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세의 데뷔전 -무술태극권에의 길-
초작시 제2회국제태극권대회 추수 70kg부문 우승
及川 眞(일본진식태극권학회회장)
출처 : 일본 福昌堂, 무술 2003년 겨울호
번역 : 오한영
‘개시!’ 주심의 지시에 따라 손을 맞댄 순간, 상대의 힘을 곧바로 느낄 수 있었다.
시합전 상대선수를 알고 있던 진병(진가태극권 20대전인)이 힘이 매우 센 상대라고 이미 주의를
주었던 것을 난 기억하고 있었다. 상대는 힘에서는 이기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시합 시작 후 바로 힘을 써오는 상대선수.
그가 들어오는 순간을 낚아채, 나는 앞발에 掃腿기술을 써서 상대의 중심을 뺐었다.
상대는 한손과 한쪽 무릎을 동시에 바닥에 대 나는 5점을 선취할 수 있었다.
결국 이 점수가 결승점이 되어서 승리를 거머질수 있었다.
이것으로써 첫출전하여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겨우 10분정도의 시간이었지만, 지금까지 어떤 것보다도 길게 느껴졌다.
이하 문장은 무술태극권을 지향하는 동지들의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고자 한다.
추수경기와의 만남
처음 추수경기(당시에는 交手라고 했음)를 본 것은 1993년에 열린 온현제2회 국제태극권대회에서였다.
당시 추수경기가 어떤 룰로 진행되고 있는지 알수 없었던 상황이어서 우리 일본의 선수들은
표연부문에만 참가를 했다.
온현의 경기장은 옥외에 있어 고대 로마의 원형 콜로세움과 같은 형태에 중앙에 무대가 있고
그 위에 직경 6미터의 경기장이 설치되어 있다.
거기에 원근의 차이가 있어 경기장내 어디에서도 선수의 움직임을 잘 볼 수가 있었다.
(지금의 초작시 경기장은 체육시설 안에 설치된 옥내경기장이어서 관객석에서도 잘 보기
힘들어 뒤에 앉으면 선수들의 움직임을 보기가 어려웠다)
또 출장선수의 기량도 당시에는 선수들간의 차이가 컸던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진가구의 선수들은 다른 선수들과는 다르게 태극권의 기술다운 움직임으로
멋지게 이겨나가고 있었다.
처음본 이 경기장면을 통해서 나는 반드시 다음 기회(국제태극권대회는 2년에 한번열림)에
내 자신이 직접 선수로서 참가해 내 자신의 무술적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그 이후 이 대회의 경기룰을 참고로 해서 우리 연구회에서 독자적으로 추수대회를 개최,
또 추수강화합숙을 거쳐서 선수들의 육성에 힘을 기울였다.
4년후 1998년, 본 연구회는 처음으로 국제태극권대회 추수경기에 선수단을 보냈다.
그러나 아직 중국선수들과의 힘의 차이는 역력한 것이어서 우리 선수들은 모두 참패했다.
이 겅험을 통해서 우리들은 많은 것을 배울수 있었다.
이 대회를 계기로 나 역시 다음대회에는 선수로서 출전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그후 스승이신 진소왕노사에게 상담을 드리니, 듣자마자,‘너는 연령이 많아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만두는 것이 좋다.’라고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내 결의가 흔들리지 않는 것을 보신 스승님은 계속해서
‘지도자로서의 너의 위치에서, 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든 참가를 하고자 한다면 강한 의지를 가지고 특별한 훈련을 따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
라고 하셨다. 노사께서는 직접 짜신 훈련 프로그램을 전해주셨다.
거기에 노사의 조카가 되는 진병에게 내 연습을 도와줄 수 있도록 연락을 취해주셨다.
(진병은 그 해 추수경기 70키로급의 우승자였고, 중국전국추수경기 우승자였다.
약관 30세의 발구의 기량을 가진 촉망받는 젊은이였다.)
나는 바로 당시 진병이 있던 상해체육대학으로 옮겨 그에게서 여러 가지 추수기술과 훈련법을
전수받아 그것들을 흡수, 체득하기 위해 매일 연습을 하였다.
추수시합출장을 위한 훈련과 그 의미
여기서 추수시합을 위한 구체적훈련법에 대해서 기초적인 연습방법에서부터 시작해보자.
먼저 첫 번째, 투로를 연습하는 것은 여러 가지 기술의 기초를 만드는데 있어서 필요조건이라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전사경이 뒤따르지 않는 투로는 몇 번 연습해봐야 태극권의 기술은 습득할수없다.
이점을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리고 둘째로 혼자서 수련하는 연습(나는 이 연습법을 새도우 추수라고 이름붙였다)이다.
새도우복싱과 같은 요령으로 상대를 상정하고 하나의 기술동작을 몇 번이고 연습을 한다.
그리고 매트위에서 낙법의 연습을 한다.
여러 가지의 낙법을 연습, 부상을 방지하고, 또 영민한 신체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셋째, 기초체력을 기르기 위한 러닝과 웨이트트레이님이다.
태극권애호가중에서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면 신체가 굳어서 하지않는게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내 사진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
핵심은 그 트레이닝 방법에 있어 문제가 있다면 바로 그부분에서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덤벨(아령)을 이용하여 연습하는 경우 반드시 전신을 이용해,
전사경으로 운기를 해나가면서 행한다(이것은 진소왕노사가 가르쳐주신 방법이다).
그리고 근육트레이닝의 후에는 잊지말고, 스트레칭운동을 하고 굳은 근섬유를 늘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시합 룰
여기서 추수시합에 대해서 간단히 그 룰을 설명하고자 한다.
추수참가자격은 남녀 모두 16~50세까지이다.
참가희망자는 16세에서 25세, 26세에서 35세, 36세에서 50세까지 3그룹으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거기에 체중별로도 나누어진다.
(연령별구분이 생긴 것은 이번대회에서부터이다)
참가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이 신청한 클래스 계량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투로의 심사가 있다.
이것은 태극권을 어느정도 수련하였는가를 알아보고,
또 추수시합을 해도 위험이 없는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또 동점이 되었을때 최종판정의 기준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시합은 무대에서 진행되고 시합시간은 전반 3분 휴식 1분 후반 3분으로 되어 있어
승패는 포인트제로 결정되고 20점차가 나면 그 시점에서 시합은 종료된다.
주먹이나 발차기는 반칙,
상대의 옷을 잡거나 목에 손을 걸거나 무릎아래에 손을 거는 경우에는 주의를 받는다.
또 양손을 상대의 등에 대는, 즉 상대를 껴안는 듯한 동작은 허락되지 않는다.
시합을 향하여..
내가 이번대회 시합에 참가하기로 결심을 한 것은 대회직전 3개월정도 전의 일이다.
(이전대회에서도 출전하기로 마음먹고 있었으나 부상으로 인해 출전할 수 없었다)
또 전까지 출장연령제한이 45세까지였는데 48세의 나로서는 아쉽지만 출장자격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런데 6월에 도착한 대회초대장에 첨부되어 있는 추수경기룰book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대회는 클래스를 나눠서 체중별로 하는 것 말고도 연령별로도 나눠져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연령구분의 최상위선이 50세로 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바로 천명이라고 생각한 나는 내안에 있던 투지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회까지는 90일정도밖에 시간이 없었다.
이 짧은 기간동안 시합에 나갈수 있는 몸을 만들 수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다.
먼저 체중을 떨어뜨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나는 78킬로그램이었는데 신장에서보면 나는 65~70킬로의 클래스에 적당한 정도였다.
따라서 9킬로를 감량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10일간 1킬로씩 감량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훈련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여기서 간단히 소개해보면, 하루 약 4시간의 연습을 일정으로 하였다.
아침에 스트레치부터 시작해 투로의 연습,
그 후 기초체력을 기르기 위해 러닝, 웨이트트레이닝을 한다.
최종적으로 추수기술의 연습을 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혼자서 하는 새도우 추수다.
한달에 한번 개최하는 우리협회 추수교실에서의 시합을 상정한 실전연습이었다.
이렇게 매일 연습을 한 결과 예정대로 체중을 떨어뜨리는 것도 가능했고
최종적으로 중국에 가기 2주전에는 후쿠시마에서 이번대회 경기출전 선수들과 같이
추수강화합숙을 했다.
국제태극권대회
2002년 8월27일 우리 일본진식태극권학회방중선수단은 중국으로 출발을 했다.
나의 일본진식태극권학회에서는 1993년부터 참가해오고 있고 이번대회가 5번째 참가였다.
대회는 전과 마찬가지로 하남성초작시에서 개최되었고,
국내외의 약 200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2000명의 선수들이 참가를 했다.
주지하고 있는바, 아남성초작시온현은 중국태극권의 발상지로서 ‘태극권의 고향’이라고 불려지고 있다.
우리가 초작시에 들어간 후, 개회식이 진행됐다.
그것은 초작시정부총괄아래 준비운영이 되는 것으로서 국제대회라는 이름에 걸맞게
성대한 세레모니였다.
대회장에는 수만명의 관객이 들어와 거기서 진행되는 여러 가지 행사와
세계각국에서 온 대회출전자들에게 환영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번대회 경기종목은 표연과 추수였다.
이번대회서부터 표연경기에 6명, 추수경기에 9명이 출전애, 표연경기 참가자들은 우수상을 획득했다.
드디어 추수시합
우리 학회에서 출장한 선수는 남자 7명, 여자2명이다.
일본에서 출전한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그 외 외국세라고 하면 미국, 러시아, 캐나다, 독일에서 온 선수단의 참가가 있었다.
특히 러시아침의 참가인원이 많아 50명정도는 되어보였다.
중국국내선수는 각지방에서온 단체와 하남성 단체를 비롯하여 약 300명정도가 되어보였다.
이런 많은 선수들의 경기를 5일내로 치루어야 하기 때문에 매우 빡빡한 일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침, 점심, 저녁 줄곧 경기가 지속되고 그 날 자신의 시합이 있는지 없는지도 대회장에
나가봐야만이 알 수 있었다.
우리들은 좋은 자리의 확보를 위해 매일아침 7시반에는 대회장에 들어가기로 했다.
시합은 8시 시작, 그 순서는 연령이 적은 순서, 체중이 가벼운 순서로 짜여져있었다.
지면상 여기서 우리팀 모두의 시합내용을 적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모두들 다 실력을 잘 발휘하여 건투를 했다고 생각된다.
그 결과 출전자 9명중 3명이 각 클래스에서 우승!
태극권의 추수국제대회에 있어서 외국(일본)단체 최초의 쾌거였다.
이것은 중국에서도 주목할정도로 대대적으로 신문에 보도가 되기도 하였다.
일본의 태극권이 중국 아니 세계로 훌륭하게 통용되고 있다는 확신이 생길 수 있었다는 것이
이번대회 가장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덧붙여서 우승자 중 한명인 安部明군이 진가구 마을에서 모든 사람이 보는 가운데 결혼식을 하는
겹경사가 나게되어 당사자뿐 아니라 우리 방중선수단일동이 이 겹경사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한명의 우승자 사토오상은 일본인 여성최초출전으로서 얻은 쾌거였다.
지금 본 학회는 이 대회 추수경기를 비디오에 담아 희망자에 한해 분포하고 있다
추수경기의 오늘과 내일
이번대회 경기를 통해서 전반적으로 받은 느낌을 적는다면,
선수들 전체의 레벨이 회를 거듭할수록 올라간다는 것이다.
그 반면 아직도 추수기술이라고는 할 수 없는 ‘힘’에 의한 기술에 의존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태극권의 추수가 이상으로 생각하는 ‘첨점연수(상대방의 움직임에 따라 행동하는 것)’와,
이유극강(부드러움으로써 강함을 이기는),
인진낙공(상대를 당기고 밀면서 공격)을 구사하는 사람들은 정해져있다는 것이다.
선수들중에도 특히 온현진가구 선수들은 이기술들을 훌륭하게 사용하고 있어
그 움직임을 놓칠수가 없었다.
외국선수단에서는 캐나다 팀, 러시아팀의 선수들이 대회를 거듭할수록
확실히 실력을 붙여 강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대로라면 다음대회에서는 중국을 중심으로, 일본, 러시아, 개나다 선수들이
백중세속에서 승패를 겨루지않을까 생각된다.
다만 우리들은 큰 문제를 안고 있다.
그것은 일본에는 젊은 선수가 잘 육성되지 않는다는것이다.
다른 국가에서는 태극권을 무술로서 바르게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따라서 학습자들의 연령도 매우 낮다.
여기에 비해서 일본에서는 이런 인식이 전해지지 않아 태극권을 배우는 젊은이들이 적다.
왜 젊은선수 육성이 되지 않는 것일까?
이것은 태극권 보급에 종사하는 지도층에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된다.
지금은 바야흐로 건강붐의 시대, 태극권 역시 그 흐름을 타고 보급되어 왔다.
그리고 ‘건강법’으로서의 태극권은 일본에 뿌리를 내렸다고 할 수 있다.
계속해서 ‘표연경기’로서의 태극권이 주가 되어 대규모의 연무회도
각지에서 개최되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런 분야에서 태극권을 지도하고,
스스로 자신의 길을 탐구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태극권은 무술이라고 말하면서도 추수경험(실전적추수)이 없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은 것은 아닌가?
그리고 스스로 경험이 없음을 커버하기 위해 ‘투로만 열심히 하면 모르는 사이에
무술적 힘을 기를수 있다’,
‘표연의 연습을 하면 태극권의 기술을 이해할 수 있다.’
등등의 말이 변명처럼 이용되고 있다.
추수의 수련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실전과는 거리가 먼 약속에 의한 연습 정도 밖에 행해지지 않는다. 이런 일들을 자주 접하게 되는 것이 일본 태극권계의 현실이다.
이래서는 태극권을 무술로서 배우려고 하는 젊은이들은 나타나지않을 것이고,
나타난다 해도 따라오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들은 일본 청년들에게 진정한 태극권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활동을 통해 다음 세대를 육성해나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리고, 무술로서 태극권을 배우는 방법으로는 추수경기참가를 목표로 태극권에 접근하는 것이
최단거리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2년후 2004년에 개최되는 추수경기에도
나는 2연패를 목표로 최연장자선수로서 참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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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치는것 같아서 ...
우리의 태극권에 대한 미래방향을 제시하는것 같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