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2일 밤 tvN 토일드라마 ‘아라문의 검’이 끝났다. 9월 9일 4.9%(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이하 같음.)로 출발했지만, 최저 시청률인 2.1%(6화)대로 떨어진 적도 있다. 최고 시청률도 5.0%(3화)를 찍는데 그쳤다. 최종회 시청률 역시 4.6%(12화)에 불과하다. ‘아스달 연대기’가 6.7%로 시작해 최고 시청률 7.7%를 기록한 것에 비해 한참 실망스러운 시청자 호응이다.
그렇다. ‘아라문의 검’은 2019년 6월 1일부터 9월 22일까지 방송된 18부작 ‘아스달 연대기’의 속편이다. 자세한 건 ‘아스달 연대기’ 다룬 글을 참조하되 파트제로 편성한 이유는 새로 들어보자. 제작진은 “드라마 특성상 그래픽 작업이 길어질 수밖에 없어 택한 편성”임을 내세웠지만, 그걸 인정해도 뜸 들이지 않은 밥을 먼저 푸기부터 한 격인 띄엄띄엄 파트제 방송이다.
‘아스달 연대기’를 파트1, 2로 나누기까지 하며 너무 서둘러 방송한 걸 반성이라도 하고 신중을 기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그 속편은 반대로 너무 늦어졌지 싶다. 아무리 코로나19가 발목을 잡았다고 하나 2019년 9월 끝난 ‘아스달 연대기’의 속편인 ‘아라문의 검’ 제작이 2022년 2월 확정됐다고 하니 과연 의지가 있었는지 의구스러울 정도다.
무엇보다도 저조한 시청률이 그걸 말해주고 있는 게 아닐까? 아무튼 그 사이 김영현ㆍ박상연 콤비의 극본은 그대로지만 프로듀서가 김원석에서 김광식으로 바뀌었다. ‘아스달 연대기’의 4주역인 장동건(타곤 역)ㆍ김옥빈(태알하 역)은 그대로지만, 송중기ㆍ김지원이 하차했다. 대신 이준기ㆍ신세경이 그 배역인 은섬ㆍ사야와 탄야를 소화해내는 일이 벌어졌다.
얼마 전 KBS 주말극 ‘효심이네 각자도생’의 노영국이 심장마비로 별세해 중도하차한 바 있다. 이런 경우라면 모를까 개인 일정 등 ‘설’만 무성한 가운데 왜 송중기ㆍ김지원이 2편에서 중도하차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혀진 게 없다. 분명한 건 중도하차가 팬들을 위한 연기자의 올바른 자세는 아니란 점이다. 물론 새로 합류한 이준기ㆍ신세경의 연기와 별개로 시청자들 입장을 말한 것이다.
아무튼 4년 넘게 지나 돌아와 너무 연착한 속편으로 보일망정 ‘아라문의 검’을 당연한 일처럼 본 것은 그래서다. 대신 속편이기에 의무적이라 할까, 어떤 압박감 때문 본 ‘아라문의 검’으로 인해 시청시간대가 겹친 SBS ‘7인의 탈출’과 ‘KBS드라마스페셜2023’ 등 다른 드라마들을 보는데 애로를 감내해야 했다.
사실 ‘아라문의 검’도 변칙 방송의 연속이었다. 가령 9월 23일 밤 본방송 5~6화를 연속 내보냈다. 반면 9월 30일과 10월 1일 방송은 결방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경기가 중계되는 때였지만, 그것과 아무 상관없는 케이블채널 tvN이 왜 그런 편성을 했는지 의아하다. 항상 하는 얘기지만 국가대표 축구나 야구경기를 중계해도 드라마 팬들은 엄연히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tvN은 대한민국과 일본의 결승전 축구경기가 열린 10월 7일 밤도 ‘아라문의 검’을 결방했다. 축구경기를 중계도 안하면서 내린 변칙 편성의 결방이다. 대신 10월 8일 밤 ‘아라문의 검’ 7~8화를 연속 방송했다. 이런 혼란 와중에서 ‘아라문의 검’ 본방사수하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법하다. 이를테면 방송사 스스로 시청 리듬을 깨버린 셈이다.
아니나다를까 본방송을 5~6화 연속 내보낸 대가는 컸다. 6화 시청률이 앞에서 잠깐 말했듯 2.1%로 반토막나버렸다. 7~8화 연속방송에서 3%대로 올라서긴 했지만, 항저우 아시안게임 이전 보여준 1~4화의 4~5%대 시청률을 회복하지는 못했다. “갑작스러운 편성 변경과 결방, 연속 방송으로 시청률은 반토막이 났다. 아시안게임을 중계하지 않는 채널임에도 축구경기를 피하겠다며 시청자와의 약속을 어기며 자초한 결과”(텐아시아, 2023.10.7.)다.
‘아라문의 검’은 아스달의 왕 타곤과 아고연합의 이나이신기(아고족의 영웅) 은섬이 벌이는 전쟁 이야기다. 그들 사이에 대제관 탄야와 왕후 태알하가 아스달을 빼앗거나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또 은섬의 배냇벗(쌍둥이) 사야가 탄야를 사랑하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탄야는 은섬과 포옹도 하고 키스까지 하고 있는데, 이른바 삼각관계다.
결국 은섬은 아스달을 정복한다. 탄야는 백성들 앞에서 신성(神聖)의 힘으로 은섬에게 정통성을 갖게 해주고, 새로운 아스달 시대가 열린다. 탄야가 타곤을 제거하고 은섬을 내세운 것은 널리 인간세계를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의 세상을 위해서다. 그런데 이걸로 끝이 아닌 결말 장면이 이어진다. 다음 시즌으로 돌아올 것처럼 끝나서다.
그냥 둬도 곧 죽을 타곤의 뒷목을 찔러 즉사시킨 태알하가 해독제와 바꾼 아들 아록(신서우)일 데리고 탈출, 수 년이 흐른 후 기토하(이호철)를 앞장세워 아스달 수복에 나서고 있어서다. 다른 종족에 이끌려 탄야와 멀어지게된 사야도 ‘원하는 게 아스달’이라며 다시 갈 것을 내보이는 등 또 다른전쟁을 예고하고 있음이 그것이다.
스타뉴스(2019.4.29.)가 ‘단독’이라며 시즌 3도 제작 구상중이란 보도를 한 바 있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닌 걸로 보인다. 오히려 경기일보(2023.7.11.)에 따르면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은 지난해 6월 세트장 3차 대부 재계약(대부 기간 지난해 7월 5일~내년 7월 4일)을 체결했으나 계약 종료1년을 앞둔 지난 6월 오산시에 세트장 사용 조기 종료를 요청했다.
그에 따라 촬영 세트장 철거가 이루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게다가 시청률도 전편만 못한 악재가 겹쳐 다음 시즌 제작에 대한 동력이 떨어지기까지한 상태다. 과연 은섬과 사야, 그리고 태알하의 새로운 전쟁을 그린 시즌 3이 돌아올 수 있을까. 만약 돌아온다면 ‘아라문의 검’처럼 너무 늦지 않는 게 필수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그야 어쨌든 아무튼 얼마 전 SBS가 재방송 드라마에 대사를 자막으로 내보내 신선한 충격을 줬는데, ‘아라문의 검’은 한 술 더 뜬다. 아예 본방송 3화부터 대사 자막을 넣어 드라마 보기를 편하게 하고 있어서다. 사실 상고시대가 배경인 판타지 드라마라 사람 이름조차 생소해 한 번 대사로는 알아듣기 어려운 점을 일거에 해소해준 것이라 할까.
다소 정신이 사납기는 해도 이준기의 은섬ㆍ사야 1인 2역은 흥미를 끄는데 성공한 듯싶다. 특히 무백(박해준)의 죽음 이후 아고족 이나이신기 은섬과 타곤 양자이자 총군장 사야의 위치가 서로 바뀌어 이루어지는 한동안 전개가 그렇다. 뭔가 아슬아슬하고 조마조마한 기분의 심연에 시청자들을 빠져들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야로 알았던 탄야가 “세상 참 재밌네. 이거 무슨 병인가봐”라 말하는 걸 듣고 은섬인 줄 알아차린 게 재미있기도 하다. 그건 은섬과 단 둘이 주고 받은 그들만 알고 있는 신호나 신표 같은 말이다. 탄야가 사야를 은섬으로 알아챈 결정적 이유다. 다만, 거기서 1편에서의 회상 장면이 없는 건 아쉬운 점이다.
1편에서 송중기와 김지원이 주고 받은, 그러니까 전혀 다른 사람들 이야기로 보일까봐 회상 장면이 필요했음을 느끼면서도 넣지 못한 게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그 이질감을 감당하기 벅찼던 게 아닐까? 그 콤플렉스가 영향을 미쳤는지 송중기ㆍ김지원이 나오지 않는 다른 과거 회상 장면도 없는 등 아예 전편을 지워버린 속편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편 의아스러운 게 더러 있다. 가령 은섬과 탄야의 키스장면이다. 탄야는 제정일치 시대 대제관으로 판을 일거에 뒤집을 수도 있는, 영능(초능력)을 지닌 ‘신녀(神女)’다. 그런 그가 여염(閭閻) 처녀처럼 정인(情人)과 사랑행위가 가능한지 공감이 안된다. 특히 최종회인 12화에서의 키스신은 아스달 정벌 및 차지에 대한 자축적 성격으로 보여 강한 거부감이 생긴다.
또한 치열한 전투를 치른 직후에도 이준기 등 배우들의 얼굴이 너무 미끈하게 나오는 등 분장의 소홀함 내지 허술함도 지적해둘만하다. 아무리 패전을 앞둔 왕이라 해도 타곤이 비취산 만들라며 일개 바치(기술자) 아일 인질 잡아 협박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대작이란 위용에 걸맞지않게 발음상 오류가 이맛살을 찌뿌리게 해 아쉬움을 얹어주기도 한다. 특히 ‘창고’가 몸살을 앓았다. 그냥 창고인데, ‘창꼬’라 발음한 건 3ㆍ4ㆍ9화에서다. 3명의 배우가 모두 ‘창꼬’라 말한 걸 보면 개인이 아닌 대본의 문제로 보인다. 7ㆍ9화에선 “비스(빛의→비츠) 땅으로” 같은 발음상 오류도 있다.