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치마저고리를 입은 디즈니 영화 ‘미녀와 야수’의 주인공 미녀, 푸른색 곤룡포(왕이 입는 옷)를 입은 야수.
최근 주인공 캐릭터들이 한복을 입고 있는 영화 ‘미녀와 야수’와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 2’의 포스터가 화제가 됐다.
이 포스터를 그린 사람은 누구일까? ‘흑요석’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우나영 작가(38)가 그 주인공. 그는 2010년 일러스트 연작인 ‘한복 여인 시리즈’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한복을 입은 캐릭터를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 그는 현재 네이버 그라폴리오에 ‘흑요석이 그리는 한복이야기’도 연재하고 있다.

우 작가가 한복을 입은 캐릭터를 그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평소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을까? 흑요석의 팬이라고 밝힌 동아어린이기자 박지혜 양(서울 금천구 서울두산초 6)과 박시연 양(경기 수원시 영덕초 4)이 최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우 작가를 만났다.

김홍도의 서당을 패러디해 그린 그림(위쪽)과 미녀와 야수 포스터. 우 작가 제공
한복의 아름다움에 반하다
시연 양이 “서양 동화나 영화 캐릭터에 한복 의상을 입혀 그리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하자 우 작가는 “‘성균관 스캔들’이나 ‘황진이’ 등 사극 드라마와 영화에서 다양한 형태의 한복을 보고 반한 것이 시작”이라고 답했다. 한복의 아름다움을 알고 난 후 한복 그림을 통해 자신이 느꼈던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었다는 것.
우 작가는 특히 ‘한복 주름선’에서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한복을 입었을 때 사람의 몸과 움직임에 따라 생겨나는 천의 주름이 늘 다른 모양이었기 때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백설공주’ ‘인어공주’ 등 서양 동화 캐릭터에 한복을 입힌 그림도 서양 옷에 한복이 가진 주름과 선의 아름다움을 더해 보자는 생각에서 그리게 됐다.
“많이 보고 많이 들어요”
지혜 양이 “평소 그림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으시나요”라고 묻자 우 작가는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아이디어의 소재”라고 말했다. 또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이 많아야 내보낼 수 있는 것도 많아진다”며 어린이들에게 여러 가지 직·간접적인 경험을 많이 할 것을 권했다.
“무인도에서 책도, 영화도, 드라마도 보지 못한 사람이 사회로 나온다면 그 사람은 무인도에 관해서 밖에 이야기할 수 없을 거예요. 자기가 본 것이 그것뿐이니까요. 평소에 책, 영화 등을 보거나 여행을 가는 등 다양한 체험을 하고 친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새로 알거나 느끼는 게 많아져 참신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우 작가)
“한복 널리 알릴래요”
우 작가는 동아어린이기자들이 그림을 그리면서 느꼈던 어려움에 답해주기도 했다. 지혜 양이 “코 모양을 그리기가 어렵다”고 하자 우 작가는 “코는 사실적으로 그리기가 어렵기 때문에 색깔을 다르게 사용해서 명암으로 표현한다”는 자신의 비법을 직접 그림으로 보여주며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결국 그림은 자신이 어떤 느낌의 그림을 그리고 싶은지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평소에 자신이 좋아하는 분위기를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우 작가는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라는 시연 양의 질문에 “더 많은 이들이 한복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한복 시리즈’ 작품들을 책으로 펴낼 계획”이라고 답했다.
그는 최근 조선시대 풍속화가인 김홍도의 ‘서당’을 한복 입은 호랑이 캐릭터로 재해석해 공개하기도 했다.
“동물로 표현된 풍속도나 설화 그림을 보면서 한복을 친근하게 느끼고 즐겨주길 바라요!”(우 작가)
▶에듀동아 김보민 기자
게임계 스타 ‘흑요석’ 일러스트 작가 우나영
‘롤 모델’이 되어 후배들에게 생존의 길을 열어주고 싶다
글 : 한정림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모바일 카드교환게임(TCG) 〈확산성 밀리언 아서〉의 ‘어우동’ 캐릭터를 그린 이는 ‘흑요석’이라는 필명으로 잘 알려진 일러스트 작가 우나영(37)씨다. 현대적으로 해석한 한복을 입고 호랑이 등에 요염하게 앉아 있는 ‘어우동’은 한국적 색채를 살린 캐릭터로 큰 사랑을 받았다. 우 작가는 3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됐다. 그가 전업 작가로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찾은 것은 해외시장. 해외 한류 사이트에 그의 그림이 소개되면서 북미와 유럽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이탈리아의 문화비평가 발레리아 아르날디는 저서 《MANGA ART》에서 유일한 한국인 작가로 우 작가를 소개했다.
일러스트 제공 : 우나영(www.woohnayoung.com)
해외 한류 사이트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티프로 한복을 입은 ‘앨리스’를 비롯한 ‘서양 동화’ 시리즈가 소개된 것이 2014년 크리스마스 즈음. 우 작가의 그림은 순식간에 북미와 유럽 사이트에 퍼졌다. 이후 해외에서 받은 메일만 400여 통. 절반 이상의 메일이 “당신의 그림을 사고 싶다”는 것이었다. 동양화의 선과 색을 살린 만화 같은 그림에 ‘키치적인 팝아트’라는 상찬이 이어졌다.
미국의 유명 동화작가 에릭 칼의 그림책 박물관 측으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내용은 이랬다. “그림책 박물관에서는 전 세계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그림을 전시하려고 하는데 당신이 그린 한복을 입은 앨리스 그림도 전시하고 싶다.”
스페인의 유명한 휴양지 이비자에 위치한 갤러리에서도 연락이 왔다. 그의 그림을 걸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한복 입은 앨리스’를 포함 총 3점의 작품을 이메일로 보냈다. 우 작가의 작품은 사진 작품처럼 넘버링이 되어 판매될 예정이다.
올해는 프랑스 파리에서도 그의 작품이 전시된다.
영국의 모 출판사로부터는 한국의 전래동화를 소재로 한 영어교재에 들어갈 삽화를 맡아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영국 주류업체와 광고작업도 진행할 예정이다. 서울의 작업실에서 해외시장을 상대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작업이 ‘디지털’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이 액정 태블릿으로 작업을 해요. 손으로 그린 그림과의 가장 큰 차이는 단계별로 저장할 수 있고 수정, 보완도 용이하죠. 결과물은 파일로 저장되니까 전 세계 어디든 쉽게 보낼 수 있어요.”
최근에는 해외 팬들을 위해 디지털아트 판매 사이트인 데비앙아트(www.deviantart.com)에서 그림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만화, 게임, 서브컬처를 먹고 자란 세대
지금 20대인 젊은이들은 어릴 때부터 온라인 게임을 하고 자란 세대다. 맞벌이가 보편화돼 혼자서 낮 시간을 보내야 했던 그들은 친구들과 피시방에서 게임을 했다.
이들의 선배 격인 우나영 작가 역시 맞벌이를 하던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오빠 덕분에 일찍 게임에 눈을 떴다. 책과 만화를 좋아해 동네 서점과 만화방을 제 집 드나들 듯했다.
“〈울티마〉나 〈이스〉 〈영웅전설〉 같은 북미・일본 고전 판타지 RPG(롤플레잉게임)를 좋아했어요. ‘흑요석’이라는 필명도 좋아했던 북미 고전게임 〈울티마〉에 나오는 게임 내 아이템 ‘흑요석’에서 따온 거예요. PC통신 아이디로 썼는데 제 그림의 동양화적인 화풍하고도 어울린다고 해서 필명으로도 쓰게 됐어요.”
대학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며 보낸 1년 동안 그는 친구의 권유로 픽셀아트로 캐릭터를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 작업이 포트폴리오가 되어 2002년 입사한 넥슨에서 ‘국민 게임’으로 불린 〈바람의 나라〉 제작에 도트그래픽 디자이너로 참여했다. 열심히 게임을 만들다 보니 게임시장은 2D게임에서 3D게임으로 방향전환을 하고 있었다.
“〈바람의 나라〉를 만든 후 새로운 실장님이 오셨는데 도트그래픽으로 만드는 2D게임은 그림 못 그리는 애들이나 만드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비록 몇 년 동안 마우스로 도트만 찍어댔지만 픽셀아티스트로서 자부심도 있었고, 제 전공이 동양화인데 ‘그림 못 그리는 애’ 소리를 들으니 자존심이 상했어요.”
회사 다니는 틈틈이 포토샵과 같은 그림 그리는 프로그램을 공부해 일러스트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 하나 그리는 데 한 달이 걸리기도 했고 바쁠 때는 여러 달에 걸쳐 그렸다.
현대적으로 각색한 ‘한복 입은 여인 ’시리즈와 서양동화 주인공에 한복을 입힌 ‘동화 ’시리즈를 인터넷에 공개했다. 사람들은 기존의 동양화에서나 볼 수 있던 고전적인 미인도에서 벗어난 만화풍 그림에 신선함을 느꼈다.
회사를 그만둔 다음 해인 2013년에 첫 번째 개인전 〈앨리스, 한복을 입다〉를 열었다. 1400만원의 수익금 전액은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시설인 ‘나눔의집’에 기부했다.
소설가 나승규씨와는 조선시대 한복을 다룬 소설 《포목점 은여우의 연애기담》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다. 이 작품을 계기로 2015년 봄에는 온지음 옷공방과 함께 한복 전시 〈피어 오르다〉를 개최하기도 했다. 지금은 컬러링북 《비밀의 정원》을 출판한 회사와 함께 ‘서양동화’ 시리즈의 컬러링북 작업에 한창이다. 한국적 그림으로 만들어진 이 책은 4월 출간할 예정이다.
“그림만 그렸다면 나도 살아남지 못했다”
우나영 작가는 이화여대 동양화과를 나왔다. 그림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그리기 시작했지만 막상 대학에 입학하고 나니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그림이 두려워졌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니 동양화로 먹고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어요. 전업 작가로 그림만 그렸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거예요.”
전공인 동양화와는 무관한 게임업계에서 10년 경력을 쌓았다. 게임을 좋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회사의 요구에 맞춰 그려야 하는 그림은 ‘내 그림’이라는 느낌이 없었다.
“제가 추구하는 그림은 동양적인 것, 그중에서도 한복을 입은 캐릭터인데 게임업계에서는 선호하지 않는 스타일이죠. 요즘 대세인 3D게임은 올록볼록 입체감이 살아야 하는데 동양화의 미학은 선이나 색의 번짐 같은 평면적인 요소에 있거든요.
한마디로 상업적인 수요가 적어요. 그렇다고 순수미술 쪽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느냐면 그렇지도 않죠. 손으로 그린 한 장밖에 없는 그림이 아니니까요. 미술계가 여전히 보수적이어서 컴퓨터로 그린 디지털아트는 그림으로 취급 안 해요. 그쪽 눈에는 ‘망가(만화의 일본어)’일 뿐이죠.”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가 된 이후에 국내외 게임업체의 외주를 받아 생계를 이어왔다.
‘롤 모델이 없다’는 문장을 바꿔 쓰면 ‘그 일을 해서는 살아남지 못한다’가 된다. 우 작가가 회사를 그만둔 이유도 마땅한 ‘롤 모델’을 찾지 못해서였다.
“10년 정도 경력이 쌓이니까 회사에서는 관리자 역할을 요구하더라고요. 게임업계가 다른 업계보다 능력 중심인 건 맞지만 40대, 50대가 되어서도 그림을 그리고 있는 ‘롤 모델’이 없었어요.”
프리랜서 전향 후 게임업계 외주 외에도 출판이나 광고 쪽으로 살길을 찾아보고자 했다.
“회사 다닐 때 ‘한복 입은 여인’ 시리즈가 퍼즐로 만들어져 출시됐거든요. 퍼즐 쪽에서는 베스트셀러에 속하는데 매달 들어오는 인세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왔어요. 출판이나 광고 쪽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래서 난나 작가의 부고를 들었을 때 남의 일 같지 않았어요. 제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며 살고 싶은데 그래서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거였어요.”
일면식도 없는 난나 작가의 부고를 들은 날, 밤을 새워 글을 썼다. 일러스트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후배들에게 쓴 글이었다. 전업 작가로 살아남고 싶다면 영어・일본어・중국어 같은 외국어를 배워서 해외시장을 노리라는 것이었다. 이 글은 인터넷 상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나라 시장은 창작자에게 유독 지독한 환경이죠. 보수도 낮고 저작권 개념도 없어 도용이나 오용이 심해요. 디지털아트는 특히 더해요. 인터넷에서 쉽게 퍼갈 수 있으니까요. 한번은 유흥업소 전단지에 사용된 걸 보고 업주에게 전화해서 쓰지 말아달라 했더니 ‘인터넷에 있는 거라 그냥 써도 되는 건 줄 알았다’는 대답을 들었어요. 얼마 전엔 도쿄에 있는 한인식당 벽이 제 그림으로 도배된 걸 알았는데 이런 경우에는 소송을 걸기도 어려워요.”
출판, 광고 쪽은 아예 ‘열정 페이’다. 10년 전과 비교해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출판 삽화의 경우에는 인세조차 없다.
“쉽게 예를 들어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삽화 한 장에 5만원을 준다고 하면 외국은 거기에 ‘0’을 하나 더 붙이면 돼요.”
일러스트 작가로 해외시장 진출에 성공한 우 작가는 “자신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전업 일러스트 작가로 생계 유지비 이상의 돈도 벌어보고 호호할머니가 되어서도 현역 작가로 그림을 그리며 살고 싶어요. 건방진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그렇게 제 자신이 후배들에게 좋은 ‘롤 모델’이 되어주고 싶어요. 일러스트 작가로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