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삼선승가대학 |
지하철 성신여대입구역에서 내려 10분 남짓 걸었다. 오밀조밀한 주택가 틈새에서 절을 발견했다. 경주 분황사 석탑(국보 제30호)을 본뜬 외관이 이채롭다. 국내 유일의 ‘통학(通學)’ 강원인 삼선승가대학이다. 문자 그대로 학인들이 재적사찰에 살면서 수업을 듣기 위해 아침에 등교하는 대학과 같은 형식이다. 다만 교육방식은 간경에서 논강까지, 전통 강원의 그것을 올곧이 계승하고 있다.
도심의 주택가 틈새서 ‘처염상정’ 실천
국내 유일 ‘통학’ 강원…배움의 때 놓친 비구니스님 요람
얼핏 서울 스님들을 위한 학교 같지만 안양이나 수원, 멀리 천안에서도 방부를 들인다. 수업은 아침 6시30분부터. 새벽예불을 마치자마자 부리나케 차에 몸을 실어야 겨우 제때에 도착할 수 있다. 힘들다는 생각은 없다. 삼선승가대학은 몸이 아파서 대중생활을 할 수 없거나 전통교육을 받고 싶은 사미니, 배움의 때를 놓친 비구니 스님들에게 매우 절실했던 공간이다.
<사진설명> 서울 성북구 동선동 주택가에 위치한 삼선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절 마당에서 논강을 하고 있다.
대부분이 만학이었던 초창기엔 학인들 가운데 사찰의 주지와 종단의 중진 스님들도 섞여 있었다. 1994년 종단개혁으로 승려기본교육이 의무화되기 전엔 강원이 그다지 활성화되지 않았다. 선(禪)을 중시해 책읽기를 권장하고 지원하는 풍토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환경이 열악한 비구니 승가의 경우 은사 스님을 모시고 절일에 매이느라 경전과 인연을 맺지 못하는 스님이 더 많았다. 공부를 하기 위해 절을 떠날 형편이 안 되었던 것이다.
78년 의정부서 개원후 월세 전전…83년 삼선동에 터 잡아 삼선승가대학의 전신은 1978년 9월 의정부시 호원동 약수선원에 문을 연 ‘주림(珠林)강원’이다. 처지가 딱한 스님들의 향학열을 채워줄 원력으로 현재 삼선승가대학 원장인 지광스님과 학장 묘순스님이 의기투합한 결실이다. 강원의 자립과 통학의 편리성을 높이고자 장소를 서울로 옮기기로 결심했다. 월세 건물을 전전하다 1983년 10월 비로소 성북구 동선동에 위치한 지금의 삼선승가대학을 건립했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연면적 1340㎡ 규모. 내부는 추억 속의 한옥처럼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2007년 2월까지 23회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동문은 230여명. 동문회장은 당진 정토사 주지 선오스님이 맡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장 수경스님도 삼선승가대학 출신이다. 사회복지법인 연화원 원장으로 청각장애인들을 돌보며 삼선강원 학인들의 수화노래 공연을 지도하는 해성스님은 4기생이다. 이외에도 진천 보탑사 주지 능현스님, 승가원 자비복지타운 원장 묘전스님, 우리출판사 대표 무구스님 등도 이 곳을 거쳤다. 종단 안팎에서 보살행을 실천하는 비구니 스님들의 요람인 셈이다. 30년이 허투루 지나가지 않았다.
현재 학장 묘순스님, 학감 도안스님, 강사 희경스님, 중강 선문스님이 24명의 학인들을 가르친다. 수업은 6시30분부터 9시30분까지 3시간 동안 진행된다. 그리 부담이 없겠다 싶지만 알고 보면 오산이다. 음력 초하루와 보름만 수업이 없고 일요일에도 강석(講席)이 펼쳐진다. 게다가 학인들은 대부분 1인3역을 소화한다. 소속사찰의 일꾼이자 동국대나 중앙승가대에 다니는 대학생들도 부지기수다.
호스피스봉사 등 학인들 1인3역…바빠도 출석률 90% 이상
일주일에 3번씩 서울 동쪽 끄트머리 둔촌동에 있는 보훈병원에서 말기 환자들의 임종을 지키는 호스피스 봉사에도 참여한다. 초하루와 보름은 휴일이 아니라 사찰의 크고 작은 법회를 치르는 날이기에 오히려 더 고되다. 수행과 포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출석률은 언제나 90% 이상이다. 비단 ‘무단결석 3회 이상 퇴학, 결석 5일 이상 유급’이라는 항목이 청규에 명시되어서는 아니다. 도심에 있어서 생활이 산사의 강원보다 느슨할 것이라는 주변의 섣부른 시선. 소문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 더욱 몸과 마음을 벼린다. 휴대폰 사용은 일절 금지되며 도량 내에선 아무리 추워도 목도리조차 착용할 수 없다.
새벽예불은 각자의 절에서 한다 쳐도 상강례만큼은 반드시 삼선강원 법당에서 올린다. 매달 한번씩 전 대중이 진천 보탑사를 찾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뤄지는 전통강원의 일과를 그대로 따르며 각오를 다진다. 이른바 ‘일일습의’다. 상주하는 강원이 아니기에 강원교육의 궁극적 목표인 ‘대중화합’의 정신을 일깨워 줄 수 없다는 걱정이 도리어 사찰의 운영을 차지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전화위복의 예는 소임을 인수인계할 때 대번에 드러난다. 학인들은 강원의 이런저런 업무를 분장해 소임을 하나씩 받는다.
여느 강원이라면 평소에 시간을 두고 선배가 후배를 데리고 다니며 차근차근 일러 줄 수 있다. 삼선승가대학은 수업이 파하면 학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그럴 계제가 못 된다. 결국 아예 모든 소임의 특징과 유의점에 대해 꼼꼼하게 매뉴얼을 작성했다. 이것만 모아도 강원의 현황을 미주알고주알 한눈에 꿸 수 있는 수십 권 분량의 책이 된다.
습의(習儀)의 사전적 의미는 여러 가지 의식에 대해 익힌다는 뜻이지만, 승가에서는 사원에 함께 모여 질서를 지키고 살면서 스님으로서의 됨됨이를 키운다는 의미로 확장해 사용한다. 같이 먹고 같이 자며 불법을 자연스럽게 몸으로 익히는 게 우선시돼 왔다. 삼선승가대학은 통학이라는 특징이 한계로 읽혀 한때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1997년 1월 조계종 교육원은 승가대학 인가 조건 중 하나인 습의 문제를 거론하며 삼선강원 폐교를 논의하기도 했다. 사찰의 게시판 유리를 깨고 선교 전단지를 무단으로 들이밀던 타종교의 횡포와 민원이 제기될까 문을 전부 닫고 숨죽인 채 법회를 보던 아픔은 감안되지 않은 것 같다. 절치부심한 ‘삼선인’들은 이후 5차에 걸친 비상회의, 성명발표와 각계 어른 스님들을 향한 호소로 분투했다. 교육원을 항의 방문해 맨바닥에서 침묵시위를 하는 오기도 보여줬다. 끝내 각고의 노력 끝에 강원을 정식 교육기관으로 보전해냈다.
지금도 강원에는 번듯한 도서관도 없고 컴퓨터는 1대 뿐이다. 턱없이 부족한 여건이지만 어느 학인은 “학교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고맙다”고 말했다. 뭐 하나 부족한 것이 없어서 뭐 하나 제대로 얻었다고 자부하기 주저되는 거품의 시대다. 21세기에 바랑을 메고 소음과 매연을 뚜벅뚜벅 헤쳐 나가는 풍경이 정겹다. 장영섭 기자 fuel@ibulgyo.com
# 상강례 아침예불후 수업전 ‘조회’
깨달음 향한 게송 외우며
‘오늘도 열심히 정진’다짐
강원에선 아침예불을 마친 뒤 수업에 들어가기 전 상강례(上講禮)를 올린다. 부처님 앞에서 오늘 하루도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다짐하는 법회로 세간의 조회와 비슷하다. 상강례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외우며 시작된다.
‘일심정례 진시방삼세 일체제불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諸佛, 일심으로 시방삼세 부처님께 정례합니다.)’ ‘일심정례 진시방삼세 일체존법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尊法, 일심으로 시방삼세 모든 고귀한 가르침에 정례합니다.)’ ‘일심정례 진시방삼세 일체성승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聖僧, 일심으로 시방삼세 모든 훌륭한 스님들께 정례합니다.)’
‘아제자등 강론삼장 유원삼보 위작증명 (我弟子等 講論三藏 惟願三寶 爲作證明, 저희 제자들 경율론 삼장 강론하는데 바라옵건대 삼보께서는 증명하소서.)’
‘나무본사석가모니불 나무본사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南無本師釋迦牟尼佛 南無本師釋迦牟尼佛 南無是我本師釋迦牟尼佛, 석가모니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나의 참된 스승이신 석가모니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무상심심미묘법 백천만겁난조우 아금견문득수지 원해여래진실의 (無上甚深微妙法 百千萬劫難遭遇 我今見聞得受指 願解如來眞實意, 위 없는 깊고 깊은 미묘한 법이여 백천만겁 오랜 세월 지나도 만나기 어려워라. 이제 저희가 보고 듣고 받아 모시니 원컨대 여래의 진실한 뜻 알게 하소서.)’ 깨달음을 향한 간절한 열정이 구절마다 사무치는 연가다.
[불교신문 2363호/ 9월26일자] 2007-09-21 오후 2:11:40 / 송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