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요즘 어떤 일로 근심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한 자료에 따르면 사람들이 근심하는 내용의 약 40%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관한 것이라고 합니다. 다음으로 약 20%는 지나간 과거에 대한 것이며 나머지는 대부분 현재의 잡다한 일에서 기인한다고 합니다. 독특한 점은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조차도 근심한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굳이 근심하지 않아도 될 일마저 근심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럼 제자들은 왜 근심에 빠졌을까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지금은 나를 따라올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왕이 되실 것이라는 부푼 기대는 사라지고 3년간의 동역 끝에 생이별할 상황에 놓이게 되자 근심이 생겨난 것입니다. 근심거리가 없어질 것이니 근심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위의 통계처럼 어떤 이유에서든지 근심거리가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는 것이며 이것이 우리가 근심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이유가 됩니다.
요한복음의 핵심 키워드는 예수님, 믿음 그리고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집에 가서 제자들을 위한 거처를 예비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유대인에게 아버지 집은 일반적으로 예루살렘 성전 혹은 천국을 일컫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어서 “내가 너희들을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십자가, 부활과 승천 그리고 이후 보혜사 성령님의 강림을 생각해 볼 때 예수님께서 거처를 예비하시겠다는 것은 우리 몸을 성전삼아 영원히 임마누엘하실 것임을 의미합니다. 너무도 큰 선물이요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으로 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고 이에 도마가 재차 길에 대해 예수님께 여쭙자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아는 유일한 진리요,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요,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머물 수 있는 원천이 되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으로 살며 예수님 때문에 살아가면 됩니다. 그 예수님께서 나를 성전삼아 계시니 과거와 미래의 일을 근심하거나 불필요한 근심거리를 만들어서 근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 자신의 학파에 대한 자부심, 로마의 시민권, 공의회 의원 자격, 학문적 위치와 권위 등 그가 갈망하며 추구했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고백하면서도 바울처럼 내려놓지를 못하니 계속 근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과 같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내 안에 오직 예수님으로 충만해져서 나는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전히 근심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고 힘을 주시며 심지어 “너희는 내가 하는 일보다 더 큰 일도 하리라”고 격려해 주십니다. 곧 복음을 전하는 것 말입니다. 근심의 헬라어상 의미는 내가 스스로 근심하는 것이 아니라 근심이 내 마음에 밀려오는 것, 즉 수동의 의미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모든 것을 이긴다 말씀하셨습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로 향하는 길이 되어 주시는 예수님을 믿으며 나와 함께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근심하지 말고 다만 기도할 뿐입니다.
믿음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큰 은혜요 선물입니다. 세계의 역사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과 후로 구분되듯이 우리 개인의 역사도 예수님을 믿기 전과 후가 달라집니다. 지금까지 우리를 돌보시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면 앞으로도 우리 인생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앞으로 인생 길에도 고난과 시험, 아픔과 상처, 근심과 두려움이 태산과 같이 밀려올지라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하신 말씀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여전히 약한 존재이니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수 있으니 오늘 말씀을 믿는 맘으로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