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16일(일)의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아이슬란드 여행의 3일차, 레이캬비크 인근의 레이캬네즈(Reykjanes)반도로 여정의 추를 돌렸다.
이 지역이 대중적 인기를 얻지 못한 곳임을 방증하듯 12인승 밴엔 나를 포함해 모두 6명의 투어신청자만이 탑승해 있다. 미국에서 온 남성 헤어디자이너 2인, 네덜란드인 부부 1쌍, 프랑스에서 온 목장 아가씨 1인, 그리고 나, 이렇게 동서양에서 모인 우리 6사람은 오붓한 분위기 속에 금방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오전 9시, 어둠에 묻힌 BSI터미널을 출발한 우리의 밴은 레이캬비크 연안 부두를 한 바퀴 휘돌고 나서 곧장 시내방향에서 서남진(西南進)해 레이캬네즈반도로 향하였다. 아직 먼동도 트지 않은 생선 덕장에는 말린 대구의 비릿한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점차 내륙으로 남하해 들어가자 이내 검은 화산재에 뒤덮힌 용암밭(lavafield)이 끝없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검은 대지에 매스게임하듯 돌출하는 산록과 분화구와 호수의 하모니가 어둠을 서서히 걷어내고 있었다. 마치 ‘스타워스’의 배경 속에 몰래 잠입한 듯한 착각이 인다. 잿빛 비포장도로와 구릉을 넘나들며 오르막을 오르니 눈 앞에 얼음빛 호수가 자태를 드러낸다. 레이캬네즈반도 최대의 화산호 클라이파바튼(Kleifarvatn)호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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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을 두른 산록과 검정빛 흑토 사이로 수줍은 듯 냉수 마사지한 얼굴을 내비치는 얼음빛 호수의 고혹적 품새가 예사롭지 않다. 마치 캄차카반도에나 있을 법한 자연의 풍광이 이곳에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다. 서서히 먼동이 트기 시작한다. 이 지역 강수량의 바로미터로 체크되어지는 호수의 수량은 해마다 줄어드는 실정이란다. 뉴욕 출신의 성격 좋은 헤어 디자이너 폴이 화산 산록을 배경으로 사진을찍어주며 내게도 자신의 카메라를 맡긴다.
클라이파바튼(Kleifarvatn)호수를 지나쳐 용암의 검은 고름 같은 흑색 비포장도로를 계속 달리다 보니 최루탄을 터트린 듯 온통 황갈색 대지 위에 희뿌연 증기가 난무하고 있다. 코를 찌르는 유황 냄새가 이 곳이 고열․고온의 온천지대임을 각인시킨다. 셀튄(Seltun) 온천 지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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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분화의 후유증으로 잉태된 다종다양한 토양의 용트림이 느껴진다. 보글보글 방울이 맺혀진 수포덩이를 양산하는 웅덩이 곳곳에서 대지의 여신, 가이아(Gaea)의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일대를 한 바퀴 돌고 나니 온통 신발은 진흙투성이다. 호젓한 셀튄 호수가에서 지열(地熱)을 숙지운 뒤, 크리쉬빅(Krisuvik)을 가로질러 레이캬네즈반도에서의 여정을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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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에 이끼를 덮어쓴 흑록의 바위군(群)이 흑산(黑山)과 끊임 없이 조우하는 흑토(黑土)의 비포장 구릉을 쉴 새 없이 넘어가다 보니 어느덧 안개비 속에 해변포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대구잡이로 유명한 어항 그린다빅(Grindavik)이다. 흩날리는 가랑비가 반도 남단의 겨울 정취를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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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도 정겨운 ‘맘마미아’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한 뒤, 우리의 가이드 스티브는 상어 고기의 염장(鹽藏) 창고로 우리를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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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캬네즈반도의 대표적 어항에 왔으니 맛이나 보라며 잘게 썬 말린 상어고기를 요지에 찍어 우리 입에 밀어 넣는다. 그리곤 보드카 한 잔씩을 돌린다. 명절 제사 때 먹던 돔배기의 상큼한 뒷맛이 알싸한 보드카 향에 어울려 혀끝에 전해져 온다.
이어서 우리는 난데 없이 양떼를 방목한 기슭과 내장객이 아무도 없는 을씨년스런 해변 골프장을 지나, 차가운 돌풍이 몰아치는 반도의 남서부 해안을 치달려 레이캬네스타(Reykjanesta)해변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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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가랑비까지 가세해 한겨울의 반도 최남단은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1887년 지진으로 무너진 옛 것을 대신해 1907년에 재건된 레이캬네스비티 (Reykjanesviti)등대만이 배야펠(Bajarfell) 언덕에서 외로이 대서양의 풍랑을 맞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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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 70,000마리가 날아든다는 세계 최대의 북양가마우지(gannet) 서식지 엘데이(Eldey) 바위섬을 등지고 급하게 인증샷을 찍은 후 쫓기듯 해안을 떠나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창을 때리는 가랑비 속으로 대지에서 쏟아 오르는 자욱한 연기가 안광(眼眶)에 들어찬다. 이 지역의 광범한 화산온천지구대에서 분출되는 어마어마한 지열의 위력을 실감하기에 충분하다. 연옥(煉獄)에 다름 없는 이곳의 지열을 발전(發電)에 활용해 인근에 대규모 발전소가 가동하고 있었는데, 황량한 벌판에서 발산되는 대연막의 향연이 아이슬란드 대자연의 포효(咆哮)를 상징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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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 서쪽 해안을 북진해 올라가다 갑자기 밴이 멈춘다. 표지판을 보니 예가 스토라산드빅(Stora-Sandvik), 유라시아 지판과 북아메리카 지판이 이곳을 기점으로 분리되었다 한다. 양 지판이 만나는 접점엔 숱한 지각활동과 분화의 흔적이 잿빛 구릉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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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밴은 잿빛 대지에 끝 없이 이어진 대형 파이프를 따라 길을 재촉한다. 이 파이프를 통해 지열로 데워진 용암수를 송출한다는데, 그러고 보니 차창 밖으로 자욱한 연기 속에 웬 정유공장 같은 건물이 눈에 띈다. 이곳의 용암수로 특수처리된 일급 제품을 생산하는 화장품 공장이란다. 유리공예점 한 군데를 더 들른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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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우리의 밴은 오늘의 최종종착지 블루라군(Blue Lagoon)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오늘 하루 성심성의껏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스티브를 포함한 7명의 일행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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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군(Lagoon)은 아이슬란드어로 온천을 의미한다. 따라서 블루라군은 ‘푸른 온천’이란 뜻일 터…….
아이슬란드를 대표하는 명소이자 세계 최대의 노천온천인 블루라군은 아이슬란드의 관문 케플라빅(Keflavik) 국제공항 어귀에 위치해 출국길의 외국관광객이 들리기도 한다. 블루라군은 인근의 지열발전소에서 나오는 물로 채워진다. 아주 뜨거운 물은 용암이 흐르는 근처의 땅에서 나오며, 전기를 발전시키는 터빈을 움직이는 데 사용된다. 터빈을 통과한 증기와 뜨거운 물은 열교환기를 지나 온수난방시스템에 열을 공급하고 난 뒤에 블루라군과 온천으로 흘러 들어간다. 온천수에는 실리카와 유황 같은 광물질이 풍부하고, 건선과 같은 피부병으로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온천수의 온도는 평균 40℃이다. 광물질의 함유로 물빛은 항상 우유빛 푸른색을 띠게 돼 신비로움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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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의 날씨에 부들부들 떨며 쏜살같이 입수한 우리는 금세 온몸을 적시는 블루라군의 온기에 아늑히 젖어들고 말았다. 마음씨 좋은 네덜란드 커플의 남편 반다이크가 쏜 맥주를 마시며 이 포근한 푸른 물사위 속에서 언제까지나 주저앉아 있고 싶어졌다. (그래야 45,000원에 이르는 입장료의 본전을 뽑을테니까.) 이내 푸른 물결 위로 증기가 자욱하더니 북국의 이른 밤별이 내 머리 위로 어둠을 영접하고 있었다.
첫댓글 와~~~블루라군....매력있다..재회님...진심 부럽습니다..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이라 하셨죠? 사진과 설명 감사합니다.
늘 꿈꾸는 삶...지구 곳곳을 여행다니며 살아갈수 있다면...부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