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득이 말하는 수필

[최몽규]

청자연적 그 신비한 비색

피천득이 말하는 수필
수필

수필은 청자靑瓷연적이다. 수필은 난蘭이요, 학鶴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페이브먼트(포장길)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에 있다.
수필은 청춘의 글은 아니요, 서른 살 중년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이나 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가 쓴 단순한 글이다.

수필은 흥미위주지마는 읽는 사람을 흥분시키지는 아니한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散策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있는 것이다.
수필의 색깔은 황홀 찬란한 것이거나 진하지 아니하며, 

검거나 희지도 않고 퇴락하여 추하지 않고, 언제나 온아우미 溫雅優美하다. 

수필의 빛은 비둘기 빛이거나 진주 빛이다. 수필이 비단이라면 번쩍거리지 않는 바탕에 약간의 무늬가
있는 것이다. 그 무늬는 읽는 사람의 얼굴에 미소를 띠게 한다.

수필은 한가하면서도 나태하지 아니하고, 속박을 벗어나고서도 산만散漫하지 않으며, 

찬란하지 않고 우아하며 날카롭지 않으나 산뜻한 문학이다.
수필의 재료는 생활경험, 자연관찰, 또는 사회현상에 대한 새로운 발견, 무엇이나 다 좋을 것이다. 

그 제재題材가 무엇이든지 간에 쓰는 이의 독특한 개성과 그 때의 무드에 따라 

‘누에가 입에서 나오는 액液이 고치를 만들 듯이’ 수필은 쓰지는 것이다.

 수필은 플롯(띄우는)이나 클라이맥스(절정)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가고 싶은 대로 가는 것이 수필의 행로行路이다. 

그러나 차를 마시는 것 같은 이 문학은 그 방향芳香을 갖지 아니할 때는 수돗물같이 무미無味한 것이 되어버린다.
수필은 독백獨白이다. 소설가나 극작가는 때로 여러 가지 성격을 가져 보아야 된다. 

셰익스피어는 햄릿도 되고 폴로니아스 노릇도 한다. 

그러나 수필가 램(거세하지 않은)은 언제나 찰스 램(잡부)이면 되는 것이다. 

수필은 그 쓰는 사람을 가장솔직히 들어내는 문학형식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독자에게 친밀감을 주며, 친구에게 받은 편지와 같은 것이다.

덕 수궁박물관에 청자연적이 하나 있었다.

내가 본 그 연적은 연꽃 모양을 한 것으로,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히 달려 있었는데, 

다만 그 중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져 있었다. 

이 균형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破格이 수필인가 한다.
이 마음의 여유가 없어 수필을 못 쓰는 것은 슬픈 것이다. 

때로는 억지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 하다가도 그런 여유를 갖는 것이 죄스러운 것 같기도 하여

나의 마지막 십분의 일까지도 숫제 초조와 번잡에 다 주어버리는 것이다

[최몽규]

우리 카페 수필가 님들께 드립니다~ㅎㅎ

[연진]

어쩜 비유가 이리 적절 할까요
대단하신분 피천득 선생님
그분의 고요한 내면이
향처럼 피어오릅니다
풀먹이지 않은 하얀 모시적삼 같은 저멀리의 그리움 처럼

[주은]

ㅎ 산책로를 걸어가는 마음으로 읽습니다
고맙습니다

[낮은산.]

최공 고마워유 좋은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