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륜* 외 1편
김은경
아련함이라는 단어에 대해 말하려면 우리는 잠시 눈을 감아야 한다
휘파람 서툰 미루나무가 네 그루
종일 누구를 기다리다 목이 마른 플라타너스가, 시소를 탄다 한 잎 두 잎
오른쪽이 기울다가 왼쪽이 기울어지다 끝내는
허공만 그득한 운동장
나무야 나무야 넌 뭐가 그렇게 그리운 거니
분홍색 마미손 고무장갑을 핏빛 손목으로
상상하게 된 날부터 연못을 빙 돌아 집에 간다
귀신은 잘도 숨어서 나를 따라오고
시궁쥐는 오남이네 식구처럼 나날이 번성해서
시끄럽다 귀가 가렵다
씩씩하게를 씩식하게로 잘못 받아쓴 날
내가 아는 세상엔 씩씩한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조금 외로워진다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미처 배우지 않았지만
그것은 바지에 터진 주머니처럼,
오로지 내 눈에만 보이는 것
* 경북 고령군 덕곡면 가륜리
해피트리
페루에서 온 커피에선 가여운 새들의 날갯죽지 맛이 나는지
오늘은 로맹 가리를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아침
인도 여행자에게서 건네받은 향을 피운다
삶은 어쩌면 참 거대한 연기라서
눈앞에선 보이지 않아
다행일까 불행일까
아무 포옹
아무 윙크
아무 키스
아무 사람에라도 매달릴 수 있는 날들은
차라리 숨 쉴 만할 텐데
어떤 절박도 없다는 거
아무 간절도 없다는 거
그건 나무 밑둥에 핀 곰팡이처럼
새카만 거짓말
이미 죽어 버렸는지 모르는 해피트리에
물을 준다
썩어 똥 냄새를 피워도
완전히 말라 고꾸라져도 내다 버릴 수 없는 화분 하나가
거실 한가운데에 있다
김은경 경북 고령 출생. 2000년 《실천문학》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우리는 매일 헤어지는 중입니다』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