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중봉조헌문학상 시 부문 대상
팔월의 당신 / 최형만
서쪽 하늘이 한 시절을 떨어뜨려도
눕지 못한 갈대처럼
활을 잡으면 팽팽해지는 불꽃
팔월의 꽃도 몽땅 붉어지고 있다
발목부터 올라온 뿌리의 함성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붉은 깃발에 꽃잎 날리면
꽃대 밀어 올린 그 힘으로 돌아오라고
사람들은 북을 두드리고 징을 친다
밭을 일구던 어미의 가슴이 납작해질 때
갓난이도 칼날 같은 허기를 견뎠을까
한 번의 옹알이도 없는 밤마다
오래된 길목에 서면
무명으로 살다간 한때가 보인다
비린 땅을 지키러 눈 뜨면
초록으로 일어서던 임진의 여름
칼의 무게를 견딘 계절이 지던 날
투구와 휘장은 어느 고개를 넘어갔을까
피 냄새를 맡던 새들의 날갯짓도
숨은 바람에 만장처럼 펄럭이고 있다
허공을 달군 쇳내에 벼려지는 팔월
그을린 당신이 먼빛으로 오는 중이다
▲최형만
2019년 원주생명문학상 시 부문 대상, 2020년 등대문학상 시 부문 최우수상, 2020년 사하모래톱문학상 시 부문 최우수상,
2020년 중봉조헌문학상 시 부문 대상, 2020년 계간 《동리목월》 문학상 소설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