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동피랑 이규성 시문학여행] (1) -글 : 권창순
통영, 동피랑의 꿈과 강구안길 시장 풍경과 함께
한국의 몽마르뜨르 언덕을 오른다. 저기 통영항과 요 아래 중앙시장에서 인부로 일하던 옛사람들의 애환과 손잡고 동쪽에 있는 높은 벼랑, 동피랑 벽화마을을 오른다.
규성이네 닭집도 기웃거려 보고, 중근이네 텃밭에서 고추도 따보고, 영실이, 재갑이, 외돌이, 인찬이와 연도 날려보고, 현애, 연자, 경숙이, 정순이와 고무줄놀이도 해보고, 그들과 꿀빵과 김밥을 추억으로 나누어 먹고서, 함께 놀자며 벽에서 뛰쳐나온 고래와 날개와 꽃들과 바닷바람과 조붓한 골목을 다시 우르르, 와르르 달려본다.
그래도 언제나 쉿! 조용조용 동피랑! 깨끗깨끗 동피랑!
쉿! 산다는 건 그리움을 낳는 여행! 동피랑의 꿈은? 미워하지 말고 서로 사랑하는 것!
♣이규성 시 -<동피랑>
저는 에메랄드 하늘 모자를 하고
벽화무늬로 가득한 옷을 입고
올망졸망 섬들로 된 바다 신발을 신었어요
얼굴은 작은 편이고 시력이 좋아
저 멀리 북포루와 충무공 거북선도 보여요
저의 어머니 성함은 통영인데
다들 동양의 나폴리라 부르고
저를 한국의 몽마르뜨르라고 불러요
작은 땀구멍들이 오래되어 검버섯 같아 볼품이 없지만
이런 모습이 신기하다며 꿀빵이나 김밥을 사서 팬들이 찾아와요
제 모자와 옷과 신발이 예쁘다나요
이따금 날개무늬 옷을 입고 팬들과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죠
그러면 마치 연예인이 된 것 같아 행복해요
하지만 종종 팬들이 너무 붐비고 속상한 일이 생기면
저는 옛날이 그리워 밤하늘 별을 보고 추억을 떠올리죠
한때 어머니가 절 죽을 것 같다며 수술을 한 적이 있거든요
그때 후유증으로 이제는 그 큰 당산 포구나무도 없고
규성이네 닭집도 중근이네 텃밭도 없어요
바람 부는 날이면 먼당에 모여 연을 날리던
영실이, 재갑이, 외돌이, 인찬이도 보고 싶고
시원한 나무그늘에서 고무줄놀이하던
현애, 연자, 경숙이, 정순이도 보고 싶어요
지금은 모두 어느 하늘 아래 어떻게 사는지
더러는 아직 통영에 산다하고 누구누구는 객지에 있다하고
또 누구는 죽었다고도 하고
산다는 건 그리움을 낳는 여행 같아요
저는 이렇게 살아오며 한 가지 꿈이 생겼어요
서로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자는 꿈 말이예요
저는 이것을 동피랑의 꿈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이 꿈을 드립니다
‘파도가 잇단음표 줄을 잡고 너울너울 해안가에 밀려드는’ 통영항을 동피랑 벽화마을과 함께 바라보는 건 즐거움이다.
‘악보마다 목을 구부린 높은음자리 물새들이 돌아갈 집이 그리운 시간’ 과 함께 남망산 공원을 거닐며 통영항을 바라보는 건 행복이다.
‘우묵한 눈동자 같은 통영항 푸른 바다에 울컥 울컥 붉은 비린내를 토하는’ 노을을 케이블카를 타고 미륵산에 올라 바라보는 건 아름다움이다.
‘꿀빵 사이소, 김밥 사이소 생의 애환 길게 뽑는 아낙들의 아니리 소리’ 가득한 강구안길 시장 풍경 속으로 풍덩 빠져보는 것 또한 즐거움이다.
건어물 가게의 서재에 들러 ‘살아서는 밀물과 썰물을 다 마시고도 참서 한 권 되지 못한 해초들이’ 죽어서야 된 마른 경전 몇 권쯤 사서 겨드랑이 끼고 걸어보는 것도 행복이다.
‘중모리 장단에 울음 하는 갈매기 몇 마리가 방금 펄떡이다 도살당한 생선을’ 노릴 때쯤 이규성 시인님을 만나 그 회에 한잔하고, 말린 문어처럼 비닐 옷을 입고 시장의 모퉁이에 조등으로 걸려 ‘가을 소슬 바람을 타고 온 여승이’ 떠도는 구름 같이 읽는 불경소리를 듣는 것도 아름다움이다.
그러다가 ‘은빛 햇살이 바닷물에 잠드는 섬마을에서 뱃길 따라 푸성귀와 바지락을 팔러 온’ 노파를 따라갔을지도 모를 여승을 찾아(?) 연화도로 가는 것도 큰 기쁨이다.
강구안은 통영사람들의 우체통이다.
‘울컥울컥 붉은 비린내’를 토하는 노을 같은 삶의 애환 출렁이는.
‘그러면 안녕!’ 그래도 ‘사랑했으므로 행복’한 푸른 편지 가득 찬.
강구안은 통영사람들 마음의 꽃잎이다.
‘그대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된’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 손수건’ 같은.
강구안은 통영사람들의 ‘우묵한 눈동자’다.
‘잇단음표 줄을 잡고’ 파도가 ‘너울너울’ 밀려들고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 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담긴.
통영 ‘강구안길 시장 풍경’ 속에서 이규성 시인님을 만난 건 큰 즐거움이고 행복이다. 일정 때문에 오래 그 풍경 속에 함께 하지 못한 게 아쉽다. 그러나 ‘중모리 장단에 울음 하는 갈매기 몇 마리가 방금 펄떡이다 도살당한 생선을’ 노릴 때쯤, 그 생선회에 소주를 마시며 시인님이 암송해준 <강구안길 시장 풍경>은 큰 즐거움이었다.
이규성 시인님의 그 모습과 함께해준 들꽃미소님과 두 친구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게 아쉽다. 그건 연화도에서 통영항으로 돌아올 배를 기다리며 친구와 고등어회에 소주를 좀 마신 탓이다. 하여 이규성 시인님의 시암송 보답으로, 유치환 시인의 <행복>을 다 암송하지 못하고 만 것도.
이규성 시인님이나 그림도 그리고 시도 쓰시며 예향 통영과 청마를 알리는데 애쓰시는 ‘청마우체국’ 카페지기이신 들꽃미소님이나 정말 고마운 분들이다.
이규성 시인님은 초면인데도 오래 전부터 얼굴을 보고 지낸 사이 같아 더 즐거웠고, 들꽃미소님은 청마나 김춘수 문학기행 때마다 도움을 주시는 분이니 늘 고맙고 고마우신 분이다.
생각하건데 통영은 이런 분들이 많아 행복하리라. 이런 분들 때문에 통영의 ‘강구안길 시장 풍경’ 속 여행자들은 즐겁고 행복하리라.
통영의 어느 시인은 바다에 씨를 뿌리더라.
시란 씨앗을 흩뿌리더라.
이제 보아라, 가만히.
통영 바다에 쑤욱, 둥둥! 자란 섬들이
그리움의 ‘잇단음표 줄을 잡고’ 밀려오리니.
♣이규성 시 -<강구안길 시장 풍경>
파도가 잇단음표 줄을 잡고
너울너울 해안가에 밀려든다
악보마다
목을 구부린 높은음자리 물새들이
돌아갈 집이 그리운 시간
우묵한 눈동자 같은 통영항 푸른 바다에
노을은 울컥 울컥 붉은 비린내를 토하고
꿀빵 사이소, 김밥 사이소
생의 애환 길게 뽑는 아낙들의 아니리 소리
중모리 장단에 울음 하는 갈매기 몇 마리가
방금 펄떡이다 도살당한 생선을 노리고
살아서는 밀물과 썰물을 다 마시고도
참서 한 권 되지 못한 해초들이
죽어서야 마른 경전이 되어
건어물 가게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은빛 햇살이 바닷물에 잠드는 섬마을에서
뱃길 따라 푸성귀와 바지락을 팔러 온
노파의 저자거리에 해가 저문다
분주한 사람들은 갈 길을 재촉하건만
이토록 애달픈 곡조의 뜻을
어느 달 어느 별이 알았을까?
말린 문어가 비닐 옷을 입고
조등처럼 걸리는 강구안길 시장에
가을 소슬 바람을 타고 온 여승이
떠도는 구름 같이 불경을 읽고 간다
그리운 남해 통영의 연화도.
‘말린 문어가 비닐 옷을 입고 조등처럼 걸리는 강구안길 시장에
가을 소슬 바람을 타고’와서 ‘떠도는 구름 같이 불경’을 읽고 간
여승은 하얀 탱자꽃으로 피어 있습니다.
♣이규성 시 -<수화(手話) 혹은 수화(手花)>
손등이 밖으로 향한 채
마주한 두 주먹에
펼쳐진 검지 두 개가
나란히 돈다
세상 말문이 막힌 탓이다
지천에 날리는 낱말의 퍼즐들을
귀가 아닌 눈빛이 채록하는 운명
영글지 못한 뜻은 미로를 헤매고
귓전에 수북이 쌓이는 소리들만
애타는 절규 끝에 숨을 죽인다
소통의 벽이 그늘을 드리우건만
메아리가 없는 에움길을 돌아서
언어의 절연체 같던 손가락들이
마침내 어버버 말문을 튼다
엄지에 움트는 모음의 새싹
검지에 자라는 자음의 줄기
어리고 희망찬 수화의 이파리들이
중지와 무명지에 무성하다
보아라, 저기
서로의 마음이 닿으려고
가냘픈 새끼손가락 둘이
마주보며 말꽃을 벙글고 있다
‘보아라, 저기/ 서로의 마음이 닿으려고/ 가냘픈 새끼손가락 둘이/ 마주보며 말꽃을 벙글고 있다’
이규성 시인님의 따뜻한 마음이 수화를 하시는 분들께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분들이 피우는 말꽃 향기가 이 세상을 더 살맛나게 할 것입니다.
강구안과 미륵산이, 강구안과 동피랑이, 동피랑과 미륵산이, 청마우체통과 통영사람들이,
통영 바다와 통영의 하늘이 주고받는 수화 향기도 이 세상을 더 즐겁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