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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21. 묵상글 (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 주님이 주시는 믿음.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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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21.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 주님이 주시는 믿음
"그분에게서 오는 믿음이 여러분 모두 앞에서
이 사람을 완전히 낫게 해 주었습니다."
오늘의 사도행전은 어제 베드로의 기도로 앉은뱅이가 치유된 것을 보고
사람들이 놀라워하며 몰려오자 베드로가 그들에게 일장 연설을 하는 장면입니다.
그러면서 당신들이 죽인 예수께 대한 믿음의 힘이
이를 낫게 했다고 얘기하면서 베드로는 이런 표현을 씁니다.
"그분에게서 오는 믿음"
그러니까 믿음은 누군가가 주는 것이고
주는 것을 받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믿을 때 믿는 것은 우리가 믿는 거지만
우리는 사람에 따라, 믿기도 하고 믿지 못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어떤 사람은 믿음을 주고, 어떤 사람은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간다는 표현도 쓰는데
어떤 사람에게 믿음이 가고, 어떤 사람에게는 안 가냐 하면
믿음을 주는 사람에게는 믿음이 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안 갑니다.
아무튼, 우리는 주는 믿음을 잘 받아 잘 믿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잘 믿지 않는 것이 쉽게 속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미덕인지 모르지만
의처증처럼 중증은 아닐지라도 심각한 문제이고 불행이기 때문입니다.
잘 믿지 않는 것은 불신을 당하는 사람에게도 해가 되지만
누구보다 자신에게 손해이니 말입니다.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은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고
아무하고도 소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잘 믿는 것은 하느님을 잘 믿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인간 사기꾼은 잘 믿으면서 정작 믿어야 할 주님은 잘 믿지 않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인간 사기꾼이 주님보다 더 믿음을 주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그가 믿음을 주는 것은 내가 믿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그가 줄 것이라고 믿는 것이고,
그가 믿음을 줘서가 아니라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주시는 믿음은 이런 헛믿음을 거친 다음에 옵니다.
사도들이 좋은 예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실 거라고 말씀하셨지만
사도들은 죽임당하실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면 왕이 되실 것이고 자기들은
한 자리 차지하게 될 거라고 자기들 믿고 싶은 대로 믿었지요.
그렇게 믿고 싶은 대로 믿었다가 그 믿음이 헛된 믿음임을 안 뒤
비로소 믿어야 할 것을 믿게 된 것이고,
믿어야 할 분을 믿게 된 것입니다.
곧 주님을 믿게 된 것이요 주님의 수난과 부활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좋은 것만 있고 나쁜 것은 없다는 놈은 믿지 말아야 합니다.
고통은 없고 즐거움만 있다는 놈도 믿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것은 이 세상에 없고, 영원한 것에서는 더 없습니다.
그러니 고통과 수난을 통해서만 구원이 온다는 말을 믿어야 하고,
수난을 무릅쓰는 사랑을 주시는 주님만 우리는 믿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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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21.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8~90년대, 동네에는 비디오테이프 대여점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1,000원 또는 2,000원의 대여료를 내고서 테이프를 빌려 집에서 편하게 영화를 봤습니다. 그러나 2,000년 초반에 들어서면서, 비디오테이프 대여점이 하나둘씩 사라졌습니다. 대신 화질이 좋은 DVD로 넘어가고 있었지요.
친한 선배가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비디오 대여점을 열었습니다. 공무원 생활로는 돈 벌기 힘들다면서 90년대 말에 대여점을 연 것입니다. 초반에는 잘 되었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결국 이 사업을 접게 되었고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알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남들처럼 사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변화를 추구해야 하지만, 남따라 하는 것은 진정한 변화가 아닙니다.
넷플릭스를 알 것입니다. 미국 콘텐츠 플랫폼 및 제작사로 스트리밍 엔터테인먼트 기업입니다. 이 기업의 시작은 DVD 대여 사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업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계속 변화와 혁신을 시도했기에, 현재 전 세계 2억 명 이상의 회원을 보유한 기업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남 따라 하는 변화보다, 자기 본연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느님도 우리 고유의 변화를 원하시지, 남 따라 하는 변화를 원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를 다르게 만드신 것이겠지요.
예수님 부활 소식이 계속 들려왔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증언,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증언, 이제 오늘 복음을 보면 제자들 가운데에서 예수님께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는 말과 함께 나타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고 무섭고 두려워 유령 보는 줄로 생각했다는 증언으로 볼 때, 제자들이 얼마나 불안정한 심리상태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을 배반한 전력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믿고 따르겠다고 약속했으면서도, 십자가의 죽음 이후 뿔뿔이 흩어졌고 지금 다락방에 숨어 있었습니다. 잘못했다는 부끄러움에, 살아계신 예수님 앞에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겠지요.
이런 제자에게 당신의 오상을 보여주십니다. 육신상의 부활임을 드러내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라고 물으시지요. 이 역시 육신의 부활을 드러내는 증거가 됩니다. 영혼은 세상의 음식을 먹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확실한 부활의 표징을 보여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제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고 당신을 믿고 따를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믿음으로 세상에 구원을 위한 주님의 일을 계속하는 변화를 이루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도 이 변화를 따라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주님의 일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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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은 비어 있어야만 무엇을 담을 수 있다(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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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21.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보아라.”(루카 24,39)
주간 첫날, 엠마오로 가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두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루카 24,34)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엠마오로 가다가 되돌아온 두 제자들도 그들이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서시며 당신의 평화를 주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루카 24,36). 그러나 제자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마치 바다를 걸으신 예수님을 보고서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보아라.”(루카 24,38-39)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증명하시기 위해, 손발의 상처를 보여주시며 만져보라고 하십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보고도 믿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당신께서는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지만, 사실, 우리는 보고도 믿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마치, 히브리인들이 모세를 따라 홍해를 건너왔건만 기적을 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목이 뻣뻣하여 믿지 못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역시 매일의 삶에서 벌어지는 기적들을, 특히 성체성사를 매일 만지고 먹으면서도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지 보고 만져보라고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수시면서 당신이 유령이 아니라 살아계심을 증명해 보여주시기까지 하십니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단지 유령이 아니라는 것을 증거 하시는 것만이 아니라, 제자들과 여전히 친교를 이루고 함께 사신다는 사실을 드러내줍니다.
이처럼, 보여주고, 만지게 하고, 함께 먹으며 친교를 나누시는 주님의 사랑으로 제자들은 차차 눈이 열려갑니다. 그러나 꼭 필요한 한 가지가 남았습니다. 진정 필요한 한 가지, 그것은 바로 “말씀”이었습니다. 믿음은 기적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부터 오는 까닭입니다. 마침내, “성경말씀”을 들려주심으로 제자들의 마음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마태 24,45)
이는 부활신앙이 기적을 보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말씀”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밝혀줍니다.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믿음으로 여는 열쇠임을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께서는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열고, 부활의 생명을 부어주십니다. 그 지고한 사랑을 말입니다.
하오니, 주님!
제 뼈에 새겨지고 제 위장 속에 부어진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게 하소서.
당신 말씀이 제 마른 뼈가 살아나고, 제 마음이 뜨겁게 타오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루카 24,45)
주님!
제 마음 속 깊은 곳을 여시어,
침묵의 언어로 새겨진 당신의 말씀을 깨닫게 하소서.
깨달은 바를 제 삶으로 인쇄하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의 말씀을 기록하는 잉크가 되게 하소서.
당신의 선과 질서, 당신의 뜻과 지혜,
형언할 수 없는 당신의 신비들을 온몸에 새기며 살아가는
당신의 복음서가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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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21.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
부활을 선포하는 증인
사람들로부터 미처 생각하지 못한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당황스럽지만 개인의 생각을 전제하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직자의 얘기이기 때문에 사적인 얘기로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아예 모르면 모른다고 답하고 다음에 알려주겠다고 말합니다. 지금 당장은 기대를 채워줄 수 없지만 그래야 마음이 편합니다. 섣불리 아는 척하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약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유령인 줄 알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을 알고 있었고, 무덤에 묻혔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한번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유령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결국, 자기들이 알고 있는 상식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시면서 “보아라,” “만져 보아라.” 고 하셨습니다. 혹 눈으로 환상을 본 것 같으면 직접 만져서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제야 그들은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꿈인지 생시인지 믿지 못하였고 예수님께서는 그들 앞에서 구운 생선을 드시고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 말씀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음식을 잡수신 것을 보면 부활한 몸이 실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한 몸은 예전의 몸이 아닙니다. 나타나셨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나타나시고 하는 것을 보면 모든 한계로부터 자유로우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오고 가시는 것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눈을 열어 주셔야 그분을 알아볼 수가 있는 법입니다.
주님을 알아 뵈려면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열려야 합니다. 그래야 아는 것이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마음은 열지 못한 채 머리만 크게 되면 아는 것이 오히려 병이 되고 맙니다. 아는 것이 힘이 될 수 있도록 정성을 기울여야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버리고 도망쳤던 제자들, 결국 유령으로 보는 제자들에게 여전히 사랑을 주셨습니다. 옛날의 허물을 들추어낼 수 있을 정도로 속이 좁은 분도 아니셨고, 그저 믿음을 키워주지 못한 것이 안쓰러울 뿐이었습니다. 사랑은 셈을 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핵심은 용서입니다.
저놈은 나를 배신한 놈인데, 저 사람은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인데…손해를 끼친 저 사람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하며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아픔들이 나를 지배한다면, 예수님을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과거를 들먹이지 않고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이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루카24,47). 고 사명을 주시는 예수님, 그분 안에서 큰 품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스승으로부터 배우는 학생에 머무르지 않고 부활하신 주님을 선포하는 증인, 순교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소명을 성실히 감당할 때 믿음의 눈이 더 크게 열리게 될 것입니다. 더 큰 사랑으로 ‘마음을 다하여’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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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0421.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외출할 때면 꼭 지니고 다니는 것들이 있습니다. 스마트폰, 지갑, 손수건입니다. 스마트폰은 외부와의 연락을 위해서 가지고 다닙니다. 지갑은 계산을 할 때 열게 됩니다. 깨끗하게 빨아서 접어놓은 손수건은 제 몸에서 나오는 이물질을 받아주는 고마운 친구입니다. 일교차가 심한 날에 산보를 하면 콧물이 자주 나오기 때문에 손수건은 꼭 필요합니다. 손수건을 다 쓰고 빨래바구니에 넣으면서 한 번도 고맙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운동하면서 구겨지고, 지저분해진 손수건을 보니 문득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땀과 눈물 그리고 콧물까지 아무런 불평 없이 받아주는 손수건이었습니다. 베로니카는 예수님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드렸습니다. 베로니카의 따뜻한 마음이 있어서 예수님 고난의 길에 조금은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성서에는 나오지 않지만 교회의 전승은 베로니카의 용기와 따뜻한 마음을 기억하였고, 십자가의 길 6처에 베로니카가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두려워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상처 난 손과 발을 보여주셨습니다. 유령은 육체가 없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드시면서 유령이 아님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제자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성경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을 받아 죽겠지만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죽었지만 다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증언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놀라운 표징을 일으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여 새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3번이나 모른다고 배반했던 나약한 베드로였지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당당하게 선포하는 용기 있는 베드로가 되었습니다.
‘회개’는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성찰하는 것이지만, 진정한 회개는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은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행동이 변했습니다. 두려움과 걱정에서 희망과 열정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주님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할 일 가운데 ‘상처를 치유하고 믿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가장 필요합니다. ‘교회는 전투가 끝난 뒤의 야전병원’이 되어야 합니다. 심각하게 다친 사람에게 콜레스테롤이 높은가 혈당치가 어떤가 물어보는 일은 쓸모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가 입은 상처를 치유하고 나서 나머지 것에 대해 말할 수 있습니다.” 깨끗하게 빨아 곱게 접혀진 손수건은 내 몸의 오물을 받아준 증인은 될 수 없습니다. 비록 구겨지고, 지저분할지라도 내 몸의 오물을 받아준 손수건이 자신의 역할을 다한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옷에 진흙이 묻을지라도, 상처에서 흐르는 피가 묻을지라도 교회는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영성이란 정상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을 향해 가는 과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활의 삶은 죽은 후에 얻어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서 부활의 삶을 사는 사람은 현실의 삶에서 이미 부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들 또한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받아들여 부활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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