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 황홍윤 2005.08.18. 김춘일 언님
어제 그 이 선생님 출가에 대해서 말씀 드렸고 오 장로님 출가에 대해서 말씀 드렸습니다. 그럼 인제 홍윤 어머니 이 선생님의 사모님에 대해서는 어떻게 되었는가? 궁금하시지요? 사모님에 대해서 간단하게 제가 인제 그 어머니 만나본 것에 대해서 조금 간단하게 적었습니다.
황 홍윤 어머니의 고백, 남편의 가는 길을 조금도 알지 못하는 부인은 할 수없이 큰집으로 들어갔다. 집안 어른들은 조금만 고생하고 참고 있으면 돌아올 것이라고 위로해 주었지만 일각이 여삼추와 같이 지루하고 외로워 더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중매한 형부, 백 연흠 목사를 찾아가 울면서 원망을 했다. 그때마다 형부 목사는 괜찮아, 괜찮아 라고만 했다. 애증은 하나라고 말했듯이 그립고 보고 싶던 애정의 감정은 미움의 감정으로 변하고 말았다. 번뇌와 고통은 쌓이고 밤마다 고독을 안고 몸부림을 치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숨을 쉬고 살수가 없었다. 그래서 할 수없이 죽기로 결심을 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혼자 죽기에는 너무 억울했다. 그 미운님하고 같이 죽어야지, 하면서 남몰래 칼을 품에 품고 다녔다고 훗날 고백하셨다. 1945년 해방이 되고 여경에 지원해서 여경 훈련을 받기위해 서울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김 은현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전남에서 올라온 한 사람이 젖먹이가 딸려있고 애기를 보기위해 어린 조카도 같이 데리고 와있었다. 홍윤 어머니는 전라도에서 올라온 한 방 훈련생들에게 양해를 얻어 십시일반이라고 우리 한 수저씩 덜 먹고 이 딱한 세 식구를 도우자고 했다. 그렇게 해서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1950년 육이오가 터지고 광주에는 7월 23일 그러니까 삼팔선은 6월 25일 날 터졌고 광주에는 약 한 달 뒤에 23일 날 육이오가 터진 날도 주일날이고 7월 23일도 주일날 이었답니다. 1950년 6.25가 터지고 기세가 당당했던 경찰들은 기가죽고 사기가 떨어지고 갈 곳이 없어졌다. 이 상황을 미리 알고계신 하나님의 종 사부님은 사람을 보내어 동광원 식구들과 함께 화순 도암으로 피난을 가자고 소식을 전했다. 이 소식을 들은 부인은 또 한 번 남편의 사랑을 느끼고 울었다. 은현 친구는 삼남매를 큰집에 맡기고 동료들 다섯 명과 함께 동광원 식구들을 따라 피난길에 올랐다. 그때 미국 유 화레 선교사님은 이 몸은 한국에 바친 몸이라고 죽어도 한국에서 죽는다고 광주에 남아 계셨다. 운전기사로 있던 방 한식 씨가 달려와 사부님께 이 소식을 전했다. 사부님은 빨리 이곳으로 모시고 오라고 하셨다.
사부님은 여 선교사님을 짐짝처럼 꾸며 지게에 짊어지고 도암까지 모시고 가도록 했다. 화학산 굴속에 숨어서 약 3개월간 구사일생의 시련을 겪으셨다. 김 은현 친구는 평양이 고향이다. 일제 때 중국에서 전라도 사람과 결혼을 해서 살다가 해방을 맞아 남편 고향 시집으로 왔으나 살길이 막막했다. 그래서 부인이 먼저 여경이 되고 남편도 다음 해 경찰에 지원했는데 남편은 여순 반란 때 지원병으로 나갔다가 그곳에서 순직했다. 3개월간의 피난생활을 마치고 원상복귀가 되었다. 사부님은 김 준호 제자와 15일 후에야 하산하셨다. 사부님은 당신 때문에 여러 사람이 순교를 당했는데 무슨 낮으로 살아갈 수 없다고 하시고 굶어 죽는 죽음보다 더 깨끗한 죽음은 없다고 하셨다. 그러나 제자를 위해 할 수없이 15일 후에 하산하셨다. 은현 친구는 외모도 예쁘지만 정직하고 겸손하고 신앙이 깊고 경우가 바른 여자였다. 오갈 곳 없는 자기들 뿐 아니라 미국 선교사까지 생명을 내놓고 감싸주신 그 큰 사랑을 꿈에도 잊을 수가 없었다. 하산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빨리 찾아뵙고 인사를 올리고 싶었다. 은현 언니는 하산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동광원을 찾아와 방문을 열고 사부님을 뵙는 순간 그 인격에 압도되고 말았다. 한참 침묵이 흐른 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하고 물으시자 입이 붙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자기도 모르게 눈물만 한없이 흘렀다. 다음에 다시 뵈러 오겠습니다. 이 말 한마디를 겨우 남기고 사부님 방을 빠져 나왔다. 아버지의 성령으로 주신 은총의 시간이었다. 고향 평양에서부터 교회에 나갔지만 오늘에야 동창이 열리고 하늘의 신선한 거룩한 은총의 숨을 마시기 시작했다. 암담했던 인생문제 생존경쟁문제가 확 풀리고 인생의 정로, 가야할 길이 밝히 보였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친구는 기쁘고 즐거웠다. 사람이 되어야 사람을 알아본다는 말과 같이 은현 친구는 어두운 굴속에서 빠져나오는 큰 기쁨이었다. 친구를 보고, 어 야, 자네 남편 의인이 데 의인이여, 나 받아만 준다면 애기들 데리고 살러 갈라네. 자네도 같이 가세. 했다. 그러나 친구는 완강히 거절했다. 몇 차례 의논 끝에 직장을 그만두고 3남매를 데리고 영혼의 평화를 찾아 영혼의 고향인 동광원에 들어왔다. 1952년 33세 때 들어와 40여년을 열심히 봉사하시고 91년 72세로 원하시던 평화를 얻고 아름답게 세상을 뜨셨다.
귀일원 제 2대 원장으로 계시다가 세상을 뜨셨다. 외롭고 고독했던 홍윤 엄마는 좋은 친구를 만나 서로 의지하면서 3남매를 같이 기르면서 살기로 했다. 그러나 의지했던 그 친구마저 하필이면 그 미운님을 따라 가고마니 속이 상할 대로 상해 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것들 원수를 갚아야지. 그래서 재혼을 하기로 결단을 내리고 얼마 전부터 요청해온 상처한 남자와 재혼을 했다. 본실 자녀 4남매를 길러 결혼을 시켰다. 남편은 부인을 아끼고 사랑해 주었다. 그러나 첫사랑의 상처는 항상 마음속 깊이깊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친정어머니는 의인 남편 버리고 시집갔다고 딸집에를 한 번도 가시지 않고 살다가 돌아가셨다. 1964년 3월 18일 사부님의 귀천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슬픔의 보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가게에 앉아있으면 가게 앞을 지나가면서 방긋이 웃어주던 그 미운님의 모습마저도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것이 한없이 서글펐다. 그 후 영감님도 돌아가시고 6년간 시내 계시다가 96년 7월에 도장리, 그 이 공님 사모님 마지막에 모셨던 그 정 월례, 정 월순 자매님 땅을 얻어 집을 짓고 이사 오셨다. 그 어머니를 볼 때마다 미안하고 죄송했다. 어머니가 받아야할 사랑을 우리들에게 억지로 빼앗기고 고생하신 어머니라고 생각되었다. 우리들을 위해 희생하신 어머니는 도장리에서 3년간 회개의 눈물을 흘리시고 사부님의 사진을 보시고 ‘내가 잘못했소. 내가 잘못했소. 그때 바늘귀만큼이라도 보였더라면 이렇게 후회되는 50년을 안 살았을 것이오.’ 하시고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나같이 후회되는 삶을 살지 말고 예수 바로 믿고 어른들 말씀 잘 순종하라고 전도 하셨다. 날마다 이 공님 부인 묻히신 산을 향해 기도하시고 묵주신공 바치시고 1998년 12월 28일, 82세를 일기로 아름답게 성화되어 한 많은 생을 생의 막을 내리셨다. 아버지, 성모님 감사합니다.
예, 홍윤 씨 어머니에 대해서 이렇게 간단하게 적어봤습니다. 또 홍윤 씨 어머니에 대해서 언젠가 한번 발표 한 기억이 납니다. 홍윤 사모님을 그리며 제목을 ‘생각 따라 마음 따라’
‘생각 따라 마음 따라 정든 님 맨발벗고 회개 길에 나서니 떠난 님 그리워 고독만 쌓이누나 정든 님 가신 길은 아득한 천리 길 미운님 가신길이 회개인줄 몰랐네. 은총으로 가는 길 겸손하게 가는 길 생각 따라 마음 따라 미운님 고운님 후회되는 반세기를 바람결에 보내고 기저귀 차고서야 엄마 찾는 어린애 살자니 고생이요, 죽자니 공포라. 이제야 뚫린다. 바늘귀가 보인다. 정든 님 맨발벗고 가신길이 보인다. 생각 따라 마음 따라 미운님 고운님 내 안에서 찾았네. 하늘가는 밝은 길 죄의 빚 갚고 보니 남은 것은 흙 한줌 도장리 언니동생 사랑의 빚 이고지고 날마다 기도하던 한골 엄마기도 밑에 보기도 아름답다. 회개한 두 무덤 생각 따라 마음 따라 미운님 고운님’ 그 한골 어머니 묘하고 나란히 묻어 드렸지요.
‘내 안에서 찾았네 하늘가는 밝은 길 죄의 빚 갚고 보니 남은 것은 흙 한줌’ 조그마한 무덤 인생의 참 살다 남은 것이 결국에는 흙 한줌으로 변해 버린다. 남은 것은 흙 한줌이라는 그 무덤을 볼 때 그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 한 번 더 읽겠습니다. ‘정든 님 맨발벗고 회개 길에 나서니 떠난 님 그리워 고독만 쌓이누나. 정든 님 가신 길은 아득한 천리 길 미운님 가신길이 회개인줄 몰랐네. 은총으로 가는 길 겸손하게 가는 길 생각 따라 마음 따라 미운님 고운님’ 후회되는 50년이지요? 후회되는 반세기를 바람결에 보내고 기저귀 차고서야 엄마 찾는 어린애 몇 개월간 기저귀 차고 계셨지요. ‘살자니 고생이요. 죽자니 공포라.’ 정신은 멀쩡해 가지고 기저귀차고 드러누웠으니 어서 죽어야겠는데 죽음을 생각하면 죽음이 아주 두렵다고, 죽음 생각하면 아주 무섭다고, ‘기저귀 차고서야 엄마 찾는 어린애, 살자니 고생이요. 죽자니 공포라.’ 그때 뚫리는 거지요. 바늘귀가 마음 귀가 열리는 거야. ‘이제야 뚫린다. 바늘귀가 보인다. 정든 님 맨발벗고 가신길이 보인다 생각 따라 마음 따라 미운님 고운님 내 안에서 찾았네 하늘가는 밝은 길 죄의 빚 갚고 보니 남은 것은 흙 한줌 도장리 언니동생 사랑의 빚 이고지고 날마다 기도하던 한골 엄마 무덤 곁에 보기도 아름답다. 회개하는 두 무덤 생각 따라 마음 따라 미운님 고운님’ 홍윤 엄마를 추모하면서 모든 문제를 생각하기에 달려있다. 원효대사와 해골바가지 이야기.
어제 장로님 하고 이 선생님 하고 계명산 에서 그 장로님이 계명산 으로 가서 몇 개월 후에 이 선생님이 방문 하셨는데 그동안에 어떻게 지냈습니까? 나는 독사같이 살았습니다. 나는 독사입니다. 그때 이 선생님이 그 말씀이 떨어지기 전에 나는 독사의 왕이요. 그래서 동광원의 두 믿음의 두 뿌리는 두 독사가 믿음의 두 뿌리라고 그렇게 저는 생각 합니다. 두 독사라는 제목으로 어제 발표 했지요? 이 시만 한 번 더 읽고, ‘왕 독사 은총 받아 허물 벗고 나와서 이 선생님이 나는 독사의 왕이요. 장로님이 나는 독사같이 살았습니다. 나는 독사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독사의 왕이요. 왕 독사지요? ‘왕 독사 은총 받아 허물 벗고 나와서 순결의 구원이요, 평화라고 외치고 가난이 복이라고 깡통을 울리니 숨어있던 작은 독사 같이 들고 나왔네.’ 장로님 이지요? 교회 안다니고 인제 집안에 성경보시고 기도하시고 교회 안 나가 버렸으니까, 숨어있는 것이지요? ‘숨어있던 작은 독사 같이 들고 나왔네.’ 깡통 같이 들고 나왔지요? 오장치 져야지요? 어떻게 하면 예수 잘 믿을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오장치 져야지요. 깡통 차야지요. 정리하시고 목공소 정리하시고 3남매 부인까지 다섯 식구 깡통 들고 나선거지요. 오 장로님 지금 오 장로님 말씀 들어보십시오. 도구박골 산골에 빈 집이 있어서 거기서 생활 하시는데 그 너무나 쑥이나 삼나무 같은 거해서 어린 애기들이 먹고 막 토했다는 거예요. 소화를 못시키고 막 토해요. 그래 장로님하고 어머니하고 말다툼을 하더라. 그리고는 얼마나 사셨는지 그 어머니는 자기 갈 길로 가셔버린 거지요.
‘가난이 복이라고 깡통을 울리니 숨어있던 작은 독사 같이 들고 나왔네. 그 독사 장단 맞아 북 치고 장구 치니 굴속에서 방황하던 새끼들이 기어 나와’ 우리들은 독사 새끼들이지요? ‘아버지의 은총 받아 아들딸이 되었네. 선악이 하나 되어 참 복음을 외치니’ 어제 발표 했지요? 장로님 돌아가시기 몇 년 전에 복음은 무엇인가? 극악극선이 하나 되는 것이다. 극선이신 예수님을 만나는 길은 내가 극악이 되어야 된다는 큰 깨달음 이십니다. ‘선악이 하나 되어 참 복음을 외치니 동광원이 꽃이 피고 앵무새가 노래하네. 날마다 새 하늘과 날마다 새 날일세. 천년이 하루같이 감사가 넘치네.’
발표. 이 선생님 출가에 대해서 어제 장로님 출가에 대해서 홍윤 어머니에 대해서 저희들이 마지막 홍윤 어머니의 최후를 지켜봤기 때문에 그만큼 발표 했습니다. 이 선생님을 한 10여 년간 모셨지요. 항상 같이 생활 한 것은 아니고 지방에 있다가 가끔 뵙기도 하고 수양회 때 말씀 듣고 그래서 제 기억에 남은 것은 몇 군데 말씀 성경 해석해 주신 것이 제 마음에 남아있는 말씀 몇 군데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오시는 손님들에게 이 선생님에 대해서 말씀 좀 해주시라고, 그러면 제가 제 기억에 남아있는 말씀이니까 해드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요한복음 16장 공동번역입니다. 아홉시까지 아홉시 전에까지 마쳐야 하니까 시간이 촉박하네요. 5절입니다. 16장 5절, ‘만일 나를 보내신 분에게로 돌아가렵니다. 그런데도 당신들 중 아무도 내게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 사람이 없고 오히려 내가 한 말 때문에 당신들의 마음이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당신들 에게는 더 유익 합니다.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그 협조자가 보혜사가 당신들에게 오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당신들에게 보내겠습니다. 그 분이 오시면 죄와 정의와’ 대개는 의라고 했지요? ‘정의와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꾸짖어 바로잡아 주실 것입니다.’ 죄가 무엇인지 의가 무엇인지 그걸 인제 바로 한계를 지어주시겠다. 성령을 보내서, 그분이 오시면 9절이지요? 그분이 오시면 너희가 나를 믿지 않았다는 것이 죄라고 지적하실 것이고 내가 아버지께로 가고 당신들이 나를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가르치실 것이고 10절 까지만 봤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크고 작은 죄가 수천가지지요? 큰 죄 작은 죄 그러나 여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보시는 죄는 안 믿는 것만 죄로 보신다는 것이에요.
믿지 않는 것이 죄다. 성령이 오셔서 안 믿는 것이 죄라고 지적해 주실 것이다. 알려주실 것이다. 의는 무엇인가? 내가 아버지 안에 들어가서 없어지는 것이 의다. 인간으로서 개역에는 인자로 나와 있지요? 공동번역 으로는 사람의 아들, 몸을 갖은 인간예수 이 성령으로 잉태되어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난 예수님 이지만 이 인간은 없어져 버리는 것이 의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문제는 죄 안 믿는 것이 죄다. 그럼 믿고 안 믿고의 한계가 무엇이냐? 장로님한테 많이 들었지요? 믿고 안 믿는 것의 한계가 무엇이냐? 무엇이라고 장로님 말씀 하셨지요? 믿음은 무엇이고 죄는 무엇이라고 했지요? 내가 있고 없고 내가 죽고 안 죽고 내가 죽었으면 믿음이고 내가 안 죽었으면 믿음 아니다. 그러면 죄다. 그 말이에요. 마태복음 7장 21절입니다. ‘나더러 주님 주님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어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날에는 많은 사람이 나를 보고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쫒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 때에 분명히 그들에게 악을 일삼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거라.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할 것이다.’ 개역에는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공동번역에는 악을 일삼는다. 주님 이름 불러서 예언했다. 선지자 노릇 했지요? 또 병 고치는 기적 또 귀신까지 쫒아 냈어요. 주님 이름 불러서 이렇게 큰일을 했지요? 예수 믿고 이보다 더 큰일이 어디가 있어요? 예언하고 기적행하고 귀신 까지 쫒아 냈는데 그럼 이거 불법이에요. 개역에는 불법으로 되어있고 공동번역에는 악이라고 그랬어요. 악이요. 왜 그럴까요? 생각해 볼 문제에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요? 저희가 이 선생님한테 들은 기억으로 같이 생각해 보는 시간입니다. 내가 했다는 의식 기억이 살아있다는 동안에는 불법이에요. 내가 아직 안 죽었어요. 안 믿은 것이에요.
그건 죄에요. 내가 했다는 기억 의식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불법이에요. 그래 어제 이 공님 길을 가시다가 거지를 만났는데 불쌍한 거지가 오니까 주머니에서 돈을 꽤 많은 돈을 꺼내서 줬는데 죽을 사람 살려줬다고 손이 발이 되게 빌 줄 알았는데 무심코 지나가 버렸어요. ‘저런 괘씸한 놈이’ 그리고 뒤를 돌아다보는 순간에 이 공님이 깜짝 놀라셨다는 거예요. 세종이 아직 안 죽었구나. 아직 안 믿었구나. 구제도 전도도 다 정리하시고 깊은 산중으로 입산 하셨다고, 이거 참 무엇이 참 믿음인가? 우리가 깊이 고찰하고 생각해볼 문제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내가 했다는 의식 기억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아직 안 죽은 것이에요. 아직 안 믿었어요. 믿음의 요절은 갈라디아 2장 19절로 20절이지요. 나는 율법을 죽어서 없다.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내안에서 그리스도가 살고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25장에 오른쪽 양, 왼쪽 염소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 내가 배고플 때 헐벗었을 때 감옥에 갇혔을 때 병들었을 때 찾아보지 않았냐? 그 사람들 우리가 언제 했소? 기억에 없어요. 그게 의인들이에요. 기억에 없어야 되요. 신병이라는 천주교에서 발행한 책을 이 선생님 살아계실 때 우리가 구입해서 봤는데 마지막 죽음의 시간에 너 이런 좋은 일 했지 않냐? 하고 시험을 한다는 거예요. 아 나 한일 없다. 했으면 아버지의 은총으로 한 것이지 나는 한 기억이 없다. 꼭 죽어본 사람이 쓴 것 같다고 그때 그런 말씀하시데요. 죄는 안 믿는 하나님이 보시는 죄는 안 믿는 것이 죄다. 그럼 믿고 안 믿고 한계가 무엇이냐? 내가 죽고 안 죽고 내가 살아있으면 안 믿는 것이다. 의식까지도 기억 까지도 완전히 성화되어서 기억도 의식도 없어야 된다는 것이에요. 그래 의는 그러니까 지금 손 안팎이나 동전 안팎이나 같은 것이야. 그래 인간 예수는 아버지 안으로 들어가서 없어지는 것이 의라고 죄는 안 믿는 것 인간이 살아있는 것이 죄. 그럼 의는 인간은 예수까지라도 아버지 안에 들어가서 흔적도 없어지는 것이 의다. 내가한 기억도 의식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수고를 해서 어쩌고저쩌고 했는데 그것 때문에 복잡하지 않아요? 공동체에서나 개인이나 이 선생님한테서 배울 때는 분명히 그렇게 배운 기억이 나서, 귀한 시간을 주셔서 한번이라도 참고가 될라나 해서 같이 생각해 봤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서부터 봅니다. 공동번역입니다.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 안식일 다음날 저녁때 제자들이 어떤 집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무서워서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들어오셔서 그들 가운데 서시고 당신들에게 평화를 빕니다. 하고 그들에게 인사하셨다.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예수께서 다시 당신들에게 평화를 빕니다.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주신 것처럼 나도 당신들을 보냅니다하고 말씀 하셨다. 이 말씀을 하신 다음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입으로 숨을 내부으시며 말씀을 계속하셨다. 성령을 받으시오. 누구의 죄든지 당신들이 용서하여주면 그들이 죄를 용서 받을 것이고 용서하여 주지 않으면 그들은 죄를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있을 것입니다. 66권을 통 털어 여기 이 말 여기밖에 없지요? 다른 복음에도 없고요. 제자들이 무서워서 문을 걸어 잠그었지요? 문을 믿은 것이지요? 무서워서 제자들도 아직은 공포에 덜덜 떨고 있었어요. 이 무서움 두려움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아까 홍윤 어머니의 글 가운데 살자니 고생이요. 죽자니 공포라. 아 죽기가 무섭다고 몇 달 동안 그렇게 하시더니 돌아가시기 10일 남겨놓고 그냥 어떻게 하루저녁에 성화를 받아버렸어요. 항상 먹구름이 항상 인상을 찌푸리고 그러시더니 그냥 환하게 얼굴이 빛이 나고 그 어두운 구름이 싹없어져요. 어머니 병원에 가실까요? 아니 안 간다고, 어머니 어때요? 죽기가 무서우시오? 아니 안 무섭다고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이 공님 어머니도 어제 그렇게 훌륭하게 잘 가시고 이 선생님 사모님도 아 죽는 것 안 무섭다고 참 성화 받고 공포와 두려움에서 자유인들이 되어서 가신 것이지요. 제자들이라도 무서웠어요.
‘도’라는 대행스님 책을 저희들이 봤지요? 지금 살아계시는 분이에요. 대행스님, 그분이 성령에 이끌려서 도를 깨치게 돼서 무슨 힘에 이끌려서 몇 년간 산천을 헤맸지요? 집도 절도 없이 그렇게 다 떨어진 옷을 그렇게 철덕궁 철덕궁 하고 다니면서 다 사람들이 정신 환자로 본 것이지요. 한번은 그리고 다니다가 그 새로 묻은 묘에 가서 저녁을 자게 되었어요. 아니 새 묘 둑, 그런 일이 없었는데 어쩐지 싫어요. 묘가 좀 무서워 이상하다. 왜 이 묘 둑이 무서울까? 이왕에 내놓은 생명인데 무섭다고 내가 여기서 물러나겠냐? 그리고 묘 둑 옆에가 앉아서 생각을 하는 것이에요. 한참 왜 이것이 무섭냐? 왜 이것이 싫을까? 그리고 한참 몇 시간을 생각을 하고 있는데 송장 둘이 묘 둑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에요. ‘아, 저 밖에 누가 왔다.’ 합장해놓은 묘였는지 모르겠어요. 밖에 누가 왔다. 누가 와야 아 저 도둑놈 왔다. 밖에 도둑놈 왔다. 도둑놈 와도 우리가 도둑맞을 것 없지 않냐? 아 우리들 신발 있지 않느냐? 송장들이 둘이 이야기를 하는 걸 듣는 거지요. 참으로 했겠어요? 정신세계에서 그렇게 깨달아지는 거지. 그러더니 갑자기 묘에서 용수철 툭 주먹이 튀어나오더니 탁 머리를 쳐버리니까 뒤로 발랑 나자빠졌어요.
보통 사람 같으면 정신이 아찔했겠지요? 기왕에 내놓은 생명인데 그런다고 내가 물러서겠냐? 다시 일어나 앉아서 생각을 하는 것이지요. 명상을 하는 것이지요. 나중에는 송장이 하는 말이 ‘너와 나도 하나다.’ 송장이 너와 나도 하나다. 그 말이 뭔 말이에요? 너와 나도 하나다. 그 말이 뭔 말이에요? 화목하자. 그 말이에요. 죽음과 화목하자. 죽음과 화목하자. 송장하고 화목하자. 아직 송장하고 화목이 안 되어서 송장이 싫고 무섭다는 것이에요. 그 도라는 책에 그 핵심 아니에요? 제자들도 예수와 같이 죽고 예수와 같이 사는 부활의 체험이 없기 때문에 죽기가 무서운 것이지요. 제자들이 3년 동안 예수님 따라다녔지만 그런데 예수께서 들어오셔서 그들 가운에 서시고 당신들에게 평화를 빕니다. 하고 인사를 하셨어요. 그런데 제자들이 공포 앞에 전율 해 떨고 있다가 노크도 없이 팍 뭔 사람이 들어와서 당신들에게 평화를 빕니다하고 인사 했는데 어리둥절하지요. 예수님께서 내 손봐라. 내 옆구리 봐라. 너희들도 다 보지 않았냐? 안심해라. 그 말 아니에요? 나다. 안심하라. 예수님의 그 뜻은 막달라 마리아가 와서 부활했다. 내 하나님 너희 하나님 내 아버지가 너희 아버지라고 가서 전하라고 했다. 그래도 안 듣는 것이에요. 손 옆구리 창 자국 못 자국 우리를 낳은 구멍이에요. 우리를 낳은 구멍 우리 육신의 어머니도 우리를 낳을 때 피 쏟고 낳았지 않아요? 우리를 낳은 못 자국 창 자국 발에 못 자국 그것을 보고야 제자들이 안심이 되어서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그 기뻐하는 제자들에게 다시 또 평화를 빌어주는 거예요.
‘예수께서 당신들에게 평화를 빕니다.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당신들을 보냅니다하고 말씀 하셨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목적이 무엇이에요? 무엇하라고 보내셨어요? 십자가 지라고요?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시라고요? 무엇 주고 가셨어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많이 나와요. 지금 여기도 금방 나온 말씀이에요. 당신들에게 평화를 줍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평화를 주러 오셨어요.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것도 평화를 주자는 수단과 방법의 하나에요. 아무리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 승천 하셨어도 안 믿고 안 믿으면 마음에 평화가 없어요. 평화를 주러 오셨어요. 평화 없는 이 땅에 평화를 주러 오시는 그것이 과정이고 방법이에요. 그 길이 아니고는 평화를 줄 수가 없어요. 그래 오늘도 사랑에 대한 선생님도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사랑해서 우리를 사랑해서 역사하신 것이지요. 어제 예레미야 37장 31절, 현대어 성경으로 내 백성이 아무리 죄를 많이 지어도 내가 너희를 버릴 수가 없다. 어째 버릴 수가 없다고요. 그렇게 마음대로 하게 놔둘 수 없다. 그거에요. 자식들이 마음대로 하면 부모들이 매도 때리고 하지만 다 용서하지 않아요? 부모의 사랑에다 대겠어요? 엄청나지 하나님의 사랑은 비교도 할 수 없지. 그렇게 죄 지을 수밖에 없이 만들어 놨는데 어떻게 버리겠냐 말이에요. 저의 말입니다. 그 절수보고 너무 기뻐서 한절 봤어요. 아버지께서 평화 없는 이 세상에 평화를 보여주라고 보낸 것처럼 나도 당신 제자들을 평화 없는 이 땅에 평화를 전하라고 보낸다. 그 말이에요. 누구 집에 들어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평화를 빌어주라. 그 말이에요. 우리 예수님께서 평화 빌어주라고 말씀 하셨어요. 내게 평화가 없으면 어떻게 전해줄 수 있어요? 빌어줄 수 있어요? 주의 평화를 빕니다. 이 집에 주의 평화를 빕니다. 불교인들은 만나면 성불 합시다. 얼마나 좋아요? 부처님 됩시다. 그 말이에요. 부처님 이라는 뜻은 무슨 뜻이라고요? 부처님 뜻이라는 뜻은 무슨 뜻이에요? 깨달았다는 뜻 아니에요? 깨달았다. 백년을 살아도 이 세상은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성불합시다. 그 말은 깨달읍시다. 그거에요. 참선하고 명상하고 모두 노력들 하지요? 깨닫기 위해서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가? 인간의 본성 깊이 찾아서 이 바닥까지 내려가요. 복사 소화 테레사같이 24살을 살았던 깨끗하게 죽은 그런 성녀를 막달라 마리아보다 죄인이라고 그 비문에다가 써주십시오. 그러나 걱정은 없습니다. 온 세상이 지은 죄를 내가 다 지었다 해도 장작불에 떨어지는 무엇과 같다고요. 눈 한 송이 와 같다. 떨어지나 마나야. 온 인류의 죄 눈 한 송이 보다 못하다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사랑을 무한하신 사랑을 본 것이에요. 막달라 마리아 천개 만개 본 게 무슨 소용이 있어? 온 세상이 지은 죄를 다 내가 지었다. 하더라도 장작불에 떨어지는 눈 한 송이와 같다. 이거 복음 아니에요? 오 경웅 박사 그 ‘내심낙원’을 쓴 그 박사도 테레사 전을 보고 개종했다는 것이에요.
‘이 말씀을 하신다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입으로 숨을 내 부시며 말씀을 하셨다. 성령을 받으시오. 누구의 죄든지 당신들이 용서하여 주면 그들은 죄를 용서받을 것이요. 용서하여 주지 않으면 그들은 죄를 용서받지 못한 채 그대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성령 받고 뭔 일 하라했는가? 물론 방언도 좋고 예언도 좋고 기적도 다 좋아요. 그러지만 용서 못하면 그리스도 밖에 있는 것이에요. 참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은 용서 못하는 제자들을 다 알고계세요. 요한복음 2장 끝 절에 보면 사람들의 중심을 다 꿰뚫어 보신다고 그랬지 않아요? 엊그저께 까지도 제자들 서로 누가 높으냐고 다투고 나를 죽이는 나를 죽이는 악당들을 용서하고 죽은 내 영을 받지 않고는 용서 못한다는 것이에요. 그것을 우리가 깊이 알아야 돼. 우리는 다 아담의 후손이고 가인의 후손이에요. 가인 동생하고 제사 드렸는데 동생의 제물은 받아가고 자기 제물은 안 받아 가니까 회개 해야지, 회개해야지. 동생 죽여 버리지 않았어요? 그 가인만 그런가요? 다 똑같아요. 우리 다 가인의 피에요. 가인의 후손이요. 아담의 후손이요. 가룟 유다의 모두 후손이에요. 남이 아니에요. 용서 못해요. 우리는 용서 안 됩니다. 왜 가인의 제사를 안 받았는가? 동생을 죽일만한 악이 있어요. 가인의 속에 그래 제물을 안 받으신 거야. 회개해야지. 왜 동생을 죽여요? 저도 똑같은 입장이에요. 다 똑같아요. 용서 못합니다. 우리 인간으로는, 예수님을 죽인 악당들, 가룟 유다까지 다 용서 하셨어요. 가룟 유다까지 용서하신 하나님을 하나님의 예수님의 사랑을 믿는 개인의 마음 안에서 구원은 성취된다고 생각 됩니다. 그래서 내게 억울한 소리를 하고 손해를 끼치고 나를 둘러먹고 멸시천대를 해도 다윗 왕처럼 아버지가 시켰다. 나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이 시켰다 그렇게 믿고 용서하면 그건 진짜 그리스도인이에요. 교회 안다녀도 연보 안하고 헌금 안 해도 그 성령 받은 것이에요. 예수님의 영을 받은 것이에요. 십자가 상 7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일곱 말씀 하셨는데 아버지 사람들 모르고 저러니 어쩔 것이여? 용서해 줍시다. 그 말씀 되새김질 하신 말씀은 그 말씀뿐이에요. 부활하신 후에 일곱 말씀 가운데 심자가 상 7언 가운데서 부활하신 다음에 다시 되새김질 해주신 말씀은 이 말씀뿐이에요. 그래서 내가 용서가 이웃이 용서가 되면 믿는 사람으로 아시고 용서가 안 되면 성령 밖에 있는 것이에요. 성령 안에 있지 않아 마귀 안에 있는 것이에요. 별스럽게 목사 아니라 박사 대학 교수 별스럽게 해도용서 안 되면 이건 제 말씀이 아니지 않아요? 예수님 말씀이에요. 내 영을 받아서 너희가 용서해라. 그래야 너희에게 평화가 온다. 김 선생님이 한 20여 년 전에 그 말씀 하지 않았어요? ‘사랑하면, 사랑하면 용서가 되고 용서하면 평화가 옵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인데 사랑이라는 건 밀감 껍데기와 같고 사랑이라는 밀감 알맹이는 용서다. 사랑하면 용서가 되고 용서하면 평화가 와요. 우리가 매일 바치는 주기도문에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라고 성령 받은 자의 사죄권이 있어요. 사죄권 용서할 권이 있어요. 요한복음 1장에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었다. 그랬어요. 유 선생님 말씀으로는 그 권자가 저울대 권(權)이라고, 저울대는 누가 저울질해요? 재판장이 저울질 하지요? 저울 눈금을 보는 지혜가 있어야 되요. 빛이 있어야지요. 시간이 다 되어서 그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