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구론에 의하면 1955년생부터 1967년생까지를 '베이비 붐(生育高潮) 세대'라 칭한다. '쉰 세대'와 '신세대'의 중간쯤에 '낀' 세대라 할 수 있다. 6.25(韓戰) 이후 평화가 깃들자 '한꺼번에' 남편과 애인이 돌아왔기에 '한꺼번에' 생산되었던한 시대 세태의 결과물이다. 적어도 산아제한의 개념이 등장해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이전까지는 그랬다. 4,300만 명 인구 중 이들이 960만 명이라 한다. 연령상 불과 상하 12년(12세)에 불과한 이들이 0세부터 80세(편의상)까지의 인구 중 약 4분의 1을 꿰차고 있으니 당연히 사회적인 문제가 야기될 수밖에 없다. 인구점유율이 높은 이들이 성장하며 통과하는 인생살이의 구비마다 이전과는 다른 현상을 초래되었으니, 이 점에서 이들의 통과를 기다린 길목은 매번 폭풍전야였던 셈이다. 이들이 아동들이던 시절 골목은 온통 조무래기 아이들이 와르르 몰려다니는 진풍경이 벌어졌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2부제, 3부제로 수업이 진행되어 오전반.오후반이란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또 이들이 중,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부터는 무시험제로 바뀌더니, 재수생문제가 생겨 '광화문통 아이들'이란 말도 생겼다(당시에는 입시학원이 광화문에 몰려 있었다). 대학인들 감당이 안돼 강의 아닌 강연이 이루어졌고, 군대조차 전원수용이 힘들어 집에서 군대에 다니는 방위병 제도가 생겼다(요즘은 공익근무라 부른다). 취업전쟁도 이때부터 사회문제로 본격화되었다(하지만 이들 양질의 노동력이 70-80년대 고도성장의 주요 요소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뿐인가. 6공화국 선거공약이기도 했던 주택 200만 호 건설도 이들이 '한꺼번에' 살 집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한꺼번에' 지은 집들은 그 후 각종 붕괴사고를 유발하기도 했다. 통과지점마다 사회 전체적으로 홍역을 치른 세대여서 애물단지이기도 하겠으나 '낀 세대'도 경쟁과 경쟁에서 오는 피로감에 관한 한 할 말은 많다. 향후 '베이비 붐 세대'들이 노인장이 되면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충청북도 3분의 1 정도의 면적이 분묘라는데, 아마 우리네 세대들은 누워있기는 어려울 것 같고, 여럿이 함께 서 있거나, 아니면 화장을 강요된 선택으로 받아들여야만 하지 않을까 싶다.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치열한 경쟁을 각오해야 하는 세대, 윗 세대를 모시는 마지막 세대, 아랫 세대로부터의 봉양을 기대하지 못하는 첫 세대, 연공서열에 길들여져 있으며 컴퓨터 세대에 밀리는 세대, '낀 세대'들은 이래저래 괴롭다. 하지만 일제시대와 6.25를 겪으신 부모님들 세대의 풍상과 고초를 떠올리면 아마도 이깟 괴로움쯤은 호사스런 넋두리에 불과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