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셀 염소와 예수 그리스도
2022. 9. 18. 주일 낮 레 16 : 1-10
레위기 16장은 대속죄일에 관한 내용입니다. 대속죄일은 이스라엘의 1년 주기 중에서 가장 거룩한 날입니다. 속죄일은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금식해야 하는 유일한 날입니다. 이 날에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들어가서 규정된 제물을 드립니다. 이 규례는 매우 엄격하여 규정을 조금이라도 어기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본문 2, 1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속죄일의 예식 순서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제물로 잡은 염소의 피로 속죄제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성소를 정결케 하는 의식입니다. (본문 9절, 15-19절)
다른 하나는 그 정결례가 진행되는 동안 산 채로 야웨 앞에 두었다가 그것이 끝난 후 숫염소를 이스라엘 자손의 죄를 짊어지게 한 채 광야로 아사셀을 위하여 보내는 예식입니다.
여기서 ‘아사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몇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 아사셀을 히브리어 음역으로 보면 염소와 버리다 혹은 사라지다의 합성어로 이루어졌습니다. 곧 ‘속죄의 염소’ 또는 ‘내보냄을 받은’ 염소를 뜻합니다.
- ‘쫓겨난 악령’, ‘귀신’이란 뜻을 지니고 있는 히브리어의 또 다른 언어를 가지 고 있는데, ‘타락한 천사의 우두머리’ 곧 ‘사단’을 가리키는 견해입니다. 따라 서 “아사셀을 위하여”라는 말은 이스라엘의 모든 죄 짐을 진 염소를 죄의 장 본인인 아사셀이 사는 광야로 다시 되돌려 보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견해입니 다.
- ‘제거하다’, ‘없애다’란 뜻의 아랍어로 그 의미는 ‘완전한 제거’입니다. 그러므 로 아사셀 염소가 광야로 나가는 것은 이스라엘의 모든 죄악이 멀리 제거 되 는 것을 의미한다는 견해입니다.
- 쫓겨난 염소가 거하게 될 광야의 어느 장소를 가리킨다는 견해입니다.
4가지의 여러 견해가 있지만 공통점은 이 염소가 이스라엘의 죄를 대신 지고 멀리 떠나 갔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홀로 담당하고 광야로 멀리 떠난 아사셀의 염소가 인류의 죄악을 완전히 없애시기 위해 그 죄를 지고 성문 밖 골고다로 향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 1:29절입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 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아사셀 염소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은혜를 다시 한번 생각하며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아사셀 염소와 예수 그리스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1. 모세 율법은 죄를 속하기 위한 속죄 제물을 요구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죄’를 나타내는 중심적인 말은 ‘하마르티아’로, 이 뜻은‘과녁에서 벗어난 것’, 곧 하나님의 율법에 어긋한 행위를 가리킵니다. 로마서 6:23절에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망’이란 영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죄의 결과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교제를 단절시키고, 고통을 받게 하여 결국 심판을 받게 됩니다.
히 9:27절“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러한 죄를 속함 받기 위해서 드리는 제사가 바로 속죄제입니다. 이러한 속죄제 즉 동물의 희생 제사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의 대가를 지불하고 외적인 정결함으로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되었습니다.
속죄제를 드리는 가장 중요한 날은 1년에 한 번 전 국민의 죄를 위해 행해지는 7월 10일의 대속죄일입니다. 이날은 ‘보상과 속죄의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1년 동안 지은 죄를 사함 받기 위해 성회로 모여 마음을 괴롭게 하고 아무런 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29절 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 이유는 민족과 개인의 생사가 걸린 운명의 날이요, 범국민적인 역사의 현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반드시 그 죗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죄 용서를 구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요1서 1:9절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 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구약 시대에는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반드시 희생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제사장이든, 족장이든, 평민이든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그들은 모두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죄를 지은 당사자는 희생 제물을 회막 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희생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제사장이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았습니다. 또한 제사장은 잡은 희생 제물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서 자신의 손가락에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곧 성소 장 앞에서 일곱 번 뿌리고 또 여호와 앞 곧 회막 안 향단 뿔에 바르고 희생 제물의 나머지 피 전부를 회막문 앞 번제단 밑에 쏟아야 했습니다.
이 모든 의식은 대제사장이 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짐승의 피가 죄를 온전히 없애지는 못했습니다. 구약의 동물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그림자이기 때문입니다.(히 9:12-14절)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나서는 동물 제사는 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친히 달려 희생 제물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날마다 감사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아사셀 염소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속죄일에 드리는 제물은 두 마리의 염소입니다. 두 마리 중, 제비를 뽑아 한 마리는 희생 제물이 되어 여호와께 드려지고, 다른 한 마리는 8절에 말씀처럼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내졌습니다.
아사셀을 위하여 보내지는 염소는 악한 세력의 우두머리인 아사셀에게 염소를 내어 보내는 것은 그 염소에게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게 하여 모든 죄를 다시 아사셀에게 보낸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는 겁니다.
결국 아사셀 염소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담당하여 광야로 나가는 염소를 의미합니다.
유월절의 어린 양이 드려짐의 상징이라면 아사셀 염소는 버려짐의 상징입니다. 아사셀은 이집트의 종살이를 마치고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제정하여 주신 또 다른 속죄의 방법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5:32-33에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부연 설명을 하시면서 마 25:34에서 양은 “창세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마 25:41절에서는 염소들에게는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양은 순결을, 염소는 죄를 상징합니다. 죄 없는 양은 죄인을 대신하여 죽고 죄의 상징인 염소는 사람들의 죄까지 전가 받은 후 광야에 버려진 채 죽는 것입니다. 양은 이렇게 드려짐을, 염소는 버려짐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아사셀 염소는 우리 죄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걸으셨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이와
이와 같이 예수님은 자신을 스스로 내놓으신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 은혜를 생각하면 오늘날 예수님을 향한 나의 사랑은 어떤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늘 기억하고, 항상 그 은혜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 은혜의 사랑을 이웃에게 함께 하여 향기로운 열매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는 산 제물로 자신을 드리셨습니다.
지금까지 말씀을 드렸듯이 제물의 일부는 번제단 위에, 일부는 진 바깥에 태워진 것은 ‘아사셀을 위하여’광야로 보내진 염소를 상징하기 위함입니다.
인류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고대 지중해 연안 마을에는 명절을 맞아 장애인, 병든 자, 범죄자 등을 한곳에 모아놓고 돌을 던지거나 막대기로 때려 마을 밖으로 내쫓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마을에서 쫓겨나 돌산으로 올라가 맹수의 밥이 되거나 비참하게 굶어죽었습니다. 그들처럼 병약하고 힘없는 자들을 마을에 두면 그 마을에 재앙이 임할 수 있으므로 그들을 몰아내어 재앙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내막을 알고 보면,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시절이라 생산 능력 없는 사람이 식량 축내는 것을 막는 조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구약의 율법은 이처럼 일반적으로 지도자들이 마을에 재앙을 내린다고 지목하던 장애인 등의 약자를 마을에서 추방하는 대신, 동네 염소를 쫓아내는 것으로 대신하도록 명했습니다.
바로 여기서 “인간 대신 내쫓긴 염소”라는 뜻의 “희생양”이라는 용어가 유래한 것입니다. 염소가 인간의 불이익을 짊어진 것입니다. 병들고 약한 인간을 대신하여 염소가 대신 죽음당한 것입니다.
속죄의 염소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짊어지고 죽기 위해 광야로 보내진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백성의 죄를 위해 예루살렘 영문 밖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의 인간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해 단 한 번 속죄 제사를 드렸습니다. 즉 예수님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것입니다.
히 7:27절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구약 시대에 짐승을 죽임으로써 죄사함을 받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제사는 영원한 것이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히 10:12절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성도가 지은 모든 죄를 사해 줄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알게 모르게 지은 모든 죄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 간절히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돌아가시므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것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처럼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것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고귀한 보혈의 피로 속죄를 받은 우리들은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위해 예수님을 푯대로 여기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예수님을 좇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아사셀의 염소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예표입니다. 아사셀 염소의 상징으로 버림받게 하시고, 죽게 하시고 죄로 물든 인간들을 구원하지 더 이상 다른 죽음들이 남용되지 않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성도 여러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주인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