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화산을 향해
신라인 김교각스님이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불리는 그곳, 중국의 구화산 성지순례를 위해 우리절 해외성지순례단이 제4차 순례를 떠나던 7월 1일 아침은 가는 비가 뿌렸다. 여행가방을 챙겨 대구공항에 모인 시각이 10시 40분, 순조로이 수속을 마치고 환송객들을 뒤로 한 채 순례객은 룸비니 여행사 측의 안내를 받으며 무사히 비행기에 탑승했다.
4차 순례단은 회주큰스님, 총무스님, 대륜스님, 지범스님 등 네분 스님과 경산도량에서 오신 세분, 경주시청 공무원 다섯 분 등을 포함해 모두 39명으로 팀이 짜여졌다.
대구를 벗어난 하늘은 금세 맑은 모습을 드러냈다. 한 시간 30여 분의 비행 끝에 일행은 상해의 푸동공항에 도착했다. 현지시각 1시 10분, 한국시간보다 한 시간이 늦은 시차이다. 상해는 흐린 날씨였다.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습기 먹은 열기가 5박 6일의 여행길이 만만찮을 것임을 예고하듯 찜통더위로 우리를 맞고있다.
-푸동 공항의 인파-
상해에 도착한 순례단은 시내 중심의 옥불사를 찾았다. 옥불사로 이동하는 중 현지 가이드로부터 상해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내다 본 상해시의 풍경은 과연 아름답다. 이곳은 똑같은 건물의 모양은 허가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금융도시답게 풍경은 마천루를 이루고 있고 그 하나하나의 건물들이 제각각 특색있는 외양을 자랑하고 있다. 시내 중심으로부터 사방 백리 안에는 산이 없다고 한다.
시내를 가르는 황포강을 사이에 두고 포동(푸동), 포서(푸서)로 나눠져 있으며 제 2의 홍콩을 만들려는 목적으로 외자유치가 활발히 이루어져있어 세계 각국에서 앞 다투어 투자를 하고 있는 곳이다.
아름다운 옥불, 상해 옥불사
그 시내 한 복판에 위치한 옥불사에 도착한 것이 현지 시각으로 4시 40분, 막 저녁예불이 시작되고 있었다. 옥불사는 청의 광서(光緖) 1882년에 지어진 절이다. 당시 절강성 보타산의 혜근(慧根)스님이 미얀마에서 가져온 다섯 분의 옥불(五尊玉佛)을 모시고 이곳을 지나다가 백옥으로 조각된 좌상과 와상 두 분을 상해 사람들의 요청으로 이곳에 모셔 놓아 옥불사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옥불사는 천왕전, 대웅보전, 와불당, 옥불루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절 내에는 많은 고대 조각상과 회화 및 청대 조각품(1870년대), 그리고 대장경과 기타 불전 등이 소장되어 있다.
옥으로 조성된 아름다운 두 분의 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불리어진다. 옥불보전에서 순례단 일행은 반야심경을 정성껏 봉독하며 부처님 전에 인사를 올리고 5박6일의 순례길이 무탈하기를 기원 드렸다.
-아름다운 옥불, 옥불사-
-왼쪽: 상해 시내에 있는 옥불사, 오른쪽: 상해의 아름다운 건축물들-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 기념관
다음 순례지는 임시정부청사,
옥불사에서 30여 분 거리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청사가 있었다. 옥불사가 시내 중심의 번화가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몰려 붐볐다면 이곳은 상해시라고 하지만 열악한 거주지에 위치해 있었다. 거리는 한창 개발 붐이 일고 있어 곳곳에서 건물이 헐리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는 중이었다. 중국정부에서 일대를 새로이 재개발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개발붐을 타고 있는 이곳 임시정부청사의 보존에 관한 걱정은 잠시 덜어두고 일행은 1층에서 그 당시 임시정부의 활동 모습 등을 담은 시청각 자료를 보고 2, 3층으로 올라 김구 주석의 집무실과 주 요인들의 집무실 등을 구경했다. 5~6평의 작은 방들로 나눠져있는 청사 내부는 생각 보다 훨씬 작았다.
허름한 건물 외부의 모습과 달리 내부는 비교적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고, 사진자료와 오디오, 비디오 자료, 회의록 등 의거 자료와 독립운동협회의 정기 간행물 등이 잘 보관되어 있었다. 그 중 독일에 대한 선전포고문이 전시되어 있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지금 우리가 여유로이 둘러보고 있는 이곳이 그 당시엔 급박하게 돌아가던 우리민족의 생사가 걸린 치열한 현장이었음을 상기해 보자니 벽에 걸린 태극기 사진이 예사로워 보이질 않는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저를 위해 피 흘렸겠거니... 태극기 아래엔 윤봉길 의사의 흉상이 놓여져있다.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기념관의 바깥 모습-
-상해 임시정부 청사 기념관에 남아있는 김구 주석의 집무실과 임시정부청사임을 알리는 명패-
-윤봉길 의사의 흉상-
일행은 다시 푸동공항으로 돌아와 중국 국내선을 이용해 황산의 둔계공항으로 이동했다. 밤 10시에 둔계에 도착해 하룻밤을 묵게 된다.
순례 둘쨋날,
여행은 인생, 미래의 추억, 그리고 각성
아침 5시 30분의 모닝 콜을 시작으로 투어 2일 째의 일정이 시작됐다.
버스로 약 4시간을 이동하게 된다고 했다.
7시30분, 출발과 동시에 아침예불이 시작됐다. 천수경, 예불문, 반야심경, 법성게로 이어지는 아침예불을 마치고 회주 큰스님의 인사말씀을 들었다.
『반갑습니다, 밖에 나와서 보니 더 반갑습니다. 이번이 제 4차 성지순례로 되어있지만 사실은 그보다 훨씬 많은 회차입니다. 그 앞에 것들은 다 버려두고 33차 성지순례를 계획한 뒤에 나온 성지순례가 이번이 벌써 4차입니다. 처음에 성지순례 다닐 땐 까다로운 분들이 많아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두 번 다시 안 나온다고 다짐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또 잊어버리고 나오게 됩니다. 우리 보살님들도 애 하나 낳고는 겁이 나서 두 번 다시 안 낳는다고 하면서도 둘, 셋 자꾸 낳지 않습니까?
여행은 인생입니다. 하다보면 잃어버리는 것, 놓치는 것도 많고 남에게 안 보여줄 것도 보여주게 되지요. 지난번 오대산 갈 때는 어느 보살이 가방을 잃어버려서 고생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가방을 잃어버렸으니 어떡해요, 남 입던 속옷까지 빌려서 입고 난리를 피웠지요.
저도 오늘 아침에 무얼 찾느라고 한참을 뒤적거렸습니다. 넣어두긴 했는데 어디다 넣었는지 찾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요. 20분 만에 찾았는데 그것이 바로 면도기 입니다. 그리고 방문 키 찾는데도 10분이 걸렸습니다.
인생도 그런 것 아닙니까? 이것 찾다가 저것 찾다가 하지요. 그래서 여행은 인생이구나 하고 자주 느낍니다.
인생을 여행처럼 하면 지루하지 않고 재미가 있습니다. 여행을 즐기세요, 그리고 인생도 즐기세요. 여유가 있는 사람은 남도 도와주고 그게 제일 잘 사는 방법이지요.
저는 젊을 때는 여행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처럼 단체여행이 아니고 출가 초기엔 늘 혼자서 전국을 다녔지요.
추풍령 고갯길에 지금도 가보고 싶은 집이 있습니다. 밤이 되어 그곳에 도착하니 어느 노 거사님께서 늦은 저녁을 들고 계시다가 어찌나 반갑게 맞아주던지 지금도 한 번씩 생각납니다.
그리고 걸망을 메고 동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 스웨덴 등을 여행할 때는 열차로 한철씩 돌아다닌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라면 국물이 얼마나 먹고 싶었던지, 파리에서 일본인이 하는 한국식당에 들러 라면국물에 밥 말아 먹은 적이 있는데 제가 지금껏 먹어본 밥 중에서 최고로 맛있는 밥이었습니다. 진짜 배 고플 때 , 진짜 먹고 싶을 때 먹는 밥이 최고이지요.
여행은 미래의 추억입니다.
당시는 힘들고 어려운 것도 있겠지만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 됩니다. ‘그 때 참 좋았지’ 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됩니다. 당장에 벌어지는 것을 재미있게 느끼면 됩니다.
그리고 여행은 각성입니다. 나를 각성시킵니다. 어제 푸동공항에서 중국 꼬마들을 만나서 한참동안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 아이들이 영어는 잘 하는데 한국을 몰라요. 똑똑한 아이인데도 서울을 모릅니다. 중국에서는 우리나라를 조선족 자치구 정도로 우습게 생각하는 건지 애들에게 한국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11살 정도이면 중국을 잘 압니다.
그 중국아이들은 초등학교 1학년이면 영어를 배운다고 해요, 영어도 잘하고 내가 한문을 써 보여주니 모르는 게 없습니다. 아주 똑똑해요. 여행을 하다보면 각성을 하게 됩니다. 예사로이 보지말고 각성을 해야 합니다.
성지순례는 여행의 장점은 다 가지면서 그 위에 불심을 키우는 일이 됩니다. 수행이라고 보셔도 됩니다. 성지순례는 나를 위한 불사입니다. 시간 되시는 분들은 앞으로 33차 성지순례에 열심히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여행 중에는 잠이 보약입니다. 둘이서 노닥대다가는 파김치가 되어 그 다음날 여행을 잘 못합니다. 일찍 주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이드 말을 잘 따라 주길 바라고 뭘 알려고 온 여행이니 가이드가 하는 말을 잘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뭘 경험하는 여행, 뭘 알아가는 여행이 되기 바랍니다. 이번 순례길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모두 잘 협조해 주시고 끝까지 웃으면서 다니는 여행길이 되길 바랍니다. 모두 건강하십시오.』
김교각 지장왕보살 성지, 구화산
구화산으로 넘어가는 길은 산 전체가 대나무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취계곡이란 이름에 걸맞는 푸른 계곡이다. 굽이굽이 푸른 계곡을 넘어가니 아름다운 호수 태평호가 펼쳐진다. 진주 양식으로 유명한 곳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이곳을 지나며 보이는 시골풍경들은 평화롭기 그지없는데 가이드는 한류의 열풍에 대해 설명을 한다.
중국 중에서도 이곳 황산지방은 여자들의 천국이라고 한다. 돈 버는 일, 집안 일, 아이 키우는 일 까지 남자들이 하고 있는 이곳에 어느 해, 한국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가 들어오면서 말하자면 남자들의 의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심지어는 이혼하는 가정들이 속출해 정부차원에서 ‘사랑이 뭐길래’는 방송금지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구화산 인근에는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 영향으로 한국문화가 현지인들에게 주는 영향이 크다는 설명이다.
황산이 속한 이 곳은 중국의 3대 문화 중 휘주문화로 분류되고 있다. 나머지 두 개는 티벳문화, 돈황문화,
휘주문화의 특징으로는 음식은 냉장고가 필요없다고 한다. 차운 것은 절대 먹지 않는 이 지역 분들의 식성에 기인하는 음식문화이다.
황산 현지 가이드의 도움말로 이 곳 사람들의 생활상을 재미있게 듣는 사이 버스는 구화산에 도착했다.
구화산은 99봉우리가 있으며 최고봉은 시왕봉, 해발 1342미터이며 그 곳에 천대사가 위치하고 있다. 구화산 전체에 크고 작은 사찰 97여 개가 있으며 스님 숫자만도 700여명에 이르러 참배객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을뿐더러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곳이다.
산서성의 문수성지 오대산(五臺山), 절강성의 관음성지 보타산(普陀山), 사천성의 보현성지 아미산(峨眉山), 안휘성의 지장성지 구화산이 중국불교의 4대 명산 중의 하나로 불리는 이유는 두가지이다.
하나는 우리나라와 관련이 깊다. 신라 성덕왕의 아들 김교각(金喬覺)스님이 719년 이곳에 와 사찰을 세우고 수행을 하시다 입적한 곳이다. 산 곳곳에 김교각스님의 흔적이 남아있다.
특히 김교각 스님은 99세로 이곳에서 입적한 후 3년이 지나서도 항아리 속에서 산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이 곳 사람들은 스님을 지장보살의 화신이라 믿고 김지장왕보살이라 불렀으며 구화산은 중국의 유명한 지장도량으로 자리잡게 된다.
또 하나는 당나라의 시인 이백과 관련이 있다. 구화산의 원래 이름은 구자산(九子山)이었는데 이백이 이곳에 들렀다가 아홉 개의 아름다운 봉우리를 가진 산이 연꽃과 같다 해서 구화산으로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구화산 고배경대 지장전에서의 예불-
-구화산 고배경대 앞에서-
구화산 기슭에서 버스로 조금 올라가면 구화가(구화마을)가 나타난다. 민가와 사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동네이다. 하얀벽은 민가, 노란벽은 사찰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구화산의 정상인 시왕봉과 2봉인 천대봉을 오르는 길은 케이블카를 이용하게 된다. 인근의 황산에 가려 빛을 못 본다는 이곳의 풍경이 순례객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는다. 고배경대로 오르는 케이블카 길은 가히 절경이다.
구화산 고배경대
케이블카로 12분 정도를 올라 천대봉 입구인 고배경대(古拜經臺)에 닿았다.
깎아지른 절벽에 아슬히 걸려있는 아름다운 사찰, 고배경대의 첫 인상이다.
고배경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은 '김지장 족인석'. 김교각 스님의 불상과 함께 커다란 발자국이 새겨진 바위가 바닥에 놓여져 있다.
발자국 위에 올라서면 복을 받는다는 안내원의 설명에 일행은 모두 한번씩 발자국 위에 발을 포개어 본다.
김교각지장왕의 좌우협시보살로는 제자인 도명존자와 그의 아버지이자 김교각 스님께 구화산을 보시한 무독귀왕민공이 서 있다. 순례객들은 공양미를 올리며 참배를 마쳤다.
-지장왕보살과 협시보살-
구화산 천대사, 육신보전
고배경대에서 가파른 계단을 30여 분 올라가면 천대봉 천대사가 나타난다.
김교각스님의 흔적을 따라 가슴의 맥박이 빨라지고 있다. 천대사가 위치한 곳은 구화산의 제 2봉답게 전망이 시원하다. 일층에 지장전, 이층엔 만불이 모셔진 만불루가 있다.
천대봉 꼭대기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잠시의 여유를 가지고 내려다보니 산 저 아래쪽에 펼쳐진 구화마을이 그림같다. 천대사를 참배하고 잠시 뒤쪽으로 내려가니 김교각 스님의 수행처인 동굴, 지장고동(地藏洞)이 있다. 이 수행처를 기념하기위해 천대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경산, 칠곡주지스님: 구화산 천대사에서-
-구화산 아래의 구화산마을, 흰벽의 민가와 황벽의 사찰이 사이좋게 섞여있다-
-구화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지범스님과 일행들-
이제 육신보전을 참배할 순서이다. 육신보전은 구화산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곳으로 통한다. 김교각스님의 진신이 모셔져있기 때문이다. 건물 안에는 거대한 7층 탑이 지붕과 맛닿을 높이로 솟아있고 탑 속의 돌함 속에 스님의 육신불이 모셔져있다고 한다.
이곳 구화산에는 6 분의 등신불이 계셨지만 중국의 문화혁명 때 모두 불에 타고 자명선사의 등신불과 무하스님의 등신불, 김교각 스님의 등신불탑만 남아 있다고 한다.
유독 김교각 스님의 등신불만 탑 속에 들어간 데는 또 다른 이야기가 전해진다. 누군가 진짜 등신불인지 보려고 뾰족한 걸로 육신불을 찌르자 붉은 피가 흘렀다고 한다. 그 이후, 등신불을 보호하는 의미에서 돌함에 모시고 그 위에 탑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이 곳은 명소답게 경내 탑 주변은 참배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일보일배의 참배객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호국월신보탑/肉 자 대신 비슷한 글자인 月자를 씀-
-김교각지장왕의 육신불을 모신 7층 탑-
-육신보전 내 일보일배의 참배객, 김교각 스님의 수행처로 알려진 지장고동-
원래 이곳은 육신보전으로 불리지만 건물 현판에는 '월신보전(月身寶殿)‘이라 씌어 있다. 살아 있는 듯한 스님의 몸을 보관해서 육신보전이겠지만 고기를 멀리하는 불교의 특성상 '고기 육肉'자를 비슷한 글자인 '달 월月'자로 바꿨다고 한다.
자명선사의 육신불, 지장선사
육신보전 참배를 마친 일행은 자명스님의 진신불이 모셔진 지장선사(地藏禪寺)로 이동했다. 가까운 곳에서 두분의 진신불을 뵐 수 있는 곳이다. 유리 관 속에 잠 든 듯이 모셔진 자명대사의 진신불 앞에서 참배객은 모두 숙연해진다. 탑으로 대신했던 지장왕보살님의 육신을 뵙는 양 감동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자명대사의 진신이 모셔진 지장선사는 15년 전에 세워진 사찰이라고 했다.
-자명선사의 육신불-
다시 구화거리로 내려온 일행은 마을 중심부에 있는 화성사로 향했다. 화성사는 김교각 스님이 구화산에 오신 이후, 최초로 세운 사찰로 알려져있으며 현재 [구화산 역사박물관]을 겸하고 있다. 박물관 안에는 스님의 일대기를 그린 그림이 사방벽을 메우고 있다. 참배객은 가이드로부터 그림 하나하나의 설명을 들으며 그 옛날 신라에서 차씨와 볍씨, 그리고 소나무씨와 삽살개를 데리고 이곳에 오셨다는 김교각스님의 행적을 뒤쫓아 본다. 삽살개를 본 적이 없는 후대 사람이 만든 삽살개는 거의 해태에 가까운 모습이었지만 우리나라의 삽살개가 지금도 그곳에서 지장왕보살을 지키고 있는 모습은 과연 감동스러웠다.
-구화산 역사 문화관, 이곳에 김교각스님의 기록이 자세히 남아있음-
-구화산 화성사-
-왼쪽:닮은 나한상 앞에 서신 회주큰스님-구화산 오백나한전에서, 오른쪽: 김교각 지장보살상 비(碑)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며 잠시 망중한을 즐기는 순례단-
둘쨋 날의 공식일정은 일찍 마감되었다. 일찌감치 공양을 끝낸 순례단은 삼삼오오 무리지어 구화산 기슭의 동네를 둘러봤다. 우리 숙소 바로 앞에도 자그마한 절이 있고 그 옆에는 커다란 연못이 조성되어 있었다. 연못 중앙에 난 다리 난간에 중국 스님들과 민간인들이 나란히 앉아 뭔가 정담을 나누고 있다. 민가 속에 들어서 있는 사찰들, 그리고 승속이 어깨를 맞대고 있는 풍경들이 인상 깊게 와 닿는다.
연못 둘레에는 빨래들이 말라가고 있다. 습기 찬 이곳 중국에서는 실내에선 빨래를 말릴 수가 없어 거의가 옷걸이에 걸어 밖에다 내다 건다고 했다. 이 풍경은 도시, 농촌이 모두 같았다. 상해에서도 어김없이 창문 밖에는 빨래가 펄럭이고 있었으니...
순례 삼일 째, 백세궁 참배
그리고 황산으로 이동
일정 삼일 째의 아침이다. 모닝콜이 들어오기도 전에 일행은 대충 씻고 밖으로 몰려나간다. 지난 밤에 보아두었던 연꽃 사진을 찍느라 한바탕 부지런을 떤다.
아침 7시 30분, 오늘은 버스없이 바로 걸어서 이동이다. 저만치에 빤히 올려다 보이는 백세궁(百歲宮)에 오르는 날이다. 걸어서도 간다지만 바쁜 일정의 일행은 모노레일을 타게 된다. 아래에서 보면 대형 버스가 산위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던 바로 그 운송수단이다.
사찰에 왜 황제가 사는 ‘궁’의 이름이 붙었을까? 그 사연은 알고 보면 이렇다.
명나라 때 무하스님이란 분이 이 곳에서 수행을 하다 100살이 넘어 입적한 후 3년 간 육신이 썩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황제가 무하스님을 기려 백세가 넘은 노인이 살던 곳이란 의미의 '백세궁' 현액을 내렸다고 전해진다. 건물은 많이 낡고 초라해 보였지만 무하스님의 등신불을 참배하려는 참배객들로 백세궁은 많이 붐볐다. 무하스님 등신불은 옻칠 위에 다시 개금이 되어 있다.
-백세궁-
-백세궁에 모셔진 무하선사 등신불-
무하스님의 등신불의 특이한 점이라면 손을 들고 계신 것인데 이에도 사연이 전해진다. 어느 해 이곳 사찰에서 불이 나서 스님 네 분이서 등신불을 들어 옮기려고 해도 도무지 들리지를 않자 스님들이 하소연 하기를 ‘무하스님께서 안 가시면 저희들도 가지 않고 타 죽겠습니다’하니 등신불이 손을 들자 비가 내려 불이 꺼졌다고 한다. 문화혁명시에는 등신불을 지키기 위해 마른 우물에 넣어 묻어 지켰다고 한다.
백세궁 맞은 편에는 오백나한전이 있다. 나한전 2층엔 황금빛 나한상이 빼곡히 들어서 있어 이채롭다. 우리나라에서 늘 보아오던 나한상보다는 훨씬 크기가 커서 전체적으로 웅장한 느낌을 준다. 빼곡히 들어찬 나한 중에서 자신의 모습을 닮은 나한을 찾아보라던 회주스님께선 당신을 닮은 두 분의 나한님을 금방 찾아낸다. 이곳의 나한전은 구화산 전체에서도 유일한 나한전으로 되어있다. 나한상은 목불에 개금.
-오백나한전, 구화산 유일의 나한전-
구화산은 중국의 최대 명산이라는 황산이 바로 옆에 있어 황산의 명성에 가려 크게 인기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스님이나 불자들을 통해 서서히 알려지면서 지금은 불교성지로서만이 아니라 뛰어난 산세로도 서서히 관광지로 명성을 얻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일행은 구화산을 참배함으로써 이미 이번 순례의 본전은 뽑았다며 모두들 감동에 젖은 모습니다. 이후는 덤이라는 회주스님의 멘트, 덤으로 다닐 때 더욱 조심하라는 말씀과 함께 육신불을 친견한 감동의 구화산을 뒤로 하고 일행은 3시간 거리의 황산으로 이동하게 된다.
선계인가, 속계인가/ 중국 제일의 명산 황산(黃山)
황산에 도착한 일행은 백명 정원의 대형 케이블카를 타고 숙박시설이 있는 곳까지 올라갔다. 황산 정상에서의 일박이일을 위해, 이틀분의 소지품을 작은 배낭에 따로 챙겨넣고 큰 짐과는 잠시 이별이다. 걷는 양이 엄청나다는 정보를 들은터라 황산에 거는 기대에 못지않게 고생길에 대한 부담도 만만찮다.
우리가 걷게 되는 코스는 일반인들이 타기에 알맞은 코스로 전해진다. 점심을 먹은 일행은 바로 황산 관광에 나섰다.
중국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아름다운 산이 황산이라고 한다. 황산은 중국 10대 관광지 중 하나로 꼽히며, 1990년 12월에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중국 남부의 안휘성 동쪽에 자리 잡은 이 산은 역대 시인들이 칭송하면서 '황산을 보고 나면 그 어떤 곳도 눈에 차지 않는다'라고 했을 정도다. 72개의 크고 작은 암봉들이 마치 동양화 속 산수풍경을 연상케 한다. 관광을 마친 뒤의 느낌도 그랬다. 이제 어떤 산도 이보다 나을 순 없겠구나.
기송(寄松), 괴석(怪石), 운해(雲海), 온천(溫泉) 등이 유명해 사절(四絶)이라 불리며 기기묘묘한 바위와 노송이 자아내는 경관은 과연 선경이다. 화강암 사이의 절묘하게 뿌리내린 소나무는 따로 황산소나무로 불려진다. 산의 전체 색깔은 검은 빛을 많이 띠고있다.
우리가 걸은 코스는 갈수록 점입가경의 풍경이 펼쳐져 그 많은 계단들을 의식 못한 채 도무지 피로한 줄을 몰랐다. 내딛는 걸음마다 감탄사요, 걸어 지나가기도 아까운 풍경 뿐이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 여기서 딱 한 달만 머물다 내려갔으면...
-황산, 기암괴석 사이의 소나무가 유명한 곳-
황산에서는 가이드의 특별한 주문이 있었다. 풍경을 보면서는 절대 걸어서 안되고, 걸을 때는 절대 풍경에 눈을 팔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만큼 가파른 길이고 세찬 바람에 바로 서 있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잠시 걷다가 서서 구경하고, 또 걷다가 서서 구경하고 이러기를 끝도없이 반복하지만, 보이는 풍경마다 과연 선경이다.
-비래석, 바위가 나는 형상으로 되어있다. 전설엔 손오공이 던진 복숭아가 바위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곳 날씨로는 기이하다 할만치 맑은 날씨가 계속돼 산 봉우리며 골짜기까지 깊숙이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이왕이면 운무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투정도 나옴직한 쾌청한 날씨 덕분에 황산의 모든 것을 눈에, 마음에 담을 수 있어 참으로 만족한 여행이었다.
꽃마다 향기가 있고 바위마다 봉우리마다 전설이 있는 곳, 힘들단 생각조차도 없이 하루 일정을 마치니 정말이지 꿈에 본 풍경인가 싶을만치 몽환 속을 걸은 느낌이다. 계곡 이름이 몽환경구(夢幻境區)인 이 곳은 특히나 우리 일행을 사로잡았다. 마귀에 홀린듯한 풍경이라해서 마환경구로도 불린다.
수천길 낭떠러지에 아슬히 매달려있는 계단을 걷는 일은 말 그대로 허공을 딛는 느낌이다. 공중에 매달려있으니 울려보면 쿵쿵 빈 소리가 난다다. 바람까지 세차서 벽에 바짝 붙은 채 이동해야 했다. 뒤에 듣고보니 위험한 코스여서 단체 여행객들은 빼 먹는 코스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팀은 좋은 날씨탓에 그 코스를 알뜰이 관광할 수 있었다.
절벽에 일일이 붙여서 만든 계단들, 황산은 모든 것을 저 아랫 동네에서 싣고 와야만 살 수 있는 곳이다. 산 위에서 자급할 수 있는 것이라곤 없어 보인다. 그 높고 험한 산에다 이렇게 호텔을 짓고 계단을 만들고 하는 과정에 헬기나 케이블카를 이용하나 싶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모든 재료의 운반은 하나하나 짐꾼의 어깨에 의존한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이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가 첫째 이유라고 했다. 헬기로 운송하면 비용이 많이 들고 물가가 올라 서민들이 오히려 가난해질게 뻔하고,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곳에서 일자리를 뺏긴 노역꾼들은 어디서 무얼해서 먹고 사느냐는 반문이다. 중국이어서 가능한 일일까?
-황산의 비경-
-아찔한 풍경, 천길 낭떠러지에 놓여진 계단, 허공을 걷는 듯 휘청대는 느낌-
-왼쪽: 일몰을 기다리며 저녁 예불을, 몽환경구를 돌아 나오며/아래는 아찔한 천길 낭떠러지-
곳곳의 가파른 계단에 가마꾼이 있어 사람을 태워다 나르지만, 언뜻 보기엔 타는 것도 미안할 듯싶은 그 일이 사실은 또 그들의 생계를 돕는 일이 되어준다.
황산의 제일봉인 연화봉(蓮花峰·1864m)이 건너다 보이는 제이봉인 광명정(해발 1860미터)에서 일행은 교가를 부르고 단체 사진을 찍었다. 멀리 연화봉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맑은 호수 둘을 대륜스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관음지’라 명명하시기도...
-황산 제일봉인 연화봉(해발1864미터)을 가르켜 보이는 김상길 총동문회장님-
-제 이봉인 광명정에서 잠시 휴식-
몽환경구를 둘러 온 일행은 내친 김에 일몰을 보러갔다. 해가 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순례단은 신발까지 벗은 채로 저녁예불을 올렸다. 이윽고 뉘엿뉘엿 지는 해, 과연 황산의 일몰이었다. 멀리 기암괴석이 그리는 산의 능선 뒤로 붉은 해는 서서히 지고 일행은 내일 새벽의 일출을 기대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이곳의 일출은 볼 수 있는 날이 드물다고 하지만 미리 포기할 일은 아니다. 새벽 네시의 콜이 못미더워 더러 밤을 샌 일행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황산에서의 일몰-
-총무스님과 이정애님, 황산에서-
(순례 첫날부터 3일 째까지의 기록입니다. 이후 후반의 일정은 이경화 기자가 이어서 올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왼쪽, 오백나한전의 회주스님, 백세궁에서의 대륜스님-
-이동 중인 버스에서-
-구화산 고배경대-
-호국월신보전 앞에서 단체 촬영-
-일몰을 기다리며-
-황산-
-왼쪽, 구화산에서..오른쪽: 태평호에서-
-틈만 생기면 교가를 부르고..황산에서 내려오는 길, 케이블카 차례를 기다리며-
-절벽을 타고 이동하며 잠시의 휴식을-
-일일이 실어나르는 짐꾼, 덕분에 편안한 순례객들..짐꾼을 만나면 재빨리 길을 터 줍니다-
-황산의 기암괴석들-
-흘린 땀을 식히는 시원한 바람, 황산 제이봉인 광명정(해발1860미터) 정상에서-
-제 4차 성지순례단, 광명정에서-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황산,
-황산-
-왼쪽:케이블카로 산을 오르는 순례단, 오른쪽: 불교용품점을 둘러보시는 회주큰스님과 지범스님-
-왼쪽: 이동중인 모습, 오른쪽: 구화산 역사 박물관 내 김교각지장왕보살의 일대기를 그린 그림앞에서-
-웃는 모습의 사천왕상, 구화산 역사박물관 입구에서, 오른쪽: 숙소 앞 작은 사찰의 스님-
-왼쪽: 비취계곡, 오른쪽: 구화산을 오르는 케이블카-
-반갑습니다, 관세음보살: 서로 인사나누기-
(순례 첫날부터 3일째 까지의 기록입니다. 이후 후반의 일정은 이경화 기자가 이어서 올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절벽에 매달린 계단.....아찔합니다.황산, 과연 절경이네요.순례기도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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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풍경과 여행기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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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님 수고 많았습니다 ..덕분에 구경 잘하고 갑니다 ..관세음보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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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님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일정 내내 촬영하느라 몸살안났는지.... 너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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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 임시정부는 지도 가보았는대 안면 있는곳들이 몇군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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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등신불. 김교각 스님등..대장정의 순례기네요. 잘 보았습니다. 기자님들의 해외기사들 가히 세계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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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구경 잘하고 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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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날씨에 수고많으셨네요. 잘 보았습니다. ^^ 황산의 절경을 보니 장가계의 비경과 견줄만 합니다. 걷고 또 걸었던 생각밖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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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화산 황산 절경을 사진에 담을 수있을 정도로 날씨가 좋았는가 보네요.. 회주스님께서 동참하셔서 날씨까지 함께 한것 같습니다. 정말 복 받으신 님들이십니다. 나무님 덕분에 여행 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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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중국관람합니다... 돈 안들이고 댕겨온것 같습니다. 황산...등신불. 김교각 스님....잘 봅니다..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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