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들이에 관한 시모음 2)
봄 나들이 /정양
지긋지긋한 이 아파트 말고
어느 산기슭 어느 시냇가에
집 하나 짓고 예쁘게 사는 것이
아내는 소원이라 한다
말 못하는 짐승들도 기르고
오가는 새들 모이도 뿌려주면서
채소랑 곡식이랑 감 대추들 다 가꾸어
고맙고 다정하고 아까운 이들과
골고루 나누고 싶다고 한다
그런 소원쯤 언젠가 못 들어주랴 싶고
사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서
그런 산기슭 그런 시냇가를 틈날 때마다
눈 여기며 나는 늙는다
먼 길 나다니는 차창마다 그런 산천을
먼발치로 탐내는 것이, 부끄럽지만
어느새 버릇이 되어 있다
친해지는 건지 철이 드는 건지
부끄럽기는 마찬가지다
햇빛 바르고 물길도 곱고 바람 맑은 곳
혼자서 점찍어보는 그런 그리운 데가
나다니다보면 참 많기도 하다
점찍어 보는 데가 너무 많은가
간이라도 빼주고 싶은 아내에게
간 빼낼 재주가 나에게는 영 없는가
간도 쓸개도 뱃속에 있기나 한가
모처럼 아내와 나선 봄나들이
나이 들수록 속절없이 산천은 곱다
꽃범벅으로 점찍어보는 그리움들이
먼발치로 자꾸 외면하면서 지나간다
봄나들이 /김진국
이를 우짜몬 좋노
저거낄 주고 받아싸타가
건구덜이 좋아
그마 맴도 노아뿌고
생각 그것도 노아뿌고
지 호분차 살찌기 걸아가뿌재
온 매는 꽃들로 마중 나오고
벚꽃은 봄비에 그만 눈치럼 내리다가
허연 잎사구가 천지삐깔이 깔렸다
오라카는 임은 안오고
봄비만 쳐내리고 있어이
누가 조아하갯노 안그럿나
내사 모리갰다
아무도 나를 안잡으이
마 홀로 댕길끼다
봄 나들이 /장유정
화사한 속눈썹
깜빡이며 봄을 고하는데
홍매화 붉은 연지
빨갛게 꽃물 들어 나르고
실바람 타고 피운 향기
흠 흠 흠
매 난 국 죽 사군자에
으뜸이라
올곧고 곧은 향기
도도 하드라
춘설
눈이 오면 어떠 하누
차디찬 눈망울에 얼음꽃
설중매
네 아닌가 하노라
봄나들이 /안정순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신록의 풍경들은
나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네요
굽이굽이
저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에
뭉게뭉게 피어 있는 하얀 아카시아 꽃
벌들의
잔치가 벌어지는 곳
그 향기 산하를 들썩 거리네
들판엔 가지런히
줄 맞추어 심어진 모들
한 해의 풍요를 약속 하는구나
새들은
오월의 희망가를 부르고
산 속에 터를 잡은 터줏대감은
뒷짐 지고 우리를 구경 하러
버선발로 나와 있네
아!
아름다운 신록의 푸르름이여
이 행복이 영원하길...
봄 나들이 /김정택
눈가에 여린 햇살 호수에
넘나들면
명지바람 손놀림에 산새들
노래하고
연분홍 꽃잎마다 봄 순정을
물들이네.
사월의 새색시들 몸치장
분주하고
깡마른 고목들도 연초록
꿈을 꾸니
화사한 꽃놀이 축제 크게 한판
열려나.
봄나들이 /이재환
봄꽃 향기
꿀맛이라
해님이 활짝 웃네
노랑나비도
꽃향기에 취해
신나게 춤을 추네
봄바람에
꽃향기 날리니
나도 떠나고 싶네
봄 나들이 /미인 노정혜
오늘도 나는 길을 걷는다
당신과 함께
오늘은 참 좋은 날
이 나이에 무슨 좋은 날
앞으로 살아갈 날들 중에
오늘이 가장 젊은 날
오늘 오늘 예쁘게 분단장하고
우리 둘이 둘이 손잡고
봄 나들이 가련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니까
봄나들이 /虛天 주응규
물오른 나뭇가지에
봄바람 살랑
시나브로 스며들면
들뜬 마음
갈피를 종잡지 못하고
서름히 겉놀고 있다.
봄 향 새물내 물씬
온몸 휘감아 겹겹 쌓인
허물 벗겨 놓으면
내숭스레 슬그머니
유혹하는 봄 품에
몸뚱이 맡겨 탐하곤
자아(自我)를 망각한 체
환락의 깊은 늪에서
몽롱이 자맥질하고 있다.
봄나들이 /김원규
상큼한 바람이
불어 오면
꽃들이 반기는
산과 들로
놀러 갑니다
소식을 먼저 알리는
산골짜기 시냇물 따라
곱게 단장하고
나들이합니다
하늘도 푸르고
마음도 푸르니
새들과 함께
즐거운 노래를
신나게 부릅니다.
봄나들이 가자 /김정윤
꽃 피는 봄이 오면
봄나들이 가자
장롱 속에 잠자는 등산복
갈아입고 설레는 가슴으로
봄나들이 가자.
빨강 노랑 봄꽃 꺾어
가리마 옆에 꽂고
산길 계곡 따라 흐르는
개울물을
한 손 받아 입에 물고
큰 바위 돌아 폭 좁은 산길을
이산 저산 걸어가며
틈새에 피어나는
이름 모를 들꽃 향기
가슴 가득 마시는 봄나들이 가자.
뒤돌아갈 수 없는 지나간
아픈 세월 모두 다 잊고
춘삼월 꽃 피면 봄나들이 가자.
봄나들이 /장진순
해진 옷으로
겨울을 버티던 나무들
봄소식에 성급하게 잎 틔운다.
숲으로 번져가는 봄기운
꽃잎부터 벙긋 는
색색의 화단에
유모차 앞세운 주부들,
셀로 폰에다
꽃들을 차곡차곡 담는다.
건너편 벤치에는
꽃들 하나하나에
점수를 매기는 동리 아줌마들
꽃들 마주보며
너 참 곱다
서로 칭찬한다.
봄나들이 /안영준
동면에서 깨나 꿈틀대는 새순은
바람에 부림 당하며 엷은 분칠 하고
자드락에 가랑잎 덮고 빼꼼히 내민 얼굴은
진한 향기에 예쁜 미소까지 던진다
아지랑이 불끈 올라 창공을 두드리며
움츠린 어깨 펴고 정신없이 요동을 친다
개나리 줄 담장 더듬고
마른 가지 산고를 겪으며
새순을 밀어내고 순풍에 어름새를 떤다
꽃향기 폴폴 날리는
팔짱 낀 벚꽃 속살 보이는 곳으로
나 몰래 발걸음은 가고 있다
봄나들이 /하영순
쌀쌀한 바람에 버버리 깃을 세우고
종종 걸음 내닫는데
어디서 소곤소곤 이야기 소리
누굴까 하고 고개를 들어 보니
벚나무 가지위에 입을 맞대고
봄바람에 정분난 아씨들 분홍빛 치마를 들까 말까
소곤대고 있다
내게도 저런 봄이 있었는데
연보라 빛 블라우스 단발머리에
리본을 메고
봄을 즐기던 시절
파란 잔디밭
하얀 냉이 꽃 위에 흰나비 놀고
노란 제비꽃에 노란나비 놀던
그 틈에 난 봄을 캐며 꿈을 키웠지
추억을 더듬으며 거닐어 보는
봄길
스치는 바람이 어깨를 툭 치며
따라오라고
어서 어서 가잔다,
봄 나들이 /이원문
마음 가라앉는 나들이 길
보는 것마다 옛 시골 풍경이 아니고
들녘의 논 밭도 그 논 밭이 아니다
윤곽 잡힌 논 밭에 어디를 가나 비닐 없는 곳 없고
배수로도 콘크리트로 옛 그 배수로가 아니다
논 밭 갈이의 트랙터에 모내기에는 안 그럴까
쟁기질에 누렁이 소 울음 멎은지 그 언제인가
어미 찾는 송아지 울음 귓가에 들려온다
길고도 길었던 눈물의 보릿고개
잃어버린 보리밭 화초가 된 보리 싹
굽어 흐르는 냇가도 그 냇가가 아니다
호들기 소리 멎은지 그 언제인가
미루나무 버드나무 다 어디 갔나
무엇을 보아도 색칠 안 된 것 없는 들녘
아득한 그 옛날 초가 산골의 그 풍경이었던가
바라보는 구름도 보리밭 위의 그 구름이 아니다
어느 봄날 나들이 /정심 김덕성
겨우내 집에만 거하다
포근하게 감싸주는 따뜻한 들녘
푹신푹신한 봄 길을 걷는다
와아 이렇게 좋을 수가
대지의 따스한 햇살
뇌를 짜릿한 느낌을 주며 벌써
발끝을 타고 올라오는
대지의 부드러운 고운 숨결
온몸에 전율을 느끼며
아직 화려하게 꽃은 피지 않아도
점점 짙어지는 신선한 초록빛
황홀하게 봄을 느낀다
벌써 속달로
내 마음에 도착한 봄 편지 받으며
놓아주지 않는 봄볕 감싸여
영혼도 맑아지는 나들이 봄 길엔
하늘 은혜가 축복처럼 내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