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 29일 김춘수 시인이 돌아가셨다.80세가 넘도록 사셨으니 장수한 편이지만 내가 잘 알던 시인이 돌아가셔서 그냥 흘려 보내기 어려워 잠시 그분에 대한 추억과 그 분이 쓴 시를 생각하여 보기로 하였다.
의과대학 다닐 때 그 분의 시집을 들고 다니다가 짬짬이 보면서 위안을 삼았던 기억이 난다. 시인의 시는 마치 풍경화를 그리듯이 담담하게 느껴진다. 주위에 있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한부씩 사주어 읽어 보라고 권유하였던 적이 있었다.
인터넷에 ( www.glimm.co.kr) 올려놓은 추모시를 한번 보여주고 싶다.
김춘수 님 영전(靈前)에
임 영 준
무척 싸늘한데
울컥 창문을 열었다
오늘밤 어둠별은
더욱 밝고 숙연하리라
미세한 떨림에 지나지 않던
열여덟 철부지를
꽃몽우리라 부르던
스승의 스승이 떠나셨다
일찍 가버린
나의 스승과 함께
또 어떤 막다른 곳에서
희미한 풀씨들에게
알맞는 이름을 지어주시겠지
비록 이승의 연(緣)이
끊어지고 말았지만
득의(得意)할 때마다
뇌리를 뚫고 지나가는
님의 부름을 상기하리라
영면(永眠)하시고 잉태시키셨다
(2004.11.29. 그 제자의 그 제자가)
11월 29일 사망한 김춘수 시인은 경기도 광주공원 묘역에 5년전 사별한 부인의 곁에 묻혔다.
시만을 놓고 보면 그는 반(反) 현실주의자 또는 반 역사주의자였다. 사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법이 없었고 인생의 지혜에 대해 말하는 법이 없었다. 그에게 시는 삶을 위해 있지 않고 시 그 자체로 존재했다. 시에 관한 한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만이 진실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예술지상주의자였다.
고인은 스무 살이었던 1942년, 일본 니혼(日本)대 유학생활 중 가와사키 부두에서 하역작업을 하다가 한국인 동료들과 함께 일본 천황과 총독정치를 비방한 것이 동료의 고자질로 알려져 6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퇴학당했다. 그는 고향에 돌아온 뒤에도 광복이 될 때까지 불령선인(不逞鮮人)의 딱지가 붙여진 채 살았다.
고인은 생전에 “함께 수감돼 있던 일본의 유명한 좌파 교수가 모진 고문이 끝난 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을 혼자 먹는 것을 보고 이데올로기를 믿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5년 전 부인과 사별한 뒤 직장에 다니는 외손녀 두 명과 함께 성남시 분당에 살았던 고인은 기도폐색으로 쓰러지기 직전까지 시작(詩作)을 멈추지 않았다. 전집 발간 이후 써 온 시를 엮은 신작 시집 ‘달맞이꽃’이 12월에 출간될 예정이다. 그의 대표적 산문들로 엮은 단행본도 함께 출간된다.
문학평론가인 이창민 고려대 교수는 “고인은 역사에서 소외된 자기의 존재가 문학을 통해서만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역사의 간교한 흐름에 따라 억압된 자, 소외된 자, 배제된 자가 현실로 귀환하는 통로가 문학이라고 생각했다”고 평했다.
○김춘수 시인 연보
△1922. 11. 25 경남 통영 출생
△1939 경기중 4년 수료
△1940 일본 니혼(日本)대 예술학원 창작과 입학
△1942 일본 천황과 총독정치를 비방해 7개월간 헌병대와 경찰서에 유치. 니혼대학 퇴학
△1944 부인 명숙경(明淑瓊) 씨와 결혼
△1946∼51 통영중, 마산중ㆍ고 교사
△1946 ‘애가’ 발표
△1948 첫 시집 ‘구름과 장미’ 펴냄
△1959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펴냄.
△1960∼78 마산 해인대(경남대 전신), 경북대 문리대 교수
△1974 시선집 ‘처용’ 펴냄
△1977 시선집 ‘꽃의 소묘’, 시집 ‘남천(南天)’ 펴냄
△1979∼81 영남대 국문학과 교수
△1980 시집 ‘비에 젖은 달’ 펴냄
△1981 제11대 국회의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86∼88 방송심의위원장, 한국시인협회장
△1991 시론집 ‘시의 위상’, 시집 ‘처용단장’ 펴냄
△1992 시선집 ‘돌의 볼에 볼을 대고’ 펴냄, 은관문화훈장 수상
△1993 시집 ‘서서 잠자는 숲’, 산문집 ‘여자라고 하는 이름의 바다’ 펴냄
△1994 ‘김춘수 시전집’ 펴냄
△1997 장편소설 ‘꽃과 여우’ 펴냄. 제5회 대산문학상 수상
△1998 제12회 인촌상 수상
△1999 시집 ‘의자와 계단’ 펴냄, 부인 명숙경 여사와 사별
△2002 시집 ‘쉰한 편의 비가’ 펴냄
△2004 ‘김춘수 전집’ 펴냄, 제19회 소월시문학상 특별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