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최고령 기업 ~동화약품~ 우리나라 최고령 기업은 어디일까요.
일단 현재의 두산그룹을 들 수 있겠습니다. 1896년에 세워진 박승직 상점이 그 시작이지요.
하지만 박승직 상점과 두산의 연결고리는 1945년에 잠깐 단절된 적이 있었고 그간 업종과 이름도 여러 차례 바뀌었기 때문에 정통성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두산 대신 다른 기업을 최고령 기업으로 칩니다. 바로 부채표 까스활명수로 유명한 동화약품이지요.
동화약품의 시작은 18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왕실에서 일하던 민병호란 사람이 한방 처방전으로 ‘활명액’이라는 소화제를 만든 것이 그 시초지요. 그리고 그의 아들 민강이 이 소화제를 팔기 위해 동화약방을 만들게 됩니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보존을 위해 알코올, 클로로포름 등 양약을 섞어서 현재의 활명수가 탄생했습니다.
재밌는 건 이 활명수가 워낙 인기를 끌다보니, 그리고 제조법을 다 밝혀버린 탓에 요즘이랑 비슷하게 유사품이 잔뜩 활개를 치게 됩니다. 그래서 동화약품이 혼란방지를 위해 만든 것이 부채표. 이 부채표가 우리나라 최초의 상표등록이지요. 요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옛날 활명수 TV 광고를 보면 유난히 부채표를 강조했지요. 이 전통은 1910년대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역사가 워낙 오래된 기업이다보니 나름 일제강점기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도 합니다. 바로 독립운동 지원이지요.
최초의 창업자인 민강은 3.1운동에도 참여한 경력이 있는 독립유공자입니다. 덕분에 옥고도 여러 번 치렀습니다. 주목할 만한 게 상하이 임시정부와의 관계로, 민강은 임시정부의 국내 연락책을 담당하는 ‘연통부’의 행정 책임자였습니다. 그래서 동화약품 사옥 내에 연통부가 설치되었지요.
여하튼 사장이 독립운동을 하니 일제의 탄압때문에 사세도 기울고 민강이 40세의 나이로 사망하며 동화제약은 망할 위기에 처하지요. 친척들이 어찌어찌 힘겹게 운영하다가 결국 회사가 윤창식이라는 사람에게 넘어갔는데... 이 사람도 독립운동가 출신입니다. 신간회 등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고 아들인 윤광열도 광복군에 입대한 경력이 있지요.
참고로 활명수는 탄산계 소화제의 대명사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처음부터 탄산 효과가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탄산을 넣은 최초의 소화제는 까스명수로, 이게 워낙 인기를 얻어 오리지널인 활명수의 입지가 위험했던 적이 있었지요.
결국 당시 사장의 자리에 있던 윤광열이 제조과정에서 탄산을 넣을 것을 결정하니 이것이 오늘날의 까스활명수입니다. 활명수의 카피캣(까스명수)에서 다시 카피캣(까스활명수)이 탄생한 것이지요.
동화약품은 위에서 언급한 두산과는 달리 줄곧 같은 자리에서, 같은 상호를 유지하고, 같은 업종으로 쭉 회사를 유지해 왔습니다. 다만 2014년에 본사가 위치한 순화동이 재개발에 들어갔기에 현재는 사옥을 옮긴 상태지요. 이 구사옥도 살아있는 역사관 같은 거라서 전면 재개발이 될 지는 미지수입니다.
이 긴 역사 중에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을 다한 역사도 있으니 최고령 기업이란 명칭이 부끄럽지 않다 하겠습니다.
ps1. 필자는 동화약품과 전혀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위장이 튼튼해서 소화제도 잘 먹지 않습니다.
ps2. 다음 링크는 활명수의 1965년 광고입니다. 옛 광고 특유의 비범한 센스가 엿보입니다.
https://youtu.be/V0j_uv0Boj0 (1분 11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