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골로새서 4:1, 에베소서 6:9, 창세기 1:2
제목 : 선교적 삶을 향한 보내심(28) - 일터에서 만난 하나님⓷
(골 4:1)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엡 6:9)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창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
주님, 감사합니다.
복된 날, 주의 전에 와서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찬양하며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가 또 아버지의 말씀을 듣습니다.
성령님, 우리 한 분 한 분에게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 들어가는 말 : 어느 1년차 직장인의 글
취업을 준비하던 한 '취준생', 취업 준비생이 바라던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1년 정도 회사를 다니고, 짧은 소회를 회사의 익명 게시판에 이렇게 올렸습니다.
"취업을 준비할 때, 제일 부러웠던 것은 사원증을 걸고 길을 걸어가는 직장인들이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사원증을 목에 걸고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서 밥을 먹으러 가는
제 또래의 직장인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혹여라도 그들과 길을 마주치면, 저는 저도 몰래 주눅이 들어서 길 옆으로 비켜 서곤 했지요.
그들의 얼굴에는 왜 그렇게 웃음이 떠나지 않았는지, 저는 직장인들을 볼 때마다 부러웠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바라던 회사에 취업이 되어 직장인이 되어 보니,
그들이 왜 그렇게 길에서 활짝 웃었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그것은, 거기에는 직장 상사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 짧은 글을 보면서 '직장 상사가 도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길래 이렇게 사람들의 행복을 좌우하나?' 생각을 해 봤지요.
이 자리에도 아마, 직장에서 많은 상사들이 있을 겁니다.
오늘 특별히 직장 상사들이나 오너들, 주인들에게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2.이전 설교들의 내용과 본문의 배경
우리는 지금 3주째 그리스도인들이 직장과 일터에서 어떻게 선교적 삶을 살 수 있을까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창세기 말씀, 창세기 1:26-27절은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요,
또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영광스럽게 동참하는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서 일하기 위하여 지음 받은 존재라고 말씀하시지요.
즉,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들은 그 일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맡기셨기에 다 신성한 것이고, 따라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성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 일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소명(Calling)으로 알고
최선을 다해 감당해야 하고, 그럼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어야 하지요.
그래서 바울은 우리에게 그 유명한 고린도전서 10:31절 말씀을 통해서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라" 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계속해서 골로새서 3:22절에서 4:1절까지 이 말씀을 통해서
당시의 종들과 상전들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덕목들에 대해서 교훈했는데,
먼저는, 종들이 상전에 대해서 가져야 될 태도를 권면하고,
그 다음에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상전이 종들을 대할 때 가져야 될 태도에 대해서 권면했습니다.
이렇게 바울을 통해 주신 교훈들은 당대의 상전들과 종들의 관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직장과 일터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고용인들과 피고용인들에게도 적용이 되는 교훈이지요.
그리고 우리는 지난 주에 우리의 일터와 직장에서 종들이(피고용인들이)
눈에 보이는 상전, 고용인과 직장 상사를 대할 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즉, 우리 믿는 사람들은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되(이게 기본입니다.),
첫째, 기쁨으로 주어진 일을 감당하고,
둘째, 사람 앞에서 눈가림 하는 식으로 하지 말고 성실하게 감당하고,
셋째, 마음을 다하여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해야 된다 하는 말씀을 우리가 지난 주에 나눴습니다.
(에베소서 6장 7절)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골로새서 3:22-23) "종들아...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분명히 주님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믿는 이들이 우리의 직장과 일터에서 주어진 일을 나의 소명으로 알고
최선을 다해서 기쁨과 성실함으로, 그리고 마음을 다해 일하고,
그리고 우리의 노동이 우리의 섬김이 일터와 직장과 우리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유익이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선교적 삶이 되는 것이지요.
3. 의와 공평으로 대하라(골 4:1)
이제 바울은 계속해서 오늘 본문에서 상전들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즉, 고용인들이나 오너(owner)들, 주인들이
피고용인들이나 함께 일하는 이들에게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교훈하고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의와 공평으로 대해야 된다" 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골로새서 4:1절) "상전들아 의와 공평으로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여기, "상전들"이라는 말은 유명한 단어인데 "퀴리오스", "주님", "주" 그런 뜻입니다.
이 '퀴리오스'라는 말은, 주로 성경에서 '하나님' 그리고 '예수님'을 지칭할 때 사용되는 단어인데,
오늘 본문에서는 똑같은 퀴리오스라는 말이지만, 이것은 [여러 일꾼들을 거느리는 주인]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즉, 오늘날 그 수하에 많은 일꾼들이 있는 직장 상사나 혹은 기업인들을 의미하는 말이지요.
바울은 바로 그들에게도 따라야 할 윤리가 있음을 말하는데,
그것은 바로 "의와 공평으로 대하라" - 의와 공평으로 일 하라는 거지요.
여기, "의"(디카이온)는 통상 옳은 것을 뜻하고, "공평"(이소테타)은 동등함 또는 공정함을 의미합니다.
원래 이 두 단어는 주로 하나님의 속성을 드러내는데 사용되는 단어인데,
하나님은 온 세상의 주인(퀴리오스)으로서 언제나 의와 공평의 원리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상전들에게 "의와 공평으로 대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심령으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종들을 대하라" 그런 뜻입니다.
즉, 종들의 권리를 보장해 주고 그들에게 공정하게 대하라 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억울한 생각이 들지 않게 해라 그 말입니다.
요즘 보면, 공정이 깨질 때 굉장히 사람들이 불편해 합니다. 그렇지요.. 특별히 우리 젊은 사람들...
'이건 공정하지 않아' 굉장히 많은 반감을 사지요..
"의와 공평으로 일을 하라"는 것은 공정하게 하라는 거예요. 억울하게 만들지 말라는 거예요.
바울의 이 교훈의 말씀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아랫사람을 거느리고 있는 모든 사람들, 직장 상사들이나 오너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이지요.
타락한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힘 있고 권세 있고 재물이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항상 소위 '갑질'을 해 왔어요.
'갑질'이 뭘까요?
위키 백과사전에 보니까 '갑질'을 이렇게 설명했어요.
"갑질은 계약 권리상 쌍방을 뜻하는 갑을(甲乙)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갑'에 특정 행동을 폄하해 일컫는 '~질'이라는 접미사를 붙여 부정적인 어감이 강조된 신조어로
2013년 이후 대한민국 인터넷에 등장한 신조어"다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 위키 백과사전 -
즉, '갑질'이란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우월한 신분, 지위, 직급, 위치 등을 이용하여
상대적으로 약한 자에게 무례하게 행동하거나 이래라 저래라 하며 제멋대로 하는 행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느 종합병원에 한 신입 간호사가 첫 출근을 했습니다.
첫날이라, 그녀는 화장을 예쁘게 하고 출근했는데, 선배 간호사가 그녀를 보고
'니가 간호사야? 여기가 술집이야?' 그러면서 그 신입 간호사에게 면박을 줬습니다.
신입 간호사는 다음날 맨 얼굴로 출근을 했어요.
그랬더니, 그녀를 본 그 선배 간호사가 이번에는 '니가 환자야? 너는 간호사야?'라고 했다는 거예요..
어쩌라고...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 이것은 실화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직장생활 하면서 일터에서 흔히 겪고 있는 소위 갑질의 전형적인 모습이지요.
그런데 여러분, 교회에도 갑질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먼저 교회 다녔다는 이유로, 또 먼저 봉사를 했다는 이유로, 교회에서도 '텃세'를 부리는 분들이 가끔 가다 있는데,
여러분, 교회 안에서 '텃세' 부리면 안 됩니다.
그 위키 백과사전을 제가 쭉 읽어 보니까, 갑질의 유형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텃세'도 있더라구요..
'텃세'도 일종의 갑질입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제가 갑질을 하는 상사인 것을 지난 주간에 뼈저리게 경험했어요.
지난 화요일에 저는 양평에 있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채플에 설교를 하러 갔습니다.
예배 시간은 11시 50분에 시작이었어요.
처음에는 인천에서 학교까지 계산을 해 보니까, 한 시간 반이면 충분히 갈 수 있다 그래서
'아, 10시에 출발하면 11시 반에 도착하니까, 예배 시간 20분 전에 도착하니까 충분하겠다' 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10시에 출발을 했지요. 그런데 외곽순환도로가 얼마나 밀리는지,
그리고 팔당댐을 건너가서 양평국도로 갈려고 하는데, 웬 나들이 차량이 그렇게 많은지 ...
네비에 도착 시간이 11시 56분으로 뜨는 거예요.. ㅜ
11시 50분에 예배 시작인데, 그래서 저는 팔당대교를 건너면서 갑자기 초조해지기 시작했어요.
예배 시작이 11시 50분인데, 이거 학교 도착이 56분으로 뜨니 속으로 불안하고, 좀 언짢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제 목회비서 전도사님에게 '아, 이거 시간 예측을 제대로 한 거냐?' 라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전도사님 하는 말이 예상 시간이 두 시간으로 나왔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 말을 들으니까 속으로 좀 화가 나더라구요..
'아니, 어제는 한시간 반이면 충분하다고 하더니, 갑자기 두 시간이라니...
그러면, 좀 더 일찍 출발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속으로 막 짜증이 났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강사가 예배 시간에 늦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아침에라도 일찍 출발해야 한다고 왜 말을 하지 않았느냐고, 뒤에서 계속 중얼중얼 댄 거예요. ㅜㅜ
그 전도사님이 그때 운전하면서 얼마나 불안했을까... 얼마나 불편했을까..
그런데, 전도사님 하는 말이 사실 어제 늦은 밤에 다시 확인을 했고,
두 시간 걸린다고 나와서 저녁에 아홉시 반에 출발하자고 문자를 저한테 보냈다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대답이 없어서 제게 무슨 일이 있나 하고 그냥 열시에 출발을 했다는 거지요..
저는 그 말에 아차 했어요..
하필이면, 그날 제가 아침에 핸드폰을 확인도 하지 않았고, 또 핸드폰을 사택에 두고 제가 나왔거든요..
아침에 제가 일찍이라도 핸드폰을 확인했더라면, 충분히 대비할 수 있었는데
저는 무조건 전도사님한테 짜증부터 냈던 거지요. 결국 제 잘못이었어요.
어쩌다 보니, 그날 전도사님에게 그렇게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제대로 사과도 못하고 그냥 어정쩡하게 지나고 말았어요.
이 시간을 빌어서, 우리 나전도사님에게 저의 갑질을 공개적으로 제가 사과합니다.
여러분, 이런 갑질 문화는 세상에서 만이 아니라
오늘 교회 안에서도 이렇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봐야 돼요..
큰 교회들은 작은 교회들에게 갑질 하면 안 되고,
담임 목사들은 부교역자들에게 갑질 하면 안 되고,
우리 장로님들은 섬김의 직분이지 권위를 부리는 직분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장로님들도 교인들에게 함부로 갑질 하면 안 돼요..
우리 권사님들, 가정에서 며느리에게 갑질 하지 마세요..
우리 믿는 사람들이 직장에서든, 일터에서든, 시장에서든, 교회에서든, 가정에서든,
나보다 약한 자가 나로 인해 상처를 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고, 그들을 더 배려해야 합니다.
"이것이 의와 공평으로 대하라"는 말씀의 뜻입니다. 아멘!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하늘의 상전이 계시기 때문이고,
하늘의 상전인 우리 주님께서 이 모든 걸 다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오늘 본문 골로새서 4:1절에서
"모든 상전들이 종들에게 의와 공평으로 대해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 위에 하늘의 주인이 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 거예요.
하늘에 있는 상전, 즉 하나님께서
땅에 있는 모든 상전들보다 훨씬 높은 곳에 계신 주권자이시고 최고의 심판자이시기 때문에
종이나 상전이나 모두 하늘의 상전이 있음을 기억하면서 다른 이들을 대해야 된다 라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4. 위협하지 말고 섬김으로 대하라(엡 6:9)
두번째, "위협하지 말고 섬김으로 대해야 된다" 라고 말씀합니다.
(엡 6:9) 이 에베소서 6장은 골로새서 말씀하고 똑같은 내용을 지금 말씀하고 있는 쌍둥이와 같은 말씀예요.
그런데 엡 6:9절에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아멘!
바울은 골로새서와 똑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는 이 에베소서에서 그 당시 상전들에게 권면합니다.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라"
즉, 종들을 대할 때에 상전들도 이와 같이 하라는 거예요.
어떻게요? - 종들이 상전에게 하듯이 해야 된다는 거예요.
"종들이 상전에게 하듯 해야 된다."
즉,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하는 이 말씀대로
상전들도 종들에게 그렇게 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골로새서 3:23절의 말씀은 당시의 종들에게만 주어진 말씀이 아니라
종과 상전 모두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상전들아, 너희도 이와 같이 해야 된다."
그 다음, 바울은 상전들에게는 에베소서에서 아주 특별한 말씀을 하나 덧붙였어요.
그 말씀은, "위협하지 말라" 그랬어요.
옛날 개혁성경은 "공갈 하지 마라", "공갈을 그치라" 그렇게 번역했더라구요..
이 '위협', '공갈'로 번역된 단어는 '협박'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인데, 이것을 좀 더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종들의 충성도에 대한 동기부여를 부정적인 접근으로 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하라는 거예요.
예를 들어, 어떤 일을 시키는데
벌을 강조함으로서 벌에 대한 공포를 조성해서 일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인격적으로 대우하라는 거예요.
벌을 주겠다는 위협을 하거나 가혹한 말과 행동을 통해서, 이른바 갑질을 통해서는
외적으로는 겉으로는 순종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순종은 이끌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오늘로 말하자면 아랫사람에게 일을 시킬 때 내 맘에 좀 안 든다고 해서 윽박지르지 말라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지난 주 화요일에 그 짓을 한 거예요.
차 안에서 계속해서 지금 운전하고 있는데, 뒤에서 자꾸 중얼중얼 댄 거예요.
말로 야단치지는 않았지만, 그게 결국은 위협한 거지요. 윽박지른 거였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일하면서도 '야, 일 이렇게 밖에 못해?' 라든지, '이런 식으로 일하려면 당장 사표 써'라든지
이런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거지요. 갑질 하면서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거예요.
인격적으로 대우하고 존중하고 잘 대해 주어야 된다,
어떻게? - 골로새서 3:23절처럼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오늘 에베소서 표현대로라면,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라는 거예요.
한 마디로 말하면, 갑질 그만 하고 섬기라는 겁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섬기는 자세로 일해야 한다는 거지요.
윗사람이 섬김의 리더십을 가지고 아랫사람들과 함께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섬김의 리더십은 무엇입니까?
섬김은, 자기를 낮추고 종이 되는 것을 말하지요.
우리 모두의 상전 되신 예수님께서는 이 섬김의 리더십을 누누히 강조하셨어요.
하늘의 상전이신 예수님은
그 당시 섬김 받기를 즐겨하고 높은 자리에 앉는 걸 좋아했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마 23:11) "너희 중에 큰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여기 "섬기는 자"의 헬라어는 디아코노스(diakonos)입니다.
디아(dia)는 "~를 통하여"라는 뜻이고, 코노스(konos)는 "먼지, 흙, 티끌"이라는 단어입니다.
"디아코노스"는 직역하면 "먼지를 통하여"를 의미하는데, 즉, 섬김은 "먼지 투성이 길 위에 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섬긴다는 것은, 내가 낮고 낮은 종이 되어 먼지 투성이의 길에 서서
다른 이들을 위하여 일하고 봉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모두의 상전이신 예수님이 바로 이 섬김의 리더십을 강조하신 거예요.
자신을 철저히 낮추고 섬기는 종이 되라는 거지요.
그리고 하늘의 상전이신 예수님은 바로 이 섬김의 사역을 하려고 이 땅에 오셨다고 당신이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말씀하셨어요.
창조주 하나님께서, 온 우주 삼라만상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티끌같은 존재인 먼지와도 같은 존재인 우리들을 섬기시려고 당신이 먼지 투성이의 세상으로 내려 오셨습니다.
온 세상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 즉, 세상적인 표현으로 하면, 온 우주의 절대 갑의 위치에 계신 주님께서
갑의 지위를 내려놓으시고, 낮고 낮은 을이 되어 우리를 섬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섬김의 리더십은 곧 하늘의 상전이신 예수님의 리더십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 믿는 이들이 예수님을 본받아
직장과 일터에서 위협하거나 갑질을 하지 않고 이런 섬김의 리더십으로 일한다면,
우리는 많은 믿지 않는 직장 동료들이나 직장 상사, 그리고 부하 직원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게 될 것이고,
그럴 때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힘 있게 전달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직장과 일터에서 살아야 할 선교적 삶입니다.
5. 성령의 도우심으로 일하라(창 1:2)
이제 오늘까지 3주 동안에 걸쳐 나눈 말씀의 전체적인 결론에 해당하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직장과 일터에서 부하직원으로, 혹은 직장 상사나 혹은 주인으로 일할 때에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을 잘 감당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한 가지 남아 있어요.
그것은, 성령님의 도우심을 힘입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성령, 우리가 사무실에서나, 가게에서나, 시장에서나, 어디에서 일하든지 그 일터에서 우리가 효과적으로 일하려면
창조의 영이신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과 지식과 지혜와 재능을 힘입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창세기 1:2절을 보면,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영(르하흐) -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성령님을 의미하지요.
그러므로 이 말씀은 천지를 창조하신 성부 하나님과 함께 성령 하나님께서 천지창조의 사역에 동참하셨음을 보여주는
너무나도 중요한 말씀입니다.
즉, 성령님은 일하시는, 창조하시는 성부 하나님과 함께 창조사역을 하셨고,
오늘도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면서 일하시는 분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어떻게요? -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동역자로 일할 수 있는 능력과 힘과 지혜를 주심으로써 말입니다.
2절에, "운행하시니라" 이 말씀이 참 의미있는 말씀입니다.
운행한다는 말은, 날아다니는 새가 자신의 새끼 위에서 날갯짓을 한다 하는 뜻입니다.
히브리 단어가 굉장히 그림언어가 많아요. 이 단어를 보면, 마치 그림을 보는 것 같잖아요.
새가 먹이를 가져와서 새 둥지에서 입 벌리고 있는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려고
날갯짓 하면서 공중에 떠 있잖아요. 그리고 새끼가 그 먹이를 받아 먹잖아요.
그 모습을 지금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운행하시니라" 하는 말의 뜻이 그 모습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움직이는 동작 만이 아니라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한 대상의 주위를 맴도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성령님의 이런 모습은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도 이를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살펴보시고
보호하시는 성령님의 의지와 사랑의 모습을 지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동역자로 부름을 받은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계속해서 잘 동참하고, 그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돌보시며, 도와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힘입을 때 비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잘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질문 하나 할게요..
성경에서 최초로 성령 충만하다고 언급된 사람이 누구인 줄 아십니까?
성경에 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언급되고 있지요.
그런데 그들 가운데서 신.구약 통틀어서 처음으로 성령 충만함을 입었다 그분이 누구일까요?
아담도 아닙니다. 노아도 아닙니다. 아브라함, 요셉, 모세도 아닙니다. 엘리야도 다니엘도 바울도 아닙니다.
그 사람은 바로 출애굽기 31장에 나오는 '브살렐'이라는 사람입니다.
처음 들어 보시나요? '브살렐'
그는 선지자도 아니었고, 왕도 아니었고, 제사장도 아니었습니다.
오늘로 말하면, 디자인에 능한 기능공이었습니다. 일반 직장에서 일하던 일꾼이었다 그 말입니다.
그런데, 그가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성령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요셉에게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런 표현이 여러 군데 있어요.
그런데, '성령 충만'이라는 표현이 처음으로 적용된 사람이 바로 이 사람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성령 충만'한 최초의 사람이 선지자도 아니고 제사장도 아닌 평범한 일꾼이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동역자로 부름 받은 우리가 일할 때에
창조의 영이신 성령님의 역사, 성령님의 도우심이 그렇게 중요하다 그 말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지을 때, 최초로 성막을 지을 때 브살렐에게 성령을 충만하게 하셔서
그로 하여금 그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출 31: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가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정교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게 하며 보석을 깎아 물리며 여러 가지 기술로 나무를 새겨 만들게 하리라" 아멘!
성막을 짓는데 필요한 도구들을 만들게 하겠다 그 말이지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브살렐에게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성막을 지을 때 그로 하여금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가지의 재능과 기술로 그 일을 감당케 역사하셨다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일터와 직장에서 혹은 시장에서 일할 때에,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일할 때에,
창조의 영이신 성령님의 도우심이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내가 직장에서 맡은 어떤 프로젝트가 있는데,
그 일을 잘 감당하려면 참신한 아이디어도 필요하고 그 일을 진행할 수 있는 능력과 추진력이 있어야 되지요.
바로 그럴 때, 우리에게 창조의 영이신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직장 동료나 직장 상사와의 관계에 문제가 생겨서 힘들 때에, 우리는 성령님의 중재를 통한 관계의 회복이 필요하지요.
내가 연구 논문을 쓰고 있다, 글을 쓰고 있다, 그 연구를 잘 할 수 있는 지식과 지혜가 있어야 되는데,
그 지혜를 누가 주신다? - 성령님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르치는 일을 한다 - 잘 가르쳐야 되는 데 그 힘과 능력과 지혜를 누가 주시나? - 성령님이 주신다 그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일터와 직장에서, 우리가 일하는 모든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 받고 주어진 일들을 잘 감당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우리에게는 창조의 영이신 성령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절실하게 필요하지요.
그러므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내가(우리가) 그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항상 창조의 영이신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셔야 됩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 성령의 충만함으로 주어진 지식과 총명과 지혜와 여러가지 재능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을 잘 감당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터 사역자들이 일터 선교사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6. 나가는 말 : 최선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이제, 3주 간의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일꾼들입니다. 우리는 일꾼으로 지음 받은 존재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동역자로서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직장에서 일터에서 가게에서 학교에서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내게 주어진 일을 성직으로 알고 최선을 다해 감당합시다.
기쁨으로 일하고,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성실하게 일하고,
마음을 다하여 모든 일을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께 하듯 합시다.
의와 공평함으로 일하고 갑질 하지 맙시다. 위협하지 말고 섬김의 자세로 일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능력과 지혜와 지식과 재능이 부족하다면, 성령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간절히 바라고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을 사명감 가지고 잘 감당하는 선교적 삶을 삽시다.
바라기는, 우리 주안의 모든 성도님들이
우리 각자가 일하고 섬기는 분야와 삶의 현장에서
이렇게 모두에게 인정 받고 칭찬 받는 선교적인 삶을, 매력적인 삶을 살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터 사역자들, 일터 선교사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
아버지,
우리를 하나님의 동역자로 불러 주시니 감사합니다.
바라옵기는, 우리의 능력과 지혜가 부족하오니
성령으로 충만하게 임하셔서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지식과 지혜와 총명과 재능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삶의 현장인 일터와 직장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선교적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