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장은 대통령에게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배우자 없는 朴槿惠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두 배 더 중요”
⊙ “호남 출신 총리나 대통령실장만으로는 지역갈등 해소에 한계”
金重權
⊙ 74세. 고려대 법학과 졸업. 단국대 법학박사.
⊙ 서울고법 판사, 제11~13대 국회의원, 국회 법사위원장,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대통령비서실장,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대표최고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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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朴槿惠) 대통령 당선자가 대통령직 인수위원장과 대변인, 인수위원 등을 속속 임명하고 있다. 조만간 있을 조각(組閣)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또 박 당선자가 임기 초기의 국정(國政)을 어떻게 이끌어나갈지도 관심이다. 박근혜 당선자는 임기 초반 국정을 어떻게 이끌어나갈 것인가? 또 대통령실 운영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
이에 대한 경험담을 듣기 위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첫 번째 비서실장인 김중권(金重權·74)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나 보았다. 생존해 있는 ‘정권의 첫 번째 비서실장’은 박관용(朴寬用·김영삼 정권), 김중권, 문희상(文喜相·노무현 정권), 유우익(柳佑益·이명박 정권) 전 실장 등 모두 네 명이다.
그들 가운데 김중권 전 실장을 택한 이유는 그의 특이한 이력 때문이다. 다른 전직 실장들은 모두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입장을 같이했거나 그들의 측근인 경우가 많았다. 김중권 전 실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DJ)과는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섰던 구 여권(舊 與圈) 출신 인사였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대선(大選) 한 달 전에 인연을 맺었다. 그럼에도 김중권 전 실장은 그냥 보필만 한 게 아니라 ‘막강한 비서실장’(함성득 고려대 교수)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당선자 비서실장으로 유일호 새누리당 의원을 쓴 데서도 보듯 박 당선자는 앞으로 요직 인사에서 언론이 거론하거나 실세(實勢) 내지 측근으로 꼽히는 인물을 의도적으로 배제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실장 역시 마찬가지일 공산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김중권 전 실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 김중권 전 실장은 대통령 비서실장이 되기 전 당선자 비서실장으로 새 대통령이 정권을 인수하는 과정도 지켜보았다. 이 역시 지금 시점에서 의미가 있는 일일 것이다.
지난 1월 11일 오후 서울 북창동에 있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김중권 전 실장을 만났다. 그는 “정치를 그만둔 후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웃었다.
“DJ, 임명하면서 지역갈등 해소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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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이 1999년 8월 17일 청와대에서 김중권 비서실장의 보고를 듣고 있다. |
—민정당 소속으로 3선(選) 의원을 하는 등 구 여권 출신인데, DJ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습니까.
“1997년 대선 한 달 전쯤 DJ가 만나자고 전화를 걸어왔어요. 마포 가든호텔에서 단둘이 만났는데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마침 저도 김영삼(金泳三) 정권에 대해 실망하고, 또 정권교체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참이어서 기꺼이 응낙했습니다.”
—그 이전에는 DJ와 별다른 인연이 없었습니까.
“DJ와는 13대 국회의원을 함께 했습니다. 당시 법제사법위원장이던 나는 여야 간에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면서 단 한 번도 날치기를 하지 않았어요. 또 1992년 대선 당시 정무수석비서관으로 정국 정치 전반을 조율하면서 자주 뵐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저를 좋게 보고 주목했던 것 같습니다.”
—비서실장직은 언제 어떻게 제안받았습니까.
“대선 다음 날인 1997년 12월 20일 저녁 DJ가 직접 집으로 전화를 걸어서 일산 자택으로 와달라기에 갔더니, ‘새 정부의 비서실장을 맡아달라’고 하더군요. 그는 자신이 호남지역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는데, 영·호남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영남 출신 실장이 필요하다는 것과, 자신의 캠프에는 청와대 경험이 있는 사람이 없다는 점을 들면서 그러한 조건에 맞는 사람으로 저만 한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했습니까.
“거절했습니다. ‘아직 대통령 취임까지 두 달이 남았는데, 제 경험상 인사(人事)는 유동적(流動的)인 것입니다. 오늘은 갑(甲)이라는 사람이 가장 적당해 보이더라도, 내일은 을(乙)이 적당해 보일 수 있습니다. 인사는 정치상황을 보면서 해야 합니다. 또 노태우 정권의 정무수석을 한 제가 새 정부의 비서실장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틀 후에 또 불러 권유하기에 거절했더니, 25일 다시 불러 ‘이미 결심했으니 더 이상 거절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김 전 실장은 “당선자 비서실장으로 임명되면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는 것으로 정해진 것이었고, 당시 언론에도 그렇게 보도됐다”면서 “역대 대통령 비서실장 중에서 가장 빠른 시일 내에 결정된 것일 것”이라고 말했다.
“구색 맞추기식 탕평인사로는 한계”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도 지역갈등 해소는 우리 정치의 큰 숙제다. 박근혜 당선자도 ‘국민대통합’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호남총리론’이나 ‘탕평(蕩平)인사’ 얘기도 심심찮게 나온다. 과연 그렇게 해서 지역감정을 풀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겁니다. 과거 호남분들은 영남이 장기집권하면서 지역사업이나 인재등용에서 불이익을 입었다는 피해의식이 강했습니다. 그러다 호남 출신인 DJ가 대통령이 되자 이번엔 영남에서 마음을 열지 않았습니다. ‘호남 대통령’이라는 것 자체가 불쾌했던 것이죠. 이번에도 ‘호남 출신 새누리당 후보’가 대통령이 됐다면 좋았겠죠. 하지만 ‘영남 출신 새누리당’ 후보가 대통령이 됐으니, 쉽게 마음이 열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역감정은 호남 총리, 혹은 호남 출신 대통령실장을 쓰고, 지역사업 좀 떼어 준다고 해서 풀릴 일이 아닙니다. 김대중 대통령도 영남 출신 김중권을 비서실장으로 썼지만 안 됐잖아요? 지역감정 해소는 정치인들의 힘만으로 풀 수 없습니다. 사회지도층, 종교인, 지식인 등 각계각층이 모두 나서서 풀어나가야 할 일입니다.”
—그럼 인위적인 지역배려 인사는 무의미하다는 얘긴가요.
“탕평인사, 하기는 해야지요. 다만 구색 맞추기식으로 장관 몇 자리 호남에 떼어 주고, 그 아래 실·국장들, 특히 힘 있는 자리를 영남 출신이 다 차지하는 식이라면 의미가 없다는 얘기죠.”
—비서실장을 맡기면서 DJ가 특별히 당부한 것은 없습니까.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께서 당부했다기보다도 저 자신이 다짐한 게 있습니다. 당선자께 ‘비서실장을 마지막 공직이라고 생각하고 사심(私心) 없이 성심껏 일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실 저는 1998년 봄 세명대 총장으로 가기로 되어 있었거든요. 비서실장은 생각지도 않았던 자리입니다.”
“비서실장은 政務型이 바람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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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권 대통령당선자 비서실장이 1998년 2월 1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내정자를 발표하고 있다. |
—박근혜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대통령실장이 정무형(政務型)이어야 하느냐 실무형(實務型)이어야 하느냐를 두고 논란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대통령실장은 단순히 대통령의 심부름꾼이 아니라, 정치적·정책적 결단의 조언자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당연히 정무형이어야 합니다.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국회와의 관계입니다. 국회와 얼마나 잘 조율할 수 있느냐에 대통령의 성패(成敗)가 달려 있습니다. 물론 정무수석비서관이 있지만, 정무수석으로는 국회를 상대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가령 정무수석이 2~3선 의원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국회에 가면 선수(選數)가 그 이상 되는 의원들이 많습니다. 미국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의원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설득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실적으로 그게 어렵기 때문에 대통령실장이 그 역할을 해야 합니다.”
—국회의원을 한 게 실장직을 수행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됐습니까.
“물론 큰 도움이 됐습니다. 제가 판사 출신으로 법률전문가라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처음 국회에 들어가고 보니 제가 무식한 사람이더군요. 그래서 그때 참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국회의원을 세 번 하는 동안 국회에서 건설위, 교통체신위, 문교위, 법사위 등을 거치면서 국정 전반에 대해 나름 공부를 했던 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소통’이 강조되고 있는데, 야당과의 소통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의 경우는 야당인 한나라당에 함께 정치하던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도움이 됐습니다. 야당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야당과 정보를 공유(共有)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집권세력은 정보를 독점하려는 생각에 빠지기 쉬운데, 그러면 안 됩니다. 야당을 정치적 파트너, ‘잠재적 여당’으로 생각하고 정보를 공유해야 합니다. 어떤 정책을 시행할 때에는 미리 야당의 의사를 타진해 보고, 인사를 할 때도 그에 관한 정보를 조금 흘려줘야 합니다. 인사보안을 너무 강조하면서 갑작스럽게 인사를 발표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진정한 전문성은 이론과 현실의 接合능력”
—박근혜 당선자는 ‘전문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문성은 당연히 중요합니다. 청와대는 일을 배워가면서 일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바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전문성이 있어야죠. 문제는 ‘전문성’의 개념입니다. 학자들은 특정 분야의 이론에는 밝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현실을 얼마나 알까요? 진정한 전문가는 이론과 현실을 접합(接合)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지 못하는 사람은 전문가라고 할 수 없지요. 이번 인수위를 보니 ‘교수 천국’이던데, 인수위는 정부 정책과 업무를 인수하는 기구입니다. 그걸 교수들이 할 수 있을까요?”
—첫 청와대 비서진을 짜면서 DJ와 얼마나 긴밀하게 의논했습니까. 의견을 잘 받아주던가요.
“DJ는 제게 비서실장을 맡아달라고 하면서, 함께 일할 사람으로 이강래, 장성민, 최규선, 박금옥씨 등을 지명했습니다. DJ는 인사에 관해 자신의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그걸 고집하지는 않았습니다. 정무수석의 경우, 원래 다른 사람을 의중에 두고 있었는데 제 건의를 받아들여 문희상씨로 바꾸었습니다.”
—비서실 검증은 어떻게 했습니까.
“이강래씨야 캠프에서 일했으니 검증이 필요 없었고, 박금옥씨도 여성이어서 크게 검증할 일은 없었습니다. 장성민씨도 알아봤지만,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규선씨의 경우는 본인이 조지 소로스와의 친분을 강조하고, 학력도 대단한 것처럼 주장했는데, 알아보니 문제가 있더군요. 가정사정이 복잡하고 학력도 불투명했습니다. 그래서 최규선씨를 플라자호텔로 불러서 ‘같이 일할 수 없다’고 통고했습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 ‘단 하루라도 청와대 경력을 쌓고 싶다’고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거절했지요. DJ도 제 얘기를 듣고는 포기하더군요. 나중에 최규선씨가 하고 다닌 일을 생각하면 그때 그를 안 쓰길 잘했죠.”
“언론에 거론된 횟수까지 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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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덕 통일부장관(왼쪽)과 임동원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1998년 6월 16일 국무회의에 앞서 정주영 현대명예회장의 방북 등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
—내각 인선도 의논했습니까.
“그때는 DJP연대를 할 때여서 각료직을 DJ와 JP(김종필) 측이 반분(半分)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DJ는 구체적으로 내각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고 있더군요. 그래서 각료들을 경제 분야와 비(非)경제 분야로 나누어 경제 분야는 JP 측에서, 비경제 분야는 DJ 측에서 가져가는 것으로 하자고 건의했습니다. 물론 경제도 중요하지만 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비경제 분야를 장악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습니다. DJ도 그걸 이해하더군요. 그다음부터는 그 자리에 누구를 대입(代入)하느냐 하는 문제만 남았습니다.”
—각료들은 어떻게 인선했습니까.
“각 수석비서관들에게, 언론이 소관 분야의 각료 후보로 누구를 거론하고 있는지 그 명단을 모아 정리하되, 거론된 횟수까지 파악해 기록하라고 했습니다.”
—지금 박근혜 당선자는 언론에 거론되는 사람은 배제한다고 하던데, 그와는 정반대였군요.
“DJ는 정치를 오래해서인지 언론에 대해서는 일종의 존경심 내지 두려움을 갖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언론 보도를 중시했습니다. 그리고 하마평(下馬評)이 무성한 사람은 기본적으로 그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기 마련이고요.”
—조각(組閣)과 관련해 기억에 남는 일이 있습니까.
“저는 통일부 장관으로 장상(張裳) 이화여대 총장을 추천했습니다. 그가 남북관계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북 출신이고 이대 출신의 대표적 여성계 인사여서 통일부 장관으로 상징적 의미가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DJ는 중앙정보부 출신 북한전문가인 강인덕(康仁德)씨를 통일부 장관으로 하자고 하더군요. DJ는 ‘아직도 나를 좌익, 용공(容共)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보수우익에 철저한 사람을 써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강인덕씨가 중앙정보부 국장 시절 어떤 자리에서 토론하는 것을 보니, 전문성이 있고 합리적이더라’고 했습니다.”
—인사 때마다 검증 부족이 논란이 되곤 합니다.
“인사는 공식기관에서 작성해 놓은 존안(存案)자료에 의존하는 것이 좋습니다. 거기에는 그 사람에 관련한 온갖 정보가 다 들어 있습니다. 비공식조직을 통해 듣는 정보, 특히 인사 관련 정보는 검증이 안 된 것이 많습니다. 거기에 의존하다가는 일을 그르칠 수 있습니다. DJ가 쓰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어도 존안자료에 비추어 문제가 있으면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DJ는 ‘아, 그건 내가 몰랐다’면서 받아들였습니다.”
“DJ가 힘 실어줬다”
—존안자료에 그렇게 ‘모든 것’이 들어 있음에도, 인사청문회 때마다 이런저런 문제들이 불거져 나오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입니까.
“존안자료에 나와 있는 하자(瑕疵)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안이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임명권자는 특정인을 써야겠다는 생각에서 후퇴하지 않고, 곁에서는 그걸 바로잡도록 설득하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죠.”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의중을 잘 읽어야 한다고 합니다. DJ를 오래 모신 것도 아니고, 정치적 배경도 달랐는데 DJ의 의중을 읽는 일이 어렵지는 않았습니까.
“DJ는 사고(思考)가 무척 합리적인 분이었습니다. 저도 법조인 출신이어서 사고가 합리적인 쪽이고요. 합리적인 사람끼리 만나서인지 대통령의 의중을 읽는 일이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대통령이 비논리적이고 주관적이면 모시기 어렵겠지요.”
—대통령에게 직언을 하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죠.
“저는 비서실장 공관으로 들어가면서 언제든 돌아갈 수 있게 북아현동 집을 그대로 비워놓았습니다.”
—비서실장 재직 시 수석비서관들이 실장을 거치지 않고는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못하게 하는 등, ‘힘이 센’ 실장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비서실장이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은 실장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논의하고 정리된 것입니다. 수석비서관이 대통령께 단독으로 보고하면, 자신의 주관적 의견이 들어가게 됩니다. DJ도 그걸 이해해서 수석비서관들에게 실장에게 반드시 먼저 보고하고, 사안이 시급해 실장을 거치지 않고 먼저 보고한 경우에는 사후(事後)에라도 실장에게 보고하도록 했습니다.”
“책임총리제가 무슨 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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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가 1998년 2월 22일 조각(組閣) 인선 문제와 관련 청구동 자택으로 찾아온 김중권 실장을 배웅하고 있다. |
—이른바 ‘실세’ 비서관 중에는 동교동 출신이 아닌 실장을 제쳐놓고 따로 노는 사람도 있지 않았습니까.
“모 수석비서관의 경우 소관 업무에 관해 저를 거치지 않고 대통령에게 직보하거나, 청와대 돌아가는 이야기를 권노갑씨에게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DJ가 제게 힘을 실어주자 어느 날 저를 찾아와서는 ‘청와대에서 실장님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충성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얘기하더군요.”
—김종필 국무총리의 보고 때도 배석했습니까.
“처음에는 배석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두 분이 불편할 수도 있겠더군요. 두 분만이 나누어야 할 이야기도 있겠고…. 그래서 나중에는 배석했다가 중간에 자리를 비워드렸습니다. 그래도 JP는 DJ를 만나고 나가는 길에 제게 들러 두 분이 나눈 이야기를 해주고 가곤 했습니다. DJ가 나중에 제게 얘기해 주기도 했고요.”
—일각에서 거론되는 책임총리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책임총리’라는 게 무슨 얘긴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헌법상 총리는 책임을 지는 자리가 아닙니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중심제입니다. 이원집정부제(二元執政府制)가 아니에요. 프랑스처럼 대통령과 총리가 권한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대통령에게 너무 집중된 권한을 축소, 견제한다는 면에서 책임총리제 같은 얘기가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대통령에게 권한이 너무 집중된다고 하는데, 대통령제하에서 그걸 뭐라고 하면 안 되지요. 대통령은 헌법상 권한을 행사하면 되는 거고, 국회는 헌법상 자기들에게 부여된 권한을 가지고 그걸 견제하면 되는 것입니다.”
—청와대와 행정부 간의 소통은 어떻게 했나요.
“어느 날 DJ가 각부 장·차관들은 물론 실·국장들과도 대화를 가지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래서 각 부처를 돌면서 실·국장들과 식사를 하면서, 김대중 정부의 시책을 설명하고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보좌기능 多岐化는 바람직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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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2월 14일 김중권 대통령 비서실장이 김상현 의원(왼쪽), 권노갑 전 국민회의 부총재(가운데)와 골프를 치기 전에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 비서실 외에 정책실, 외교안보실 등을 두었고, 박근혜 당선자는 국가안보실을 설치하려 합니다. 이처럼 대통령 보좌기관이 다기화(多岐化)되는 걸 어떻게 보십니까.
“물론 전문성에 따라 보좌기능을 세분화하는 것은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서실장은 국정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런 식으로 여러 개의 실(室)을 두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대통령비서실과 경호실을 대통령실로 통합한 것은 어떻게 봅니까.
“잘못이라고 봅니다. 비서실과 경호실은 기능이 다릅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경호실은 독립 부서로 놔두되, 실장의 직급은 차관급으로 했습니다. 그래도 경호업무를 수행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대통령 친인척의 비리는 오랜 고질이다. 박근혜 당선자와 관련해서도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중권 비서실장’ 시절에는 청와대 비서실이 축소되면서 민정수석비서관이 없어지고, 민정비서관이 실장 직속으로 있었다. 대통령 친인척 비리 문제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는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을까.
“DJ의 차남 김홍업씨가 각 부처에 인사청탁을 하고 다닌다는 민정비서관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인사청탁이 들어오면 내게 얘기해라. 내가 판단해서 들어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거르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재직하는 동안에는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호남 출신 비서실장이 들어선 후 동교동 가신(家臣)들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면서 흐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민정수석은 친인척 비리를 감시하는 게 아니라 덮는 게 일’이라는 얘기도 있더군요.
“솔직히 친인척 비리를 완전히 막을 제도적 장치는 없습니다. 친인척들의 책임감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대통령이 재직하고 있는 동안, 친인척들은 무엇인가 할 생각을 아예 버려야 합니다. ‘내가 그만한 능력이 있는데…’라거나, ‘법률상 문제가 없는데…’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대통령 주위에는 예스맨 뿐”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은 육영수 여사가 피살된 후 주위 사람들에게 외로움을 많이 피력했다. 이 경우가 아니더라도 역대 대통령들은 예외 없이 ‘권력의 정점(頂點)’에 선 고독감과 책임감을 토로하곤 했다. 대통령의 인간적 불행이나 고민은 국정 판단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박근혜 당선자의 경우,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공인(公人)의식은 남다른 반면 가족이 없어 많은 사람이 걱정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법(解法)을 물었다.
“대통령 비서실장을 그만두고 새천년민주당 대표로 있을 때였습니다. 한번은 DJ를 뵈었더니, ‘김 대표, 밖에 할 얘기는 아니지만,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하더군요. 그만큼 대통령직은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든 자립니다. 박근혜 당선자는 배우자(配偶者)가 없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대통령실장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실장을 잘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실장이 다른 사람보다 두 배로 노력하는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의 중요성은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대통령 자리는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자리입니다. 주위에는 온통 예스맨뿐입니다. 대통령에게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내와 대통령실장뿐입니다. 그럴수록 남의 얘기를 들어야 합니다. 남의 얘기를 듣는다는 것은 아무 얘기에나 귀를 기울이라는 게 아닙니다. 검증과정을 거친 정제된 얘기를 들으라는 것입니다. 공식적인 기구의 검증이나 논의를 거친 사안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따라주어야 합니다. ‘그럼 나는 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전문가의 의견을 따르면 실수가 없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전문가는 앞에서 말한 이론과 실무를 접목시킬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