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론의 소를 금기하라
테이레시아스가 오디세우스에게 경고한 세번째 위험은 태양의 섬에서 사 육되고 있는 아폴론의 소떼를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위험을 피해가기 위해 오디세우스는 아예 이 섬에는 정박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며칠 인가를 쉬지 않고 노를 저어온 선원들은 태양의 섬 가까이에 오자 오디세 우스에게 잠시라도 쉬어가며 물을 보충하자고 애원했다. "당신은 강인한 힘과 정신을 가졌기에 피곤한 줄도 모르겠지만 우리네 평범한 인간들은 약간의 휴식이 필요해요." 오디세우스는 뜻을 굽혔다. 하지만 꼭 하룻밤만 머물 것과 섬에서는 오직 물만을 가져올 것, 특히 어떤 이유에서든 아폴론의 소에는 절대 손도 대지 말 것이라는 단호한 조건을 내걸었다. 동료들은 맹세로써 동의했다. 그들은 섬으로 다가섰고 해변에 닻을 내렸다. 그런데 밤사이에 거센 폭풍이 일 었고 다음날 아침이 되자 그 기세가 더 심해져 항해가 불가능했다. 폭풍 은 하루하루 연장되었고 오디세우스 일행은 예상보다 훨씬 오랫동안 섬에 머물러야 했다. 처음에 선원들은 얌전하게 있었다. 키르케가 준 양식이 아 직 남아 있어 먹을 것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폭풍이 3주 간이나 계속 되자 양식이 떨어졌고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며칠간은 풀뿌리나 조개류, 조류들과 산토끼를 잡아먹으며 그럭저럭 연명 했다. 하지만 점차 감시하는 사람도 없이 해변 근처의 풀밭에 널려있는 기름이 번들거리는 살진 소들을 탐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마 침내 어느 날 밤 오디세우스의 부관인 에우리로코스는 오디세우스가 잠 든 틈을 이용하여 동료들을 불러모았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모든 형벌 중에 제일 잔인한 것이 탄탈로스의 형벌이며, 죽음 중의 최 악의 죽음이 배고파 죽는 일이다. 저 탐스러운 소 한두 마리만 죽이면 그 같은 죽음은 충분히 면할 수 있다. 그 정도면 아폴론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설사 눈치챈다 하더라도 우리의 적절한 희생으로 그의 화를 가라 앉힐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의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한다 하더 라도, 나라면 배고픈 채로 천천히 죽어가기보다는 차라리 배를 가득 채우 고 빨리 죽는 걸 택하겠다." 동료들은 그의 말에 동의했다. 그들은 소를 1마리, 2마리 쓰러뜨렸고 내친 김에 4마리를 더 쓰러뜨렸다. 다음날 아침 오디세우스가 깨어났을 때 깨 끗하게 잘려진 6마리의 소가 꼬치구이가 되어 익혀지고 있었다. 오디세 우스는 즉각 엄청난 재난을 파악했다. 그는 동료들 특히 에우리로코스를 호통쳤다. 하지만 이미 일은 저질러졌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는 말 없이 호화로운 식사에 동참했다. 그 시간 올림포스에서는 아폴론과 포세이 돈이 오디세우스 일행을 징벌할 수 있는 전권을 을 제우스로부터 얻어내고 있었다. 폭풍이 가라앉자 선박은 다시금 바다로 나섰다. 하지만 그것도 잠 시였고 다시금 천둥과 함께 태풍이 불어닥쳤다. 거대한 파도가 선박 위로 휘몰아쳤다. 질겁한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은 정신을 잃었고 그의 명령조차 들으려 하지 않았다 침착할 것을 권고대도 소용이 없었다. 오디세우스가 소리 쳤다. "배가 파도에 휘몰아칠 때 뱃전에서 뱃미로 도망간다고 위험에서 벗어나 는 건 아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 말을 듣지 않았다 더 높은 파도가 배를 힘껏 후려치더니 배를 붕괴시켜버렸고 선원들을 모조리 휩쓸어가버렸다 돛대에 몸을 꽉 붙 이고 있던 오디세우스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다 익사하고 말았다. 저항할 수 없는 물살에 휘말린 오디세우스는 전속력으로 카립디스와 스킬라 바위 쪽으로 떠내려갔다. 헤어날 가능성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 은 기껏해야 자신의 몸을 두 바위의 한쪽으로 몰아붙이는 것뿐이었다. 이 번에는 그 혼자였기 때문에 스킬라쪽으로 가면 아무런 희망도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반대로 약간의 희망을 을 가지고 카립디스 쪽으로 가서 삼켜지 지 않을 행운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행운은 결정적으로 그의 편이 아니었다. 그가 절벽을 따라가는 순간 밑에서 소용돌이가 일어나더 니 그를 깊고깊은 심연 속으로 끌어내리고 말았다. 이제 그의 모험은 끝 난 것일까? 아직은 아니다. 동료들과의 저승 왕국에서의 영원한 재결합을 가능하면 늦춰보겠다고 결심한 불굴의 오디세우스는 돛대에 몸을 의지했 고, 낙담한 가운데서도 긴장을 풀면서 절벽 굴곡에 불쑥 자라난 야생 무 화과나무의 가지를 움켜쥘 수 있었다. 두 손을 허공에 내 맡긴 채 그는 자 신의 돛대가 심연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걸 보았다. 나무 줄기를 붙잡으려 고 발돋움하기에는 힘이 모자랐다. 하지만 나뭇가지를 붙잡고 있을 힘은 충분했다. 카립디스가 돛대와 함께 삼켜버린 물살을 토해낼 때까지 그는 반시간을 이렇게 피곤과 경련에 저항하며 견뎌냈다. 그제서야 오디세우스 는 나뭇가지에서 손을 놓았고 수면 위로 떨어져 돛대를 붙잡았다. 돛대 위 에 올라탄 오디세우스는 물살 흐르는 대로 미지의 목적지를 향해 떠내려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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