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사회문제 자료모음입니다.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미래목회 연구를 위해 신문, 잡지, 사설, 의견 등을 모은 내용입니다.
김형석 교수님의 기도문
내 세월 다하는 날
슬픔 없이 가게 하여 주소서
초대 없이 온 이 세상
정주고 받으며
더불어 살다가
귀천(歸天)의 그 날은
모두 다 버리고
빈 손과 빈 마음으로
떠나기를 약속하고 왔나니
내 시간 멈추거든
그림자 사라지듯
그렇게 가게 하여 주소서
한 세상 한 세월
사랑하고 즐겁고 괴로웠던 생애였나니
이 세상 모든 인연들과
맺어 온
그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들이
허락 없이 떠나는
그 날의 외로움으로
슬프게 지워지지 않게 하여 주소서
다만
어제 밤 잠자리에 들 듯
그렇게 가고 보내는 이별이 되게 하여 주소서
아울러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이
슬픔과 외로움을 잊고
이 세상의 삶을 더욱 알고 깨달아 굳건히 살아가는
지혜와 용기를 갖게 하여 주소서
아름다운 이 세상
마지막 소망을
아름답게 이루고
아름답게 떠나가게 하여 주소서
(현재 2023.11월 연세 102세입니다)
홍승기 인하대 교수 인터뷰
세계가 부러워하는 대한민국은 왜 과거에 빠진 ‘선동 천국’ 됐나? [송의달 LIVE]
홍승기 인하대 교수 인터뷰 [송의달이 만난 사람]
송의달 기자
입력 2023.11.14. 07:00업데이트 2023.11.14. 20:08
송의달의 모닝라이브 뉴스레터 구독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80902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인구 5000만명 이상에 해당하는 ‘3050클럽’의 세계 7번째 회원국이다. 반도체 같은 IT 분야에선 손꼽히는 강국(强國)이며 경제규모와 문화·스포츠·국방 분야에서도 세계 10위권 안에 든다. 겉으론 세계가 부러워하는 글로벌 상위 선진국의 모습이다.
중견 법학자인 홍승기(洪承祺·64)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두 달 전 발간한 저서 <중세지향 퇴행사회(中世志向 退行社會)>에서 “압축 성장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아직도 근대화를 거부하고 식민 사회에 머무려는 중세지향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기자는 2023년 11월 8일 낮 서울 광화문에서 그를 만나 2시간 가까이 인터뷰했다.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장과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를 지낸 그는 현재 법조윤리협의회 위원장과 콘텐츠분쟁조정위원장을 맡고 있다.
◇근대는 망각...다시 중세 왕조 찾는 한국
- 지금 한국이 왜 ‘중세지향 사회’인가?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근거가 많다. 화폐의 초상화만 봐도 미국·유럽·일본은 물론 중국도 마오쩌둥이란 근대인을 지폐에 새겨놓고 있지만 한국엔 신사임당·세종·이율곡·이황 등 조선시대 인물 뿐이다. 고종의 아관파천 도피로를 ‘왕의 길’이라고 복원한데 이어 광화문 경복궁 앞과 덕수궁 대한문 앞 월대(月臺), 경복궁 내 전각(殿閣)의 지나친 복원까지 온통 중세 왕조(王朝) 지향이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사료(史料)를 보면 경복궁 앞 월대는 1866년 축조돼 57년 동안 존재했다. 고종이나 순종이 월대에서 백성을 만났다는 기록도 없다. 덕수궁 앞 월대는 10년 남짓 있었다. 둘 다 도시계획 과정에서 사라졌을 텐데, 누구를, 무엇을 위한 복원인지 이해할 수 없는 행태이다.”
- 눈에 보이지 않는, 더 깊은 ‘중세지향성’이 있다면?
“가장 심각한 것은 한국인의 정신 세계가 식민지 시대 탈출을 거부하고 일제시대에 머무르고자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가 해방된 지 78년, 즉 35년의 식민 기간 보다 두 배 이상 긴 시간이 흘렀지만, 정치인은 물론 상당수 지식인들조차 식민지 시대의 사고방식과 논리에 갇혀 있다.”
-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한 예로 국가보훈부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함께 지금도 매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를 선정·발표한다. 서울교통공사는 그 국가보훈부의 포스터를 지하철 역사(驛舍)에 게시하고 있다. 공공 부문이 ‘탈식민 거부’에 앞장서는 형국이다. 대학교수, 언론까지 친일(親日)·반일(反日) 이슈에 과민 반응하며, 반일을 외치지 않으면 누구든지 매국노(賣國奴)로 지탄받을 수 있다.”
◇反日 안 외치는 지식인에겐 손가락질
홍 교수는 이렇게 덧붙였다.
“몇 년 전 정부가 반일몰이를 하던 시기에 교가(校歌)의 작곡·작사가가 친일파라고 전국이 떠들썩했다. 상당수 전국의 명문고교가 그 때문에 교가를 바꾸었다. 역사가 오랜 학교의 교사(校史)전시관에서 해방 전 일본인 교장·교감의 액자를 떼 내는 모습이 자랑인 양 TV 뉴스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이런 것들이야말로 역사 수정주의이고 反역사적 일탈이다.”
- 일본과 얽힌 족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한국 사회의 식민지 시대 탈출을 가로막는 최대 주범은 친일(親日) 프레임이다. 이창위 서울시립대 교수의 분석에 의하면 1983년부터 2022년 말까지 40년간 일본 천황과 총리는 일본의 한국 병합(倂合)에 대해 총 53회 공개 사과했다. 아키히토 천황은 4회, 아베 신조 총리는 19회였다. 사실상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 경영을 사과한 사례는 일본과 이탈리아 정도 뿐이다. 이탈리아는 2008년 당시 리비아가 원유 수출을 끊겠다고 나오자 원유를 계속 공급받기 위해 사과했다. 세계 10위권 대국인 우리가 일본에게 제국주의 시대 역사를 사과하라고 계속 요구하는 것은 소아병(小兒病)적인 행태이다. 혹자는 일본의 사과에 ‘진정성’이 없다고도 트집 잡는데, 연세대 김철 명예교수의 표현을 빌면 진정성의 요구 그 자체에 진정성이 결여돼 있다. 그런데도 공공영역이 나서서 ‘토착왜구’ ‘죽창부대’ 같은 초라한 주장을 했으니 민망하기 이를 데 없다.”
-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과거’·'일본’에 매몰됐나?
“이승만 대통령부터 1988년 서울올림픽까지 역대 정권은 빈곤 탈피를 목표로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근대화(近代化)에 매진했다. 역대 정권은 반일을 소품으로 일부 이용해도 밀고당길 줄을 알았다. 1982년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을 계기로 폭발한 국내 반일(反日) 에너지를 활용해 전두환 정권은 일본을 압박, 40억달러 안보·경제협력차관과 1984년 일본 천황으로부터 식민지 사죄 발언을 받았다. 그런데 1993년 2월 출범한 김영삼 대통령은 ‘임시정부 이래 최초의 정통 정부가 문민정부’라며 해방 후 한국인의 성취를 부정(否定)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의식의 근대화’ 과정에 심각한 병목 현상을 가져왔다고 본다.”
◇日 천황·총리 40년간 53회 공식 사과
- 특별한 계기가 있나?
“해방 50주년을 맞은 1995년 8월 15일 김영삼 정부가 중앙청을 해체·폭파한 사건이 분수령이다. 1926년 완공된 중앙청은, 일제가 총독부로 쓴 기간(18년) 보다 우리가 정부청사로 사용한 기간(50년)이 훨씬 길었다. 그런데 김영삼 대통령이 정치적 목적에서 반일(反日) 감정을 최대한 이용하겠다고 깨부수었다. 중앙청의 소멸은 한 개의 건물 해체를 넘어 근대화 정서의 파괴였다. 해방 후 지속된 근대화 드라이브에 브레이크를 걸었고, 노골적으로 말하면 북한식(式) 민족주의에 동조하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홍 교수는 이어서 말했다.
“김영삼은 1993년 2월 25일 대통령 취임사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 어떤 이념이나 어떤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고 했다. 이는 일본 등 외세에 대한 적개심을 강조하며 민족 지상주의(至上主義)에 빠진 북한과 같은 정서를 공유하겠다는 전환적 선언이었다. 이때부터 북한식 백두사관(白頭史觀)에 대한 경계가 풀린 듯싶다.”
그는 “이런 분위기는 1970년대 중후반 이후 대학가에서 불붙은 의식화 교육과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수정주의적 관점 같은 풍토 위에 불량(不良) 정권 북한에 매력 또는 연대감을 느끼고 북한의 사주(使嗾)를 받은 운동권에 의해 급물살을 탔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1990년 11월 37개 여성단체가 모여 세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약칭 정대협)와 정의기억연대(약칭 정의연)가 좋은 예이다. ‘20만 명의 소녀 강제연행’ ‘유례를 찾기 힘든 잔학함’이라는 그들의 표현은 북한의 시나리오와 흡사하다. 윤미향은 1992년 8월 ‘지금 남북 모두가 일본으로부터 정신대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해 내고 배상을 받아내기에 충분한 주체 역량이 마련되어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북간 국교 수립을 위한 회담 시기의 발언이다.”
◇민족 앞세운 김영삼...북한式 민족주의에 동조
- 2000년대 들어서는 어떠했나?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세워진 ‘친일반(反)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대표적인 중세지향·퇴행사회의 예이다. 이 위원회 활동은 그 자체가 국가 폭력이다. 해방 후 60년 세월이 흐른 후, 당대의 내밀한 사정에 무지한 후배들이 조악한 기준으로 한국의 당대 엘리트들을 단죄했다. 1955년 대한민국 정부는 제2대 부통령 인촌 김성수(金性洙)의 장례를 국민장으로 치렀고 1962년엔 건국공로훈장을 추서(追敍)했다. 그런데 2005년 노무현 정부는 인촌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낙인찍고 서훈까지 박탈하는 야만을 자행했다.”
그는 “2005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의 판단은 반(反)헌법적 행위로 ‘전적으로’ 무효화해야 한다. 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낙인찍은 사람들의 재산을 박탈한 것은 헌법 위반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3조 2항은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고 명시(明示)하고 있다”고 밝혔다.
홍 교수는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된 큰 책임은 노무현 대통령과 위원장을 맡은 강만길 교수, 편협한 시각의 국사학자들은 물론 사회의 마지막 보루인 사법부에 있다. 2011년 3월 31일 헌법재판소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에 대해 헌법전문의 ‘임시정부의 법통’ 운운하며 위헌이 아니라고 결론냈다. 조대현·이강국 재판관만이 위헌이라는 소수의견이었다. ‘임시정부의 법통’이 ‘오늘 이 순간’ 재산권의 귀속을 다투는 준거가 된다는 판단은 터무니없는 논거이다.”
◇운동권 동아리하듯 국가경영한 문재인 정권
- 역대 정권 가운데 ‘중세지향 퇴행성’이 가장 강했던 곳을 꼽는다면?
“문재인 정권이라 단언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3류 대학 운동권 학생들이 동아리를 운영하는 사고방식으로 국가를 경영했다. 자유·인권·민주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이웃 국가를 향해 대통령이 TV 앞에서 ‘다시는 지지 않겠다. 승리의 역사를 만들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재인 정권 5년이 우리나라에 앞으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 왜, 어떤 이유 때문인가?
“문재인 정권은 5년 내내 ‘엉뚱한 제도’를 ‘부적절한 방식’으로 도입해 기업인을 옥죄고, 자영업자를 괴롭히고, 국민의 건전한 근로의욕에 흠집을 냈다. 검수완박으로 검찰을 식물검찰로 만들어 특정인에 대한 형사처벌의 예외를 구축하고, 통치의 정통성을 실체가 애매한 ‘항일(抗日)투쟁’에 두었다. 조선시대 양반 특권층과 위정척사파(衛正斥邪派)의 부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 저서에서 언급한 여러 한국인들 가운데 근대 지향성이 가장 뛰어난 이는 누구인가?
“이승만, 윤치호, 서재필, 유일한 같은 분들이 모두 훌륭하지만, 이승만(李承晩)은 당대에 나오기 힘든 ‘돌연변이’였다. 그는 탁월한 개인기(個人技)와 사명감으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존재를 공론화했다. 이승만에 압도된 한국 좌파는 어떻게든 그에게 흠집을 내고자 흑색 선전을 하고 김구를 대항마로 띄워 이승만을 깎아내리고 있다. 반공(反共)주의자인 김구는 기본적으로 좌파와 융합이 안 되는 존재이다. 좌파에게 김구는 김일성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이자, 이승만 공격을 위한 소모품일 뿐이다.”
◇‘정치 낭인’들 공공영역 진출로 국가경쟁력 쇠퇴
- 1980년대 5·6공화국과 1990년대 김영삼·김대중 양김(兩金) 정권을 비교한다면?
" 70년대 말 대학에 입학한 세대로서 88올림픽의 성공은 인정해도 정서적으로 전두환·노태우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세월이 흘러 여러 자료를 확인하고서야 ‘전두환 시대 경제성장의 과실(果實)을 양김이 뜯어먹고 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5·6공 시절에는 일류 엘리트들이 국가를 경영했다. 양김 시대에는 나름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세력을 자처하는 ‘정치 낭인(浪人)’들이 대거 공공영역으로 넘어오면서 국가경쟁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여기서 홍 교수는 개인적인 일화를 꺼냈다.
“1997년 가을 미국 로스쿨에 등록한 지 3개월 만에 700원대이던 원·달러 환율이 1900원대로 치솟았을 때 ‘나라 잃은 국민’ 심정을 느꼈다. 당시 아시아 경제위기를 주제로 한 세미나에 갔다가 한 투자은행 발제자가 ‘한국 정부 의뢰로 한국 경제가 얼마나 위험한지 인도네시아·태국과 비교해 컨설팅을 해주었더니 한국정부가 돈은 잔뜩 주고서 컨설팅 결과를 덮어 버리더라’고 폭로했다. 1995년 11월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고 큰소리쳤던 김영삼 정부의 국가 경영능력은 엉망이었다.”
- 근대 사회는 스스로 사유하고 판단하는 ‘깨어있는 개인(個人)’들의 결사체 아닌가?
“그렇다. 하지만 2016년 하반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동과 문재인 정부 시절 조국(曺國)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조국 현상’을 겪으면서, 한국 사회에 파시즘의 망령이 깊이 깃들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가 1930년대 독일 국민의 투표로 정권을 장악했듯, 대한민국에는 선동되려는 기층 민중과 선동에 도(道)가 튼 정치꾼들, 선동으로 먹고사는 사이비 언론이 즐비하다. 매우 취약한 구조에서 사회가 굴러가고 있다.”
- 우리나라가 ‘중세지향 퇴행’을 끊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선진국 문턱까지 갔다가 중후진국으로 추락한 아르헨티나처럼 될 것이다. 아직은 우리 기업들이 튼튼해서 다행이지만, 후진국 몰락은 순식간일 것이다.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노란 봉투법’처럼 틈만 나면 기업들을 옥죄고 경쟁력을 약화시키려 안달 내고 있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정권이 이재명으로 연결되었더라면 남미(南美)든 북조선이든 눈 앞에 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근대 사회로 가려면 사회 知力 높여야”
- 이를 막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의 지력(知力)을 높여야 한다. 사회 구성원 누구나 널리 텍스트를 읽고 토론하는 습관이 붙어야 한다. 다음으로 사회의 허리로서 건강한 지식인층이 구축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건강한 지식인층에서 국가 미래를 개척하고 이끄는 핵심 엘리트가 나와야 한다. 사실은 이 세 가지 모두 ‘많이 읽자’는 얘기다.”
- 좀 생뚱맞다.
“쉬운 예로 일본을 얘기하겠다. 일본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하고 세계를 상대로 전쟁까지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국민 전체에 다져진 지력(知力)이 있었다. 그 지력은 독서에서 생긴 힘이었다. 일본에선 지금도 매년 100만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여럿 나온다. 요미우리신문과 아사히신문 구독자는 요즘도 각각 900만명, 600만명에 달한다. 독서를 통해 축적된 내공(內功)으로 기발한 생각과 야망, 목표를 품은 일본인들은 세계 정상에 오르고 있다. 디지털 분야에서 주춤하고 있으나 일본의 내공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홍 교수는 이어서 말했다.
“제 전공인 지적(知的)재산권 분야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일본과 한국 학계는 논문의 질(質)과 양(量)에서 10대 1 정도 격차가 나는 듯하다. 두 나라의 인구는 2대 1 정도지만. 우리 학계는 호흡이 짧고 유행에 따라 연구 주제가 오락가락한다. 재작년에는 NFT, 작년에는 메타버스만 외치더니 금년에는 모든 포럼·학회의 주제가 챗(Chat)GPT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 일색이다. AI가 대단히 중요한 주제라도 이렇게 쏠리기만 해서야 축적이 되겠는가?”
- 한국 지식인들이 공적 이슈로 논쟁하거나 사회적 담론을 주도하는 게 사라진 것 같다.
“한국 지식인 사회의 절반은 논문과 강의로 먹고사는 샐러리맨이고, 나머지 절반은 폴리페서(polifessor·정치 지향 교수)라는 말이 있다. 교수 연봉이 20년 가까이 동결된 탓인지,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나 사명감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대학진학률은 80%가 넘는데도, 지식인들의 담론(談論) 수준이 졸렬하다. 우리 사회에 과연 ‘지식인 집단’이 존재하는지 회의(懷疑)할 때가 많다.”
◇대학진학률 80%인데 지식인들 담론 수준 졸렬
- 우리 사회 전체가 붕 떠 있다는 느낌이 종종 든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한국이 예능국가화하고 있다’는 지적에 나도 동의한다. 나라 전체가 이성 보다는 감성, 윤리보다 인기, 깊이 보다 자극을 선호하며 먹방과 트롯, 음주가무(飮酒歌舞)에 빠져있다. 지식인들조차 진득하게 공부하며 깊이 있는 글을 쓰기보다 SNS에 몰두한다. 기자들도 SNS 베끼기 바쁘고. 대학도 정부 연구기금도, 실적용 논문을 요구할 뿐 제대로 된 학술서를 기대하지 않는다. 이렇게 붕뜬 사회는 교묘한 선동과 포퓰리즘은 물론 다수결로 포장한 정치 집단의 떼쓰기를 이겨낼 수 없다.”
홍 교수는 “유튜브나 동영상, 예능의 힘조차도 텍스트(text)에서 나온다. 현재 영상산업·엔터테인먼트산업이 약진한다고는 하지만 ‘텍스트에 대한 집착’이 없다면 그 영상산업도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불안이 있다. 출판시장이 궤멸 상태라 걱정”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거듭 강조하지만 ‘읽는 사회’가 근대로 가는 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부가 협력해 ‘책 읽는 사회’를 장기 정책으로 꾸준히 실천하기를 희망한다. 읽는 사회, 생각하는 사회가 성숙해야 청소년층이 건강해지고, 진중한 목소리를 내는 지식인 집단이 형성되고, 성장이 가능한 밝은 미래가 열린다.”
◇“尹 정부는 좌익 공세 물리치고 사회 방어해야”
- 윤석열 정부에 바라는 바가 있다면?
“윤 정부의 국방 외교정책 방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예우(禮遇)를 갖추는 점도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청년 전문가들과 신진 엘리트의 발굴에 인색한 점은 아쉽다. 윤석열 정부의 목표는 이승만 대통령이 수립한 공화정의 진전, 즉 좌익 전체주의 공세로부터의 사회 방어여야 한다. 그에 걸맞는 인재를 적극적으로 수혈하기 바란다.”
- 대학에서 청년들을 접하면서 무엇을 느끼나?
“종북(從北)이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청년들이 거의 없다는 게 희망적이다. 사회 현실에 비판적이라도 이들은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자에 가깝다. 선진국 한국에서 성장한 20~30대는 북한이나 공산주의와는 생래적으로 맞지 않는다. 이들은 또 맹목적 민족주의나 낭만적인 통일관에 냉담하다.”
- 앞으로 한국 사회의 주도 세력은 누가 맡아야 할까?
“1980년대부터 외교관과 주재원 자녀들에 대한 교육비 지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지 싶다. 덕분에 해외에서 교육받은 엘리트 집단이 생성되었다.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전반부에 태어나 조기(早期) 유학을 다녀온 30대와, 외고·과학고에서 국제 감각을 체화(體化)한 이들도 한국 사회의 큰 자산이다. 국내 젊은 엘리트들도 언어능력과 적응력은 기성 세대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나다. 유럽의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을 따라 최근 출범한 태재(泰齋)대학이 성공하고 확대 운영되기를 바란다. 아무 노력없이 최근 30년 동안 울궈먹은 586 운동권 세대는 분리수거통에 버리고 국제감각이 왕성한 엘리트들로 진용을 짜야 한다.”
- 이 자리를 빌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 사회 최상위 엘리트들의 경쟁력이 높아져야 한다. 지금 공공영역을 책임져야 하는 정치권의 한쪽은 인생에서 한 번도 공부를 제대로 해 보지 못한 운동꾼이 주류(主流)이고, 다른 한쪽은 인생에서 한 번도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제대로 해 보지 않은 오렌지족이 주류이다. 대한민국의 최근 30년간은 삼성·현대차·LG·SK 같은 대기업들의 힘으로 버텨왔다.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과 당면하고 있는 복잡·첨예한 국가 이슈를 해결하려면 지금 수준의 정치인들로는 어림도 없다. 우리와 경쟁하는 G7 선진국들과 중국은 최고 엘리트들이 국정을 책임지고 있고, 그 사회는 후속세대를 효율적으로 양성하고 있다.”
송의달의 모닝라이브 뉴스레터 구독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80902
https://chosun.app.link/w5Ia6DIvIEb
정재학 칼럼] 민주당에 드리운 반역의 그림자
스승이 사라진 사회만큼 암울한 사회도 없다. 밝은 곳으로 인도하는 자애로운 스승과 믿고 따르는 제자가 사라진 사회는 반목(反目)과 불신의 늪에 빠지기 쉽다.
믿지 못하여 싸우고, 믿고 싶지 않아서 배신과 거짓으로 물들어 가는 사회가 바로 현 대한민국이다. 정말이지 우리는 지금 남을 믿지 못한다. 본받을 만한 사람이 없고, 정직한 스승이 없기 때문이다.
김대중 이후 우리 대한민국엔, 전교조가 면죄부를 받고 교육계 전면에 등장하였다. 전교조의 위험성은 이미 당시에도 충분히 인지된 바 있었다. 그래서 파면이 되었고, 운동권 사범계 출신들은 임용되지 못하였다. 그런 그들이 김대중에 의해 모조리 복직되었다.
전교조의 가장 큰 위험성은 그들이 스승의 위치에서 노동자 신분으로 내려갔다는 점이었다. 스승이라는 이름의 고귀함에서, 돈으로 노동의 가치를 따지는 천박함으로 내려온 전교조는 '참교육'을 부르짖기 시작하였다.
그 참교육이란게, 노동자 농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 참세상이란 것이고, 그 참세상을 만들기 위한 교육이 참교육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노동자 농민이 주인이라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지향하는 교육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교단 장악을 위해 교장선생님들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얼마나 많은 교장선생님들이 손가락질과 모욕 속에서 떠나갔는지 모른다. 교육노동자들은 그렇게 교단을 장악했고, 이에 우리 사회에서 스승은 사라져갔다.
교육은 그 본질에서 가치를 바꾸고, 오직 돈과 노동의 교환, 더 나아가 교단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한 좌파인물의 생산기지가 되었다. 스승이 있을 수 없는 사회로 변질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 교육 속에서 성장한 학생들이, 이제는 무엇으로 길러졌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한때 군복무를 기피하는 풍조가 일어난 일부터 군복무 기피를 양심에 의한 선택이라는 어느 판사의 판결까지, 우리는 되짚어 보아야 한다.
학생들이 스승을 때릴 까닭이 없다. 학생들은 스승이 아니라 노동자를 때린 것이다. 학생들에게 얻어맞고 주저앉아서 울고 있는 교사들에게 먼저 물어보자. 너는 스승인가, 아니면 노동자인가.
어느 사회든 나라와 민족의 미래는, 지금 우리가 가르치는 현실의 학생들에게 달려있다. 집안도 마찬가지다. 지금 가르쳐 기르는 우리의 자식들이 집안의 미래를 결정짓는 법이다.
나라와 민족과 가족을 위한 희생과 헌신의 정신을 버린 학생들이 자라났을 때, 단순히 교사들만 얻어맞고 있을 것 같은가.
그리고, 전교조가 최후로 집중했던 교육이 친(親)북한찬양 교육이었음을 어찌 판단할 것인가.
우리 학생들이 김일성 고향이 만경대라는 것을 알아서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겨울보급투쟁으로 알려진 보천보 강탈사건을 독립운동으로 가르치는 짓이 과연 교육일 것인가.
학생들을 친북(親北)으로 몰고가던, 그 전교조 출신들을 전국구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모신 정당이 바로 더불어민주당 전신(前身)들이었다.
민주당이 전교조를 안고 온 지, 벌써 30년이 넘어간다. 이는 우리 학생들이 30년 한 세대를, 전교조에 의하여 길러졌음을 의미한다.
교육노동자들에 의해, 나라에 예의범절이 사라져, 경로효친 같은 전통의 질서 또한 사라졌다. 학교 정문 앞에서 마약을 팔고, 어린 학생들이 마약에 취하고, 흉기를 들고 길거리에서 아무나 찌르는 사회가 되었다.
정치인은 존경받는 스승일 수 있다. 국민을 밝은 곳으로 선도하고, 스스로 모범이 되어 미추(美醜)의 기준이 되는 어른. 정치인은 우리 사회의 어른이어야 한다.
그러나 앞서서 거짓말로 일관하고, 거짓말을 뉴스로 만들어 국민을 속이고, 심지어 자료를 조작하는 반역자들. 위안부할머니들에게 보낸 성금까지 등쳐먹은 저질도 있다.
민주의 이름으로, 한 떼의 민주당 사람들이 2024년 22대 총선을 향해 몰려가고 있다. 김대중에 의해 길러진 자들이다. 또한 전교조를 이용하여 나라를 망친 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돈과 명예, 권력을 움켜쥐기 위해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태양은 그들의 정체를 안다. 그들의 뒤에 드리워진 태양이 보여준 그림자. 늑대의 얼굴과 붉은 혓바닥, 요설(妖說)과 감언(甘言)으로 국민을 속이고 살아가는 빨갱이들이 보이지 않는가.
2023. 11. 16.
전라도에서 시인 정재학
이성주박사의 카톡에서
🛳황포강을 떠나며😔
사실 급체에 걸려도 이 정도 답답하지는 않을 듯 하다. 나는 2만원짜리 황포강 유람선을 타고, 상하이 푸동지구의 마천루들을 목을 꺾듯이 젖혀 쳐다보면서 한편으로는 배가 아프고, 한편으로는 걱정과 한숨이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이 언제 이런 나라가 되었나. 어딜 가나 숲을 이루는 저 엄청난 빌딩들과 사소한 일상의 거의 모든 것들이 인터넷과 IT기술로 움직이는 이 시스템들은 도대체 언제 만들어진 것인가.
지금 세계에 이처럼 IT기술이 일상생활 속에서 구현되고 있는 나라가 중국 말고 또 있던가?
10여년전 그 지저분하던 길거리와 시끄럽던 식당들, 악취에 찌든 화장실과 내의빨래를 걸어놓던 뒷골목은 어디로 갔나.
모처럼의 5박6일 중국 방문은 내가 소화하기 어려운 기름진 중국요리들을 갑자기 뱃속에 쑤셔 넣듯이, 이미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 것들을 실제로 갑자기 너무 많이 경험한 탓인지 내내 불편한 급체를 일으켰다.
중국은 더 이상 소문을 통해서나 듣던 숲속의 거인이 아닌 게 분명하다. 눈앞에 뚜렷이 서있는 거대한 두려움임을 나는 솔직히 가는 곳마다 느낄 수 있었다.
규모에서부터 압도하는 거대한 중국 국가도서관에 이어 상해도서관을 방문했을 때, 대한민국 최고의 국가도서관임을 자부하는 국회도서관 관장의 눈에 그 규모보다 놀라운 것은 사물인터넷(IoT)을 비롯해 최첨단 IT기술이 구현되고 있는 온갖 시스템과, 스타벅스가 1층 로비를 차지하고 있을 만큼 개방적이며 현대적인 내부의 모습이었다.
인구 2천400만의 상해시 전체 공공도서관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연결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전시용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말이 안될 만큼 자연스럽게 작동되고 있었다.
3천만권이 넘는 상해시내 모든 공공도서관의 책들을 언제 어디서나 보고 반납할 수 있는데, 수천개가 넘는 도서관 열람석에 빼곡히 앉아 책에 코를 박고 있는 젊은이들을 보고 있으니 그것 또한 전시용이 아님은 분명했다.
도대체 중국은 도서관에 대해 어떻게 이런 막대한 투자와 집중을 하게 되었을까? 부러우면 진다는데 벌써 이런 시스템만으로도 부러움을 느끼는 나에게 나보다도 몇살이나 젊은 상해도서관 관장은 푸동지구에 현재 짓고 있는 독일인 설계의 최첨단 거대도서관에 대해 "현실과 가상이 융합된 도서관이 될 것"이라고 침을 튀겼다.
"우리는 이미 중국에 한참 뒤졌다. 돈, 사람, 기술, 그 어느 것에서 우리가 이기는 게 있는가?"라고 상해에서 만난 최고위급 한국인사는 단언했다.
나는 돈, 사람, 기술 뿐만 아니라, 국가적 야망과 활력에서도 우리는 뒤지는 게 아닌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몇만 명이나 되던 상해의 한국교민들은 지금 숫자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수많은 사업가들이 한국으로 철수하고 있는 것은 무엇을 말해줄까?
단순히 사드사태의 여파인가? 한국과 일본을 유난히 차별하는 중국의 반칙경제 작용이기도 하겠지만, 내 눈에는 근본적으로
경쟁력(競爭力)에서 뒤지는 측면이 크지 않을까 싶다.
CES-Shanghai.
아시아 최대의 가전제품전시회인 CES-Asia가 마침 상해에서 열리고 있어 찾아갔더니, 몇시간을 걸어 다녀야 하는 수천개의 전시부스는 중국청년들로 넘쳐났다.
상상을 뛰어넘는 온갖 인공지능 기술들이 끝모르게 이어졌고, 각 부스마다 중국의 젊은 창업자들이 관람객들의 눈과 발을 붙잡았다.
어렵게 찾아간 한국부스는 저 한 구석에 초라하게 매달려 있었다. 눈에 띄는 기술과 제품이 없으니 찾는 사람도 별로 없고, 아무리 중국에서 하는 전시회라고 하더라도 민망할 지경. "한국의 대학교육은 취업을 가르치고, 중국의 대학은 창업을 가르친다"는 말이 있다.
혁신적 아이디어와 기술로 스타트업 창업에 나서는 중국의 수많은 젊은이들과, 공무원 되는 걸 인생의 목표로 삼아 고시공부로 청춘을 보내는 한국의 많은 대학생들. 그것도 절대인구에서 게임조차 안되는 규모의 나라와 어떻게 경쟁이 될 것인지.
밤이 되자 황포강은 1백층이 넘는 상하이타워를 비롯해 수많은 초고층 빌딩들이 외벽 전면에 네온사인 불빛을 뿜어내고, 이곳이 중국이 맞는가 라는 의문이 절로 나오게 형형색색의 인종들이 모두 카메라를 손에 들고 그 위용에 감탄을 연발했다.
지금 중국은 수천년 자국의 역사에서 최고의 전성시대를 누리고 있다. 좋든 싫든 시황제가 이끄는 국가권력은 절대적이며, '무엇이든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굴기의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중국 사람들 속에서도 그런 야심과 자부심은 역력히 느껴졌다.
나는 중국에 있는 동안 중국속에서 '한국'을 보지 못했고, 중국 사람들은 더 이상 '한국'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수천년 역사에서 겨우 2, 30여년 앞서갔던 우리는 지금 중국에게 무엇이고, 중국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또다시 '중화의 변두리 국가'로 전락해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했던 '사대와 굴종'의 그 길고 답답했던 역사를 되풀이할 것인가.
<허용범 국회 도서관장(圖書館長)>
--------------------------------
이 글을 읽고서 나는 절망감(絶望感)을 느낀다. 우리보다 여러 면에서 훨씬 앞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경제대국 중국을 보면서 참담(慘憺)함을 느낀다. 경제전문가로서 말한다며 우린 경쟁력(競爭力)면에서 도저히 중국을 추월(追越)할 수 없을 것이다. 암울한 우리의 현실에 절망하면서 전달한다.
- 이성주 박사의 카톡에서 -
깜짝 놀랄 소식
《치매의 원인》
고규명 IBS 혈관연구단장이
올해 대한민국 최고의 과학기술인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사람의 머리는 두개골, 뇌수막, 뇌의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뇌를 감싸고 있는 뇌 척수액은 뇌를 보호하고 뇌의 대사로 만들어진 노폐물을 배출하는 역할을
합니다.
뇌 척수액의 양은 평균 150ml이지만
하루에 450~500ml의 뇌 척수액이 새로 만들어집니다.
매일 새로 만들어지는 450~500ml의 뇌 척수액이 어디로 배출되는지 지금까지 미궁에 빠져있었습니다.
고규영 기초과학연구원 혈관연구단장 겸 KAIST 특훈교수 연구팀은 뇌 아래쪽 림프관을 통해 뇌 척수액이 빠져나가는 것을 최초로 발견했습니다.
이른바 뇌 척수액의 배수구인 셈입니다.
나이가 들면 림프관의 배수능력이 떨어집니다.
따라서 뇌의 노폐물이 밖으로 나가지 못해 쌓이게 되고 결국 이 폐 뇌척수액이 쌓여서 "치매의 원인"이 되는 것을 밝힌 것입니다.
고 단장은 이 연구로 올해 대한민국 최고 과학기술인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뇌에서 나온 폐 뇌척수액이 이번에 발견된 뇌막 림프관을 통해 배출되고 목에 있는 200~300여개의 림프절에 모인 뒤 전신순환 계통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턱 밑 목 부위를 마사지해 주면 뇌 척수액 흐름이 원활해집니다.
간단하게 아침 저녁으로 10~15분간 턱 밑 목을 잡고 어루만지면 됩니다.
쉽지요?
나이 든 노년일수록 턱 아래 목의 마사지를 꾸준히 해주면 치매예방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이렇듯 어렵지 않게 턱 아래 목마사지를 매일 실천하셔서 치매에서 해방되시길 바랍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혁신은 이렇게 합시다 !
[세계 최고의 지도자 한분을 공개 합니다]
"""""""""""""""""""""""""""""""
🔹️앨빈 토플러
"민주화는 산업화가 끝난 후에 가능하다.
이런 인물을 독재자라고 말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박정희 모델은 누가 뭐라고 말해도 세계가
본받고 싶어 하는 모델이다."
🔹️헨리 키신저
"20세기 혁명가들 5인 중
경제발전이라는기적을 이룩한 사람은
오직 박정희 한 사람이었다.
그는 산업화를 통해 민주화의
토대를 다진 인물이라서 존경한다."
🔹️아이젠 하워 대통령
"박정희가 없었다면
공산주의의 마지노선이 무너졌다."
🔹️폴 케네디
"박정희는 세계 최빈국을 불과 20년 만에 세계 정상급 국가로 만든 인물이다."
🔹️후진타오
"나는 새마을 운동을 많이 연구했다.
상당수 중국 국민들이 박정희를 존경한다."
🔹️등소평
"박정희는 나의 멘토다. 아시아의
4마리용 중 박정희를 특히 주목하라."
🔹️마하티르와 훈센
"박정희대통령을 최고로 존경한다."
🔹️김정일
"예전에 유신에 대해 말들이 많지만,
박정희는 새마울 운동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키지 않았는가? 서울을 보라.
서울은 도쿄보다 나은 민족의 자산이다."
--- 정주영과 대화 중
🔹️푸틴
"박정희에 관한 책은 어떤 책이라도
다 가져오라. 그는 나의 모델이다."
가스프롬 등 주요 에너지 기업과 전략
사업의 국영화를 통한 경제 개발 방식도
"박정희식 모델"을 답습한 것이라는 평가.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
"박정희 대통령이 눈앞의 이익만
쫓았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다.
오직 일만하고 평가는 훗날
역사에 맡겼던 박정희를 존경한다.
한국을 번영시키겠다는
박정희의 강한 의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에즈라 보겔 하버드대 교수
"박정희가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도 없다.
박정희는 헌신적이었고,
착복하지 않았으며, 열심히 일했다.
그는 국가에 일신을 받친 리더였다."
🔹️김형아 호주국립대 교수
"박정희 집권 당시 율곡 사업에
관련됐던 공무원들은 놀랄 정도로
청렴했고, 박정희의 청렴을
반박할 만한 근거는 나타나지 않았다."
🔹️브루스 커밍 박사
"유신 후 한국은 종합적인 산업구조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다.
그것은 위대한 성공(a grand success)
이자, 한국의 독립 선언이었다.
그는 다른 후진국 지도자들과
달리 부패하지 않았다."
🔹️하버드 대학교 비교정치학 과목
논문과 책으로 출판.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
"고속도로, 조선소도 없는 나라에서 선박, 원자력 기술등 이미 50년 이상의미래를
내다보는 혜안."
하버드대학교 비교정치학 과목 중에서
🔹️피터 드러커 미국 사회학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가 이룩한
성과 가운데 가장 놀라운 기적은
바로 박정희의 위대한
지도력을 탄생한 대한민국이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정치 지도자들 중 내가 진심으로
존경한 사람은 박대통령뿐이다.
그분의 사명감, 추진력, 그리고
치밀함은 비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허버트 험프리 미국 부통령
"박정희대통령은 적어도 한국에서
가장 작으며 가장 위대한 인물이다."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한국의 경제발전 모델을
중요시하고 있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전기를 많이 읽으며
박정희식 모델을 참고로 하고 있다."
경제발전과 부정부패 차단을
동시에 하기위해서는 박대통령식 모델이
가장 적합다가고 평가했다.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
"박정희 같은 지도자는 일찍이 본 적이 없다"
미국의 34대 대통령이자
37대 부통령을 지낸 린든 존슨.
🔹️다나카 가쿠에이 일본 총리
"박정희의 죽음은 한국에서
가장 비극적인 일이었다.
이를테면 날개를 달고 승천하려는
호랑이가 날개를 잘린것 같은...."
🔹️미국 뉴욕타임즈
"신화를 만든 한국경제의 건축가"
🔹️독일 국정교과서
"남한은 세계경제로 통합되었다.
대통령 박정희(1961~1979)는 강력한 손으로 남한을 농업 국가에서
산업능력을 가진 국가로 만들었다.
수도 서울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독일 국정교과서(중학교 지리 109)
🔹️허만 미국 연구소장
허만은 싱가폴 총리에게
"당신은 한국의 박정희를
만나봐야 할 것같다. 내가 만나보니
대단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이를 듣고 싱가폴 총리는
박정희대통령을 만나 후에 "아시아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지도자 중
한 명으로 박정희를 꼽고 싶다. 그는 오직 일만 하였으며 평가를 바라지 않았다."
🔹️오버홀트 미대통령 수석비서관
"박정희는 한국 민주주의에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이다.
박정희는 근대화 성공으로 중산층을 산출했고 이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었다."
🔹️로런스 헨리 서머스
미국 재무장관이자 하버드대 총장.
"박정희의 한국은 불과
한 세대 안에 가난을 극복하고 세계유수의 산업국가 반열에 올랐다.
20세기를 틀어 가장 충격적이고
놀라운 일이였다."
장신대 김철홍교수의 특별강의. 주사파의 비밀.
주사파 초기 대부격인 김철홍교수의 특별강의에서 주사파의 많은 실제적 부분을 알 수 있다.
https://youtu.be/tPWzGnQm0eg?si=wPG98OvK78xUig2a
국민도 모르는 사이, 대한민국 이렇게 변했다.
공산화로 가는 대한민국. 교수직을 걸고 강의.
https://youtu.be/Yagt53eFFe0?si=41CyhgHA41kPswNl
주사파 공부해야 알 수 있다.
주사파 특강편집 재방송
https://m.youtube.com/watch?si=t7bmFeefZNIBJ60W&v=lFysH1RCUs0&feature=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