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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민동락의 시설 및 근무자 현황은 생략합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순례단원들과 함께 들었던 핵심인, 강의 내용을 위주로 정리합니다.
말씀하시는 내용을 다 받아적을 마음도 없었고,
그럴만한 필기 실력도 없습니다.
어쩌면 구체적으로 약간 다르게 기억하는 내용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저 제게 와닿은 것, 인상깊게 마음에 남은 말씀을
제가 기억하는 안에서 정리합니다.
말씀하시기 전에 묘량면사무소 사회복지 전담공무원 정영숙 선생님이
묘량면 소개를 간략히 해주셨고,
같이 일하시는 권혁범 센터장님, 이영훈 할매손 모싯잎송편 사장님이 인사하시고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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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묘량으로 내려와 여민동락을 꾸린지 2년 됐습니다.
그동안 어떤 철학과 자세로 일해왔는지,
앞으로 단기 3년 계획은 어떠한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철학과 자세', 이 두 단어에 정신이 번쩍 들면서
말씀하시는 대표님이 눈에 확 들어왔다.
"개인적으로 이전 기관에서 일해온 바를 돌이켜 보았을 때, 그 반성적 성찰로서
(대표님 개인적인 내용이자, 이전에 일한 기관을 평가하는 말로 들릴 수 있기에 생략합니다)
저희는 영광에 들어오며 정부 보조금, 재단 프로포절, 지역사회 후원개발에 매이지 말고
완전한 재정자립을 3년 안에 이루고자 합니다."
보통 그게 가능하냐, 가능하지 않느냐를 염두에 둘 터인데
그렇게 하겠는 뜻을 구체적으로 잡으셨다는 대표님 말씀에
가슴에 뜨거운 파도가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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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의 공생을 화두로 삼고, 작게 그리고 곳곳에 일하고자 합니다.
가령, 각 마을 경로당을 거점으로 삼고 일하는 식으로요."
"저희는 가난하게, 불편하게! 라는 철학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그게 가능했겠습니까?
여민동락 식구들도 처음 1년은
일주일에 한 번씩 광주 마트가서 장보고, 시식하면서 위안삼는가 싶더니
시간이 지나니까 그게 더 귀찮은 거에요.
이제는 안 나갑니다.
살아가며 철학이 우선하면, 돈에 덜 얽매이게 된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실제로 저희 기관에 있는 가전제품, 살림도
주워오거나 후원받은 게 대부분 입니다.
무얼 사더라도 기왕에 좋은 거 사자 그러지 않고
그만한 돈을 투자할만 한가? 충분히 심사숙고 합니다.
그러면서 가난하고, 불편해지는 거죠."
"원래는 중형차를 타고 다니다가 소형차인 모닝으로 바꿨어요.
통행요금도 줄지, 세금 줄지, 보험료 줄지~
그 것도 아내가 가끔 몰고 제가 안 쓰니까
저는 동네에서 차 얻어타고 다니는 경우가 많아요.
차 없으니까 좋은 점도 많아요, 하하."
단순소박한 삶, 조화로운 삶...
말은 쉬우나 삶으로 사는 것은 분명 다를텐데
농촌 사회사업가로 일하며 실제로 경제생활을 어떻게 하고 계신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니 깊이 와닿았다.
농촌이란 지역사회,
농촌에 사는 사람들 덕분에 월급을 받는 시골사회사업가가
소농보다 많이 번다는 사실이 내 마음 한 켠 늘 작은 불편함이 있었는데,
강위원 대표님 말씀을 듣고 어떻게 얼마를 버느냐 못지않게
실제로 어떻게 소비하며 사느냐를 깊이 성찰하게 되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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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역에서 일하면서
첫째로, (보통)지역주민의 신뢰가 핵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민동락 개원식 축사를 할 때 지역 유명인사랍시고
군수, 군의원 이런 사람 모시려고 하지 않았어요.
마을에 계신 대한노인회 회장 어르신, 이장단 단장님, 마을 최고령 어르신을 모시고
덕담해주십사 부탁드렸습니다.
그렇게 준비하고 있으니,
오히려 군의원이 센터장을 불러
'너희 기관은 보조금 얼마 받고 있느냐?'며
나한테 잘 보이면 더 지원하겠다는 식으로 물었는데
'저희는 정부 보조금 안 받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니
당황스러워 하고, 불쾌해 하더라고요.
저희에게 쉬운 길은 있지만 일부러 택하지 않았어요.
어설픈 타협은 굴종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저희가 개원행사부터 그렇게 준비했더니
이후로 마을 보통 주민들이 십시일반 후원하시고,
10원짜리 자판기 이용하시다가
종종 양파, 감자 같은 농사 지은 것 두고 가시고 그래요."
어떻게 정부 보조금에 연연해 하지 않았는지,
개원행사 사례로 확연해지는 순간.
그 뜻의 의연함에 감탄했고, 그저 거부만 하기보다
지역사회 보통 사람의 인정과 신뢰를 받고자 노력한
여민동락의 일관된 실천에 다시금 가슴이 뜨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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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우리가 다 하겠다는 욕심 부리지 않습니다.
그러면 망하기 쉽다고 봅니다.
그래서 인큐베이팅하고, 네트워킹하려고 합니다.
기존에 있는 마을 건물을 활용하거나
가령, 교회에서 동네 아이들의 야학을 하시도록 돕습니다."
'우리가 다 하겠다는 욕심',
우리 하는 일로 하여금
우리 프로그램, 시설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사람살이와 당사자 삶이 돋보이게 하려고 애쓴다는 말씀으로 들었다.
이 것 필요하고, 저 것도 해야하나
모두 우리가 도맡겠노라 하시지 않았다는 점.
우리 하는 일의 정체성과 스스로의 역량, 기회비용을 생각하고 실천하시는 증거로 들렸다.
# 앞으로 어떻게 일하고 싶은가? - 단기 3년 계획
이 부분을 다른 사람이 보강해주면 좋겠습니다.
지역사회를 바라보는 관점, 지역사회의 지향을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셨던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기억하는 이야기는
'학교 살리기 추진위원회', '할매손 모싯잎 송편' 등인데 자세히 적지 못했습니다.
혹 관련이 적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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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롭고 아름답고 순수한 것은 통하게 마련입니다."
조금 다른 경우에 인용하신 듯 하나
순간 복지소학의 '성의정심誠意正心'이 생각났다.
정성스러운 뜻과 바른 마음,
사회사업가로서 당사자를 주인되게 돕고자 하며
지역사회를 약자인지적으로 더불어 살게 돕고자 하는
정성스러운 뜻과 바른 마음이 '통하게 마련이다'라고 들린 것은 지나친 생각일까.
# 어르신을 돕는 인간관
"어르신께 큰 절을 '드린다'고 합니다.
어르신을 섬기는 마음으로 정중하게 드리는 겁니다.
센터에서 아침마다 절을 드리자
처음에 '에이, 자네 왜 그러나'며 민망해하시던 어르신들도
시간이 지나며 절 받는 품위, 당당함이 살아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어르신이란 그 존재 자체만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적어도 어르신으로서 사람의 품격이 살아있어야 한다는 인간관.
그 인간관을 뒷받침하는 매일 아침'큰 절 드리기'
"저희가 하는 활동도 어르신들이 잘 하실 수 있는
농사일로 하고자 합니다.
어르신이야말로 농사의 베테랑 아니십니까?
여민동락 오시는 어르신들,
낮에 이런저런 일 하시고는 댁에 돌아가셔서
'하루종일 일만 했다'고 농 하시곤 합니다.
어르신들 오셨으니 편하게 가만히 계시라고 하는 게 아니라
부모님처럼 기여하시게끔 합니다.
그렇게 지내다보니 후원물품, 가령 농사지은 것은
어르신들 덕에 저희가 먹습니다."
"건강한 어르신, 소농들이 자본에 착취당하거나
장기요양보험 등급에 들어오지 않고 살아가고자 만든 것이
사회적 기업으로 하고 있는, '할매손 모싯잎 송편'입니다."
'가만히 계십시오. 이제부터 저희가 다 대신 해드리겠습니다'가 아니라
'저희가 돕긴 하겠습니다만, 어르신께서 잘 아시는 것은 알려주고, 종종 도와주십쇼'.
어느 순간 복지사업 대상자란 이름으로
내 삶 송두리째 일방적으로 도움받는 대상이 아닌,
한평생 땅에 뿌리내려 산 농민으로서 어르신의 '삶'을 존중하고
그 자존심을 살려 마지막까지 어르신답게
누군가에게 주는 기쁨 누리시도록 거드는 인간관.
어르신의 자존심, 염치, 당당함을 살리고 북돋는 여민동락 활동...
# 지역사회를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개원 1년전, 권혁범 센터장님 부부는 묘량면 허름한 빈집에 들어와서
차량 통행량 조사까지 해가며 지역조사를 했습니다."
"방역활동이 지역주민들 만나는 참 좋은 구실이더군요.
기름 지원받고, 좋은 일 한다고 칭찬도 받으면서
한 집 한 집 다 들러야 하니 지역사회 구석구석 만났습니다."
차량 통행량 조사, 방역활동...
모든 일을 지역사회 두루 누비고 만나는
사회사업의 소재, 구실로 여겼다고 이해했다.
지역주민 만나겠다는 그 정성스러운 뜻과 마음에 깊이 감동했다.
그 밑에 쓴 메모.
'여민동락은 이렇게까지 했는데, 나라고 못 할 것 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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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살리기 추진위원회,
어르신께 말씀드리는 억양의 소중함,
지역사회가 장차 어떠하길 바라는 큰 지향(교육,경제,문화),
농촌지상주의에 빠지지 않으려는 노력,
여민동락보다 어려운 여건의 기관에게 후원하는 마음가짐...
위의 내용 말고도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 것도 있고
잘 이해하지 못해 기록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보태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기관의 운영원칙이 확고했고,
같이 일하는 동료 한 명 한 명을 소중히 여겼고
자기 철학을 쉽사리 타협하지 않는 '소신' 그 자체로
순례단을 여러 번 감동, 전율케 했던 여민동락.
그 존재가 고맙고 든든합니다.
참 많이 배우고 힘 많이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첫댓글 감동하며 전율했습니다. 몰입했습니다. 마음으로부터 응원하고 축복했습니다. 여민동락이 잘 되기를, 일꾼들의 그 뜻과 삶이 오래 오래 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작게, 그리고 곳곳에"
"가난합시다, 더 불편합시다."
"최고로 행복합니다." - 여민동락에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