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우회 남도여행
다음은 대학동기 산우회원 25명이 봄나들이 한 여행사진, 기록입니다.
동기 중 사진 잘 찍는 친구가 올린 것을 그대로 따와 범초가 조금 가필했습니다.
00산우회가 주관한 남도여행이 2박3일간(4월15~17) 있었다.
우리나라 여행중 가장 인기있는 여행지라면 단연 남도여행이다.
아침 7시에 떠난 버스는 죽전간이휴게소에서 10 명을 태우니 모두 25명이다.
이제 본격적인 봄꽃놀이 철이라 고속도로는 만차이다. 서해대교를 통해 목포를 향해 차는 달린다.
차에서 김밥을 나누어주어 요기를 했지만 점 심시간이 늦을거라며 간식으로 고인돌휴게소에서 우동,
잔치국수를 선택해서 먹었다. 아침날씨는 아직 좀 쌀쌀했다.
산과 들은 온통 청녹색으로 물들여 놓은듯 하다. 흰 산벚꽃과 조팝나무도 한창 꽃을 피우고 있었다.
목포로 들어서니 늦은 벚꽃과 개나리가 화려한 그림을 펼친듯하다. 유달산이 첫 목적지이다.
새로 건설된 압해대교가 장관이었다.
유달산 정상까지는 오르지 못하고 대학루(待鶴樓)에서 목포시가지와 항만 섬들을 조망했다.
목포의 눈물로 유명한 이난영가수의 노래가락이 흘러나오고 그의 시비가 서 있었다.
기념으로 단체사진을 박으며 노래가사를 보며 흥얼거려본다.
유선각(遊仙閣)에서 다시한번 아름다운 항구도시를 감상했다.
81세라고 하는 노파가이드가 우리일행을 위해 바라다 보이는 고화도와 용머리바위,
삼학도의 유래, 목포(木浦) 지명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
待鶴樓
유달산정기 표지석
내려다 보이는 목포시내와 항구
삼학도와 다도해
82세의 가이드 할매
유달산 오르기 선두에 나선 동문들, 이젠 상노인들이 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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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농기념관
목포에 오면 꼭 들러야한다는 남농기념관을 찾았다.
남농기념관은 한국 남종화의 거장이자 운림산방 3대주인 남농 허건 선생이 1985년5월
선대의 유물보존과 한국남화의 전통을 계승발전 시키기 위해 설린한 미술관이다.
남농은 조선조말 남화의 대가 소치 허건의 친손자이고 미산 허형의 네째아들이다.
평생을 목포에서 보내면서 한국 화단의 중심에 서서 많은 작품과 제자를 길렀다.
이곳 미술관에는 소치 허련, 미산 허형 그리고 남농 허건, 임인 허린 등 3대의 작품을 중심
으로 조선조 유명화가와 현대의 중견작가의 작품 300여점이 전시되고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의제(의도인)허백련 선생의 작품도, 소전 손재형의 작품도 볼 수 있었다.
**소치 허련은 진도태생으로 털팔이 청년시절 해남으로 와 일지암 초의선사를 만나 그림에의 꿈을 키워
초의선사와 다산선생의 천거로 추사 김정희 문하에 들어가 글씨부터 배워 그림의 대가가 되었다. 다산의 큰 덕으로 소치 허련 화가가문이 탄생한 걸 생각하면 큰 어른의 그늘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남농기념관으로 들어가고 있다.
남농 허건 선생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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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연포탕을 먹으러 독천식당으로 갔다.
목포항에서 제법 떨어진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에 있다.
이집은 전국적으로 유명하여 언제나 많은 손님들이 붐빈다.
갈낙탕(낙지에 갈비)과 연포탕을 식성대로 맛있게 먹었다.
남도음식의 명가답게 맛은 좋았으나 한그릇에 15,000원이라! 좀 비싸다는 평.
산낙지가 없어서는 아쉽다고 5접시를 보탰다.
연포탕, 갈낙탕을 처음 먹어보는 회원들도 있어서 이 지방의 특이한 메뉴를 먹어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여행은 꼭 보는 여행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 식도락의 즐거움이 여행의 별미이다.
배불리 점심 먹고 해남을 향해 달린다. 가는 도중에 보이는 월출산의 바위산 모습이 계속 시선을 끈다.
전라남도의 유명한 산 중에는 월출산과 곧 가게되는 두륜산, 그리고 달마산이 있다.
연포탕,갈낙탕으로 유명한 독천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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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우당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해남의 고산 윤선도 종택이 있는 녹우당(綠雨堂)이었다.
녹우당은 해남 윤씨의 종가이다. 윤선도의 4대 조부인 효정(호는 어초은(漁樵隱) 1476~1543)이 연동(蓮洞)에 살터를 정하면서 지은 15세기 중엽의 건물이다. 사랑채는 효종이 스승인 윤선도에게 하사했던 경기도 수원집을 해상 운송하여 이곳에 이전하여 녹우당이란 이름을 붙였다.
지금은 해남 윤씨 종가 전체를 통틀어 녹우당으로 부르고들 있으나 원래는 그 사랑채 이름이 녹우당이다.
'ㅁ'자형을 이루며 안뜰을 둘러싼 안채와 사랑채를 중심으로 행랑채가 여러 동 있고 집 뒤편 담장
너머에 삼신제단이 있으며 그 동쪽에 해남 윤씨의 중시조인 어초은 윤효정과 윤선도의 사당이 있다.
녹우당이란 이름은 집 뒤 산자락에 우거진 비자숲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쏴하며 푸른 비가 내리는 듯 하다고 하여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입구에는 당시에 심은 은행나무가 녹우당을 상징하고 뒷산에는 오백여 년 된 비자나무숲(천년 기념물 제 241호 )이 우거져 있다. 이 곳에는 윤두서 자화상(국보 제 240호) 산중신곡집(보물 제 482호) 고화첩(보물 제481호), 노비문서(보물 제483호), 어부사시사집(漁父四時詞集) 등의 지정문화재와 3천여 건의 많은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현판은 옥동 이서의 글씨다.
녹우당 뒤 비자숲길을 산책하고 별도의 고산유물전시관에 들렀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윤두서의 자화상(국보제240호)이다.
극사실주의적인 수법으로, 하도 정밀하게 그려서 한국 최고의 초상화라고도 한다.
280년 전에 붓과 먹으로 그린 그림이 라이카로 찍은 사진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준다.
특히 자신의 눈과 수염을 그린 부분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강렬한 느낌을 받게 한다.
윤선도의 예술혼은 그의 증손인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1668∼1715년)가 이어받는다.
윤두서야말로 실제 이 집에서 거주한 주인이다.
이 집에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생애 대부분을 여기서 보냈다.
녹우당의 상징인 300년의 수령을 가진 은행나무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다음 목표지인 두륜산으로 향했다. 케이블카를 타기로 했다. 2003년 2월에 개통된 케이블카는 그 길이가 1,500m라고 한다.
8분가량 케이불카를 타고 해발 568m지점에서 내려 나무계단을 걸어 두륜산의 고계봉(638m)까지 올랐다.
내려다 보이는 풍광이 아름답다. 한반도처럼 생긴 호수와 전답모습이 신기하고, 바다와 평야가 동시에 보이며 멀리 두륜봉, 도솔봉, 가련봉, 노승봉 등이 연봉으로 줄지어 서 있다.
시계가 좋은 날에는 노화도, 보길도, 당사도, 진도가 보이며 멀리 한라산도 보인다고!
녹우당
비자나무 숲길
녹우당 전경
공재 윤두서 자화상(국보제 240호)
조선조 내내 해남 윤씨 가문은 남도 땅 일대에서 가장 부유한 토호였으리라, 또 다산의 외갓집이기도 했다.
그래서 다산선생 강진 유배생활도 이 해남윤씨가문의 도움으로 비교적 안락했던 것이다.
케이블카
원경이 한반도 지도모습이라는 논과 밭.
나무계단을 걸어오른다.
고계봉에서
고계봉에서 단체사진.
맨 오른 쪽이 범초 - 술병을 늘 달고 다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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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랜 세월 익혀온 장맛같은 친구분들과의 남도여행 저절로 즐거움이 묻어나는 여행이셨겠어요. 사진이 안보여 섭섭하네요. 잘 보고 갑니다. *^^*
사진을 다시 찍어 올렸습니다. 그랬더니 희미한 게 영 엉망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