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산림 대법회 146강 – 1 – c
“그대는 어디서 왔습니까?”
“온 데 없이 왔다.” 그러니까, 쉽게 이렇습니다.
선재동자가 비로장누각 앞에서 덕생동자ㆍ유덕동녀로부터 선지식을 소개
받고, 비로장누각 앞에서 미륵보살이 오시기를 그렇게 간절하게 기다렸는
데, 미륵보살은 비로장누각 문을 열고 나오시지 않고,
“별처래라. 멀리 다른데서 오셨다.”
그 대목이, 화엄경 입법계품은 첫 대목에 “선재동자가 보증수표 같은
문수보살의 가르침을 받고 덕운비구를 찾아 갔는데, 일주일동안 찾아
헤매도 덕운비구는 그 자리에 안 계셨다. 일주일 후에 산을 돌아서 떡 보
니까 타 산에서, 다른 산 꼭대기에서 서서히 경행하고 계셨다.” 이것이
바로 오늘 지금하는 여래출현 품이 되겠습니다.
이런 대목을 원효스님께서는 일찍이 금강삼매경론이나,
금강삼매경론의 주제를 원효스님은 이렇게 잡았지요.
“無理之가 至理(무리지지리)다. 이치 없는 것이 지극한 이치요.
不然之가 大然(불연지대연)이라. 그러하지 않은 것이 지극히 그러한
것이다.”
금강삼매경론도 그렇게 쓰시고, 기신론 서문에도 원효스님께서 이 대목
을 기신론 별기에서 “이치 없는 것이 지극한 이치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
지요. 그것이 여래출현이고, 다른 말로는 “여래자는 무소종래며, 역무소거라.” 화엄경에서는 “무소종래며 무소거라.” 이렇게...
화엄경의 여래출현 품을 보든지ㆍ금강경을 보든지ㆍ기신론을 보든지ㆍ
금강삼매경론을 보든지ㆍ6조스님의 의견을 들어보든지 간에, 모든 것이
진여자성을... 여래출현은,
“여래는 모습이 없다. 법신은 모습이 없다.” ←이것을 우리가 49재를 지낼
때 흔히 고혼 청할 때 많이 하지요.
法身無跡(법신무적) 從緣隱現(종연은현)
若鏡像之有無(약경상지유무)
如井輪之高下(여정륜지고하)
무상게를 읽다보면 여기 나오는 여래가 출현하는 대목을 잘 써놓지요?
49재 지낼 때는 생멸에 대해서, 사람이 죽었다 살았다.ㆍ살았다 죽었다.
이것을 가지고 법문을 해야 되는데요.
49재 觀音施食(관음시식)이라든지, 常用靈飯(상용영반). 전부
불생불멸만 얘기합니다.
“妙體는 湛然하여 無處所(묘체담연무처소)다.”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處所가 없기 때문에 적멸하다. 이것이 적멸하기 때문에 여래가 출현하셨다.” 諸法不動本來寂이나 不守自性隨緣成이나 ←이렇게 되겠습니다.
좀 어렵지만 넘어가겠습니다. ㅎㅎㅎ
作者受者라. 짓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悉亦無라.
이래서 반야심경에는 짓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無苦集滅道다.” 그렇지요?
“無集無苦라. 因도 없고 果도 없다.” ←이런 것은 또 화엄경 보살문명품에
너무 자세하게 잘 써놨지요.
“짓는 자도 없고 받는 자도 없다.” 금강경에서는 이런 대목을
“三輪淸淨(3륜청정)”이라고 하지요. 하나 더 보태서요.
“주는 사람도 없고 받는 사람도 없고 주는 물건도 없다.
三輪이 淸淨하다.” ←이것이 여래출현이 되겠습니다. 짓는 이도 받을 이도
다 없지만, 自然如 = 자연히 이와 같이 是普充洽이라.
‘隨緣赴感靡不周라. 不守自性隨緣成이라. 아~~ 그렇게 부처님은 오셨다
가시는구나!’ 그러니까 오고 간 바는 없지만, 갖은 방편을 설해서, 왜 갖은
방편이냐? 중생들의 근기와 욕망과 성품이 다르기 때문에...
태양은 높은 산을 먼저 비추고, 낮은 계곡을ㆍ평야를 늦게 비추는 것처럼
보이지만, 태양은 열 동시에 똑 같이 비췄는데,
중생이 저절로 높은 사람은 먼저 받아들이고, 낮은 사람은 늦게 받아들이
고, 구멍에 쳐박혀 있는 사람은 못 받아들이고, 엎어진 사람은 안 보이고
요. 그런 식이 되겠습니다. 그것은 태양의 잘못이 아니라 각자의 업의 차이
라고 봅니다.
기신론 같은 데는 이렇게 해놨습니다.
“아니 이렇게 불교 경전을 설했으면 딱 한번 깨달아 듣고 알아들었으면 끝
나야지, 여래가 출현해야지, 왜 견성성불을 못합니까?”
“중생들이 무명에 덮힌 업장의 두텁고 얇은 정도의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지, 경전에 문제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얘기를 합니다.
十力法雨亦如是하야 無去無來無造作이라
本行爲因菩薩力이니 一切大心咸聽受로다
十力法雨亦如是하야, 열 가지 힘의 법의 비도 그와 같아서,
열 가지 힘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이지요.
부처님께서 내리시는 법비라고 하는 것은 경전 아니겠습니까?
“말씀도 그와 같아서”
無去無來無造作이라. 오고가는 일도 없고 지음도 없고,
부처님이 아무것도 안 하시지만, 수보리한테 부처님께서 물으시지요.
“여래가 昔在然燈佛所(석재연등불소) 有所得法不(유소득부법부)아?
얻은바 법이 있더냐? 수보리야.”
“不也니이다 世尊(불야 세존).
부처님께서는 얻은바 법이 없사옵니다.” ←이렇게 건방스럽게 얘기를 하
지요. 진짜인데요. 우리가 볼때는 건방스럽지요.
“수보리가 정말 잘 대답하는구나.” 이렇게 부처님께서 자존심도 안 상하
고 ‘그래, 네가 잘 아네.’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이 바로
無去無來無造作이라. ←이 얘기지요?
本行爲因이라. 부처님의 본래 행의 원인이...
본행이 원인이되어 보살의 힘으로 = 菩薩力이니,
一切大心은 咸聽受(함청수)로다.
이 정도얘기는 마음이 툭 터진 사람이라야 알아 들을 수가 있다.
無去無來無造作이라고 하는 ←이런 대목은 여러분께 오늘 나눠드린
대목이 있습니다. 여기 유인물이 있지요?
(유인물 = 三권-p,111~112.)
이것이 화엄경 “십인품”에 나오는...
10인품의 하이라이트가 무생법인입니다. 無生法忍!
無生法忍을 중심으로해서 앞 뒤로 다 정리 되어있는데요.
2페이지(프린트된 유인물)에 보면 그렇습니다.
勤求於十方하야, 부지런히 부처님을 구해서 處世而不住하며, 세상에 살되,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라. 무주이주라. 머묾음 없이 세상에 처하지만ㆍ세상에 살면서 주세하지만 머무는 곳이없다. 머물지 않고,
無去亦無來로다.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이 方便으로 善說法이라. 방편으로 법을 말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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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無生法忍!
무생이 바로 無生이기 때문에 무멸이라.
불생불멸이기 때문에 無生法忍이 바로 여래출현입니다.
여래출현이라고 하는 것은 무생법인입니다.
유인물 1페이지 한번 읽고 넘어가겠습니다.
이것이 아마 반야심경이나 오늘 우리가 하고 있는 여래출현 품 대목을
잘 이해하시는데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제가평소에 좋아하던
글귀를 소개해 드리고자 유인물 한 장 가져왔습니다.
三十三天中에, 저 도리천에서는 所有諸天子가, 거기 사는 모든 천왕의 아들들이 共同一器食호대. -유마경에 이 대목이 똑 같이 나옵니다. 화엄경 무생법인 품에 나오는 대목처럼요. 유마경에는 “공동일기식이라.” 안하고 “보배그릇”이라고 하지요. 보배그릇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一心이 되겠습니다.
한 그릇에서 밥을 먹지만, 所食은 各不同하니. 밥 한 그릇을 똑같이 먹는데, 먹는 사람이 1000명이 되든, 100명이 되든, 열명이 되든, 밥은 한 그릇인데, 어떤 사람은 짜장면 먹고, 어떤 사람은 짬뽕 먹고, 어떤 사람은 볶은밥 먹고, 찰밥 먹고 서로 먹는 바가 다르다. 업이 다르다는 얘기지요.
所食種種食이, 제각기 여러 가지 밥이 다른 것은 不從十方來라. 다른데서 온 것도 아니고
如是所修業으로, 그들이ㆍ자신이 닦은 업으로 自然成在器로다. 전부 자업자득이라. ‘자연히 자기 꼬라지대로 우리 마음을 쓰다가, 자기 생각대로 살다가 그렇게 간다.’ 이 말입니다.
菩薩亦如是하야, 보살도 그와 같아서 觀察一切法이라. 일체법을 보는데, -무학대사는 부처님처럼 보는데, 이성계는 돼지처럼 보듯이요.
悉從因緣起하야, 인과 연으로 생기는 것이니, -인연으로 생겨진 것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보신입니다. 報身. 緣起는 報身이고, 성품이 일어난 것은 법신입니다. 法身. 佛身이라고 하지요. 여래신. 여래신은 일어난 바가 없기 때문에 무성으로 이기한 것입니다. 성품으로 일어났다고 하는 것이지요.
無生故로 無滅이라.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안 생긴 것이 어떻게 없어지겠습니까? ‘없는 것은 없앨 수가 없다.’ 이런 말씀이지요.
無滅故無盡이요. 없어지지 않는 까닭으로 다 할 수도 없다. 무진이다. 無盡故無染이니, 다 할 수 없는 까닭으로 항상 변질되거나 오염되는 것도 없다. 항상한 무염이다. 물들지도 않는다.
於世變異法에, 그러나 세간이 변화되고 달라지고, -변이법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이 변해가는 것, 물질이 유통기한이 있는 것 그렇습니다만, 불생불멸의 여래는 유통기한이 없습니다. 중생은 업보에 따라서 유통기한이 있지만, 성품으로 일어난 것은 유통기한이 없습니다.
了知無變異이라. 변함이 없음을, -“세상이 변하는 법에 변하는 법이 없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하면, 모든 것은 인연법으로 생겨지거늘, 일체법은, “만법은 유식이다.” 원효스님 해골바가지 물 마셨듯이 그렇습니다. “三界는 唯心(3계유심)이요 萬法은 唯識(1000법유식)”이라는 말을 여기에 그렇게 인용해놨습니다.
無異則無處라. 변이되는 것이 없는 까닭에 처소도 없다. 無處則寂滅이니, 처소가 없기 때문에 적멸하다. -우리가 익숙한 얘기지요.
其心無染着하야, 그 마음에 염착이 없어서 願度諸群生이라. 중생을 다 건지려고 하는데
專念於佛法(전념어불법)하야, 불법을 오로지 생각하여 未嘗有散動(미상유산동)이라. 언제나 번뇌에 흔들리지 않고, 而以悲願心으로, 자비와 서원하는 마음과 方便行於世로다. 방편으로 세상을 다니면서,
勤求於十方하야, 열 가지 힘을 애써 구하여 處世而不住하며 無去亦無來하야 方便으로 善說法이로다.
此忍最爲上이라. 此忍 = 이 무생법인은 最爲上이라. = 가장 최고 높은, 무생법인자체가 여래출현ㆍ부처님이 탄생할 수 있는 80프로 능선을 넘어갑니다. 8지이상 보살이라야... 여기서 부터는 순풍에 돛단 듯이... 억지로 엔진걸고 시동걸고 뭐 기아변속 하지 않아도 잘 갑니다. 자연에, 순풍에 돛단 듯이요. 여기서 부터는 ‘노력하지 않아도 간다.’ 해서 흔히 “水路易行(수로이행)”이라 하지요. 물위의 배가 순풍에 돛단 듯이요.
了法無有盡이라. 모든 법을 다함이 없고, 入於眞法界호대. 入於 = ‘깨달아 들어간다.’ 이말이지요. 眞法界 = 진짜 진법계에 들어가는, -진법계, 무법계지요. 법계는 1상이고, 1상은 무상이기 때문에 진법계에 들어가지만,
實亦無所入이라. 법계에 들어갔지만 실제로 들어간 바가 없다. -깨달아도 깨달은 바가 없어야 되는데, “깨달은 바가 있다.”이래 버리면 거기서부터는 “增上慢人(증상만인)”이라고 하지요? ‘제일 거짓말 쟁이다.’ 이렇게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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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름다워라♬♪♩ 환희로워라♬♪♩ 감사하여라!!! 대♩ 방♩ 광♩ 불♩ 화♩~~ 엄♩~~ 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無理之가 至理다. 이치 없는 것이 지극한 이치요. 不然之가 大然이라. 그러하지 않은 것이 지극히 그러한 것이다.”_()()()_
고맙습니다.
🙏🙏🙏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_()()()_고맙습니다
경전 해설, 날마다 읽어도 또 보고 싶은 글~~~
참~ 행복한 나날입니다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_()()()_
“세상이 변하는 법에 변하는 법이 없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아름다워라♬♪♩ 환희로워라♬♪♩ 감사하여라!!! 대♩ 방♩ 광♩ 불♩ 화♩~~ 엄♩~~ 경♩~~~
나무 대방광불화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