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수의 첫사랑
막내 딸 혜수는 사춘기가 시작되던 중학교 1학년 무렵부터
그룹 "신화"의 멤버인 혜성의 못말리는 극성 팬이 되었다.
처음엔 팬클럽에 가입도하고 혜성의 홈피와 사서함에 들어가
그의 하루일정을 살피고 정보도 교환하곤 하더니..
그 정도로는 성에 안차는 열정적인 울딸은
드뎌 2학년이 되던 작년에는 에릭+혜성의 이름을 따서
"릭셩파" 라는 이름으로 팬클럽을 창단하기에 이르렀다.
(이 카페는 어느 월간지에 소개되기도 했다...)
다음에 카페를 만들고 전국적으로 회원들이 모이더니
큰 공연이 있을때면 어김없이
공연장 맨 앞자리를 차지해서 프랭카드를 내 걸고
미리가서 관중들에게 신화를 홍보하는 명함을 나누어 주기도하고
신화의 새앨범이 나오면 아무리 비싸도 용돈을 모아서 씨디를 산다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들으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신화의 진정한 팬이라면 제값으로 구입해야 한다면서.....
나는 고민했다
공부는 뒷전이고
연예인에게 정신을 빼앗겨서 세월을 보내는 딸을 어찌해야하나..
혜성왕자님의 얼굴로 달력을 만들기 위해 (그래야 매일 볼수 있단다)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때 ...온통 영어로 된 포토샵6.0 프로그램을
독학으로 마스터해서 혜성달력을 만들어 내고마는 딸...
서울랜드 삼천리 극장에서 라듸오 공방이 있는 날은
하루 전날 가서 명당자리를 확보해 놓아야하고...
주황색 팬클럽 단체복을 인수하러 갔던..여의나루며..
올림픽 공원 야외공연...까지.. 수행(?)하던...일들
늦은 밤까지 수원 경기대 운동장에서 열렸던
그 생경스럽고 감동적이던 게릴라 콘스트까지...
함께 가고 함께 왔다
어린 여자아이를 혼자다니게 내버려 두기에는
내가 너무 심약한 엄마라서
할수없이 태워가고 태워올 수 밖에 없었다..
그러기를 일년....여.
카페는 회원수 1000명을 넘었고
전국에서 온라인으로 후원금을 부쳐오는 극성팬도 있으며..
이쁜 여대생 언니회원도 가입하기에 이르렀는데..
그만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우리 혜수가 고무신을 꺼꾸로 신어버린 것이다
얼마 전 ...
티비의 음악 프로그램에 신화가 출연했다
그 화려한 신화의 무대를 보고있으면서도..
평소와 달리 혜수는 별 감흥이 없었다
다른때 같으면 녹화를 한다...어쩐다 수선스러웠을텐데..
갑자기 시큰둥해 진...내 딸이 이상스러워서...
"혜수야....너 왜그래? 혜성이 녹화 안해?" 했더니
"으응.....엄마~~ 나 이제 쟤네들 별로야~~~ " 한다..
츠암내!!
마치 신앙처럼 ..당장이라도 죽을거 처럼 울고 불고 날리를 치던
그 위대한 "집착"이 저리도 쉽게 허물어 진단 말인가.
이제...
"릭셩파" 카페에서 쓰던 프랭카드며..명함이며..
모든 물품들을 인계해주러
모임에 한번은 더 나가야 한다며...
아무렇치도 않은 목소리로 "카페는 딴사람에게 양도해야지 뭐..."
한다...
그리고 몇대 맞고 오면 된다나...
사춘기의 열병에서 벗어난 우리 딸을 보면서
기쁨이나 홀가분함 보다는 씁쓸함이 앞서는 것은 왜일까?
요즈음 청소년들의 인스탄트식 사고방식이 우려되고
고지식한 나로서는 쉽게 가지고 쉽게 버리는 일회성 사랑(?)을
이해할수 가 없다
하긴 사춘기 딸의 연예인 동경을 사랑이라 말할수 없겠지만..
그야말로 사랑도 유효기간이 있는걸까?
혜수한테 버림받은 혜성은 지금 슬픔에 젖어 있을까?
고무신 꺼꾸로 신은 우리 혜수 때문에
오히려 충격받은 사람은 다름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첫댓글 아이가 엄마의 가슴을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죠. 또 사랑의 비율은 무엇보다 무거워 내면 깊숙히 가라 앉아 있지요.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크면 제게도 어쩌면 닥쳐올 일들인 것 같아서 마음을 잠시 풀어 봅니다. 영선님 힘 내세요오~~~
전 그렇게 열광적으로 누굴 사랑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서 따님이 부럽습니다. 성장의 과정이겠지요. 그래도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해 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만 장합니까!!! 아니다 싶으면 빨리 발을 빼야죠*^^* 지혜로운 것이죠...
하하하 재밋게 잘었습니다. 우리딸(현재대학2학년)의 중학교시절과 거의 흡사하여 너무도 공감되는군요^^ 당시는 H.0.T때문에 강타네집앞에서 줄서기반장도 했던 열성?팬이더니 왠걸 구본승-브레드피트-지금은 일본 아라시아니바-그덕에 일어는100점으로 대학을 들어갔지만 ...두고보세요 앞으로도 3번은 더 바꿀껄요?^^
하하하...앞으로 세번요? 아마 세대 차이가 나서 두어번 더 기록을 깰지도 모르겠습니다..벌써 프로게이머 임요한의 팬인걸요!!... 매주 금요일 스타크래프트 결승이 있는 날이면 코엑스 게임장으로 달려가고파서 표정이 달라지는걸 엄마는 알아채지요...모른척 해버리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