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알쓸별잡이라는 티비 프로그램을 보는데
협궤열차가 이야기 되어 풀려 나온다
1983년 남영동이 학교 였던 친구와 서울역 가서 기차를 타고
수원에서 협궤열차를 타고 소래포구를 가는 여정이 있었다
모든 과정이 여전히 선연한데 손가락을 10년 씩 꼽아 보니
40년이 지났다
레일의 넓이는 한쪽에 올라서서 다리를 뻗으면 쉽게 건널 수 있었고
객실은 여느 기차와는 달리 삶은계란이나 사이다를 파는 판매원은
쉽게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좁았다
지금의 기차와는 달리 지금의 지하철과 같은 좌석이 배치 돼있었고
당시에는 웬만한 시설물들이 그랬듯 너저분했고 청소는 엄두도 못낼 시절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몹씨 지저분 했던 것 같다.
닭을 나이롱 줄로 묶어 안고 타는 여인이 기억 나고
우는 아기에게 몸을 돌려 젖을 물렸던 아낙도 어렴풋 떠오른다
기억이 잘못 됐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당시 소래포구 길목 좌판에서 새우나 오징어 튀김을 먹었고
전어를 먹었는데 모든 비용이 만원을 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손 잡고 꽤 긴 거리를 걸었었고 소래 철교를 아슬아슬하게 건넜던 것 같다
막걸리를 먹었었고 철로에 그녀의 무릎을 배고 누워 무슨 노래였는지 흥얼거렸던 것 같다
이렇듯 눈에 선한데 40년이 지났다
지금 사는 곳에서 시동 걸고 달리면 15분 남짓한 곳에 소래포구역이 있다
그 때는 몰랐다. 40 년이 지나 이곳에서 어머니를 여의고 터전이 되어 살게 될지는...
모르긴 해도 나는 이곳 시흥에서 죽 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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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미..
그때 소래포구 철길 바닥이 허당이어서 (지금은 막아놨지만) 진짜 무서웠어요
예전 소래포구 협궤열차 다니던
철교위 여러번 건너봤습니다.
바닥에 동그란 구멍 뚫려있는
철재바닥이 인상적이였음.
레일과 레일사이 궤도폭 좁음.
교과서에서 봤던 소금창고 본 기억도 나네요
신기했습니다 사진으로 봤던 창고를 지나치는 기차에서 보는 것이
제가 태어날즈음의 일화네요^^
어릴적 협궤열차를 어렴풋이 본 기억은 납니다.
선배님의 소중한 추억이군요.,.ㅋㅋ
ㅎ ㅎ 큰댁이 군자초교근처에 사셨어 지금의 안산역 (당시엔 원곡역)에서 내려 군자초교까지 걸어서 간 기억이납니다.
처음엔 남인천역에서 협궤열차 (일명빽빽기차)을 타고 갔는대
몇년지나서 두칸짜리 기관차로 간 기억이 납니다.
빽빽이기차는 원곡역에서 물을 보충하고 고잔역. 이리역으로 해서 수원으로간던것이죠.
당시 창밖에 얼굴을 내밀고 3살 밑에 남동생과 신나게 타고갔던 열차로 코속에 검은 매연이 가득하기도 했지요. ㅎ ㅎ
남인천역 용현역 (지금의인하 대역) 송도역. 남동역.소래역
달월역. 군자역.그리고 원곡역으로 해서 이리.고잔.야목으로 하여(순서가 정확지않음) 수원까지 간 철도인대
이철도선을 수인선 이라고 했지요.
일제강정기시절 일본으로 농수산물을 일본으로 실어가기 위해 수탈선으로 만들어진것 이라고 하니 결코 아름다움만 있지는 않은 철도였던것만 역사가 있다는생각입니다.
당시 철도기관차가 소래역 기차역사관앞에 전시되었 있지요.
본문올려주신분께 저의 옛날 추석과 구정때 부모님따라 새옷입고 명절을 지내던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여주 이천 지방에서의 수탈한 질 좋은 쌀과 소래의 소금을 실어 나르는 것이 그 처음의 용도라고 하죠
나목님 말씀이 맞아요.
처음운행땐
화물칸으로 의자도 없었던 기억이납니다. 그후 화물칸에 의자가 생겼고 이후 전동차2칸 짜리가 운행하더군요.
나목님 감사합니다.
인천이 고향입니다 중학교대 깡다구 어떤놈 이쎈지 내기 핥때 동인천에서 21번 버 스타구 소래 가서 여친 업구 소래다리 건너 다니던 기억 나네요 그때가 좋앗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