒤적 영화 프로를 찾았다.
“한국에서는 극장 간다면 놀러 간다는 흥이 생기잖아, 그런데 미국에서는 왜 그렇고 그런 느낌이지?”
내가 꽁치와 김치를 뒤적이며 그렇게 말하자 남편도 그렇지? 라고 정서가 통하는 사람이 되어 동감을 표한다. 나는 부드러운 상추 이파리를 물에 씻으며 생각에 빠진다. 아마도 내 영어가 모자라 상당 부분을 모른 채 넘어가는 탓도 있을 터이고 오징어나, 군밤같이 구미 당기는 스낵 대신 팝콘과 소다를 마셔야 하는 낯설음도 있고, 기왕 나갔는데 극장 주변을 거닐며 거리구경하는 재미도 느낄 수 없고… 그래서 그런가 보다. 차를 타고 쌩하니 극장까지 갔다가 다시 차를 타고 돌아오니 그냥 영화만 보러 꼭 거기까지 가야하나,하는 의문도 생겨서리… 아이들이 ‘King’s Speech’가 재밌다고 흥을 돋아 주었지만 주변에서 상영하는 곳이 없다며 남편은 집에서 그냥 괜찮은 한국 영화나 한편 때리자,라고 말했고 나도 그게 좋겠다, 했다. 참말로 싱거운 부부여라!
그런데 둘 다 별 불만이 없으니 여기서 그동안 서로 익숙해질대로 익숙해 지고 울 둘째의 발음대로라면 별꼴의 반쭉이야,라며 흉보던 점마저 닮아가는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다. 멋진 식당을 예약했느니 안 했느니, 선물을 준비했느니 안 했느니, 무드와 낭만은 엿을 바꿔 먹었다느니… 하는 실갱이 없이 이러자, 하면, 응, 저러자, 하니, 그러자… 하는 이 익숙함!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이질감 없는 평온을 좋아한다. 대할 때마다 가슴이 콩닥대는 멋진 남성인 남편보다 그냥 츄리닝처럼 편한 반려자가 더 좋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능숙한 내 나라말 제쳐두고 어줍게 영어를 써야하는 환경, 같아질래야 같아질 수 없는 문화와 정서로 밖에서는 긴장을 하기 마련이니 집 안에라도 이런 편안함쯤 누려야 마땅한 것이 또 미국생활 아닐라나?^*^
멋진 레스토랑에서 와인잔을 부딪는 낭만이나 콩알만한 다이아를 건네 받는 화려함 못지않게, 이심전심 통하는 공감을 부여안고 15년동안 서로 적응하느라 울퉁불퉁 다져온 부부의 발자취를 묵묵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이 순간이 그래서 감사했다. 이제 진정 눈 빛 하나로 마음이 통할 수만 있다면… 싱거운 날, 결코 싱겁지 않은 바람을 가져보지만 너무 큰 욕심일지도… 사람은 지족(知足)해야 행복한 법이려니… 매운 싸움없이 그냥 이렇게 싱겁게 사는 것도 감사한 일이지, 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