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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의(葬儀)의 기억, 엄가시발쌈-
1. 벽사(辟邪)의 상징 엄나무와 탱자나무
엄가시발쌈도 오쟁이쌈과 마찬가지로 아이들 장례법 중 하나다.
엄가시로 ‘발’을 엮어서 아이의 시신을 감싼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엄가시’는 엄나무의 가시를 말하는 것이고 ‘발’은 가늘고 긴 대를 줄로 엮거나 줄 따위를 여러 개 나란히 늘어뜨려 만든 물건으로 진도 지역에서 대개 ‘발장’이라고 한다.
어떤 무엇을 가리는 ‘가리개’ 용도로 사용하는 소품이다.
물김을 태양 빛에 말리는 데 사용되었던 ‘발장’도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내가 어렸을 때는 동네마다 해웃발(김을 말리는 발장이라는 의미)이 지천이었는데, 생김을 얇게 펴서 말리는
도구를 ‘발장’이라고 했고, 이를 햇볕에 말릴 수 있도록 담벼락처럼 만든 볏짚 벽을 ‘건장’이라 했다. 여기서 발장은 김밥을 만들 때 사용하는 ‘발’을 생각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엄나무는 국어사전에 의하면 흔히 드릅나무라고 통칭한다.
하지만 엄나무와 두릅나무는 사촌격으로 서로 다른 나무다. 흔히 엄나무를 개두릅나무라고 한다.
낙엽 교목이고 15~20미터 정도 자란다. 잎은 어긋나고 5~9개로 갈라진다. 7~8월에 누런 녹색 꽃이 산형(繖形) 화서 즉, 우산 같은 모양으로 핀다
. 열매는 둥근 핵과로 10월 중에 검게 익는다. 북을 만들거나 가구재로도 쓰고 껍질은 주로 한약재로 쓴다.
음나무라고도 하는데 어원이 ‘엄니’ 즉, 크고 날카로운 포유류의 이빨을 가리키는 데서 출발하여 ‘엄’으로 고정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엄가시(엄나무 가시)는 엄나무 줄기에 나 있는 크고 날카로운 가시를 말한다. 엄나무로 북을 만든다는 점도 차차 설명한다.
개두릅나무(엄나무) |
낙엽이 내린 늦가을 산에 올라가 보면 당장 알겠지만, 포유류의 어금니처럼 생긴 두릅나무 가시들이 어찌나 촘촘하게 가지에 박혀있는지, 엄나무숲에는 귀신도 들어가지 못할 정도다. 이런 점에서 엄나무는 탱자나무와 벽사 기능을 같이 한다. 탱자나무 울타리에 귀신도 들어오지 못한다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출입문의 위쪽에 엄나무 가지 한 다발을 걸어두는 풍속이 있다. 전염병이 돌 때 가시나무 가지로 대문을 둘러치는 풍속들도 있다. 나쁜 것들이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민속의례 중 하나다. 새로운 건물을 지으면 현관문 위에 엄나무, 북어, 실타래 등을 걸어두는 풍속이 모두 이런 관념들 속에서 생겼다. 북어는 오늘날에도 광범위하게 쓰이는 민속의례이며 실타래는 장수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탱자나무 |
2. 엄가시발쌈이란 무엇인가?
엄가시발쌈이라는 용어는 가시 많은 엄나무 가지로 ‘발장’을 엮어서 아이의 시신을 싸맨다는 뜻으로 사용된 이름이다. 오쟁이쌈과 더불어 소개된 예향진도 기사 사례를 아래 인용한다. 오쟁이쌈과 마찬가지로 본고에서는 해당 이름을 밝히지 않으니, 실명이 필요한 경우는 원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 엄가시발쌈
○ 때: 1927년
○ 장소: 고군면 지수리 박○구씨의 형님집
○ 했던 사람: 박○구씨(79세 지수리 거주)
○ 증언: 1987년 3월 15일, 고군면 노인회 월례회의가 끝나고 식사를 하던 지수리 어느 식당
○ 증언내용: 우리 성님이 애기 야달을 낳는데 모두 죽어붕께 집안에 큰일이 났었소. 아홉 낳기를 지달렸자믄 아, 그놈도 죽어부렀제 어쨌더라, 그래서 내가 성님네 집에 가서 성님 보고 산에 가 엄나무를 쪄 오라고 했더니 한 지게를 해 왔습디다. 내가 그 무서운 까시나무로 발을 엮어서 거그다가 죽은 애기를 올려놓고는 딸딸 몰아서 그놈을 지고 산에다 갖다 내 부렀소. 아, 그랬더니 열 번째 놈은 안 죽고 살어서 시방 광주에서 살고 있제 어짠다. 그 조카가 올해 예순 세 살일 것이요. 아들을 5형제나 두었제 어짠다. 애기 잡어가는 귀신이 가시발 속에서 못 빠져 나왔던 성 부르요.
○ 참고
역시 시체 속의 악귀를 없애는 방법으로 했으며, 전염병이 돌 때 엄나무 가지를 대문에 꽂아서 악귀가 못 들어오게 했던 것은 최근까지의 일이었다. 독담월(돌로 쌓아 만들어진 애기 무덤)은 애기 시체를 산에 버리고 돌로 악귀를(시체를) 쳐서 쌓인 것이며 이것은 점차 곱게 쌓아 무덤 형태로 변모되었다. 또 옹기에 담아서 큰 돌로 쳤던 방법이, 나중에는 넓죽한 돌로 그 항아리를 덮어놓기도 하고 항아리에 담아서 매장하는 형태로 변했다고 보아진다.
○ 위와 같은 풍속이 진도의 도처에서 행해졌으나 두 가지 다 이름이 조사되지 않아서 우선 ‘오쟁이쌈’과 ‘가시발쌈’으로 정했다. <朴>
위 인용문에서 <박>은 당시 예향진도편집인 박주언(전 진도문화원장)을 말한다. 박주언이 밝히고 있듯이, 1900년도 초 진도지역에서 보편적으로 행해졌던 유아 장례 방식이 오쟁이쌈과 엄가시발쌈이었는데, 명사화된 이 용어가 그 당시에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지는 확인할 수 없다. 두 가지 다 이름이 조사되지 않아서 우선 ‘오쟁이쌈’과 ‘가시발쌈’으로 정했다는 후기가 그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지금 내가 사용하는 ‘오쟁이쌈’과 ‘엄가시발쌈’이라는 이름은 박주언이 고안했던 이름이기도 하고, 오쟁이와 엄나무라는 해당 재료를 근거로 붙인 이름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난 칼럼에서 ‘오쟁이쌈’이라고 호명한 데 이어 이번에 ‘엄가시발쌈’이라고 호명한다.
위 예문에서 몇 가지 주목할 것이 있다. 첫째는 ‘그 무서운 까시나무’이다. 엄나무로 아이의 시신을 싸맸기 때문에 엄나무의 존재는 분명한데 ‘까시나무’라는 의미는 예컨대 탱자나무와 같이 벽사의 상징으로 기능하던 가시나무를 총칭하는 어법이라는 점에서 그 행간을 읽어볼 수 있다. 둘째는 ‘독담월’이라는 형태에 관한 것이다. 진도에서 흔히 ‘독담’이라고 한다. “옹기에 담아서 큰 돌로 쳤던 방법이, 나중에는 넓죽한 돌로 그 항아리를 덮어놓기도 하고 항아리에 담아서 매장하는 형태로 변했다”고 진술하는 대목을 주목한다. 옹기에 아이의 시신을 담아서 큰 돌로 내리쳐 옹기를 깨트리는 이유는 결혼식과 장례식에서 바가지를 깨는 의례와 상통한다. 넓죽한 돌로 항아리를 덮어놓는 이유는 남도 지역에 보편적으로 행해졌던 옹관묘와 더 거슬러 올라가는 고인돌 장묘제와 상통한다. 본 칼럼을 통해 차차 이를 해명해나가겠지만 이번 칼럼에서는 우선 엄가시나무라는 벽사 기능에 초점을 맞춰 설명하겠다.
3. 왜 아이의 시신을 엄가시로 싸매는가?
한마디로 말하면 벽사 기능이다. 말라리아 등 돌림병이나 불치병 등으로 죽은 아이의 경우에 이 장례법이 사용되었다. 엄나무는 가시가 많아 귀신나무라고도 하며, 엄목, 해동목, 음나무, 귀신나무, 자동, 총목 등으로 불렀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음력 정월 대보름에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잡귀나 역귀가 집안으로 범접하는 것을 미리 막기 위해 대문 위쪽에 걸어두는 엄나무 걸기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엄나무는 두릅나무과에 속하는 낙엽 활엽교목으로 한자로는 자동(刺桐), 총목(楤木), 해동(海桐)이라 칭한다. 엄나무 줄기나 가지에는 날카롭고 굵은 가시가 촘촘히 돋아나 있어 잡귀나 병마가 이 나무를 보면 무서워 감히 범접하지 못한다고 여긴다. 이러한 엄나무의 가지나 굵은 줄기 혹은 엄나무 가지 묶음을 거실 문밖의 상인방(上引枋)이나 대문 위쪽에 가로로 걸어둔다. 말라리아 환자가 발생한 경우에 환자를 엄나무가 많이 난 숲으로 데리고 가서 병이 낫게 해달라고 기원하기도 한다. 엄나무 가시는 잡귀를 쫓고 또 범접하지 못하게 하는 주력(呪力)을 지닌 나무이기 때문이다.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에서는 음력 정월 초순에 범게와 엄나무 가지를 구하여 상인방에 가로로 걸어두며, 경기도 고양에서는 엄나무 가지 묶음을 대문 위에 걸어둔다. 용인에서는 정월 열나흗날 밤에 야광귀의 범 접을 막기 위해 체와 엄나무를 높이 달아두기도 한다. 충남 아산에서는 정월 초순에 엄나무 몸통을 끊어와 대문 위에 걸어두거나, 복조리, 코뚜레, 엄나무를 같이 묶어 상인방에 걸어둔다. 충북에서는 정월 열나흗날 밤에 야광귀 지키기를 하는데, 자면 눈썹이 센다고 하고 꾀꾀할머니에게 신발을 도둑맞지 않기 위해 체나 엄나무를 걸어놓는다. 강원도 고성에서는 정월 16일인 귀신날에 귀신이 집안에 못 들어오게 머리카락을 태우고, 엄나무 가지를 체에다 꽂아서 매달아 놓는다. 경남에서는 전염병이 유행할 때에 병귀가 범접하지 못하게 엄나무 가지를 거실 입구에 가로로 걸어둔다. 중국의 와족, 하니족은 아이를 낳으면 방문에 가시나무를 걸어 잡귀나 역병 등 부정한 것이 집안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막았다. 묘족은 어둠에 숨어 있는 귀신이 백색의 가시나무를 가장 무서워하는 것으로 여겨 문 위에 가로로 걸어두고, 무당들은 그것을 가지고 귀신을 쫓기도 하였다.
황경숙이 집필한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의 <엄나무 걸기> 풍속 설명 중 일부이다. 엄나무의 가시가 무서워 잡귀와 병마 따위의 잡신들이 침투하지 못한다고 여겼던 풍속을 여러 지역 사례를 들어 설명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북한 천연기념물 제261호 <음나무편>에 의하면, 굵은 가시가 있어 엄나무라고도 하며 농가에서는 도깨비를 쫓기 위해 대문 위에 가지를 꽂아 놓는다 하였다. 또 옛날에는 음나무 가지를 깎아서 어린이 노리개로 하였으며 이 노래를 음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따라서 도깨비가 무서워하는 음을 만드는 나무 즉 음나무라 부르게 되었으며 어린잎은 나물로 먹고 목재는 북통을 만든다는 설명이 곁들여 있다. 엄나무 걸기는 음력 1월 1일부터 15일까지 잡귀가 집안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방문 앞이나 대문 앞에 걸어두는 풍속이다. 또 한편의 사례가 주 빈, 회하영, 신상섭이 쓴 ‘파산서당의 영건과정과 조경식물 변화상 탐색’(Korean Journal of Cultural Heritage Studies Vol. 51. No. 1)에 잘 드러나 있다.
파산서당의 조경식물 경관 변화상을 추적하기 위해 1874년에 기술된 ‘파산서당기’, 그리고 1990년도와 2017년도 현지 조사 과정 및 후손의 인터뷰 등에 근거한 도입식물을 비교 분석하였다. 즉, 연못 조성 후 140여 년이 지난 오늘날의 시점에서 초기 식재 수종은 9종에서 3정(회화나무와 연, 대나무)으로 변화됨은 물론 대부분 고사하였다. 1990년대 20종(배롱나무, 매화나무, 석류나무, 복숭아나무, 자귀나무, 엄나무, 탱나자무 등), 2017년도 21종(해당화, 매화나무, 홍도와 백도, 배롱나무, 배나무, 엄나무, 주목, 굴참나무, 탱자나무, 자귀나무 등)으로 수종의 대체와 개체 수 확장이 이루어졌다. 조경식물의 유한성, 그리고 강학기능의 상실에 따른 원형적 식재경관의 멸실이 추적되지만, 풍수적 가치(홍동백서 상징 수종), 벽사 기능(엄나무와 탱자나무) , 심미성 및 실용성(해당화, 매화, 배나무, 복숭아나무, 감나무, 석류, 굴참나무) 등 의미 경관 요소가 오늘날까지 전승되거나 부가되었고 심미적 속성이 강화되는 등 확장된 개념의 수종 선정과 작정관을 보여준다.
참고로 파선서당은 대구 달성의 하빈면 묘리 파회에 자리한 감사헌과 별당의 이름이다. 사육신 박팽년(1417~1456)의 11대손 박성수로부터 14대손 박규현에 이르기까지 약 90년간(1783~1874)에 걸쳐 완성되었다. 풍수적 회룡고미형(回龍顧尾形)으로 회자되는 길처로 알려져 있다. 여러 가지 조경 식물 중 벽사 기능을 위해 엄나무와 탱자나무가 식재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위에서 볼 수 있듯이 벽사적인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엄나무는 탱자나무와 일맥상통한다. 비슷한 사례로 위리안치(圍籬安置)의 뜻을 가진 가극(加棘)이 있다. 유배된 죄인이 거처하는 집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가두어 두던 일을 말하는데 주로 탱자나무 울타리를 가리킨다. 외부와의 접촉을 제한한 가택연금 형식의 형벌이다. 여기서 사용된 탱자나무 울타리는 이른바 귀신도 뚫지 못한다는 의미 경관의 속성을 드러낸다. 탱자가 주는 함의는 윤대녕의 소설 「탱자」에서 극명한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된장과 탱자의 대칭을 통해 보여주는 세계관이 내가 주목하고 상상하는 엄나무가시쌈과 너무도 흡사하다. 방민화가 쓴 ‘윤대녕의 「탱자」에 나타난 정화의식 연구」(세계문학비교연구 제64집, 2018년 가을호)에 그 일단이 요약 소개되어 있다.
고모는 열여섯 살에 담임선생과 야반도주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들의 외면과 냉대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탱자가 노랗게 익을 때 다시 찾아오겠다는 선생의 약속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약속은 배반으로 돌아왔고 그 이후 고모의 삶은 불행으로 이어졌다. ’가시가 무성한 탱자‘는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가시 돋친 고모 인생에 대한 환유이다. 늘그막에 폐암 진단을 받는 고모는 생에 마지막 여행으로 탱자를 가지고 제주도로 간다. 넓고 깊은 바닷길을 건너는 것은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 고모가 풍진세상을 겪은 삼십 년이라는 시간을 넘는 것이다. 제주도에 도착해서 속이 더부룩하고 불편해서 된장을 찾아 속을 다스린다. 된장의 발효과정이 기다리고 삭혀서 연금술적 변화를 보이는 재생의 미학이라면 고모에게 된장은 불편한 속을 완화시키며 고통을 삭히는 발효균이다. 탱 자와 된장이 그릇에 나란히 담긴 형태가 그것을 함의한다. 고모가 지난 일을 고백하면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태우는데 그것은 불의 이미지로 정화의 의미를 구현한다. 발화-연소-소실하는 불의 이미지는 담임선생을 향한 고모 내면의 불과 조응한다. 방파제에서 불의 이미지는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푸는 자기 정화이다. 방파제와 배추밭에서 물과 불의 이미지로 나타난 정화의식, 제주도를 떠나면서 탱자를 귤로 치환하는 정화의식을 치르는 제주도는 제의공간이다.
윤대녕만큼 탱자의 벽사 기능을 제대로 읽어낸 이가 또 있을까? 탱자와 한 그릇에 담긴 된장의 발효를 통해, 나아가 제주도의 귤을 통해 암시하고 있는 재생의 세계관 말이다. 참고로 탱자나무는 중국 양자강 상류 쪽이 원산지라고 한다. <춘추좌씨전>에 이런 말이 있다. “제나라 재상 안영이 초나라 영왕을 만나러 갔다. 제나라 도둑을 잡아놓고 ‘그대의 나라 사람은 도둑질을 잘한다’고 힐난하였다.” 안영이 말하였다. “소인이 듣기로는 귤이 회남에서 나면 귤이 되지만 회북에서 나면 탱자가 된다. 저 도둑도 초나라에서 살았기에 도둑이 되었을 것이다.” 주변 환경에 따라 사람이 달리 나타난다는 뜻의 고사로 자주 인용된다. ‘탱자탱자 논다’라는 속언도 여기서 나왔다. 탱자를 게으르고 악한 성격으로, 귤은 부지런하고 선한 성격으로 비교하여 설명하였다. 물론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탱자나무의 가시이다.
그렇다면 엄나무와 탱자나무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 왜 진도에서는 죽은 아이를 탱자나무가 아닌 엄나무 가시로 둘러맸을까? 여기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그간의 정황을 대입하여 해석하고 설명할 따름이다. 벽사 기능을 하는 것은 엄나무나 탱자나무가 동일하다. 위의 여러 사례가 그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말라리아 등 전염병 등으로 죽은 아이를 엄나무 가시로 싸매고 항아리 등에 담는 것은 벽사를 넘어서는 또 다른 기능이 있음을 암시한다.
엄나무는 두릅나무와 더불어 이른 봄의 햇순 나물로 사용되었다. 햇순 나물은 그해에 새로 나고 자란 여린 줄기나 가지를 뜻하는 말이다. 흔히 나무순채라고 한다. 엄나무, 참죽나무, 오가피, 두릅, 화살나무, 다래, 뽕나무 등 그 수가 많다. 장혜림 외 5인이 공동으로 쓴 「햇순나물의 소비확대를 위한 조리기술 개발 및 영양성 평가」(한국식품저장유통학회지 제21권 제5호, 2014)에서 이렇게 말한다.
두릅 나무과에 속하는 엄나무(Kalopanax pictus)는 가지에 가시가 많으며, 잎은 어긋나고 둥글다. 다른 산채에 비해 고가이기는 하나 선호도가 높아 재배면적이 넓고, 껍질과 가지, 잎, 뿌리, 새순 등이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다. 특히 엄나무의 껍질과 뿌리는 사포닌, 플라보노이드, 페놀류 및 알칼로이드 등의 유효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예로부터 약재로 사용되어 왔으며, 산삼나무 또는 개두릅이라고 불리는 엄나무의 새순은 식용으로 이용되어 왔다. 엄나무의 새순 또한 껍질과 뿌리, 잎과 더불어 다양한 생리활성 물질이 함유되어 있어 항산화, 항염증, 항암에 대한 연구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간접적으로 해명해주었다고나 할까? 엄나무는 탱자나무와 달리 이른 봄철에 두릅나물처럼 산채 나물로 혹은 약재로 사용하는 새순이라는 사실 말이다. 같은 벽사 기능을 하는 탱자나무를 사용하지 않고 굳이 엄나무를 쓴 이유를 설명할 어쩌면 유일한 답변일 수 있다. 두릅은 참두릅, 개두릅(엄나무), 땅두릅 등 세 가지지 종류로 나뉜다. 참두릅이 흔히 말하는 두릅이고, 개두릅은 엄나무 가지의 새순을 말한다. 땅두릅에 비해 나무 꼭대기에서 자란다 하여 목말채, 모두채라고도 부른다. 이들을 일러 봄이 준 최고의 선물이자 봄나물의 제왕이라는 칭호를 부여하고 있기도 하다. 정혜경(호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은 한겨레신문 2019년 10월 19일자 기사(원문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에서 이렇게 말한다.
산과 들에 지천으로 나는 나물 중에서도 가장 으뜸인 나물이 바로 두릅이다. 두릅은 두릅나무에 달리는 새순을 말하는데, 그 독특한 향이 일품이다. 두릅은 땅두릅과 나무 두릅이 있다. 땅두릅은 4~5월에 돋아나는 새순을 땅을 파서 잘라낸 것이고, 나무 두릅은 나무에 달리는 새순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두릅은 10여 종에 이르는데 봄철의 어린순을 먹고, 한문으로는 나무의 머리 채소라는 뜻으로 ‘목두채(木頭菜)’라 한다. 자연산 두릅은 4~5월에 잠깐 동안 먹을 수 있는데, 요즘은 비닐하우스에서 인공 재배를 하므로 이른 봄부터 나온다.
왜 유사한 벽사 기능을 하는 탱자나무와 두릅나무 중 개두릅이라는 엄나무가시를 잘라 아이의 시신을 싸매는가를 설명하는 듯하다. 새순이라는 데 그 비밀이 있다. 나물 중에서도 으뜸이라는 두릅을 선택한 이유가 필경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맥락으로 오쟁이쌈을 해석하였고 지금 엄가시발쌈을 해석하고 있다. 이것은 진도를 중심으로 하는 남도 전역, 아니 한반도 전역의 상장례에 대한 내 해석의 한 매듭일 뿐이다. 장황한 설명을 할 필요 없이 내 해석은 또 다른 사례로 이행한다.
4. 보론: 왜 아이의 시신을 담은 항아리를 돌로 깨트리는가?
보론으로 ‘항아리 깨기’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자세한 해석은 차후 다룬다. 다시 진도문화원의 『예향진도』 예문을 인용한다. “독담월(돌로 쌓아 만들어진 애기 무덤)은 애기 시체를 산에 버리고 돌로 악귀를(시체를) 쳐서 쌓인 것이며, 이것은 점차 곱게 쌓아 무덤 형태로 변모되었다. 또 옹기에 담아서 큰 돌로 쳤던 방법이, 나중에는 넓죽한 돌로 그 항아리를 덮어놓기도 하고 항아리에 담아 매장하는 형태로 변했다고 보아진다.”
여기서 엄나무가시로 싸매고 혹은 옹기에 담아 돌로 (아이를) 쳐서 깨트리는 것이 필시 아이에게 든 말라리아 등 악귀를 치는 행위로 해석하거나 묘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제보자의 발언을 통해 이를 증명하려고 한다. “열번째 놈은 안 죽고 살어서 시방 광주에서 살고 있제 어짠다. 그 조카가 올해 예순 세 살일 것이요. 아들을 5형제나 두었제 어짠다. 애기 잡어 가는 귀신이 가시발 속에서 못 빠져 나왔던 성 부르요”라고 말하는 것이 그것이다. 엄나무가시 때문에 아기를 잡아가는 귀신이 들어오지 않아 엄나무가시쌈 한 이후로는 아이를 5형제나 낳아 길렀다는 뜻이다. 항아리에 담아 돌로 쳤다는 증언도 이와 유사하다. 나쁜 귀신이 죽은 아이에게 들었으니 돌로 쳐서 추방한다는 맥락으로 해석된다. 나무위키에 의하면 이런 풍속은 세계적인 지형을 가지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결혼식의 마지막에 신랑이 신부와 잔을 나눈 후 그 잔을 바닥에 던져 깨는데, 이를 신호로 피로연이 시작된다. 잔을 깨는 것이 악운을 쫓는 일종의 의식이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바가지라는 비슷한 풍습이 있다. 러시아에서는 중요한 약속을 하거나 작별의 인사를 나눈 후에는 건배를 하고 술잔을 바닥에 던져 깨는 풍습이 있는 데, 이 역시 잔을 깨는 것이 행운을 빌거나 악운을 몰아내는 의미를 갖는다. 인도에서는 거리에서 음료수를 사면 음료를 마시고 컵을 깨트리는데, 가스트 제도가 워낙 엄해서 다른 계급이 입을 댄 잔에 입을 대지 않으려고 깬다고 한다......
이외에도 설명은 장황하게 이어진다. 한국 사극에서 밥상이 깨지는 장면을 설명하기도 한다. 이런 경향이 있어서인지 조선일보 최장기 칼럼을 썼던 ‘이규태코너’의 이규태는 2004년 8월 2일자 칼럼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 장례에서 장지로 가기 위해 출관할 때 문턱에 엎어놓은 바가지를 밟아 깨고 나가게끔 돼 있다. 고인이 항상 쓰던 밥그릇을 밟아 깨던 것이 깨기 힘들어지면서 바가지로 대체된 것이다. 관북지방에서는 밟아 깨지 않고 사기 밥그릇을 동댕이쳐 깬다고도 한다. 이것은 망인의 넋이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행위로 그 많은 생활 도구 가운데 식기나 식구가 그 망인과 가장 밀착돼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식사문화에서 젓가락 숟가락 밥그릇은 개인에 속하는 점유물이다. 내 숟가락, 내 밥그릇이 따로 있으며 아무나 쓰지 못한다. 그 사람과 영적으로 밀착돼 있는, 생활 도구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서양의 식사문화에서 식기나 식구가 그 개인에 밀착돼 있다는 법이 없으며 아무 놈이나 아무가 써도 되게 돼 있다. 곧 비인격화돼 있다는 점에서 한 국과 다르다.
정녕 그런가? 장례에서 문밖을 나가며 바가지를 깨트리는 것이 밥그릇을 내동댕이쳐 깨트리는 행위라는 것인가? 세계적인 풍속에 대해서는 내 연구가 부족하여 아직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는 이르지만 적어도 한국 풍속에 대한 해석만큼은 터무니없다고 말할 수 있다. 이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혼인식에서 바가지를 깨는 풍습을 사례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 디지털음성문화대전에서 서영숙, 조수정이 보고한 ‘혼례 이야기-신랑에게 재끄름이를 했어요’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신부는 시댁에 들어서기 전에 호박을 떨어뜨려 깨기, 솥뚜껑 밟고 넘어가기, 바가지 깨기 등을 치러야 했고, 신랑은 재끄름(신부 마을 청년들이 신랑에게 재를 뒤집어씌우기), 부뚜막에 다리 올려놓고 바가지에 숟갈을 많이 넣어서 국수 먹기, 돗자리에 부럼 올려놓아 시험하기, 천정에 매달아놓고 다루기, 송편에 고춧가루 등을 넣어 시험하기 등의 시험이나 풍속을 거쳐야 했다.”
내용 중 김숙자 할머니 왈, “소두방은 밟고 넘어가고 물동이에다가 바가지를 하나 엎어 놓으면 그걸 투드린다대, 그럼 그게 깨지고 그러고 들어간대”라고 말한다. 일련의 풍속을 여기서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장례식과 마찬가지로 바가지를 깨는 풍속이 결혼식에서도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내가 공부한 바에 따르면, 이 사례뿐만 아니라 혼인식의 광범위한 사례 중 하나가 바가지 깨기이다. 왜 혼인식에서 바가지를 깰까?
우리 풍속 중에 ‘해산바가지’라는 것이 있다. 출산한 산모에서 줄 첫국밥을 만들 때 쓰는 바가지를 말한다.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은 용어이기에 관련 소설을 쓴 박완서의 「해산바가지」가 적절한 인용이 될 듯싶다. 이 소설에 대한 해석 겸 해산바가지, 나아가 바가지 깨기의 의미에 대해 내 나름대로의 해석을 차차 거론한다. 사례를 인용하자면 끝이 없을 터이지만 엄가시발쌈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말라리아 등 전염병으로 죽은 아이와 질병을 분리시키는 일종의 분리의례라고 해석할 수 있다.
왜 분리의례인가? 죽은 아이에 대한 연모와 사랑의 감정을 한편에 두고, 아이의 죽음에 관여했다고 판단되는 악귀에 대한 감정을 다른 한편에 두기 때문에 그렇다. 엄가시발쌈을 하는 이유는 위리안치의 탱자나무 가시처럼 벽사의 기능을 한편으로 삼으면서 두릅나무 새순처럼 새롭게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또 한편에 들어 있다는 뜻이다. 이 아이를 항아리에 담아 돌로 치는 것은, 아이의 시신을 돌로 내리친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보다는 장례식과 혼인식에 광범위하게 연행되는 바가지 깨기 풍속과 연관되어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왜 그런가에 대해서는 다음 차에 다루기로 한다.
글쓴이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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