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로호소개*
면적 38.9㎢. 저수량 약 10억t. 1944년 화천군 간동면(看東面) 구만리(九萬里)에 북한강 협곡을 막아 축조한 호수로, 댐 높이 77.5m의 낙차를 이용하는 화천수력발전소는 출력 10만 8000kW이다. 호반이 일산(日山:1,190m)·월명봉(月明峰:719m) 등의 높은 산에 둘려 있어 호수의 경관을 한층 아름답게 해준다.
그리고 깊은 물에 잉어·붕어·메기·쏘가리 등 담수어가 풍부히 서식하는 낚시터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6·25전쟁의 화천전투 때 북한군과 중공군 수만 명을 수장(水葬)한 곳이라 하여 당시의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 파로호라고 명명하였다. 8·15광복 직후에는 38선으로 막혀 있었으나 6·25전쟁 때 수복한 지역이다.
설악 IC에서 내려 청평호 주변에 별장촌이 있다고 하여 국도를 따라 가 보았으나, 별장 같은 건 보이질 않았다. 바로 화천 파로호로 향하였다. 남한의 최북단에 있는 호수인 파로호를 찾은 것은 이름도 아름다웠다.
화천은 생각보다 작은 시골 도시였다. 시가지의 규모는 작은 읍정도 될 것 같았다. 화천읍 한가운데서 파로호를 가로지르는 부교위를 걸어보다가 네비에 국민관광단지라고 나타나는 파로호 선착장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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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에는 유람선과 호수 연안을 연결하는 연락선이 있었는데, 하루에 한두어번 밖에 배가 뜨지 않았다. 평화의 땜까지 가는 배가 있다고 하는데, 시간이 맞질 않고 너무 먼 거리였다. 선착장은 사람도 별로 없고 한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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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로호 100리 산소길"이라는 산책길. 파로호에만 있는 약 2킬로미터의 부교 산책길을 건너서 산자락을 따라 호수 연변의 숲속으로 산책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시간이 있었다면 끝까지 걸어보고 싶은 좋은 길이었다.
요즘 어딜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산책 길을 만드는 유행을 쫒아 주민들의 휴식과 관광상품을 위해 만든 듯하였다. 많은 예산이 들었을 법한데 이용자는 거의 없었다. 지역주민들은 없고 간간이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정도였다. 건너편 화천읍 주변의 호수가에도 산책 길을 만들어 두었는데, 그늘이 없으니 걷기는 곤란하고 자전거 타기에는 적당할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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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교 위의 산책 길은 자전거를 금한다는 표지판이 보였지만 시골이라 단속 같은 걸 하지 않으니 간혹 자전거를 타고 오는 사람도 보였다. 구름이 끼어 햇살도 강하지 않으니 걷기 좋은 날씨였다. 부교위를 걷는 분위기는 상당히 낭만적이었다. 그리고, 산줄기가 호수를 감싸고 있는 경관이 아름다웠다.
돌아오다가 춘천이 가까워 올 무렵 파로호를 소양호로 연결하는 강줄기가 나타나 차를 세우고 경치를 구경하였다. 수량이 많고 강물의 폭이 넓었다. 경치좋은 곳을 골라 한번 살아봐도 괜찮을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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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으로 향하였다. 횡성에서 양평은 평범한 지방국도였다. 희랍인 조르바와 그리스로마신화의 번역자로 유명한 번역문학가이자 소설가인 이윤기가 양평과 횡성의 경계면인 어느 시골에서 오래 살았다고 하였다. 그는 많지 않은 나이임에도 작년에 작고하여 얼마전 1주기 추모행사 얘기를 들었던 것 같다.
(언어란 본질적으로 한계가 따른다. 일정한 한계속에서나마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정서는 그 언어만이 제대로 표현해 낼 수 있는 것이다. 번역된 외국 소설이나 고전은 많지만 우리가 그 참맛을 느끼기 어려운 이유가 그들의 정서와 그들의 언어를 우리의 정서와 언어로 완벽하게 치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영어, 불어, 독일어권 정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외국 책을 영문판이나 일어판 중역으로 읽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은 안타까운 것이다. 한번만 번역해도 전달력이 크게 떨어질 터인데, 이중 번역을 해버리면 만신창이가 될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윤기가 1970년대후반 최초로 조르바를 번역한 것은 높이 살 일이지만 영문판을 중역한 것이어서 아쉽다.)
그는 양평 그의 작업실 나무 아래 수목장을 하였다고 한다. 요즘 수목장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 같다. 나도 한번 고려해봐야 할 것같다. 나는 지리산으로 가고 싶지만 애들이 한번 찾아오려면 고생일 것이니 결국 고객중심으로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생명은 숨이 끊어지는 순간 한줌 재로 남아 우주의 일부로 돌아가야 한다. "태어나기 이전 나의 본래 모습은 무엇일까" 한방울의 물질일까 기운일까. 유에서 비롯되었을까 무에서 창조되었을까. 연기에 의한 필연일까 우연의 산물일까. 태어나지 않은 셈치면 간단한데 왜 이렇게 사념이 많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누구(무엇)일까" 이 간단한 질문에 대한 답이 왜 그렇게 어려울까.
성리학의 존재론이자 우주론인 주리론, 주기론, 이기일원론, 이기이원론(이기호발설), 이기일원론적 이원론 같은 궁리는 철학적 수준은 높고 난해한데, 자신의 자아를 소홀히 다루기 때문에 공허한 것 같다
철학적 인식의 출발점은 자기자신 이어야 할 것이다. 자신을 극복한 다음 궁극의 진리에 도전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불교의 수행방법이 마음에 든다. 하지만, 도에 이르는 길은 너무나 어렵다. 경북의 어느 절집의 선승은 수행의 의지를 다지기 위해 손가락을 세개나 불에 태워 없앴다고 한다. 그렇게 발심이 강한 그도 깨쳤는지는 미지수이다.
나는 도의 경지를 선망하지만 도전할 용기는 없다. 아무나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전생의 수행공덕이 쌓여야만 깨칠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양평을 거치는 국도가 지름길이기는 하였지만 말로만 듣던 교통체증에 걸려들어 2~3시간이나 지체를 해야했다. 양수리 부근에서 내려 저녁을 먹을까 하다가 너무 늦어질 것 같아 찐빵과 만두로 차에서 저녁을 떼우고 집에 들어서니 8시가 넘었다.
용문산은 언젠가는 한번 가봐야 할 산이기는 하지만, 겨울이나 비수기에 찾아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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