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셀프등산회 제 809~ 811차 산행은 3.10 ~ 12(2박3일)간 대천/보령 일원의 산행과 트레킹, 그리고 여행을 할 계획입니다(상황에 따라 수정가능합니다).
산행 & 여행 계획
ㅇ 여행 1일차 : 양각산 산행과 보령관광(변경 가능)
- 출발시간: 10일 07:00시 교대역 1번 출구
- 양각산 산행 : 통나무집휴계소 ~폐광동굴 ~ 금강암갈림길 ~ 양각산 주봉(412m/우각산) ~ 양각산 정상(369m) ~ 삼사당 ~ 통나무집 휴계소 원점회귀 산행(약 6km/ 2시간 소요)
- 트레킹 후 차량 회수하여 식사하고 보령호 주변 탐방 후 오천항 / 갈매못 성지 / 충청 수영성 / 충청수영해안경관전망대 등 구경 후 대천해수욕장으로 이동 일몰 본 후 / 숙소 이동
【보령 양각산】
양각산(羊角山)은 411.5m의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보령시 미산면 용수리와 웅천읍 평리 사이에 2Km에 걸쳐 있어 웅천읍과 미산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성주산에서 옥마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남쪽으로 달리다가 그 한 줄기가 동쪽으로 갈라지면서 산줄기의 끝단에 형성된 산이다. 등산과 주변의 자연 및 문화체험 학습 그리고 관광코스 활용에 아주 적합한 산이다. 그리고 보령댐으로 인하여 산자락이 물에 잠겨 물 위에 있는 산처럼 보이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는 산이다. 이 산은 미산 용수리 용암 마을에서 바라보면 정상부가 수직의 바위 절벽을 이루고 있어 마치 양뿔처럼 보이기 때문에 ‘양각산(羊角山)’이라는 이름의 이미지를 쉽게 느낄 수 있다. 이 양뿔처럼 보이는 봉우리는 369m로서, 높이로 보아서는 양각산의 주봉(主峰)이 아니지만 산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사실상의 주봉이다. 그런데 간혹 지도 표기 등에 兩角山으로 표기된 곳이 있는데, 우리나라 몇 군데 같은 이름이 있는데도 연유하여 잘못 표기된 것이다. 이 이름은 대부분 봉우리가 쌍으로 된 산에 붙여진 이름들인데, 그런 산들에서 연유하여 이 산도 약 500여 m를 두고 411.5m의 봉우리와 369m의 봉우리가 뿔처럼 솟아 있어 최근에 붙여진 이름으로 보이나, 원래 이 지역에서는 예부터 양뿔형상을 이미지로 하여 羊角山으로 하였으니 이것이 정확한 이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조선시대 호서읍지 등의 산천조에도 羊角山으로 표기되어 「현 동쪽 24리에 있는 산인데, 聖住山에 와서 羊角山의 주맥(主脈)이 형성되었다」고 하고 있다.
이 산은 용암 마을에서 바라보면 아담한 산봉우리에 정상부가 양뿔 모양을 연상시키는 특이한 모습이어서 누구든지 호기심을 느끼고 한번 오르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한다. 양각산의 정상부에 오르는 길은 금강암에서 약 1시간 30분 정도, 보령댐 옆의 통나무 휴게소에서 약 1시간 30분 정도로 오를 수 있지만, 용암 마을의 삼사당(三思堂) 입구에서 오르는 것이 주변의 보령댐 풍광을 만끽할 수 있다.
보령호에서 본 양각산(출처 : 보령시청 홈페이지)
산행추진 : 통나무집휴계소 ~폐광동굴 ~ 금강암갈림길 ~ 양각산 주봉(412m/우각산) ~ 양각산 정상(369m) ~ 삼사당 ~ 통나무집 휴계소 원점회귀 산행(약 6km/ 2시간 소요)
【보령댐 애향박물관】
1998년 10월 준공하였으며 성주산(성주면)과 성태산(외산면)에서 발원된 두 개의 작은 하천이 만나 이루어지는 웅천천에 댐을 막아 물을 가두어 미산면 풍계리 · 용수리 · 평라리 등이 호수에 잠기고 아미산 · 양각산의 허리까지 물이 들어찬다. 주변 경관이 수려하여 보령호을 감싸고 나있는 이설도로를 따라 푸른 물을 감상하며 드라이브할 수 있는 색다른 멋을 즐길 수도 있으며 보령댐 주변 아미산(해발 575m)에는 중대암이 있고, 양각산에는 용암영당(문화재자료 제141호)이 있어 보령호는 산업적 가치뿐만 아니라 새로운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출처 : 보령시청 홈페이지)
보령댐 애향박물관(출처 : 보령시청 홈페이지)
【용암영당】
고려 후기의 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이제현(1287∼1367) 선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지은 사당이다. 이제현은 고려 후기의 학자이자 정치가이며 호는 익재, 역옹이다. 성리학을 처음으로 고려에 들여온 백이정의 제자이며 뛰어난 유학자로서 성리학을 수용·발전 시키는데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또한 고려의 한문학을 발전시켰으며 저서로는 『익재집』, 『역옹패설』등이 있다. 원래는 조선 영조 16년(1740) 양산각 아래에 사당을 짓고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 지금 있는 건물은 보령댐 건설로 1998년 양각산 기슭으로, 묘 근처에 세우는 재실·사당 앞에 있던 은행나무와 함께, 옮겨 지은 것이다. (출처 : 보령시청 홈페이지)
용암영당(출처 : 보령시청 홈페이지)
【오천항】
오천은 예전부터 보령 북부권의 삶과 생활의 중심지였다. 보령 북부권의 모든 길들은 오천과 통한다는 말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실제로 주포, 주교, 청소 등 오천으로 들어가는 진입로만 세 갈래나 된다. 예전의 영화는 많이 퇴색되었지만, 오천항은 천수만 일대의 주요 어항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오천항은 만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까닭에 방파에 등 별도의 피항시설이 필요 없을 만큼 자연적 조건이 좋은 곳이다. 따라서 방파제 없이 해안을 따라 길게 이어진 선착장에 어선들이 정박해 있다. 1일과 6일에 서는 오천장을 찾으면 각종 해산물과 만날 수 있다. 특히 오천항에서 이루어지는 잠수기어업으로 채취한 키조개는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특산물이고,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홍합 역시 인기다. (출처 : 보령시청 홈페이지)
오천항 (출처 : 보령시청 홈페이지)
【보령 갈매못 천주교 순교지】도기념물 제188호(2013.2.14)
갈매못 성지는 천주교 박해가 극에 달했던 1866년 병인박해 당시 불란서 신부 3명을 비롯한 다섯 성인이 순교한 성지로, 1925년 공주 최말구 신부 등이 답사를 통해서 순교지를 마을 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하고, 치명터 20평을 매입하여 성지개발의 초석을 놓게 되었다. 이후 순교자들의 복자품(1968년), 성인품(1984년)으로 인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면서 갈매못 성지도 함께 정비되어 현재 갈매못 성지는 약 5천500여 평의 대지 위에 순교자기념비, 기념관, 사제관, 수녀원 등이 건립되어 있으며, 한해 약4~5만명 정도의 순례자들이 방문하는 전국적인 명성이 있는 순교성지이다. 충청수영(忠淸水營)의 역사성과 연계된 유적으로 道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출처 : 보령시청 홈페이지)
【충청 수영성】사적 제501호 (2009년 8월 24일)
충청수영성(忠淸水營城)은 서해로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위해 돌로 높이 쌓아올린 석성(石城)이다. 조선 중종 4년(1509)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 이장생(李長生)이 축성, 충청수영(忠淸水營)의 외곽을 두른 1,650m의 장대한 성(城)으로 자라(鱉)모형의 지형을 이용 높은 곳에 치성(稚城) 또는 곡성을 두어 바다와 섬의 동정을 살폈고 해안방어의 요충지였다. 사방(四方)에 4대 성문(城門)과 소서문(少西門)을 두었고, 동헌을 비롯한 관아건물 영보정(永保亭), 관덕정(觀德亭), 대섭루(待燮樓), 능허각(凌虛閣), 고소대(姑蘇臺) 등이 있었으나 허물어졌고, 서문 망화문(望華門)과 건물로는 진휼청(賑恤廳), 장교청(將校廳), 공해관(控海館)이 보존되고 있다. 망화문은 화강석을 다듬어 아치(Arch)형으로 건립하여 발전된 석조예술을 볼 수 있으며, 오천항(鰲川港)은 백제때부터 중국과 교역하던 항구로서 회이포(回伊浦)라 불리었고, 고려시대에는 왜구를 물리치기 위하여 많은 군선(軍船)을 두었으며, 세조 12년(1466년)수영(水營)을 설치, 충청수군의 최고사령부로 서해안을 방어하였다. (출처 : 보령시청 홈페이지)
【충청 수영해안경관전망대】
보령시의 정서와 감성을 담아 해안경관 조망점을 설정하고 보령시 천수만 일대의 충청수영성과 오천항 주변의 경관 자원을 담고 있는 오천항 전망대. 보령시 도시경관기본계획 추진전략에 따른 오천항 및 충청수영성 일원의 해안경관조망공간을 보령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전망대)로 개발 (출처 : 보령시청 홈페이지)
【대천해수욕장】
경사가 완만하고 수심이 얕으며, 수온이 알맞아 가족해수욕장으로 적당하다. 동양에서 보기 드문 조개껍질 해안이며 백사장을 따라 동백나무가 길게 줄지어 있다. 겨울철 흰눈 속에 핀 동백나무는 백사장과 어우러져 겨울바다를 찾는 관광객에게 인기가 있다. 인근의 대천항에서 출하된 도미·농어·민어·광어·붕장어 등의 신선한 회맛도 일품이며, 해안에서 약 1km 지점에 있는 다보도까지 유람선이 운항된다. 서울에서 장항선을 이용하면 약 4시간쯤 걸리며 여름철에는 해수욕장까지 고속버스가 운행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숙박 및 위락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고 교통이 편리하여 매년 피서객수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여름철 피서객이 많으나 대체로 연중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출처 ; 다음백과)
ㅇ 여행 2일차 : 삽시도 섬트레킹(변경 가능)
- 출발시간: 11일 숙소출발(06:30) ~ 대천항(07:30분) ~ 삽시도 도착(08:10분) 시간 / 삽시도 출항(13시)
- 삽시도 섬 트레킹 ; 밤섬선착장 → 금송사 → 황금곰솔 → 물망터 → 진너머해수욕장 → 아랫말 → 윗말 → 술뚱선착장(술뚱선착장 하선 시 역순으로 밤섬선착장을 최종목적지로 함) 6.2km 3시간
- 죽도, 남포읍성, 남포향교. 대천항에서 해산물 구입후 숙소 이동
* 외연도 시간이 맞으면 추진 가능
【삽시도】
삽시도는 섬의 지형이 화살이 꽂힌 활(弓)의 모양과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안선을 따라 환상적인 기암괴석의 수려한 풍경과 울창한 송림으로 둘러싸인 충남에서 세 번째 큰섬이다 대천항에서 하루에 세 번 운행되는 여객선으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다.
섬의 면적은 3.8㎢의 비교적 큰 섬으로 200여 가구에 500여 명의 주민이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고 있으나 농경지도 많아 농어업의 소득이 고루 높고 주변의 산림이 울창하다. 또한 삽시도에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물망터와 면삽지를 비롯하여 양질의 백사장과 청정해역을 자랑하는 거멀너머 해수욕장, 진너머 해수욕장, 그리고 삽시도 남쪽 끝머리에 위치한 밤섬 해수욕장이 있어 많은 피서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또한 섬 주변의 잘 발달된 암초와 풍부한 어자원으로 우럭, 놀래미 등의 선상 낚시는 물론 유명 갯바위 낚시 포인트들이 많아 일 년 내내 많은 낚시꾼들이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섬에는 초등학교와 지파출소 그리고 보건진료소와 자가발전시설도 갖추고 있다.
삽시도에는 마을 사람들이 아끼고 자랑하는 3개의 보물이 있다. 황금곰솔과 물망터, 면삽지가 그것. ‘황금곰솔’은 솔잎이 금빛을 머금은 금송으로 50년 안팎의 젊은 나무이지만 그 희소가치를 나이에 빗댈 수는 없는 일, 마을 사람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나무이다. 또 하나의 보물 ‘물망터’는 바닷물에 잠겼다 나타나 신비감을 더하는 바닷가 샘터이다. 물망터는 삽시초등학교 학생들의 소풍명소로 마을 어른들은 어릴 적 소풍의 추억으로 물망터 물맛을 이야기한다. 다음으로 ‘면삽지’가 그 세 번째. ‘면할 면’자를 써서 삽시도를 면한 땅이라는 의미다. 밀물 때 길이 끊겨 걸어서는 갈 수 없는 섬이지만 썰물 때면 길이 다시 이어지는 이곳은 해식동굴에서 솟는 샘터의 물맛 또한 빠지지 않는다.(출처 : 보령시청 홈페이지)
【죽도 상화원】
원래 죽도는 보령시 남포면에서 서남쪽으로 8.1㎞, 최치원 유적지가 있는 보리섬 서쪽 1.5㎞ 지점에 있는 섬으로 옛날 대나무가 울창하였던 섬이라 하여 대섬 또는 죽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대천해수욕장에서 3㎞ 떨어져 있는 남포 방조제와 연계되어 있는 섬으로 대천 해수욕장과 남포 방조제 끝머리에 있는 용두 해수욕장의 중간 지점에 있는 섬이었는데 지금은 '상화원'이라는 한국식 휴양 정원으로 탈바꿈 하였습니다.
'상화원'은 섬 전체가 하나의 정원으로서 천혜의 섬 죽도가 지닌 자연미를 그대로 살린 한국식 전통정원입니다. 지난 20여 년 간 한국식 정원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오면서 대규모 상업적 개발을 멀리하고 가능한 한 아름다운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나무 한 그루, 돌 한 조각까지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오늘의 '상화원'에 이르렀습니다. 따라서 '상화원'안에 있는 여러 공간들은 물과 나무와 바람과 하나가 되어 조화롭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점차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 한옥을 충실하게 이건·복원한 '한옥마을', 죽림과 해송 숲에 둘러싸인 '빌라단지', 섬 전체를 빙 둘러가며 연결된 '회랑' 과 '석양정원'등이 한데 어우러져 한국적 미를 발산하고 있습니다. 콘크리트 도심 속 일반적인 연회장이나 휴양지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진정한 만남과 휴식의 공간으로 여러분께 다가갈 것입니다. (출처 : 보령시청 홈페이지)
【남포읍성】도기념물 제10호 (1973년 12월 24일)
읍성(邑城)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 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을 말한다. 남포읍성은 차령산맥 서쪽 끝자락의 구릉에 돌로 쌓은 성으로, 남포는 백제 때 사포현이라고도 불리었다. 이 읍성은 원래 고려 우왕 때 서해안을 침범하는 왜구를 막기 위해 쌓았던 성이었는데, 공양왕 2년(1390) 군대가 머물 수 있는 진영을 추가하여 완성하였다.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는데, 바깥쪽 벽은 돌을 이용하여 직각으로 쌓았고, 성벽의 안쪽은 흙으로 쌓아올렸다.
동,서,남 세 곳에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4m의 높이로 성 바깥에 설치하는 또 하나의 성벽인 옹성을 둘렀는데, 1m이상의 큰 돌로 축성하였다. 성벽이 꺾이는 부분에는 적의 접근을 빨리 관측할 수 있도록 성벽의 일부를 튀어나오게 쌓았으며, 그 양쪽 성벽에 몸을 숨기고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몇가지 시설을 해놓았다. 성 안에는 3채의 관아건물인 진서루, 내삼문(옥산아문), 외동헌으로 보존되어 있으며, 동서에 80㎝ 높이로 배수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기록에 의하면 우물이 세 군데 있었다고 한다. 이 읍성은 서해안의 요충지로 왜구를 경계하는 한편, 해상 교통을 보호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하던 곳으로 여겨진다. (출처 : 보령시청 홈페이지)
【남포향교】도기념물 제111호 (1997년 12월 23일)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남포향교는 조선 태종 13년(1413) 웅천면 대천리에 처음 지었다. 중종 25년(1530)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었고 대성전의 규모를 넓게 수리하였다. 지금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 명륜당, 외삼문, 내삼문, 동재,서재 등이다. 대성전은 제사지내는 공간으로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명륜당은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으로,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2칸이며 가운데 3칸은 마루를 두고 양쪽 칸에 온돌방을 두었다. 전체적인 배치는 제사 공간이 뒤쪽에 있고, 교육 공간이 앞쪽에 있는 전학후묘의 형태이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의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출처 : 보령시청 홈페이지)
ㅇ 여행 3일차 : 태안해변길 6코스(샛별길) 변경 가능)
- 안면도 꽃지해변~>병술만~> 샛별해수욕장~>황포항 /13km 약 4시간
- 트레킹 후 차량 회수 7코스길(차량 투어/ 운여해변 낙조)
첫댓글 행복한 여행 되시겠어요 ,
자연을 벗삼아 힐링 받으시고
건강 하세요 !!
종재기님 오래간만 이네요..
손녀 보신다고 여행도 못가고
우짜까요..ㅎㅎ
항상 건강하시고 즐겁게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