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가 말하는 천재 흔히들 ‘우리나라가 낳은 천재’ 1순위로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씨, 음악계의 서 태지, 그리고 농구 천재 허재..정도로 꼽는다. 보통 ‘천재’ 라는 표현은, ‘태어 날 때부터 아주 탁월한 재능을 갖고 태어난 사람’을 일컬어 쓰여진다. 공식적인 해 설은 이렇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볼 때, 천재란, ‘어린 나이’에 어른들도 잘 하 지 못하는 일들을 척척 해 낼 때, ‘쟤, 천재 아냐?’ 라는 말을 쓰곤 한다. 또 한 가지 필자가 통상적으로 ‘천재’란 말을 붙이는 경우는, ‘누가 봐도 맡은 일을 정 말 기 막히게 변함없이 잘할 때’ 그런 표현을 사용한다. 다소 세련되지 못하고 전 문용어가 부족하다 싶은 ‘정의’지만, 누가 보더라도 지극히 자연스럽고 ‘서민적’ 인 해석이라고 본다. 하지만, 허재의 농구를 보면서, 무작정 태어날 때부터 무슨 `농구 신의 기’를 받아, 옹알이도 하기 전에 자유투를 던졌을 정도로 ‘선천적인 재 능’을 타고난 ‘천재’라고 단정짓기 조차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는 그의 ‘천재 성’에 버금가는 ‘노력’을 쏟아 부은 선수이기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소위 ‘천재급’ 아니, ‘신이 내린 재능’을 발휘한다는 여러 분야의 ‘천재’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 다 보면, 그들의 ‘선천적인 자질’ 보다는 ‘후천적 훈련’이 그들을 훗날 ‘천재’로 평가 받게 하는데 더욱 더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자, 그럼 후추는 허재를 왜 천재라고 부르는 것일까…? 허재 본인은 자신의 ‘천재성 은 40%, 노력은 60% 정도로 본다,’ 라고 밝힌 바 있다. 그가 말하는 ‘천재성’은 아마도 위에서 언급한 그 두 가지 이유 때문이 아닌가 싶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허재는 어려 서부터 농구를 워낙 잘했다. 천재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부분이다. 또, 허재는 워낙 오랫동안 농구를 잘해왔다. 역시, 천재라는 표현이 부적합하지 않 는 부분이다. 과연 얼마나 어렸을 적부터 농구를 잘 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오랜 세월동안 한결같이 농구를 잘해왔는지… 다시 말해 그를 왜 ‘농구 천재’라고 부르 는지 한번 되짚어 보자 한마리의 ‘다람쥐’에서 ‘스타 탄생’까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허재는 1974년. 동북국민학교 3학년 때부터 정식으로 농구팀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누구 말대로, ‘젊은 시절 복서의 꿈을 실현하지 못한 아버님의 욕심’ 때문에 ‘반 강제적’으로 시킨 농구도 아니었고, 허재 스스로 공 가지고 놀던 것이 좋아서 자연스럽게 공과 친하게 되었다. 허재가 농구선수가 되었 다는 사실 역시 그의 부친은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동북국민학교 시절부터 이미 허재의 ‘깜짝쇼’는 시작되는 듯 했다. 유치원 때부터 공이란 공은, 찢어질 때까지 가지고 놀던 허재가 농구 코트에서 드리블이니, 뜀박질 이니… 남들보다 못할 이유가 없었다. 1년 동안 동북국민학교에서 농구 선수로 활 약하다가 당시 동북국민학교 농구팀이 해체되면서, 그는 ‘첫 스카우트 파문’에 휩 싸인다. 국민학교 농구 대회에서 ‘펄펄 날던’ 허재를 보고 당시 상명국민학교 농 구팀 코치였던, 이철호 선생님의 ‘레이더’에 포착되고, 상명국민학교로 전학 가는 과정에서 동북국민학교 농구팀이 부활할 지경이 되었으니 말이다 (부친 인터뷰 참조). 당시 나름대로 농구팀이 탄탄했던 상명국민학교로 옮기면서, 그는 다시 ‘정식 선수’ 로 복귀하게 되고, 국민학교 농구 대회에 나가서 반포국민학교를 꺾고, 첫 우승을 기 쁨을 맛보게 된다. ‘한마리의 다람쥐처럼’ 코트를 누비며 우승의 주역이 된다. 난생 처음으로 역전 ‘버저 비터’를 성공 시키면서... 1978년. 허재는 농구 명문 용산 중학교로 진학한다. 당시, 용산 중 농구팀에는 ‘유 재학, 전창진’ 이란 청소년 대표급 선수들이 판을 치고 있었지만, 허재는 곧바로 주 전 가드 자리를 꿰차면서 중학교 1학년 시절의 ‘전승 행진’에 시동을 건다. 그로부터 6년 (용산 중학교 3년, 용산 고등학교 3년) 동안 허재는 ‘용산 신화’를 만들어 간다. 그가 6년간 용산 유니폼을 입고 출전한 대회 전적 요약은 다음과 같다. ●용산 중, 고교시절 대회 전적● 용산중 1학년 전승 용산중 2학년 3관왕 용산중 3학년 전승 용산고 1학년 우승 1회, 준우승 1회, 3위 1회 용산고 2학년 전승 용산고 3학년 전승 고등학교 1학년에 진학하면서 허재의 이름은 만인에게 공개되기 시작하고 고교 농구 를 취재하던 당시 기자들의 입에선 ‘김영기의 묘기, 신동파의 득점력, 그리고 김동 광의 드리블을 모두 갖춘 샛별 탄생’ 이라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이듬해 용산 고는 ‘춘계 연맹전, 종별 선수권, 쌍룡기 쟁탈전’ 등의 전국 대회를 싹쓸이 하며, 고교 농구 최강자의 자리를 확인한다. ‘고2’였던 허재는, 당시 경기 당 평균 25.17점이란 꾸준한 득점력을 과시하고, 리바운드, 어시스트 부문에서도 기존의 그 어떤 가드들이 (대학, 실업 포함) 보여주던 수준과는 월등한 차이가 있었다. 이러면 서 허재는 1982년 9월. 처음으로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게 된다. 10월 필리핀 마 닐라에서 열렸던 제7회 아시아 청소년 농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면서 말이다. 그 때 허재와 함께 대표팀에 발탁된 선수들이 한기범, 김성욱, 김유택..등이었다. 당시 ‘고2 허재’의 플레이를 보고 감탄을 금하지 못하던 농구계 인사들은 이렇게 얘기했다. 농구협회 김세훈 이사 “10년 만에 한번 나올까말까 한 선수!” 용산고 양문의 코치 “신선우 이래 용고 최고의 스타!” 고등학교 3학년에 진학하면서, 용산고는 여전히 전승가도를 달렸고, 허재의 주가는 매 대회마다 ‘상한가’를 쳤다. 팀이 우승하기까지 있어서, 나머지 4명의 동료 선 수들과의 호흡은 필수적지만, 허재가 뛰던 당시 용산고의 농구는 ‘허재로 시작해서, 허재로 끝나는 - 허재의 모노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가 차지하는 팀내 비중은 독보적이었다. 여기서 잠깐 허재의 고3 시절 출전했던 한 경기를 REPLAY 해보자. REPLAY one : 1983년 6월 26일, 대통령기 고교 농구 대회 세월이 지나면 많은 것이 변하기 마련이지만, 용산 고등학교 3학년 시절 허재의 모습 은 지금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일단 약간은 ‘부시 맨’을 연상케 하는 어정쩡 한 길이의 ‘스포츠 형’ 머리. 눈도 마치 ‘덜 뜬 것’처럼 보여질 정도로 작아 보 였고, 얼굴도 너무나 애띤 모습이었다. 그나마 외관상으로 가장 지금의 허재와 비 슷하게 느껴진 부분은, 그때부터 서서히 울퉁불퉁 해 지기 시작한 그의 팔, 다리 근 육이다. 1983년…. 이 얼마나 오래 전의 얘기란 말인가? 국내 TV 편성표엔 아직도 ‘쇼쇼쇼’가 프라임 타임에 잡혀져 있었고, 아이린 카라의 ‘Flashdance ? What a feeling’과 폴리스의 “Every Breath You Take’가 빌보드 차트의 1-2위를 다투고 있었고, 국내 가요 중에선 조용필의 ‘나는 너 좋아’와 송골매의 ‘그대는 나는’ 정도가 한창 뜨고 있던 시절. 그리고 사회적으론 ‘아웅산 폭탄 테러 사건’이 벌 어 졌던 그 옛날 옛적의 이야기다. 그 1983년, 허재의 농구는 도대체 어느 정도였길 래 연-고대를 비롯한 국내 최고의 대학 팀들이 ‘허재 모시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나? 허재가 재학 중이던 고등학교 3년 동안 용산고는, ‘전 대회 우승’ 이라는 무시 무 시한 ‘대 기록’을 달성하고, 고교 농구의 1인자로 군림하며 ‘막강 용산’의 동문, 재학생들의 어깨에 힘을 불어 넣어주던 팀이었다. 이날 경기의 스타팅 라인업 역시, 지난 3년 간 한솥밥을 먹으며 ‘후암동 농구 신화’를 창출 해 오던 ‘졸업반 3인방’ 이 축이 되었다. 그때 당시에도 약간은 뻣뻣한 자세로 다소 높은 드리블을 치며 돌 진 해 오던 ‘33번 센터 이민형’, 그리고 외곽 슛이 돋보였던 ‘11번 포워드 한만성` 그리고 이때부터 ‘포지션 없이’ 휘 집고 다니던 ‘6번 허재’. 반대로 준결승에 서 맞붙은 ‘농구 명문’ 휘문고에는, ‘못다핀 꽃 한송이 - 9번 이완규’ 그리고 그 후 실업팀에서도 활약한 바 있는 7번 박상수 정도로 구성된 팀이었다. 허재가 이 경기에서 가장 유감없이 그의 실력을 발휘해 준 부분은 2가지 정도로 정리 된다. 첫째는 당시 농구 팬들이 귀 빠지고 처음 목격하게 되는 그의 ‘전천후 플레이’ 이었고, 둘째는 그의 ‘승부 근성’이었다. 경기 종료 2분 전까지 용산고를 리드 해 나가던 휘문고는, 결국 마지막 2분을 지키지 못하고 72-71로 무릎을 꿇는다. 남 들보다 큰 키로 가드를 보던 허재는, 경기 내내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그 자 체였다. 용산고가 속공할 때 시작되는 ‘아웃랫 패스’는 항상 허재의 손끝에서 시 작되었고, 그런 속공 플레이를 끝내주는 역할 역시 10번 중에 반은 허재의 몫이었다. 그때부터 돋보였던 그의 ‘낮은 드리블’로 상대 수비진을 파 헤치고 골 밑까지 쳐 들어가, 레이업 슛 대신 더블 클러치한 상태에서 외곽으로 다시 내 주는 현란한 골 밑 플레이, 리바운드 찬스마다 몸을 내 던지는 그의 볼 집착력, 중앙에서 상대 팀 의 센터를 달고 두번, 세번의 페인트 모션을 거듭한 후에 ‘얹어 놓는’ 골밑 슛… 세련미만 조금 떨어졌지, 그때나 지금이나 그의 플레이엔 큰 변화가 없는 듯할 정도 다. 정확히 16년 전, 1983년도에 허재의 농구가 이랬다. 허재를 마크하던 ‘휘문 의 자존심 이완규’ 역시, 팀의 막판 스퍼트가 절실했던 종료 5분을 남기고 5반칙 퇴 장 당하고, 2분을 남기고 터진 용산의 역전포도 허재가 찾아낸 ‘오픈 맨’이 성공시 킨 깨끗한 외곽슛이었다. 키로 보면 분명히 4번 포워드나 5번 센터를 뛸 선수였지만 , 그의 플레이를 보면 정말 어디에 놓아야 할지 갈등을 때리게 했던 허재였다. 그가 우리 농구 팬들에게 보여준 ‘新 농구’의 핵심은 바로 그런 그의 ‘다 기능성’이 있다. 그전까진 그 어떤 국내 스타도 이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더욱이 재미있 는 부분은 언론에서도, 허재의 고등학교 3학년 시절 플레이를 보고, 당시 국가대표 농구 팀 포인트 가드를 보던 박수교 (현 기아 감독) 선수와 ‘직접 비교’를 했다는 점이다. 그 기사의 결론은 물론 허재의 손을 들어 주면서 말이다. 이미 그가 고등 학교 다닐 때부터 허재는 ‘리바운드 잡는 가드’였고, ‘드리블로 뚫고 나가 는 센 터’, 한마디로 ‘만능 선수’였다. 용산과 휘문의 ‘결승전 같았던 준결승전’에서의 마지막 1분은동안 허재는 자신의 탁월한 ‘승부 근성’을 단적으로 과시한다. 1점차로 리드를 넘겨 준 휘문의 ‘올코 트프래스’ 수비를 상대로, 제일 먼저 공을 찾는 사람도 바로 허재다. 상대 진영 하프 코트의 ‘4 모서리’를 골고루 휘젓고 다니며 환상적인 드리블로 수비수를 따돌 리는 허재의 모습을 보면서, 도저히 80년대 초 한국 고교생의 실력이라고는 믿을 수 가 없었다. 파울로 끊는다는 일념으로 달려 드는 상대 수비수들을 ‘환영’이라도 하듯, 허재는 인 바운드 되는 공마다 그의 손으로 잡는다. 그런 긴박한 상황에서 결국 자유투를 쏘게 될 것이라는 것은 ‘기정 사실’이었고, 고등학생 신분으로 그 런 긴박한 순간을 ‘일부러’ 즐길 리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허재는 마지막 순 간까지 공을 원한다. 더 흥미로운 점은, 그가 ‘작정하고’ 드리블 치고 다니는 걸 그 아무도 파울로도 못 끊는다는 사실이다. 항상 하는 얘기지만, ‘농구 천재’와 ‘단순히 잘 하는 선수’와의 차이점은 바로 이런 순간에 극명하게 구분된다. ‘내 손으로 끝을 보기 원하는 선수’와 ‘끝은 다른 사람이 해 주길 원하는 선수’로 말 이다. 허재에 대한 극찬은 새롭지 않다. 하지만, 그의 고교 시절 플레이를 보면서 가장 눈에 띄는 특성은 바로 그의 기술적, 그리고 정신적 ‘스타 기질’이었다. 그런 ‘스 타 기질’이 그를 어려 서부터 ‘이기게끔’ 도와 주었고, 그렇게 어려 서부터 항상 잘하고 이기다 보니, 그의 이름 앞에는 자연스럽게 ‘천재’라는 단어가 붙게 된다. 하지만, 누군가 얘기 했지만, 그는 만능선수가 되기 위해서 대학, 실업 팀 선배들의 플레이를 본 따려고 수 없는 반복을 거듭 하였고, 비틀거리는 상대방에게 ‘마지막 한방’을 날리는 선수가 되기 위하여 아버지와 코치 선생의 혹독한 ‘정신력 훈련’ 을 달게 치렀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로부터 15년 후까지 ‘농구 대통령 허재’로 굳건히 남아 있을 것이라고 감히 예상하는 사람은 드물었을 것이다. 당시 그의 플 레이를 보면서 고등학생의 플레이라고 믿었던 사람이 드물었던 것처럼 말이다. ‘초록색 피가 흐르고 있는 허재’ ‘애 아빠’를 놓고 ‘야, 저 사람 정말 천재다!’ 하고 부르는 일은 흔치 않다. 그 만큼 ‘천재’라는 호칭은 나이 들은 사람에겐 왠지 어색한 느낌을 준다. 그렇 지만 분명 예외는 있다. 그런 ‘특별 케이스’로 해당되는 사람들에겐 공통점이 있 다. 무지하게 꾸준하고 오랜 세월동안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는 점이다. 허재의 이런 ‘장기 집권’ 역시 이미 중학교 때부터 그 조짐이 보였지 만 10년, 15년 이상 그가 ‘해 먹으리라곤’ 그 아무도 예측하지도, 바라지도 않았 을 것이다. 허재는 보란 듯이 그 도전에 응했고, 아직까지도 ‘혈투’ 없이는 그 자 리에서 내려 오길 사양한다. ‘천재 농구’가 처음으로 그 정점에 도달하고 십 수년 간 ‘부동 자세’로 ‘천재성’을 고집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결정적인 배경은 바로 중앙대학교 진학이다. 그가 ‘평생 스승’으로 섬기는 정봉섭이란 존재에게로부터 농구를 배웠고, 비전을 나눴으며, 쟁취를 맛 보았다. 그리고는 영영 뒤 돌아보지 않 고 앞만 향해 달렸다. 허재의 몸속에선 아직도 중앙대의 ‘초록피’가 끓고 있다. 그 초록의 의미는 ‘정상’이요, ‘도전’이요, ‘개척’이었던 것이다. 1984년 봄. 허재는 중앙대학교로 진학한다. 그의 중대 진학 배경은 이미 많은 이들 에 의해서 소개 되었고, 실제 많은 ‘전설’을 남겼다 (인터뷰 참조). 그리고 같은 해. 생애 처음으로 성인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된다. 여기서 잠깐, 잠시 눈을 감고 회상 해 보자. ‘내가 대학교 1학년 때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그리고 나이 먹어 서 돌이켜 보면 그때 그 시절이 얼마나 철없고 꿈 많던 시절이었나…?’ 다 같이 잠시만 생각해 보자. 지금부터는 허재가 대학교 1학년 당시 그의 ‘스케줄’을 소 개 한다. 그가 평균 ‘1인 3역’을 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먼저, 그의 ‘본업’ 이었던 중앙대 가드 역할이 있었다. 4년 동안 단 한번도 대학팀에겐 져 본일이 없 었을 정도로 1학년 때부터 중대 파워는 막강했다. 둘째, 허재는 청소년 대표로 발 탁되어 서울서 열린 아시아 청소년 대회 결승전에서 중국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한다. (28득점, 6 리바운드, 3 스틸). 셋째, 고배 유니버시아드 대회 대표로 또 선발 되 어서 선.후배들과 손발을 맞추며 AIA, IOWA 대학 같은 미국팀들과의 친선 경기를 치 뤄야 했다.. 그리고 넷째, 첫 성인 국가대표 선수로 선발된다. 하루에도 새벽반, 오전반, 오후반, 야간반…으로 나누어서 각기 다른 멤버들과 호흡을 맞추어야 했다. 이제 막 스무살도 채 안 된 대학교 1학년 학생의 스케줄이다. 대학교 2학년에 올라가면서 허재는 평생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 중에 하나로 꼽히는 큰 시합을 치른다. 심판에게 항의하다가 징계를 당한 중대 정봉섭 감독이 벤치를 떠 난 코트에서, 중대는 실업 강호들을 하나 씩 격침 시키며 ’85 농구대잔치 2차 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프로가 생기기 전, 한국 농구의 가장 크고 권위 있는 농구 대잔치 역사 상 처음 있었던, 말 그대로 당시엔 ‘스캔들’이었다. 1986년에는 본격 적으로 국가대표 부동의 가드로 자리 잡는다. ‘양 날개’에 이충희, 김현준 (얼마 전 작고)이란 빼어난 슈터들에게 볼 배급을 해주던 ‘원 가드 시스템’에서 ‘지휘 자’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 해 1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렸던 ABC 대회에서는 중국 을 꺾었고, ‘우리 집 앞 마당’에서 열렸던 ‘86 아시안게임에서는 비록 선전 했지 만, 아깝게 준우승에 머무른다. 중국과의 결승전에선 경기 시작 5분 만에 발목을 다 쳐, ‘힘 한번 못 써보고’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1987년, 그가 중대 졸업반 시절 우리 농구 역사에 오랫동안 깨지지 않을 대 기록을 수립한다. 대학농구 연맹전 대 단국대 전에서 허재는 ‘75득점’이라는 새로운 이정표를 남기고 대회 MVP 트로피를 거머쥔다. 밤을 세고 술을 펴 마셔도, 쇠철을 씹어 먹어도 끄떡 없을 정도의 넘치 는 체력을 바탕으로, 허재가 진정으로 ‘펄펄 날’ 때였다. 많은 농구인들은 지금 도 말한다. 허재가 중대 3-4학년 때는 정말 ‘신기’에 가까운 농구를 했다고. 우리 농구 역사 상, 많은 스타들이 스카우트 파문의 대상이 되었었다. ‘헬리콥터 납치 사건의 이동균’을 비롯해서 이충희, 최철권, 한기범, 서장훈…등. 그들의 행 보에 모든 언론이 동원 되어서 ‘생중계’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비록 ‘알짜배기 스토리’는 다 비공개 처리 되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대학 시절 허재만큼 당시 ‘판돈’이 (10년 전 ‘3억 + 알파’) 컸던 선수도 없었을 것이고, 대학교 2-3학년 때부터 국가대표 주전 가드로 활약했던 허재가 가는 실업 팀의 미래는 온통 ‘장미 빛’으로 물들 게 뻔했다. 허재는 어느 팀에서, 어느 포지션을 뛰어도 ‘일당 백’ 을 보장 하던 선수였기 때문이다. 중앙대학교라는 ‘복병’에게 농구 천재를 이미 한번 빼앗긴 ‘농구계의 주류, 연-고대’ 출신이 득실 거리던 현대, 삼성은, ‘이번 엔 결코’를 외쳐대며 ‘허재 잡기’에 총력전을 펼쳤다. 하지만 이게 왠걸? 난데 없는 ‘기아산업 농구단’ 이란 팀이 몇 해전 창단 되면서, 중대 출신 선수들, 아니 ‘정봉섭의 수제자’들은 모조리 ‘기아 호’에 몸을 싣는 게 아닌가… 허재도 예외 는 아니었다. 정봉섭 감독과의 의리. 그리고 ‘중대 신화의 불’을 꺼뜨리지 말자 는 목적 하나로 돈이고 뭐고 다 등을 돌렸다. 허재가 ‘기아호’에 합류하던 첫해에 세계에 얼굴을 알리는 기회가 온다. 88올림픽 개회식 행사의 ‘선수 선서’에 선수 대표 자격으로 당시 핸드볼 대표팀의 수문장 손 미나 선수와 나란히 단상에 오른다. 물론 그의 훤칠한 키와 남성적인 외모가 한몫을 했겠지만, 당시 ‘허재가 선서 한다’는 사실에 그 누구도 심각하게 반대표를 던진 사람은 없었다. 그 정도로 이미 그는 ‘한국의 보배’ 위치에 우뚝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해 12월 8일. 국민대를 상대로 치르는 농구대잔치 데뷔전에서 허재 는 27 득점, 18 리바운드를 기록하면서 허재의 농구 역사, 아니 한국 실업 농구의 판 도는 영영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된다. ●농구대잔치 89-96 대회 전적● 89. 2.19 기아 농구대잔치 1-3차전 싹쓸이 91. 3. 3 기아-현대 전, 임달식, 김성욱 허재 폭행 93. 3 리바운드 1000개 돌파 95. 2. 25 농구대잔치 챔프 결정전 연속 17득점.총 41득점으로 우승 96. 1. 14 3점슛 600개 돌파 96. 1.19 통산 최다 어시스트 기록 (716) 96. 2. 27 농구대잔치 8년 동안 7회 우승 기여.Best 5 상 6회 수상 MVP 2회 아주간략하게만 정리 하더라도 농구대잔치 사상 허재만큼 개인의 명예와 팀의 영광 한꺼번에 누린 선수도 없다. 허재와 기아를 위한 농구대잔치였기 때문이다. 허재 가 기아 유니폼을 입고 참가한 8번의 농구대잔치 중, 93-94 시즌 서장훈, 이상민, 문경은을 앞세운 연세대에게 일격을 당했던 한해를 제외하고 모두 일곱 차례 우승으 로 이끌었다. 96년 2월. 상무를 마지막 기아 우승의 제물로 삼고 허재와 한국 실업 농구는 프로의 세계로 뛰어든다. 8년 전 실업 데뷔전에서도 그랬던 것과 똑같이 ‘최고의 자리’에서 말이다. 꾸준하게 남들보다 월등히 잘 한다는 이유 때문에 허 재를 ‘천재’라고 부른다면, 이쯤해서 컴퓨터를 꺼도 되지 않을까…? 아마도 많은 독자들이 이 글의 종착역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대략 상상이 가리라 본다. 그렇다. 허재 입장에서 볼 때 ‘치욕의 현장’이었던 프로 원년 기아 우승 상황은 차차 얘기 하기로 하고, 바로 98년 4월로 시계추를 돌려 보자. REPLAY two:1998년 4월 2일 (KBL 챔피언 결정전 2차전 기아 : 현대) KBL의 두번 째 시즌 챔피언 결정전은 길지 않은 KBL 역사 상 가장 위대한 7차전 시 리즈로 평가되고 있다., 걸출한 용병 선수 (맥도웰, 웹)의 파워 게임과 절묘하게 조화된 이상민, 추승균, 조성원의 외곽 공격, 그리고 전광석화처럼 치고 나가는 젊 은 현대 팀의 속공은 정규 시즌을 45전 31승 14패 (승률 .689) 라는 빼어난 성적으로 마감하고 플레이오프 준결승전에서 정규 시즌 5위팀 동양을 3연승으로 격파. 느긋하 게 결승 상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면, 전년도 우승 팀 기아는, ‘허-동-만’ 트리 오의 노화 현상과 용병 센터 저스틴 피닉스의 부상 결장으로, 노장 김유택이 스타팅 에 기용되는 등. 다소 불안한 심정으로 챔피언 결정전에 임하게 되었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대전에서의 1차전 결과는 99-90으로 노장팀 기아의 완승. 불의의 일격을 당한 현대가 재정비하고 나선 2차전 역시, 허재의 ‘원맨쇼’에는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필자가 본 경기를 Replay 하려는 이유는, 이 경기에서 허 재는 그의 ‘농구 25년’. 아니, 그의 ‘농구 기본기 25년’에 대한 ‘클리닉’을, 현대뿐만 아니라 만인에게 선사 했던 경기였기 때문이다. 필자는 어렵게 구한 2차 전 경기의 테이프를 보면서, 그 동안 허재하면 떠 오르던 ‘신기’ 또는 ‘화려한 개 인기’ 보다는, 그의 ‘신체의 한 부분’ 이라고 까지 보여지던 그의 탄탄한 개인기 에 대해 언급하려고 한다. 허재의 화려한 개인기에 늘 가리어져 다소 과소평가 되어 온 그의 ‘농구 바탕’을 제대로 보여 주었던 게임이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경기 보다도 더 많은 점수를 내고, 더 많은 리바운드를 잡고, 더 많은 어시스트를 한 경 기는 있었지만, ‘허재 농구의 초석’인 기본기가 눈에 띄게 돋보였던 경기를 찾아 낸 기쁨이 남달랐다. ● Footwork (푸트 워크) 10년 전의 경기에서나 이 경기에서나, 허재의 플레이 중 가장 남들의 그것보다 눈에 띄게 차이가 났던 부분이 바로 이 Footwork가 아닌가 싶다. 그의 발은 언제나 움직 인다. 공이 손에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마찬가지다. 그가 수 많은 상대 수비수의 Pick (스크린)을 헤집고 빠져 나와 공을 받기까지 그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잔걸음을, 재빠르게 디디는지 헤아릴 수가 없다. 짧고 빠른 발걸음으로 말이다. 그의 이런 재 빠른 움직임이 바로 지난 십 수년 동안 상대 수비수들의 ‘비굴’하게까지 보여지던 ‘밀착마크’를 따돌리고, ‘자유의 몸’으로 농구 림 (Rim)의 정면을 쳐다보며 슛을 때릴 수 있게 해준 밑거름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는 그런 ‘노마크 찬스’가 오면 심중 팔구 골로 연결 시켰다. 또, 그의 이런 치밀한 Footwork는 그가 이번 챔피언 결정전 7경기동안 25개 (경기 당 3.57개) 라는 믿을 수 없는 숫자의 스틸 (가로채기) 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보여진다. 허재의 Footwork는 상대 공격수 를 마크 하는데에도 한몫을 했지만, 공이 가는 ‘길목’을 차단하는데 결정적인 역할 을 했기 때문에 이 많은 스틸을 기록할 수 있었다. 그가 수비를 할 때면, 상대 공 격수는 그저 ‘움직이는 그림자’ 정도로만 시각적인 견제를 해주고, 나머지 양 눈 옆으론 공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다니며 수비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허재의 Footwork는 좌-우, 전-후진, 대각선을 자유자재로 오가면서 그의 모든 플레이의 가 장 기초적인 요소가 된다. 아마도 아주 어려서부터 열중해온 ‘줄넘기’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 아닌가 싶다. ●Fake (페인트 모션) 슈터 (shooter ) 또는, 1번 가드에게 이 페인트 모션은 농구의 가장 기본이라고 볼 수 있다. 샤킬 오닐과 같이 야투의 절반 이상이 무식하게 꽂아 내리는 덩크슛을 쏘 는 선수가 아니라면, 1대1 대결의 ‘필수과목’은 바로 이 페인트 모션이다. 허재 의 페인트 모션. 이 경기 내도록 그는 ‘페인트 모션의 모든 것’에 대해 ‘시범’ 을 보이는 듯하다. 찰거머리같이 달라 붙는 수비수들로부터 좀 더 자유로운 ‘야투 환경’을 연출하기 위해 대부분 페인트 모션을 쓰지만, 역시 많은 선수들이 상대 수 비수들의 파울을 유도하기 위해 페인트 모션을 쓰기도 한다. 현대팀 농구의 ‘지휘 자’이자, ‘허재 전담맨’ 이던 이상민을 상대로, 그는 ‘페인트 모션의 진수’를 상대의 코앞에서 보여준다. 결과는, 4쿼터 4분 2여 초를 남기고 ‘허재 28점째 득 점, 이상민 5반칙 퇴장.’ 3쿼터까지 15-20점 차까지 몰리던 현대가, 2점차로 따라 붙으며 한창 분위기를 타던 시점에서 허재의 이 ‘한방’은 현대의 컴백무드에 완전 히 찬물을 끼 얻는다. 3점 라인 밖에서 자리 잡고 있는 ‘노마크’ 허재에게 찔러 준 패스. 이어지는 허재의 Head fake. 수비수는 이미 저기 어디 사이드 라인쯤에 서 나 뒹굴고 있고, 허재는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한발 옆으로 가서 3점슛을 때린 다. 그물 밑에서 한번 ‘말리며’ 떨어지는 깨끗한 3점포. 허재 농구를 보다 보면 얼마나 자주 보는 장면인가. 이 경기에서 허재가 보여준 페인트 모션 ‘레퍼토리’ 로는, 단순한 Head Fake뿐만 아니라, 어깨와 발을 한번 흔들어주며 ‘첫 스텝’을 치 고 나가는 Shoulder Fake, 패스 하는 척하고 이미 그 쪽으로 쏠려있는 수비수의 반대 쪽을 쏜살같이 지나가 버리며 레이업을 뜨는 Pass Fake, 밀착된 상대 수비를 달고 드 리블 해 나가며 한번 ‘엇박자’로 발걸음을 해 주며 잠시 멈춘 상대 수비수의 빈 공 간을 침투하는 Stutter Step… 등, 40여분간 ‘페인트 모션의 교과서’를 다시 쓴다. ● Dribble 아마도 필자가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처음 ‘Behind-the-Back Dribble’ (공을 등 뒤 로 넘겨서 드리블하며 방향 전환하는 기술) 을 목격하게 해 준 장본인은 아마도 김동 광 현 삼성 감독으로 기억된다. 70년대 후반 일본에서 열린 ABC 대회에서 말이다. 이처럼 허재보다 더 먼저 이런 화려한 드리블을 소개해준 선수도 있었다. 하지만, 허재의 경기를 지켜보면서 필자가 ‘거품’을 물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은 바로 그의 ‘낮고 빠른’ 드리블 때문일 것이다. 우선, 그가 ‘왼손잡이’라는 점이 그의 드리 블을 더욱 더 위협적인 ‘1차 공격 무기’로 만들어 준다. 선천적으로 ‘오른손잡이’ 가 많고, 오른손 드리블에 익숙한 선수들이 많은 농구 코트에서 뛰다 보니, 수비수의 좌측으로 움직이는 수비가 훨씬 더 몸에 익은 선수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정면을 향한 상태에서 오른쪽으로’ 발만 움직이라는 주문은, 쉽게 적응하기 힘든 일임엔 분명하다. 그러다 보니 수비수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그의 드리블에 ‘뚫리기’ 일 쑤고, 쉬운 레이업으로 이어지는 실점을 하게 된다. 허재의 드리블은 항상 그의 몸 앞에서 논다. 속공을 펼칠 때나, 지공을 지휘할 때나 항상 빠르고 낮게 말이다. 너 무 몸을 틀고 드리블해서 뒤에서 ‘더블 팀’ (2중 방어)하는 수비수에게 공을 빼앗 기는 일도 없을 뿐더러, ‘드리블 핸드’를 바꾸는 일에도 그만큼 동작이 간략해 진 다. 이 경기에서 역시 허재의 이런 탄탄한 드리블 덕분에 수비수 이상민을 ‘조기 퇴 출’ 시키게 된다. ‘핸드 체크’ (Hand Check), ‘리치 인’ (Reach-in) 등의 불필 요한 파울을 범하면서 말이다. 이밖에도 그가 이 경기에서 보여준 ‘몸에 붙은’ 기본기는 그의 ‘화려한 플레이’ 를 완전히 묻어 버린다. ‘무릎으로 쏘는 자유투’, ‘두팔을 쭉 뻗으며 팔꿈치로 보호하는 볼 키핑 및 집착력’, ‘높게 아치 (arc)를 그리며 띄워주는 포스트에서의 엔트리 패스’… 허재는 그의 플레이의 반을, 이런 아주 단순하지만 철저한 ‘기본 기’로 풀어 나간다. 그리고 나머지 그의 득점과 어시스트는 그가 선수 생활을 해 오면서 터득한 경기 운영 능력, 넓은 시야, 그리고 ‘오기’로 풀어 나간다. 다음 은 현대와의 2차전에서의 허재의 활약상을 쿼터 (Quarter)별로 요약 해 본다. ●1쿼터 1차전에서 29점을 쏘아 올리며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허재를 현대는 초반부터 봉쇄하려고 하고, 허재 역시 득점 측면에서는 그 다지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지 못 한다. 오른손 등 부상으로 반깁스를 한채 가급적 왼손만으로 공을 주고 받는 허재 였지만, 3점슛 라인 중앙에서 강동희에게 찔러주는 ‘Backdoor Pass’, 종료 25초 남기고 터지는 허재의 3점슛으로 1쿼터는 22:22이란 시소게임으로 끝이 난다. (허재 8득점) ●2쿼터 2쿼터 초반에 탱크처럼 속공을 리드하는 맥도웰을 상대로, 오펜스 파울을 유도하려 정면 충돌을 피하지 않는 ‘서른 네살, 웅이 아빠 허재’. 충돌 시 허재의 다리가 약간은 움직인 듯 했지만, 어느 쪽으로 휘슬을 불어줘도 이의가 없을 정도의 아슬아 슬한 장면이었다. 결국 허재의 수비 파울로 판정이 나고, 아니나 다를까 허재는 심 판의 얼굴을 향해 튀어 오른다. 격렬한 항의와 함께. 가차없이 심판은 허재를 보며 ‘T’자를 그리고, 이에 허재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으며 또 한번 울분을 삼킨 다. 심판의 애매한 ‘콜’ 하나로, 1차전에 이어 2차전에서도 허재의 모터에 발동 이 걸린다. 다음 공격권에서 기아의 허재는 곧바로 오른쪽 모서리에서 3점슛을 성 공 시키며, ‘그래, 오늘 한번 또 붙어보자.’ 라는 표정을 짓는다. 잠시 후, 또 기아의 리드 선수가 ‘테크니컬’을 먹게 되고, 허재가 또 심판 앞에 나선다. 방송 해설자들은 여느 때와 같이 계속 허재의 ‘자제’를 외쳐대면서… 이쯤해서 관중석 의 환호 소리는 확연하게 ‘청-백’으로 나뉘어 진다. 가냘픈 소프라노 오빠부대의 ‘현대’, ‘이상민’ vs 굵직한 태너 넥타이 부대의 ‘기아’, ‘허재’로 말이다. 이때부터 허재는 3점슛 2방을 연달아 쏘아 올리고, 백코트 하는 척하다가 가로 챈 패스를 잡아, 이상민을 등 지다가 바람처럼 레이업 슛을 성공시킨다. 관중석에선 난리가 나고, 어느새 방송 중계자들도 ‘허재 혼자 다 합니다.’를 외쳐댄다. 기 아 수비 진영에서 ‘루즈 볼’로 흘러 나오는 공을 허재는 비호같이 달려가서 또 한 번 3점슛으로 연결 시킨다. 2쿼터 종료를 알리는 버저 소리와 함께 말이다. 3점슛 만 4개, 2쿼터에서만 14점을 득점한다. (총 22점) ●3쿼터 3쿼터 시작하자 마자 허재는 더블클러치를 하면서 정확히 뱅크 슛을 성공 (24점째) 시키고, 조급해진 현대의 장거리 슛 난사로 기아는 3쿼터 내내 10 /15 / 20점 차이 의 편안한 리드를 즐기게 된다. 전의를 상실한 듯한 현대의 루즈한 플레이를 틈타 허재는 또 하나의 가로채기, 그리고 이상민의 4번째 파울을 유도해 자유투 2개를 성 공 시키며 (24점째) , 3쿼터를 65-50으로 마친다. ●4쿼터 잠시나마 ‘나사가 풀린 듯 한’ 기아의 집중력 때문인지, 이상민, 추승균, 조성원 등의 3점 슛으로 현대는 금새 7점차까지 따라 붙는다. 허재는 4쿼터에도 역시, 마 치 코트의 반을 갈라 놓은 듯, 달랑 자신과 이상민만이 남겨 진 상태에서 ‘아이솔레 이션 플레이’ (1:1 플레이)를 펼친다. 경기 내내 허재의 1:1 공격을 막지 못하는 이상민을 도와 주기 위해 멕도웰이 ‘헬프 디팬스’ (2중 방어)를 자청하고 나서지 만, Double Team이 될 때마다, 허재는 노마크 상태가 되어 있는 동료 선수를 찾아 내 고 패스로 연결, 현대의 강압 수비를 무너뜨린다. 이상민과의 두번의 1:1에서 쉬운 레이업 슛으로 연결 시키는 허재는 결국 4분 20여초를 남기고 이상민을 제치며 중앙 ‘페네트레이션’ (침투) 후, 완벽한 골 밑 어시스트를 만들어 주며 파울로 끊으려 하던 이상민을 벤치로 내 보낸다. 4쿼터 내내 중거리 포로 2점차까지 따라 왔던 현 대로선 게임의 리더를 잃은 격이 되고, 이 사이를 틈타 허재는 또 한번의 스틸과 이 번엔 조성원을 달고 중앙 레이업으로 득점. 30점째 포인트를 올리게 된다. 경기 종 료 2분 전, 이번엔 자신이 잡은 수비 리바운드를 몰고 코트 끝에서 끝까지 단독 드리 블, 골 밑에 있던 리드에서 ‘떠 먹여 주고’, 종료 1분 전에 허재는 또 스틸을 성공 , 2차전 역시 기아의 승리로 굳힌다. 허재 - 30득점, 11어시스트, 5 스틸. AMEN… 왜 우리는 허재를 ‘농구 천재’라고 부르는가? 그 누구보다도 허재는 어려 서부터 농구를 남들보다 잘했다. 아주 월등히 잘했다. 성적과 기록이 입증 해 준다. 그리 고 허재는 ‘그짓’을 너무 오랫동안 해 왔다. 본인도 최근에 사석에서 그런 말을 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 나이 이제 서른 다섯인데… 정말 농구를 해도 너무 오래 했다. 어쩔 땐 정말 주저 앉아서 울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언제 운 동 좀 그만하고 일반인들처럼 살아 보나…?’ 하고 말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누 가 속 시원히 설명을 좀 해줬으면 좋겠다. ‘왜 그는 최고가 아닌지…’ 아니, 무 엇이 그를 진정한 농구 천재 대접 받는 것으로부터 그토록 훼방을 놓고 있는지 말이 다. 혹시라도, ‘진짜 천재는 단 1%의 후천성 노력도 하면 안 되고, 타고 난 기량 만으로도 펄펄 날아야 한다.’ 라는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있다면 허재는 분명 천재가 아니다. 그럼 이 부분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죽어라고 연습해도 안 되는 선수들 은? 천재의 잉태, 성숙 과정은 본인 말대로 ‘40% 선천적, 60% 노력’에 의해서 가 능해 진다는 말이 가장 정확한 판단일 것이다. 후추 증언석 1 - ’천재라 부를 수 없는 천재, 나의 후배 허재’ 아주 어릴 적부터 허재와 함께 운동하고, 성장하고, 지금은 같이 늙어 가는 사람이 한명 있다. 바로 현 나래 해커스 코치인 전창진 이란 사람이다. 일부 골수 농구 팬 은 ‘코치 전창진’이 아닌, ‘청소년 대표 출신 전창진’의 이름을 기억 하고 있을 것이다. 그 역시 허재처럼, ‘상명국교 ? 용산 중.고교’를 함께 거친 ‘선수 출신 코치’이다. 피 섞인 가족 말고는, 허재를 가장 오랫동안 곁에서 지켜보고 챙겨 준 선배, 그리고 지금까지도 허재의 바로 옆 (원주 나래 숙소에서도 허재의 옆 방을 쓰 고 있음)에서 그를 다독거려 주고 있는 선배가 전창진이다. 누구보다도 허재를 잘 안다고 믿었기 때문에, 후추는 제일 먼저 전창진을 찾았다. 워낙 성격이 서글서글 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만난지 얼마 안 되어 바로 ‘큰형’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성균관 대학 팀과 연습경기를 치르고 있는 치악 체육관으로 찾아 갔지 만, 본격적인 대화는 나래의 숙소에서 진행되었다. 편한 상대끼리 할 수 있는 아주 격 없는 대화를 원했고, 그 역시 그를 마다하지 않았다. 허재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 그의 ’40 (천재) : 60 (노력)’에 대해서, 그리고 허재 의 농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서로간에 다소 거친 표현이 있었지만, 솔직한 대화 를 나누기 위한 ‘분위기 띄우기’ 정도로 양해 해 주시길 바라고, 들은 그대로를 보 내 드린다는 생각에서 대화 내용을 ‘미화’ 시키지 않았다. 맞다. 그게 바로 허재였다. 결국엔 누가 뭐래도 이기게 하는 선수가 바로 허재였다. 주방장;아까 연습경기도 재미있던데요? 성대 선수들도 박 터지게 하던 것 같았고. 전 사실 치악체육관은 처음이었는데, 아담하고 아주 분위기 좋더라구요. 전창진:예~ 근데 좀 작죠. 한 1000명만 더 들어올 수 있어도 좋았을텐데. 그 점이 좀 아쉽죠. 그 골대 뒤로도 '접기 식 관중석'을 추가로 만들었는데도 좀 작죠? 주방장:아뇨. 아늑하고 좋았어요. 코트랑도 가깝고요. 허재 선수 이야기를 해야 하는 데… 후후… 전코치님 만큼 저도 사실 좀 조심스럽습니다. 워낙 많이 소개 되었던 인 물이고, 허재 선수 '명예회복'을 한다고 나서긴 했지만, 팬들의 반응이 어떨지도 모 르겠고. 전창진:좋은 일 하시는 거에요. 허재가 정말 술 한잔 크게 사야겠던데요 뭐..하하… 주방장:감사합니다. 허재 선수 제일 처음 만난 게 언제지요? 전창진:난 오리지날 '상명'이었고, 걔는… 국민학교 4학년 때인가? 그때 걔가 전학 왔거든. 상명으로. 그전까진 동북 다니다…아마 4학년 2학기 때 일껄? 난 졸업한 다 음에 얘가 왔을 거예요. 참, 정말 걔 어렸을 땐 쪼끔해 가지고 별로 안 컸거든요. 내 가 특별했던 건 뭐냐 하면, 난 남동생이 없었어요. 그래 가지고, 굉장히 국민학교 때 후배들을 귀여워 했다고. 근데 그 중에서도 허재를 제일 이뻐했지. 그러니까 얘도 자 기 이뻐하는 걸 알고, 우리가 그리고 그때는 굉장히 잘 살았었거든. 그러니까 집에 놀러 오면 좋은 것도 많고, 매일 오고… 지금은 이제 징그럽지만^^, 그때 당시에는 허재가 굉장히 귀여웠거든. 주방장:허재 선수를 '천재'라고 하쟎아요? 정말 태어날 때부터 특별한 걸 갖고 태어 난 건지, 아니면 자기가 '천재'가 되도록 노력한 거에요? 전창진:그렇지. 근데 이제 보면 지금의 스타들. 지금 농구 하는 애들하고 허재 하고 틀린 점은 분명히 있다는 거죠. 허재는 농구를 처음부터, 밑에서부터 다 배워서, 경 기장에 선거고. 지금, 말하자면 '언론에서 만들어진 스타 플레이어들'이 하나의 '장 기'를 가지고, 그걸로 어떻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가지고 스타가 되는 경우가 많아 요. 근데, 허재 같은 경우에는, 그때 이제 상명 국민학교에서 용산 중학교 들어가면 서 걔의 이제 농구의 길이 열리게 되는데… 이누마가, '지기 싫어 하는 것', 또 '저 형들은 한번 이겨봐야겠다.' 같은 어떤 승부욕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다는 얘기죠. 그리고 그 뒤에서 아버님의 뒷바라지. 그리고 그누마가, 쪼금했다고, 그러니까 선배 들이 귀여워 했다고… 주방장:2년 차이셨죠? 전창진:그러니까, 그 유재학이하고 나하고 3학년이었을 때 이제 1학년이었지. 근데, 그 당시에는 허재라는 애가 운동하는 게, 내가 봐도 우습지. 힘도 없고, 근데 국민학 교 때부터 내가 이뻐하고, 뭐 1년에 6개월정도는 우리집에서 나랑 같이 잘 정도로,. 뭐 우리 아버지 이불에 수도 없이 들어가서 장난칠 정도로 나랑 친하게 지냈지. 그러 다 보니까 이제 이놈이 자기도 농구를 잘해야 되겠다..하는 생각을 한 거고, 그리고 아버지의 후원. 근데, 또 노력을 했다고… 해 가지고, 물론 뭐 이충희 라는 선수도 굉장히 무단히 노력을 많이 했쟎아. 근데 얘의 노력도 내가 보기엔, 이충희 감독의 노력의 '배'는 될 거야. 허재가. 주방장:그래요? 전창진:그럼~ 말도 못했어. 얘가 중학교 때, 힘이 없으니까 운동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아버님은 어렸을 때부터…뱀을 먹인 거야. 그러면서 자기는 운동을 하면 서, 쪼금이라도 안 뒤질라고…어? 우리가 그때 운동량이 엄청나게 많았어. 운동을 그 때 밤 늦게까지 하고, 남산을 뛰어갔다 올 정도였으니까. 근데 그게 딱 10km야. 말 이 10km지, 그 언덕배기를 뛴다는 건.. 근데 이누마가 나중에는 힘이 부치니까, '악' 으로만 뛰는 거야. 그게 장난이 아니야. 안 뒤지려고 앞에서 잘 뛰는 형 뒤에 서 가 지고, 그 형만 쫓아가면서 뛰는 거야. 그러고 나서도, 집에 가서 또 골대 세워놓고 또 연습하고. 그러니까, 선배들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하는 거야. 운동에 대해선. 잘하고 싶으니까. 그러면서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이제 힘이 붙기 시작하면서, 이 제 선수의 모습이 되어 가는 거지. 그전에 까지는 이제 힘이 딸리고, 3학년 잘 하는 형들이 있으니까, 이제 2학년 되면서부터 자기 위치를 딱 차고 들었던 거지. 그 다음 부터 이제 자기가 가지고 있던 개인기를 발휘하기 시작하는 거지. 처음에 이제 자기 의 밑바탕부터 체력, 드리블, 슈팅.. 이런 것들이, 얘가 농구의 '천재'라고 생각하지 만, 결국은 천재라는 것은 자기가 나중에 노력을 해 가지고 만든 게 천재지, 그냥 천재가 된 것은 절대 아니죠. '얘가 타고 났다.' 뭘 타고 나? 타고난 거 없어요. 주방장: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다 자기가 만들어 나갔다? 전창진:그~~럼!! 얘가 어렸을 때 사진이… 나중에 내가 자료로.. 집에 있을지도 모 르겠다. 주방장:작았어요? 전창진:그~럼! 요만 했어 (앉자 있는 자신의 눈높이를 가리키며). 요만 했다고. '쟤 운동할 수 있을까…?' 걱정 할 정도였는데, 몸이 좋아진 거야. 어떻게 보면 정 말 아버님 어머님이 고생 많이 하셨지. 주방장:근데 개인기야… 허재 선수 딱 나왔을 때 이건 우리가 기존에 보던 농구가 아 니였쟎아요? 전창진:근데 그거는, 결국엔 뭐냐 하면, 자기가 다 연습한 거지. 예를 들어서, 실업 팀 시합에서 누가 잘 하는 선수가 하는 걸 보면, 얘는 꼭 따라 했다고. 따라 하면서 그걸 꼭 자기 것으로 만들었어요. 그러니까, 자기가 부족한 점들을 꼭 채워야지만 집 에 갈 정도로 연습을 많이 했어요. 말하자면, 공부 하는 애들로 보면, 제일 '엘리트' 야. 정말 그 서울대 법대 갈 정도의 고생, 그 이상의 고생을 해 가지고 오늘날의 허 재가 된 거지. 그러다 보니까 얘가 이제 정상적인 힘이 붙고, 중학교 3학년 올라가서 모든 대회 우승하고, 고등학교 진학을 하면서 스포트 라이트를 받았다 말이야. 자, 이제 받기 시작했어. 받기 시작했는데 결국은 받게 되니까, 그 다음엔 또 뭐가 따라 오냐 하면, 어떤… 언론, 매스컴, 관계자, 대학들의 스카우트에 끼면서, '아, 내가 진짜 잘하는구나.' 뭐 그냥 말만 한마디 하면 다 들어주니까. 주방장:너무 어렸쟎아요, 그땐… 전창진:그렇지. 주방장:이것 저것 판단할 능력도 없는 나이에 그렇게 후왁 떠 버리니까… 전창진:그렇지. 그러면서, 그 얘가 그 대학교 갈 때도, 대학가면서부터 무슨 문제가 있었냐 하면, 고3때 이제.. 지금 삼성에 있는 이민형 코치나, 또 교통사고 난 한만성.. 걔네들이 결국엔 그렇게 되면서 고등학교 시절에 그렇게 '오르다' 보니까 사춘기 때, 말하자면, 쪼금 나쁜 친구들도 만나고, 나쁜 행동도 해 보는 거야. 왜? 연예인들이 히로뽕을 하듯이, 운동 하는 애들도 짜여져 있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뭔가 좀 탈출 해 보고 싶은 마음, 뭔가 좀 해보고 싶은 마음, 또 그 당시에 워낙 연습량도 많고, 또 대회 나가서 꼭 이겨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그런 것들이 많았다고. 그러면서, 대학교 가면서 이제 스카우트 파동이 걸리면서, 이누마가 이제 생각한 게 이제… 그 ' 연-고대' 라는 문제. 나도 그때 고대 들어가서, 이제 고대에서 나도 허재를 스카우 트 하려고 굉장히 노력을 많이 했는데, 이누마는 그 아버지. 아버지의 뜻을 거의 100% 따라준 거고. 또 자기가 뭔가, 새롭게… 제일 중요한 건 그거야. 아버지 뜻도 뜻이지만, 중앙대학이란 어떤 울타리를 연-고대에서 빼 가지고, 연-고대가 중앙대를 따라 오게끔 하겠다는… 주방장:참, 나이도 어렸는데.. 그거 멋있는 생각이예요 전창진:멋있잖아? 남자로서 사실. 말하자면, 얘가 중학교 때, 고등학생, 대학생, 실 업 팀 선수들의 잘하는 플레이 보고 와서, 똑 같이 하면서 아니, 그거보다 더 잘해야 겠다는 그런 생각, 그 사고랑 똑 같은 거거든. 그런 거를 한 거야. 그게 어떻게 보 면, 그때 쉽게 말해서 어떤 '가오' (= '체면'), 그 연-고대 들어 갔다는 그 '가오' 보다는 그런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주방장:뭔가 새로운 것을 개척 해 나가고 싶다.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 가고 싶다는 그거 아니에요? 전창진:그거야. 걔가 중앙대에 들어가서, 허재는 지금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걔가 중대 1학년에 들어가서, 내가 고대 3학년 때 시합을 했다고. 내가 근데 허재를 맡았 다고, 나는 이제 허재에 대해선 많이 아니까, 수비가 어느 정도 되고. 근데 그날 우 연치 않게 최철권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선수들이 다 컨디션이 좋았다고. 주방장:최철권이 전코치님이랑 동기예요? 전창진;아니, 1년 선배지. 1년 선배. 그래 가지고 거기서 결승전인데 사고가 났어요. 4분인가 남겨두고, 이제 패싸움이 벌어지면서 중대가 승리를 했는데. 그날 저녁에 중대가 이제 우승을 했는데, 이누마가 밥을 안 먹었다는 거야. '나는 오늘 못했다.' 그리고 '정상적인 우승이 아니다.' 그때부터 또 이제 이를 갈고 하는 거야, 연습을. 근데 이제 멋있는 건, 중앙대학교 정부장이 (정봉섭 감독 - 주방장 주), 지금 체육부 장 하시는, 감독 하실 때, 이제 1학년들, 1학년들이 들어오면 대학교에선 청소도 하 고 빨래도 하고, 자기가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은 부족하다고, 근데 그걸 배려를 해 주 신 거라. 오히려 거꾸로 4학년들이 그런 걸 하고, 1학년들 연습할 수 있게. 그런 배 려를, 어떻게 보면 정부장이 머리를 쓴 거지. 허재라는 애를 위해서는. 그게 어떻게 보면, 중대 전통이 되어 버린 거야, 그래서 결국은 중앙대학교가 몇 년 동안 전승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역할이 컸어. 그런 매력이 있었다고. 주방장:1학년들을 빨리 육성 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네요? 전창진:그렇지. 근데 이제 그게 좋은 면도 있어요. 근데 나쁜 면은 뭐냐 하면, 너무 허재를 일찍 크게 했다는 거지. 말하자면,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면서, 선배에 대한 어려움도 알고.. 해줘야 되는데… 물론 그런 선배들을 좋아하고 잘 따르는 건 알지 만, 경우에 따라선 예의범절이나, 또는 그 선배들한테 지켜야 할 어떤 그 운동선수 세계의 예의. 그런 것들을 갖추면서도 또 모자란 부분이 있을 수 있었던 거라. 그러 면서 또,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때 받았던 그런 스포트 라이트하고는 차원 이 높은… 말하자면, 우리가 이제 고등학교 때 뭐 당구장 가고, 중국집에 앉아서 몰 래 짬뽕 시켜서 빼갈 먹고 고등학교 때 그러지만, 얘는 대학교 때 스타가 되어 버리 니까 주변에서, 말하자면, '잘 나가는 형들'이 데리고 나가서, 룸싸롱 데려가고, 그 러다 보니까 어린놈 눈에는 이게 좋단 말이야? 멋있단 말이야? '아, 이 거구나.' 하 는 거지. 말하자면, 쉽게 생각해서, 물론 우리가 좋게 생각하면, '야, 이건 내가 할 자리가 아니다.' 이렇게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위치 에 올라가면, 그런 부분들을 다 즐기게 되잖아. 주방장:올해는 허재 선수 실력은 어떻게 보세요? 예전만큼 과연…. 전창진:나는 이제, 내가 생각 하기에는 그래요. 운동 선수의 나이는 못 속여. 지금보 면 야구의 김용수다, 선동렬이다, 자기 몸 관리 잘하면서 잘 뛰잖아. 허재도 그런 면 에선 잘못 하는 것도 있어. 그래서 자주 얘기도 하는데, '니가 나이 먹으면 나이 먹 을수록 몸 관리 잘 해야 된다.' 근데 본인도 또 술을 좋아하니까, 나중에도 본인이 얘기 하겠지만. 그리고 술을 좋아하는 이유는 또 따로 있어요. 근데, 야구하는 사람이랑 농구하는 사람이랑은 차이가 엄청나게 있어요. 야구는 그때 그때 팍! 하고 좀 쉬었다 또 팍! 하고 그러니까, 덜 힘들지. 지금 그 삼성의료원에서 체력 테스트를 해 가지고, 거기 그 박원하 원장이라고 있어요. '허재하고 선동렬이 몸은 타고 난 몸이다.' 몸 관리만 하면. 얼마 전에 돌아가신 김현준 코치도 상당히 늦게까지 운동을 하셨다고. 근데 물론 술은 좋아하셨지만, 몸 관리를 굉장히 잘 했거 든. 마지막에 근데 그 이충희 감독 같은 그 '말로',. 거 비참하지 않냐 이거지. 그래 서 허재한테도 그래요. '너 그렇게 까진 하지 말아라. 그냥 어느 정도 정상에 있을 때 그만둬라.' 현준이 형 같은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형, 형이 1년 더 뛸 수 있지 만, 이 자리에서 그만둬라.' 허재 같은 경우도 이제 환경의 변화지. 프로가 되니까. 프로같은 경우, 이제 자기 몸값도 많이 받고 하니까. 근데 이 얘기를 하기 전에 술 얘기를 하자면, 나는 좀 이해를 하는 게 뭐냐 하면, 오 랜 선수 생활, 합숙 생활을 하다 보면,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딜레마'에 빠진다고. 운동 선수라는 게 특별나게 취미 생활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특히, 얘 (허재)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최정상의 자리에 올라가 있다가, 조금씩 내려 오는 상태란 말야. 그 러다 보니까, 결정적인 순간에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자기 곁에 없는 거야. 그래서 이제 내가 얘기를 해서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어. 그건 농구하는데 지장이 없 는 스포츠니까. 그러다 보니까 또 술을 먹기 시작하는 거야. 결국 학교 다닐 때에도 후배들이 좋으니까, 후배들하고, 얘는 거의 혼자 술을 마시는 경우가 없어. 꼭 후배 들 데리고. 근데 그런 정상의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그 외로움이라는 것은, 나도 고 대를 나왔지만, 뭐 고-연전이나 이런 큰 시합을 끝내고 나면, 뭐 학교 다닐 때 시험 보고 난 것처럼, 긴장감이 쭈왁 풀리잖아, 그거 우리도 그렇다고. . 그리고 막 운동할 때 너무 힘들어서 '딱 하루만 쉬었으면 좋겠다' 그런다고. 근데 정 작 하루 쉬라고 그러면, 정~말 아무 할 일이 없어. 진짜야. 지금 애들이랑 우리가 허 재랑 내가 운동할 때는 틀려요. 어렸을 때부터 뭐 친구들 사귀고, 자기 취미 생활 갖 고 하지만, 그때는 별 다른 취미가 없었다고. 그리고 허재 같은 경우는, 사람 많은데 가면 진짜 불편해 한다고. 이 사람 저 사람 아는 척하고. 한번은, 우리 가족하고 걔네 가족하고 에버랜드 갔다가, 그냥 왔다니까. 그냥 뭐 여기 저기서 난리니까. 자기도 가족들이랑 모처럼 만에 쉬려고 간 거였는 데, 응? 가는 곳마다 사인 해 달라고 해서, 뭘 자기 애들이랑 탈 수도 없고, 그러 니 누군들 짜증 안 나겠냐고? 자기도 정말 어렵게 지 애들이랑 시간 좀 보내 주려고 간 건데 말야. 주방장:그래서.... 작년만큼 허재 선수가 해 줄까요? 전창진: 어, 그게 이제... 허재 정도 되면, 나도 그렇고 쟤도 그렇지만, 본인이 지 욕심이 있으니까,지금도 나가서 밤에 혼자 웨이트 들고...그게 말같이 쉬운 일이 아 니거든. 나이 서른 다섯에. 자기는 근데 추한 꼴 보이고 싶지 않아서, 본인이 노력을 엄청 하고. 또 나래 라는 팀에 애착을 많이 갖고 있어요. 나는 사실 주변에서 걱정은 되지만, 말은 안 해요. 왜냐하면, 다 큰사람이고. 정상에 올라 있는 사람이니까, 뭐 내가 얘기 한다고 해서 하고, 내가 얘기 안 한다고 해서 안하고… 이럴 때는 아니잖 아. 단지, 우려가 되는 것은 지금 너무 과열되어 있고 치열해진 세계가 되다 보니까, 그 자리에서 계속 유지를 하려면, 계속 몸 관리를 해야 되는데… 어떻게 보면, '작년 보다는, 올해가 더 좋을 것이다'라고 나도 쉽게 얘기를 못 하는 게, 어떤 그 능력, 그리고 저 정도 되면 '구력'으로 농구를 한다고. 근데 체력이 되느냐가 제일 크지. 체력이 된다면, 대학 전성기 시절처럼 하는 거지. 근데 그건 이제 안 되는 거야. 그 걸 기대할 순 없지. 그러니까, 우리도 생각하는 게, '허재가 40분 중에 20분 정도만 커버 해 줬으면 좋겠다.' 이거지. 근데 그 20분 자체도 지금 그 프로의 45게임을 돌 아 다니면서 하는 것은 벅차다고. 근데, 작년에 나도 삼성에 있어봐서 알지만, 허재 가 상대팀에 있음으로 해서, 허재를 어떻게 마크 해야 되느냐가 상대팀에겐 전략이거 든. 그만큼 아직 까진 위협적인 존재지. 더군다나 작년엔 올해보다도 더 연습량이 적 었다고 하던데. 얘를 막으려면 결국엔 외국인 선수를 붙이는 수 밖엔 없거든, 아직까 지도. 그리고, 결국은 중요할 때 해 주는 거거든. 삼성에 M모 선수가 못 해주는 게 바로 그거야. M모 선수가 스타가 못 되는 게, 허재가 10점을 넣더라도 이번에 일본 전에서도 역전골을 넣듯이, 그런 중요한 순간에 해 줄 수 있다는 거거든. 재작년에 내가 삼성에서 코치할 때, 감독이 경질 되면서, 현준이 형이 감독 대행을 하고, 내가 코치로 들어 갔었지. 근데 또 그때 현준이 형이 퇴장을 당하는 바람에, 내가 이제 벤 치를 맡게 되었다고. 그때 현대가 우승할 때인데, 우리가 한 20점차로 앞서 나가고 있었다고. 막판에 이제 그 리드가 좁혀지고, 재역전 되어서 우리가 8초 남겨두고 반 골을 뒤지고 공격권이야. 그래 내가 타임을 불러서, 작전을 어떻게 했냐 하면.. 그때 스트릭랜드라는 애가 있었어요. 큰애. 걔는 정말 '잡으면 한골 넣는다는 선수'가 있 었는데, 일부러 M 한테 해결할 수 있는 작전을 만들어 줬다고. 그걸 못 넣더라고. 진 짜 박스 한발자국 앞에서 만들어 준 슛을. 그게 차이야. 근데, 허재는 일본전에서도 옛날 전성기처럼은 못 했지만, 근데 마지막에 가서 어떻게 하던 넣잖아. 그래서 이기 게 하쟎아. 그게 말하자면 허재라는 놈이지… 후추 증언석 2 - 나의 아들 허재 - ‘천재 만들기’ 유명 스포츠 스타의 본가를 방문해서 부모님과의 대화는 항상 필자를 왠지 모르게 행 복하고 숙연하게 만든다. 자식의 얘기를 들려주는 부모의 표정을 보고 있자 면, 세상 에서 더 없이 행복한 늙으신네들의 얼굴 그대로이고, 예정된 인터뷰 시간을 항상 초 과할 정도로 필요 이상의 설명을 늘어뜨려 하는 그들의 모습도 결코 부담스럽지가 않 다. 허재의 부친, 허준 선생은 올해로 일흔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수 차례에 거듭 된 장암 수술, 그리고 축농증 수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병의 기백'을 잃지 않은 듯 한 모습이었다. 180cm 가 넘어 보이는 훤칠한 키. 은퇴한 레슬러 뺨치는 골 격. 그리고 씩씩하고 당당하게 걸어 다니시는 모습은, 말 한마디 붙혀보지 않고도 그 집안 남자들의 '시원시원함'과 '거침없음'을 짐작 캐 해 주었다. 아직도 건강이 완전 히 회복되지 않으신 상태라서, 인터뷰 요청을 처음엔 정중히 거절하시던 분이셨지만, 후추의 취지와 계획을 설명 들으신 후부터는 그 누구보다도 솔직하고 후련하게 말문 을 열어주신 분이었다. 서른 줄이 훨씬 넘은 허재를 아직도 '허재'라고만 부르시는 아버지 허준 선생과, 허재의 '옛날 이야기'를 들어본다. 주방장:요즘 아버님 건강은 어떠십니까? 부친:건강이... 그러니까... 백을 기준으로 해서 건강하다 하면은... 한 60 정도 될 까... 원래 우리집안이 전부 체질이 강한데... 그 강한 체질 때문에 버티지, 거 웬 만한 사람 같으면 벌써... 주방장:제가 듣기로는 장암 수술 받으셨다고요? 부친:장암 수술 했는데... 그것도 좋지 않거니와 그 후에도 여러 가지 다른 수술도 했어 요. 축농증도 했는데, 왜 그렇게 재수가 없는지... 두 번 했는데 두 번 다 잘 안돼서 또 지금, 또 가야돼 그러니까 그냥 수술이래면 막... 소름이 끼쳐... 너무 하니 까... 응... 주방장:혹시 허재 선수 태어나기 전에 어머님이나 아버님이 태몽 꾸신 거 있으세요? 부친:태몽 꾼 거는 없어요. 내가 들어본 적도 없고... 주방장:예전에..복싱도 잠깐 하셨고, 군인 생활도 하셨고..집안에 가훈은 뭡니까? 부친:그러니까 우린 저... 선조 때부터, 4대 선조 때부터 기독교 가정이거든. 그런 데 이 제... 우리 어머니 때까지 아주 진실한 기독교 가정이었었는데 내 대에... 내 가 와 서 군 생활을 오래하고 하다보니까 충실히 기독교 생활을 못하고, 지금은 뭐.. 이 제는 하는데... 그래서 뭐 기독교 가정이 밑바탕이 되서 그런지 항상 정직해라.. 좌우지간 우리 집에서는 거짓말이란 거 하면 그 즉시 그냥... 항상 정직해라... 정 직이 우리 집의 가훈이예요. 정직이... 주방장:허재 선수가 코트에서 뛰면서 '비신사적인 플레이'나 '매너 없는 행동'이나, 이런 거에 대해서 어렸을 때부터 특별히 가르치신 것은 있으신가요? 부친:사실 허재는 남으로부터 비신사적인 행위를 받기만 했지, 허재 자신이 남에게 경기 도중에 무슨 비신사적인 행위, 뭐 욕을 먼저 한다던가, 때린다던가... 아니면 고의 적으로 무슨... 응? 뭐 예를 들어서 기술적으로 팔꿈치로 때린다... 이런 건 솔직 히 없었어요. 항상 남보다 좀 뛰어나다고 하니까 당하고만... 100% 당하기만 하는 거야. 그러니까 코도 당하고... 코도 몇 번 나갔어. 욕도 듣고... 자기 후배한 테 욕도 듣고, 해서 고등학교 때 여러번 문제가 있었어요. 주방장:고등학교 때도요? 부친:그럼. 고등학교 때도... 상대방 선수 이름은... 그 지금 개인의 명예도 있고 하지만... 자꾸만 지니까 고등학교 후배가 그냥 '이 개새끼' 하고 지나가면서 욕을 하고 해서 몇 번 와서, 집에 와서도 아주 그냥 열받아 죽겠다고..그놈이 너를 더 훌륭하게 만들어 주는 놈이다. 왜냐하면 네가 그걸 이겨야 되니까... 참고 이겨야 되니까... 넌 그만치 더 뛰어나게 되는 거 아니냐... 그러니까 내가 고맙다고 그래. 그런 거 상관하지 말고... 그런걸 이겨야 훌륭한 사람이 되거든... 그거 참 어려운 점이 많았어요. 주방장:어렸을 때부터요? 부친:어! 걔는 정말 뭐... 허재라 그래서... 내 자식이라 그래서 아니라 비신사적인 행위는 한 적이, 한 적이 없어. 당하기만 했지...맨날 당하기만 했잖아...심지어는 아, 저..프로 생기기 전에 농구대잔치 때 부산에서 임달식이 한테 고의적으로 맞은 거 아니예요? 그러고도... 그러고도 징계는 똑같이 받았잖아... 사실 그때는 난, 내가 거기 있었지만... 현장에 있었지... 주방장:임달식 선수한테 맞고 또 김성욱 선수한테도 맞았잖아요. 부친:김성욱 선수는 그 후에 또 맞고... 그게 전부 현대거든... 근데 뭐 개인의 불 명예를... 불미스런 일로 뭐 전체적인 팀의 그걸 얘기 하긴 뭐하고... 어쨌건 현대 선수 둘 다 그냥 고의적으로 때린거야. 응... 때리고도... 주방장:저희가 테입을 갖고 있고, 봤습니다. 부친:그러니까 항상..그러니까, 결과적으로 그것도 역시 허재가 미숙했다. 그래도. 그래도 어떻게? 항상 마이너스야. 당하고도 마이너스. 주방장:허재 선수가 동북 국민학교 3학년 때부터 정식으로 농구를 했는데, 그전에 어렸을 때.. 유치원이나 1-2학년 때도 소질이 보였습니까? 부친:소질이 있었어요. 그때 난 군대에 있었으니까 바빠서 애들을 잘 못 보고있을 땐 데... 항상 농구공이던 배구공이던 축구공이던, 그걸 안고 댕겨, 안고 댕기고 그 냥... 주방장:어렸을 때부터 항상 공을 들고 다녔군요. 부친:그럼~ 공을 항상! 공을 자꾸... 우리가 장충동 살았었거든... 그 장충동 거... 체 육시설 되어 있고 있잖아.. 동국대학교 있고... 거기서 그냥 볼을 차고 친구들하 고 그러니까 볼이 너덜너덜하면 또... 사달라 하고 그럼 또 사주고... 그러니까 볼을 어려서부터도 밤에 새 볼을 안고 자고 그러더라고. 그래 볼이 이제 좀 헐고 그러면 현관에다 놔두고. 새것일 땐 안고 자고. 그냥 방에서도 튀기고, 벽에다가. 막... 벽 이 성한 게 없었잖아. 동네 벽에도 막 때리고 그래서 항의도 들어오고 그랬지. 농구 입문(1) 주방장:농구를 동북 국민학교 3학년 때 처음 시켜야 되겠다고 생각하신 이유는? 부친:아니죠. 난 농구하는 것도 모르고, 그때는 내가 그때 그... 부대가 필동에 있을 땐 데..나한테 전화가 왔어요. 집사람이. 허재가 무슨 시합에 나간다고 그러데 뭐.. 농구시합에 나간다고 그러던가... 거 웃기는 놈이라고 그랬더니 뭐 코치 선생이라고 전화가 왔는데 시간있으면 오랜다고... 처음 듣는 얘기라서 무슨 농구는 무슨... 쪼 그만 놈이 무슨 농구를 하냐고 했더니... 진짜라고 지금 전화가 왔다고. 근데 뭐, 오 후 4신가 3신가... 그때 저~ 불광동 소년의 집, 소년의 집에서 한다고, 시간 이 있으 면 한번 꼭 오시라고. 근데 그걸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다가, 시간 되니까 자꾸만 관 심이 가져지게 되더라고... 참 이상하다... 그 자식이 무슨 농구시합을 하느냐... 코 치 선생한테 전화가 왔다면 코치 선생도 관심이 있으니까 오라 그런 건데, 그때 마침 내가 또, 그때 또 일이 별로 없었어. 그래서 가야겠다. 그래서 이 제 차타고 이제 소 년의 집으로 갔지. 갔더니 막 시합이 시작이 됐어. 그 시합을 봤 더니, 아이~ 그거 진짜 잘해, 쪼그만 게. 그냥 다람쥐 같이 그냥... 막 그냥... 아! 저거 언제 배웠을까... 할 정도로 말야... 아~ 진짜... 국민학교 학생으 로서는 참, 드리블. 볼 갖고 들어가는 게, 그냥 혼자 다해 혼자. 사실 그래서는 안 되는데 욕심도 많고 그러니까..그냥 막 그렇게 하더라고. 아! 그래 기분이 참 좋데.. 그날 김 무슨 코친가 그 양반 동북국교 코친데, 저녁을 먹으면서 이제 허재한테 아~ 대단한 재질을 가졌다고 그래, 아버님도 보시지 않았냐고. 그래서 아이 그래 언제 했 어 저걸?, 언제 저렇게 했어? 그랬더니 안 한다는 걸 사탕을 사줘가면서... 그거 사 립학교 애들은 거 운동을 잘 안 할려고 그러고. 그래가지고 그날 처음 봤어요. 농구 하는걸 처음 보고 재주도 있다... 했는데, 그래가지고 걔가 동북초등학교 에서, 그때 재정 관계로 말썽이 나가지고 농구부가 해체가 됐어. 이제 그러고 나서 한 얼마 안됐 을 때야. 해체가 됐으니까 농구를 못할 것 같이... 못해도 난 바쁜 사 람이니까, 그 저 그때 봤지만. 그냥 지나가고 말았는데... 한번은 전화가 왔어. 퇴근하니까. 아이 뭐 상명국민학교 농구코치라고 이철호 코치, 전화가 왔는데 꼭 뵈 면 좋겠다고, 늦게 들어오시냐고 그러더니 내일 아침 일찍 온다고 거 진짜 새벽같이 왔더라고, 출근하기 전에. 인사를 하면서 상명국민학교 코치라고, 근데 농구 코치가 날 만날 이유가 없는데 왜 그러냐 그랬더니, 허재를 좀 달래. 상명국민학교로 데리고 가야겠대. 아니 거 같은 서울인데도 그렇게 막 다니고 할 수 있느냐 했더니, 승낙만 하면 자기네가 다 알아 서 할테니까 그냥 아버님은 승낙만 해달라고. 아무리 어리지만 본인의사도 있고, 내가 또 동북국민학교는 농구 안하느냐 했더니, 이제 그때 그런 얘기를 하는거야. 아우~ 문제가 생겨서 해체됐으니까, 허재는 장래 가 촉망되니까 내가 데리고 가야겠다고. 나도 마음이 솔깃해서, 그러면 본인한테 한 번 물어보자고. 그래 허재한테 물어보니까 자긴 가겠대. 그러면 마음대로 하라고 그 랬더니 그날부로 저... 그걸 옮겨야 한대, 허재 주거를, 주거지역을 옮겨야 한대. 그렇게하고 그 다음날 우리 집사람하고, 이 선생하고 동북국민학교에서 전학 보낸다 고 하니까, 동북국민학교에서 또 안된다고. 지금 다시 만드니까 안된다고 막... 그러 나 한 번 뺀 칼인데 다시 집어넣을 수는 없잖아. 오후에 결정이 되서 오후에 거기서 전학 해 줘가지고, 그 담날 상명에 갔잖아. 상명에서... 그래서 농구 를 다시 했어. 아버지의 뒷바라지... 주방장:워낙 아버님의 뒷바라지 이야기는 유명해서, 어렸을 때 아버님께서 특히 강조 하신 것은 뭐였습니까? 부친:사실 부모는, 어느 종목의 선수든 마찬가지예요. 부모가 할 것은, 전문적인 지 식을 가진 건 코치고 우리는 어깨 너머로 배운 거고, 부모는 인간 교육하고 그 담에 체 력보강을 위해서 하는 거 밖에 부모가 해줄 건 더 있어? 그러나 이제 농구라는 건, 내가 경험해 보니까 슛 연습을 많이 해야 하니까. 이 집 짓기 전에, 이 앞에다 가 농구 규격 그대로 골대를 을지로 6가에 가서 맡겨 가지고 자기네들이 시설을 했어 요. 높이... 전부 규격대로, 그 다음에 프리드로 라인 다 규격대로 해 가지고 세웠잖 아... 그래가지고 집에 와서는... 보통 뭐 한 자기누나하고, 지금 미국에 시집간 누 나, 자기 형. 그렇게 볼을 잡아 줘 가지고 슛을 보통 한 200개 이상씩 던졌어. 시작 은 국민학교 6학년 때 부턴가... 그렇게 해서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 근데 이 제 내 가 보면, 자기도 그럴거야, 그 덕을 많이 봤을거야. 근데 이놈이 또 참... 학 교에서 는 똑같이 연습하자나? 똑같은 시간에 똑같이 연습을 하고, 집에 와서는 부탁이나 집 에선 연습한다고 하지 말라고... ' 아주 또~ 후훗 그러니까 굉장히 욕 심이 많고 남 한텐 지기 싫어하고 이런... 그러니까 승부욕이 강해요. 주방장:아버님은 안 그러세요? 부친:나도 그래요. 나도 남한테 지면 막 싫고... 원래 성격이 그래요. 그 대신 양보 심은 또 많고. 근데 허재가 지금 그 저... 그 덕을 많이 봤을거야, 내가 보기에도. 그 렇지 않아요? 몇 년이요? 국민학교 5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몇 년이야? 그리고 집에 들어와서 마루에서 들어 누워 가지고 볼을 한 손으로 잡고, 높이 올려 가지고 그 손목 스냅 연습을 했어. 드리블은 밖에서 연습하다가 비가 오는 날에는 쉴 수가 없잖아. 그때 마루가 우린 컸어요. 마루에서 해. 그러니까 마루가 이만큼 내려 앉았었다고, 진짜... 전체가. 그래 남들이 보면 아이 마루 왜 이렇게 내려 앉 았는 데 안 고쳤냐고, 그거 고쳐봐야 소용없다고. 고쳐봐야 또 할 거니까 그냥 뭐.. 나중 에 고친다고 그랬지 주방장:집에서 항상 공을 들고 살았군요 부친:그럼. 근데 이놈이 피곤할 때도 있잖아.. 몸 상태가 항상 좋은 게 아니거든. 몸 상태가 항상 좋은 게 아니니까 이놈이 좀 꾀가 부리고 그러면, 내가 없을 땐 제 형이 무서우니까... 제 형 무서우니까 형이 또 시키고 그러면, 뭐 집에서 드리블하고 마루 에서. 비 안 오면 밖에서 하고... 주방장:거의 집이 '제 2의 연습장'으로... 부친:그럼 '제 2의 연습장'이지... 그야 말로 '제2의 연습장'이지. 아들에게 보내는 일기... 주방장:허재 선수 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 '아들 허재에게 쓰는 일기' 라는 일기를 쓰 셨다는데? 부친:근데 그게 지금 어디에 있는지 없어. 내가 정성을 들여준 거지. 그때그때 느낀 거. 그러니까 시합 오늘 했다. 뭐 예를 들어서 너무 자기 혼자 돌출, 자기만을 위해 서 너무 했다던가, 슛이 부정확했다던가, 뭐 패스 미스가 많았다던가 하면은 적고... 난 농구장에서 항상 수첩을 갖고 다니다가 농구장에서 그냥 메모를 그냥 슥슥 슥슥. 딱 돌아서면 잊어먹으니까, 그거만 생각하고 사는 게 아니고 나오면 다른 거 보고 그 러니까... 그때그때 적어서 시합이 끝나면 느낀 그대로 관전평을 썼다가 일요일 같은 때에 보고 이제... 주방장:허재 선수 어릴 때부터 수도 없이 농구장에 따라 다니셨겠네요 부친:그렇지.예편하고 쭉 따라다니고 일본도 가고 그랬지.시간 있으면 일본도 가고.. 주방장:대략 허재 선수 통산 경기의 몇 % 정도 보셨을까요? 부친:오늘 현재까지 봤을 때, 약 90%는 봤을 거야. 약 90%. 시간이 없으면 어떻게 일 을 미루던가, 누구를 대신 시키던가 해서라도 그냥 보고, 그리고 또 봐야 직성이 풀 리고 그랬지. 90%이상 봤을 거야. 용산 중.고교 양문의 코치... 주방장:용산 중.고교 시절의 양문의 코치는 어떤 분이셨나요? 부친:아~ 그 사람 참 멋있는 친구지. 주방장:그분이 허재 선수에게 기술적인 면이나 인간적인 면으로 끼친 영향은 뭘까요? 부친: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니까 6년이지...그 때가 또 사춘기고 인간형성이 그때 이 제 뭐. 유아 때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사실상 성장기 때, 사춘기 때가 제일 중요 한 시기야. 그때 잘못하면 그냥 빗나가고 그러잖아. 그 양선생은 내가 보기에는 그 양반이 몸집은 작지만, 고집이 세고 승부욕도 대단하고, 그러고 또 어떤 목적을 위해 서는 그냥 뭐 물불을 안 가리고 쉬지 않고 계속 돌진하고... 목표를 위해서는... 그 런 성격의 소유자야. 그래서 원래 그 선수들은요,그 코치를 다 닮아가요.꼭 그래요. 그 농구계에 한번 물어봐요. 그 선수들은 원래 코치들을 다 닮아 갑니다. 코치가 그 냥 와일드하고 독하고 그럼 애들도 그렇게 따라 가는 거에요. 코치가 쪼금 좀 유하 고 참 제재도 가하지 않고 신사적으로 얘기하면 애들도 그렇게 좀 유해지고 그러지. 주방장:양문의 선생이 워낙 혹독하게 선수들 훈련 시켰다는 얘기는 잘 알려진 유명한 얘기 지만, 벌도 주고 때리기도 하시고, 막내아들을 맡기신 부모의 입장으로서, 기 합 받고 터지고 하는 모습을 보실 때 느낌이 어떠셨는지요? 부친:아.. 그건 정말 괜찮지. 나 있는데도 맞았는데 뭐. 근데 그건 마음을 비우고 해 야 되요, 부모는. 그렇지 않아? 아, 자식이 잘못해서 맞고 책임이 있어서 맞는데 뭐 애처롭게 생각한다면, 그건 운동을 시키지 말아야지. 제재를 가하지 말라, 요새 흔히 들 뭐 국민학교 선생이 제재를 가 한다고 뭐 무슨 고소하고 그러쟌아. 난 그 런 부모 들은 전부 어떤 의식을 가지고 있느냐? 나 그거 의심스러운 사람들이어요. 허재는 내 앞에서도 그냥 주장으로서, 자기는 잘못 안 해도 그냥 맞고, 또 경기할 때도 공격을 잘못 했을 때나, 수비를 잘못 했을 때, 그냥 맞고. 주방장:근데 양문의 선생이 대단하신 게, 이미 스타가 된 허재 선수의 아버님이 그 앞에서 보고 계신데 가차없이 때리고 하시는걸 보면, 아주 강단이 있으신 분 같아요? 부친:아 그럼. 아~ 강단 있으신 분이지. 그건 허재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 지야. 다른 부모가 와 있어도, 잘못했을 땐 가차없지. 그건, 이유 있는 제재지 이유 없는 제재는 아니었거든. 주방장:아버님도 그런 것을 100% 이해 하셨군요? 부친:아, 그럼 이해했지. 그거야, 그 사람의 권한인데, 그걸.. 그 사람도 허재를 위 해서, 팀을 위해서. 개인의 감정을 위해서 그런다면이야 가만 있을 사람이 어디있어. 그런 건 탓할 수 없는 거예요. 다 선생한테 맡기고,. 그래야 다 배우는 제자가 선생 을 어렵게 생각하고 보지. 그런 걸 가지고 뭐.. 그건 애를 교육 시키는 것이 아니라, 애를 버리는 거예요. 주방장:용산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가끔 양선생님 만나셨습니까? 부친:아~ 그럼 만났지. 주방장:근데 용고 그만 두셨더군요. 부친:아, 글쎄, 나도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주방장:올해 1학기를 마치시고 갑작스럽게 그만 두셨다고 하더군요. 부친:그게 무슨 일인지 나도 잘 모르겠어요. 좌우지간 묘해. 그 사람 집에 전화 번호 가 바꿔서 지금 연락이 안 되더라구요. 중앙대 정봉섭 체육부장... 주방장:아버님 정봉섭 부장님 제일 처음 만나셨을 때가 언제 입니까? 부친:허재가 중학교 1학년 때부터야. 중대가 체육관이 없으니까, 용산고등학교 체육 관을 빌려서 써요. 매~일. 그러면 그 참~ 그 사람 대단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오늘 날 그 위치에 오른 거야. 그 양반이 운동 세계에 있지 않고, 다른 세계에 있었어도 뭐가 됐을 거야. 용산 체육관은 용산이 주인이니까, 중학교가 먼저 하고, 고등 학교 가 끝난 다음에 이제 대학이 연습을 했는데. 빌려 쓰는 주제가, 나그네가 먼 저 할 순 없잔아. 겨울에는 그, 이쪽에 구멍탄 난로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도 무 슨 감독, 코치나 되야 좀 쬐지, 그런데도 꼬박 밖에서 앉아 있다가, 겨울이면 4시 반, 5시만 되면 해가 져요. 그런데도 보통 뭐 8시, 9시 되어야 끝나쟌아, 고등학 교는. 그럼 그 때부터 하는 거야, 기다렸다가. 그거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년을 그러니까, 그 양 반 역시 '집념'이 대~단한 분이야. 뭐, 대단한 집념을 가진 사람 이야. 어떤 목적을 위해서는 그 어떤 굴욕도 참고, 그~~ 나 정말 그런 사람은 훌 륭한 사람으로 봐. 주방장:제가 보기에는 허재선수만큼 승부욕이 강하고 지기 싫어하는 선수가 드문데, 그 영향은, 첫째로 선천적으로 아버님한테서 영향을 받았고, 또 지도자로 어렸을 때 모셨던 양문의 선생, 정봉섭 부장. 이렇게 세분께서 허재선수가 승부욕이 없을 수 없 을 정도로 환경이 조성이 되었네요. 부친:그럼. 맞아요. 네. 그래서 중앙대학 보낼 때는 남들이 말이 많았지만, 허재하면 그때 연-고대 갈 거라고 120% 다 봤지. 그러나, 학교가 문제가 아니거든. 물론 중학 교 1학년 때부터 내가 정봉섭 감독을 봐 왔을 때, '야~ 저 친구 정말 대단한 사람이 구나.' 소위 그래도 대학 코치라는 사람이, 중학교, 고등학교 코치한테 머리 숙여 가 면서, 그 추운 겨울에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년 씩 기다렸다가 애들을 가르치고, 이 건 뭐 보통이 아니거든. 근데 실제 정감독은 허재 달라는 얘기는 안 했어. 안 하고 있다가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되니까, 얘기를 딱 하더라고. 주방장:정감독이 그렇게 얘기 하셨을 때, 학교 지명도를 떠나서 '이런 지도자라면 내 아들 맡기만 하다.' 그런 생각이 드셨나요? 부친:바로, 바로 그거지. 조건은 다른 대학이 다 좋아, 그래도 그걸 뿌리치고 이쪽에 간 것은, 우선 이런 걸... 정선생한테 배울 게 너무 많아. 아~ 정말 목적을 위해서는 말이야, 정말 엄청난 인내력을 가지고 노력한다. 그거 사람 살면서 엄~청 필요 한 거 거든. 그래서 팀도 막강해지고, 허재가 이제 가드가 가니까.. 주방장:그 다음에 기아로 가게 된 이유도 어떻게 보면, 정감독이 옛날부터 그 고생을 하시면서도 내심 '중대 신화'를 만들기 위한 야심을 키우고 계셨다고 보는데요. 부친:아, 그 사람 목적이 그거야. 그래서 한 거지 다른 뜻은 없어. 주방장: 더군다나 정감독님 모교에 돌아가서, 꼭 '연-고대 타도' 보다는, 전반적인 농구계 의 발전과 평준화를 위해서 중대가 또 하나의 명문으로 군림을 하더라도 나쁜 게 아니라는 생각이 아니었을까요? 부친:그렇지. 다른 축구나 배구 같은 것은 다들 평준화가 되어 갔는데, 농구만 꼭 그 냥 연-고대에서만 정상을 차지해서, 다른데는 너무 차이가 나서, 상대가 안 됐거든. 그 역사를 바꿔 놓은 사람이 바로 정선생이야. 그걸 위해서 그~냥 참은 거야. 그~~ 어려움을 겪고, 그래가지고 오늘의... 사실 오늘 농구도 많이 평준화가 되었 쟌아요? 뭐~ 성균관대 봐요. 아~ 대단하지 않아요? 이게 실제로 다 정선생 때 부 터 시작해 서 오늘날 이런 발전을 가져 온 거야. 그렇지 않았으면, 역시 연-고대에 서만.. 발 전이 안 되요. 그럼 안 되지. 아니, 뭐 한국 농구가 두 대학밖에 없어? 다른 농구팀 도.. 지금 봐요. 다른 종목을 말이야. 농구도 지금 이렇게 된게, 다 정선생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그건 뭐 '산 역사'야. 그건 누구나 인정하지, 또 농구 붐을 일으킨 것도 다 정선생이야. 대단한 공로지. 저 사람 사실 대단한 공 을 세운 사람이어요.. 많이 평준화 됐잔아요. 주방장:93년도에, 허재선수가 '사 생활 문제'로 처음으로 국가대표 팀에서 제외가 된 적이 있었죠. 잘 아시겠지만, 그때 시내 모 호텔에서 농구협회 강화 위원회에서 회의를 할 때, '허재 빼야 한다' 고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시던 분이 바로 정봉섭 감 독님이었습니다. 그때 아버님이 서운하시지 않았나요? 부친:아니..아~ '대찬성'이었지. 그럼. 그건 거짓말이 아니야. 왜냐하면, 난 허재에 대한 기술은 믿으니까. 허재 사생활이 이래선 안되지 않느냐. 자기 명성에 걸 맞는 행동을 해야되는데... 그러나, 난 그것도 이해해요. 사나이가, 남자가 말이야, 무슨 '파렴치 범' 아닌 이상, 그런 것도 못하면 사나이냐? 그러나, 공인이니까 자 제 좀 하라는데, 사고를 내고 하니까. 이게 '잘됐다' 했지. 주방장:그일 후에 정감독이랑 이야기를 하셨나요? 부친:아, 그럼. 내가 그랬어. "내가 이제 정선생한테 그러지 않아도 좀 부탁을 해 야 할 것을, 나 대신 참 시원하게 잘 해줬다. 좀 충격을 줘야되지 않겠느냐?' 그랬 어요, 실제로. 농구에서는 더 이상 기술을 배울 수도 없고, 좀 자제를 해야하는데, 기아 입단 배경... 주방장:기아 입단 배경도 '정봉섭감독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라고 신문 상에도 보도가 되었는데요. 부친:아, 그거 사실이야. 주방장:'어차피 중대의 뿌리를 심어 놓은 것을, 실업팀 가서도 열매를 맺자.' 라는 취지에 서, 정감독이 기아쪽으로 몰아주자고 아버님한테도 부탁을 하셨다던데... 부친:많이 부탁을 하고 여러 번 얘기 한 것도 아니고, 대학 생활 4년 하다보니 그동 안의 팀의 화려한 전적, 뭐 나도 다 보고 했으니까... 말하자면, 정선생 얘기가 이거 야. "이러한 팀을 실업팀에 가서 만들어 놓으면, 더 화려해지지 않겠느냐? 뭉치면 강 하 고 흩어지면 약하다. 이게 각자 흩어지면, 화려한 팀이 없어지니까, 이 팀만이라 도 그대로 지켜져서 실업팀에서도 화려하게 보존된다면, 뭐 농구 발전도 될 것이고, 참 좋은 일 아니겠느냐?'" 그랬어요. 주방장:아버님 보시기에 지난 30년 동안 허재가 가장 자랑스러웠을 때가 그때였습니까? 부친:물론 다 자랑스럽지만, 프로 2년 때 MVP 탓을 때, 그 손도 다 골절 됐지, 눈 찢 어 졌지, 그러면서도 아~ 그 '승부욕', 그 '목적 달성'... '나는 작년에 실추된 명예 를 회복해야 되지 않겠냐?' 프로에서 살길은 바로 그거지. 그래요? 안 그래요? 아니, 프로에서 살길은 바로 그거야. 내가 회복해야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아니, 완전 골절 아니었냐고? X-Ray 상에 나온 완전 골절. 그런데도 그냥 이렇게 퉁퉁 붙고, 깁스하고 눈 째지고.. 결국은 그것도 1,2차 이기고, 3,4,5차 이렇게 내리 진 거 아냐. 왜? 역 시 그 '피닉스' 그 짜식이 뛰질 않아서. 그~ 자식만 뛰어 줬어도, 그 자식이 괜히 아 프다고...핑계대고. 걔만 뛰어 줬어도 그냥 이기는 거야. 그러나, 그건 다 농구인 전 체 기자들도 보고 허재 이상 누가 있었어요? 주방장:그럼 아버님이 지켜보시면서, 막내아들 허재 때문에 우신 적이 있으셨나요? 부친:그때 울었지. 뭐 남자로서 울었다기 보다, 그때 그 지경에 이른 것이, 프로 원 년 때 뛰지 못하고 벤치에 앉아 있는 게 화면에 나오고, 신문에 나오고. 그때 그 광 경보고 내가 막...아휴, 정말 죽이고 싶더라고, 진짜. 그때 내가 몸이 좀 아파서 집 에 있을 때인데, 그거보고 정말 뛰어가서 죽이고 싶더라니까. '선수를 이렇게 죽일 수가 있나..?' 차라리, 끌고 들어가서, "이 짜식, 왜 말 안 들어?" 하면서 몇 대 쥐 어박고, 어? 외향적으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해서, 그래도 명예롭게 해 줘야지. 그 렇게 벤치에 앉혀 놓고, 그렇게 사람을 죽일 수 있나...? 물론 허재가 잘 했다는 건 아니야, 잘못을 해도, 공식 경기는 프로니까 뛰게 해주고 명예 회복 은 시켜줘야 하 는 게 아니냐 이거지. 그때가 정말 제~일 속이 상했지. 내가 그때 아들 들어가 있는 구치소 가서도 그랬어. '사나이가 이런 것도 한번씩 겪어 봐야 한다. 말로만 들었지 어떠냐?' 그랬더니, "다들 잘 해 주지만, 아~ 다시는 못 올 곳이다." "거봐라, 다 이 런 게 다 너한테는 인간교육을 시켜주는 좋은 기회다." 라고 그랬어요. 지금도 그러 잖아, 걔가. '세상 못 갈데가 거기'라고. 말로만 듣다가 한번 경험했으니까. 주방장:그러니까 아들이 형무소 갔을 때보다 그때 벤치에 앉아 있을 때가 더 가슴이 아프셨나요? 부친:그럼. 더 아팠어. 형무소에서는 니가 한 죄가 있으니까. 근데, 벤치에 앉아 있 을 때는 정말..'아~~ 이렇게 죽일 수가 있나...' 하고. 주방장:아버님이 허재가 제일 미웠을 때가 있었습니까? '저 자식 저거 왜 저러나?' 하고요. 부친:뭐, 한,두번이 아니죠. (하하) 사고 날 때마다 그렇죠. 그런데, 허재 말 맞다 나,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다 그러는데, 왜 나만 갖고 그러냐..?" 그 래 서 내가, "왜 그런 줄 알아, 이눔아? 너를 잡아야 다 팀이 되는 거 아니야, 이 짜 식아. 다 너를 주축으로 해서 작전도 하고, 그러는데, 네가 흔들리면. 임마, 코치 선 생들이 다 너를 조질 수밖에 더 있냐, 임마? 나 같으면 절반 죽이겠다." 그랬 어요. 그러면서도 며칠 지나면, 또 그러고... 허준선생의 철학... 주방장:며느리 이미수씨에 대해서는 아버님 점수를 얼마나 주고 계신지요? 부친:잘하고 있지. 내조를 잘 하고, 또 내조를 잘못하면 내가 가만있나? 우린 또 그 런 건 못 보거든. 우린 가정은 기독교 가정인데, 다분히 봉건적이고 유교적이고 그 래. 여자, 부인이야 남편 공경하는 것을 하늘같이 알아야지. 그걸 못하면 부인의 자 격이 없는 거지. 우리 며느리는 그런 자격은 있어요. 어떤 여자도 첫째, 부인은 남 편을 공경하고 잘 해야돼. 주방장:허재 선수가 은퇴 한 후에, 어떤 선수로 기억되길 바라십니까? 부친:글쎄 뭐. 그저 '농구의 제 1인자'만은 지워지지 않았으면, 영원히 보존되었으 면 좋겠어요. 뭐 농구 박물관에서라도. 내가 주제 넘는 얘긴지 모르겠지만, 우리 농 구사를 보면 화려한 선수들이 많죠. 김영기 선생, 신동파 선생, 이충희, 신선우, 김 동광.. 참 많은데, 각자 스타일이 다 다르쟎아요. 포지션도 다르고. 난 예전에 김영 기씨가 그 장충체육관 '뚜껑' 없을 때도 가끔 가서 보고 그랬는데, 장충동에 살았으 니까. 내가 허재를 우리 아들이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걔는 정말 어떤 포지션을 정해 놓은 것도 아니고, 전체적으로 골고루 잘 하는 그런 '올 어라운드 (all-around) 플레이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 그런 점만은 기억에 남았으면 해요. 주방장:좋은 말씀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시원하게 말씀을 해 주셔서 더 이상 여쭙고 싶은 말도 없습니다. 부친:운동 세계도 그렇고 기자 생활도 그래요. 난 이거 한가지는 꼭 말하고 싶은데, 기자분들은 누구 하나의 약점만 꼬집어서 기사화 하는데, 그것보단 누구의 장점을 기사화하는, 그런 역할을 해야지. 약자의 약점만을, 어떻게 보면, 그런 것을 느낄 때가 있어요. 상대방의 약점만 그렇게.. 이 사람도 장점이 있을텐데... 장점을 좀 기사화 해서 보도를 해 주고, '아, 정말 훌륭하다.' 그런 것을 알려 줘야 하는데. 그 기자들 세계도 의리가 있어야 되요. 본 사실대로만 쓰자 이거지. 약자도 좀 도와 주고 그래야. 뭔 잘못을 한 본인도, '아, 내가 이럼 안 되겠구나. 내가 잘못 을 했는 데도 이렇게 나를 도와 주는구나. 내가 다시는 이러면 안 되겠다.' 하는 거지. 뭐, 잘못 한 놈을 그~~냥 부풀려서 기사를 써 놓으면, '쳇, 이걸 이렇게까지 쓸 필요가 있어?...' 하면서, 반성하고 싶은 놈도 하겠어요, 그거? 장본인도 회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아니라, 도리어... 거, 그래선 안 된다. 내 생각엔 그래요. 회개할 수 있는 기회. 허재에겐 몇 번의 기회가 주어졌으며, 그는 그 기회를 몇 번이 나 외면했을까? 아직도 못다한 이야기 허재 본인 판단으로는 부당한 대접을 받았다며 투쟁심과 오기만 남아 있는 사람에게 ‘대표팀 영구 제명’, 뭐 이런 방법의 ‘극약 처방’으로 얼마나 허재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할 수 있었을까? 술 먹는 것에 대해선 아직도 허재는 ‘큰 죄를 지었 다.’ 라고 생각하지 안을 것이다. 농구계에서 본인만 술 먹는 것도 아니고, 허재 의 농구 선배나 후배들 모두 자타가 공인하는 ‘말술’들인데, 왜 허재가 술만 먹으 면 난리를 떠냐고 생각 하는 게 당연할 지도 모른다. 술 때문에, 또는 ‘문란한 사생 활`때문에 대표팀 탈락 시킨다고 해서 허재가 눈하나 깜빡 했을까? 솔직한 얘기로? 급할 때 마다 결국 허재를 찾지 않았던 관계자들도 있었나? 수도 없이 ‘징계’ 먹 고, ‘탈락’ 되고 해도, 결국엔 또 허재를 찾을 정도로 농구에 있어서만은 대한민국 ‘최고’였고, 흔치 않은 ‘천재’ 였다. 그의 최근 모습이나 자세가 다소 ‘잠잠 해’ 진 것도, 지난 20여년 간 그가 싸워왔던 농구계 ‘주류’에게 백기를 들었다고 보기엔 성급한 면이 없지 않다. 그 보다는 오히려, 난생 처음으로 그가 ‘가족의 의 미’ 그리고 ‘가장의 역할’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고, 깨우침이 있었으리라 본 다. 특히, 96년 구치소 생활 도중에 말이다. 결국엔 그의 ‘가족’만이 그를 ‘회 개’하게 만든 것이다. 이례적으로, 허재 명예의전당 기사는 2회에 걸쳐서 게재된다. 그 만큼 ‘허재’라는 이름 석자는 갓 태어난 스포츠 웹진 후추에겐 조심스러웠을 뿐더러, 충분한 조사와 증언을 요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농구인 허재’를 후추 명예의전당 에 헌액 시키기 위해, 먼저 그의 농구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했다. 과거, 우리들의 성급하고 올바르지 못한 ‘공인 의식’, 언론을 포함한 농구계 ‘주류’의 ‘스타 죽이기’, 그리고 허재의 ‘천재성과 사생활’ 을 ‘따로 국밥’ 시키지 못한 이유 로 허재. 그를 표현 하는데 있어선 항상 이런 말이 따라 다닌다. ‘농구는 잘하는 데…’ 농구도 허재처럼 신들린 것처럼 잘하고 인간성도 내 마음에 꼭 들 정도로 ‘완전한’ 농구 선수, 아니 ‘완벽한 인간’이 나와준다면 모르겠지만, 그건 우리 모두의 과욕이라는 걸 잘 안다. 그랬을 때, 필자는 항상 농구 잘하는 허재를 먼저 지지할 것이다. 다음주 수요일 (10월27일)에 계속 될 예정인 ‘허재이야기 2부’에 서는, 평생 그를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성격 더럽고 싸가지 없다’는 허재의 그 성격을 한번 직접 경험해 보고 파 헤쳐 보려고 한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실이 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우리 모두의 ‘오해’였는지를 알아 본다. ‘천재’를 ‘천재’로만 받아 드리지 못하는 우리 팬들이나 언론, 협회에서 주장하는 허재의 ‘인간 덜 됨’을 상대로, 후추에서는 그의 ‘인간 다 됨’을 한번 소개하려고 한다. 그동안 언론에선 의도적으로 뒷걸음 쳐왔던, 그래서 일반 팬들은 알 길이 없었던 허 재라는 한 ‘인간’의 다른 면을 밝혀 보려고 한다. 모차르트 VS 살리에르 ‘정치 사회이든, 문화 예술 분야이든, 그 분야의 어느 누구를 천재라고 칭하고, 그 호칭에 대해 대다수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다면 그는 분명 그 분야에 있어서 천재이거 나 천재에 가깝다는 것을 굳이 의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그는 천재라고 칭함 을 받기에, 그리고 천재로서의 위대함에 박수를 받기에 마땅하다. 그러나 막상 ‘천재’라고 일컬어지면서도 손가락질을 당하고, 위대함에 박수를 받으 면서도 돌아서면 조롱 당하는 ‘아쉬운 천재’들이 항상 존재하여 왔다. 손가락질과 조롱의 배경에는 ‘살리에르’를 팀장으로 하는 ‘천재를 시기하는 凡人’들의 모함 이 자리하고 있다. ‘선량하고 건전한 凡人’들은 그들에게 후추를 뿌려야 한다. 천재에겐 박수를 더 크게 쳐야 하고 ‘凡人 조폭’들에게는 후추를 뿌려야 한다. 외로운 천재... 허재 언제나 ‘천재’이면서 ‘죽일 놈’이었고, ‘농구 9단’이면서 ‘음주 운전 9단’이 었다. ‘한국 농구를 수 십년 앞당긴 선수’였으면서 ‘한국 농구의 문제아’ 였고, ‘한국 농구의 희망’이었으면서 ‘시건방진 놈’이었다. 결론부터 얘기하고 가자. 그는 ‘한국 농구의 선도자’이고, ‘최고봉’이자, ‘농구 9단’이고, ‘농구 천재’ 이다. 천재가 나타나서 그 분야를 수 십년 앞당겼을 때는 그 분야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 그 분야를 기웃거리는 사람들, 그 분야에 관련된 모두는 그저 박수만 치면 되는데, 꼭 '살리에르' 같은 凡人들이 나타나서, 침을 뱉으려 바둥거린다. 그러다 보 면 결국 ‘천재성’으로 칭송되기 보다는 ‘약점’만이 부각되어 '기립박수'로 열광 하기에는 좀 아깝고 얄미운 감정이 들게 한다. 엄청난 모순이고 말도 안 되는 폭력이다. 섞여서는 안될 두 요인: 천재성과 그와 관계없는 것. 농구와 그의 주량, 드리블과 그의 말버릇이 함께 섞여 전해지면서, 그의 천재적 드리 블을 칭송하다가도 결국 그의 어눌하고 건방진 말버릇을 꼬투리 잡는다. 천재의 잡 생활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허재 그 새끼… 농구는 천잰데.... 그런데....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사람 치사하게 만든다. 천재를 죽이는 문화에서는 천재가 나올 수 없고 천재가 나올 수 없는 사회에서는 凡人 들이 설친다. 凡人들이 설치는 사회는 별 재미가 없고 흥분할 일도 없다. 그들끼리 지지고 볶고 살 뿐이다. 19세기 ‘천재 시인’ 랭보가 ‘호모’ 였다는 사실이 그의 글쓰는 재주와 무슨 상관 이란 말인가? 윌트 챔벌레인의 ’여자 20,000명 후리기’가 그의 위대한 농구 천재성 과 무슨 상관인가? ‘강간범’ 마이크 타이슨이 팬들로부터 외면 당한 이유는 링 안 에서의 ‘천재성’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지, 멀쩡한 ‘미스 블랙 아메리카’ 후보 를 겁탈해서가 아니었다. 농구에 관한한, 그의 천재성과 노력으로, 우리 농구 수준과 팬들의 안목을 수십년 앞 당긴 허재의 공헌들이 ‘잡생활 들먹이기’ 때문에 평가절하 되어서 이제는 그저 ‘사라져가는 농구 스타’로만 대접 받고 있는 현실이다. 허재는 음주니 스캔들이니, 농구와 전혀 관계없는 것으로 폄하 되기에는 너무 엄청난 일을 해 낸 선수이기 때문 이다. 우리의 자식 세대들이 훗날 허재가 누구냐고 물어올 때, 당신의 대답은 다음 두가지 중 어떤 것일까? 1. ‘음… 허재? 두번 다시 나오기 힘든 농구 천재였지’ 2. ‘허재? 걔? 농구 잘했지. 근데 음주 운전 하다가 뺑소니 까고 운동선수가 술 이나 마시고 댕기면서 시끄럽게 한 놈이야’ 이삼십년 후의 스포츠 역사책은 위 두 가지 대답 중 어떤 것으로 허재를 기억할 것인 가? 허재라는 이름이 이삽십년 후에 ‘술꾼 농구선수’로 기억될 것으로 생각하는 가? 천만에… 후일의 농구 史家들이 기억할 허재는 단 한가지 - 그의 천재성 - 밖에 없는 것이다. ‘살리에르’들이여… 냄비 언론들이여… 그대들이 지금 허재와 동시대에 살며 그의 농구를 볼수 있는 것에 감사하기 바란다… ‘망나니 허재’ 다음은 그 동안 언론에 공개 된 허재의 ‘비 농구 관련’ 헤드라인들이다. 잠시감상 하시길. 87년 중대4 김희애와 열애설 (최동철의 스포츠 쇼 출연 후,“오해") 기획자이자 선배 김진성과 음반 취입 계획? 88년 9.17 기아 88올림픽 개회식 선수 선서 (핸드볼의 손미나 선수와) 89년 5.25 강문영과 염문설 (과천 서울랜드에서 목격) 90년 5 `허재 선동’으로 기아 전패! 방열 감독 퇴진! (항명 혐의) 최인선씨(중대 출신) 감독 승격 91년 3.3 90 농구대잔치 챔프 결정전 대 현대전에서, 전반 4분 56초. 현대 전자 왼쪽 골밑을 파고 들다 전담 마크맨 임달식의 팔꿈치에 맞음. 흥분한 허재가 머리를 들이밀며 임달식에게 항의. 임달식 오른손으 로 펀치. 두명 다 퇴장 선언후, 허재 다시 임달식에게 대들자, 김성 욱이 또 한번 허재 구타. 전치 3주, 턱뼈에 금 91년 3.6 임달식 출장 정지 6개월. 허재, 김성욱 3개월 징계 결정 91년 3.15 허재 대표 선발 탈락. '과열된 승부, '격렬한 집중 마크'가 화근 91년 12.3 현대전자 김광. 경기 중 허재 폭행 92년 7 '허재 - 신혜수 염문설' (신라호텔 나이트서 수차례 목격) 92년 9 기아 자체 징계 '합숙 거부, 감독대행 지시 불복' 92년 11.12 이미수씨와 결혼 (부산 여대 조소과 출신) 93년 8.6. 음주운전으로 100일 면허 정지 (득남 축하연서 소주) 93년 8.18 대전엑스포 기념 농구대회. 전날밤 술먹고 경기 출전 못해 93년 8.28 대표팀 제외. 전력약화 (현실론) vs 악습단절 (개혁론) 정봉섭감독이 탈락 지지 '무한정으로 친구, 동료, 후배들을 희생 시켜온 존재' 방열 '대표선수다운 지성과 인격이 결여된 선수' ‘항몀 물의, 음주 사건'등으로 후배들에게 '나쁜 영향' 및 정신력과 팀워크 파괴 우려 때문에 제외 '재능은 최고, 정신자세는 밑바닥' 지도자 모두 동의(양문의, 방열, 정봉섭, 최인선) 93년 8.31 모일간지 인터뷰 '내가 만약 연고대 출신이라면 이런 고초는 없었을 것' 허재 선발 지지하던 정광석 (고대 출신) 감독 '허재가 연고대 출신이었더라면 그 품행으로 미뤄, 선배들의 더 냉엄한 질책을 받으며 심한 고초 겪었을 것' 94년 4.20 대표팀 '조건부' 컴백 -- '불성실할 경우 축출한다' 이인표 감독 94년 6 히로시마 AG 후 나이트서 음주 및 폭력 혐의 입건 95년 12.11 망년회 후 음주 사고로 면허 취소! 96년 7.27 '올림픽 음주 파문' - 후배 정재근 생일 파티조로 한인식당서 96년 8.8 '올림픽 음주 파문'으로 6개월 출전 정지 (허재, 최인선) 정재근, 김남기 (3개월) 이상민, 현주엽 (3개월 근신) '스타의식을 갖고 있는 선수들이 무책임하게 마음대로 행동한데 대한 중징계' 96.11.23 무면허 음주, 사고, 뺑소니, 거짓 진술!! (친구들과 강남서) 96.12.17 보석석방, 징역 1년 및 집행유예 2년 구형 97년 1.14 농구협회 '국가대표 영구 제명' 97년 5 기자회견 자청 "트레이드 요구' - 실추된 명예회복 위해… 99년 8.27 일본 ABC 대회 기간 중 '빠찡고 파문' 참, 사고를 치기도 많이 쳤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후추가 허재의 이런 사생활을 ‘변론’ 해 줘야 할는지, 그 엄두가 안 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한가 지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위에서 언급한 이런 헤드라인들에 의해서 일부 팬 들은 허재에게 등을 돌리게 되었을 것이다. 그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명백한 진 실이고 언론의 ‘과대 포장’이 아닐까…? 필자의 사견으로는 아마 거의 모든 부분이 ‘부분적 사실’정도는 될 것이라고 본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라는 속 담을 필자는 믿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 해야 할 부분은 ‘허재 의 모험기’를 다루어 왔던 언론의 시각이다. 우리가 언론 보도를 접하다 보면 특 정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서, 유독 냉정하고 비난성 짙은 입장을 취하는 모습을 발견 할 수 있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라고 들 하는데, 이상 할 정도로 허재의 이런 사생활을 취재 하는 기자들은 냉엄했다. 대충 ‘연기만 났 다’ 하면, 사건의 경위와 진상은 무시하고 무조건 ‘굴뚝을 닫아 버리 듯’이 말이 다. 아직도 우리들의 기억 속에 생소하지 않은 ‘한 사건’을 예로 삼아 보겠다. 지난 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당시, 금메달을 기대하며 뜬눈으로 밤을 세웠던 국민들의 성원에도 불구하고, 우리 올림픽 팀들은 기대 이하의 초반 성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뭔가 ‘기사 꺼리’를 고국의 품안에 안겨 주어야 했던 현지 특파원들은 ‘껀수’ 찾 기에 나섰고, ‘굶주린 맹수의 손아귀’에 걸려 들은 선수는 어김없이 허재였다. 정 작 허재 본인의 말에 따르면 그 당시, 후배 정재근과 현주엽의 생일이 끼여 있는 날 밤, 그들의 생일 사실을 알게 되었고, “형이 그럼 간단하게 술 한잔 사 줄께.” 하 고 후배들을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그의 증언에 따르면 “정말 cool하고 gentle하 게 한잔씩 하고 돌아왔다.” 라고 한다. 당시 언론의 보도와는 달리, 술을 마시던 장소에서 교민들과의 시비도, 주먹 다짐도 없었고, 그냥 조용히 가서 한잔씩 하고 조 용히 돌아왔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선수촌에서, 최인선 감독은 얼굴이 ‘하얗게 질 려서’ 전날 밤 술 마시러 나간 선수들을 추긍했고, 허재는 또 한번 별 생각 없이 손 을 들었다. 같은 시간 한국에서 신문을 펼쳐 든 팬들이 읽어 내려간 동일한 사건에 대한 보도와 해석은 분명 차이가 있었다. 그의 말이 100% 사실이라고 믿을 이유는 없지만, 허재의 말과 기자들의 말 중 한쪽에 돈을 걸라면 필자는 분명 허재쪽에 건 다. 그렇다면, 앞에서 짚어 본 허재의 수 많은 ‘전과’는 어느 정도가 사실이었는 지 대충 짐작이 가리라 본다. 언제부터 인지 비교적 ‘조용히’ 살고 있는 허재의 지나간 사생활을 까뒤집어서, 맹 목적으로 그의 과거에 대한 대변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인간 허재’의 모습을 밝히는 과정에 있어서, 그를 가장 곤란하게 만들었고 소위 그의 ‘이미지를 구 겼던’ 사건들에 대한 배경과 분석, 그리고 나름대로의 ‘반증’ 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 그럼 여기서 그의 ‘전과’를 한번 분석 을 해 보자. 허재의 사생활과 관련된 기사 제목들은 대부분 3가지 부류로 나뉘어 진 다. ‘술, 스캔들, 그리고 지도자와의 갈등…’ 정도로. 이 세가지 ‘단점’만 뺀 다면, 아마도 그는 지금의 박찬호, 박세리 이상 가는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되기 에 전혀 손색이 없는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 협회, 언론, 그리고 일부 팬들의 ‘허재 죽이기’에 대한 공식적인 사유도 이 세가지 단점 때문이었다. 그 동안 허재를 취재하면서 들은 주위 측근들의 ‘증언’에 의하면, 허재의 인생에 있어서 ‘술과 여자’는 따로 분류되기 힘든 ‘종목’이다. 허재가 일부러 ‘연예인 후리기’ 작업에만 매진한 것도 아니고, 그 정도로 여자에 미쳐있는 인간도 아니다. 우리 일반인들과 똑같이, 허재도 술을 마시는 과정에서 주위의 여자들과 어울릴 수 있었던 것이고, 걔 중에 여배우들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해석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 다. 그렇다고 허재가 무슨 여배우들을 강제로 ‘겁탈’한 것도 아니고… 사실 우리 스포츠 신문들이 ‘선데이서울화(化)’만 되지 않았더라도 혈기 왕성하고 매력 있는 총각 스타가, 놀기 좋아하고 멀쩡한 여배우들을 상대로 좀 만났다는 사실이 ‘인간 쓰레기’ 취급 받을 일은 더더군다나 아니다. 또, 필자가 보기엔, 사회적으로 물의 를 빚은 일부 ‘강간 사건’을 제외한다면, 남-녀 관계야 말로 ‘마주 쳐야 소리가 나는 현상’ 이라고 본다. 해서, 허재와 관련된 ‘스캔들’로 비롯된 그의 ‘인간 성’에 대한 평가는 그 누구도 왈가왈부할 부분이 아니라고 결론 짓는 바이다. 문제는 술이다. 허재의 ‘인생과 술’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미루기로 하자. 하지 만, 허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술을 즐기는 부분 조차 부인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금새 깨달게 될 것이다. 그만큼 허재는 술을 가까이 해왔다. 하지만, ‘허재는 술을 저렇게 마셔대니 죽일 놈이다’ 라는 말 보다는, 그가 왜 그 리도 술을 가까이 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설명이 좀 더 신선한 접근이라고 생각된 다. 그 부분에 대해선 그 어떤 언론도 시원하게 밝혀 주지 못 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허재가 그 동안 겪어 왔던 지도자, 아니 ‘스승들과의 마찰’ 설이 있 다. 실제 가장 노골적으로 언론에서 이슈화 되고, 당시 농구판을 제대로 뒤집어 놓 았던 사건은 바로 1990년 코리안 시리즈에서의 기아 ‘8전 전패’ 사건이다. 이 사 건을 두고 언론에서는 대뜸 ‘사보타지’, ‘항명’, 또는 ‘하극상’으로 단정 지었 고, 그 유례없는 ‘파문의 진원지’엔 허재 이름이 우뚝 솟아 있었다. 일제히 ‘주 모자’로 허재를 운운하였고, 기아 팀 내부적으로도 ‘중대 파 vs 연대 파’의 골이 깊어 가고 있었다는 가정 하에 허재는 ‘스승을 몰아 내는 배은망덕한 인간’으로 낙 인이 찍혔다. 보도된 바에 의하면 그 사건의 발단은 대충 이렇다. 1990년 2월, 당시 기아산업 팀 의 선배 김유택은 ‘간통 사건’으로 팀 합류가 불가능한 상태였고, 강정수, 한만성 등 팀의 기둥 선수들이 모조리 부상에 시달리고 있었을 때, 허재 역시 고질적인 허 리 통증과 코뼈 부상으로 급기야 중대 부속 용산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되었다. 농 구 대잔치 2연패 달성을 위한 챔피언 결정전을 목전에 두고, 팀의 핵심 전력은 흔들 거렸고, 방열 감독 마저 얼마 전 있었던 심판에 대한 욕설 행위로 경고 처분을 받 은 상태라서 기아 농구단의 분위기는 어수선할 때였다. 입원 중이던 허재는 팀의 2 연패를 위해 이불을 걷어 차고 코트로 복귀했고, 그의 플레이는 팀 우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허재와 방열 감독의 갈등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농구대잔치 내내 ‘펄펄 날랐던’ 허재를 제쳐두고 방열 감독은 챔프 결정전의 수훈갑이자 MVP로 유재 학을 추천했다는 후문이 있었다. 이를 보고 광분한 허재와 그의 아버지 허준씨는 구 단에게 강렬하게 항의했다고 하고, 결국엔 허재 입에서 ‘연대 출신 방열 감독이 연 대 후배를 싸고 돈 결과’로 단정 지었다는 얘기다. 이 사건의 찜찜한 결과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더 큰 ‘혁명’을 초래한다. 그 후 벌어진 코리안 시리즈에서 기아 농구단은 ‘8전 전패’라는 믿을 수 없는 부진을 거 듭했고, 나중에는 ‘허재가 주동하여 져 주기 경기를 지휘했다’고 한다. 더 이상 선수들에게 작전도 지시도 먹히지 않는 상황을 직감하고 방열 감독은 구단에 사표를 제출했고, 구단 측에서는 사표를 수리 했다. 그리고는 바로 중대 출신 코치였던 최 인선 씨를 ‘기아 호’의 새로운 선장으로 임명했다. 그 당시 언론의 해석에 따르면, ‘결국 기아가 방열 감독과 연세대 파를 버리고 허재와 중앙대의 인맥 쪽의 손을 들 어 줬다’고 한다. 자, 도무지 이 무슨 해괴망측한 얘기란 말인가? 또 한번 언론 측의 보도를 순수히 받아 드릴 것인가? 아니면, 그 내막을 파헤쳐 봐야 하는 것인 가? 여기서 필자는 다시 한번 ‘부분적 사실론’에 충실하고 싶다. 더 자세한 배경 은 나중에 소개 될 ‘후추 노컷 인터뷰’에서 생생히 소개 되겠지만, 한가지 짚고 넘 어가야 할 부분은, 이 ‘사건’이 있은 후로 허재의 ‘일대기’를 담은 신문, 잡지, 그리고 책… 전부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허재의 운명이 바뀌게 되었다’ 고 말했다. 허재의 이런 ‘음모설’은 농구 협회 관계자, 언론인, 그리고 일부 팬들로부터 ‘평 생 괘씸죄’ 를 적용받기에 부족한 면이 없었다. 허재의 대학교 진학 과정에서도 연 -고대는 중앙대에 쓴잔을 들어야 했고, 연-고대 인맥으로 명문 팀의 전통을 이어가 던 삼성-현대 역시 중앙대의 ‘기아 몰아주기’로 허재 영입에 실패했고, 결국엔 연 대 출신이었던 농구계의 지장 방열 감독마저 ‘중대=허재’ 와의 한판 승부에서 KO 패를 당했으니, 연-고대 출신이 ‘주류’로 장악하고 있었던 농구계와 언론계에서 ‘꼭지’가 돌아 가지 않을 수 없었던 일이었다. 지난 몇 십년 동안 농구계의 ‘언 터쳐블’로 군림해 온 연-고대 출신들이, 허재라는 ‘중대 출신 애숭이’ 하나 때문 에 체면이 말이 안 되는 꼴이었다. ‘스승을 배신하는 놈’ 이란 이유와 같이 우 리 국민들의 ‘유교적 정서’에 어필할 수 있는 명분이 이말고 또 있었을까? 연-고 대 동문들을 비롯하여, 농구계 원로들은 ‘두번 다시 기아에는 연-고대 출신을 보내 지 않겠다!’고 공언하였고, 연-고대 출신이긴 다 마찬가지였던, 심판, 언론, 그리 고 일부 엘리트주의 팬들의 시선은 곧 허재를 ‘갈아 마실 듯한’ 자세였다. 모름 지기 이 사건을 빌미로 허재를 취재하는 언론의 왜곡된 보도 현상, 그리고 심판들 의 편파 판정, 선-후배들의 ‘왕따 현상 및 폭행’, 그리고 일부 팬들의 ‘싸가지 없는 허재’ 주장은 더욱 더 심해졌던 것이다. 자, 그럼 허재는 왜 굳이 이렇게 ‘어려운 길’을 선택한 것일까? 애당초에 왜 ‘연 -고대 타도’ 심리가 발동된 것일까? 그 배경에는 전 중앙대 정봉섭 감독의 야심이 직결되어 있다. (허재 부친 인터뷰 참조) 더불어 허재의 ‘선천적 도전 / 경쟁 의 식’, 부친 허준 선생의 ‘의리 주의’, 그리고 ‘대학 농구의 기량 평준화’라는 그 럴싸한 ‘간판’이 뒷받침 되었기에 허재와 정봉섭 감독의 ‘엘리트주의 타도’ 외침 은 우렁차게 퍼져 나가게 된 것이다. 그 후 허재가 TV 화면에서 보여준 심판 판정 에 대한 거친 분노, ‘실력으로는 안되는’ 선배들에 대한 반항, 그런 모습을 지켜 보는 팬들의 외면… 이 모두가 복잡하고도 교묘하게 뒤엉켜 있었다. 다시 말해, 허 재의 ‘인간성’을 탓하며 그를 깔고 뭉개기엔 공개되지 않은 너무나 많은 내막이 있 었다는 얘기다. 결과론적으로 볼 때, 허재의 ‘그때 그 사건’은 우리 농구계에 크나 큰 파문을 남기 게 되고, 그로 인해 우리 농구계는 전례 없는 ‘과도기’를 맞이하게 된다. 정작 지 금 허재 본인은 이 ‘사건’에 대해서 그다지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는 듯 싶다. 그의 성격 상, 그렇게 구체적이거나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본인을 싫어하는 협회, 언론, 팬들이라 할지언정, 그렇게까지 치밀한 계획과 지저분 한 의도하에 자신을 묻어 버리리라곤 그의 상식 선에선 이해를 못 하는 듯 싶다. 철 저하게 비공개적으로 이루어진 ‘왕따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나이 서른 다섯에 접어 든 허재가 아직까지 그 일 때문에 혼자서 끙끙 앓고 있을 성격도 아니다. 하 지만, 그 후로도 그가 ‘징계’를 당하거나 ‘불 이익’을 당했을 때에는 본인의 입 에서도 ‘내가 만약 연-고대 출신이었다면 이런 일은 안 당했을 것이다…’ 라는 투 로 얘기가 나온 적이 있다고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농구 외적인 요소’들로 인해 허재는 오기를 불 태우며 운동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며, 지금의 ‘농구 천재 허재’를 만들어 놓았을 수도 있다. 반면, 허재 개인을 평가하는 측면에서는 ‘그때 그 사건’이야말로 평생동안 허재의 성격을 평할 때 마다 따라 다니는 “허재, 농구는 잘하지만….” 이란 말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미 10년 전부터 이 모든 ‘내막’이 공개 된 상태에서 그의 농구를 관전하고 그의 ‘인간성’을 들여다 보았다면, 과연 그는 어떤 인간성의 소유자로 팬 들에게 기억될지 궁금해 진다. 그 어떤 조직, 어떤 기업에서도 이런 보이지 않는 ‘음모’, ‘배척’, 또는 ‘줄 서기’ 와 같은 지극히 정치적인 요소들을 완전히 배 제할 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니 그런 부분들을 일일이 다 알 수 없는 우리 팬 들의 입장이라면, 농구 선수를 그저 농구 선수로만 평가해 주고 인정해 주는 풍토가 왜 그리도 받아 들이기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인간 허재’와의 하루 저녁…. 1999년 10월21일. 허재의 ‘삶’에 대한 진솔한 인터뷰를 하기 위해 필자는 강남 어 느 한 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그날 밤의 이야기에 앞서, 허재와 필자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선행된다면 독자들 역시 좀 더 쉽고 객관적으로 ‘인간 허재’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 질 수 있다고 믿는다. [ 허재와 필자는 지난 10월 12일 처음으로 만난 사이다. 허재 ‘명예의 전당’ 취재 건으로 나래 (삼보)의 전창진 코치를 만나기 위해서 원주를 찾았을 때였다. 성균관 대와의 연습경기가 벌어지고 있던 치악체육관. 경기 후 ‘베켓’이라는 잡지사에서 도 허재 선수 인터뷰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고, 나머지 선수들은 팀 버스로 이 미 숙소로 행하고 있었다. 전코치의 배려 하에 필자와 전코치는 허재를 만나기 위해 필자의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약 20분 간의 인터뷰를 마치고 치악체육관 야 외 벤치에서 ‘베켓’과의 사진을 한장 찍은 후 허재는 필자의 차에 올라 탔다. 허재: ‘이거 누구 차예요?’ 전코치: ‘음… 너 취재 하러 오신 이분 차다.’ 허: ‘어…’ 전: ‘너 임마, 니 명예 회복 시켜주겠다는 분이야. ‘후추’라는 그 인터넷 상에서 나오는 잡지…’ 허: ‘내 명예요? 츠… 대한민국에서 내 스토리 모르면 뭐 좀 잘못 된 사람 아닌가?… 그 인간 젊었을 때는 ‘망나니’였고, 나이 좀 들어서 좀 ‘인간 됐다는…뭐 그게 내 스토리 아니야..? ^^’ 나래 팀 숙소로 이동을 한 후에, 전코치의 옆방을 쓰고 있는 허재는, 전코치 인터뷰 도중 간간히 전코치 방으로 들어와서 ‘뭔 소리들을 하나..’ 하는 표정으로 중간중 간에 ‘훈수’를 두곤 했지만, 밤 8시쯤 땀복을 끼여 입고 웨이트 트레이닝 장으로 혼자 개인 훈련을 하러 나갔다. 그리곤 한 두시간 정도 있다가 다시 전코치 방으로 들어온 허재는 “아직도 이야기 중이야?” 하며, 전코치 침대 위에 털썩 주저 앉았고 그 후론 이얘기, 저얘기를 나누 며 금방 ‘형-동생’ 하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운동 얘기, 술 얘기, 가족 얘기…등 을 나누면서 다 큰 남자 세명이서 좁은 방에 앉아서 깔깔거리며 이야기를 해 나갔다. 밤 12시가 다 되어 서울로 돌아 오려고 문 앞을 나서는 필자를 행해, “잘 가라… 운 전 조심해서 가고…’ 라는 소리로 배웅을 해 준 허재의 모습을 보며 헤어진 것이 그 와의 ‘첫 만남’ 이었다. 그 후로 허재의 부친과 부인의 인터뷰 성사 건으로 핸드 폰으로 두어번 그와 통화 해 본 것이 그와의 ‘교류’ 전부였다… ] 이제 다시 지난 10월 21일로 날짜를 돌리자. 투어 챔피언쉽 대회가 끝나고, 좀 여 유로운 환경에서 그와의 보다 이색적인 인터뷰를 추진하기 위해 때를 기다리고 있던 후추 편집진은 지난 목요일 (21일) 아침 전창진 코치와 전화를 한다. 4일 간의 휴 가를 받아서 서울 나래 구단 사무실로 출발하려고 하니, 그곳에서 만나자는 제의였 다. 애당초 전코치의 인터뷰 문제로 나래 구단의 최형길 사무국장과 유선 상으로 인 사를 드린 적이 있었지만, 찾아 뵙고 인사 드리는 것이 도리다 싶어 오후 1시쯤 서 울 역삼동에 위치한 나래 사무실을 찾았다. 그곳에선 한창 나래의 새 이름 ‘삼보’ 의 닉네임 결정을 위한 ‘브레인 스토밍’ (아이디어 회의)가 진행 중이었고, 선뜻 필자의 의견을 물어보는 최국장님의 질문에 후보작 중에 하나였던 ‘Axess’ (엑세 스) 라는 이름을 필자는 지지했다. 필자의 ‘전과’ 때문에라도 그런 ‘네이밍 작 업’은 익숙 해 있었던 터라 발음하기 쉽고, 삼보 컴퓨터와도 거리감이 없고, 네티즌 들에게도 생소하지 않은 단어. 그리고 ‘X’ 라는 강한 느낌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서 ‘액세스’를 추천했고, 아울러 Secondary Logo로서 ‘XS’ 라는 로고 표기법도 등록을 하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날 밤 식사 자리에 동참한 최국장님 얘기에 따르면 (조만간 정식 발표가 있겠지만) 내부적으로는 ‘삼보Xers (액서스)’ 라고 최종 합의 가 되었다고 한다. 1시간 정도 나래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허재와 신기성 (작년 시즌 신 인왕)이 걸어 들어왔다. 오전에 전코치를 통해서 ‘저녁 식사를 겸한 후추 노컷 인 터뷰’를 승낙 받아 놓은 상태라 그런지 허재는 반갑게 후추 취재진을 맞아 주면서 필자에게 한마디 던졌다. “야, 넌 그 꼴로 어디 같이 다니겠냐?^^ 집에 가서 옷 갈 아 입고 와라…” 깨갱… 실제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후추인’이 된 후, ‘양 복-넥타이’ 착용한 기억도 멀어져 버린 필자였지만, 휴가 나온 허재의 옷차림을 보 고선 위축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초록색 남방, 검은 색 바지, 회색 자켓을 걸친 허 재는 지난번 숙소에서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고, 큰키가 더 커 보이는 정말 모델 뺨 치는 분위기였다. “6시쯤 핸드폰으로 전화 해라.” 라는 말 과 함께 허재와 신기성은 어디론지 사라져 버리고, 츄리닝 바지 차림으로 허재에게 한방 먹은 필자는 집으로 차를 몰았다. 간만에 머리에 ‘풀칠’하고, 다려 놓은 바 지, 난방을 걸쳐 입고 6시쯤에 다시 강남으로 복귀. 허재에게 전화를 했다. “미리 저녁 식사 장소를 예약했는데요… 조용히 얘기할 수 있는 방으로… 그리로 오시죠.” 했더니, 허재가 대뜸 하는 말… “아니, 거기보다 내가 가고 싶은 식당이 있으니까, 그리로 가자. 뭐, 거기서 우리끼리 얘기하면 되지…” 계획은 또 한번 빗나가고 6 시 반쯤에 약속 장소인 강남의 한 일식집에서 그를 만났다. 이게 왠걸… 허재의 테 이블에는 이미 나래의 최국장님, 신기성, 그리고 허재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소개를 하는 중앙대학교 동기 동창 ‘유무열’씨가 앉아 있었다. 생각보다 좁은 일식집에 앞,뒤 테이블에 사람들은 많고…. 인터뷰하기엔 최악의 조건이았다. “그럼 인터뷰 는…” 하는 필자의 질문에 “어… 그거 뭐 그냥 얘기하면서 대충 하지…” 음냐리… 왠지 하루 종일 일진이 안 좋다 싶어 약간의 불길한 기분으로 그를 만났지만, 이렇 게 뭐가 안 맞아서야… 조용한 식당 방에서 단둘이 앉아 소주 한잔 걸치며 차근차근 녹음 해 가면서 물어보려 했던 수 많은 질문들과 후추 독자의 ‘궁금증 해소’ 계획 은 이렇게 날라가 버렸다. ‘명예의 전당’ 원고 마감일, 그 외 편집 스케줄 등을 고려할 때, 크나 큰 차질이 아닐 수 없었지만, 왜 결과가 이 모양이 되었는지 나름 대로 앉아서 분석하려고 했다. 일단, 모처럼 휴가를 얻은 허재에게 휴가 첫날부터 저녁시간을 비워 달라는 후추의 생각이 약간은 ‘당돌’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 중에 안 사실이지만, 허재는 이미 어느 순간부터 필자를 ‘웹진 편집인’으로 인식 하지 않고, ‘아는 후배’ 정도로 생각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지난 번 원주 숙소 에서의 ‘담소’가 약발을 톡톡히 보인 셈인지, 아니면 그런 것이 허재의 성격인지는 몰라도 하여간 뭔가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지는 않는 듯한 느낌임 엔 분명했다. 허재 의 ‘벗’ 유무열씨를 만나서 얘기하는 허재의 표정은 부러울 정도로 정감 있어 보였 고, 얼마 전부터 시작한 골프 얘기, 그리고 투어 챔피언쉽 얘기…등을 나누며 테이 블의 분위기는 말 그대로 화기애애 그 자체였다. 허재의 관점에서 볼 때 그 자리는, ‘본인이 좋아하는 사람들, 그리고 본인을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한잔 꺾으며, 웃 고, 얘기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자리’ 였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하늘이 무너져도 그 분위기 다 망 가뜨려 가며 후추 인터뷰를 꼭 해야겠다.’ 라고 말할 자신도 없었고, 그런 ‘이기주 의 적인 생각’도 없었던 필자는 일단 과감히 전술을 바꾸기로 했다. 정식 인터뷰는 빠른 시일 안에 다시 날짜를 잡더라도, 그 자리에서 만큼은 철저하게 ‘허재와 한패 거리’가 되어서, 그의 코트 밖에서의 삶을 직접 체험하기로 말이다. 어찌보면, 딱 딱한 인터뷰 환경보다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그리고 허재가 어울리는 사람들을 통 해서 그의 삶을 들여 다 보는 것만큼 ‘리얼 (Real)한 취재’가 또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나래 농구단의 사무국장이 주관 (?) 한 그 식사 자리에 참 석했던 5명의 남자들은 약 두시간만에 소주 8-9병을 비워 버렸다. 술 잘 마시기로 소문난 농구인들 사이에 낀 후추 주방장. 처음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직감하고, ‘저 페이스로 같이 대작하다간 난 오늘 구급차에 실려 간다.’ 라는 생각이 들었지 만, 마주 앉아 있던 허재의 ‘악의 없는’ 는 한마디에 곧 ‘이판사판’이 되어 버린 다. ‘야, 한잔 하자.’ 신기성 선수를 제외하면 전부 필자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 들을 앞에 두고 먼저 ‘술이 떡이 되어서’ 혹시라도 실수하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지, 전혀 술이 올라오지 않는 필자의 모습을 보고… ‘그래, 오늘 한번 붙어 보는 거야!’를 속으로 외쳤다. (미친 X) 나래의 최국장님이 제일 먼저 말소리가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했고, 구단 프런트 ‘대빵’의 인솔 하에 ‘2차’를 향하여 최국장님의 단골집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 리고 그곳에서의 추후 2-3시간 동안의 ‘무대’에 대해선 생략한다. 허재의 사생활 침범 수준을 넘어서 필자의 사생활 침범이 더 염려 되기 때문이다. ? 직장 생활을 경험해 본 독자들 중에, ‘부서 회식’ 또는 대학생 독자들의 ‘종강 파티’와 전혀 다를 것이 없는, 극히 자연스럽고 ‘인간미 넘치는’ 자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허재와는 용산고 4년 선-후배 지간이기도 한 최국장님의 ‘한턱 쓰는 자 리’가 아닌가 싶었다. 그 동안 합숙하느라 고생한 몇몇 각별하게 친하게 지내는 후 배들을 위해서 말이다. 무턱대고 마시고 즐기기엔 너무나도 후추에 대한 생각이 많 았던 필자는 순간순간 정신을 추스려 가며 그 자리에 참석했던 사람들에게 개인적으 로 접근을 시도한다. ‘이 아니면 잇몸으로’ 정신을 발휘하여, 이왕에 만나게 된 허재의 측근들과 ‘인간 허재’에 대한 질문들을 허재 모르게 던져 보았다. 다들 어 느 정도 술 기운이 올라 있었던 상태라 ‘바른 생활 랭귀지’는 기대하기 힘들었고, 그냥 들은 대로만 올려 본다. 먼저, 상석에 앉아 계시던 나래의 최국장님과의 대화… 필자: “허재 선수의 인간적인 매력은 뭡니까?” 최국장: “저눔…저거… 난 저 인간 처음에 되게 싫어 했다고… 내가 쟤를 용산중학 교 시절부터 봐 왔어. 그래서 저 인간이 “나 술 끊을 겁니다.” 라는 소리는 이제 죽어도 믿질 않지. 그건 난 포기한 사람이야. 왜? 그말을 믿고 있다가 나중에 당 하는 것보단, 저눔의 그런 부분은 그냥 인정 해 주는 게 나도 마음이 편하니까. 우 리 모두 저런 부분이 있잖아. 한잔 하고 싶을 때 실컷 마시고 그 동안 쌓이고 스트 레스 받은 것들 다 풀어 버리고… 허재도 그래. 쟤라고 왜 그런 게 없겠어? 저게 바 로 ‘허재의 인간미’야. 쟤는 저게 다야. 농구하고 술, 그리고 가족..정도? 그게 다라고… 참~ 불쌍한 놈이야, 어떻게 보면. 다른 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잖 아. 쟤를 진심으로 이해 해 주고 아껴주는 사람들은 몇 없으니까. 너무나 ‘어린 애’ 같은 부분도 있지, 허재는. 아까도 봐, 그 식당에서. 쟤는 술 마시면서 옆 테 이블 누구 눈치보면서 할말, 못 할말 가려가며 목소리 낮추고 조심하고.. 이런 게 없 는 애거든. 너무 단순하고 순진해서 문제지.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몰라도, 난 지 금도 허재가 어느 경기에 나가서 어렵게 한골을 넣는다든지 그러면… 정말 가슴이 다 찡해진다고… 그냥 그래. 쟤가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면 이젠 그냥 마음이 찡해와. 쟤가 그 동안 살아 온 인생과 농구.그런 것들이 무의식 중에 떠올라서 그런 거겠지. 그리고 나서 적당히 술에 취해 즐기고 있는 허재의 모습을 또 한번 바라 보았다. 그 리곤 필자 역시 최국장이 얘기하는 그런 일종의 ‘슬픔’을 느끼게 되었다. ‘대한 민국이 낳은 최고의 농구 스타 허재. 그런 사람이 ‘농구 천재의 일상’에서 도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저것 뿐인가 보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허재가 술 마시고 노는 방법? 우리 ‘일반인’들하고 다를 게 하나도 없었다. 우리하고 똑 같았다. 물론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필자는 허재가 술 마시고 즐기는 모습보다 ‘더 한’ 사람도 본적이 있고 ‘덜 한 사람’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다. 그저 우리 일반인들이 우연히 그런 술 마시는 장소에서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있는 허재를 목격한다면, 일시적으로 생기게 되는 그런 ‘당혹감’ 때문에 허재에 대한 오 해가 많이 발생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항상 ‘나하고는 다르게만 살 것 같은 슈퍼스타’를 우연히 마주치게 됐다는 일시적인 당혹감에서, 혹자는 ‘그래, 그 럴 수도 있지, 저 인간도 사람이니까.’ 하는 생각을 하는 반면, 대부분의 경우, ‘ 저거 저거… 정신 못 차렸구먼… 술 먹고 노는 것도 완전 개같이 노는구먼.’ 하며 곧 바로 냉정하게 ‘재고의 문’을 그 순간에 닫아 버리는 것처럼. 우리들도 모두 한번쯤은 그렇게 술 마시고 즐긴 적이 있으면서 말이다. 다음엔 허재가 가장 좋아 하고 잘 어울리는 친구 유무열씨와 짧은 대화를 나눠봤다. 필자: 허재 선수는 언제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까? 유무열: 쟤를 처음 본 건 대학교 1학년 때이지. 나는 그 당시 중대 축구부 소속이 었고, 쟤는 농구부 였지만, 쟤가 중대에서 운동하는 애들 중에 동기가 없었거든. 그래서 우연히 알게 되었지만, 둘 다 술 좋아하고 그래서 금방 친해졌고… 허재가 “나 이제 술 안 마셔.’ 하는 말은 한 289번쯤 들었어 ? 근데, 쟤는 술 마시는 것 하고 농구는 정말 별개야. 그리고 항상 무슨 안 종은 일이 생긴 후엔 꼭 농구코트에 서 보상을 했지. 항상 그랬어. 내가 쟤 농구 하는 걸 정말 수도 없이 봤지만, 농구 에 있어서는 난 쟤를 믿어. 한다면 꼭 했으니까. 어렸을 때는 시합전날 둘이서 술 마시면서 내기를 했지. 다음날 허재가 경기에서 몇점을 넣을까 말야. 예를 들어, 뭐.. 나는 ‘이렇게 술 마시고 내일 허재는 20점도 못 넣는다.’ 하면, 허재는 죽어 도 넣는데. 그렇게 내기해서 내가 한번도 이겨본 적이 없지. 허재가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해서는 일단 모두가 그냥 그렇게 인정을 해 줘야 하는 부 분 같았다. 그는 알코올 중독도 아니고, 술만 마시면 ‘개가 되는’ 스타일도 아니 었다. 아주 어려 서부터 갑갑하게 구속성 짙은 합숙이 끝나고 친구, 후배들이랑 어 울려서 한잔 하는 것이 습관이자, 생활처럼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그렇 게 술을 자주 마시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탁월한 체력 때문에 술을 마셔도 금새 취 하지 않기 때문에 주량은 끝이 없다는 말을 듣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도 체력 이 다 되어가는 것인지, 그날 ‘2차’가 끝날 무렵에는 그 역시 많이 취한 모습이었 다. 그 술 마시는 것 때문에 그는 숱한 파문과 구설수의 대상이 되어 왔다. 어찌 보면, 그가 술을 좋아하고 즐기는 것 때문에 코트 밖에서의 혹평을 받았는지도 모른 다. 그날 허재는 그런 얘기를 했다. 다음주 월요일부터는 한동안 술 마시지 않는다 고 말이다. 측근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볼 때, 이런 허재의 다짐은 ‘공수표’로 끝 나 버릴 수도 있는 확률이 더 높지만, 필자는 왠지 그 말에 믿음이 갔다. 얼마 남 지 않은 그의 현역 생활에 대한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서 어느 때보다 열심히 훈련을 하고 ‘독기’를 품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 한번 ‘독기’를 뿜으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는 우리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엔 스물 다섯살의 막내둥이 신기성 선수와 대화를 꺼내 봤다. 워낙 허재와 나이 차가 나고 (10년!), 신기성의 심성 역시 선배를 깎듯이 모실 줄 아는 스 타일이라서 그런지, 허재의 ‘수반’을 도맡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허재한테 욕은 또 욕대로 먹는 신기성이었다. 코트 안팎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런 허재의 ‘욕설’은 결코 신기성이 미워서 하는 욕설이 아니라는 것은 지내다 보면 금새 알아 차릴 수 있었다. 그게 후배들을 대하는 허재의 모습이었다. 정말 그가 신기성을 ‘미워’ 했다면 신기성의 차를 얻어 타고 서울까지 올라 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신 기성을 데리고 밥이며 술이며를 사 먹이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런 듣기 싫지 않은 욕지거리를 퍼부어 대지도 않았을 것이다. 필자: 후배가 보면서 느끼는 허재 선수는 어떤 사람입니까? 신기성: 허재 형이요? 죽이죠 (엄지를 내밀며)… 농구 잘하는 것은 다 아실테고, 허재 형은 정말 한다면 해요. 요즘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팀에서 제일 열심히 해요. 용병들 보다도 더 열심히 하니까, 옆에서 허재형 웨이트 하는 것 보면 정말 무시무시 하다니까요. 그리고 허재 형 술 마시는 것은 아무도 걱정 안 해요. 모르는 사람들이 나 그러지, 저러면서도 운동 할 때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잘 하니까요. 저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니면서 운동을 해왔지만, 농구 선수가 하루 술을 마시면 몸이 완 전히 회복되기 까지 1주일이 걸린다고 배워왔어요. 근데 허재형을 보면서 ‘그 말도 사람 나름이구나…’ 했어요. 허재형은 저렇게 술 마셔도 그 다음날 경기 하는 것 보면 정말 끝내줘요. 한다면 한다니까요. 저로선 사실 허재형 같은 선수와 같은 팀 내에서 뛴다는 사실만으로도 영광이지요. 그리고 운이 참 좋은 거고요. 이때 화장실을 갔다 온 허재가 신기성하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필자의 모습을 보며 큰 소리로 얘기한다. 이미 술한테 ‘한풀 꺾인’ 상태의 목소리로 말이다. “야, 너 사업 얘기하려면…그냥 나가라… 여기까지 와서 무슨 사업 얘기냐…” 허재는 술 마시고 즐기는 순간만큼은 다른 생각을 별로 하고 싶지 않았던 거였고, 늘 그런 식이었던 것 같다. ‘놀 때는 노는 것만 열심히, 운동할 때는 운동하는 것에만 열심 히’ 처럼 말이다. 그리고선 신기성이 허재한테 말을 부친다. 신기성: 형, 이번 시즌에 우리 꼭 우승 하는 거죠? 전 정말 이번 시즌이 마지막 찬 스라고 생각해요. 형이랑 같이 뛸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르는데, 우리 꼭 우승 해야 되요. 허재: 기성아…기성아, 야이 자식아… 너 형 믿지? 너 형 믿지? 형은 한다면 한 다. 형 휴가 끝나면 술 안 마신다. 그리고 운동만 할 거다. 꼭 할 거다. 허재가 술 마시고 남들 표현대로 ‘흥청망청’ 놀 때는 선-후배 간에 이런 얘기가 오 간다. 아니, 우리 모두 다 학교, 직장 선-후배들과의 술 자리에선 이런 ‘끈끈하고 맨 정신으로 할 수 없는’ 얘기가 오가기 마련이다. 후배가 선배를 믿고 의지하는 모습. 술 취한 중에라도 이런 모습을 보면서 허재는 ‘농구 할 마음’을 다시 불 태 우고 다음 날 아침 또 운동화 끈을 매는 것이 아닐까? 허재가 그렇게 살아 온지 어 느덧 25년이 다 되어간다. 그리고 이젠 그것이 생활이 되어 버렸다. 필자가 그날 저녁 허재와 보낸 5-6시간 동안의 경험은… ‘벌거벗은 허재’에 대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어떤 잡지 인터뷰 또는 어떤 ‘허물 없는 식사 자리’에서도 느낄 수 없는 그런 소중한 ‘발견’을 한 셈이라고 본다. ‘술과 허재’, 이는 사 실 따로 떼어서 볼 수 없는 허재의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독하 게 떳떳한 사람이다. 특히, 술 마시는 것에 대해선 더욱 더 그렇다. 그는 ‘술 때 문에 운동 조진’ 경험은 몇 차례 없기 때문이다. 술 때문에 삭발도 해 보고, 술 때 문에 쇠고랑도 차 봤지만, 술 때문에 시합을 망친 날은 별로 없다. 자, 이쯤 되면 독자들은 그런 생각이 들 법도 하다. ‘그럼 그가 술을 안 마시고 농구를 했다면 도 대체 얼마나 더 잘 했을까…’ 라고 말이다. 필자 역시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들의 상상으로만 간직하기로 하자. 그 부분까지 허재에게 강요한다는 것 은, 너무나 많은 것을 그에게 요구하는 셈이자, 인생의 ‘유일한 낙’마저 빼앗아 가는 행위이다. 허재가 술 마시는 모습을 보면서 실망감이 들었다기 보다는 왠지 모 르게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구 선수’가 아닌 ‘슈퍼맨’을 요구하는 우리들 의 과욕 때문에, 그리고 무슨 이유 때문이든 ‘허재’의 ‘더러운 성격’만을 이슈화 해서 보도하는 언론 때문에… 결국 그가 마음 편하게 안식처를 찾을 수 있는 길은, 잠시나마 술에 취해 이것 저것 다 잊고 지내는 방법밖에 제공 해 주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는 ‘죄책감’ 때문에 말이다. 다음날 아침 필자에게 뜻밖의 전화가 한 통 온다. 허재였다. “허재 형이다. 어제 잘 들어갔냐? 덕분에 재미있게 잘 놀았다. 오늘 또 한잔 해야지 ^^… 인터뷰는 주 말 쯤에 다시 하던지 하고 연락 하자, 나 분당 집이니까…” 하는 소리였다. ‘오만 하고 건방지기 짝이 없다’라고 평가 받던 ‘슈퍼스타 허재’가 하는 소리였다. 필 자가 무슨 대단한 언론기관의 편집장이라서 하는 ‘접대용 멘트’도 아니었고, 오랫 동안 ‘서로 피를 나눈 사이의 후배’에게 전하는 말도 아니었다. 극히 ‘인간적인 허재’의 모습으로 놀다가, 다음날 아침 술 덜 깬 목소리로 물어보는 극히 ‘인간적 인 안부 전화’ 였다. TV 화면에서 잠시 비춰지는 그의 모습을 보고 ‘허재, 인간 성 더럽다.’ 라고 단정하기엔, 우린 너무나 오랫동안 그를 ‘질투’ 해 왔고, 그에 대해서 잘 모르고 살아왔다. 그가 소중하게 생각 하는 것들은 무엇인지, 그가 증오 하는 것들은 무엇인지에 대해선 전혀 모른 채, 아니 ‘농구를 저렇게 잘 하는 인간에 게도 하나의 헛점은 있겠지…’ 하는 ‘호시탐탐 눈초리’로 그를 바라 본 것은 아닌 가... 흔히들 지적하는 허재의 ‘사생활’… 술 마신 뒤 운전해서 사고 내고, 여배 우들과 스캔들 내고, 키워준 스승들 몰아낸다는 그의 사 생활 중, 어느 언론에서도 과감히 밝혀 주지 않았던 허재의 ‘괜찮은 사생활’, ‘괜찮은 성격’을 한번 파헤 쳐 보려 한다. 농구 외에도 그에겐 많은 사람이 모르고 있는 ‘괜찮은 부분’이 많 이 있기 때문이다. ‘‘농구 선수이기 전에 남자이고 싶다.’ 머리에 든 것 별로 없고 공만 다룰 줄 안다는 운동 선수들의 ‘의리 타령’에 혹자는 고개를 흔드는 경우도 있다. ‘개뿔도 없는게 객기만 부린다.’라고 하면서 말이다. ‘블록버스터 급’ 홍콩영화를 보면서, 그들의 끈끈한 의리와 남자들 사이의 우정… 이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는 징한 감동도 받게 되고 부럽기까지 할 때도 있다. ‘내 가 만약 저런 긴박한 상황이라면 과연 저들처럼 ‘의리’를 위해 많은 것을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갖게 된다. 허재라는 남자, 사람들이 얘기하 는 의리파 운동 선수들, 그리고 남성미 넘치는 홍콩 배우들, 그 누구보다도 ‘남자 같이 사는 사람’이다. 그리고 필자는 그런 그의 모습이 분명 ‘장점’이자 ‘매력’ 이라고 본다. 다소 무모하고 거친 느낌도 없지 않지만, 그렇지 않아도 서로 간에 각 박해지고 인간미 없어지는 요즘 세상에, 허재처럼 ‘무협지 같은’ 인생을 추구하는 사람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싫지 않다. 똑똑하고 영리하게 살아서 ‘부자’ 되는 것 은 인정을 해줘도, 정직하고 의리있고 남자답게 사는 것은 오히려 ‘또라이’ 취급 받는 세상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허재가 그런 ‘의리’ 하나만으로 죽고 사는 인간이 되기까지엔 그의 ‘성장 환경’ 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평생을 군인으로 생활하신 아버님이 어린 허재에게 주입 시켰던 가장 중요한 ‘가정 교육’ 이란, 바로 항상 ‘남자답게 사는 법’, 그리고 ‘의리 있게 사는 법’을 되풀이 하는 것이었다 (부친 인터뷰 참조). 또 한가지 그 의 아버님이 허재를 어려 서부터 교육 시킨 부분은 ‘기 안 죽이기’ 였다. 허재 본 인도 세월이 흐른 지금, 웃으면서 말하길 “그때 너무 기를 안 죽여 놓으셔서…”라 고 할 정도로 농구하는 막내 아들의 기를 철저히 살려 주셨다. 용산고 시절, 후암동 일대의 분식집, 식당은 모조리 허재의 ‘부엌’ 이었다. 그의 아버님은 한달에 한번 씩 꼭 그 식당들을 돌아 다니시면서, 허재와 친구들이 먹고 외상 처리 해 두었던 밥 값을 결제해 주셨고, 그러면서도 식당 아주머니들에게 신신당부를 하시고 가셨다고 한다. “허재가 와서 먹고 싶은 게 있다고 하면, 돈 걱정하지 말고 꼭 먹여 달라’ 고 말이다.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 있기 마련이지만, 어릴 적부터 허재의 기를 이렇게까지 세워둔 아버님 덕분에 허재는 간혹 ‘안하무인’ 이란 말도 듣긴 하지만, 그의 이런 ‘꺾을 수 없는 기’ 때문에 그는 농구 경기의 마지막 슛을 항상 자청했고, 자신감 있게 꽂아 넣을 수 있는 것이다. 허재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의리’다. 이건 그를 아는 누구에게 물어봐도 같은 대답이 나온다.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잔 대가리 굴리 고, 쪼잔하고, 약아 빠진’ 성격을 제일 싫어한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과는 도저히 같은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다고 한다. ‘사회인 허재’의 자격으로 볼 때, 이런 허재의 성격은 그 누구와도 타협하지 못하는 ‘빵점짜리 성격’일 수도 있다. 하지 만, 이것 역시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정치인, 또는 공직자를 평할 때는 이런 성격을 보고 아주 대단한 사람이라고 칭찬한다. 대단히 ‘청렴결백’ 한 ‘대 쪽’이라고까지 표현하기도 한다. 허재가 욕 먹고 사는 이유도 결국 그가 ‘공인’ 이기 때문 아니었나? ‘공인’의 대상을 확대시켜 그를 비난 하기에는 역시 어설프 고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또 한번 받게 된다. 어찌 되었건, 허재가 ‘의리 없는 인간’을 경멸하는 수준은 상상을 초월한다. 필자가 그를 세번에 걸쳐서 만나 는 동안, 대화 중에 단 한차례도 이 얘기가 빠진 적이 없었다. 얼마 전 유명을 달 리 한 한국 농구의 ‘전자 슈터’, 고 김현준 선수의 장례식에 ‘바쁘다고’ 불참한 L모 감독에 대한 그의 비난은 옆에서 듣고 있기에도 민망할 정도였다. 10년 넘게 같은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고 지내온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말이다. 허재에게 ‘의리’란 곧 ‘남자’를 뜻하고, 농구를 아무리 잘 하는 농구선수이기 전에 ‘남자’로 평가 받고 싶다고 한다. 허재의 괜찮은 사생활 중에 하나, 아니 그의 ‘코트 밖 인생’ 중에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는 부분은 바로 그의 ‘후배 사랑’이다. 자나 깨나 후배들을 챙기는 그의 모습은 ‘중증’ 수준이다. 여기서 필자가 말하는 허재의 ‘후배 챙기기’란, 단순 한 ‘후배 뒷바라지’의 의미가 아니라, 그들을 호되게 야단치기도 하고, 그들 대 신 ‘총대를 매기’도 하고, 그들을 먹여 살리는 의미가 더 크다. 항상 그의 주위엔 후배들이 넘친다. 그리고 그의 후배들 역시 허재를 ‘농구 선배’로만, 아니 자기들 과 똑 같은 ‘사람’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에 허재의 사생활에 대해선 전혀 언급을 하 지 않는다. 그저 ‘허재 형’과 있으면 무섭기도 하지만, 한 없이 좋다고 한다. 허 재 역시 ‘후배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 놓고 나서는 편이다 (전창진 코치 인터뷰 참 조). 오랫동안 같이 합숙소에서 동고동락해 온 후배들이랑 외출이라도 할 때, 밥이 라도 한끼 사 먹이고 술이라도 한잔 사 주는 사람은 어김없이 허재다. 후배들이 만 나는 여자친구 얘기서부터, 생각보다 돈 많이 든다는 자식들의 교육비 얘기, 딴팀으 로 이적되는 후배에게 던져주는 진지한 농구 조언… 그러면서 쌓여가는 ‘선-후배 간 의 우정’을 느끼며 허재는 ‘인생 사는 맛’을 체감한다고 한다. 93년 허재가 대표팀에서 탈락 되었을 당시, 협회의 공식 사유는 ‘후배들에게 악영향 을 미친다.’ 였다. ‘방탕하고 절제되지 않은 허재의 사생활’을 지켜보면서 후배 들이 딴길로 셀 수도 있다는 풀이였다. 여기서 필자가 한가지 주장하고 싶은 점은, ‘나쁜 길로 샐 후배라면 허재 아니라 부처님이 옆에 있어도 그쪽으로 샌다’ 이다. 그 만큼 대표 선수로 선발될 정도의 선수들이라면, ‘알 것 다 아는’ 나이의 선수 들이란 말이다. 이미 허재를 만나기 이전에, 중,고, 대학교를 거치면서 친구들과 어 울리며 술도 배웠고, 담배도 배우고, 여자도 배운 선수들이 대부분이란 말이다. 막 말로, 우리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 지켜 본 운동부 친구들은 대부분 학년에서 제일 ‘성숙한 친구’들이 아니었던가? 허재도 제일 억울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바로 이점 이다. 후배들 앉혀 놓고 한마디라도 도움이 되는 말을 하면 했지, 후배 잘못 되게 끔 할 선배가 어디 있겠냐는 얘기다. 김승기, 정경호와 같은 팀 후배들과 같이 고 기를 먹으며 소주 한잔씩 하는 자리에서도 그는 한마디 한다. “야, (나래팀 양)경 민이는 절대 술 먹이지 마라!? 걔는 술이 체질적으로도 안 받고 근육 같은 것도 술 먹으면 탈이 나는 것 같더라고. 그런 애들 술 먹였다간 운동하는데 지장 있으니까, 절대 니들끼리 있더라도 걔 술 먹이지 말라고…” 앞,뒤 안 가리고 무조건 ‘후배 들 술 먹인다’는 항간의 소문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단순하게 후배들에게 ‘술만 떡이 되도록 먹이는 허재 형’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허재의 후배들이 기 때문에, 그들은 ‘허재 형’ 하는 말 한마디면 무슨 일이던 자청해 나선다. 그 리고 요즘 같이 그런 ‘위-아래’가 불투명 한 세상에서 이런 농구 선수들의 모습은 아름답게까지 느껴진다. 일반인들이 ‘인간 허재’에 대해서 가장 모르고 사는 부분은 아마도 그의 가정적이 고 꼼꼼한 성격이 아닐까 싶다 (부인 인터뷰 참조). 코트에서 종종 비춰지는 ‘불 같고 지랄(?)같은 허재의 성격’만을 보고 자라 온 우리로선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 는 부분이다. 옷 입는 것부터 집안 정리에 이르기 까지, 뭐든지 그는 깨끗한 것을 좋아한다. 원주 숙소에서는 편한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을 좋아하지만, 일단 휴가라 도 받아서 원주를 잠시 뜰 때는 항상 청결하고 반듯한 옷 맵시를 내야 한다. 우리 가 간혹, 정장을 쫙쫙 빼 입고 구단버스를 이동하는 NBA 스타들을 바라 보면서, ‘야~ 쟤들은 옷도 참 잘 입으니 보기도 좋다.’ 한 적이 있을텐데, 허재 역시 그 부분에 있어서는 동감을 한다고 한다. 185cm가 넘는 키, 딱 벌어진 어깨, 그리고 거 기다 옷까지 세련되고 말끔하게 차려 입은 허재를 보면서, 그 동안 코트에서만 보아 왔던 ‘그저 남자다운 모습’정도의 인상은 180도 바뀌게 된다. 외관상으로도 아주 멋지고 매력 있는 남자였다.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허재도 두 아들에 대한 애정은 남 다르다. 여지껏 자식 을 본 후에 ‘아빠와 같이 있었던 시간’이 총 1년도 안 될 것이라며 아쉬워 하고 미 안해 하지만, 어느덧 그 역시 ‘처-자식 생각’이 제일 우선이 되었다고 한다. 가 끔 해외 경기에 나가서도, 예전에 본인의 의상 구입에 투자하던 돈을 이젠 모두 아내 와 두 아들을 위해서 쓰게 된다고 한다. ‘어릴 때 잘 먹은 놈이 커서도 안 아프고 잘 큰다’는 생각에 두 아들은 뭐든지 ‘좋은 것’만 먹이려고 하고, 이를 위해 부 인을 요리학원에도 보내는 허재이다. 아무리 부인의 요리 솜씨가 뛰어나도 정작 본 인은 1년 중 반 이상은 ‘숙소 음식’을 먹어야 할 형편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유 치원 다니는 두 꼬마 녀석한테 들어가는 돈이 생각보다 너무 많이 든다면서, 반상회 만 갔다 오면 이웃 사촌들의 ‘자식에 대한 투자’ 얘기로 스트레스를 엄청 받는 부 인의 모습이 안쓰럽다고 한다. “남들 다 한다니 내 자식한테만 안 할 수도 없고, 초등학교, 중학교 진학 시킬 생각하면 앞이 깜깜하다…”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천 하의 허재’도 자식 앞에선 어쩔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 걱정을 하는 허 재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영락 없는 ‘아빠’ 냄새가 솔솔 난다. 허재 아버님 인터뷰 주방장:허재 선수가 그렇게 술을 찾는 이유가 있을까요? 남들 대입준비 할 때부터 슈퍼스타 대접을 받으면서, 화려하게 살다가도 또 막상 코트 밖에선 갈 곳도 마땅치 않고 할 일도 없고,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중압감도 느끼고, 그러다 보니 나름 대로 의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술을 찾은 게 아닐까요? 부친:얘가 지금 그런 과정, 어렸을 때부터 집안도 어려운 것 없이. 국민학교 때부터 스카웃 되어가고, 그런 과정을 밟고 하다보니까, 어린 마음에.. 사람들도 다 우쭐할 거 아니야? 표현을 안 하는 차이일 뿐이지. 너무 고도성장을 했다고 할까? 그러 다 보니까, 어떤 자만심도 좀 있겠지. 그러다 보니까 주위에서 좀 우쭐하면 접근 도 잘 안 하고, 그런데서 이제 그런 일이 좀 생겼겠지. 그러나, 부모나 윗사람들 은 교육 을 시켜도, 그때는 다시는 안 그런다고 하다가도 또 친구들이랑 나가서 한 잔하나보 면, 또 그러고... 하지만, 그것도 난 다 이해해요. 그렇지만 그건 공식 적으론 그래 선 안 된다... 주방장:허재 선수가 술 좋아하는 것은 아버님 닮아서 그렇다던데요? 부친:그래요. 내가... 전에 아버지도 그렇고, 할아버지도 그렇고. 집안 내력이지. 주방장:아버님이 진지 상 들어오기도 전에, 반주로 술 한,두병은 끝내실 정도로 많이 드셨다고 하던데요 ^^? 부친:네..그게 술이 힘이 있어야 먹는 거지, 힘없으면 술을 못 먹어요. 요즘 젊은 사 람 들도 힘이 센 놈이 술을 먹지, 힘 없어봐, 술 먹나? 주방장:이제는 건강도 그러시고 약주 안 하시죠? 안 하셔 야죠? 부친:사실, 술 먹고 사람이 흥청망청 놀고 싶어서 마시는 게 아니라, 사람이란 게, 술 한잔 해서 약~간 오르면, 거 기분이 좋쟌아. 말 없는 집안에서도 몇잔 들어가면 대화도 나오고 웃음도 나오고. 그런 분위기를 위해서는 가끔 한잔 씩 하고 싶은 데, 그래서 몰~래 한잔씩 하는데, 마누라가 알면 뭐라고 하지. 오늘도 이제 1시에 우리 동창들이 모인다고 해서, 미국에서 들어 왔다고 해서, 그런데 가면 한,두잔 안 할 수 없지. 방열과 허재... 주방장:군대에 오래 계셨으니까 잘 아시겠지만, 허재 선수 기아에 가서 그 '항명', '하극 상'에 대해 보도된 얘기 아시죠? '코리안 시리즈에 나가서 일부러 졌다 (8전전 패), 그것도 허재가 주동해서. 스승을 몰아낸 제자'라고 신문에서 난리가 났죠? 부친:말로는 뭐 방열이도 그렇게 얘기하고 다닌다고 들었는데, 직접은 본인한테 못 들었고. 근데, 만약 방열이가 그런 얘기를 한다면 그건 방열이가 좀 '모자란 사람' 이고. 아니, 허재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또 뭐 '아버지가 역할 했다.' 그런 얘 기도 있었는데, 아니 내가 무슨 기아 회장이요? 이거 참 답답한 얘기야, 응? 몰라, 내가 군에 있을 때면 또 몰라. 아니 내가 회장도 아니고, 뭐 아무 것도 아닌 데, 무 슨 권한으로 그걸 몰아내며. 그렇다고, 내가 그 나이에 그 위치에서 있으면서 '이건 허재를 위해서..허재를 다른데로 보낸다' 그랬다면 그건 아주 내가 '무식한놈'이고 주방장:저도 오늘 얘기를 듣고서 느낀 점이지만, 아버님이 그동안 다른 지도자들에 게 100% 자식을 맡기는 스타일이셨던 것을 보면... 부친:그럼, 난 그저 '관전' 하는 것 뿐이지. 주방장:기아에 들어가서도 소위 뭐 '연대파', '중대파'로 갈려져서, '어느 대회에서 연대 출신인 방열 감독이 '연대파' 중에 하나인 유재학을 MVP로 추천했고, 그래서 그 골 이 더 깊어졌다.' 라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부친:남들은 또 그렇게 볼 수도 있지. 기아는 그 안에서 그렇게 나뉘어졌다. 근데 그건 실질적으로 아니야. 주방장:그럼 실질적으로 왜 방열 감독이 그때 경질이 됐냐 이거죠. 부친:경질이 된 것은, 그 최단장 (기아 농구단장)하고 그 위에서 결정 한 것이고, 우리 로서는... 내가 보기엔 애들이, 그러니까 허재도 방열이한테 여러 번 제재를 당하 고 그랬어요. 역시 늦게 들어가고 그런 것 때문에. 자꾸만 그런 일이 있으니까. 허재와 방열이와의 그 보이지 않는 간격이 생긴 것 같애. 근데, 허재로선 그런 거지. '왜 나만 가지고 그러느냐? 다른 사람도 늦게 들어오고 할 때는 그냥 넘어가 고, 왜 나만 그런 제재를 가 하느냐?' 이래 가지고 좀 거리가 생긴 것 같애. 주방장:더 이상 지나간 일이니까 묻지 않겠습니다. 부친: 아니, 지나간 일이 아니라 더 이상 이제 얘기 할 것도 없어. 그렇다고 해서, 기아 회장을 만나서 "방열이 그 X새끼 갈아야 한다." 뭐 이렇게 얘기 한 것도 없고, 아 내가 주책 넘게... 그런다고 받아줄 사람들도 아니고. 사람이 어디 가서 어느 위 치에서 생활한다고 해도, 자기 품위 유지를 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야지. 자기 품위 유지도 못 하면서 살아간다면, '저건 분수 없는 놈'이라고 하지. 자기 위치 를 알고. 내가 뭔데 가서 그러겠어요? 근데, 그 방열이가 그 윗사람들하고 그 보 이지 않는 뭐 '알력' 같은 게 있으니까 그랬겠지. 무슨 성적도 나쁘지 않았는데, 갈고 그러겠어요? 최인선과 허재... 주방장:최인선 감독에 대해선 아버님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부친:그 양반은 양문의나 정봉섭 부장과 같은 그런 스타일이 아니고, 좀 '여자' 같은 스타일? 뭐 그렇게 얘기할까? 주방장:아버님과는 분명히 성격이 좀 다르시죠? 부친:아, 그건 뭐 '극과 극'이지. 왜냐하면 우린 그런 스타일을 싫어하니까. '흑과 백'이 명백해야지. 이것도 아니다, 저것도 아니다.. 이런 식은. 최인선이가 싫다 는 게 아니고, 그런 스타일이 싫다는 거지... 최인선이가 개인적으로 싫다는 게 아니고. 정봉섭 감독이나 양문의 선생 같은 스타일하고는 완전히 '극과 극' 아니예 요? 그러 니까, 허재가 그동안 배워오던 스승은 전부 이쪽 스타일이었는데, 갑자기 '여자 같은 스타일'로 나오는 것에 대해서, 뭐 랄까... 약간 뭐 혼란이 오고 호흡 이 잘 맞지 않 은 거겠지. 주방장:최인선 감독은 '2명의 보스'가 있었다 라는 말도 있었는데요. 기아 농구 단장 과 허 준 선생님 말이죠. 부친:하하하.. 만약에 최감독이 자기 입으로 그런 말을 했다면... 주방장:아닙니다. 떠도는 말로요. 부친:아니지? 그거는 그냥 그저 추측해서 쓰지 않았겠냐? 아니, 최인선이가 아무리 여자 같은 사람이지만, 감독이 선수 아버지가 무슨 '보스'다. 몰라, 사회적인 선배로 서 그렇게 느낀다면 모르겠지만, 자기의 권한, 권위 안에 있는 업무에 대한.. 그건 '불가침' 아니예요? 주방장:아버님 성격 상 '지도자의 영역을 부모로서 침범하는 행위'는 본인이 용납 되십니까? 부친:아, 그건 당연히 안되지. 그건 주책없는 사람이지. 주방장:근데 특정 경기에 대한 선수 기용권에서 부터, 아버님이 그런 '월권 행위'를 하시 고, 최감독도 아버님의 '눈치를 보는' 분위기라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부친:아, 그 얘기는. 프로가 되어서 프로 원년에 허재를 안 뛰게 하고 강동희가 MVP 받았을 때, 그 때 내가 얘기했지. 그거지. MVP를 타고, 못타고 가 아니라. 뛰게는 해 줘야 할 것 아니냐? 걔가 그때 완전히 못 뛰었다고, 마지막까지. 그랬으면 기 아에서 는 허재라는 선수가 필요 없는 선수가 아니냐? 얘기 해 봐라. 허재가 필요 없으니까 안 뛴 것 아니냐? 게임 때마다 누가 보더라도 고비가 다 있었는데, 그때 에 좀 내보 낼 수도 있었는데 그때도 안 내보내고... 또, 스코어가 많이 벌어져서 우리가 이기는 것은 다 결정이 났을 때도 안 내보내고. 그러면 이적하겠다... 주방장:근데 왜 그때 안 내보낸 거죠? 부친:왜 안 내보냈냐 하면은... 그때 당시 최인선 감독으로선 이거 아냐. '허재가 필 요 없는 게 아니고, 허재가 나가면 허재 플레이가 프로에 지금 용병이 들어와서 구성 된 팀으로선 적합지 않다. 자기 혼자만 다 하고, 그러니까 팀 플레이에 지장을 주고. ' 그래서 그랬데. 근데, 그건 말이 안 되는 소리야. 내가 보기엔, 다 지나간 일이지 만. 다분히 그건 감정적으로 그렇게 한 거라 이거야. 그건 속일 수가 없어요. 사나이 답게 멋있게 얘기해야지,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 안 되는 거지. 주방장:근데, 무슨 그런 감정이 생길 수가 있냐 이거죠. 오랫동안 같이 생활해 오면서 부친:그때 당시 거..구치소에 갔다 왔을 때인가? 갔다와서 하고, 그러니까 그..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겠지. 그런데서 허재한테 그러한 불이익이 오게 된 건데. 다 좋다 이거야. 불이익이 온 것도 좋고, 후배 강동희가 상 탄 것도 좋다 이거야. 그건 허재 너도 결함이 있었으니까 다 그렇게 된 건데... 그렇게, 특히 '프로', 세미 프 로도 아니고 완전한 '프로'에서... 프로하면 '명예'로 먹고사는 거거든. '돈과 명 예', 프 로는 바로 그거 아니유? 그러면, 현재까지 프로가 되기 전까지, 허재하면 그래도 대 한민국에선 1인자로서 다들... 자타가 다 공인 해 주고, 다 그래도 응원 해 주고 했 는데, 갑자기 프로가 생긴 다음부터 허재를 안 뛰게 하고, 그럼 명예는 완전히 추락 이 되고, 그러면 기아에서는 더 이상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 주방장:그럼 어떻게 다시 화해가 된 거죠? 부친:그러니까, 그때는 나도 이제 단장을 만나고, 만났죠. 왜? 그때는 자식을 위해서 내가 나서야 하니까. 완전히 '흑'과 '백'을 가려야하니까.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고, 또 프로니까. 만나서 얘기를 했더니, '금년에는 그런 일이 없겠다. 허재도 잘못이 있 지만, 최인선이도 잘못이 있었다.' 그건 단장도 나한테 다 얘기했어. 그 건 농구계에 서도 누구나 다 얘기한 거야. 주방장:그러고 나서 박인규 감독으로 바로 교체 된 건가요? 부친:아니지, 그리고 최인선이가 1년 더 하고, 그때 기아가 준우승하고, 허재가 MVP 먹 었쟎아. 그 얼마나 잘했어, 그때? 주방장:네, 맞습니다. 부친:정~~말. 엄청나게 잘 한 거야. 뭐 진짜, 그건 자랑이 아니라.. NBA에서도 그런 게 임을 보기 힘들었지. 주방장:아버님이 평소에 '사나이'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부친:사나이는,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굽히면 안 되요. 그리고 첫째, 의리가 있어야 돼. 보통 사람들 의리 많이 찾죠. 헛소리 의리가 아니라, 진짜 의리. 주방장:그런 측면에서 보실 때, '내 아들 허재'는 사나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부친:아~~ 그럼. 지금도 그래요. 난 모르긴 해도, 그놈이 농구계 동료, 후배들 사이 에서 도, '허재, 저 짜식 저거 비굴한 놈이야.' 이런 소리는 절대 안 들을 거요. 거, 아 주 후배들한테는 참 '미친사람' 같이 너무 지나치게 잘하지. 자기 것도 다 벗어주 고, 술값도 남이 내도 되는 거 다 지가 내고, 좀 어떻게 보면 지나칠 정도인데... 그 게, 그~게 남자지. 남자는 그래야 되는 거지. 의리를 지키는 척하면서, 어떤 시 점에 서 딱 돌아서서 불리하면 배반하고.. 이건 수명이 짧아요. 주방장:농구 잘하는 자식보다 의리 있는 자식이길 원하세요? 부친;아, 그럼요. 농구 아무리 잘해도 그건 수명이 짧습니다. 얼마 못 가요. 남자 세 계는, 특히 운동 세계는 요, 의리가 있어야 되요. 의리가 있고, 한번 의리를 지키면, 끝까지 지키는... 술, 여자, 그리고 구치소... 주방장:이 질문은 대답 안 해주셔도 되지만, 총각시절 '스캔들', '구설수' 이제 잘 아시죠? 부인:처음엔 저도 스트레스 많이 받았죠. 결혼 초에도 그렇고, 결혼 전에도 그렇고... '아우~ 저걸 어떻게 하나?' 하면서요. 분명히 과거가 있으면 스캔들도 물론,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안 나는 것이 맞듯이... 분명히 스캔들이 있었기 때문에 기자들이 썼 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웅이 아빠는 사실 여자들이 좋아할 그런 성격이예요. 보스기 질 있고, 확~ 이끌고, 이렇게 하니까 여자들이 100% 좋아하지요. 여자들이, 연예인 들... 연예인들 뻔하지 않나요? 저 남자가 맘에 든다 하면은 무조건 대시 하는게 연 예인들이잖아요. 웅이 아빠는..글세, 바보같이 이용당한 거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웅이아빠 같은 성격은, 나하고 항상 하는 얘기는... 이제 서로 믿고 살아야지 어떻게 하겠냐고. 믿어야지요. 웅이 아빠 술 먹고 늦게 들어온다고 해도... 그런데 한가지, 내가 어떨 때 너무 기가 세게 나오면 웅이 아빠가 기가 죽더라고요. 내가 너 무 세게 나오면요.^^ 신혼 초엔, 오죽하면 웅이아빠가 설거지도 많이 했었어요. 나 보고 나갔다 오라고 하고 자기가 설거지 다하고. 내가 보는데선 안하고, 내가 나가 면 청소 싹 다하고, 세면대 찌꺼기 제거까지 다하고 그랬어요.^^ 주방장:허재 선수 팬들 사이에서나 여론사이에서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지 아세요? 부인:며칠 전에 12시에 한 그 이성미씨 하고 나왔던... 보셨어요? 웅이아빠 화난 거? 이성미씨가 말장난을 좀 했나봐요. 웅이아빠가 그냥 넘어가면 될 것을... 웅이아빤 화면에 다 나타나잖아요. 우리 신랑이 사람이 화가 나면 여자고 남자고 간에 그런 거 없거든요. 주방장:96년도에 올림픽가서 술 때문에 또 한번 시끄러웠죠? 부인:올림픽 가서... 그때가 후배 정재근 선수하고 현주엽 생일이었다고.. 웅이 아빠 같은 경우는 후배들이 그렇게 얘기하면 해줘야 되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냥 해줘야 되 는 스타일이예요. 웅이아빠는 후배들이 "형! 나 술 먹고 싶어!" 그러면 사줘야 되요. 주방장:압니다. '무면허 운전', '뺑소니' , '거짓 증언'... 이거 다 신문 상에 헤드 라인인데요 부인:웅이아빤 거짓말은 안 해요. 거짓말 할 만큼 머리가 빨리 빨리 재빠르게 돌아 가지않아서, 있는 그대로, 보는 그대로 얘기를 하죠. 주방장: 3년 전에 음주로 입건 되었을 때, 본인 심정이야 대충 상상이 가고 나머지 식구들 심정은 어땠어요? 부인:'아이고, 결국은 사고를 냈구나' 하는 생각이었고... 제가 구치소로 매일매일 갔는데... 주방장:구치소에선 구체적으로 뭐라고 그러던가요? 부인:웅이아빠가 출소 후 하나 뿐인 우리 와이프 , 그리고 웅이, 시댁 식구들, 친정 식구... 제일 미안하다고 출감한 후 일기를 썼는데... 가장 보고픈 게 우리 아내랑, 웅이, 훈이 한테.. 가장 생각이 많이 난다. 라고... 주방장: 허재 선수가 술을 좋아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부인:'습관' 아닐까요? 중독은 아니고, 그 분위기를 좋아해요. 후배들이랑 어울리는 분위기가 좋아서 술 마시는 거 같아요. 그런데 사람이 그런 게 있잖아요? 한번 놀아 도 체력에 한계가 있잖아요? 그런데 웅이 아빠는 그런 게 없어요. 체력이 대단한 채 력이예요. 그리고 이때까지 결혼생활하면서 아파 본 적이 없어요. 뱀 전도사 이미수... 주방장:'뱀' 얘긴 들으셨어요? 부인:뱀도 많이 잡으러 갔어요. 내가. 결혼하고 내가 해야 되니까. 시아버님이 뱀집 은 알지만 내가가서 이제 뱀해야 되고..뱀을 골라주는 건 우리 아버님이 하시지만.. 주방장:뱀탕 한번 만들 때, 100마리 넘게 잡는다면서요 부인:예. 구렁이에다 살모사, 잡뱀... 그런데 그게 받는 사람이 있고, 안 받는 사람 이 있어요. 웅이아빠는 받아요. 주방장:이제 '뱀 전문가' 다됐겠네요 부인:뱀 공부를 했다니까요. 국산뱀 하고 중국뱀하고... 중국뱀 같은 건 더운 지방에 서 나잖아요. 우리나라 뱀은, 뱀이 모양도 선명하거니와 중국뱀은 흐릿흐릿해요. 그 리고 중국뱀은 커요. 우리나라 뱀은 80년 된 뱀은 뱀이 딴딴하고 뭐라 그러지... 주방장:아직도 뱀이 그렇게 있어요? 부인:있죠. 그런데 아버님은 너무 좋다고 만져보라고 하시는데 만져보지는 못하고. 아직도 신혼 때 기억이 나는데, 용문사 근처에 뱀집을 하시는데... 신혼 때 처음 운 전하고 새벽 6시에 출발해서, 집에 오면 밤 12시가 되요, 끓이는 시간 때문에... 하 루 종일 뱀 끓이는 거 보고. 뱀을 딱 보러갔는데 사람들이 뱀 생각하면 구렁이만 생 각하지, 잡뱀은 생각 안 하거든요? 우리 아버님이 뱀에 대한 책을 쓰신다고 하시는데.. ^^ 농담으로. 오늘 잡은 뱀인가, 며칠 된 뱀인가, 80년 된 뱀인가, 딱 아시는데, 뱀 잡을 땐 애들 데리고 가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모르고 한번 웅이를 데리고 갔는데 웅이가 한달 내내 시름시름 하더라고요. 뱀 잡는 거 보고... 한동안 웅이아빠 가 자고있는 모습이 꼭 구렁이 한마리가 자고 있는 거랑 같더라고요. 그게 '뱀꿈'인 데 뱀꿈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구렁이가 이렇게 한마리가 집을 이렇게~ 하고 있는 꿈을 꾸면, 그건 '집짓기 뱀'이래요 그런 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뱀꿈을 자 주 꿔요. 항상 웅이아빠가 그렇게 자고 있는 꿈 꾸고... 주방장:뱀탕 최종제품은 보약처럼 비닐로 나온다면서요? 부인: 한달 보름 치가 나오죠. 약간 노란데 비릿비릿한 냄새가 나요. 누런 국물 있 죠? 사골은 하얀데... 뱀은 이런 잔에 한잔하면... 약 8만원 정도 되나? 그런데 웅 이 아빠가 하루는 술 먹고 안 먹었어요. 그래서 버리기 아까우니까 내가 먹었거든요. 근데 참 웃긴 건, 먹고 나니까 한 2박3일 거뜬하더라고요. 그래서 '대단한 뱀이구 나 웅이 아빠가 항상 하는 소리가 형부들 몸이 약하니까 뱀을 먹이라고. 하하... 주방장:완전히 '전도사' 네요, '뱀 전도사'^^ 부인:하하...근데 연예인들도 많이... 많이 먹으러 온대 Home Sweet Home... 주방장:허재 선수 얘기하면 아버님 얘기가 꼭 나오잖아요. 정말 헌신적이고... 실제 시집오셔서 보니까, 정말 어느 정도로 뒷바라지를 하시던가요? 부인:뒷바라지..라기 보다도, 아버님이 항상 전화하시면서 "뭐 먹었냐?" 이렇게 물으 시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엔 굉장히 신경이 쓰였죠. 제가 요리를 처음에 잘 못했으니 까. 그래도 결혼해서 3개월 배웠어요. 특히 우리 시댁은 이북 출신이라서 저희 친정 음식 (부산)하고는 잘 안 맞아요. 근데 웅이 아빠는 워낙 운동하면서 전국 방방 곳 곳을 다니다 보니까, 경상도 음식도 잘먹어요. 주방장:'뱀탕' 말고 집에서 해 주시는 것 중에 뭘 제일 잘 먹던가요? ^^ 부인:음... 샤브샤브 잘먹어요. 샤브샤브 잘먹고 갈비도 좀 먹고. 김치전골 해주면 국물만 먹고요. 후배들이나 친구들은 다 맛 있다고 하는데, 웅이아빠는 맛없다고 해 요. 하도 맛없다고 그래서 한번은 이태리 음식을 배워서 했더니, 색다르니까... 잘먹 더라고요. 주방장:결혼 후 가장 속 상할 때가 언제였죠? 부인:술 먹으면 자제를 잘 못해요. 그러다 보니, 프로에 들어와서 씀씀이도 커진 거 같아요. 웅이아빠는, 사주를 봤는데 돈 못 모은데요.^^ 주방장:허재 선수가 가장 자랑스러웠을 때는? 부인:2년 전에 MVP 탔을 때... 제일 자랑스러웠어요. 남편이 아니라..한 남자로서.. 정말 멋있었어요. 그때 병원에 가래도 안가요. 가야되는데 안가요. 그래서 지금 손가 락이, 가운데 손가락이 제일 길어야 하는데 다 길이가 똑같아요. 인대가 줄어 들었는 지, 부러졌던 손이. 주방장:집에 오면 아이들은 좋아하지요? 부인:예. 애들은 굉장히 아끼고 사랑해주는데... 같이 놀아주는 방법을 몰라요. 저번 에도 자전거를 사줬는데, 사주고 그게 끝이죠. 가르쳐 주지도 못하고 애 혼자 배워야 해요. 그래도 운동신경은 있는지 금방 타더라고요. 놀이동산 가도 한,두번 타면 끝~ 놀아줄 줄을 잘 몰라요. 선물도 많이 사오고 그러지만, 가끔 한번씩 애들 보니까 그 럴 거예요. 주방장:5년 후엔 허재 선수가 무엇을 하고있을까요? 부인:지도자 하고 있을 거예요. 지도자 할텐데... 주방장:잘할까요? 부인:잘할 거 같은데... 사실 걱정이되요. 원래 그렇잖아요. 잘 하는 사람이 못 가르 치잖아요. 못하는 애들을 이해를 못하거든... '쟨 왜 저럴까...' 그래서 걱정이 되 요. 암만 가르쳐 줘도 못 알아들으면 얼마나 본인도 답답하겠어요? 하지만 리더쉽이 있어요. 통솔력이 있으니 잘할 거예요. 주방장:이제 재산은 좀 모아 두셨나요?^^ 부인:전반적으로 운동선수들은 순하고 그래서 이용당하기가 쉬워요. 우리도 한번 당 했는데..'농구천재 허재'라는 책을 내기로 했는데, 100만원 받고 부도를 내버렸어요 주방장:참! 그 비디오는? 부인:비디오는 계약금 1000만원 받았던가... 용산고 선배가 하는 거라서 했는데... 의리는 때문에...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런 시장이 없데요. 안 팔리나봐요. 그래서 대 만에 수출하려고 하나봐요. 그래서 그 회사는 한 1억 벌었다는 거 같은데... 글세.. 웅이아빠는 그냥 그 선배나 잘됐음 좋겠다고... 주방장:요즘 컴퓨터 배우시는 중이라고 하던데, 컴퓨터는 얼마나 하세요? 부인:저요? 이제 워드패드 배웠어요... 애들도 연습하고...후훗 주방장:너무 긴 시간동안 시간 내 주셔서 감사 하구요. 마지막으로 일반 사람들이 잘 모르는 허재라는 사람에 대해서 한마디 해 주세요. 부인:아니요, 뭘요... 글쎄요, 그 사람 참 자상한 사람이예요. 겉으로 보이는 것하곤 달리..정도 많고, 착하고, 의리 빼면.. 하하.. 못 살거예요, 그 사람. 잘 써주세요. . 허재 - 드디어 후추를 만나다. Freestyle 인터뷰1 1999년 10월 24일. 한적한 일요일 오후에 정식으로 허재를 인터뷰 하기 위해 강남의 모 호텔 커피숍으로 갔다. 지난 번, 허재의 휴가 첫날밤에 계획했던 인터뷰는 무산 되고, 결국 그가 원주 숙소로 돌아 가는 날 오후에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검은 색 진 (Jean) 바지에 흰색 티셔츠, 베이지 색 V-Neck 스웨터를 입고 나온 허재를 보면서 오늘은 서로 진지하게 인터뷰 하자고 다짐을 한다. 이미 좀 ‘아는 사이’가 되어 버린 필자와 허재. 일반적으로 잡지에서 나오는 인터뷰의 격식을 차리려 했다면, 서 로가 실제 나누었던 ‘반말’을 예쁘게 존댓말로 단장해서 글을 내 보냈겠지만, 그러 고 싶은 마음이 없다. 어차피 후추 명예의 전당은 편집진의 주관적 성향이 묻을 대 로 묻은 글이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이면 다 아는 사실. 굳이 ‘설탕으로 코팅’하고 싶지 않다. 본대로, 들은 대로만 쓰기로 한다. 아울러, 지난 주에 허재 선수의 인 터뷰 질문을 후추 독자들로부터 접수한 결과, 정말 많은 분들이 응모를 해 주셨지만, 이미 편집진이 준비한 내용과 반복되는 질문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전혀 새로운 질문 들만 소개를 하기로 한다 (성의를 보여주신 독자들께 꾸벅!) 주방장:어제 또 한잔 했어요? 허재: 아이, 우리 애들 (팀 후배)이랑 간단하게 한잔 했지. 주방장:몸 생각 좀 하셔야죠…. 정말 타고 난 체질이시네요. 술 마신 다음날 몸 뻐 근하고 피곤하지 않으세요? 주방장:왜, 안 피곤해… 이젠 나이가 들어서 예전하곤 좀 달라. 젊었을 때는, 아무 리 술을 마셔도 다음날 아침 되면 말짱 했거든. 정신도 깨고, 몸도 깨고… 지금도 근데 내가 위장은 좋은가 봐. 술 마신 다음 날에도 난 일어나서 햄버거, 피자.. 그 냥 막 들어가거든. 느끼한 치즈까지 더 뿌려서 말야…하하 주방장:으악~~ 정말 인간이 아니다~~ 오늘 좀 진지하게 인터뷰 하자고요? 허재:그럼~ 진지하게… 후추 독자 인터뷰 주방장:먼저 우리 후추 독자들이 보내주신 질문들부터 물어 볼께요. ‘Kaist의 Neptune님이 보내주신 질문인데요… 국내 선수 중에 가장 높이 평가하는 선수는 누군지요? 허재:그건…강동희지… 주방장:그 선수도 이제 나이 많이 먹었잖아요. 소위 요즘 젊은 선수들 중엔 없어요? 허재:젊은 애들 중엔 그래도 지금 최고의 기량을 가지고 있는 애는 이상민이라고 보지. 주방장:실력이 제일 나아요? 허재:제일 낫다고 봐야지 주방장:그 선수 승부 근성은 어때요? 허재:좋아… 그것 때문에 내가 지금 그렇게 평가 하는 거지. 주방장:형 대를 이을만한 선수도 그럼 이상민이예요? (Hanmail ID: 380011, Kornet ID: hbh386님 질문) 허재:그거는.. 남들도 다 물어보는 질문인데, 그건 내가 한명을 찝어서 얘기 할 선수 가 없어.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나랑 비슷하게 하는 선수가 없어, 스타일이. 그러 니까, 나는 옛날에 가드도 봤다가 포워드도 봤다가 했는데, 남들이 그러잖아..뭐 ‘올어라운드 플레이어’ 라고… 그렇게 하는 애들은 없잖아, 지금. 그런데도 이상 민이, 뭐 이런 애들이 제일 낫지. 주방장:형이 운동하면서 제일 까다롭게 형을 마크 했던 수비수는? 예전부터.. ‘정 말 이 인간만 맡으면 짜증난다.’ 그랬던 사람? (유니텔의 aserver님) 허재:원우 형, 이원우. 원우 형이 수비 잘했지. 주방장;형 마크하는 걸 제일 잘했어요? 허재:어, 제일 까다로왔어, 원우 형이 주방장:요즘은 없고? 허재:요즘은 별로 그런 거 없는 거 같애 주방장:그 선수는 뭐가 그렇게 까다로웠어요? 허재:수비를 잘했어, 약게. 그러니까, 맥을 딱딱 짚어가면서 잘 했지. 주방장:나중에 지도자 생활을 할 때,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한테 무슨 연습에 제일 충실하라고 조언 하겠어요? (네츠고의 newfull 님 질문) 허재:나는 내가 지도자의 길을 걷는다고 하더라도, 기초. 기초 운동을 착실하게 가르 칠 것 같애. 주방장:농구에서의 기초 운동이 뭐예요? 허재:그러니까, 슛, 드리블..그러니까 기본기라고 그러지. 수비도 예를 들어서 ‘정상적인 것’ . 어? 쉽게 말해서 기초. 기본기를 착실하게 가르칠 것 같애. 주방장:형, 은퇴 하신 다음에 ‘차범근 축구 교실’ 같은 거 해 볼 계획 있어요? (Hanmail ID: 380011님 질문) 허재:그거…할 생각도 있어. 그건 점차.. 시간이 되면 그런 거 하는 것도 좋지 않 나..는 생각 중이고… 주방장:나중에 은퇴하기 전에 ‘헌정 CD Rom’이나, 그런 거 팬클럽 회원들이 주동해 서 만들어 본다면, 협조 하실 의사 있으세요? (amsat.org의 한 회원) 허재:그럼, 그건 협조 해야지. 주방장:천리안의 ‘위즈’ 또는 인터넷의 ‘영원한 농구천재 허재 (www.hj.inkorea. com)’와 같은 팬클럽 회원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신다면? (kornet 의 frontier님) 허재:나를 좋아하는 팬들이니까…나야 너무 좋지. 아직도 이런 내 나이에도 나를 좋 아 해 주니까, 나한텐 너무 좋지, 고맙고. 주방장:요번에 투어 대회 마치고 나니까, 눈에 띄는 선수나 팀은? Kornet ID: hbh386님 질문) 허재:작년보다는 눈에 띄는 선수는 없고, 현대 빼놓고는 다 실력이 똑같지 않나,그래 주방장:나래가 4강 진출 하는데 꼭 필요한 요소는 뭐죠? 허재:(전혀 망설임 없이) 리바운드! 작년에 리바운드가 많이 딸려서 힘들었지. 옛날 얘기 주방장:형이 용산 다닐 때 부터 제일 마음에 들었던 ‘백넘버’? 뭐 6번도 있고, 9번 도 있고, 11번도 있었고…했는데 허재:‘9번’… 그냥 마음에 들더라고. 우연치 않게 달게 되었는데, 달다 보니까 그 게 닉네임이랑 비슷하게 되어 버려서… 주방장:형이 어렸을 때 제일 혼자서 많이 한 연습은 뭐예요? 허재:나뿐만 아니라 다~ 슛 연습을 제일 많이 했을 거야.그리고 줄넘기도 많이 하고. 주방장:줄넘기하면 농구 하는데 뭐가 도움이 되는 거죠? 허재:몸이 빨라지지, 민첩해 지고. 주방장:예전에 어딘가 인터뷰 할 때, “덩크슛 하나 쏠 시간에 리바운드 하나라도 더 잡겠다.” 라고 말 한 적이 있는데, 그건 뭔 소리예요? 허재:체력이 안 되니까 그런 소리 했겠지…하하하… 덩킹 할 수 있었으면 왜 그런 얘 기 했겠니? 하하하… 대학교 땐 덩킹 했는데, 안 되니까 하는 소린데… 주방장:용산고 양문의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뭐예요? 허재:호 되게 운동을 시켰지, 호 되게… 그러니까 정말 ‘헝그리 정신’으로 운동을 시켰지. 주방장:체구도 자그마하셨다면서요? 허재:작으셨지. 주방장:정말 살벌 하셨어요? 허재:근까, 남들이 얘기하는 살벌하다는 게…. 다르게 얘기하면 정말 ‘독종’ 이셨 지., ‘독종’. 자기가 뭐를 어떤 식으로 이끌어 가겠다.. 그걸 목적을 확실히 가진 사람이지. 주방장:웨이트 트레이닝은 언제부터 시작 하셨어요? 허재:그.. 옛날에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안 시켰어. 키 안 자란다..뭐, 슛 안 들어간 다.. 그러면서. 나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지가 한 3년뿐이 안돼. 주방장:근데 형은 고등학교 때부터 팔, 다리 근육이 딴 사람들하고 달랐어요. 당시 에 농구하던 사람들하고는… 허재:그건 체력이 좋아지면서 그렇게 알통도 나오고 근육도 붙고 한 것 같애. 주방장:따로 ‘근육 만들기’를 한 건 아니고? 허재:뭐, 따로 했다 그래 봤자, 운동을 더 많이 한 건데,그게 인제 근육이 된 거 같애 주방장:고등학교 때 제일 라이벌로 생각 했던 사람은 누구예요? (Kaist의 Neptune 님 질문) 허재:그런 선수는 없었어. 하도 이겨서 그런지는 몰라도. 뭐, 남들이, 어? ‘라이 벌을 누구로 생각하냐?’, ‘제일 껄끄러운 상대가 누구냐?’ 하고 물어 들 보는데… 근데 난 정말 그런 적이 한번도 없어. 주방장:초등학교 때 형이 제일 많이 보고 따라 했던 농구 선수는 누구예요? 허재:초등학교 때? 근데 그 당시에 비디오 그런 게 없어서… 뭐 따라 하고 이런 건 없었거든. 그냥 자기가 연습 하는 거지.. 주방장:그럼 어렸을 때 형이 좋아 했던 선수는? 허재:그렇게 특별히 좋아했던 선수는 없었어.. 진짜! 텔레비전을 보고 누굴 좋아해 본 적이 없어. ‘아, 저 선수는 잘하는 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지. 주방장:형, 막말로 그럼…형이 ‘제일 잘난 맛’에 그런 건 아니었어요? 허재:아이, 그게 아니라니까. 남들이 생각할 때, 그러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 는 부분이 있어서 내가 말을 잘 안 하는데… 그래서 뭐 라이벌이 누구냐..그러면.. 내가 뭐 잘 나서 그런 게 아니라, 어릴 때부터 뭐 이렇게 텔레비전을 봐도, 뭐 중계 를 봐도.. ‘아, 그냥 잘 하는구나.’ ‘아, 슛이 좋구나…’ 뭐 그렇게 생각을 했 지, ‘아 저 선수처럼 되야 되겠다.’ 그런 건 없었어. 허재가 뽑은 한국 농구 ‘드림팀’ 주방장:지난 30년 동안, 한국 농구 드림팀을 뽑으라면, 표지션 별로? 누가 될까요? (유니텔의 aserver님 질문) 허재:김유택, 한기범… 주방장:중대 출신만 말고… 드림 팀이라니까요. 허재:아, 그러니까… 센터 한기범, 김유택,.. 내가 게임을 뛰어 봤을 때 제일 나은 선수들.. 포지션 별로 얘기를 해 주는 거야. 어? 뭐, 신선우 형도 있을 거고, 다 있 을 거 아냐? 다 있는데, 내가 게임을 뛰면서 ‘아, 저런 선수는 정말 한국에서 나오 기 힘들다.’ 그런 선수를 얘기 하는 거 거든. 김유택, 한기범, 이충희….김현준? 주방장:포인트는 누가 봐? 허재:포인트는 내가 봐야지. 그러니까, 내가 느낄 때, 대표팀을 10년 넘게 해 오면 서도 ‘아, 그때 멤버는 참 좋았다.’ 그게 바로 이거야. 그 때 그 팀이 제일 잘 했던 거 같애. 지금의 현역 선수들 보다도.. ‘슛’ 그러면 이충희, 어? 김현준… ‘센터’ 그러면 김유택, 한기범. 어? 내가 대표 생활을 하면서 그때 같이 운동 했 던 선수들 중에서 뽑으라고 그런다면, 그 정도 뽑을 것 같애. 주방장:‘허재가 그냥 허재가 아니라, 한기범-김유택이랑 같이 했기 때문에 지금의 허재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라고 얘기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허재:그렇지. 당연하지… 당연 해. 왜냐 하면, 그 당시에 키 큰 사람이 그 두명밖 에 없었고, 또 그 당시 제일 잘 하는 선수들이었고, 그러니까 마음 놓고 외곽에서 할 수 있는 플레이가 됐고..응? 그러니까 많은 도움을 받을 수가 있지. 주방장:그럼 다시 말해서, 그 형들 두명이 없었더라면 허재 형이 지금의 이 자리까지 오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만약에 다른 센터진이랑 같은 팀에서 한 10년 동안 뛰었 더라면? 허재:근데 그렇진 않았을 거야. 주방장:아이….뭐야? 허재:아이, 그러니까… 여기서보다 더 못할 수도 있지만, 어? 그렇게 차이가 나겠냐 싶지 허재와의 Freestyle 인터뷰 II 중대 진학 배경과 정봉섭 주방장:중대 가게 된 배경은 아버님이랑 정부장님이랑 얘기가 되어서 간 거 맞아요? 허재:그렇지. 주방장:형은 딴데 가고 싶은 마음 없었어요, 솔직히? 허재:그러니까, 나는 어릴 때, 농구 좋아하고 뭐 학교에 대한 욕심.. 그런 게, 남들 이 보면 바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부분은 없었어. 그냥 아버지가 하 자는 대로 다 따랐어. 주방장:그 당시만 하더라도 다 연-고대 가는 게 꿈이었잖아요? 허재:그렇지. 연-고대가 좋다는 건 생각은 했지만, 꼭 연-고대를 가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어. 어차피 거긴 들어 갈 수 있는 거 아니까, 어? 실력으론 되니까. 근데 이 제 ‘아, 연-고대 학교가 참 좋구나. 연대가 학교도 좋고..’ 그거 느끼지, 사람이 그거 못 느껴, 어? 근데, 아버님 영향이 많이 컸지. 주방장:중앙대 정감독님한테 ‘농구인’으로서나, ‘인간’으로서 제일 많이 배울 점은 뭐였어요? 허재:배울 점은 참 많았는데, 내가 못 배웠지…^^ 너도 알다시피… 내가 어? 그러니 까 나는 어릴 때, 대학교 때, 운동가지고 맞아 본 적이 없어. ‘너 왜 이렇게 농구를 못해?`그래서 맞아 본 적 없고.. ‘너, 왜 술 먹어?’ 뭐 이런 거 가지고 혼 났지 ^^ 주방장:그 양반이 형에 대해서 제일 싫어 하시던 게 뭐예요? 허재:그러니까, 정부장이 제일 싫어 했던 게 이제.. 숙소로 안 돌아오고, 술 먹고 그 런 거 때문에 맞았지. 다른 거 가지고는 맞은 적이 없어. 주방장:나래 전코치님 얘기론, 형 네 대학교 1학년 때… 들아가서 정부장이 1학년 애 들한테 많이 배려를 해 줬다 그러더라구요. 허재:어, 그렇지. 중앙대학교 그때부터 이제 시작 된 건데… 4학년들이 뭐 일 다하 고, 꺼꾸로 그런 스타일로 간 건데.. 그게 이제 장-단점이 있어. 주방장:형이 대학교 감독이라면 그렇게 하겠어요? 허재:근데 난 그거는 하고 싶어, 지금은 이제 많이 없어졌는데… 선후배 사이에 뭐 ‘빠따’ 때리고 뭐.. 그런 집합 시켜서 때리고 그러는 건 없애고 싶어. 아니, 뭐 한대, 두대 때리는 건, ‘진짜 뭐 니네들 왜 플레이 못해!’ 그런 건 이해를 하는데, 감정적으로 응? 뭐 후배들을 집합 시켜놓고..응? 뭐, 잘하지도 못하고 못하지도 못했 는데, 괜히 저녁에 집합시켜서 때리고 그러는 건 좀…. 주방장:그렇게 많이 맞았어요? 허재:나 고등학교 땐 그런 선배들이 많았지. 주방장:그때 제일 많이 맞았어요? 허재:그럼.. 그때 이제 ‘빠따’가 있었으니까. 뭐 선배들 한명이 뭐 ‘다 니들 집 합 해.’ 그럼 뭐 당연히 맞는 거야, 그땐 이제 맞는 날이니까. 합숙 훈련 주방장:대학교 다닐 때, ‘1인 4역’도 하고…뭐, 유니버시아드 대표, 중앙대 소속, 뭐 국가 대표… 그럼 그때 1년에 합숙을 얼마나 했던 거예요? 허재:그냥 365일이야. 그때 이제 점보 대잔치 할 때 이제 학교에서 합숙하지? 그리 고 지금은 이제 뭐 프로가 생겨서 대표들도 시합 한달 전에 모였지만, 옛날에는 점 보 대잔치 끝나고도 한 열흘 정도 지나면.. 태능에 다 들어갔어. 대표 선수들은. 그래서 한 6개월 씩 거기서 있는 거야. 주방장:합숙 하다 보면 제일 깝깝한 게 뭐예요? 허재:대표팀에 있는 게 제일 깝깝하지.. 아무래도 태릉에 있는 게… 일주일 넘게, 응? 토요일까지 거기 있다가 토요일날 오후에 나와서 일요일 저녁에, 6시 까지 들 어 가는 건데. 외박 아닌 외박이지. 그게 이제 제일 힘들지. 어린 나이에… 대학교 다닐 때, 누구 말대로 미팅도 하고, 놀고도 싶은데… 거기 들어가 있으면 뭐 전혀 움 직이질 못 하잖아. 운동만 죽어라고 하고… 내가 대학교 캠퍼스에 앉아서 맥주를 한잔도 못 먹어봤다니까, 대학교 4년 동안? 내가 무슨 잡지하고도 이런 얘길 한 적 이 있었는데… ‘내가 대학교 캠퍼스에 앉아서 애들이랑, 과 애들이랑 막걸리 마시 는 게 소원이다’ 라고 했어. 그런 낭만을 한번도 즐겨 보지 못하고 졸업을 한 거야. ‘타도 연-고대’ 주방장:중대 다닐 때, 아버님 말씀으론 ‘정 감독님이 대학농구 평준화를 위해서… 응? 몇 십년 동안 연고대만 해 먹으면 되겠냐…’ 허재:그게 이제 정부장의 꿈이었고… 또 우리 아버지가 거기 동의를 했고, 또 그리고 평준화도 분명히 됐고.. 그리고 다들 고등학교 선수들이 중앙대학교에 가고 싶어 해 서 중대로 가게 되고… 그래서 이제 한 몇 년 동안은 중대가 딱 쥐고 있는 바람에… 뒤집어 진 거지. 근데도 아직도 ‘양대 산맥’이라는 걸 무시는 못하지. 근데, 중 대가 올라 오면서부터 어느 정도 평준화가 됐고, 지금은 이제 수준이 언뜻 다 비슷해 진 거지. 주방장:중대 다닐 때도 그런 것을 주입을 시키셨나요? 간접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허재:직접적으로도 많이 했지. ‘자부심을 가져라! 중앙대학교 농구부에 자부심을 갖고, 연-고대야 전통이 있지만, 중앙대학교야 이제부터 전통을 이어가는 그런 시기 에 왔으니까… 어? 그때 이제 그런 자부심을 많이 불어 넣지. 주방장:그런 거에 대해서 형은 뭐 ‘거부 반응’ 같은 건 없었어요? 허재:그런 거 없었지. 내가 동의를 하고, 내가 중앙대학교에 다닌다는 것에 대해 자 부심도 갖고… 주방장:연-고대랑 붙을 때는 뭐 ‘특별한 감정’ 같은 게 있었어요? 허재:근데… 김유택, 한기범, 나, 강정수..응? 그 다음메 강동희...어? 그 몇 년 동안에 랭킹 1-2위들이 다 중앙대학교에 왔기 때문에, 그 당시 연-고대에 있는 선수 들은… 우리한테 지는 거는 당연했지만, 다른 타팀한테도 많이 졌으니까… 그니까, 뭐 연-고대를 뭐 시합한다고 신경 쓰지 않고… 그 당시에는 이제 점보 대잔치… 현 대, 삼성에 신경을 썼지… 대학교 시합은 거의 놀다시피 하면서 나갔어. 그러니까, 점보대잔치 나가도 은행 팀들은 우리한테 안되고, 현대-삼성만 신경을 썼지…응? 93년도 대표팀 탈락 주방장:형이 93년도에 처음으로 대표팀 탈락 됐을 때… 그때 기아 전훈 때문에 터키 에서 그 소식을 들었다면서요? 그리고 그때 정감독이 제일 큰소리로 ‘허재, 인간 만들어야 된다.’, ‘충격요법이 필요하다.’ ‘이번에 한번 정신 차리게 떨어뜨리 자.’ 어? 그래 가지고 대표팀에서 떨어졌다는데..? 그리고 그때 형은 신문 인터 뷰에서 ‘난 억울하다.. 난 딴 건 몰라도 후배들한테 악영향 미친다는 얘기는 ‘오 바’다…’ 그렇게 얘기한 적도 있었다고 하고요… 허재:그때 왜 떨어졌지, 내가? 주방장:그때 무슨 엑스포 대회 전날 가서… 허재:아! 최인선 감독이랑??? 술 먹고 뭐 그랬다고? 근데 그때 중간에 들어 오라고 그랬는데… 그때 이제 최인선 감독 있고 그래서 안 뽑은 거지. 그때 이제 정봉섭 감 독은 그떄 뽑을라 그랬다고. 90년 대 연세대 농구 주방장:94년도에 연대 농구팀이 아주 방방 날랐을 때 있었죠? 그때 기아가 처음으로 우승 못 했잖아요… 허재:아.. 어… 근데 그게 왜 그렇게 됐냐 하면, 그때 나는 진짜 잘했어. 대표팀에 서 뛰었지만 난 그때 인도네시아는 안 갔다 오고… 그때 동희랑 유택이 형이 인도네 시아 갔다 오는 바람에… 한마디로 몸이 맛이 갔다고, 체력적으로. 그래서 게임을 진 거야. 주방장:근데 그때 연대 선수들 잘 하지 않았어요? 그때 이제 서장훈도 들어 오고… 허재:근데, 그때… 문경은이 걔는 뭐…선수가 아니고… 서장훈이 하나 가지고 우승 했다고 보는데… 그때 이제 한기범.. 주방장:형, 문경은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허재:아이 근까.. 걘 선수가 아니야. 걘 농구 선수도 아니야. 그러고 서장훈이 높 이 평가를 해, 이상민이 걔들은.. 내가 높이 평가를 하는데. 그 당시에 선수 생활이 라는 그. 그게 있다고.. 한기범이랑 서장훈이랑 10년 차이가 나요. 농구 역사로 보 면 10년 주기로 한번씩 나온다는 거지. 그게 이제 서장훈이라고. 한기범 밑으로 나 온 게 서장훈인데… 한기범은 그때 몸이 안 좋아서 체력적으로 많이 딸릴 때고. 그 러니까 이제 서장훈이가 그때 완전.. 서장훈이 하나 때문에 우승했다고 보면 되지. 방열과 하극상’의 진상 주방장:형, 이 얘기는 대답 안 해주셔도 되는데요… 90년도에. 점보 시리즈 중간에 형이 한번 입원하고, 김유택 선수 ‘간통 사건’으로 들어가고, 형이 입원 했다가 나와서 마취주사 맞아 가며 나가서 결국 우승 했는데.. 그때 유재학 선수가 MVP 따 가지고 그 다음 대회에 나가서 바로 한번. 난리 난 적이 있었지요? 허재:스트라이크를 한번 일으켰지, 응. 왜냐 하면, 재학이 형이 받아서 그랬던 게 아니라… 그 당시 기범이 형이 잘 했거든. 그러니까 기범이 형이 받아야 될 상황이 었는데… 주방장:‘허재가 받아야 한다’ 라고 주장 했던 게 아니었어요? 허재:어, 기범이 형이 받아야 했는데… 냉~정히 따지면….내가 진짜.. 뭐 기록으로 만 보면..타야 됐는데… 그 당시에 뭐가 있었냐 하면, 감독-코치가 얘기를 해 가지고 입김이 좀 있었다고. 지금같이 기자들이 투표를 해서 되는 게 아니라, 그 당시에는 추천을 해서 탈 수 있었다고. 근데, 기범이 형이 당연히 타야 할 시기에서 재학이 형이 탔기 때문에 그때 한번 스트라이크가 난 거지. 그거는 뭐… 누가 타는 게 아니 라, 객관적으로 딱 봤을 때, ‘아, 이건 기범이 형이 MVP다.’ 라고 생각을 했었는 데, 그게 이제 바뀌니까, 이제 방열 감독이랑 그게… 이제 ‘장난을 한다.’ 그래 가지고 스트라이크가 난 거지. 그렇다고 뭐 그렇게 큰 스트라이크가 나진 않았어. 그냥 숙소에서 ‘밥 먹는 분위기’만 안 좋았다 뿐이지… 주방장:근데, 근데…그 후로 뭐 신문이랑 전부 다 그 ‘사건’ 이후로 형 인생이 달 라 졌다고들 해요. 그게, 기아 팀 내부적으로도 ‘연대 파’, ‘중대 파’로 갈라 졌고, 그래서 결국 ‘스승 잡아 먹는 허재’가 되버렸고, 방열 감독 내쫓게 하고…? 허재:근데 그게.. 잘못 된 거야. 그게 주위에서는 내가 입김이 쎄다. 뭐 기아에서 는, 그러는데. 이거는, 그때 이제 최상철 (기아) 단장이랑 사이가 안 좋았다고. 주방장:방열 감독이랑? 허재:어. 솔직히 얘기해서 그때 그 사이가 안 좋았기 때문에… 주방장:형 하곤? 허재:어떤 코치, 감독이라도 안 좋을 수가 있고, 내가 싫어할 수도 있고, 그 사람이 날 싫어할 수도 있는 거야. 어떤 팀이라도. 응? 열명을 다 데리고 있는, 내가 감 독인데 열명을 다 데리고 있는데, 열명이 나 다 좋아한다고 생각 하는 건 아니거든. 반은 좋아하고, 반은 싫어한다. 왜? 게임을 뛰어 주면 좋아 하는 거고, 자기만 예뻐 해 주면 좋아 하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또 싫어 할 수도 있거든? 그럼 내가 예를 들어서 방열 감독이라는 사람은, 내가 싫어 할 수도 있고, 그 사람이 날 싫어 활 수 도 있었는데… ‘내가 저사람 밑에서 운동 못 하겠다.’ 그랬더라도 그 큰 기업이 ‘허재 때문에 감독을 바꿔 줘야겠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냐 이 거야, 응? 주방장:근데, 언론에서 그렇게도 스토리도 많이 만들었겠죠. 허재:그러니까 이제.. 그때 이제 기사는 많이 나지는 않았는데, 나는 그 당시에 병 원에, 점보 대잔치 끝나고 병원에 있었는데… 그때 이제 신종철씨라고, 종철이 형 뭐 그런 형들인데, 그때 이제 그 형들이 게임을 진 거야. 근대 뭐 이제 주위에서 ‘중 앙대학교 정부장이 뭐 개입을 했다.’ 그러고 주방장:형은 그럼 그때 게임 안 뛰었어요? 허재:안 뛰었었지. 병원에 있었지. 그러니까 남들이 ‘오바’를 한 거야. 그 나이 먹은 선배들이, 나보다 2-3년 선배가 ‘형, 게임 져’ 그러면 그 사람들이 지겠니? 어? 그러니까 남들이 생각할 때, ‘아, 허재 저 놈이… 뭐 게임 뛰면서도 뭐 다혈질 이고 그러니까 저게 어느 정도의 파워가 있을 거다’라고 생각을 하고 뭐 ‘감독을 바꿨다.’ 그러고 항간에서 그러는데, 사실 상 그런 건 아니거든. 위에 사람들하고 사이가 안 좋아서 자기가 그렇게 된 걸 왜 나한테 돌리냐 이거지. 주방장:근데 사람들이 이제 보면, 다른 기자들이나 뭐 형에 대해 잘 안다는 사람들 얘기는 그 일로 형의 인생도 바뀌어졌고, 당시 언론, 연-고대 출신의 언론, 연-고대 출신 농구 협회 관계자들… 죄다 아주 그떄부터 이제 소위 ‘허재 죽이기’에 들어갔 다, 보이지 않게… ‘껀수’를 잡았다는 거지. 연-고대 출신 실업 팀 선배들도 형을 왕따 시키고… 허재:에이.. 그런 건 없었어. 그렇진 않았고. 그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을 한 거고. 내가 뭐 아는데 뭐. 그러고, 그때 이제 방열 감독이 뭐 단장이랑 뭐 사이가 안 좋아서 그랬던 거지. 시합을 뛰면서 뭐 임달식이 고대 나왔는데 나를 때 렸다는 건, 그 당시에 팀에 현대-삼성에 다 연-고대 출신이야. 그러기 때문에 게임 에 이기기 위해서 그랬던 거지. 난 지금도 그래. 뭐, ‘억하 심정’이 있어서 나를 때렸다는 생각은 안 해. 팀을 위해서 때리는 거지. 쟤들이 ‘어, 나를 진짜 때려야 겠다.’.. 모르겠어, 뭐. 개인적으로 친한 애들도 많고 그런데, 그건 아닌 거 같애. 주방장:언론에서 얘기하는 ‘타도 연-고대’ 감정이나… 허재:아, 그러니까 옛날에는 있었지, 대학교 다닐 때는. 옛날에는 대학교 다니면서 야 자부심도 있고, 어? ‘타도 연-고대’ 뭐 그런 건 있었지. 그런데, 그게 인제 졸업을 해 가지고, ‘아, 난 중앙대학교 나왔다.’ 그런 자부심을 갖고 있는 거지… 주방장:근데 연-고대 나온 실업팀 선배들이 그런 감정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었고… 허재:근데 생각을 해 봐라. 그 당시에 삼성 뭐 이런데도.. 다 ‘파’가 있는 거야. 어? 연대 나온 파, 고대 나온 파, 또 뭐 그런 보이지 않는 그런 파들이 있기 때문에.. 그거는 어느 팀에 가도 다 마찬가지야. 그럼 자기 모교 나온 애, 자기가 예를 들어 서 한대 나왔다, 단대 나왔다. 이런 사회에서도 인맥이라는 게 있고, 연줄이라는 게 있어서 그 안 보이는 그 끈끈한 정이 있는 거기 때문에, 그건 또 무시 못 한다고. 그건 사람이라면, ‘에이 난 중대 나왔는데 연대 쪽에 붙어야지.’ 그런 사람이 몇 명 있겠니? 어? 그건 어느 정도에 다 있는 거야. 뭐 농구뿐만 아니라 야구, 축구, 배구… 내가 죽인다고 해서 뭐 연-고대 애들이다 죽겠니? 내가 무슨 대통령이니? 그건 아니지…^^ 기록 주방장:형, 농구 대잔치 하면서 제일 소중한 기록은 뭐였어요? 허재:그건 잘 모르겠다, 그런 기록을 잘 안 보니까. 75점 넣은 건 생각 나는데… 주방장:대학교 때 단국대랑? 허재:그러니까, 어. 그 나머지는 생각이 잘 안나. 관심도 없고. 군기반장 허재 주방장:형이 프로팀 감독이라면 제일 지금 데리고 오고 싶은 용병? 탐나는 용병? 허재:탐 나는 애? 맥도웰이 제일 탐나지 ^^.걘 한국 농구에만 잘 어울리는 애고. 주방장:허재가 용병들 ‘군기 반장`이었다고 하는데,걔들 어떤 식으로 잡았어요? 허재:아, 그건… 남들이 잘못 얘기들 하는 거야. 그게, 야, 난 영어도 안 되고. 어? 근데 걔네들도 이제 눈치가 있는 거지. 한팀에 ‘아, 저 형이 나이가 있고 그래도 한팀을 이끌어 가는 선수’로 보기 때문에 걔들도 눈치로 다 따라 오는 거 지. 걔네들 한테 군기 반장이라니.. 뭐 나와서 밥 한끼 해 주고 좋은 얘기 해 주 고.. 그게 다 노하우지 이제 용병들 데리고 있다 보면. 걔네들 기분 맞춰 줄 때 있 고, 어떨 때는 한번 통역 시켜서, 어? ‘그런 식으로 하지 말아라.’ 뭐 이제 그런 것들 때문에 걔들이 따르는 거지. 참, 내가 군기 잡는다고 걔들이 군기 잡히겠니? 어? 주방장:예전에 프로 원년에 기아에 있을 때 외국 코치 하나 와 있었죠? 허재:아니지, 원년이 아니고 두번 째지. ‘탐’ 인가? 주방장: 걔들은 뭐 다른 게 있어요? 허재:다 비슷해, 다 똑 같애.. 원래 우리가 그 미국 코치들 하는 거 보고 배운 거기 때문에 하는 스타일이 다 비슷해. 근데 뭐가 다르냐 하면 그 사람들은 하면서 이제 ‘임기응변’ 같은 게 좀 있지. 특별한 건 없어 벤치워머 (Bench Warmer) 허재 주방장:원년 때 결승전을 벤치에서 지켜 보면서 심정이 어땠습니까? 허재:그때 이제 좀 깝깝하지. 좀 깝깝하고… 주방장:다친 데는 없었어요, 그때? 허재:다친 데는 없었는데 이제, 그 당시에 운이 안 좋게.. 또 운동을 안 하다가,… 사람이 참 일이 안 되려니까 일이 꼬여서…응? 최인선 감독이 이제 앉혀 놓고 이훈 재를 대신 뛰게 한 거지. 수비 때문에. 어? 그것 때문에 하다 보니까 어떻게 이제.. 게임 못 뛰고 하니까 그때 이제 깝깝하지, 열 받고… 주방장:그러고 나서 이제 기자회견 신청 한 거 아녜요? 허재:그렇지. 주방장;아버님도 그때 제일 마음 아팠다고 하시더라고요. 허재:그거는 내 자신부터도 아프지. 최인선 주방장:최인선 감독 제일 좋은 점은 뭐예요? 허재:제일 좋은 점? 사람 참 좋아. 착해. 주방장:착해요? 형 성격이나 형 아버님 성격이나, 아님 형이 그동안 배워왔던 지도 자 (양문의, 정봉섭..) 하고는 좀 다르죠. 허재:좀 틀리지. 엄청나게 틀리지. 주방장:형은 체질상 어떤 스타일이랑 제일 맞는 거 같아요? 허재:나? 제일 잘 맞는 게 양문의 선생님이나 정봉섭 감독이랑 제일 잘 맞지. 화끈 하니까.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감독이 있을 수도 있고, 어? 다 틀려. 그러고 붜, 자기가 배운 선생 중에 자기한테 잘 해주고 자기한테 신경 써 주면 제일 좋은 스승이고, 어? 그거야. 주방장:임달식, 김성욱, 손영기, 김광… 4명한테 맞았죠, 시합 중에? 누구 펀치가 제일 아팠어요?^^ 허재:근데 제대로 맞은 건 없어. 김성욱이 제일 쎄지, 편치는. 덩치가 있는데…^^ 주방장:그 분은 지금 뭐해요? 허재:지금 성욱이 형이 LA에서 들어 와서 뭐 사업한다 던데… 주방장:이제 그 선수들에 대한 뭐 그런 거 없죠? 허재:아이, 그럼 없지. 빠찡꼬 주방장:‘빠찡꼬’ 얘기 좀 해 주세요. 그것도 ‘허재가 주동 했다.’ 던데… 허재:그거는.. 야, 너도 일본 가 봐서 알겠지만, 그 ‘빠찡꼬’가 무슨 큰 노름도 아 니고… 주동해서 간 게 아니라 지네들이 다 좋아서 가는 거야. 내가 가자고 다 가겠 니? 그 ‘빠찡꼬’를? 나야, 재학이 형이랑 둘이 같이 갔지. 그때 근데 빠찡꼬 한 놈들이 없었는데, 나랑 재학이 형이랑 동희랑 선우 형만 했는데…? 주방장:근데 신문에선 왜 ‘빠찡꼬’ 가지고 난리가 난 거예요? 허재:그러니까 그게 골 때리는 거야. 시합을 지니까, 그래서 나오는 거지. ‘빠찡 꼬’ 그거 한다고 뭐 11시도 안돼서 끝 나는 거, 솔직히 뭐 그리 큰 잘못을 했어. 어? 거기에 빠진 것도 아니고, 우리가 뭐 몇 만원 씩 들고 가서 한 것도 아니고. 어? 기껏해야 몇 천원 가지고 장난 놀다 온 건데… 부인 이미수 주방장:웅이 엄마, 처음에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게 뭐예요? 아주 대단한 구애 작전을 하셨던데…? 허재:콩깍지가 씌였지, 내가. 여자랑 결혼 한다는 그게, 인연인 거 같애. 옛날에 우리 작은 엄마가 하는 얘기가 아직도 기억에 나는데.. ‘허재의 짝은 부산에 있나, 광주에 있나…’ 나 결혼 못 할 줄 알고, 매일 술 먹고 돌아 다니니까. 근데 자기 짝이 다 있어. 딱 결혼 할 여자는, 내가 느끼는 건데, 이게 내 짝이라는 게 딱 나 와. 진짜 신기해 그게. 나도 그 만나서 결혼 한게, ‘어! 이 여자가 내 여자구나.!’ 하고 느끼고, 1주일동안 부산 내려가서 꼬셔서 결혼 한 거야. 진짜 인연이 되니까 결혼 하는 거지. 주방장:실제로 보니까 정말 매력이 있으시고 미인이시던데… 허재: 애가 착해. 좀 덩벙대고 그런 게 있어서 그렇지, 정말 착하긴 착해. 성격도 화통하고. 싸우다가도 오래 가지가 않고, 뒷끝이 전혀 없고. 걔도 성격이 ‘여자 허재’야. 또 웅이엄마가 애들한테 하는 건 정말 잘하지. 내가 그래서 그 점을 제 일 고맙게 생각 하고. 인생 주방장:‘내가 10년만 더 젊었으면, 지금 하고는 좀 다르게 살았을 것이다.’. 그런 거 있어요? 뭐 술을 좀 덜 마시겠다.. 라던지..? 허재:난 똑같이 살고 싶은 세상이야.^^ 난 세상을 똑 같이 살고 싶어, 나이 먹으나 어리나… 주방장:형이 딱 하루동안 농구 협회 회장이라면, 형 말이라면 농구판이 바뀐다고 그 러면.. 한가지 제일 바꾸고 싶은 건? 허재:자율적으로 하고 싶지, 난 자율적으로…^^^^ 자율 농구. 주방장: 근데 그것도 시키고 강요해서 실력이 올라 오는 선수들도 있고….그러니까.. 허재:그럼, 내가 장난으로 얘기한 거고. 선수 개개인마다 다 틀려. 좀 운동을 많 이 해서 되는 애들이 있고, 냅둬서 하는 애들이 있고, 다 틀려. 주방장:형, 연-고대 안 가고 중대 간 거 후회 안 해요? 솔직히? 허재:안해. 안 한다니까. 후추 단어 연상 게임 양문의 ‘독종’ 강동희 ‘농구 잘 하는 애’ 한만성 (침묵 후, “걔 건 빼자. 잘 안 되서 있으니까…”) 전창진 ‘착한 사람’ 이미수(와이프) ‘푼수’^^ 아버지 ‘멋있는 남자’ 허웅 ‘귀엽다’ 최상철 ‘사람 괜찮다.’ 김현준 ‘안됐다.’ 신선우 ‘실망’ 대만 ‘고마움’ 태극마크 ‘달만큼 달았다.’ 술 ‘더 먹어야 되겠다^^’ 남자 ‘의리’ 우리는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이런 저런 ‘생활인 허재’의 모습을 엿보면서 필자는 그런 생각이 든다. 경기 도중 TV 화면에 종종 잡히는 허재의 ‘광분한’ 장면을 보고 아직까지도 ‘허재의 싸가지..’ 운운 하기에는 이제 그는 너무 늙었다. 그리고 그는 이제 어엿한 한 가정의 가장이었 다. 언제까지나 술 마시고 친구-후배들과 어울리며 놀면서 흥청망청 할 것 같다던 일부 측근들의 예상과는 달리, 이제 그는 자신의 능력이 다 하는 만큼 한 가정을 충 실히 이끌어 가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달라지지 않은 점이라면, 아직까지도 그는 코트에서 누구보다도 패배를 힘들게 받아 들인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TV 에서 접하는 그의 ‘피 끓는 모습’도 바로 아직까지 시들지 않은 허재의 ‘승부 근 성의 연장’인 셈이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누구의 장점보다도 단점이 더 우리 눈에 잘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국민의 눈이 되어야 하고, 국민의 귀가 되어 주어야 하는 국내 언론에서 여태까지 보여준 허재의 모습은 부정적인 면 이 훨씬 더 많았다. 허재에 대한 후추 독자의 평가는 자유로워야 한다. 그렇지만, 허재가 살아 온 인생의 역경, 그리고 그의 장-단점을 다 같이 보여주는 것까진 후추 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아마도 ‘No.9’ 유니폼을 벗는 순간까지도 우리 모두 의 ‘슈퍼맨’이 되어주길 강요 받을 것이고 강요받고 있다. 이젠 우리가 보답해 줄 차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얼마 남지 않은 그의 농구 인생이 다 가기 전에, 누 군가라도 나서서 그가 우리에게 20년 가까이 보여준 ‘환상 농구’에 대한 보답만은 분명히 해주어야 할 차례가 왔다는 말이다. 그 동안 허재의 농구를 가까이서 지켜 볼 수 있었던 우리 모두는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언젠가 만일 일본의 ‘다카하시’ 중국의 ‘왕지지’가 우리 농구를 비참하게 짓밟을 때가 온다면, 우린 한동안 꼭 이 런 말을 하게 될 것이다. ‘허재 빠지니까 농구 볼 맛이 안 나는구만… 그 인간 그 래도 농구 하나는 잘 했는데…’ 결국엔 그 말 한마디로만 허재를 평가하는 날이 올 것이며, ‘농구인 허재’는 그 말로만 기억되어야 한다.. ‘농구 하나는 참 잘 했는데….’ 그는 이제 ‘셋째 아이’를 보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엔 ‘예쁜 딸’이 태어나 주었으면 한단다. 그의 꼬맹이들에겐 ‘농구를 잘해서 나라를 빛낸 농구 천재 아빠 였다’ 라고 얘기 해 주고 싶다. ‘사생활이 지저분해서 문제가 되었던 농구 선수 아빠’ 라는 혼란을 자초할 수 있는 평가 말고 말이다. 그들이 지금의 아빠 나이가 될 즈음이면, ‘농구 선수는 농구는 좀 못 하더라도 인간성이 좋고 사생활이 깨끗해 야 한다…’ 이런 애매모호한 평가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시대가 올 것이기 때문 이다. 후추 명예의 전당 제 4호 헌액자, 허재… 그가 ‘농구인’으로서 우리 모두에 게 보여준 ‘미친 모습’ 하나만으로 그의 이름을 불러본다… 주방장 Memory 2000. 9.1 허재... 난 사실 허재의 팬이 아니었다. 아니, 허재의 팬이 될 수 없었다. 그가 펄 펄 날던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국내 농구 경기를 많이 접할 수 없는 처지 였기 때문이다. 그의 팬이 될 수 없었던 또 한가지 이유는 그의 경기를 직접 보진 못해도 사방에서 들려오는 허재의 원맨쇼, 허재가 소속된 팀의 연승 행진... 등의 소 식을 들으며 '내가 아니더라도 허재 응원해 주는 사람들은 많겠지..' 하는 생각을 하 곤 했다. 지난번 김동광 선수의 명전에도 언급한 바와 같이 어쩌면 내가 어릴 때 그랬기 때문 에 김동광을 더 열렬히 응원했는지도 모른다... 만약 10년 전에 후추가 탄생했다면 과연 명전에서 허재를 취재했을지 자신할 수 없는 게 솔직한 고백이다. 만약 허재 가 10년 만 젊었더라도 어쩌면 허재는 명전과의 연을 맺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렇 다... 허재를 사랑하고 아꼈던 팬들이 너무도 많았던 것처럼, 허재라면 이를 갈던 팬 들도 그 만큼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허재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명전의 간판에 내다 걸 수 있었던 이유는 이제는 그럴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를 좋아하건 미워하건 아직까지 이 땅에 허재와 같은 농구 선수는 없었고 그점에 대한 부분은 우 리 모두가 인정하고 박수쳐 줘야할 때가 되었다고 믿었다. 더군다나 우리가 허재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지금 누군가 나에게 허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난 의외로 난감해질 것 같다. 명전 취재 이후로 그와 인간적으로 많이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농구선수 허재에 대해선 당연한 답이 나올 수밖에 없지만, 인간 허재에 대해선... 글쎄, 한마디로 답하기 참 어려운 존재다. 허재의 사랑스런 두 아들 웅이와 훈이 그리고 그의 아내 역시 올봄까지 상당히 자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후추 외에 내가 하고 있는 일과 연관되어 광고 촬영 건으로도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리고 허재 본인이 가 장 좋아하리라 믿는 인간 허재의 모습은 아마도 그의 두 아들과 함께 있을 때의 모습 일 것이다. 코트 안에서 두 눈을 부라리며 심판이고 상대팀 수비수고 할 것 없이 달 려드는 그의 거친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사람이 저렇게 180도 변할 수 있나.. 하며 경악을 금할 수가 없다. 아들들과 함께 있는 허재의 모습은 여느 아빠의 모습 과 틀린게 없다. 그런 그의 믿기 어려운 (?) 모습을 광고에 담고 싶어서 일이 성사 되기도 했다. 허재의 주량에 대해서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확히는 나도 사실 모른다. 같이 술 마시면서 병수 세고 있을 위인이 못되기 때문이다. 한가지는 안다. 그는 취한 상태에서도 참 오랫동안 마실줄 아는 것 같았다. 하지 만 그도 취하는 건 분명하다. 허재는 누구랑 술을 마시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다. 대부분 농구 후배들, 그리고 농구 선배가 아닌 사회 선배들 몇명과 잘 어울리는 것으 로 안다. 그의 후배 챙기기는 끔찍하다. 어느날 도로변 공영 주자창에 세워 둔 내차에 주차비를 내려고 지갑을 꺼내는 날 보 고 벌컥 화를 낸 허재였다. 그걸 왜 니가 내냐면서...^^ 허재가 잘 하는 말이 있다. "야, 우리 정말 Cool 하게 놀고 Cool 하게 살자..." 허 재가 그 농구 실력을 가지고 20년만 늦게 태어났다면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가 추구하는 삶, 그가 하고자 하는 농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우리가 안타까울 때가 있다. 명전을 통해서 취재한 많은 스포츠 스타 중에서 유일하게 '보 고 싶다' 는 생각이 가끔씩 들게하는 사람이 허재다. 그와 함께 있으면 인간 냄새 가 난다. 어떨 땐 쓰레기 같은 인간 냄새, 어떨 땐 Royal Salute 고급 양주같은 인 간 냄새, 그리고 어떨 땐 연민의 정에 살이 떨리게 하는 인간 냄새... 얼마 전 점프볼이란 농구잡지사의 편집장님이 허재에 대한 기사를 좀 써달라고 부탁 했지만 정중하게 거절한 적이 있다. 두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홍수환의 명전 기사 쓰는 일로 똥줄이 타고 있을 때였고, 또 한가지 이유는... 앞으 로 허재를 농구 선수 허재로만 보고 싶은 이유 때문이었다. 그와 친해지고 가까워질 수록 그의 농구 경기를 보는 재미가 없어진다는 느낌이 든 적이 있었다. '저 형이 왜 저렇게 빌빌거리지? 어디 아픈가??' 하며 무작정 상상하고 초조해 하는 일개 팬 의 긴장감은 사라지고, '어제 그 형들이랑 이빠이 한잔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서 기대감이 사라졌다. 허재가 농구 선수로 뛰고 있는 동안 만큼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겠지만)... 농구 선 수의 팬으로서만 지켜보고 응원하려고 한다. 그만큼 농구선수 허재에겐 시간이 얼마 안 남았기 때문이다. 민간인 허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도 많으니까 말이다... 어느새 이렇게까지 허재의 팬이 되어버린 내 모습이 믿기지 않을 때가 있지만, 또 어떨 땐 이제서야 그의 팬이 되어버린 내 자신이 밉다. 좀 더 보아둘 껄... 좀 더 응원해 둘 껄... 남들도 그런 아쉬움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서 허재의 명전을 써 내려갔다. ........................... (출처) 후추닷컴
첫댓글 어흉~점심시간에보긴힘들군요..퇴근하고 집에가서 봐야갯어요..양이엄청나네..그래두 정말 잼나네요..
2시간동안 읽었어요..눈이 빙빙~~ㅋㅋ
에궁,,,좋은글인데,,, 여백을넣어서 읽기편하게 해주시지,,ㅋㅋㅋ 어째든 감동적인글입니다,,,,, 다보고나니 눈이뻑뻑,,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