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공손추」에 ‘물망, 물조장(勿忘, 勿助長)’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마음으로는 잊지도 말고, 억지로 자라나게 도와주지도 말라’는 말이다.
어떤 송나라 사람이 벼의 싹이 잘 자라지 않는 것을 보고 논바닥에 심어진 벼의 싹을 조금씩 뽑아 올려주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가족에게 그것을 자랑했다. 아들이 논으로 달려가 보니 벼싹은 말라 죽어 있었다. 벼의 싹이 빨리 자라도록 돕는 것에서 경험을 얻은 농부는 이제 벼를 그냥 방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조장助長의 비극을 보았기에 이제 조장하지 않고 버려둔다면 이것이 망忘이다. 망도 조장과 동일한 오류를 범하는 셈이다.
무언가를 아낀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조장해도 그 대상은 불행에 빠지고, 완전히 방임해도 아끼는 대상은 불행에 빠진다. 그래서 맹자는 ‘잊지도 말고 조장도 하지 말라’고 하였던 것이다.
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1115257&inflow=D
https://cp.news.search.daum.net/p/95862159
「대종경 요훈품 10」
"큰 도에 발원한 사람은 짧은 시일에 속히 이루기를 바라지 말라. 잦은 걸음으로는 먼길을 걷지 못하고, 조급한 마음으로는 큰 도를 이루기 어렵나니, 저 큰 나무도 작은 싹이 썩지 않고 여러해 큰ㅌ결과요, 불보살도 처음 발원을 퇴전하지 않고 오래오래 공을 쌓은 결과이니라."
"봄날 고치집을 헤치고 조금씩 밖으로 나오고 있는 나비를 빨리 나오도록 입길을 불어 넣어준다면, 그고치는 나오기는 채도 곧 죽어버린다. 왜냐하면 거쳐가야 할 단계와 익혀야 할 시간들을 무리하게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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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고, 조장도 말 것'이라는 '물망 물조장'이란 말을 나는 좋아한다. 이 말은 '필유사언이물정(必有事焉而勿正) 심물망 물조장(心勿忘 勿助長)'이란 말에서 나온 거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할 뿐 바로 잡으려고 하지 말며, 마음으로 잊지도 않되 조장하지도 말 것'이라는 뜻이다. 맹자 이야기이다. 맹자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는 법을 설명하면서 '알묘조장(揠苗助長)'이니, '발묘조장(拔苗助長)'이란 말을 하였다.
중국 춘추시대 송나라에 성격이 급한 농부가 있었다. 그는 이른 봄부터 밭에 나와 부지런히 씨를 뿌리며 한 해 농사가 잘되기를 소원했다. 그런데 매일같이 밭에 나와 살펴봐도 곡식 싹이 잘 자라는 것 같지 않았다. 농부는 안타까운 나머지 싹이 빨리 자라도록 돕고 싶어 싹 한 포기를 잡아당겼다. 싹의 키가 확실히 커 보였다. 이윽고 밭의 모든 싹을 다 잡아당기고는 집에 돌아와 가족들에게 자랑스레 말했다. “오늘 내가 곡식이 잘 자라도록 도와주느라 너무 피곤하다.” 놀란 아들이 날이 밝자마자 밭으로 뛰어가 보니 밭의 싹이 모두 시들거나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빨리 자라도록 도와준다며 싹을 잡아 뽑는 어리석은 농부의 이 이야기에서 ‘알묘조장’(苗助長) 또는 ‘발묘조장’(拔苗助長)이란 고사성어가 나왔다. ‘바람직하지 않은 일을 더 심해지도록 부추긴다’는 뜻의 ‘조장’(助長)이란 단어도 여기서 유래했다.
당장의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본래 목표를 버려서도 안 되고, 빨리 결과를 보려고 성급하게 굴거나 무리수를 둬 목표 자체를 해치는 일은 더더욱 안 된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스스로 노력하되 서두르지 않고 인내를 가지고 순리를 쫓는 자세가 중요하다. 극단을 지양하고 중용의 도리를 견지하는 것이다.
<<중용>>에 "연비어약(鳶飛魚躍)'이란 말이 있다. '솔개가 하늘을 날고, 물고기가 연못에서 뛰어 오른다'는 <<시경>>의 구절이다. 세상 만물이 자연법칙을 따라 저마다 삶을 영위하는 것이 천도(天道)라는 중용의 가르침이다.
우린 모르는 게 너무 많아/김형영
밤이면 돋아나는
별들은 알지
별이 하나 둘 돋아나는 걸
별들은 알지,
밤은 무섭고
희망은 내일,
내일은 무슨 일이 생길까
밤은 알지만
내일은 언제나 날이 새고,
반짝이는 별들은
저희끼리 반짝이며
날은 날이고
새는 새라고,
희망은 언제나
날이 새는 거라고
별은 별들끼리
알지, 밤마다
낄낄거리며
내가 모르는 사실을
내가 모르는 사실을
몇일 전에 이야기 했던 것처럼, 인간 본성의 서판인 본성이 비어 있다면, 적응이 최선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인간은 환경에 따라 무한히 가소적인 점토나 플라스틱이 아니다. 알이 개구리로 자라고, 도토리가 아름드리 굴참나무가 되듯이, 인간도 유기체로서 성장의 방향과 목표를 갖고 있다. 그래서 공자는 <<중용>>에서,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 즉 그 본성을 따르는 것이 '길(道)'이고, 그 길은 우리가 인간으로 품격을 가지고 일상을 살아가는 날들이 그 '길(道)'라고 본다. 그리고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 즉 그 '도'를 잘 '다듬고 기르는' 것이(修道가) 교(敎, 工夫 공부)라 했다.
동아시아에서는 "성즉리(性卽理)"라고 보았다. 즉 본성은 인간이 자연으로 갖춘 고유의 생명력으로, 실현해야 할 가능성이며, 자기구원의 완성과 행복으로 이끌 나침반이며, 사회적 참여와 연대를 위한 기초라 보았다. 여기서 나는 미켈란젤로가 대리석 덩어리로 헤라클레스를 조작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갑갑해 하고 있던 영웅을 칼과 끌로 해방시켜 주었다는 말을 소환한다.
동아시아의 유학은 "이목총명(耳目聰明, 귀와 눈의 감각과 기억력이 좋음)"으로 자기 구원을 강조한다. 서판에 새겨진 글씨를 잘 판독하고 그에 따라 사는 것이 본성에 합당한 삶의 길로 보았다. 그래 조선의 선비들은 음풍농월(吟風弄月,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대상으로 시를 짓고, 흥취를 자아내어 즐겁게 시를 짓고 논다)을 즐겼다. 자연을 읊조리고, 늘 자연과의 일체감을 노래하며 생활했다. 몇일 전에 이야기 했던 것처럼, 조선 선비들은 위기지학(爲己之學)을 중시했다.
장자가 추구하는 인간은 성인(聖人)이다. 여기서 성인은 자기 구원에 이른 사람이다. 그런 성인은 자신을 하늘에 맡기고 살아가는 사람, 하늘이 알아서 먹여주고 길러 주는데, 일부러 설치면서 허우적거릴 일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예수는 새들이나 들꽃들을 보라고 하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 (…) 하늘에 계산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 (마태, 6:26-33)고 했다.
장자는 하늘이 준 본래의 재질, 본래의 바탕을 일러 재(才-덕-본성)라 하고, 이를 온전히 지키는 것을 재전(才全)이라 했다. 우리의 본바탕을 온전히 지킨다는 것은 한마디로 우리의 마음이 우리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인간의 조건에 흔들리지 않는 것, 그리하여 본마음을 그대로 지킨다는 뜻이다. 우리의 외부의 조건을, 사철이 바뀌듯이 사물의 변화나 운명으로 생각하고 의연히 받아들일 뿐, 안달하거나 초조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상황에 따라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는 마음, 거울 같은 마음으로 마음의 조화와 평정을 유지하여 트인 마음, 즐거운 마음, 봄날처럼 안온하고 느긋한 마음을 지키는 것이 바로 주어진 재질, 우리의 본바탕을 온전히 지키는 일이 재전(才全)이라는 것이다.
자기 구원의 길로 가는 공부는 와이너리 속의 와인이나, 뒤뜰에 묻은 김장독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도 모르게 천천히 익어가야 한다. "물망 물조장"이다. 본성을 잊지 말고, 조장도 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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