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3번째 편지 - [마음의 소리]
얼마 전 우연히 TV에서 가수 이효리가 모교인 국민대에서 졸업 축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신감 넘치는 그녀의 스타일대로 멋진 축사를 하여 언론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축사의 중요 대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들을 누구보다 아끼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건 그 누구도 아닌 여러분 자신이며, 누구의 말보다 귀담아들어야 되는 건 여러분 자신의 <마음의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흔히들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저는 평소부터 <마음의 소리>와 관련하여 여러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1. <마음>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2. <마음>은 추상적인 상상인가요, 아니면 구체적인 물질인가요?
3. <마음>에 대한 신경과학적 설명과 심리학적 설명은 서로 다른가요?
4. <마음>은 선천적 존재인가요, 아니면 후천적 교육의 결과인가요?
5. <마음>은 계속 바뀐다고 하는데 어느 시점의 마음이 진짜인가요?
6. <마음의 소리>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가요?
7. <마음의 소리>를 들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요?
8. <마음의 소리>는 내가 하고 싶은 것, 즉 욕망과 다른 것인가요?
9. <마음의 소리>는 항상 옳은가요, 아니면 옳지 않을 때도 있나요?
10. <마음의 소리>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 듣는 <신의 소리>와 배치되나요?
11. <마음의 소리>를 들으려면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명상이 필요한가요?
12. <마음의 소리>를 추구하면 사회적 도덕률과 배치될 수도 있나요?
13. <마음의 소리>는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과 같은가요, 다른가요?
저는 <마음의 소리>라는 표현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마음의 소리>를 따라 인생을 살면 궁극적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곤 했습니다.
이번에도 같은 의문이 들었습니다. 저는 평생 <마음의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욕망이지 <마음의 소리>라는 거창한 표현을 할 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마음>에게 질문도 해보았습니다. "남은 인생을 살면서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무엇을 하고 살면 죽음이 임박했을 때 내 인생을 돌이켜 보며 덜 후회하게 될까요?"
<마음의 소리>의 답을 기다렸지만 시원한 답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여러 의문에 대해 해답의 실마리를 건네준 책이 있습니다. 바로 유발 하라리의 <호모 사피엔스>입니다. 그 책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신성시한 인본주의는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자신에게 충실하라. 자신을 믿어라. 마음 가는 대로 따르라. 자신이 좋다고 느끼는 것을 하라.'라는 믿음을 설파했다."
"인본주의는 인간의 욕망만이 세계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윤리적, 정치적 딜레마와 마주친다면, 우리는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내면에서 울리는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마음의 소리>는 이런 역사적 맥락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는 이런 인본주의가 기술에 의해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그는 두 가지 측면에서 위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내 <마음의 소리>를 나보다 내 핸드폰이 더 잘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내가 곰곰이 생각한 것보다 내 핸드폰 데이터를 알고리즘으로 분석한 것이 더 정확하다는 것입니다.
즉, 내가 만든 데이터가 <마음의 소리>보다 더 강력하게 나의 욕망을 설명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얼마 전 저는 제 취향을 알기 위해 지난 3년간의 일정표를 분석한 적이 있습니다. 일정마다 5점 척도로 점수를 매겼습니다. 아주 좋다 5점, 좋다 4점, 그저 그렇다 3점, 별로다 2점, 형편없다 1점 등이었습니다.
그런데 늘 5점을 받은 일정이 딱 하나 있었습니다. 아내와 같이 골프 리조트로 여행을 간 것이었습니다. 이 데이터는 윤리적, 가치적 평가 없이 제 취향을 말해줄 뿐이었습니다. 제가 마음의 소리에 의존하였으면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결론이었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이 점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데이터의 승리입니다.
둘째는 기술이 <마음의 소리>를 조작하거나 지배할 위험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광고 기술은 우리 욕망을 조정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나올 기술들은 이보다 훨씬 강력하게 마음을 조정할 것입니다. 그럴 경우 <마음의 소리>가 진정 자신의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취지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좋은 취지로 이야기하고 있는 <마음의 소리>라는 개념에는 이런 복잡한 의문과 역사적 배경, 그리고 앞으로 마주치게 될 위험이 잠복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소리>라는 표현은 좋은 의미에서 한동안은 우리의 자존감을 자극하기 위해 작동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음의 소리>를 가끔 들으시나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4.2.19. 조근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